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왕腆支王
1전지왕이 즉위하다
腆支王,《梁書》名映,阿莘之元子。阿莘在位第三年,立為太子,六年出質於倭國。十四年,王薨,王仲弟訓解攝政,以待太子還國,季弟碟禮殺訓解,自立爲王。腆支在倭聞訃,哭泣請歸,倭王以兵士百人衛送。旣至國界,漢城人解忠來告曰:「大王棄世,王弟碟禮殺兄自立王,願太子無輕入。」腆支留倭人自衛,依海島以待之,國人殺碟禮,迎腆支卽位。妃,八須夫人,生子久尒辛。
전지왕(腆支王)은 『양서』에 이름을 영(映)이라 하였으니 아신의 맏아들이다. 아신이 자리에 있은 지 삼년에 세워 태자가 되었고, 육년에 왜국에 볼모로 나갔다.
십사년에 왕이 죽으매 왕의 둘째 아우 훈해가 정사를 대신 보며 태자가 나라에 돌아오기를 기다렸는데, 막내아우 첩례가 훈해를 죽이고 스스로 서서 왕이 되었다.
전지가 왜국에서 부고를 듣고 곡하며 돌아가기를 청하니, 왜국 왕이 군사 일백 사람으로 호위하여 보냈다. 나라 지경에 이르매 한성 사람 해충이 와서 알렸다. "대왕이 세상을 버리시고 왕의 아우 첩례가 형을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었으니, 바라건대 태자께서는 가벼이 들어가지 마소서."
전지가 왜인을 머물러 스스로를 지키게 하고 바다 섬에 기대어 기다리니, 나라 사람이 첩례를 죽이고 전지를 맞아 즉위하게 하였다. 왕비는 팔수부인이니 아들 구이신을 낳았다.
협주 1
或云直支。
직지(直支)라고도 한다.
2이년 — 해충에게 조를 내리다
二年,春正月,王謁東明廟。祭天地於南壇。大赦。二月,遣使入晉朝貢。秋九月,以解忠為達率,賜漢城租一千石。
이년 봄 정월에 왕이 동명 사당에 뵈고 남단에서 하늘과 땅에 제사하며 크게 사면하였다. 이월에 사신을 보내어 진나라에 들어가 조공하였다. 가을 구월에 해충을 달솔로 삼고 한성의 조 일천 섬을 내렸다.
3삼년 — 왕의 친척을 좌평으로 삼다
三年,春二月,拜庶弟餘信為內臣佐平,解須爲內法佐平,解丘為兵官佐平,皆王戚也。
삼년 봄 이월에 서제 여신을 내신좌평으로, 해수를 내법좌평으로, 해구를 병관좌평으로 삼으니 다 왕의 친척이다.
4사년 — 상좌평을 처음 두다
四年,春正月,拜餘信為上佐平,委以軍國政事。上佐平之職,始於此,若今之冢宰。
사년 봄 정월에 여신을 상좌평으로 삼아 군사와 나라의 정사를 맡겼다. 상좌평의 벼슬이 여기서 비롯되었으니 지금의 총재와 같다.
5오년 — 왜국이 야명주를 보내다
五年,倭國遣使,送夜明珠。王優禮待之。
오년에 왜국이 사신을 보내어 야명주를 보냈다. 왕이 넉넉한 예로 대접하였다.
6십일년 — 살별이 나타나다
十一年,夏五月甲申,彗星見。
십일년 여름 오월 갑신에 살별이 나타났다.
7십이년 — 동진이 책명하다
十二年,東晉安帝遣使,冊命王,為使持節都督百濟諸軍事鎭東將軍百濟王。
십이년에 동진 안제가 사신을 보내어 왕을 책명하여 사지절 도독백제제군사 진동장군 백제왕으로 삼았다.
8십삼년 — 사구성을 쌓다
十三年,春正月甲戌朔,日有食之。夏四月,旱,民饑。秋七月,徵東北二部人年十五已上,築沙口城,使兵官佐平解丘監役。
십삼년 봄 정월 초하루 갑술에 일식이 있었다. 여름 사월에 가물어 백성이 주렸다. 가을 칠월에 동부와 북부 두 부 사람으로 나이 열다섯 이상을 불러 사구성을 쌓고 병관좌평 해구에게 역사를 감독하게 하였다.
9십사년 — 왜국에 흰 솜을 보내다
十四年,夏,遣使倭國,送白綿十匹。
십사년 여름에 사신을 왜국에 보내어 흰 솜 열 필을 보냈다.
10십오년 — 살별이 태미에 나타나다
十五年,春正月戊戌,星孛于大微。冬十月丁亥朔,日有食之。
십오년 봄 정월 무술에 살별이 태미원에 나타났다. 겨울 시월 초하루 정해에 일식이 있었다.
11십육년 — 전지왕이 죽다
十六年,春三月,王薨。
십육년 봄 삼월에 왕이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