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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루왕蓋婁王

삼국사기 三國史記 · 김부식(金富軾) 등 · 1145년 (고려 인종 23) · 단락 7 · 한자 227자 · 낭독 0.9분

「삼국사기」 백제본기 「개루왕」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 역사서. 신라·고구려·백제 본기와 지·표·열전으로 이루어졌다. 김부식이 곳곳에 「論曰」로 자기 평을 달아 두어, 편찬자가 무엇을 의심하고 무엇을 나무랐는지가 그대로 남아 있다.

1개루왕이 즉위하다

蓋婁王,己婁王之子,性恭順,有操行。己婁在位五十二年薨,卽位。

개루왕(蓋婁王)은 기루왕의 아들이다. 성품이 공손하고 순하며 지조와 행실이 있었다. 기루가 자리에 있은 지 오십이년에 죽으매 즉위하였다.

2사년 — 한산에서 사냥하다

四年,夏四月,王獵漢山。

사년 여름 사월에 왕이 한산에서 사냥하였다.

3오년 — 북한산성을 쌓다

五年,春二月,築北漢山城。

오년 봄 이월에 북한산성을 쌓았다.

4십년 — 형혹이 남두를 범하다

十年,秋八月庚子,熒惑犯南斗(-一)。

십년 가을 팔월 경자에 형혹성이 남두를 범하였다.

5이십팔년 — 길선을 받아들이다

二十八年春正月丙申晦日有食之冬十月新羅阿飡吉宣謀叛,事露來奔。羅王移書請之,不送。羅王怒,出師來伐。諸城堅壁,自守不出,羅兵絶糧而歸。

이십팔년 봄 정월 그믐 병신에 일식이 있었다. 겨울 시월에 신라 아찬 길선이 배반을 꾀하다가 일이 드러나 달아나 왔다. 신라 왕이 글을 보내어 청하였으나 보내지 않았다. 신라 왕이 노하여 군사를 내어 치러 왔다. 여러 성이 성벽을 굳게 하고 스스로 지키며 나가지 않으니, 신라 군사가 양식이 떨어져 돌아갔다.

6사론 — 도둑을 감춘 셈이다

論曰:春秋時,莒僕來奔魯季文子曰:「見有禮於其君者,事之如孝子之養父母也;見無禮於其君者,誅之如鷹之逐鳥雀也。觀莒僕,不度於善而在於凶德,是以去之。」今吉宣亦姦賊之人,百濟王納而匿之,是謂掩賊為藏者也。由是,失鄰國之和,使民困於兵革之役,其不明,甚矣。

김부식이 논한다.

춘추 때에 거나라의 복이 노나라로 달아나 오매 계문자가 말하였다. "그 임금에게 예 있는 이를 보면 섬기기를 효자가 부모를 봉양하듯 하고, 그 임금에게 예 없는 이를 보면 베기를 매가 새를 쫓듯 한다. 거복을 보건대 착함을 헤아리지 않고 흉한 덕에 있으므로 그를 내쫓는다."

이제 길선도 또한 간사하고 도둑질하는 사람인데 백제 왕이 받아들여 숨겼으니, 이는 이른바 도둑을 덮어 감춘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이웃 나라의 화친을 잃고 백성으로 하여금 싸움의 부역에 곤하게 하였으니, 그 밝지 못함이 심하다.

7삼십구년 — 개루왕이 죽다

三十九年王薨

삼십구년에 왕이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