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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덕왕威德王

삼국사기 三國史記 · 김부식(金富軾) 등 · 1145년 (고려 인종 23) · 단락 19 · 한자 559자 · 낭독 2.2분

「삼국사기」 백제본기 「위덕왕」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 역사서. 신라·고구려·백제 본기와 지·표·열전으로 이루어졌다. 김부식이 곳곳에 「論曰」로 자기 평을 달아 두어, 편찬자가 무엇을 의심하고 무엇을 나무랐는지가 그대로 남아 있다.

1위덕왕이 즉위하다

威德王,諱昌,聖王之元子也。聖王在位三十二年薨,繼位。

위덕왕(威德王)은 이름이 창(昌)이요 성왕의 맏아들이다. 성왕이 자리에 있은 지 삼십이년에 죽으매 자리를 이었다.

2원년 — 고구려가 웅천성을 치다

元年,冬十月,高句麗大擧兵來攻熊川城,敗衄而歸。

원년 겨울 시월에 고구려가 크게 군사를 일으켜 웅천성을 치러 왔다가 져서 돌아갔다.

3육년 — 일식이 있다

六年,夏五月丙辰朔,日有食之。

육년 여름 오월 초하루 병진에 일식이 있었다.

4팔년 — 신라 변경을 침노하다

八年,秋七月,遣兵侵掠新羅邊境,羅兵出擊敗之,死者一千餘人。

팔년 가을 칠월에 군사를 보내어 신라 변경을 침노하여 노략하니, 신라 군사가 나와 쳐서 깨뜨려 죽은 이가 일천여 사람이었다.

5십사년 — 진나라에 조공하다

十四年,秋九月,遣使入陳朝貢。

십사년 가을 구월에 사신을 보내어 진나라에 들어가 조공하였다.

6십칠년 — 북제가 대방군공으로 삼다

十七年,高齊後主拜王為使持節侍中車騎大將軍帶方郡公百濟王。

십칠년에 고제 후주가 왕을 사지절 시중 거기대장군 대방군공 백제왕으로 삼았다.

7십팔년 — 동청주자사를 주다

十八年,高齊後主,又以王為使持節都督東靑州諸軍事東靑州刺史。

십팔년에 고제 후주가 또 왕을 사지절 도독동청주제군사 동청주자사로 삼았다.

8십구년 — 제나라에 조공하다

十九年,遣使入齊朝貢。秋九月庚子朔,日有食之。

십구년에 사신을 보내어 제나라에 들어가 조공하였다. 가을 구월 초하루 경자에 일식이 있었다.

9이십사년 — 신라 서쪽 변두리를 침노하다

二十四年,秋七月,遣使入陳朝貢。冬十月,侵新羅西邊州郡,新羅伊飡世宗帥兵,擊破之。十一月,遣使入宇文周朝貢。

이십사년 가을 칠월에 사신을 보내어 진나라에 들어가 조공하였다. 겨울 시월에 신라 서쪽 변두리 주군을 침노하니, 신라 이찬 세종이 군사를 거느리고 쳐서 깨뜨렸다. 십일월에 사신을 보내어 우문씨 주나라에 들어가 조공하였다.

10이십오년 — 주나라에 조공하다

二十五年,遣使入宇文周朝貢。

이십오년에 사신을 보내어 우문씨 주나라에 들어가 조공하였다.

11이십육년 — 긴 별이 하늘에 뻗치다

二十六年,冬十月,長星竟天,二十日而滅。地震。

이십육년 겨울 시월에 긴 별이 하늘에 뻗쳐 스무 날 만에 없어졌다. 땅이 흔들렸다.

12이십팔년 — 수나라가 상개부의동삼사로 삼다

二十八年,王遣使入隋朝貢,隋高祖詔拜王為上開府儀同三司帶方郡公。

이십팔년에 왕이 사신을 보내어 수나라에 들어가 조공하니, 수나라 고조가 조서로 왕을 상개부의동삼사 대방군공으로 삼았다.

13이십구년 — 수나라에 조공하다

二十九年,春正月,遣使入隋朝貢。

이십구년 봄 정월에 사신을 보내어 수나라에 들어가 조공하였다.

14삼십일년 — 진나라에 조공하다

三十一年,冬十一月,遣使入陳朝貢。

삼십일년 겨울 십일월에 사신을 보내어 진나라에 들어가 조공하였다.

15삼십삼년 — 진나라에 조공하다

三十三年,遣使入陳朝貢。

삼십삼년에 사신을 보내어 진나라에 들어가 조공하였다.

16삼십육년 — 진나라 평정을 하례하다

三十六年,隋平陳。有一戰船,漂至耽牟羅國,其船得還,經于國界,王資送之甚厚,幷遣使奉表,賀平陳。高祖善之,下詔曰:「百濟王旣聞平陳,遠令奉表。往復至難,若逢風浪,便致傷損。百濟王心迹淳至,朕已委知。相去雖遠,事同言面,何必數遣使,來相體悉。自今已後,不須年別入貢,朕亦不遣使往,王宜知之。」

삼십육년에 수나라가 진나라를 평정하였다. 전함 하나가 떠내려가 탐모라국에 이르렀는데, 그 배가 돌아갈 때 나라 지경을 지나므로 왕이 밑천을 주어 보내기를 매우 두터이 하고, 아울러 사신을 보내어 표를 받들어 진나라 평정을 하례하였다.

고조가 이를 좋게 여겨 조서를 내렸다. "백제 왕이 진나라 평정을 듣고 멀리서 표를 받들게 하였다. 오가기가 지극히 어려워 만약 바람과 물결을 만나면 곧 상하고 다치게 된다. 백제 왕의 마음과 자취가 순수하고 지극함을 짐이 이미 맡아 알고 있다. 서로 떨어짐이 비록 머나 일은 낯을 맞대고 말하는 것과 같으니, 어찌 반드시 자주 사신을 보내어 와서 서로 다 알게 할 것인가. 이제부터 뒤로는 해마다 따로 들어와 바칠 것이 없고 짐도 또한 사신을 보내지 않을 것이니 왕은 마땅히 알라."

17삼십구년 — 일식이 있다

三十九年,秋七月壬申晦,日有食之。

삼십구년 가을 칠월 그믐 임신에 일식이 있었다.

18사십일년 — 살별이 각성과 항성에 나타나다

四十一年,冬十一月癸未,星孛于角、亢。

사십일년 겨울 십일월 계미에 살별이 각성과 항성에 나타났다.

19사십오년 — 요동의 싸움에 길잡이가 되기를 청하다

四十五年,秋九月,王使長史王辯那,入隋朝獻。王聞隋興遼東之役,遣使奉表,請為軍鄕道。帝下詔曰:「往歲,高句麗不供職貢,無人臣禮,故命將討之。高元君臣,恐懼畏服歸罪,朕已赦之,不可致伐。」厚我使者而還之。高句麗頗知其事,以兵侵掠國境。冬十二月,王薨。群臣議諡曰威德。

사십오년 가을 구월에 왕이 장사 왕변나를 보내어 수나라에 들어가 조회하고 바쳤다.

왕이 수나라가 요동의 싸움을 일으킨다는 말을 듣고 사신을 보내어 표를 받들어 군사의 길잡이가 되기를 청하였다. 황제가 조서를 내렸다. "지난해에 고구려가 직분의 공물을 바치지 않고 신하 된 예가 없으므로 장수에게 명하여 쳤다. 고원의 임금과 신하가 두려워하고 무서워하여 복종하고 죄를 돌리므로 짐이 이미 용서하였으니 칠 수 없다." 백제 사신을 두터이 대접하여 돌려보냈다.

고구려가 자못 그 일을 알고 군사로 나라 지경을 침노하여 노략하였다.

겨울 십이월에 왕이 죽었다. 여러 신하가 의논하여 시호를 위덕(威德)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