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로왕蓋鹵王
1개로왕이 즉위하다
蓋鹵王,諱慶司,毗有王之長子。毗有在位二十九年,薨,嗣。
개로왕(蓋鹵王)은 이름이 경사(慶司)요 비유왕의 맏아들이다. 비유가 자리에 있은 지 이십구년에 죽으매 자리를 이었다.
협주 1
或云近蓋婁。
근개루(近蓋婁)라고도 한다.
2십사년 — 일식이 있다
十四年,冬十月癸酉朔,日有食之。
십사년 겨울 시월 초하루 계유에 일식이 있었다.
3십오년 — 청목령에 큰 목책을 베풀다
十五年,秋八月,遣將侵高句麗南鄙。冬十月,葺雙峴城,設大柵於靑木嶺,分北漢山城士卒戍之。
십오년 가을 팔월에 장수를 보내어 고구려 남쪽 변두리를 침노하였다. 겨울 시월에 쌍현성을 손질하고 청목령에 큰 목책을 베풀어 북한산성의 군사를 나누어 지키게 하였다.
4십팔년 — 위나라에 표를 올리다 (앞)
十八年,遣使朝魏。上表曰:「臣立國東極,豺狼隔路,雖世承靈化,莫由奉藩。瞻望雲闕,馳情罔極,凉風微應。伏惟皇帝陛下,協和天休,不勝係仰之情。謹遣私署冠軍將軍駙馬都尉弗斯侯長史餘禮,龍驤將軍帶方太守司馬張茂等,投舫波阻,搜徑玄津,託命自然之運,遣進萬一之誠。冀神祇垂感,皇靈洪覆,克達天庭,宣暢臣志,雖旦聞夕沒,永無餘恨。」又云:「臣與高句麗,源出扶餘夫餘,先世之時,篤崇舊款。其祖釗,輕廢鄰好,親率士衆,凌踐臣境。臣祖須,整旅電邁,應機馳擊,矢石暫交,梟斬釗首。自爾已來,莫敢南顧。自馮氏數終,餘燼奔竄,醜類漸盛。遂見凌逼,構怨連禍,三十餘載,財殫力竭,轉自孱踧。若天慈曲矜,遠及無外,速遣一將,來救臣國,當奉送鄙女,執箒後宮,幷遣子弟,牧圉外廐,尺壞壤匹夫,不敢自有。
십팔년에 사신을 보내어 위나라에 조회하고 표를 올렸다.
"신이 나라를 동쪽 끝에 세우매 승냥이와 이리가 길을 막아, 비록 대대로 신령한 교화를 이어받았으나 울타리로 받들 길이 없었습니다. 구름 낀 대궐을 우러러 바라보매 달리는 정이 끝없는데 서늘한 바람이 조금 응합니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황제 폐하께서 하늘의 아름다움과 어울려 화합하시니, 매어 우러르는 정을 이기지 못합니다.
삼가 사사로이 이름 붙인 관군장군 부마도위 불사후 장사 여례와 용양장군 대방태수 사마 장무 등을 보내어, 물결 막힌 곳에 배를 던지고 검은 나루에 길을 찾아, 목숨을 자연의 운에 맡기고 만분의 하나의 정성을 나아가 바치게 합니다. 바라건대 하늘과 땅의 신이 감동을 드리우고 황제의 신령이 널리 덮으시어, 능히 하늘의 뜰에 이르러 신의 뜻을 펴 밝히게 된다면, 비록 아침에 듣고 저녁에 죽더라도 길이 남은 한이 없겠습니다."
또 이르렀다.
"신은 고구려와 함께 근원이 부여에서 나왔으므로 선대에는 옛 정을 도타이 높였습니다. 그 할아버지 쇠가 이웃의 좋음을 가벼이 저버리고 몸소 군사를 거느려 신의 지경을 짓밟았습니다. 신의 할아버지 수가 군사를 가다듬어 번개같이 나아가 기회에 응하여 달려 치니, 화살과 돌이 잠깐 맞부딪치자 쇠의 머리를 베어 매달았습니다. 그로부터 이래로 감히 남쪽을 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풍씨의 운수가 다한 뒤로 남은 무리가 달아나 숨어 흉악한 무리가 차츰 성해졌습니다. 마침내 짓밟히고 다그침을 당하여 원한을 맺고 화가 이어진 지 서른여 해라, 재물이 다하고 힘이 마르며 차츰 스스로 위축되었습니다. 만약 하늘의 자애가 굽혀 가엾이 여기시어 멀리 밖에까지 미치신다면, 속히 한 장수를 보내시어 신의 나라를 구해 주소서. 마땅히 저희 딸을 받들어 보내어 후궁에서 비를 잡게 하고 아울러 자제를 보내어 바깥 마구간에서 말을 치게 하겠으며, 한 자의 땅 한 사람의 백성도 감히 스스로 가지지 않겠습니다."
5십팔년 — 위나라에 표를 올리다 (뒤)
」又云:「今璉有罪,國自魚肉,大臣彊族,戮殺無已,罪盈惡積,民庶崩離,是滅亡之期,假手之秋也。且馮族士馬,有鳥畜之戀,樂浪諸郡,懷首丘之心,天威一擧,有征無戰,臣雖不敏,志效畢力,當率所統,承風響應。且高句麗不義,逆詐非一,外慕隗囂藩卑之辭,內懷凶禍豕突之行。或南通劉氏,或北約蠕蠕,共相脣齒,謀凌王略。昔唐堯至聖,致罰丹水,孟嘗稱仁,不捨塗詈。涓流之水,宜早壅塞,今若不取,將貽後悔。去庚辰年後,臣西界小石山北國海中,見屍十餘,幷得衣器鞍勒,視之,非高句麗之物。後聞,乃是王人來降臣國,長蛇隔路,以沈于海。雖未委當,深懷憤恚。昔宋戮申舟,楚莊徒跣,鷂撮放鳩,信陵不食。克敵立名,美隆無已,夫以區區偏鄙,猶慕萬代之信,況陛下合氣天地,勢傾山海,豈令小竪,跨塞天逵?今上所得鞍一以實驗。
또 이르렀다.
"이제 연(璉)이 죄가 있어 나라가 스스로 제 살을 저미고, 대신과 강한 겨레를 죽이기를 그치지 않아 죄가 가득하고 악이 쌓여 백성이 무너져 흩어지니, 이는 멸망할 때요 손을 빌릴 때입니다.
또 풍씨의 군사와 말은 새와 짐승이 옛 둥지를 그리는 마음이 있고, 낙랑의 여러 군은 여우가 죽을 때 머리를 제 굴로 돌리는 마음을 품었으니, 하늘의 위엄이 한 번 일어나면 치기만 할 뿐 싸울 일조차 없을 것입니다. 신이 비록 어리석으나 뜻은 힘을 다하기를 본받아, 마땅히 거느린 바를 이끌고 바람을 좇아 울려 응하겠습니다.
또 고구려는 의롭지 못하여 거스르고 속임이 하나가 아닙니다. 밖으로는 외효가 울타리로 낮춘 말을 흠모하면서, 안으로는 흉악한 화와 멧돼지처럼 부딪치는 행실을 품습니다. 더러는 남으로 유씨와 통하고 더러는 북으로 유연과 약속하여 함께 서로 입술과 이가 되어 임금의 다스림을 짓밟기를 꾀합니다.
옛날 당요는 지극한 성인이면서도 단수에 벌을 내렸고, 맹상은 어질다 일컬어졌으나 길에서 꾸짖는 이를 놓아두지 않았습니다. 졸졸 흐르는 물은 마땅히 일찍 막아야 하니, 이제 만약 취하지 않으시면 장차 뒷날의 뉘우침을 남기실 것입니다.
지난 경진년 뒤에 신의 서쪽 지경 소석산 북쪽 바다 가운데서 주검 열여 구를 보았고 아울러 옷과 그릇과 안장과 굴레를 얻었는데, 보니 고구려의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뒤에 들으니 곧 임금의 사람이 신의 나라로 오다가, 긴 뱀이 길을 막아 바다에 잠긴 것이었습니다. 비록 자세히 알지는 못하나 깊이 분함을 품습니다.
옛날 송나라가 신주를 죽이매 초나라 장왕이 맨발로 나섰고, 새매가 놓아준 비둘기를 채가매 신릉군이 먹지 않았습니다. 적을 이겨 이름을 세운 아름다움이 성대함이 끝이 없으니, 무릇 자잘한 치우친 변두리도 오히려 만대의 믿음을 사모하거늘, 하물며 폐하께서 기운을 하늘과 땅에 합치고 형세가 산과 바다를 기울이시는데, 어찌 작은 아이로 하여금 하늘의 큰길을 가로막게 하시겠습니까. 이제 얻은 안장 하나를 올려 실지로 살피시게 합니다."
6십팔년 — 현조가 조서를 내리다 (앞)
」顯祖以其僻遠冒險朝獻,禮遇尤厚。遣使者邵安,與其使俱還。詔曰:「得表聞之,無恙甚喜。卿在東隅,處五服之外,不遠山海,歸誠魏闕,欣嘉至意,用戢于懷。朕承萬世之業,君臨四海,統御群生。今宇內淸一,八表歸義,襁負而至者,不可稱數。風俗之和,士馬之盛,皆餘禮等,親所聞見。卿與高句麗不穆,屢致凌犯,苟能順義,守之以仁,亦何憂於寇讐也?前所遣使,浮海以撫荒外之國,從來積年,往而不返,存亡達否,未能審悉。卿所送鞍,比校較舊乘,非中國之物。不可以疑似之事,以生必然之過,經略權要,以具別旨。」又詔曰:「知:高句麗阻疆,侵軼卿土,修先君之舊怨,棄息民之大德。兵交累載,難結荒邊,使兼申胥之誠,國有楚、越之急。乃應展義扶微,乘機電擧。
현조가 그가 외지고 멀면서도 험함을 무릅쓰고 조회하여 바쳤다 하여 예로 대접하기를 더욱 두터이 하였다. 사자 소안을 보내어 그 사신과 함께 돌아가게 하고 조서를 내렸다.
"표를 얻어 들으니 별고 없다 하여 매우 기쁘다. 경이 동쪽 모퉁이에 있어 오복 밖에 처하면서도 산과 바다를 멀다 하지 않고 위나라 대궐에 정성으로 돌아오니, 지극한 뜻을 기뻐하고 아름다이 여겨 마음에 거두어 둔다.
짐이 만세의 업을 이어 사해에 임금으로 임하여 뭇 삶을 거느려 다스린다. 이제 천하 안이 맑고 하나 되어 여덟 겹 밖이 의로움에 돌아오니, 어린아이를 업고 오는 이를 이루 헤아릴 수 없다. 풍속의 화목함과 군사와 말의 성함은 다 여례 등이 몸소 듣고 본 바다.
경이 고구려와 화목하지 못하여 여러 번 짓밟히고 범함을 당한다 하나, 진실로 의로움을 좇아 어짊으로 지킬 수 있다면 또한 원수와 도둑을 무엇 걱정하겠는가.
앞서 보낸 사신은 바다에 떠 거친 밖의 나라를 어루만지게 한 것인데, 여러 해가 쌓이도록 가서 돌아오지 않아 살았는지 죽었는지 이르렀는지 아닌지 자세히 알 수 없었다. 경이 보낸 안장은 옛날 타던 것과 견주어 보니 중국의 물건이 아니다. 비슷한 일로 반드시 그러하다는 허물을 낳을 수는 없으니, 경략의 요긴한 권도는 따로 뜻을 갖추겠다."
또 조서를 내렸다.
"알겠다. 고구려가 험함을 믿고 경의 땅을 침노하여, 앞선 임금의 묵은 원한을 되풀이하고 백성을 쉬게 하는 큰 덕을 버렸다 하니, 싸움이 여러 해에 걸치고 어려움이 거친 변방에 맺혀, 사신이 신포서의 정성을 겸하고 나라에 초나라와 월나라의 급함이 있다 한다. 이에 마땅히 의로움을 펴 약한 것을 붙들고 기회를 타 번개같이 일어나야 할 것이다.
7십팔년 — 현조가 조서를 내리다 (뒤)
但以高句麗稱藩先朝,供職日久。於彼,雖有自昔之釁,於國,未有犯令之愆。卿使命始通,便求致伐,尋討事會,理亦未周。故往年遣禮等至平壤,欲驗其由狀,然高句麗奏請頻煩,辭理俱詣,行人不能抑其請,司法無以成其責,故聽其所啓,詔禮等還。若今復違旨,則過各咎益露,後雖自陳,無所逃罪,然後興師討之,於義為得。九夷之國,世居海外,道暢則奉藩,惠戢則保境。故羈縻著於前典,楛貢曠於歲時。卿備陳彊弱之形,具列往代之迹,俗殊事異,擬貺乖衷。洪規大略,其致猶在。今中夏平一,宇內無虞。每欲陵威東極,懸旌域表,拯荒黎於偏方,舒皇風於遠服。良由高句麗卽敍,未及卜征。今若不從詔旨,則卿之來謀,載協朕意,元戎啓行,將不云遠。便可豫率同興,具以待事,時遣報使,速究彼情。
다만 고구려가 앞 조정에 울타리라 일컬어 직분을 바친 지 오래다. 저에게는 비록 예로부터의 틈이 있으나 나라에는 아직 명을 어긴 허물이 없다. 경의 사명이 처음 통하자마자 곧 침을 구하니, 일의 만남을 찾아 헤아려도 이치가 또한 두루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지난해에 여례 등을 평양에 보내어 그 까닭과 사정을 살피게 하였으나, 고구려가 아뢰어 청하기를 자주 하고 말과 이치가 다 갖추어져, 사신이 그 청을 누르지 못하고 법을 맡은 이가 그 꾸짖음을 이룰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 아뢴 바를 들어 여례 등에게 조서로 돌아오게 하였다.
만약 이제 다시 뜻을 어긴다면 허물과 잘못이 더욱 드러날 것이니, 뒤에 비록 스스로 아뢴들 죄를 벗어날 곳이 없을 것이요, 그런 뒤에 군사를 일으켜 치는 것이 의로움에 마땅할 것이다.
아홉 오랑캐의 나라가 대대로 바다 밖에 살아, 도가 통하면 울타리를 받들고 은혜가 그치면 지경을 지킨다. 그러므로 굴레 씌워 매어 둠이 앞선 법에 드러나 있고, 호시의 공물이 세월에 뜸하였다.
경이 강하고 약한 형세를 갖추어 아뢰고 지난 대의 자취를 낱낱이 벌였으나, 풍속이 다르고 일이 달라 견주어 헤아림이 마음에 어긋난다. 넓은 법도와 큰 계략은 그 뜻이 오히려 있다.
이제 중원이 평정되어 하나가 되고 천하 안이 걱정이 없다. 늘 동쪽 끝에 위엄을 떨치고 지경 밖에 깃발을 걸어, 치우친 곳의 거친 백성을 건지고 황제의 풍속을 먼 곳에 펴고자 한다. 진실로 고구려가 곧 차례에 따랐으므로 아직 칠 것을 점치지 못하였을 뿐이다.
이제 만약 조서의 뜻을 좇지 않는다면, 곧 경이 와서 꾀한 바가 짐의 뜻과 맞을 것이니, 큰 군사가 길을 열 날이 멀다 하지 못할 것이다. 곧 미리 함께 일어나기를 거느리고 갖추어 일을 기다리며, 때때로 알리는 사신을 보내어 저쪽 사정을 속히 궁구하라.
8십팔년 — 소안이 이르지 못하고 돌아오다
師擧之日,卿為鄕導之首,大捷之後,又受元功之賞,不亦善乎?所獻錦布海物,雖不悉達,明卿至心。今賜雜物如別幅。」又詔璉護送安等。安等至高句麗,璉稱昔與餘慶有讎,不令東過,安等於是皆還,乃下詔切責之。後使安等,從東萊浮海,賜餘慶璽書,褒其誠節。安等至海濱,遇風飄蕩,竟不達而還。王以麗人屢犯邊鄙,上表乞師於魏,不從。王怨之,遂絶朝貢。
군사를 일으키는 날에 경이 길잡이의 으뜸이 되고 크게 이긴 뒤에 또 으뜸 공의 상을 받는다면 또한 좋지 않겠는가. 바친 비단과 베와 바다의 물건은 비록 다 이르지는 않았으나 경의 지극한 마음이 밝다. 이제 여러 물건을 딴 폭과 같이 내린다."
또 조서로 연에게 소안 등을 호송하게 하였다. 소안 등이 고구려에 이르매, 연이 예전에 여경과 원수가 있었다 하여 동쪽으로 지나가지 못하게 하니, 소안 등이 이에 다 돌아왔다. 이에 조서를 내려 절실히 꾸짖었다.
뒤에 소안 등을 시켜 동래에서 바다에 떠 여경에게 새서를 내려 그 정성과 절개를 기리게 하였다. 소안 등이 바닷가에 이르러 바람을 만나 떠돌다가 마침내 이르지 못하고 돌아왔다.
왕이 고구려 사람이 여러 번 변두리를 범한다 하여 표를 올려 위나라에 군사를 빌었으나 따르지 않았다. 왕이 이를 원망하여 마침내 조공을 끊었다.
9이십일년 — 도림이 바둑으로 다가오다
二十一年,秋九月,麗王巨璉帥兵三萬,來圍王都漢城。王閉城門不能出戰。麗人分兵為四道,夾攻,又乘風縱火,焚燒城門。人心危懼,或有欲出降者。王窘不知所圖,領數十騎,出門西走。麗人追而害之。先是,高句麗長壽王,陰謀百濟,求可以間諜於彼者。時,浮屠道琳應募曰:「愚僧旣不能知道,思有以報國恩。願大王不以臣不肖,指使之,期不辱命。」王悅,密使譎百濟。於是,道琳佯逃罪,奔入百濟。時,百濟王近蓋婁好博。道琳詣王門,告曰:「臣少而學碁,頗入妙,願有聞於左右。」王召入對碁,果國手也。遂尊之,為上客,甚親昵之,恨相見之晚。道琳一日侍坐,從容曰:「臣異國人也,上不我疎外,恩私甚渥,而惟一技之是效,未嘗有分毫之益。今願獻一言,不知上意如何耳。
이십일년 가을 구월에 고구려 왕 거련이 군사 삼만을 거느리고 왕도 한성을 에우러 왔다. 왕이 성문을 닫고 나가 싸우지 못하였다. 고구려 사람이 군사를 네 길로 나누어 끼고 치며, 또 바람을 타고 불을 놓아 성문을 태웠다. 인심이 위태롭고 두려워 더러는 나가 항복하려는 이도 있었다. 왕이 군색하여 꾀할 바를 알지 못하고 수십 기를 거느리고 문을 나가 서쪽으로 달아나니 고구려 사람이 뒤쫓아 해쳤다.
이보다 앞서 고구려 장수왕이 몰래 백제를 꾀하여 저쪽에 간첩으로 갈 만한 이를 구하였다. 그때 승려 도림이 모집에 응하여 말하였다. "어리석은 중이 이미 도를 알지 못하니 나라의 은혜를 갚을 것을 생각합니다. 바라건대 대왕께서 신을 어리석다 하지 않고 가리켜 부리신다면 명을 욕되게 하지 않기를 기약하겠습니다."
왕이 기뻐하여 몰래 백제를 속이게 하였다. 이에 도림이 거짓으로 죄를 짓고 달아나는 체하여 백제로 들어갔다.
그때 백제 왕 근개루가 바둑을 좋아하였다. 도림이 왕의 문에 나아가 아뢰었다. "신이 어려서 바둑을 배워 자못 묘한 데 들었으니, 좌우에 들려 드리기를 바랍니다."
왕이 불러들여 마주 두어 보니 과연 나라의 으뜸 솜씨였다. 마침내 높여 상객으로 삼고 몹시 친하게 지내며 서로 늦게 만난 것을 한스러워하였다.
도림이 어느 날 모시고 앉았다가 조용히 말하였다. "신은 다른 나라 사람인데 임금께서 저를 멀리하지 않으시고 은혜와 사사로움이 매우 두터운데, 오직 한 가지 재주로 본받았을 뿐 일찍이 털끝만 한 보탬도 없었습니다. 이제 한마디 바치고자 하는데 임금의 뜻이 어떠하실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10이십일년 — 나라가 곤궁해지다
」王曰:「第言之,若有利於國,此所望於師也。」道琳曰:「大王之國,四方皆山丘河海,是天設之險,非人為之形也。是以,四鄰之國,莫敢有覦心,但願奉事之不暇。則王當以崇高之勢,富有之業,竦人之視聽,而城郭不葺,宮室不修。先王之骸骨,權攢於露地,百姓之屋廬,屢壞於河流,臣竊為大王不取也。」王曰:「諾!吾將為之。」於是,盡發國人,烝土築城,卽於其內,作宮樓閣臺榭,無不壯麗。又取大石於郁里河,作槨以葬父骨,緣河樹堰,自蛇城之東,至崇山之北。是以,倉庾虛竭,人民窮困,邦之陧杌,甚於累卵。於是,道琳逃還以告之。長壽王喜,將伐之,乃授兵於帥臣。近蓋婁聞之,謂子文周曰:「予愚而不明,信用姦人之言,以至於此。民殘而兵弱,雖有危事,誰肯為我力戰?吾當死於社稷,汝在此俱死,無益也。
왕이 말하였다. "다만 말하라. 만약 나라에 이로움이 있다면 이는 스승에게 바라는 바다."
도림이 말하였다. "대왕의 나라는 사방이 다 산과 언덕과 강과 바다이니 이는 하늘이 베푼 험함이요 사람이 만든 형세가 아닙니다. 이로써 사방 이웃 나라가 감히 엿볼 마음을 두지 못하고 다만 받들어 섬기기를 겨를 없이 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러니 왕께서는 마땅히 높고 큰 형세와 넉넉히 가진 업으로 사람의 보고 듣는 것을 두렵게 하셔야 하는데, 성곽은 손질하지 않고 궁실은 고치지 않았습니다. 앞선 임금의 뼈는 임시로 드러난 땅에 모여 있고 백성의 오두막은 여러 번 강물에 무너지니, 신은 가만히 대왕을 위하여 취하지 않는 바입니다."
왕이 말하였다. "옳다. 내가 장차 그리하겠다."
이에 나라 사람을 다 불러 흙을 쪄서 성을 쌓고, 곧 그 안에 궁과 다락과 정자를 지으니 웅장하고 곱지 않은 것이 없었다. 또 큰 돌을 욱리하에서 가져다 곽을 만들어 아버지의 뼈를 장사 지내고, 강을 따라 둑을 쌓아 사성 동쪽에서 숭산 북쪽에 이르렀다.
이로써 곳간이 비고 마르며 백성이 곤궁하여, 나라의 위태로움이 알을 쌓아 놓은 것보다 심하였다.
이에 도림이 달아나 돌아가 알리니 장수왕이 기뻐하여 치려고 이에 장수에게 군사를 주었다. 근개루가 이를 듣고 아들 문주에게 말하였다. "내가 어리석고 밝지 못하여 간사한 사람의 말을 믿어 써서 이에 이르렀다. 백성이 잔약하고 군사가 약하니 비록 위태로운 일이 있은들 누가 기꺼이 나를 위하여 힘껏 싸우겠는가. 나는 마땅히 사직에서 죽겠거니와, 네가 여기 있어 함께 죽는 것은 이로움이 없다.
11이십일년 — 개로왕이 아단성 아래에서 죽다
盍避難以續國系焉?」文周乃與木劦滿致、祖彌桀取南行焉。至是,高句麗對盧齊于、再曾桀婁、古尒萬年等帥兵,來攻北城,七日而拔之,移攻南城,城中危恐,王出逃。麗將桀婁等見王下馬拜,已向王面三唾之,乃數其罪,縛送於阿旦城下戕之。桀婁、萬年,本國人也,獲罪逃竄高句麗。
어찌 난을 피하여 나라의 계통을 잇지 않겠느냐."
문주가 이에 목협만치와 조미걸취와 함께 남쪽으로 갔다.
이때에 이르러 고구려 대로 제우와 재증걸루와 고이만년 등이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북성을 쳐 이레 만에 빼앗고, 옮겨 남성을 치니 성 안이 위태롭고 두려워하여 왕이 나가 달아났다. 고구려 장수 걸루 등이 왕을 보고 말에서 내려 절하더니, 이윽고 왕의 낯을 향하여 세 번 침을 뱉고 이에 그 죄를 세어 꾸짖고, 묶어 아단성 아래로 보내어 죽였다. 걸루와 만년은 본디 나라 사람인데 죄를 짓고 고구려로 달아나 숨었던 자들이다.
협주 2
木劦、祖彌,皆複姓,《隋書》以木劦為二姓,未知孰是。
목협(木劦)과 조미(祖彌)는 다 겹성인데, 『수서』에는 목협을 두 성으로 삼았으니 어느 것이 옳은지 알 수 없다.
再曾、古尒,皆複姓。
재증(再曾)과 고이(古尒)는 다 겹성이다.
12사론 — 걸루의 의롭지 못함
論曰:楚昭王之亡也,鄖公辛之弟懷,將弑王曰:「平王殺吾父,我殺其子,不亦可乎?」辛曰:「君討臣,誰敢讐之?君命,天也,若死天命,將誰讐?」桀婁等,自以罪不見容於國,而導敵兵,縛前君而害之,其不義也,甚矣。曰:「然則伍子胥之入郢鞭尸,何也?」曰:「楊子《法言》評此以為不由德。所謂德者,仁與義而已矣,則子胥之狠,不如鄖公之仁。以此論之,桀婁等之為不義也,明矣。」
김부식이 논한다.
초나라 소왕이 달아났을 때 운공 신의 아우 회가 왕을 시해하려 하며 말하였다. "평왕이 내 아비를 죽였으니 내가 그 아들을 죽이는 것이 또한 옳지 않은가."
신이 말하였다. "임금이 신하를 다스리는 것을 누가 감히 원수로 삼겠는가. 임금의 명은 하늘이니, 만약 하늘의 명에 죽는다면 장차 누구를 원수로 삼겠는가."
걸루 등은 스스로 죄가 있어 나라에 용납되지 못하매 적의 군사를 이끌어 앞 임금을 묶어 해쳤으니 그 의롭지 못함이 심하다.
말하기를 "그러면 오자서가 영에 들어가 주검에 매질한 것은 어떠한가" 한다.
말한다. "양자가 『법언』에서 이를 평하여 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하였다. 이른바 덕이란 어짊과 의로움일 따름이니, 그러면 자서의 사나움은 운공의 어짊만 못하다. 이로써 논하면 걸루 등이 의롭지 못함이 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