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왕東城王
1동성왕이 즉위하다
東城王,諱牟大,文周王弟昆支之子。膽力過人,善射,百發百中。三斤王薨,卽位。
동성왕(東城王)은 이름이 모대(牟大)요 문주왕의 아우 곤지의 아들이다. 담력이 남보다 뛰어나고 활을 잘 쏘아 백 번 쏘아 백 번 맞혔다. 삼근왕이 죽으매 즉위하였다.
협주 1
或作摩帝。
마제(摩帝)로도 쓴다.
2사년 — 말갈이 한산성을 깨뜨리다
四年,春正月,拜眞老為兵官佐平,兼知內外兵馬事。秋九月,靺鞨襲破漢山城,虜三百餘戶以歸。冬十月,大雪丈餘。
사년 봄 정월에 진로를 병관좌평으로 삼고 안팎의 병마 일을 아울러 맡게 하였다. 가을 구월에 말갈이 한산성을 습격하여 깨뜨리고 삼백여 집을 사로잡아 돌아갔다. 겨울 시월에 큰 눈이 한 길 넘게 내렸다.
3오년 — 신령한 사슴을 얻다
五年,春,王以獵出至漢山城,撫問軍民,浹旬乃還。夏四月,獵於熊津北,獲神鹿。
오년 봄에 왕이 사냥을 나가 한산성에 이르러 군사와 백성을 어루만져 위문하고 열흘 만에야 돌아왔다. 여름 사월에 웅진 북쪽에서 사냥하여 신령한 사슴을 얻었다.
4육년 — 남제에 조공하려다 막히다
六年,春二月,王聞南齊祖道成,冊高句麗巨璉,為驃騎大將軍,遣使上表,請內屬,許之。秋七月,遣內法佐平沙若思,如南齊朝貢,若思至西海中,遇高句麗兵,不進。
육년 봄 이월에 왕이 남제 태조 소도성이 고구려 거련을 표기대장군으로 책봉하였다는 말을 듣고, 사신을 보내어 표를 올려 안으로 딸리기를 청하니 허락하였다. 가을 칠월에 내법좌평 사약사를 남제에 보내어 조공하게 하였는데, 약사가 서해 가운데 이르러 고구려 군사를 만나 나아가지 못하였다.
5칠년 — 신라에 예방하다
七年,夏五月,遣使聘新羅。
칠년 여름 오월에 사신을 보내어 신라에 예방하였다.
6팔년 — 우두성을 쌓다
八年,春二月,拜芍加為衛士佐平。三月,遣使南齊朝貢。秋七月,重修宮室,築牛頭城。冬十月,大閱於宮南。
팔년 봄 이월에 작가를 위사좌평으로 삼았다. 삼월에 사신을 남제에 보내어 조공하였다. 가을 칠월에 궁실을 고쳐 짓고 우두성을 쌓았다. 겨울 시월에 궁 남쪽에서 크게 사열하였다.
7십년 — 위나라 군사를 깨뜨리다
十年,魏遣兵來伐,為我所敗。
십년에 위나라가 군사를 보내어 치러 왔으나 백제에게 졌다.
8십일년 — 하늘과 땅에 제사하다
十一年,秋,大有年。國南海村人獻合穎禾。冬十月,王設壇祭天地。十一月,宴群臣於南堂。
십일년 가을에 크게 풍년이 들었다. 나라 남쪽 바닷가 마을 사람이 이삭이 하나로 합친 벼를 바쳤다. 겨울 시월에 왕이 제단을 베풀고 하늘과 땅에 제사하였다. 십일월에 남당에서 여러 신하에게 잔치를 베풀었다.
9십이년 — 사현성과 이산성을 쌓다
十二年,秋七月,徵北部人年十五歲已上,築沙峴、耳山二城。九月,王田於國西泗沘原。拜燕突為達率。冬十一月,無氷。
십이년 가을 칠월에 북부 사람으로 나이 열다섯 이상을 불러 사현성과 이산성 두 성을 쌓았다. 구월에 왕이 나라 서쪽 사비 벌판에서 사냥하였다. 연돌을 달솔로 삼았다. 겨울 십일월에 얼음이 얼지 않았다.
10십삼년 — 웅천 물이 넘치다
十三年,夏六月,熊川水漲,漂沒王都二百餘家。秋七月,民饑,亡入新羅者,六百餘家。
십삼년 여름 유월에 웅천 물이 불어 왕도의 이백여 집이 떠내려가고 잠겼다. 가을 칠월에 백성이 주려 신라로 달아난 이가 육백여 집이었다.
11십사년 — 손수 사슴을 쏘다
十四年,春三月,雪。夏四月,大風拔木。冬十月,王獵牛鳴谷,親射鹿。
십사년 봄 삼월에 눈이 내렸다. 여름 사월에 큰 바람이 불어 나무를 뽑았다. 겨울 시월에 왕이 우명곡에서 사냥하며 몸소 사슴을 쏘았다.
12십오년 — 신라와 혼인하다
十五年,春三月,王遣使新羅請婚,羅王以伊飡比智女,歸之。
십오년 봄 삼월에 왕이 사신을 신라에 보내어 혼인을 청하니, 신라 왕이 이찬 비지의 딸을 시집보냈다.
13십육년 — 신라를 구원하다
十六年,秋七月,高句麗與新羅戰薩水之原,新羅不克,退保犬牙城。高句麗圍之,王遣兵三千救,解圍。
십육년 가을 칠월에 고구려와 신라가 살수 벌판에서 싸웠는데 신라가 이기지 못하고 물러나 견아성을 지켰다. 고구려가 에워싸므로 왕이 군사 삼천을 보내어 구원하여 에움을 풀었다.
14십칠년 — 치양성이 에워싸이다
十七年,夏五月甲戌朔,日有食之。秋八月,高句麗來圍雉壤城。王遣使新羅,請救,羅王命將軍德智,帥兵救之,麗兵退歸。
십칠년 여름 오월 초하루 갑술에 일식이 있었다. 가을 팔월에 고구려가 치양성을 에우러 왔다. 왕이 사신을 신라에 보내어 구원을 청하니, 신라 왕이 장군 덕지에게 명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구하게 하매 고구려 군사가 물러갔다.
15십구년 — 연돌을 병관좌평으로 삼다
十九年,夏五月,兵官佐平眞老卒,拜達率燕突為兵官佐平。夏六月,大雨,漂毁民屋。
십구년 여름 오월에 병관좌평 진로가 죽으므로 달솔 연돌을 병관좌평으로 삼았다. 여름 유월에 큰비가 내려 백성의 집이 떠내려가고 헐렸다.
16이십년 — 탐라를 치려다 그치다
二十年,設熊津橋。秋七月,築沙井城,以扞率毗陁鎭之。八月,王以耽羅不修貢賦,親征,至武珍州。耽羅聞之,遣使乞罪,乃止。
이십년에 웅진교를 놓았다. 가을 칠월에 사정성을 쌓고 한솔 비타로 지키게 하였다.
팔월에 왕이 탐라가 공물과 부세를 닦지 않는다 하여 몸소 치러 무진주에 이르렀다. 탐라가 이를 듣고 사신을 보내어 죄를 빌므로 이내 그쳤다.
협주 1
耽羅,卽耽牟羅。
탐라는 곧 탐모라다.
17이십일년 — 창고를 열자는 청을 듣지 않다
二十一年,夏大旱,民饑相食,盜賊多起。臣寮請發倉賑救,王不聽。漢山人亡入高句麗者二千。冬十月,大疫。
이십일년 여름에 크게 가물어 백성이 주려 서로 잡아먹고 도둑이 많이 일어났다. 신하들이 창고를 열어 진휼하여 구하기를 청하였으나 왕이 듣지 않았다. 한산 사람으로 고구려에 달아나 들어간 이가 이천이었다. 겨울 시월에 큰 돌림병이 돌았다.
18이십이년 — 임류각을 세우고 궁문을 닫다
二十二年,春,起臨流閣於宮東,高五丈,又穿池養奇禽。諫臣抗疏不報,恐有復諫者,閉宮門。
이십이년 봄에 궁 동쪽에 임류각을 세우니 높이가 다섯 길이요, 또 못을 파고 기이한 새를 길렀다. 간하는 신하가 상소를 올렸으나 회답하지 않고, 다시 간하는 이가 있을까 두려워 궁문을 닫았다.
19사론 — 사납다 할 만하다
論曰:「良藥苦口,利於病;忠言逆耳,利於行。是以,古之明君,虛己問政,和顔受諫,猶恐人之不言,懸敢諫之鼓,立誹謗之木而不已。今牟大王諫書上而不省,復閉門以拒之。《莊子》曰:『見過不更,聞諫愈甚,謂之狠。』其牟大王之謂乎。」
김부식이 논한다.
좋은 약은 입에 쓰나 병에 이롭고, 충성스러운 말은 귀에 거슬리나 행함에 이롭다. 이런 까닭에 옛날 밝은 임금은 자기를 비우고 정사를 물으며 낯을 부드러이 하여 간함을 받았고, 오히려 사람이 말하지 않을까 두려워하여 감히 간하라는 북을 달고 헐뜯는 말을 적는 나무를 세우기를 그치지 않았다.
이제 모대왕은 간하는 글이 올라와도 살피지 않고 다시 문을 닫아 막았다. 『장자』에 이르기를 "허물을 보고도 고치지 않고 간함을 듣고 더욱 심해지는 것을 사납다 한다" 하였으니, 모대왕을 이름이 아니겠는가.
20이십이년 — 임류각에서 잔치하다
夏四月,田於牛頭城,遇雨雹,乃止。五月,旱。王與左右宴臨流閣,終夜極歡。
여름 사월에 우두성에서 사냥하다가 비와 우박을 만나 이내 그쳤다. 오월에 가물었다. 왕이 좌우와 함께 임류각에서 잔치하여 밤새도록 지극히 즐겼다.
21이십삼년 — 동성왕이 시해되다
二十三年,春正月,王都老嫗,化狐而去。二虎鬪於南山,捕之不得。三月,降霜害麥。夏五月,不雨至秋。七月,設柵於炭峴,以備新羅。八月,築加林城,以衛士佐平芍加鎭之。冬十月,王獵於泗沘東原。十一月,獵於熊川北原,又田於泗沘西原,阻大雪,宿於馬浦村。初,王以芍加鎭加林城,加不欲往,辭以疾。王不許。是以,怨王。至是,使人刺王,至十二月乃薨。諡曰東城王。
이십삼년 봄 정월에 왕도의 늙은 할미가 여우로 변하여 갔다. 범 두 마리가 남산에서 싸우므로 잡으려 하였으나 얻지 못하였다. 삼월에 서리가 내려 보리를 해쳤다. 여름 오월부터 가을까지 비가 오지 않았다.
칠월에 탄현에 목책을 베풀어 신라에 대비하였다. 팔월에 가림성을 쌓고 위사좌평 작가로 지키게 하였다.
겨울 시월에 왕이 사비 동쪽 벌판에서 사냥하였다. 십일월에 웅천 북쪽 벌판에서 사냥하고 또 사비 서쪽 벌판에서 사냥하다가 큰 눈에 막혀 마포촌에서 묵었다.
처음에 왕이 작가로 가림성을 지키게 하니 작가가 가고 싶지 않아 병으로 사양하였으나 왕이 허락하지 않았다. 이로써 왕을 원망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사람을 시켜 왕을 찌르게 하니 십이월에 이르러 죽었다. 시호를 동성왕(東城王)이라 하였다.
협주 1
《冊府元龜》云:南濟建元二年,百濟王牟都,遣使貢獻。詔曰:「寶命惟新,澤被絶域,牟都世蕃東表,守職遐外,可卽授使持節都督百濟諸軍事鎭東大將軍。」又永明八年,百濟王牟大遣使上表。遣謁者僕射孫副,策命大襲亡祖父牟都,為百濟王,曰:「於戱,惟爾世襲忠勤,誠著遐表,海路肅澄,要貢無替,式循彛典,用纂顯命,往敬哉。其敬膺休業,可不愼歟。行都督百濟諸軍事鎭東大將軍百濟王。」而《三韓古記》無牟都為王之事。又按牟大,盖鹵王之孫,盖鹵第二子昆支之子,不言其祖牟都,則《齊書》所載,不可不疑。
『책부원귀』에 이르기를, 남제 건원 이년에 백제 왕 모도가 사신을 보내어 조공하니 조서를 내려 "보배로운 명이 오직 새로워 은택이 먼 지역에 입혀졌다. 모도는 대대로 동쪽 밖의 울타리로 먼 밖에서 직분을 지켰으니, 곧 사지절 도독백제제군사 진동대장군을 줄 만하다" 하였다 한다. 또 영명 팔년에 백제 왕 모대가 사신을 보내어 표를 올리니, 알자복야 손부를 보내어 모대에게 돌아간 할아버지 모도를 이어 백제 왕으로 삼는다고 책명하며 말하였다. "아아, 오직 너는 대대로 충성과 부지런함을 이어 정성이 먼 밖에 드러났고, 바닷길이 맑고 고요하여 요긴한 공물이 바뀜이 없었다. 떳떳한 법을 좇아 밝은 명을 이으니 가서 공경하라. 그 아름다운 업을 공경히 받들 것이니 삼가지 않겠는가. 행도독백제제군사 진동대장군 백제왕으로 삼는다." 그런데 『삼한고기』에는 모도가 왕이 되었다는 일이 없다. 또 살피건대 모대는 개로왕의 손자요 개로의 둘째 아들 곤지의 아들인데 그 할아버지를 모도라 말하지 않았으니, 『제서』에 실린 바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