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왕山上王
1산상왕이 즉위하다
山上王,諱延優,故國川王之弟也。《魏書》云:「朱蒙裔孫宮,生而開目能視,是為太祖。今王是太祖曾孫,亦生而視人,似曾祖宮。高句麗呼『相似』為『位』,故名位宮云。」故國川王無子,故延優嗣立。初,故國川王之薨也,王后于氏,秘不發歧喪,夜往王弟發歧宅,曰:「王無後,子宜嗣之。」發歧不知王薨,對曰:「天之曆數有所歸,不可輕議。况婦人而夜行,豈禮云乎?」后慙,便往延優之宅。優起衣冠,迎門入座宴飲。王后曰:「大王薨,無子,發歧年長當嗣,而謂妾有異心,暴慢無禮。是以見叔。」於是,延優加禮,親自操刀割肉,誤傷其指。后解裙帶裹其傷指。將歸,謂延優曰:「夜深恐有不虞,子其送我至宮。」延優從之,王后執手入宮。
산상왕은 이름이 연우(延優)요 고국천왕의 아우다. 『위서』에 이르기를 "주몽의 후손 궁이 나면서 눈을 뜨고 볼 수 있었으니 이가 태조다. 지금 왕은 태조의 증손인데 또한 나면서 사람을 보아 증조 궁과 비슷하였다. 고구려에서는 '서로 닮음'을 '위(位)'라 하므로 이름을 위궁이라 하였다" 하였다.
고국천왕이 아들이 없으므로 연우가 자리를 이었다.
처음에 고국천왕이 죽었을 때 왕후 우씨가 숨기고 상을 알리지 않은 채, 밤에 왕의 아우 발기의 집에 가서 말하였다. "왕이 뒤이을 이가 없으니 그대가 마땅히 이어야 합니다."
발기는 왕이 죽은 줄을 모르고 답하였다. "하늘의 운수는 돌아갈 데가 있으니 가벼이 의논할 수 없습니다. 하물며 부인이 밤에 다니는 것이 어찌 예이겠습니까."
왕후가 부끄러워 곧 연우의 집으로 갔다. 연우가 일어나 옷과 관을 갖추고 문에서 맞아 자리에 들이고 잔치하여 마셨다.
왕후가 말하였다. "대왕이 죽고 아들이 없어 발기가 나이 많아 마땅히 이어야 하는데, 나에게 딴마음이 있다 하여 사납고 거만하며 예가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시숙을 뵈러 왔습니다."
이에 연우가 예를 더하여 몸소 칼을 잡아 고기를 저미다가 잘못하여 그 손가락을 다쳤다. 왕후가 치마끈을 풀어 그 다친 손가락을 싸매었다.
돌아가려 할 때 연우에게 말하였다. "밤이 깊어 뜻밖의 일이 있을까 두려우니 그대가 나를 궁까지 바래다주시오." 연우가 그 말을 따르니 왕후가 손을 잡고 궁에 들어갔다.
협주 1
一名位宮。
일명 위궁(位宮)이다.
2원년 — 발기가 스스로 목을 찌르다
至翌日質明,矯先王命,令群臣,立延優為王。發歧聞之大怒,以兵圍王宮,呼曰:「兄死弟及,禮也。汝越次纂奪,大罪也,宜速出。不然則誅及妻孥。」延優閉門三日。國人又無從發歧者。發歧知難,以妻子奔遼東。見太守公孫康,告曰:「某,高句麗王男武之母弟也。男武死,無子,某之弟延優與嫂于氏謀,卽位以廢天倫之義。是用憤恚,來投上國,伏願假兵三萬,令擊之,得以平亂。」公孫康從之。延優遣弟罽須,將兵禦之,漢兵大敗。罽須自爲先鋒追北,發歧告罽須曰:「汝今忍害老兄乎?」罽須不能無情於兄弟,不敢害之,曰:「延優不以國讓,雖非義也,爾以一時之憤,欲滅宗國,是何意耶?身沒之後,何面目以見先人乎?」發歧聞之,不勝慙悔,奔至裴川,自刎死。
이튿날 동틀 무렵에 이르러 앞 임금의 명이라 속여 여러 신하로 하여금 연우를 세워 왕으로 삼게 하였다.
발기가 듣고 크게 노하여 군사로 왕궁을 에워싸고 외쳤다. "형이 죽으면 아우가 잇는 것이 예다. 네가 차례를 넘어 빼앗았으니 큰 죄다. 마땅히 빨리 나오라. 그렇지 않으면 베임이 처자에게 미칠 것이다."
연우가 사흘 동안 문을 닫았다. 나라 사람 또한 발기를 좇는 이가 없었다. 발기가 어려운 줄 알고 처자와 함께 요동으로 달아났다. 태수 공손강을 보고 아뢰었다. "저는 고구려 왕 남무의 같은 어머니 아우입니다. 남무가 죽고 아들이 없는데 저의 아우 연우가 형수 우씨와 꾀하여 즉위함으로써 하늘의 도리를 폐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분하여 상국에 와서 투항하니, 엎드려 바라건대 군사 삼만을 빌려 주시어 쳐서 난을 평정하게 하소서."
공손강이 그 말을 따랐다. 연우가 아우 계수를 보내어 군사를 거느리고 막게 하니 한나라 군사가 크게 졌다.
계수가 몸소 선봉이 되어 달아나는 이를 뒤쫓으니 발기가 계수에게 말하였다. "네가 이제 차마 늙은 형을 해치겠느냐."
계수가 형제에게 정이 없을 수 없어 감히 해치지 못하고 말하였다. "연우가 나라를 사양하지 않은 것이 비록 의롭지 않으나, 그대가 한때의 분함으로 종국을 없애려 하니 이 무슨 뜻입니까. 몸이 죽은 뒤에 무슨 낯으로 선인을 뵙겠습니까."
발기가 듣고 부끄러움과 뉘우침을 이기지 못하여 배천으로 달아나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3원년 — 계수가 곧이 아뢰다
罽須哀哭,收其屍,草葬訖而還。王悲喜,引罽須內中宴,見以家人之禮,且曰:「發歧請兵異國,以侵國家,罪莫大焉。今子克之,縱而不殺,足矣,及其自死,哭甚哀,反謂寡人無道乎?」罽須愀然然銜淚而對曰:「臣今請一言而死。」王曰:「何也?」罽須曰:「王后雖以先王遺命立大王,大王不以禮讓之,曾無兄弟友恭之義。臣欲成大王之美,故收屍殯之,豈圖緣此,逢大王之怒乎?大王若以仁忘惡,以兄喪禮葬之,孰謂大王不義乎?臣旣以言之,雖死猶生。請出受誅有司。」王聞其言,前席而坐,溫顔慰諭曰:「寡人不肖,不能無惑,今聞子之言,誠知過矣。願子無責。」王子拜之,王亦拜之,盡歡而罷。秋九月,命有司,奉迎發歧之喪,以王禮葬於裴嶺。王本因于氏得位,不復更娶,立于氏為后。
계수가 슬피 곡하고 그 주검을 거두어 풀로 장사 지내고 돌아왔다.
왕이 슬프고도 기뻐 계수를 이끌어 안으로 들여 잔치하고 집안사람의 예로 보며 또 말하였다. "발기가 다른 나라에 군사를 청하여 나라를 침노하였으니 죄가 이보다 큰 것이 없다. 이제 그대가 이겼는데 놓아주고 죽이지 않은 것으로 넉넉하거늘, 그가 스스로 죽으매 곡하기를 몹시 슬피 하였으니 도리어 과인을 도가 없다 하는 것인가."
계수가 슬픈 낯으로 눈물을 머금고 답하였다. "신이 이제 한마디 하고 죽기를 청합니다."
왕이 말하였다. "무엇인가."
계수가 말하였다. "왕후가 비록 앞 임금의 남긴 명이라 하여 대왕을 세웠으나, 대왕께서 예로써 사양하지 않으셨으니 일찍이 형제의 우애와 공손함의 의로움이 없었습니다. 신이 대왕의 아름다움을 이루고자 하여 주검을 거두어 빈소를 차렸을 뿐인데, 어찌 이로 말미암아 대왕의 노여움을 만날 줄 헤아렸겠습니까. 대왕께서 만약 어짊으로 악을 잊으시고 형의 상례로 장사 지내신다면 누가 대왕을 의롭지 않다 하겠습니까. 신이 이미 말하였으니 죽어도 산 것과 같습니다. 청컨대 나가 맡은 관청에서 베임을 받겠습니다."
왕이 그 말을 듣고 자리 앞으로 나아가 앉아 부드러운 낯으로 위로하여 타일렀다. "과인이 어질지 못하여 의혹이 없을 수 없었는데, 이제 그대의 말을 들으니 참으로 허물을 알겠다. 바라건대 그대는 꾸짖지 말라." 왕자가 절하고 왕도 또한 절하여 즐거움을 다하고 파하였다.
가을 구월에 맡은 관청에 명하여 발기의 상을 받들어 맞아 왕의 예로 배령에 장사 지냈다.
왕이 본디 우씨로 말미암아 자리를 얻었으므로 다시 장가들지 않고 우씨를 세워 왕후로 삼았다.
4이년 — 환도성을 쌓다
二年,春二月,築丸都城。夏四月,赦國內二罪已下。
이년 봄 이월에 환도성을 쌓았다. 여름 사월에 나라 안의 두 가지 죄 이하를 사면하였다.
5삼년 — 질양에서 사냥하다
三年,秋九月,王畋于質陽。
삼년 가을 구월에 왕이 질양에서 사냥하였다.
6칠년 — 하늘이 아들을 주리라 이르다
七年,春三月,王以無子,禱於山川,是月十五夜夢,天謂曰:「吾令汝少后生男,勿憂。」王覺語群臣曰:「夢天語我,諄諄如此,而無少后,奈何?」巴素對曰:「天命不可測,王其待之。」秋八月,國相乙巴素卒,國人哭之慟。王以高優婁為國相。
칠년 봄 삼월에 왕이 아들이 없으므로 산천에 빌었다. 이달 열닷새 밤 꿈에 하늘이 일러 말하였다. "내가 너의 작은 왕후로 하여금 사내를 낳게 하리니 걱정하지 말라."
왕이 깨어 여러 신하에게 말하였다. "꿈에 하늘이 나에게 이르기를 이처럼 간곡히 하였는데 작은 왕후가 없으니 어찌하랴."
파소가 답하였다. "하늘의 명은 헤아릴 수 없으니 왕께서는 기다리소서."
가을 팔월에 국상 을파소가 죽으니 나라 사람이 곡하며 슬퍼하였다. 왕이 고우루를 국상으로 삼았다.
7십이년 — 주통촌 여자를 만나다
十二年冬十月,郊豕逸。掌者追之,至酒桶村,躑躅不能獲。有一女子,年二十許,色美而艶,笑而前執之,然後追者得之。王聞而異之,欲見其女,微行夜至女家。使侍人說之,其家知王來不敢拒。王入室,召其女,欲御之。女告曰:「大王之命,不敢避,若幸而有子,願不見遺。」王諾之。至丙夜,王起還宮。
십이년 겨울 시월에 교제에 쓸 돼지가 달아났다. 맡은 이가 뒤쫓아 주통촌에 이르렀으나 머뭇거리며 잡지 못하였다. 나이 스물쯤 되는 여자가 있었는데 빛이 아름답고 고왔다. 웃으며 앞에 나아가 잡으니 그런 뒤에야 뒤쫓던 이가 얻을 수 있었다.
왕이 듣고 기이하게 여겨 그 여자를 보고자 몰래 밤에 여자의 집에 이르러 시종을 시켜 말하게 하니, 그 집이 왕이 온 줄 알고 감히 막지 못하였다. 왕이 방에 들어가 그 여자를 불러 가까이하려 하니, 여자가 아뢰었다. "대왕의 명을 감히 피하지 못하겠으나 만약 다행히 아들이 있으면 버림받지 않기를 바랍니다." 왕이 허락하였다. 삼경에 이르러 왕이 일어나 궁으로 돌아왔다.
8십삼년 — 교체가 나고 환도로 도읍을 옮기다
十三年,春三月,王后知王幸酒桶村女,妬之,陰遣兵士殺之。其女聞知,衣男服逃走。追及欲害之,其女問曰:「爾等今來殺我,王命乎,王后命乎?今妾腹有子,實王之遺體也。殺妾身可也,亦殺王子乎?」兵士不敢害,來以女所言告之。王后怒,必欲殺之,而未果。王聞之,乃復幸女家,問曰:「汝今有娠,是誰之子?」對曰:「妾平生不與兄弟同席,況敢近異姓男子乎。今在腹之子,實大王之遺體也。」王慰籍贈與,甚厚。乃還告王后,竟不敢害。秋九月,酒桶女生男。王喜曰:「此天賚予嗣胤也。」始自郊豕之事,得以幸其母,乃名其子曰郊彘,立其母為小后。初,小后母孕未産,巫卜之曰:「必生王后。」母喜,及生,名曰后女。冬十月,王移都於丸都。
십삼년 봄 삼월에 왕후가 왕이 주통촌 여자를 가까이한 줄 알고 시기하여 몰래 군사를 보내어 죽이게 하였다. 그 여자가 듣고 알아 남자 옷을 입고 달아났다. 뒤쫓아 미쳐 해치려 하니 그 여자가 물었다. "너희가 이제 와서 나를 죽이려는 것이 왕의 명이냐 왕후의 명이냐. 이제 내 배에 아이가 있으니 참으로 왕의 남긴 몸이다. 내 몸을 죽이는 것은 괜찮으나 또한 왕자도 죽이겠느냐."
군사가 감히 해치지 못하고 돌아와 여자가 말한 바를 아뢰었다. 왕후가 노하여 반드시 죽이려 하였으나 이루지 못하였다.
왕이 듣고 이에 다시 여자의 집에 가서 물었다. "네가 이제 아이를 배었으니 누구의 자식인가."
답하였다. "저는 평생 형제와도 자리를 함께하지 않았거늘 하물며 감히 다른 성의 남자를 가까이하겠습니까. 이제 배 속의 아이는 참으로 대왕의 남긴 몸입니다."
왕이 위로하고 주는 것을 매우 두터이 하였다. 이에 돌아와 왕후에게 알리니 마침내 감히 해치지 못하였다.
가을 구월에 주통촌 여자가 사내를 낳았다. 왕이 기뻐하여 말하였다. "이는 하늘이 나에게 뒤이을 아이를 주신 것이다." 처음에 교제 돼지의 일로 말미암아 그 어미를 가까이할 수 있었으므로, 이에 그 아들을 교체(郊彘)라 이름하고 그 어미를 세워 작은 왕후로 삼았다.
처음에 작은 왕후의 어머니가 아이를 배고 아직 낳지 않았을 때 무당이 점쳐 말하였다. "반드시 왕후를 낳을 것이다." 어머니가 기뻐하였고 낳으매 이름을 후녀(后女)라 하였다.
겨울 시월에 왕이 환도로 도읍을 옮겼다.
9십칠년 — 교체를 왕태자로 삼다
十七年,春正月,立郊彘王太子。
십칠년 봄 정월에 교체를 세워 왕태자로 삼았다.
10이십일년 — 하요가 백성을 데리고 투항하다
二十一年,秋八月,漢平州人夏瑤,以百姓一千餘家來投,王納之,安置柵城。冬十月,雷,地震。星孛于東北。
이십일년 가을 팔월에 한나라 평주 사람 하요가 백성 일천여 집을 데리고 와서 투항하므로, 왕이 받아들여 책성에 편안히 두었다. 겨울 시월에 우레가 치고 땅이 흔들렸다. 살별이 동북쪽에 나타났다.
11이십삼년 — 일식이 있다
二十三年,春二月,壬子晦,日有食之。
이십삼년 봄 이월 그믐 임자에 일식이 있었다.
12이십사년 — 기이한 새가 모이다
二十四年,夏四月,異鳥集于王庭。
이십사년 여름 사월에 기이한 새가 왕 뜰에 모였다.
13이십팔년 — 왕손 연불이 나다
二十八年,王孫然弗生。
이십팔년에 왕손 연불이 났다.
14삼십일년 — 산상왕이 죽다
三十一年,夏五月,王薨。葬於山上陵。號爲山上王。
삼십일년 여름 오월에 왕이 죽었다. 산상릉에 장사 지내고 산상왕(山上王)이라 하였다.
15삼국사기 권 제십육
三國史記卷第十六
삼국사기 권 제십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