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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신왕阿莘王

삼국사기 三國史記 · 김부식(金富軾) 등 · 1145년 (고려 인종 23) · 단락 11 · 한자 534자 · 낭독 2.1분

「삼국사기」 백제본기 「아신왕」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 역사서. 신라·고구려·백제 본기와 지·표·열전으로 이루어졌다. 김부식이 곳곳에 「論曰」로 자기 평을 달아 두어, 편찬자가 무엇을 의심하고 무엇을 나무랐는지가 그대로 남아 있다.

1아신왕이 즉위하다

阿莘王,枕流王之元子。初,生於漢城別宮,神光炤夜。及壯,志氣豪邁,好鷹馬。王薨時,年少,故叔父辰斯繼位。八年薨,卽位。

아신왕(阿莘王)은 침류왕의 맏아들이다. 처음에 한성 별궁에서 났는데 신령한 빛이 밤을 비추었다. 자라매 뜻과 기운이 호방하고 매와 말을 좋아하였다. 왕이 죽었을 때 나이가 어렸으므로 숙부 진사가 자리를 이었다. 팔년에 죽으매 즉위하였다.

협주 1

或云阿芳。

아방(阿芳)이라고도 한다.

2이년 — 진무가 관미성을 에우다

二年,春正月,謁東明廟,又祭天地於南壇。拜眞武為左將,委以兵馬事。武,王之親舅,沈毅有大略,時人服之。秋八月,王謂武曰:「關彌城者,我北鄙之襟要也。今為高句麗所有。此寡人之所痛惜,而卿之所宜用心而雪恥也。」遂謀將兵一萬,伐高句麗南鄙。武身先士卒,以冒矢石,意復石峴等五城,先圍關彌城,麗人嬰城固守。武以糧道不繼,引而歸。

이년 봄 정월에 동명 사당에 뵈고 또 남단에서 하늘과 땅에 제사하였다. 진무를 좌장으로 삼아 병마의 일을 맡겼다. 무는 왕의 친외숙인데 침착하고 굳세며 큰 지략이 있어 그때 사람이 복종하였다.

가을 팔월에 왕이 무에게 말하였다. "관미성은 우리 북쪽 변두리의 목이 되는 곳인데 이제 고구려가 차지하였다. 이는 과인이 아프고 애석히 여기는 바이니, 경이 마땅히 마음을 써서 부끄러움을 씻어야 할 바다."

마침내 군사 일만을 거느리고 고구려 남쪽 변두리를 치기를 꾀하였다. 무가 몸소 군사에 앞서 화살과 돌을 무릅쓰고 석현 등 다섯 성을 되찾으려 하여 먼저 관미성을 에웠으나, 고구려 사람이 성을 지키고 굳게 막았다. 무가 양식 길이 이어지지 않으므로 이끌고 돌아왔다.

3삼년 — 전지를 태자로 삼다

三年,春二月,立元子腆支爲太子。大赦。拜庶弟洪為內臣佐平。秋七月,與高句麗戰於水谷城下,敗績。太白晝見。

삼년 봄 이월에 맏아들 전지를 세워 태자로 삼고 크게 사면하였다. 서제 홍을 내신좌평으로 삼았다. 가을 칠월에 고구려와 수곡성 아래에서 싸워 졌다. 태백이 낮에 보였다.

4사년 — 패수에서 크게 지다

四年,春二月,星孛于西北,二十日而滅。秋八月,王命左將眞武等,伐高句麗,麗王談德親帥兵七千,陣於浿水之上,拒戰。我軍大敗,死者八千人。冬十一月,王欲報浿水之役,親帥兵七千人,過漢水,次於靑木嶺下。會,大雪,士卒多凍死。廻軍至漢山城,勞軍士。

사년 봄 이월에 살별이 서북쪽에 나타나 스무 날 만에 없어졌다.

가을 팔월에 왕이 좌장 진무 등에게 명하여 고구려를 치게 하니, 고구려 왕 담덕이 몸소 군사 칠천을 거느리고 패수 가에 진 치고 막아 싸웠다. 백제 군사가 크게 져서 죽은 이가 팔천 사람이었다.

겨울 십일월에 왕이 패수의 싸움을 갚으려고 몸소 군사 칠천 사람을 거느리고 한수를 건너 청목령 아래에 머물렀다. 마침 큰 눈이 내려 군사가 많이 얼어 죽으므로, 군사를 돌려 한산성에 이르러 군사를 위로하였다.

5육년 — 전지를 왜국에 볼모로 보내다

六年,夏五月,王與倭國結好,以太子腆支爲質。秋七月,大閱於漢水之南。

육년 여름 오월에 왕이 왜국과 좋게 지내며 태자 전지를 볼모로 삼았다. 가을 칠월에 한수 남쪽에서 크게 사열하였다.

6칠년 — 큰 별이 떨어져 그치다

七年,春二月,以眞武為兵官佐平,沙豆為左將。三月,築雙峴城。秋八月,王將伐高句麗,出帥師至漢山北柵。其夜大星落,營中有聲。王深惡之,乃止。九月,集都人,習射於西臺。

칠년 봄 이월에 진무를 병관좌평으로, 사두를 좌장으로 삼았다. 삼월에 쌍현성을 쌓았다.

가을 팔월에 왕이 고구려를 치려 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한산 북쪽 목책에 이르렀다. 그날 밤에 큰 별이 떨어지고 진영 안에 소리가 났다. 왕이 몹시 언짢게 여겨 이내 그쳤다. 구월에 도성 사람을 모아 서대에서 활쏘기를 익히게 하였다.

7팔년 — 백성이 신라로 달아나다

八年,秋八月,王欲侵高句麗,大徵兵馬,民苦於役,多奔新羅,戶口衰減。

팔년 가을 팔월에 왕이 고구려를 침노하려고 군마를 크게 부르니, 백성이 부역에 괴로워 신라로 많이 달아나 호구가 줄었다.

8구년 — 일식이 있다

九年,春二月,星孛于奎、婁。夏六月庚辰朔,日有食之。

구년 봄 이월에 살별이 규성과 누성에 나타났다. 여름 유월 초하루 경진에 일식이 있었다.

9십일년 — 횡악에 제사하니 비가 오다

十一年,夏,大旱,禾苗焦枯,王親祭橫岳,乃雨。五月,遣使倭國求大珠。

십일년 여름에 크게 가물어 벼 싹이 타서 마르므로, 왕이 몸소 횡악에 제사하니 이내 비가 내렸다. 오월에 사신을 왜국에 보내어 큰 구슬을 구하였다.

10십이년 — 왜국 사자를 두터이 대접하다

十二年,春二月,倭國使者至,王迎勞之,特厚。秋七月,遣兵侵新羅邊境。

십이년 봄 이월에 왜국 사자가 이르매 왕이 맞아 위로하기를 특히 두터이 하였다. 가을 칠월에 군사를 보내어 신라 변경을 침노하였다.

11십사년 — 아신왕이 죽다

十四年,春三月,白氣自王宮西起,如匹練。秋九月,王薨。

십사년 봄 삼월에 흰 기운이 왕궁 서쪽에서 일어났는데 한 필의 명주 같았다. 가을 구월에 왕이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