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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초고왕近肖古王

삼국사기 三國史記 · 김부식(金富軾) 등 · 1145년 (고려 인종 23) · 단락 9 · 한자 375자 · 낭독 1.5분

「삼국사기」 백제본기 「근초고왕」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 역사서. 신라·고구려·백제 본기와 지·표·열전으로 이루어졌다. 김부식이 곳곳에 「論曰」로 자기 평을 달아 두어, 편찬자가 무엇을 의심하고 무엇을 나무랐는지가 그대로 남아 있다.

1근초고왕이 즉위하다

近肖古王,比流王第二子也,體貌奇偉,有遠識,契王薨,繼位。

근초고왕(近肖古王)은 비류왕의 둘째 아들이다. 몸과 모습이 기이하고 뛰어나며 먼 식견이 있었다. 계왕이 죽으매 자리를 이었다.

2이년 — 진정을 조정좌평으로 삼다

二年,春正月,祭天地神祇。拜眞淨為朝廷佐平。淨王后親戚,性狠戾不仁,臨事苛細,恃勢自用,國人疾之。

이년 봄 정월에 하늘과 땅의 신에게 제사하였다. 진정을 조정좌평으로 삼았다. 정은 왕후의 친척인데 성품이 사납고 어질지 못하며 일에 임하여 까다롭고 잘았고, 세력을 믿고 제멋대로 하므로 나라 사람이 미워하였다.

3이십일년 — 신라에 예방하다

二十一年,春三月,遣使聘新羅。

이십일년 봄 삼월에 사신을 보내어 신라에 예방하였다.

4이십삼년 — 신라에 좋은 말을 보내다

二十三年,春三月丁巳朔,日有食之。遣使新羅,送良馬二匹。

이십삼년 봄 삼월 초하루 정사에 일식이 있었다. 사신을 신라에 보내어 좋은 말 두 필을 보냈다.

5이십사년 — 치양에서 고구려를 깨뜨리다

二十四年,秋九月,高句麗王斯由帥步騎二萬,來屯雉壤,分兵侵奪民戶。王遣太子,以兵徑至雉壤,急擊破之,獲五千餘級,其虜獲分賜將士。冬十一月,大閱於漢水南,旗幟皆用黃。

이십사년 가을 구월에 고구려 왕 사유가 보병과 기병 이만을 거느리고 치양에 와서 진 치고 군사를 나누어 백성을 침노하여 빼앗았다. 왕이 태자를 보내어 군사로 곧바로 치양에 이르러 급히 쳐서 깨뜨리고 오천여 급을 얻으니, 그 사로잡은 것을 장수와 군사에게 나누어 주었다. 겨울 십일월에 한수 남쪽에서 크게 사열하였는데 깃발을 다 누른빛으로 하였다.

6이십육년 — 평양성을 치고 고구려 왕이 죽다

二十六年,高句麗擧兵來。王聞之,伏兵於浿河上,俟其至,急擊之,高句麗兵敗北。冬,王與太子帥精兵三萬,侵高句麗,攻平壤城。麗王斯由釗,力戰拒之,中流矢死,王引軍退。移都漢山。

이십육년에 고구려가 군사를 일으켜 왔다. 왕이 이를 듣고 패하 가에 군사를 숨겼다가 그가 이르기를 기다려 급히 치니 고구려 군사가 져서 달아났다.

겨울에 왕이 태자와 함께 정예 군사 삼만을 거느리고 고구려를 침노하여 평양성을 쳤다. 고구려 왕 사유(쇠)가 힘껏 싸워 막다가 흐르는 화살에 맞아 죽으니 왕이 군사를 이끌고 물러났다. 한산으로 도읍을 옮겼다.

7이십칠년 — 진나라에 조공하다

二十七年,春正月,遣使入晉朝貢。秋七月,地震。

이십칠년 봄 정월에 사신을 보내어 진나라에 들어가 조공하였다. 가을 칠월에 땅이 흔들렸다.

8이십팔년 — 청목령에 성을 쌓다

二十八年,春二月,遣使入晉朝貢。秋七月,築城於靑木嶺。禿山城主率三百人,奔新羅。

이십팔년 봄 이월에 사신을 보내어 진나라에 들어가 조공하였다. 가을 칠월에 청목령에 성을 쌓았다. 독산성주가 삼백 사람을 거느리고 신라로 달아났다.

9삼십년 — 근초고왕이 죽다

三十年,秋七月,高句麗來攻北鄙水谷城,陷之。王遣將拒之,不克。王又將大擧兵報之,以年荒不果。冬十一月,王薨。古記云:「百濟開國已來,未有以文字記事。至是,得博士高興,始有《書記》。」然高興未嘗顯於他書,不知其何許人也。

삼십년 가을 칠월에 고구려가 북쪽 변두리 수곡성을 치러 와서 함락하였다. 왕이 장수를 보내어 막았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왕이 또 크게 군사를 일으켜 갚으려 하였으나 해가 흉년이 들어 이루지 못하였다.

겨울 십일월에 왕이 죽었다. 『고기』에 이르기를 "백제가 나라를 연 이래로 아직 글자로 일을 적은 것이 없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박사 고흥을 얻어 비로소 『서기(書記)』가 있게 되었다" 하였다. 그러나 고흥은 일찍이 다른 책에 드러나지 않아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