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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상왕烽上王

삼국사기 三國史記 · 김부식(金富軾) 등 · 1145년 (고려 인종 23) · 단락 8 · 한자 699자 · 낭독 2.8분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봉상왕」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 역사서. 신라·고구려·백제 본기와 지·표·열전으로 이루어졌다. 김부식이 곳곳에 「論曰」로 자기 평을 달아 두어, 편찬자가 무엇을 의심하고 무엇을 나무랐는지가 그대로 남아 있다.

1봉상왕이 즉위하다

烽上王,諱相夫,西川王之太子也。幼驕逸多疑忌。西川王二十三年,薨,太子卽位。

봉상왕은 이름이 상부(相夫)요 서천왕의 태자다. 어려서부터 교만하고 방자하며 의심과 시기가 많았다. 서천왕 이십삼년에 죽으매 태자가 즉위하였다.

협주 2

一云雉葛。

치갈(雉葛)이라고도 한다.

或云歃矢婁。

삽시루(歃矢婁)라고도 한다.

2원년 — 안국군 달가를 죽이다

元年,春三月,殺安國君達賈。王以賈在諸父之行,有大功業,為百姓所瞻望,故疑之謀殺。國人曰:「微安國君,民不能免梁貊、肅愼之難。今其死矣,其將焉託?」無不揮涕相弔。秋九月,地震。

원년 봄 삼월에 안국군 달가를 죽였다. 왕은 달가가 아버지뻘 항렬에 있고 큰 공업이 있어 백성이 우러러보는 바라 하여, 그러므로 의심하여 죽이기를 꾀한 것이다.

나라 사람이 말하였다. "안국군이 아니었으면 백성이 양맥과 숙신의 어려움을 면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이제 그가 죽었으니 장차 어디에 의탁하랴." 눈물을 뿌리며 서로 조상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가을 구월에 땅이 흔들렸다.

3이년 — 고노자가 왕을 구하다

二年,秋八月,慕容廆來侵。王王欲往新城避賊,行至鵠林,慕容廆知王出,引兵追之。將及,王懼。時,新城宰北部小兄高奴子,領五百騎迎王,逢賊奮擊之,廆軍敗退。王喜,加高奴子爵為大兄,兼賜鵠林為食邑。九月,王謂其弟咄固有異心,賜死。國人以咄固無罪哀慟之。咄固子乙弗出遯於野。

이년 가을 팔월에 모용외가 침노하러 왔다. 왕이 신성으로 가서 적을 피하려고 곡림에 이르렀는데, 모용외가 왕이 나온 것을 알고 군사를 이끌고 뒤쫓았다. 미치려 하매 왕이 두려워하였다.

그때 신성을 맡아 다스리던 북부 소형 고노자가 오백 기를 거느리고 왕을 맞이하다가 적을 만나 떨쳐 치니, 모용외의 군사가 져서 물러갔다. 왕이 기뻐하여 고노자의 벼슬을 더하여 대형으로 삼고 아울러 곡림을 내려 식읍으로 삼게 하였다.

구월에 왕이 그 아우 돌고에게 딴마음이 있다 하여 죽음을 내렸다. 나라 사람이 돌고에게 죄가 없다 하여 슬퍼하고 아파하였다. 돌고의 아들 을불이 들로 달아나 숨었다.

4삼년 — 창조리를 국상으로 삼다

三年,秋九月,國相尚婁卒。以南部大使者倉助利為國相,進爵為大主簿。

삼년 가을 구월에 국상 상루가 죽었다. 남부 대사자 창조리를 국상으로 삼고 벼슬을 올려 대주부로 삼았다.

5오년 — 고노자를 신성태수로 삼다

五年,秋八月,慕容廆來來侵,至故國原,見西川王墓,使人發之,役者有暴死者,亦聞壙內有樂聲,恐有神乃引退。王謂群臣曰:「慕容氏,兵馬精强,屢犯我疆場,為之奈何?」國相倉助利對曰:「北部大兄高奴子,賢且勇。大王若欲禦寇安民,非高奴子,無可用者。」王以高奴子為新城太守。善政有威聲,慕容廆不復來寇。

오년 가을 팔월에 모용외가 침노하러 와서 고국원에 이르러 서천왕의 무덤을 보고 사람을 시켜 파게 하였는데, 일하는 이 가운데 갑자기 죽는 이가 있고 또 무덤 안에서 음악 소리가 들리므로, 신령함이 있을까 두려워 이내 물러갔다.

왕이 여러 신하에게 말하였다. "모용씨는 병마가 정예하고 강하여 여러 번 우리 강토를 범하니 어찌하랴."

국상 창조리가 답하였다. "북부 대형 고노자가 어질고 또 용맹합니다. 대왕께서 만약 도둑을 막고 백성을 편안히 하고자 하시면 고노자가 아니면 쓸 만한 이가 없습니다."

왕이 고노자를 신성태수로 삼았다. 정사를 잘하여 위엄 있는 소리가 있으니 모용외가 다시는 노략하러 오지 않았다.

6칠년 — 궁실을 넓혀 짓다

七年,秋九月,霜雹殺穀,民饑。冬十月,王增營宮室,頗極侈麗,民饑且困,群臣驟諫,不從。十月,王使人索乙弗,殺之不得。

칠년 가을 구월에 서리와 우박이 곡식을 죽여 백성이 주렸다. 겨울 시월에 왕이 궁실을 넓혀 지어 자못 사치하고 고움이 지극하니, 백성이 주리고 또 곤하여 여러 신하가 자주 간하였으나 따르지 않았다.

시월에 왕이 사람을 시켜 을불을 찾아 죽이려 하였으나 얻지 못하였다.

7팔년 — 봉산에서 귀신이 울다

八年,秋九月,鬼哭于烽山。客星犯月。冬十二月,雷,地震。

팔년 가을 구월에 봉산에서 귀신이 울었다. 객성이 달을 범하였다. 겨울 십이월에 우레가 치고 땅이 흔들렸다.

8구년 — 창조리가 왕을 폐하다

九年,春正月,地震。自二月至秋七月不雨,年饑,民相食。八月,王發國內男女年十五已上,修理宮室。民乏於食,困於役,因之以流亡。倉助利諫曰:「天災荐,年穀不登,黎民失所,壯者流離四方,老幼轉乎溝壑,此誠畏天憂民,恐懼修省之時也。大王曾是不思,驅饑餓之人,困木石之役,甚乖為民父母之意。而况比鄰有強梗之敵,若乘吾弊以來,其如社稷生民何?願大王熟計之。」王慍曰:「君者,百姓之所瞻望也。宮室不壯麗,無以示威重。今國相蓋欲謗寡人,以干百姓之譽也。」助利曰:「君不恤民,非仁也;臣不諫君,非忠也。臣旣承乏國相,不敢不言,豈敢干譽乎?」王笑曰:「國相欲為百姓死耶?冀無復言。」助利知王之不悛,且畏及害,退與群臣同謀,廢之,迎乙弗為王。王知不免,自經,二子亦從而死。葬於烽山之原,號曰烽上王。

구년 봄 정월에 땅이 흔들렸다. 이월부터 가을 칠월까지 비가 오지 않아 해가 흉년이 들어 백성이 서로 잡아먹었다.

팔월에 왕이 나라 안의 남녀로 나이 열다섯 이상을 불러 궁실을 고쳐 손질하게 하였다. 백성이 먹을 것이 모자라고 부역에 곤하여 이로 말미암아 떠돌아 흩어졌다.

창조리가 간하였다. "하늘의 재앙이 거듭 이르고 해의 곡식이 익지 않아 백성이 살 곳을 잃어, 젊은 이는 사방으로 흩어지고 늙은이와 어린이는 구렁에 굴러떨어집니다. 이는 참으로 하늘을 두려워하고 백성을 근심하며 두려워하여 살피고 반성할 때입니다. 대왕께서 일찍이 이를 생각지 않으시고 굶주린 사람을 몰아 나무와 돌의 부역에 곤하게 하시니, 백성의 부모 된 뜻에 몹시 어긋납니다. 하물며 이웃에 굳세고 사나운 적이 있어 만약 우리가 지친 틈을 타고 오면 사직과 백성을 어찌하겠습니까. 바라건대 대왕께서는 깊이 헤아리소서."

왕이 성내어 말하였다. "임금은 백성이 우러러보는 바다. 궁실이 웅장하고 곱지 않으면 위엄과 무거움을 보일 수 없다. 이제 국상은 아마도 과인을 헐뜯어 백성의 기림을 구하려는 것인가."

조리가 말하였다. "임금이 백성을 돌보지 않으면 어질지 않은 것이요, 신하가 임금에게 간하지 않으면 충성스럽지 않은 것입니다. 신이 이미 모자란 자리인 국상을 이었으니 감히 말하지 않을 수 없거늘, 어찌 감히 기림을 구하겠습니까."

왕이 웃으며 말하였다. "국상은 백성을 위하여 죽으려는가. 다시 말이 없기를 바란다."

조리가 왕이 뉘우치지 않을 줄 알고 또 해가 미칠까 두려워, 물러나 여러 신하와 함께 꾀하여 폐하고 을불을 맞아 왕으로 삼았다. 왕이 벗어나지 못할 줄 알고 스스로 목매어 죽으니 두 아들도 따라 죽었다. 봉산 벌판에 장사 지내고 봉상왕(烽上王)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