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근왕三斤王
1삼근왕이 즉위하다
三斤王,文周王之長子。王薨,繼位,年十三歲,軍國政事,一切委於佐平解仇。
삼근왕(三斤王)은 문주왕의 맏아들이다. 왕이 죽으매 자리를 이었는데 나이 열셋이라, 군사와 나라의 정사를 모두 좌평 해구에게 맡겼다.
협주 1
或云壬乞。
임걸(壬乞)이라고도 한다.
2이년 — 해구를 베다
二年,春,佐平解仇與恩率燕信聚衆,據大豆城叛。王命佐平眞男以兵二千討之,不克。更命德率眞老,帥精兵五百,擊殺解仇。燕信奔高句麗,收其妻子,斬於熊津。
이년 봄에 좌평 해구가 은솔 연신과 함께 무리를 모아 대두성에 웅거하여 배반하였다. 왕이 좌평 진남에게 명하여 군사 이천으로 치게 하였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다시 덕솔 진로에게 명하여 정예 군사 오백을 거느리고 해구를 쳐서 죽이게 하였다. 연신이 고구려로 달아나므로 그 처자를 거두어 웅진에서 베었다.
3사론 — 도둑을 치지 않으면 신하가 아니다
論曰:《春秋》之法,君弑而賊不討,則深責之,以為無臣子也。解仇賊害文周,其子三斤繼立,非徒不能誅之,又委之以國政,至於據一城以叛,然後再興大兵以克之。所謂履霜不戒,馴致堅氷,熒熒不滅,至于炎炎,其所由來,漸矣。唐憲宗之弑,三世而後,僅能殺其賊,況海隅之荒僻,三斤之童蒙,又烏足道哉!
김부식이 논한다.
『춘추』의 법에 임금이 시해되었는데 도둑을 치지 않으면 깊이 꾸짖어 신하와 자식이 없다고 여겼다. 해구가 문주를 해쳤는데 그 아들 삼근이 자리를 이어, 다만 그를 베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또 나라 정사를 맡겨, 한 성에 웅거하여 배반하기에 이른 뒤에야 다시 큰 군사를 일으켜 이겼다.
이른바 서리를 밟고도 경계하지 않아 굳은 얼음에 이르고, 반짝이는 불을 끄지 않아 활활 타는 데 이른다는 것이니, 그 말미암은 바가 차츰차츰이다. 당나라 헌종이 시해된 것도 세 대가 지난 뒤에야 겨우 그 도둑을 죽였거늘, 하물며 바다 모퉁이의 거칠고 외진 곳에 삼근 같은 어린아이야 또 어찌 말할 것이 있겠는가.
4이년 — 일식이 있다
三月己酉朔,日有食之。
삼월 초하루 기유에 일식이 있었다.
5삼년 — 삼근왕이 죽다
三年,春夏大旱。秋九月,移大豆城於斗谷。冬十一月,王薨。
삼년 봄과 여름에 크게 가물었다. 가을 구월에 대두성을 두곡으로 옮겼다. 겨울 십일월에 왕이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