대무신왕大武神王
1대무신왕이 즉위하다
大武神王立。諱無恤,琉璃王第三子。生而聰慧,壯而雄傑,有大略。琉璃王在位三十三年甲戌,立爲太子,時年十一歳。至是即位。母,松氏,多勿國王松讓女也。
대무신왕이 즉위하였으니 이름은 무휼(無恤)이요 유리왕의 셋째 아들이다. 나면서 총명하고 슬기로웠으며 자라매 씩씩하고 뛰어나 큰 지략이 있었다. 유리왕 재위 삼십삼년 갑술에 세워 태자가 되었으니 그때 나이 열하나였고, 이때에 이르러 즉위하였다. 어머니는 송씨니 다물국 왕 송양의 딸이다.
협주 1
或云大解朱留王。
대해주류왕(大解朱留王)이라고도 한다.
2이년 — 백제 백성이 투항해 오다
二年,春正月,京都震。大赦。百濟民一千餘戸來投。
이년 봄 정월에 서울에 땅이 흔들렸다. 크게 사면하였다. 백제 백성 일천여 집이 와서 투항하였다.
3삼년 — 머리 하나에 몸이 둘인 까마귀
三年,春三月,立東明王廟。秋九月,王田骨句川,得神馬。名駏䮫。冬十月,扶餘王帶素遣使送赤烏,一頭二身。初,扶餘人得此烏獻之王,或曰:「烏者黑也,今變而為赤,又一頭二身,幷二國之徵也,王其兼高句麗乎?」帶素喜送之,兼示或者之言。王與群臣議答曰:「黑者,北方之色,今變而為南方之色,又赤烏瑞物也,君得而不有之,以送於我,兩國存亡,未可知也。」帶素聞之,驚悔。
삼년 봄 삼월에 동명왕 사당을 세웠다.
가을 구월에 왕이 골구천에서 사냥하다가 신령한 말을 얻어 이름을 거루(駏䮫)라 하였다.
겨울 시월에 부여 왕 대소가 사신을 보내어 붉은 까마귀를 보냈는데 머리가 하나요 몸이 둘이었다. 처음에 부여 사람이 이 까마귀를 얻어 왕에게 바치니 어떤 이가 말하였다. "까마귀는 검은 것인데 이제 변하여 붉게 되었고 또 머리 하나에 몸이 둘이니 두 나라를 아우를 조짐입니다. 왕께서 고구려를 아우르시려나 봅니다." 대소가 기뻐하여 보내며 아울러 어떤 이의 말을 알렸다.
왕이 여러 신하와 의논하여 답하였다. "검은 것은 북방의 빛인데 이제 변하여 남방의 빛이 되었고, 또 붉은 까마귀는 상서로운 물건인데 그대가 얻고도 갖지 않고 나에게 보냈으니, 두 나라의 있고 없어짐을 아직 알 수 없다." 대소가 듣고 놀라 뉘우쳤다.
4사년 — 부정씨와 괴유와 마로를 얻다
四年,冬十二月,王出師,伐扶餘,次沸流水上,望見水涯,若有女人,舁鼎游戯。就見之,只有鼎。使之炊,不待火自熱,因得作食,飽一軍。忽有一壯夫曰:「是鼎吾家物也,我妹失之,王今得之,請負以從。」遂賜姓負鼎氏。抵理勿林宿,夜聞金聲。向明,使人尋之,得金璽兵物等,曰:「天賜也。」拜受之。上道有一人,身長九尺許,面白而目有光。拜王曰:「臣是北溟人怪由。竊聞大王北伐扶餘,臣請從行,取扶餘王頭。」王悅許之。又有人曰:「臣赤谷人麻盧,請以長矛為導。」王又許之。
사년 겨울 십이월에 왕이 군사를 내어 부여를 치는데 비류수 가에 머물렀다. 물가를 바라보니 여인이 솥을 들고 노니는 듯하였다. 나아가 보니 다만 솥만 있었다. 그것으로 밥을 짓게 하니 불을 기다리지 않고 저절로 달아올라, 이로써 밥을 지어 한 군사를 배불렸다.
문득 한 씩씩한 사내가 있어 말하였다. "이 솥은 우리 집 물건입니다. 내 누이가 잃었는데 왕께서 이제 얻으셨으니 지고 따르기를 청합니다." 마침내 부정씨(負鼎氏)라는 성을 내렸다.
이물림에 이르러 묵는데 밤에 쇳소리가 들렸다. 날이 밝자 사람을 시켜 찾게 하여 금 도장과 병기 등을 얻고 말하였다. "하늘이 주신 것이다." 절하고 받았다.
길에 오르니 한 사람이 있는데 키가 아홉 자쯤이요 얼굴이 희고 눈에 빛이 있었다. 왕에게 절하고 말하였다. "신은 북명 사람 괴유입니다. 가만히 들으니 대왕께서 북으로 부여를 치신다 하니, 신은 따라가 부여 왕의 머리를 얻기를 청합니다." 왕이 기뻐하여 허락하였다.
또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신은 적곡 사람 마로입니다. 긴 창으로 길잡이가 되기를 청합니다." 왕이 또 허락하였다.
5오년 — 부여 왕을 베고 안개 속에 돌아오다
五年,春二月,王進軍於扶餘國南,其地多泥塗,王使擇平地為營,解鞍休卒,無恐懼之態。扶餘王擧國出戰。欲掩其不備,策馬以前,陷濘不能進退。王於是揮怪由。怪由拔劍號吼擊之,萬軍披靡,不能支。直進執扶餘王,斬頭。扶餘人,旣失其王,氣折,而猶不自屈,圍數重。王以糧盡士饑,憂懼不知所為。乃乞靈於天,忽大霧咫尺不辨人物七日。王令作草偶人,執兵立營內外,為疑兵。從間道潛軍夜出。失骨句川神馬,沸流源大鼎。至利勿林,兵飢不興,得野獸以給食。王旣至國,乃會群臣飲至曰:「孤以不德,輕伐扶餘。雖殺其王,未滅其國,而又多失我軍資,此孤之過也。」遂親吊死問疾,以存慰百姓。是以國人感王德義,皆許殺身於國事矣。三月,神馬駏䮫將扶餘馬百匹,俱至鶴盤嶺下車廻谷。
오년 봄 이월에 왕이 부여국 남쪽으로 군사를 밀고 나아갔는데 그 땅이 진흙이 많았다. 왕이 평평한 땅을 가려 진을 치고 안장을 풀어 군사를 쉬게 하며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부여 왕이 온 나라를 들어 나와 싸우며 대비하지 않은 틈을 타려고 말을 채찍질하여 앞서다가 진창에 빠져 나아가지도 물러가지도 못하였다. 왕이 이에 괴유에게 손짓하니, 괴유가 칼을 빼고 소리치며 치매 만 군사가 쓰러져 버티지 못하였다. 곧바로 나아가 부여 왕을 잡아 머리를 베었다.
부여 사람이 이미 그 왕을 잃어 기가 꺾였으나 오히려 스스로 굽히지 않고 여러 겹으로 에워쌌다. 왕은 양식이 다하고 군사가 주려 근심하고 두려워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에 하늘에 신령함을 비니, 문득 큰 안개가 끼어 이레 동안 지척에서도 사람과 물건을 가리지 못하였다. 왕이 풀로 허수아비를 만들어 병기를 잡혀 진영 안팎에 세워 거짓 군사로 삼고, 샛길로 군사를 몰래 밤에 나오게 하였다.
골구천의 신령한 말과 비류 근원의 큰 솥을 잃었다. 이물림에 이르러 군사가 주려 일어나지 못하므로 들짐승을 얻어 먹였다.
왕이 나라에 이르러 이에 여러 신하를 모아 마시며 말하였다. "내가 덕이 없어 가벼이 부여를 쳤다. 비록 그 왕을 죽였으나 그 나라를 없애지 못하였고 또 우리 군수품을 많이 잃었으니 이는 나의 허물이다." 마침내 몸소 죽은 이를 조문하고 병든 이를 위문하여 백성을 위로하였다. 이로써 나라 사람이 왕의 덕과 의로움에 감동하여 모두 나랏일에 몸을 바치기를 다짐하였다.
삼월에 신령한 말 거루가 부여 말 백 필을 거느리고 함께 학반령 아래 차회곡에 이르렀다.
6오년 — 갈사왕이 서고 낙씨 성을 내리다
夏四月,扶餘王帶素弟,至曷思水濱,立國稱王,是扶餘王金蛙季子,史失其名。初,帶素之見殺也,知國之將亡,與從者百餘人,至鴨渌谷,見海頭王出獵,遂殺之,取其百姓,至此始都,是為曷思王。秋七月,扶餘王從弟,謂國人曰:「我先王身亡國滅,民無所依,王弟逃竄,都於曷思,吾亦不肖,無以興復。」乃與萬餘人來投。王封為王,安置掾那部。以其背有絡文,賜姓絡氏。冬十月,怪由卒。初疾革,王親臨存問。怪由言:「臣北溟微賤之人,屢蒙厚恩。雖死猶生,不敢忘報。」王善其言,又以有大功勞,葬於北溟山陽,命有司以時祀之。
여름 사월에 부여 왕 대소의 아우가 갈사수 물가에 이르러 나라를 세우고 왕이라 일컬으니, 이는 부여 왕 금와의 막내아들인데 역사에 그 이름이 빠졌다. 처음에 대소가 죽임을 당하매 나라가 장차 망할 줄 알고, 따르는 이 백여 사람과 함께 압록곡에 이르러 해두왕이 사냥 나온 것을 보고 마침내 죽여 그 백성을 빼앗아, 여기에 이르러 처음 도읍하니 이가 갈사왕이다.
가을 칠월에 부여 왕의 사촌아우가 나라 사람에게 말하였다. "우리 선왕이 몸이 죽고 나라가 없어져 백성이 의지할 곳이 없다. 왕의 아우는 달아나 갈사에 도읍하였고 나 또한 어질지 못하여 다시 일으킬 수 없다." 이에 만여 사람과 함께 와서 투항하였다. 왕이 봉하여 왕으로 삼고 연나부에 편안히 두었다. 그 등에 얼기설기한 무늬가 있으므로 낙씨(絡氏)라는 성을 내렸다.
겨울 시월에 괴유가 죽었다. 처음 병이 위중할 때 왕이 몸소 나아가 위문하니 괴유가 말하였다. "신은 북명의 미천한 사람으로 여러 번 두터운 은혜를 입었습니다. 비록 죽어도 산 것과 같으니 감히 갚기를 잊지 않겠습니다." 왕이 그 말을 갸륵히 여기고 또 큰 공로가 있다 하여 북명산 남쪽에 장사 지내고, 맡은 관청에 명하여 철마다 제사하게 하였다.
7팔년 — 을두지를 우보로 삼다
八年,春二月,拜乙豆智,為右輔,委以軍國之事。
팔년 봄 이월에 을두지를 우보로 삼아 군사와 나라의 일을 맡겼다.
8구년 — 개마국과 구다국
九年,冬十月,王親征蓋馬國,殺其王,慰安百姓,母禁虜掠,但以其地為郡縣。十二月,句茶國王,聞蓋馬滅,懼害及己,擧國來降。由是拓地浸廣。
구년 겨울 시월에 왕이 몸소 개마국을 쳐서 그 왕을 죽이고 백성을 위로하여 편안케 하며, 사로잡고 노략하는 것을 금하고 다만 그 땅을 군현으로 삼았다.
십이월에 구다국 왕이 개마가 없어졌다는 말을 듣고 해가 제게 미칠까 두려워 나라를 들어 와서 항복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땅을 넓힘이 차츰 커졌다.
9십년 — 좌보와 우보를 두다
十年,春正月,拜乙豆智,為左輔,松屋句為右輔。
십년 봄 정월에 을두지를 좌보로, 송옥구를 우보로 삼았다.
10십일년 — 위나암성을 굳게 지키다
十一年,秋七月,漢遼東太守將兵來伐。王會群臣,問戰守之計。右輔松屋句曰:「臣聞恃德者昌,恃力者亡。今中國荒儉,盜賊蜂起,而兵出無名,此非君臣定策,必是邊將規利,擅侵吾邦。逆天違人,師必無功,憑險出奇,破之必矣。」左輔乙豆智曰:「小敵之强,大敵之禽也。臣度大王之兵,孰與漢兵之多,可以謀伐,不可力勝。」王曰:「謀伐若何?」對曰:「今漢兵遠鬪,其鋒不可當也。大王閉城自固,待其師老,出而擊之,可也。」王然之,入尉那巖城,固守數旬,漢兵圍不解。王以力盡兵疲,謂豆智曰:「勢不能守,為之奈何?」豆智曰:「漢人謂我巖石之地,無水泉,是以長圍,以待吾人之困。宜取池中鯉魚,包以氷水草,兼旨酒若干,致犒漢軍。」王從之,貽書曰:「寡人愚昧,獲罪於上國,致令將軍帥百萬之軍,暴露弊境。
십일년 가을 칠월에 한나라 요동태수가 군사를 거느리고 치러 왔다. 왕이 여러 신하를 모아 싸울 계책과 지킬 계책을 물었다.
우보 송옥구가 말하였다. "신이 듣기로 덕을 믿는 이는 창성하고 힘을 믿는 이는 망한다 하였습니다. 이제 중국에 흉년이 들어 도둑이 벌 떼처럼 일어나는데도 군사를 냄에 이름이 없으니, 이는 임금과 신하가 정한 계책이 아니라 반드시 변방 장수가 이익을 꾀하여 함부로 우리 나라를 침노하는 것입니다. 하늘을 거스르고 사람을 어겼으니 군사가 반드시 공이 없을 것입니다. 험한 곳에 기대어 기이한 꾀를 내면 깨뜨림이 틀림없습니다."
좌보 을두지가 말하였다. "작은 적이 굳세면 큰 적에게 사로잡힙니다. 신이 헤아리건대 대왕의 군사가 한나라 군사의 많음과 견주어 어떠하겠습니까. 꾀로 칠 수는 있으나 힘으로 이길 수는 없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꾀로 친다는 것은 어떠한가."
답하였다. "이제 한나라 군사가 멀리 와서 싸우니 그 칼끝을 당할 수 없습니다. 대왕께서 성을 닫고 스스로 굳게 하시어 그 군사가 지치기를 기다렸다가 나가 치는 것이 옳습니다."
왕이 그렇게 여겨 위나암성에 들어가 굳게 지키기를 여러 열흘이었으나 한나라 군사가 에움을 풀지 않았다. 왕이 힘이 다하고 군사가 지쳤으므로 두지에게 말하였다. "형세가 지킬 수 없으니 어찌하랴."
두지가 말하였다. "한나라 사람이 우리를 바위와 돌의 땅이라 물과 샘이 없다고 여겨, 이 때문에 오래 에워싸고 우리 사람이 곤궁해지기를 기다립니다. 마땅히 못 안의 잉어를 잡아 물풀에 싸고 아울러 맛있는 술 얼마를 곁들여 한나라 군사를 대접해 위로하십시오."
왕이 그 말을 따르고 글을 보내어 말하였다. "과인이 어리석고 어두워 상국에 죄를 얻어, 장군으로 하여금 백만 군사를 거느리고 누추한 지경에 드러나 계시게 하였습니다.
11십일년 — 한나라 군사가 물러가다
無以將厚意,輒用薄物,致供於左右。」於是,漢將謂城內有水,不可猝拔。乃報曰:「我皇帝不以臣駑,下令出師,問大王之罪。及境踰旬,未得要領,今聞來旨,言順且恭,敢不藉口以報皇帝。」遂引退。
두터운 뜻에 갚을 것이 없어 문득 변변찮은 물건으로 좌우에 이바지합니다."
이에 한나라 장수가 성 안에 물이 있어 갑자기 함락할 수 없다고 여겨 이내 답하였다. "우리 황제께서 신하가 둔하다 하지 않으시고 영을 내려 군사를 내어 대왕의 죄를 묻게 하셨소. 지경에 이른 지 열흘이 넘도록 요령을 얻지 못하였는데, 이제 보내온 뜻을 들으니 말이 순하고 또 공손하니 감히 이를 구실 삼아 황제께 아뢰지 않겠소." 마침내 군사를 이끌고 물러갔다.
12십삼년 — 매구곡 사람이 투항하다
十三年,秋七月,買溝谷人尚須,與其弟尉須及堂弟于刀等來投。
십삼년 가을 칠월에 매구곡 사람 상수가 그 아우 위수와 사촌아우 우도 등과 함께 와서 투항하였다.
13십사년 — 우레가 치고 눈이 오지 않다
十四年,冬十一月,有雷。無雪。
십사년 겨울 십일월에 우레가 쳤다. 눈이 오지 않았다.
14십오년 — 추소가 구도 등을 벗으로 삼다
十五年,春三月,黜大臣仇都、逸苟、焚求等三人為庶人。此三人為沸流部長,資貪鄙,奪人妻妾、牛馬、財貨,恣其所欲,有不與者卽鞭之,人皆懷忿怨。王聞之,欲殺之,以東明舊臣,不忍致極法,黜退而已。遂使南部使者鄒素,代爲部長。素旣上任,別作大室以處,以仇都等罪人,不令升堂。仇都等詣前,告曰:「吾儕小人,故犯王法,不勝愧悔。願公赦過,以令自新,則死無恨矣。」素引上之,共坐曰:「人不能無過,過而能改,則善莫大焉。」乃與之為友。仇都等感愧,不復為惡。王聞之曰:「素不用威嚴,能以智懲惡,可謂能矣。」賜姓曰大室氏。夏四月,王子好童,遊於沃沮。樂浪王崔理出行,因見之。問曰:「觀君顔色,非常人,豈非北國神王之子乎?」遂同歸,以女妻之。
십오년 봄 삼월에 대신 구도·일구·분구 등 세 사람을 내쳐 서인으로 삼았다. 이 세 사람은 비류부의 어른이 되었는데, 성품이 탐욕스럽고 비루하여 남의 처첩과 소와 말과 재화를 빼앗기를 제 하고자 하는 대로 하고, 주지 않는 이가 있으면 곧 채찍질하므로 사람들이 모두 분하고 원망하는 마음을 품었다.
왕이 이를 듣고 죽이려 하였으나 동명왕의 옛 신하라 차마 지극한 법에 부치지 못하고 내쳐 물리쳤을 뿐이다. 마침내 남부 사자 추소를 시켜 대신 부의 어른이 되게 하였다.
추소가 벼슬에 오르매 따로 큰 집을 지어 거처하고, 구도 등 죄지은 사람을 마루에 오르지 못하게 하였다. 구도 등이 앞에 나아가 아뢰었다. "우리 소인들이 왕의 법을 범하여 부끄럽고 뉘우침을 이기지 못합니다. 바라건대 공께서 허물을 용서하시어 스스로 새로워지게 하시면 죽어도 한이 없겠습니다."
추소가 이끌어 올려 함께 앉으며 말하였다. "사람은 허물이 없을 수 없으니, 허물이 있어도 고칠 수 있으면 착함이 이보다 큰 것이 없다." 이에 그들과 벗이 되었다. 구도 등이 감동하고 부끄러워하여 다시는 악을 저지르지 않았다.
왕이 듣고 말하였다. "추소가 위엄을 쓰지 않고 슬기로 악을 징계하였으니 잘하였다 할 만하다." 대실씨(大室氏)라는 성을 내렸다.
여름 사월에 왕자 호동이 옥저에 놀러 갔다. 낙랑 왕 최리가 나갔다가 그를 보고 물었다. "그대의 얼굴빛을 보니 예사 사람이 아니다. 어찌 북국 신왕의 아들이 아니겠는가." 마침내 함께 돌아가 딸을 아내로 주었다.
15십오년 — 자명고와 호동의 죽음
後,好童還國潛遣人,告崔氏女曰:「若能入而國武庫,割破鼓角,則我以禮迎,不然則否。」先是,樂浪有鼓角,若有敵兵,則自鳴,故令破之。於是,崔女將利刀,潛入庫中,割鼓面、角口,以報好童。好童勸王襲樂浪。崔理以鼓角不鳴,不備,我兵掩至城下,然後知鼓角皆破。遂殺女子,出降。冬十一月,王子好童自殺。好童,王之次妃曷思王孫女所生也。顔容美麗,王甚愛之,故名好童。元妃恐奪嫡為太子,乃讒於王曰:「好童不以禮待妾,殆欲亂乎。」王曰:「若以他兒憎疾乎?」妃知王不信,恐禍將及,乃涕泣而告曰:「請大王密候,若無此事,妾自伏罪。」於是,大王不能不疑,將罪之。或謂好童曰:「子何不自釋乎?」答曰:「我若釋之,是顯母之惡,貽王之憂,可謂孝乎?」乃伏劍而死。
뒤에 호동이 나라에 돌아와 몰래 사람을 보내어 최씨의 딸에게 알렸다. "만약 네 나라 무기 창고에 들어가 북과 뿔피리를 베어 깨뜨릴 수 있으면 내가 예로 맞이하겠고, 그렇지 않으면 그만두겠다."
이보다 앞서 낙랑에 북과 뿔피리가 있어 적병이 있으면 저절로 울었으므로 그것을 깨뜨리게 한 것이다.
이에 최씨의 딸이 날카로운 칼을 가지고 몰래 창고에 들어가 북의 면과 뿔피리의 입을 베고 호동에게 알렸다. 호동이 왕에게 권하여 낙랑을 습격하였다. 최리는 북과 뿔피리가 울지 않아 대비하지 않았으므로, 고구려 군사가 성 아래에 몰래 이른 뒤에야 북과 뿔피리가 모두 깨진 것을 알았다. 마침내 딸을 죽이고 나와 항복하였다.
겨울 십일월에 왕자 호동이 스스로 죽었다. 호동은 왕의 둘째 왕비인 갈사왕 손녀가 낳은 아들이다. 얼굴과 모습이 아름다워 왕이 몹시 사랑하였으므로 이름을 호동(好童)이라 하였다.
첫 왕비가 호동이 적자의 자리를 빼앗아 태자가 될까 두려워, 이에 왕에게 참소하였다. "호동이 예로써 저를 대하지 않으니 아마도 어지럽히려는가 봅니다."
왕이 말하였다. "네가 다른 사람의 아이라 하여 미워하고 시기하는가."
왕비가 왕이 믿지 않음을 알고 화가 장차 미칠까 두려워 이에 눈물을 흘리며 아뢰었다. "청컨대 대왕께서 몰래 살피소서. 만약 이런 일이 없으면 제가 스스로 죄를 받겠습니다."
이에 대왕이 의심하지 않을 수 없어 장차 죄주려 하였다.
어떤 이가 호동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어찌 스스로 밝히지 않는가."
답하였다. "내가 만약 밝히면 이는 어머니의 악을 드러내어 왕께 근심을 끼치는 것이니 효도라 할 수 있겠는가." 이에 칼에 엎드려 죽었다.
협주 1
或云:欲滅樂浪 遂請婚 娶其女 爲子妻 後使歸本國 壞其兵物
이르기를, 낙랑을 없애고자 마침내 혼인을 청하여 그 딸을 맞아 아들의 아내로 삼고, 뒤에 본국으로 돌려보내어 그 병기를 부수게 하였다고도 한다.
16사론 — 호동에게도 죄가 없지 않다
論曰:今王信讒言,殺無辜之愛子,其不仁不足道矣,而好童不得無罪。何則?子之見責於其父也,宜若舜之於瞽叟,小杖則受,大杖則走,期不陷父於不義。好童不知出於此,而死非其所,可謂執於小謹而昧於大義,其公子申生之譬耶?十二月,立王子解憂為太子。遣使入漢朝貢。光武帝復其王號,是建武八年也。
김부식이 논한다.
이제 왕이 참소하는 말을 믿어 죄 없는 사랑하는 아들을 죽였으니 그 어질지 못함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호동에게도 죄가 없다 할 수 없다. 어째서인가. 자식이 그 아비에게 꾸지람을 받으면 마땅히 순임금이 고수에게 하듯 작은 매는 받고 큰 매는 달아나, 아비를 의롭지 못한 데 빠뜨리지 않기를 기약해야 한다. 호동은 여기서 나올 줄 알지 못하고 죽지 않을 자리에서 죽었으니, 작은 삼감에 잡히고 큰 의로움에 어두웠다 할 만하다. 저 공자 신생에 견줄 것인가.
십이월에 왕자 해우를 세워 태자로 삼았다. 사신을 보내어 한나라에 들어가 조공하니, 광무제가 그 왕의 칭호를 돌려주었다. 이때가 건무 팔년이다.
17이십년 — 낙랑을 없애다
二十年,王襲樂浪,滅之。
이십년에 왕이 낙랑을 습격하여 없앴다.
18이십사년 — 팔월에 매화가 피다
二十四年,春三月,京都雨雹。秋七月,隕霜殺穀。八月,梅花發。
이십사년 봄 삼월에 서울에 우박이 내렸다. 가을 칠월에 서리가 내려 곡식을 죽였다. 팔월에 매화가 피었다.
19이십칠년 — 대무신왕이 죽다
二十七年,秋九月,漢光武帝遣兵渡海,伐樂浪,取其地,為郡縣,薩水已南北屬漢。冬十月,王薨。葬於大獸林原,號為大武神王。
이십칠년 가을 구월에 한나라 광무제가 군사를 보내어 바다를 건너 낙랑을 쳐서 그 땅을 빼앗아 군현으로 삼으니, 살수 이남이 한나라에 붙었다.
겨울 시월에 왕이 죽었다. 대수림 벌판에 장사 지내고 대무신왕(大武神王)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