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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류왕榮留王

삼국사기 三國史記 · 김부식(金富軾) 등 · 1145년 (고려 인종 23) · 단락 16 · 한자 907자 · 낭독 3.6분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영류왕」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 역사서. 신라·고구려·백제 본기와 지·표·열전으로 이루어졌다. 김부식이 곳곳에 「論曰」로 자기 평을 달아 두어, 편찬자가 무엇을 의심하고 무엇을 나무랐는지가 그대로 남아 있다.

1영류왕이 즉위하다

榮留王,諱建武,嬰陽王異母弟也。嬰陽在位二十九年薨。即位。

영류왕은 이름이 건무(建武)요 영양왕의 배다른 아우다. 영양이 자리에 있은 지 이십구년에 죽으매 즉위하였다.

협주 1

一云成。

성(成)이라고도 한다.

2이년 — 졸본에서 시조 사당에 제사하다

二年,春二月,遣使如唐朝貢。夏四月,王幸卒本,祀始祖廟。五月,王至自卒本。

이년 봄 이월에 사신을 보내어 당나라에 가서 조공하였다. 여름 사월에 왕이 졸본에 거둥하여 시조 사당에 제사하였다. 오월에 왕이 졸본에서 돌아왔다.

3사년 — 당나라에 조공하다

四年,秋七月,遣使如唐朝貢。

사년 가을 칠월에 사신을 보내어 당나라에 가서 조공하였다.

4오년 — 사로잡힌 사람들을 돌려보내다

五年,遣使如唐朝貢。唐高祖感隋末戰士多陷於此,賜王詔書曰:「朕恭膺寶命,君臨率土,祗順三靈,懷柔萬國,普天之下,情均撫字,日月所炤,咸使乂安。王統攝遼左,世居藩服,思稟正朔,遠循職貢。故遣使者,跋涉山川,申布誠懇,朕甚嘉焉。方今,六合寧晏,四海淸平,玉帛旣通,道路無壅,方申緝輯睦,永敦聘好,各保疆場,豈非盛美?但隋氏季年,連兵構難,攻戰之所,各失其泯氓,遂使骨肉乖離,室家分析,多歷年歲,怨曠不申。今,二國通和,義無阻異。在此所有高句麗人等,已令追括,尋卽遣送,彼處所有此國人者,王可放還,務盡撫育之方,共弘仁恕之道。」於是,悉搜括華人以送之,數至萬餘。高祖大喜。

오년에 사신을 보내어 당나라에 가서 조공하였다.

당나라 고조가 수나라 말의 군사가 이곳에 많이 빠져 있음을 느껴 왕에게 조서를 내려 말하였다.

"짐이 삼가 보배로운 명을 받아 온 땅에 임금으로 임하여, 삼령을 삼가 따르고 만국을 품어 어루만지니, 온 하늘 아래 정이 고르게 미치고 해와 달이 비추는 곳마다 다 편안하게 한다. 왕은 요동 왼쪽을 거느려 대대로 울타리에 살면서, 책력을 받기를 생각하고 멀리 직분의 공물을 좇았다. 그러므로 사자를 보내어 산과 내를 헤치고 정성을 펴 보이니 짐이 매우 아름다이 여긴다.

이제 온 세상이 편안하고 사해가 맑고 평온하며 옥과 비단이 이미 통하고 길이 막히지 않으니, 바야흐로 화목함을 펴 길이 예방의 좋음을 두터이 하고 각각 강토를 지킨다면 어찌 성한 아름다움이 아니겠는가.

다만 수씨의 말년에 군사를 이어 어려움을 일으켜, 치고 싸운 곳마다 각각 그 백성을 잃어, 마침내 골육이 갈라지고 집안이 나뉘어 여러 해를 지나도록 원망과 홀로 됨을 펴지 못하였다. 이제 두 나라가 통하여 화친하니 의로움에 막히거나 다를 것이 없다. 여기 있는 고구려 사람들은 이미 찾아 모으게 하였으니 곧 보낼 것이요, 그곳에 있는 이 나라 사람은 왕이 놓아 돌려보내어, 어루만져 기르는 방도를 다하고 어질고 너그러운 도를 함께 넓히기에 힘쓰라."

이에 중국 사람을 다 찾아 모아 보내니 수가 만여에 이르렀다. 고조가 크게 기뻐하였다.

5육년 — 당나라에 조공하다

六年,冬十二月,遣使如唐朝貢。

육년 겨울 십이월에 사신을 보내어 당나라에 가서 조공하였다.

6칠년 — 도사가 노자를 강하다

七年,春二月,王遣使如唐,請班曆。遣刑部尚書沈叔安,策王為上柱國遼東郡公高句麗國王。命道士,以天尊像及道法,往為之講《老子》,王及國人聽之。冬十二月,遣使入唐朝貢。

칠년 봄 이월에 왕이 사신을 당나라에 보내어 책력 반포를 청하였다. 형부상서 심숙안을 보내어 왕을 책봉하여 상주국 요동군공 고구려국왕으로 삼았다. 도사에게 명하여 천존상과 도법을 가지고 가서 『노자』를 강하게 하니, 왕과 나라 사람이 들었다.

겨울 십이월에 사신을 보내어 당나라에 들어가 조공하였다.

7팔년 — 불교와 도교의 가르침을 배우기를 구하다

八年,王遣人入唐,求學佛、老敎法,帝許之。

팔년에 왕이 사람을 당나라에 보내어 불교와 도교의 가르침을 배우기를 구하니 황제가 허락하였다.

8구년 — 신라와 백제가 당나라에 하소연하다

九年,新羅、百濟遣使於唐,上言:「高句麗閉道,使不得朝,又屢相侵掠。」帝遣散騎侍郞朱子奢,持節諭和。王奉表謝罪,請與二國平。

구년에 신라와 백제가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아뢰었다. "고구려가 길을 막아 조회할 수 없게 하고 또 여러 번 서로 침노하여 노략합니다." 황제가 산기시랑 주자사를 보내어 부절을 가지고 화친을 타이르게 하였다. 왕이 표를 받들어 사죄하고 두 나라와 화평하기를 청하였다.

9십일년 — 봉역도를 올리다

十一年,秋九月,遣使入唐,賀太宗擒突厥頡利可汗,兼上封域圖。

십일년 가을 구월에 사신을 보내어 당나라에 들어가, 태종이 돌궐 힐리가한을 사로잡은 것을 하례하고 아울러 봉역도(封域圖)를 올렸다.

10십이년 — 김유신이 낭비성을 깨뜨리다

十二年,秋八月,新羅將軍金庾信,來侵東邊,破娘臂城。九月,遣使入唐朝貢。

십이년 가을 팔월에 신라 장군 김유신이 동쪽 변경을 침노하러 와서 낭비성을 깨뜨렸다. 구월에 사신을 보내어 당나라에 들어가 조공하였다.

11십사년 — 장성을 쌓기 시작하다

十四年,唐遣廣州司馬長孫師,臨瘞隋戰士骸骨,祭之,毁當時所立京觀。春二月,王動衆築長城,東北自扶餘城,東西南至海千有餘里,凡一十六年畢功。

십사년에 당나라가 광주사마 장손사를 보내어 수나라 군사의 뼈를 묻은 곳에 임하여 제사하고, 그때 세운 경관을 헐었다.

봄 이월에 왕이 무리를 움직여 장성을 쌓았는데, 동북쪽 부여성에서 동서로 남쪽 바다에 이르기까지 일천여 리요 무릇 열여섯 해에 일을 마쳤다.

12이십일년 — 칠중성에서 지다

二十一年,冬十月,侵新羅北邊七重城。新羅將軍閼川逆之,戰於七重城外,我兵敗衂。

이십일년 겨울 시월에 신라 북쪽 변경 칠중성을 침노하였다. 신라 장군 알천이 맞아 칠중성 밖에서 싸우니 고구려 군사가 졌다.

13이십삼년 — 세자 환권을 보내다

二十三年,春二月,遣世子桓權,入唐朝貢。太宗勞慰,賜賚之特厚。王遣子弟入唐,請入國學。秋九月,日無光,經三日復明。

이십삼년 봄 이월에 세자 환권을 보내어 당나라에 들어가 조공하니, 태종이 위로하고 내리기를 특히 두터이 하였다. 왕이 자제를 당나라에 보내어 국학에 들기를 청하였다. 가을 구월에 해에 빛이 없다가 사흘을 지나 다시 밝아졌다.

14이십사년 — 진대덕이 나라를 엿보다

二十四年,帝以我太子入朝,遣職方郞中陳大德答勞。大德入境,所至城邑,以綾綺厚餉官守者曰:「吾雅好山水,此有勝處,吾欲觀之。」守者喜導之,遊歷無所不至。由是,悉得其纖曲。見華人隋末從軍沒留者,為道親戚存亡,人人垂涕,故所至士女夾道觀之。王盛陳兵衛,引見使者。大德因奉使覘國虚實,吾人不知。大德還奏,帝悅。大德言於帝曰:「其國聞高昌亡,大懼,館候之勤,加於常數。」帝曰:「高句麗本四郡地耳。吾發卒數萬,攻遼東,彼必傾國救之。別遣舟師出東萊,自海道趨平壤,水陸合勢,取之不難。但山東州縣,凋瘵未復,吾不欲勞之耳。」

이십사년에 황제가 고구려 태자가 조회한 데 대하여 직방낭중 진대덕을 보내어 답례로 위로하게 하였다.

대덕이 지경에 들어와 이르는 성읍마다 비단으로 벼슬아치와 지키는 이에게 두터이 주며 말하였다. "내가 본디 산과 물을 좋아하는데 여기 좋은 곳이 있으니 보고자 한다." 지키는 이가 기뻐하여 이끄니 다녀 보지 않은 곳이 없었다. 이로 말미암아 그 자잘한 곡절까지 다 알게 되었다.

중국 사람으로 수나라 말에 군사를 좇았다가 빠져 머무른 이를 보고 친척의 살고 죽음을 일러 주니 사람마다 눈물을 흘렸다. 그러므로 이르는 곳마다 남녀가 길을 끼고 보았다. 왕이 군사와 호위를 성대히 벌이고 사자를 이끌어 만나 보았다. 대덕이 사신 받든 것을 인하여 나라의 허와 실을 엿보았으나 고구려 사람이 알지 못하였다.

대덕이 돌아가 아뢰니 황제가 기뻐하였다. 대덕이 황제에게 말하였다. "그 나라가 고창이 망하였다는 말을 듣고 크게 두려워하여, 객관에서 대접하는 부지런함이 늘 하던 수보다 더하였습니다."

황제가 말하였다. "고구려는 본디 네 군의 땅일 뿐이다. 내가 군사 수만을 내어 요동을 치면 저들이 반드시 나라를 기울여 구할 것이다. 따로 수군을 보내어 동래에서 나와 바닷길로 평양으로 향하게 하여 물과 뭍이 형세를 합치면 취하기 어렵지 않다. 다만 산동의 주현이 시들고 병들어 아직 회복되지 못하였으므로 내가 수고롭게 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15이십오년 — 연개소문이 왕을 시해하다

二十五年,春正月,遣使入唐朝貢。王命東部大人蓋蘇文,監長城之役。冬十月,蓋蘇文弑王。十一月,太宗聞王死,擧哀於苑中,詔贈物三百段,遣使持節吊祭。

이십오년 봄 정월에 사신을 보내어 당나라에 들어가 조공하였다. 왕이 동부 대인 개소문에게 명하여 장성의 역사를 감독하게 하였다.

겨울 시월에 개소문이 왕을 시해하였다. 십일월에 태종이 왕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동산 안에서 슬퍼하는 예를 행하고, 조서로 물건 삼백 단을 보내며 사신에게 부절을 가지고 가서 조문하고 제사하게 하였다.

16삼국사기 권 제이십

三國史記卷第二十

삼국사기 권 제이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