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계왕責稽王
「삼국사기」 백제본기 「책계왕」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 역사서. 신라·고구려·백제 본기와 지·표·열전으로 이루어졌다. 김부식이 곳곳에 「論曰」로 자기 평을 달아 두어, 편찬자가 무엇을 의심하고 무엇을 나무랐는지가 그대로 남아 있다.
1책계왕이 즉위하다
責稽王,古尒王子,身長大,志氣雄傑,古尒薨,卽位。王徵發丁夫,葺慰禮城。高句麗伐帶方,帶方請救於我。先是,王娶帶方王女寶菓,為夫人。故曰:「帶方我舅甥之國,不可不副其請。」遂出師救之,高句麗怨。王慮其侵寇,修阿旦城、蛇城,備之。
책계왕(責稽王)은 고이왕의 아들이다. 몸이 크고 뜻과 기운이 씩씩하고 뛰어났다. 고이가 죽으매 즉위하였다.
왕이 장정을 불러 위례성을 손질하였다. 고구려가 대방을 치므로 대방이 백제에 구원을 청하였다. 이보다 앞서 왕이 대방 왕의 딸 보과에게 장가들어 부인으로 삼았으므로 말하였다. "대방은 우리 장인과 사위의 나라이니 그 청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다." 마침내 군사를 내어 구하니 고구려가 원망하였다. 왕이 그 침노를 걱정하여 아단성과 사성을 손질하여 대비하였다.
협주 1
或云靑稽。
청계(靑稽)라고도 한다.
2이년 — 동명 사당에 뵈다
二年,春正月,謁東明廟。
이년 봄 정월에 동명 사당에 뵈었다.
3십삼년 — 책계왕이 죽다
十三年,秋九月,漢與貊人來侵,王出禦,為敵兵所害,薨。
십삼년 가을 구월에 한나라가 맥인과 함께 침노하러 오므로 왕이 나가 막다가 적병에게 해를 입어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