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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武寧王

삼국사기 三國史記 · 김부식(金富軾) 등 · 1145년 (고려 인종 23) · 단락 12 · 한자 583자 · 낭독 2.3분

「삼국사기」 백제본기 「무령왕」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 역사서. 신라·고구려·백제 본기와 지·표·열전으로 이루어졌다. 김부식이 곳곳에 「論曰」로 자기 평을 달아 두어, 편찬자가 무엇을 의심하고 무엇을 나무랐는지가 그대로 남아 있다.

1무령왕이 즉위하다

武寧王,諱斯摩斯麻,牟大王之第二子也。身長八尺,眉目如畵,仁慈寬厚,民心歸附,牟大在位二十三年薨,卽位。春正月,佐平芍加據加林城叛,王帥兵馬,至牛頭城,命扞率解明討之。芍加出降,王斬之,投於白江。

무령왕(武寧王)은 이름이 사마(斯摩)요 모대왕의 둘째 아들이다. 키가 여덟 자요 눈썹과 눈이 그림 같았으며 어질고 자애롭고 너그럽고 두터워 민심이 돌아와 붙었다. 모대가 자리에 있은 지 이십삼년에 죽으매 즉위하였다.

봄 정월에 좌평 작가가 가림성에 웅거하여 배반하므로, 왕이 군마를 거느리고 우두성에 이르러 한솔 해명에게 명하여 치게 하였다. 작가가 나와 항복하니 왕이 베어 백강에 던졌다.

협주 1

或云隆餘隆。

융(隆) 또는 여륭(餘隆)이라고도 한다.

2사론 — 늦었다

論曰:《春秋》曰:「人臣無將,將而必誅。」若芍加之元惡大憝,則天地所不容,不卽罪之,至是自知難免,謀叛而後誅之,晚也。冬十一月,遣達率優永,帥兵五千,襲高句麗水谷城。

김부식이 논한다.

『춘추』에 이르기를 "신하 된 이는 장차 하려는 마음도 없어야 하니, 그런 마음이 있으면 반드시 벤다" 하였다. 작가와 같은 큰 악과 큰 원흉은 하늘과 땅이 용납하지 않는 바인데, 곧 죄주지 않다가 이때에 이르러 스스로 벗어나기 어려운 줄 알고 배반을 꾀한 뒤에야 베었으니 늦었다.

겨울 십일월에 달솔 우영을 보내어 군사 오천을 거느리고 고구려 수곡성을 습격하였다.

3이년 — 고구려 변경을 침노하다

二年,春,民饑且疫。冬十一月,遣兵侵高句麗邊境。

이년 봄에 백성이 주리고 또 돌림병이 돌았다. 겨울 십일월에 군사를 보내어 고구려 변경을 침노하였다.

4삼년 — 말갈을 물리치다

三年,秋九月,靺鞨燒馬首柵,進攻高木城。王遣兵五千,擊退之。冬無氷。

삼년 가을 구월에 말갈이 마수 목책을 태우고 나아가 고목성을 쳤다. 왕이 군사 오천을 보내어 쳐서 물리쳤다. 겨울에 얼음이 얼지 않았다.

5육년 — 고목성이 깨어지다

六年,春大疫。三月至五月,不雨,川澤竭。民饑,發倉賑救。秋七月,靺鞨來侵,破高木城,殺虜六百餘人。

육년 봄에 큰 돌림병이 돌았다. 삼월부터 오월까지 비가 오지 않아 내와 못이 말랐다. 백성이 주리므로 창고를 열어 진휼하여 구하였다. 가을 칠월에 말갈이 침노하러 와서 고목성을 깨뜨리고 육백여 사람을 죽이고 사로잡았다.

6칠년 — 장령성을 쌓다

七年,夏五月,立二柵於高木城南,又築長嶺城,以備靺鞨。冬十月,高句麗將高老與靺鞨謀,欲攻漢城,進屯於橫岳下,王出師,戰退之。

칠년 여름 오월에 고목성 남쪽에 목책 둘을 세우고 또 장령성을 쌓아 말갈에 대비하였다. 겨울 시월에 고구려 장수 고로가 말갈과 꾀하여 한성을 치려고 횡악 아래에 나아가 진 치므로, 왕이 군사를 내어 싸워 물리쳤다.

7십년 — 놀고먹는 이를 농사로 돌리다

十年,春正月,下令:完固隄防,驅內外游食者,歸農。

십년 봄 정월에 영을 내려 제방을 온전하고 굳게 하며, 안팎의 놀고먹는 이를 몰아 농사로 돌아가게 하였다.

8십이년 — 위천 북쪽에서 크게 깨뜨리다

十二年,夏四月,遣使入梁朝貢。秋九月,高句麗襲取加弗城,移兵破圓山城,殺掠甚衆。王帥勇騎三千,戰於葦川之北。麗人見王軍少,易之,不設陣。王出奇急擊,大破之。

십이년 여름 사월에 사신을 보내어 양나라에 들어가 조공하였다.

가을 구월에 고구려가 가불성을 습격하여 빼앗고 군사를 옮겨 원산성을 깨뜨리며 죽이고 노략한 것이 매우 많았다. 왕이 용감한 기병 삼천을 거느리고 위천 북쪽에서 싸웠다. 고구려 사람이 왕의 군사가 적은 것을 보고 얕보아 진을 치지 않으니, 왕이 기이한 꾀를 내어 급히 쳐서 크게 깨뜨렸다.

9십육년 — 일식이 있다

十六年,春三月戊辰朔,日有食之。

십육년 봄 삼월 초하루 무진에 일식이 있었다.

10이십일년 — 양나라가 영동대장군으로 삼다

二十一年,夏五月,大水。秋八月,蝗害穀。民饑,亡入新羅者,九百戶。冬十一月,遣使入梁朝貢。先是,為高句麗所破,衰弱累年。至是上表,稱:「累破高句麗,始與通好,而更為强國。」十二月,高祖詔冊王,曰:「行都督百濟諸軍事鎭東大將軍百濟王餘隆,守藩海外,遠修貢職,迺誠款到,朕有嘉焉。宜率舊章,授玆榮命,可使持節都督百濟諸軍事寧東大將軍。」

이십일년 여름 오월에 큰물이 났다. 가을 팔월에 메뚜기가 곡식을 해쳤다. 백성이 주려 신라로 달아난 이가 구백 집이었다.

겨울 십일월에 사신을 보내어 양나라에 들어가 조공하였다. 이보다 앞서 고구려에게 깨어져 여러 해를 쇠약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표를 올려 "여러 번 고구려를 깨뜨려 비로소 더불어 통하여 좋게 지내니 다시 강한 나라가 되었다"고 일컬었다.

십이월에 고조가 조서로 왕을 책봉하여 말하였다. "행도독백제제군사 진동대장군 백제왕 여륭은 바다 밖에서 울타리를 지키며 멀리 공물과 직분을 닦아 이에 정성이 이르렀으니 짐이 아름다이 여긴다. 마땅히 옛 법을 좇아 이 영광스러운 명을 주니, 사지절 도독백제제군사 영동대장군으로 삼을 만하다."

11이십이년 — 땅이 흔들리다

二十二年,秋九月,王獵于狐山之原。冬十月,地震。

이십이년 가을 구월에 왕이 호산 벌판에서 사냥하였다. 겨울 시월에 땅이 흔들렸다.

12이십삼년 — 무령왕이 죽다

二十三年,春二月,王幸漢城,命佐平因友因支、達率沙烏等,徵漢北州郡民年十五歲已上,築雙峴城。三月,至自漢城。夏五月,王薨。諡曰武寧。

이십삼년 봄 이월에 왕이 한성에 거둥하여 좌평 인우와 달솔 사오 등에게 명하여, 한수 북쪽 주군의 백성으로 나이 열다섯 이상을 불러 쌍현성을 쌓게 하였다. 삼월에 한성에서 돌아왔다. 여름 오월에 왕이 죽었다. 시호를 무령(武寧)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