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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천왕美川王

삼국사기 三國史記 · 김부식(金富軾) 등 · 1145년 (고려 인종 23) · 단락 12 · 한자 860자 · 낭독 3.4분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미천왕」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 역사서. 신라·고구려·백제 본기와 지·표·열전으로 이루어졌다. 김부식이 곳곳에 「論曰」로 자기 평을 달아 두어, 편찬자가 무엇을 의심하고 무엇을 나무랐는지가 그대로 남아 있다.

1을불이 소금 장사로 떠돌다

美川王,諱乙弗,西川王之子古鄒加咄固之子。初烽上王疑弟咄固有異心,殺之,子乙弗畏害出遁。始就水室村人陰牟家傭作。陰牟不知其何許人,使之甚苦。其家側草澤,蛙鳴,使乙弗夜投瓦石,禁其聲,晝日督之樵採,不許暫息,不勝艱苦,周年,乃去。與東村人再牟販鹽。乘舟抵鴨渌,將鹽下寄江東思收村人家。其家老嫗請鹽,許之斗許,再請不與。其嫗恨恚,潛以屨置之鹽中。乙弗不知,負而上道。嫗追索之,誣以廋屨。告鴨渌宰。宰以屨直,取鹽與嫗,決笞放之。於是,形容枯槁,衣裳藍縷,人見之,不知其為王孫也。是時,國相倉助利將廢王,先遣北部祖弗、東部蕭友等,物色訪乙弗於山野。至沸流河邊,見一丈夫在舡上,雖形貌憔悴,而動止非常。

미천왕은 이름이 을불(乙弗)이요 서천왕의 아들 고추가 돌고의 아들이다.

처음에 봉상왕이 아우 돌고에게 딴마음이 있다 의심하여 죽이니, 아들 을불이 해를 두려워하여 달아나 숨었다. 처음에는 수실촌 사람 음모의 집에 나아가 품을 팔았다. 음모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하고 몹시 괴롭게 부렸다. 그 집 곁 풀 못에 개구리가 우니, 을불로 하여금 밤에 기와와 돌을 던져 그 소리를 그치게 하고 낮에는 나무하기를 다그쳐 잠시도 쉬지 못하게 하였다.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여 한 해 만에 이내 떠났다.

동촌 사람 재모와 함께 소금 장사를 하였다. 배를 타고 압록에 이르러 소금을 가지고 내려 강 동쪽 사수촌 사람의 집에 붙었다. 그 집 늙은 할미가 소금을 청하므로 한 말쯤 주었는데, 다시 청하므로 주지 않았다. 그 할미가 한스럽고 성이 나서 몰래 신을 소금 속에 넣었다. 을불이 알지 못하고 지고 길에 올랐다. 할미가 뒤쫓아 찾아내고 신을 감추었다 하여 무고하며 압록의 수령에게 알렸다. 수령이 신 값으로 소금을 가져다 할미에게 주고, 볼기를 쳐 놓아 보냈다.

이에 얼굴이 마르고 옷이 남루하여 사람들이 보고도 그가 왕손인 줄 알지 못하였다.

이때에 국상 창조리가 장차 왕을 폐하려 하여, 먼저 북부 조불과 동부 소우 등을 보내어 산과 들로 을불을 찾아다니게 하였다. 비류하 가에 이르러 한 사내가 배 위에 있는 것을 보니, 비록 모습이 초췌하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았다.

협주 2

一云好壤王。

호양왕(好壤王)이라고도 한다.

或云憂弗。

우불(憂弗)이라고도 한다.

2원년 — 을불을 맞아 왕으로 세우다

蕭友等疑是乙弗,就而拜之曰:「今國王無道,國相與群臣陰謀,廢之。以王孫操行儉約,仁慈愛人,可以嗣祖業,故遣臣等奉迎。」乙弗疑曰:「予野人,非王孫也,請更審之。」蕭友等曰:「今上,失人心久矣,固不足為國主,故群臣望王孫甚勤,請無疑。」遂奉引以歸。助利喜,致於烏陌南家,不令人知。秋九月,王獵於侯山之陰,國相助利從之。謂衆人曰:「與我同心者,効我。」乃以蘆葉挿冠,衆人皆揷之。助利知衆心皆同,遂共廢王,幽之別室,以兵周衛。遂迎王孫,上璽綬,卽王位。冬十月,黃霧四塞。十一月,風從西北來,飛砂走石六日。十二月,星孛于東方。

소우 등이 을불인가 의심하여 나아가 절하고 말하였다. "이제 국왕이 도가 없으므로 국상이 여러 신하와 몰래 꾀하여 폐하려 합니다. 왕손께서 몸가짐이 검약하고 어질고 자애로우며 사람을 사랑하시어 할아버지의 업을 이을 만하다 하여, 그러므로 신들을 보내어 받들어 맞게 하셨습니다."

을불이 의심하여 말하였다. "나는 들사람이지 왕손이 아니오. 다시 살펴보시오."

소우 등이 말하였다. "지금 임금이 사람의 마음을 잃은 지 오래니 진실로 나라의 주인이 되기에 넉넉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여러 신하가 왕손을 바라기를 몹시 간절히 하니 의심하지 마소서."

마침내 받들어 이끌고 돌아왔다. 조리가 기뻐하여 오맥 남쪽 집에 두고 사람이 알지 못하게 하였다.

가을 구월에 왕이 후산 북쪽에서 사냥하는데 국상 조리가 따라갔다. 여러 사람에게 말하였다. "나와 마음을 같이하는 이는 나를 본받으라." 이에 갈댓잎을 관에 꽂으니 여러 사람이 모두 꽂았다. 조리가 여럿의 마음이 모두 같음을 알고 마침내 함께 왕을 폐하여 딴 방에 가두고 군사로 두루 지키게 하였다. 마침내 왕손을 맞아 도장과 인끈을 올리고 왕위에 오르게 하였다.

겨울 시월에 누런 안개가 사방에 끼었다. 십일월에 바람이 서북쪽에서 불어와 모래를 날리고 돌을 굴리기를 엿새 하였다. 십이월에 살별이 동쪽에 나타났다.

3삼년 — 현도군을 침노하다

三年,秋九月,王率兵三萬,侵玄菟郡,虜獲八千人,移之平壤。

삼년 가을 구월에 왕이 군사 삼만을 거느리고 현도군을 침노하여 팔천 사람을 사로잡아 평양으로 옮겼다.

4십이년 — 서안평을 습격해 빼앗다

十二年,秋八月,遣將襲取遼東西安平。

십이년 가을 팔월에 장수를 보내어 요동 서안평을 습격하여 빼앗았다.

5십사년 — 낙랑군을 침노하다

十四年,冬十月,侵樂浪郡,虜獲男女二千餘口。

십사년 겨울 시월에 낙랑군을 침노하여 남녀 이천여 사람을 사로잡았다.

6십오년 — 대방군을 침노하다

十五年,春正月,立王子斯由為太子。秋九月,南侵帶方郡。

십오년 봄 정월에 왕자 사유를 세워 태자로 삼았다. 가을 구월에 남쪽으로 대방군을 침노하였다.

7십육년 — 현도성을 깨뜨리다

十六年,春二月,攻破玄菟城,殺獲甚衆。秋八月,星孛于東北。

십육년 봄 이월에 현도성을 쳐서 깨뜨리고 죽이고 사로잡은 것이 매우 많았다. 가을 팔월에 살별이 동북쪽에 나타났다.

8이십년 — 최비가 달아나 오다

二十年,冬十二月,晉平州刺使崔毖來奔。初,崔毖陰說我及段氏、宇文氏,使共攻慕容廆,三國進攻棘城。廆閉門自守,獨以牛酒,犒宇文氏。與國疑宇文氏與廆有謀各引兵歸。宇文大人悉獨官曰:「二國雖歸,吾當獨取之。」廆使其子皝與長史裴嶷,將精銳為前鋒,自將大兵繼之,悉獨官大敗,僅以身免。崔毖聞之,使其兄子燾詣棘城僞賀。廆臨之以兵,燾懼首服,廆迺遣燾歸。謂毖曰:「降者,上策;走者,下策也。」引兵隨之。毖與數十騎,棄家來奔,其衆悉降於廆。廆以其子仁,鎭遼東官府,市里案堵如故。我將如孥據于河城,廆遣將軍張統,掩撃擒之,俘其衆千餘家,歸于棘城。王數遣兵寇遼東,慕容廆遣慕容翰、慕容仁,伐之。王求盟。翰、仁乃還。

이십년 겨울 십이월에 진나라 평주자사 최비가 달아나 왔다.

처음에 최비가 몰래 고구려와 단씨·우문씨를 달래어 함께 모용외를 치게 하니, 세 나라가 극성으로 나아가 쳤다. 모용외가 문을 닫고 스스로 지키며 다만 소와 술로 우문씨만 위로하였다. 함께한 나라들이 우문씨가 모용외와 꾀함이 있는가 의심하여 각각 군사를 이끌고 돌아갔다.

우문의 대인 실독관이 말하였다. "두 나라가 비록 돌아갔으나 내가 마땅히 홀로 취하겠다." 모용외가 그 아들 황과 장사 배억을 시켜 정예를 거느리고 앞장서게 하고 스스로 큰 군사를 거느려 뒤를 이으니, 실독관이 크게 져서 겨우 몸만 벗어났다.

최비가 이를 듣고 그 형의 아들 도를 극성에 보내어 거짓으로 하례하게 하였다. 모용외가 군사로 다그치니 도가 두려워 실토하므로 모용외가 이에 도를 돌려보내며 최비에게 이르게 하였다. "항복하는 것은 상책이요 달아나는 것은 하책이다." 군사를 이끌고 뒤따랐다. 최비가 수십 기와 함께 집을 버리고 달아나 오니 그 무리가 모두 모용외에게 항복하였다.

모용외가 그 아들 인으로 요동을 지키게 하니 관부와 저자와 마을이 예전처럼 편안하였다. 고구려 장수 여노가 하성에 웅거하니, 모용외가 장군 장통을 보내어 몰래 쳐서 사로잡고 그 무리 일천여 집을 사로잡아 극성으로 돌아갔다.

왕이 자주 군사를 보내어 요동을 노략하니 모용외가 모용한과 모용인을 보내어 쳤다. 왕이 맹세를 청하니 한과 인이 이내 돌아갔다.

9이십일년 — 요동을 노략하다

二十一年,冬十二月,遣兵寇遼東,慕容仁拒戰破之。

이십일년 겨울 십이월에 군사를 보내어 요동을 노략하니 모용인이 맞아 싸워 깨뜨렸다.

10삼십일년 — 후조에 호시를 보내다

三十一年,遣使後趙石勒,致其楛矢。

삼십일년에 사신을 후조의 석륵에게 보내어 그 호시(楛矢)를 보냈다.

11삼십이년 — 미천왕이 죽다

三十二年,春二月,王薨,葬於美川之原,號曰美川王。

삼십이년 봄 이월에 왕이 죽었다. 미천 벌판에 장사 지내고 미천왕(美川王)이라 하였다.

12삼국사기 권 제십칠

三國史記卷第十七

삼국사기 권 제십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