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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대왕太祖大王

삼국사기 三國史記 · 김부식(金富軾) 등 · 1145년 (고려 인종 23) · 단락 28 · 한자 1,789자 · 낭독 7.2분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태조대왕」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 역사서. 신라·고구려·백제 본기와 지·표·열전으로 이루어졌다. 김부식이 곳곳에 「論曰」로 자기 평을 달아 두어, 편찬자가 무엇을 의심하고 무엇을 나무랐는지가 그대로 남아 있다.

1태조대왕이 즉위하다

太祖大王,諱宮,小名於漱,琉璃王子古鄒加再思之子也。母太后,扶餘人也。慕本王薨,太子不肖,不足以主社稷,國人迎宮繼立。王生而開目能視,幼而岐嶷。以年七歳,太后垂簾聽政。

태조대왕은 이름이 궁(宮)이요 어릴 적 이름은 어수(於漱)며, 유리왕의 아들 고추가 재사의 아들이다. 어머니 태후는 부여 사람이다. 모본왕이 죽으매 태자가 어질지 못하여 사직의 주인이 되기에 넉넉하지 못하므로, 나라 사람들이 궁을 맞아 이어 세웠다. 왕은 나면서 눈을 뜨고 볼 수 있었으며 어려서도 남달리 뛰어났다. 나이 일곱이므로 태후가 발을 드리우고 정사를 들었다.

협주 1

或云國祖王。

국조왕(國祖王)이라고도 한다.

2삼년 — 요서에 열 성을 쌓다

三年,春二月,築遼西十城,以備漢兵。秋八月,國南蝗害穀。

삼년 봄 이월에 요서에 열 성을 쌓아 한나라 군사에 대비하였다. 가을 팔월에 나라 남쪽에 메뚜기가 곡식을 해쳤다.

3사년 — 동옥저를 치다

四年,秋七月,伐東沃沮,取其土地爲城邑,拓境東至滄海,南至薩水。

사년 가을 칠월에 동옥저를 쳐서 그 땅을 빼앗아 성읍으로 삼으니, 지경을 넓혀 동쪽으로 창해에 이르고 남쪽으로 살수에 이르렀다.

4칠년 — 붉은 지느러미 흰 물고기

七年,夏四月,王如孤岸淵觀魚,釣得赤翅白魚。秋七月,京都大水,漂沒民屋。

칠년 여름 사월에 왕이 고안연에 가서 고기를 보다가 낚시로 붉은 지느러미의 흰 물고기를 얻었다. 가을 칠월에 서울에 큰물이 나 백성의 집이 떠내려가고 잠겼다.

5십년 — 흰 사슴을 얻다

十年,秋八月,東獵得白鹿。國南飛蝗害穀。

십년 가을 팔월에 동쪽에서 사냥하여 흰 사슴을 얻었다. 나라 남쪽에 메뚜기가 날아 곡식을 해쳤다.

6십육년 — 갈사왕의 손자가 항복해 오다

十六年,秋八月,曷思王孫都頭,以國來降。以都頭爲于台。冬十月,雷。

십육년 가을 팔월에 갈사왕의 손자 도두가 나라를 들어 와서 항복하므로 도두를 우태로 삼았다. 겨울 시월에 우레가 쳤다.

7이십년 — 조나를 치다

二十年,春二月,遣貫那部沛者達賈,伐藻那,虜其王。夏四月,京都旱。

이십년 봄 이월에 관나부 패자 달가를 보내어 조나를 쳐서 그 왕을 사로잡았다. 여름 사월에 서울이 가물었다.

8이십이년 — 주나를 치다

二十二年,冬十月,王遣桓那部沛者薛儒,伐朱那,虜其王子乙音,為古鄒加。

이십이년 겨울 시월에 왕이 환나부 패자 설유를 보내어 주나를 쳐서 그 왕자 을음을 사로잡아 고추가로 삼았다.

9이십오년 — 뿔 셋 달린 사슴

二十五年,冬十月,扶餘使來,獻三角鹿、長尾兎,王以為瑞物,大赦。十一月,京都,雪三尺。

이십오년 겨울 시월에 부여 사신이 와서 뿔 셋 달린 사슴과 꼬리 긴 토끼를 바치니, 왕이 상서로운 물건이라 하여 크게 사면하였다. 십일월에 서울에 눈이 석 자나 내렸다.

10사십육년 — 책성에 공을 새기다

四十六年,春三月,王東巡柵城,至柵城西罽山,獲白鹿。及至柵城,與群臣宴飲,賜柵城守吏物段有差,遂紀功於岩,乃還。冬十月,王至自柵城。

사십육년 봄 삼월에 왕이 동쪽으로 책성을 돌아보는데 책성 서쪽 계산에 이르러 흰 사슴을 얻었다. 책성에 이르러 여러 신하와 잔치하여 마시고, 책성을 지키는 관리에게 물건과 비단을 차등 있게 내리며 마침내 바위에 공을 새기고 이내 돌아왔다. 겨울 시월에 왕이 책성에서 돌아왔다.

11오십년 — 책성을 어루만지다

五十年,秋八月,遣使安撫柵城。

오십년 가을 팔월에 사신을 보내어 책성을 어루만졌다.

12오십삼년 — 요동 여섯 현을 빼앗다

五十三年,春正月,扶餘使來,獻虎,長丈二,毛色甚明而無尾。王遣將入漢遼東,奪掠六縣。太守耿夔出兵拒之,王軍大敗。秋九月,耿夔擊破貊人。

오십삼년 봄 정월에 부여 사신이 와서 범을 바쳤는데 길이가 한 길 두 자요 털빛이 매우 밝고 꼬리가 없었다.

왕이 장수를 보내어 한나라 요동에 들어가 여섯 현을 빼앗고 노략하였다. 태수 경기가 군사를 내어 막으니 왕의 군사가 크게 졌다. 가을 구월에 경기가 맥인을 쳐서 깨뜨렸다.

13오십오년 — 붉은 표범을 바치다

五十五年,秋九月,王獵質山陽,獲紫獐。冬十月,東海谷守獻朱豹,尾長九尺。

오십오년 가을 구월에 왕이 질산 남쪽에서 사냥하여 자줏빛 노루를 얻었다. 겨울 시월에 동해곡의 수령이 붉은 표범을 바쳤는데 꼬리 길이가 아홉 자였다.

14오십육년 — 크게 가물다

五十六年,春大旱,至夏赤地。民饑,王發使賑恤。

오십육년 봄에 크게 가물어 여름에 이르러 땅이 붉게 되었다. 백성이 주리므로 왕이 사신을 보내어 진휼하였다.

15오십칠년 — 안제의 관례를 하례하다

五十七年,春正月,遣使如漢,賀安帝加元服。

오십칠년 봄 정월에 사신을 한나라에 보내어 안제가 관을 쓴 것을 하례하였다.

16오십구년 — 현도에 딸리기를 구하다

五十九年,遣使如漢,貢獻方物,求屬玄菟。

오십구년에 사신을 한나라에 보내어 그 지방 산물을 바치고 현도에 딸리기를 구하였다.

협주 1

《通鑑》言言:「是年三月,麗王宮與穢貊,寇玄菟。」不知或求屬或寇耶,抑一誤耶?

『통감』에는 "이해 삼월에 고구려 왕 궁이 예맥과 함께 현도를 노략하였다" 하였다. 딸리기를 구한 것인지 노략한 것인지, 아니면 하나가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없다.

17육십이년 — 남해를 돌아보다

六十二年,春三月,日有食之。秋八月,王巡守南海。冬十月,至自南海。

육십이년 봄 삼월에 일식이 있었다. 가을 팔월에 왕이 남해를 돌아보았다. 겨울 시월에 남해에서 돌아왔다.

18육십사년 — 눈이 다섯 자 내리다

六十四年,春三月,日有食之。冬十二月,雪五尺。

육십사년 봄 삼월에 일식이 있었다. 겨울 십이월에 눈이 다섯 자 내렸다.

19육십육년 — 화려성을 치다

六十六年,春二月,地震。夏六月,王與穢貊襲漢玄菟,攻華麗城。秋七月,蝗雹,害穀。八月,命所司,擧賢良孝順,問鰥寡孤獨及老不能自存者,給衣食。

육십육년 봄 이월에 땅이 흔들렸다. 여름 유월에 왕이 예맥과 함께 한나라 현도를 습격하고 화려성을 쳤다.

가을 칠월에 메뚜기와 우박이 곡식을 해쳤다. 팔월에 맡은 관청에 명하여 어질고 착하며 효성스럽고 순한 이를 천거하게 하고, 홀아비·과부·고아·홀로 사는 이와 늙어 스스로 살아갈 수 없는 이를 위문하여 옷과 밥을 주었다.

20육십구년 — 수성이 현도와 요동을 치다

六十九年,春,漢幽州刺史馮煥、玄菟太守姚光、遼東太守蔡風,將兵來侵,擊殺穢貊渠帥,盡獲兵馬財物。王乃遣弟遂成,領兵二千餘人,逆煥、光等。遂成遣使詐降,煥等信之。遂成因據險以遮大軍,潛遣三千人,攻玄菟、遼東二郡,焚其城郭,殺獲二千餘人。夏四月,王與鮮卑八千人,往攻遼隧縣遼東太守蔡風,將兵出於新昌,戰沒。兵曹掾龍端、兵馬掾公孫,以身扞諷,倶歿於陣,死者百餘人。冬十月,王幸扶餘,祀太后廟。存問百姓窮困者,賜物有差。肅愼使來,獻紫狐裘及白鷹、白馬,王宴勞以遣之。十一月,王至自扶餘。王以遂成統軍國事。十二月,王率馬韓、穢貊一萬餘騎,進圍玄菟城。扶餘王遣子尉仇台,領兵二萬,與漢兵幷力拒戰,我軍大敗。

육십구년 봄에 한나라 유주자사 풍환과 현도태수 요광과 요동태수 채풍이 군사를 거느리고 침노하러 와서 예맥의 우두머리를 쳐 죽이고 병마와 재물을 다 빼앗았다.

왕이 이에 아우 수성을 보내어 군사 이천여 사람을 거느리고 풍환과 요광 등을 맞게 하였다. 수성이 사신을 보내어 거짓으로 항복하니 풍환 등이 이를 믿었다. 수성이 이로 인하여 험한 곳에 웅거하여 대군을 막고, 몰래 삼천 사람을 보내어 현도와 요동 두 군을 쳐서 그 성곽을 태우고 이천여 사람을 죽이고 사로잡았다.

여름 사월에 왕이 선비 팔천 사람과 함께 요수현을 치러 가니, 요동태수 채풍이 군사를 거느리고 신창으로 나왔다가 싸우다 죽었다. 병조연 용단과 병마연 공손이 몸으로 채풍을 막다가 함께 진에서 죽으니 죽은 이가 백여 사람이었다.

겨울 시월에 왕이 부여에 거둥하여 태후 사당에 제사하고, 백성으로 곤궁한 이를 위문하며 물건을 차등 있게 내렸다. 숙신 사신이 와서 자줏빛 여우 갖옷과 흰 매와 흰 말을 바치므로 왕이 잔치로 위로하여 보냈다. 십일월에 왕이 부여에서 돌아왔다. 왕이 수성으로 하여금 군사와 나라의 일을 거느리게 하였다.

십이월에 왕이 마한과 예맥의 일만여 기를 거느리고 현도성을 에워쌌다. 부여 왕이 아들 위구태를 보내어 군사 이만을 거느리고 한나라 군사와 힘을 아울러 맞서 싸우므로 고구려 군사가 크게 졌다.

21칠십년 — 요동을 침노하다

七十年,王與馬韓、穢貊侵遼東,扶餘王遣兵救破之。

칠십년에 왕이 마한·예맥과 함께 요동을 침노하니, 부여 왕이 군사를 보내어 구하고 깨뜨렸다.

협주 1

馬韓以百濟溫祚王二十七年,滅,今與麗王行兵者,盖滅而復興者歟?

마한은 백제 온조왕 이십칠년에 없어졌는데, 이제 고구려 왕과 함께 군사를 움직였다 하니 아마 없어졌다가 다시 일어난 것인가.

22칠십일년 — 좌보와 우보를 두다

七十一年,冬十月,以沛者穆度婁為左輔,高福章為右輔,令與遂成參政事。

칠십일년 겨울 시월에 패자 목도루를 좌보로, 고복장을 우보로 삼고 수성과 함께 정사에 참여하게 하였다.

23칠십이년 — 일식이 있다

七十二年,秋九月庚申晦,日有食之。冬十月,遣使入漢朝貢。十一月,京都地震。

칠십이년 가을 구월 그믐 경신에 일식이 있었다. 겨울 시월에 사신을 보내어 한나라에 들어가 조공하였다. 십일월에 서울에 땅이 흔들렸다.

24팔십년 — 수성에게 자리를 넘보라 권하다

八十年,秋七月,遂成獵於倭山,與左右宴。於是,貫那于台彌儒、桓那于台菸支留、沸流那皀衣陽神等等,陰謂遂成曰:「初,慕本之薨也,太子不肖,群寮欲立王子再思,再思以老讓子者,欲使兄老弟及。今王旣已老矣,而無讓意,惟吾子計之。」遂成曰:「承襲必嫡,天下之常道也。王今雖老,有嫡子在,豈敢覬覦乎?」彌儒曰:「以弟之賢,承兄之後,古亦有之,子其勿疑。」於是,左輔沛者穆度婁,知遂成有異心,稱疾不仕。

팔십년 가을 칠월에 수성이 왜산에서 사냥하며 좌우와 잔치하였다. 이에 관나 우태 미유와 환나 우태 어지류와 비류나 조의 양신 등이 가만히 수성에게 말하였다.

"처음에 모본왕이 죽었을 때 태자가 어질지 못하여 여러 벼슬아치가 왕자 재사를 세우려 하였는데, 재사가 늙었다 하여 아들에게 사양한 것은 형이 늙으면 아우가 잇게 하려던 것입니다. 이제 왕이 이미 늙었는데도 사양할 뜻이 없으니 오직 그대는 꾀하십시오."

수성이 말하였다. "이어받음은 반드시 맏아들로 함이 천하의 떳떳한 도리다. 왕이 이제 비록 늙었으나 맏아들이 있으니 어찌 감히 넘보겠는가."

미유가 말하였다. "아우의 어짊으로 형의 뒤를 잇는 것은 옛날에도 있었으니 그대는 의심하지 마십시오."

이에 좌보 패자 목도루가 수성에게 딴마음이 있음을 알고 병을 일컫고 벼슬하지 않았다.

25팔십육년 — 백고가 수성에게 간하다

八十六年,春三月,遂成獵於質陽,七日不歸,戱樂無度。秋七月,又獵箕丘,五日乃反。其弟伯固諫曰:「禍福無門,惟人所召。今子以王弟之親,為百寮之首,位已極矣,功亦盛矣。宜以忠義存心,禮讓克己,上同王德,下得民心。然後富貴不離於身,而禍亂不作矣。今不出於此,而貪樂忘憂,竊為足下危之。」答曰:「凡人之情,誰不欲富貴而歡樂者哉,而得之者,萬無一耳。今吾居可樂之勢,而不能肆志,將焉用哉。」遂不從。

팔십육년 봄 삼월에 수성이 질양에서 사냥하여 이레 동안 돌아오지 않고 놀며 즐기기를 절제 없이 하였다. 가을 칠월에 또 기구에서 사냥하여 닷새 만에야 돌아왔다.

그 아우 백고가 간하였다. "화와 복은 들어오는 문이 따로 없고 오직 사람이 부르는 것입니다. 이제 그대는 왕의 아우라는 친함으로 모든 벼슬아치의 으뜸이 되었으니 자리가 이미 지극하고 공도 또한 성합니다. 마땅히 충성과 의로움을 마음에 두고 예와 사양으로 자기를 이겨, 위로는 왕의 덕과 같이하고 아래로는 민심을 얻어야 합니다. 그런 뒤에야 부귀가 몸에서 떠나지 않고 화와 난이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여기서 나오지 않고 즐거움을 탐하여 근심을 잊으시니, 가만히 그대를 위하여 위태롭게 여깁니다."

답하였다. "무릇 사람의 정으로 누가 부귀하고 즐거워하기를 바라지 않겠는가마는 그것을 얻는 이는 만에 하나도 없다. 이제 내가 즐길 만한 형세에 있으면서 뜻을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면 장차 어디에 쓰겠는가." 마침내 따르지 않았다.

26구십년 — 표범이 범의 꼬리를 물어 끊는 꿈

九十年,秋九月,丸都地震。王夜夢,一豹齧斷虎尾。覺而問其吉凶,或曰:「虎者,百獸之長;豹者,同類而小者也。意者王之族類,殆有謀絶大王之後者乎?」王不悅,謂右輔高福章曰:「我昨夢有所見,占者之言如此,為之奈何?」答曰:「作不善,則吉變為凶;作善,則災反為福。今大王憂國如家,愛民如子,雖有小異,庸何傷乎?」

구십년 가을 구월에 환도에 땅이 흔들렸다.

왕이 밤에 꿈을 꾸니 표범 한 마리가 범의 꼬리를 물어 끊었다. 깨어나 그 길흉을 물으니 어떤 이가 말하였다. "범은 온갖 짐승의 어른이요 표범은 같은 무리로 작은 것입니다. 생각건대 왕의 겨레붙이 가운데 아마도 대왕의 뒤를 끊으려 꾀하는 자가 있는가 합니다."

왕이 기뻐하지 않고 우보 고복장에게 말하였다. "내가 어젯밤 꿈에 본 바가 있는데 점치는 이의 말이 이러하니 어찌하랴."

답하였다. "착하지 않은 일을 하면 길한 것이 변하여 흉하게 되고, 착한 일을 하면 재앙이 도리어 복이 됩니다. 이제 대왕께서 나라 걱정하기를 집같이 하고 백성 사랑하기를 자식같이 하시니, 비록 작은 이변이 있은들 무엇이 상하겠습니까."

27구십사년 — 곧은말을 한 사람을 죽이려 하다

九十四年,秋七月,遂成獵於倭山之下,謂左右曰:「大王老而不死,吾齒卽將暮矣,不可待也。惟願左右,為我計之。」左右皆曰:「敬從命矣。」於是,一人獨進曰:「向,王子有不祥之言,而左右不能直諫,皆曰敬從命者,可謂姦且諛矣。吾欲直言,未知尊意如何?」遂成曰:「子能直言,藥石也,何疑之有?」其人對曰:「今大王之賢,內外無異心,子雖有功,率群下姦諛之人,謀廢明上,此何異將以單縷,繫萬鈞之重而倒曳乎?雖復愚人,猶知其不可也。若王子改圖易慮,孝順事上,則大王深知王子之善,必有揖讓之心,不然則禍將及也。」遂成不悅。左右妬其直,讒於遂成曰:「王子以大王年老,恐國祚之危,欲為後圖,此人妄言如此,我等惟恐漏洩,以致患也,宜殺以滅口。

구십사년 가을 칠월에 수성이 왜산 아래에서 사냥하며 좌우에게 말하였다. "대왕이 늙어서도 죽지 않고 내 나이도 장차 저물어 가니 기다릴 수 없다. 오직 좌우가 나를 위하여 꾀해 주기 바란다." 좌우가 모두 말하였다. "삼가 명을 좇겠습니다."

이에 한 사람이 홀로 나아가 말하였다. "지난번 왕자께서 상서롭지 못한 말씀을 하셨는데 좌우가 곧이 간하지 못하고 모두 삼가 명을 좇겠다 하니, 간사하고 또 아첨한다 할 만합니다. 제가 곧이 말하고자 하는데 높으신 뜻이 어떠하실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수성이 말하였다. "그대가 곧이 말할 수 있으면 약과 침이니 무엇을 의심하겠는가."

그 사람이 답하였다. "이제 대왕이 어지시어 안팎에 딴마음이 없습니다. 그대가 비록 공이 있으나 아랫사람 가운데 간사하고 아첨하는 자를 거느리고 밝으신 임금을 폐하기를 꾀하니, 이 어찌 한 오라기 실로 만 근의 무게를 매어 거꾸로 끄는 것과 다르겠습니까. 비록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오히려 그것이 될 수 없음을 압니다. 만약 왕자께서 꾀를 고치고 생각을 바꾸어 효성스럽고 순하게 윗사람을 섬기시면, 대왕께서 왕자의 착함을 깊이 아시어 반드시 자리를 사양하실 마음이 있으실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화가 장차 미칠 것입니다."

수성이 기뻐하지 않았다. 좌우가 그 곧음을 시기하여 수성에게 참소하였다. "왕자께서는 대왕이 늙어 나라의 복이 위태로울까 두려워 뒷일을 꾀하려 하시는데, 이 사람이 이처럼 함부로 말합니다. 저희는 다만 새어 나가 근심을 부를까 두려우니 죽여 입을 막는 것이 마땅합니다."

28구십사년 — 태조대왕이 자리를 물려주다

」遂成從之。秋八月,王遣將,襲漢遼東西安平縣,殺帶方令,掠得樂浪大守太守妻子。冬十月,右輔高福章言於王曰:「遂成將叛,請先誅之。」王曰:「吾旣老矣,遂成有功於國,吾將禪位,子無煩慮!」福章曰:「遂成之為人也,忍而不仁。今日受大王之禪,則明日害大王之子孫。大王但知施惠於不仁之弟,不知貽患於無辜之子孫乎,願大王熟計之。」王不聽。十二月,王謂遂成曰:「吾旣老,倦於萬機。天之曆數在汝躬,況汝內參國政,外摠軍事,久有社稷之功,允塞臣民之望,吾所付託,可謂得人。汝其卽位,永孚于休!」乃禪位,退老於別宮,稱為大祖大王。

수성이 그 말을 따랐다.

가을 팔월에 왕이 장수를 보내어 한나라 요동 서안평현을 습격하여 대방령을 죽이고 낙랑태수의 처자를 사로잡았다.

겨울 시월에 우보 고복장이 왕에게 말하였다. "수성이 장차 배반하려 하니 먼저 베기를 청합니다."

왕이 말하였다. "내가 이미 늙었고 수성이 나라에 공이 있어 내가 자리를 물려주려 하니 그대는 번거로이 걱정하지 말라."

복장이 말하였다. "수성의 사람됨은 모질고 어질지 못합니다. 오늘 대왕의 물려주심을 받으면 내일 대왕의 자손을 해칠 것입니다. 대왕께서는 다만 어질지 못한 아우에게 은혜 베풀 줄만 아시고 죄 없는 자손에게 근심 끼칠 줄은 모르십니까. 바라건대 대왕께서는 깊이 헤아리소서."

왕이 듣지 않았다.

십이월에 왕이 수성에게 말하였다. "내가 이미 늙어 온갖 일에 게을러졌다. 하늘의 운수가 네 몸에 있고, 하물며 너는 안으로 나라 정사에 참여하고 밖으로 군사 일을 거느려 오래 사직에 공이 있으며 신하와 백성의 바람에 진실로 맞으니, 내가 맡기는 바가 사람을 얻었다 할 만하다. 너는 곧 자리에 올라 길이 아름다움을 누리라."

이에 자리를 물려주고 별궁에 물러나 늙으니 태조대왕(大祖大王)이라 일컬었다.

협주 1

《後漢書》云:「安帝建光元年,高句麗王宮死,子遂成立。玄菟太守姚光上言:欲因其喪,發兵擊之。議者皆以為可許。尚書陳忠曰:『宮前桀黠,光不能討,死而擊之,非義也。宜遣吊問,因責讓前罪,赦不加誅,取其後善。』安帝從之。明年,遂成還漢生口。」案《海東古記》:「高句麗國祖王高宮以後漢建武二十九年,癸丑即位,時年七歲,國母攝政。至孝桓帝本初元年丙戌,遜位讓母弟遂成,時,宮年一百歲,在位九十四年,則建光元年,是宮在位第六十九年。」則《漢書》所記,與《古記》抵捂不相符合。豈漢書所記誤耶?

『후한서』에 이르기를 "안제 건광 원년에 고구려 왕 궁이 죽고 아들 수성이 섰다. 현도태수 요광이 아뢰기를 그 상을 틈타 군사를 내어 치고자 한다 하니, 의논하는 이가 모두 옳다 하였다. 상서 진충이 말하기를 '궁이 앞서 사납고 교활하였으나 요광이 치지 못하였는데, 죽은 뒤에 치는 것은 의로움이 아닙니다. 마땅히 조문하는 사신을 보내고 이로 인하여 앞선 죄를 꾸짖되 용서하여 베지 않아 그 뒤의 착함을 취하십시오' 하니 안제가 그 말을 좇았다. 이듬해에 수성이 한나라의 사로잡힌 사람들을 돌려보냈다" 하였다. 『해동고기』를 살피면 "고구려 국조왕 고궁이 후한 건무 이십구년 계축에 즉위하였으니 그때 나이 일곱이라 국모가 정사를 대신 보았다. 효환제 본초 원년 병술에 이르러 자리를 물려 같은 어머니 아우 수성에게 주었으니, 그때 궁의 나이 백 살이요 자리에 있은 지 구십사년이다" 하였으니, 그러면 건광 원년은 궁이 자리에 있은 지 예순아홉 해째다. 그러니 『한서』에 적힌 바가 『고기』와 어긋나 서로 맞지 않는다. 어찌 『한서』에 적힌 바가 잘못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