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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주왕文周王

삼국사기 三國史記 · 김부식(金富軾) 등 · 1145년 (고려 인종 23) · 단락 4 · 한자 239자 · 낭독 1.0분

「삼국사기」 백제본기 「문주왕」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 역사서. 신라·고구려·백제 본기와 지·표·열전으로 이루어졌다. 김부식이 곳곳에 「論曰」로 자기 평을 달아 두어, 편찬자가 무엇을 의심하고 무엇을 나무랐는지가 그대로 남아 있다.

1문주왕이 서고 웅진으로 도읍을 옮기다

文周王,蓋鹵王之子也。初,毗有王薨,蓋鹵嗣位,文周輔之。位至上佐平蓋鹵在位二十一年,高句麗來侵,圍漢城。蓋鹵嬰城自固,使文周求救於新羅,得兵一萬廻。麗兵雖退,城破王死,遂卽位。性柔不斷,而亦愛民,百姓愛之。冬十月,移都於熊津。

문주왕(文周王)은 개로왕의 아들이다. 처음에 비유왕이 죽고 개로가 자리를 이으매 문주가 도왔으니 벼슬이 상좌평에 이르렀다.

개로가 자리에 있은 지 이십일년에 고구려가 침노하러 와서 한성을 에웠다. 개로가 성을 지키고 스스로 굳게 하며 문주를 시켜 신라에 구원을 구하게 하여 군사 일만을 얻어 돌아왔다. 고구려 군사가 비록 물러갔으나 성이 깨지고 왕이 죽었으므로 마침내 즉위하였다.

성품이 부드러워 결단하지 못하였으나 또한 백성을 사랑하므로 백성이 그를 사랑하였다. 겨울 시월에 웅진으로 도읍을 옮겼다.

협주 1

或作汶洲。

문주(汶洲)로도 쓴다.

2이년 — 해구를 병관좌평으로 삼다

二年,春二月,修葺大豆山城,移漢北民戶。三月,遣使朝宋,高句麗塞路,不達而還。夏四月,耽羅國獻方物,王喜,拜使者為恩率。秋八月,拜解仇為兵官佐平。

이년 봄 이월에 대두산성을 고쳐 손질하고 한수 북쪽 백성을 옮겼다. 삼월에 사신을 보내어 송나라에 조회하게 하였으나 고구려가 길을 막아 이르지 못하고 돌아왔다.

여름 사월에 탐라국이 그 지방 산물을 바치므로 왕이 기뻐하여 사자를 은솔로 삼았다. 가을 팔월에 해구를 병관좌평으로 삼았다.

3삼년 — 곤지를 내신좌평으로 삼다

三年,春二月,重修宮室。夏四月,拜王弟昆支為內臣佐平,封長子三斤為太子。五月,黑龍見熊津。秋七月,內臣佐平昆支卒。

삼년 봄 이월에 궁실을 고쳐 지었다. 여름 사월에 왕의 아우 곤지를 내신좌평으로 삼고 맏아들 삼근을 봉하여 태자로 삼았다. 오월에 검은 용이 웅진에 나타났다. 가을 칠월에 내신좌평 곤지가 죽었다.

4사년 — 해구가 왕을 해치다

四年,秋八月,兵官佐平解仇,擅權亂法,有無君之心,王不能制。九月,王出獵,宿於外,解仇使盜害之,遂薨。

사년 가을 팔월에 병관좌평 해구가 권세를 마음대로 하고 법을 어지럽히며 임금을 업신여기는 마음이 있었으나 왕이 누르지 못하였다. 구월에 왕이 사냥을 나가 밖에서 묵는데 해구가 도둑을 시켜 해치니 마침내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