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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왕武王

삼국사기 三國史記 · 김부식(金富軾) 등 · 1145년 (고려 인종 23) · 단락 29 · 한자 1,480자 · 낭독 5.9분

「삼국사기」 백제본기 「무왕」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 역사서. 신라·고구려·백제 본기와 지·표·열전으로 이루어졌다. 김부식이 곳곳에 「論曰」로 자기 평을 달아 두어, 편찬자가 무엇을 의심하고 무엇을 나무랐는지가 그대로 남아 있다.

1무왕이 즉위하다

武王,諱璋,法王之子。風儀英偉,志氣豪傑。法王卽位,翌年薨,子嗣位。

무왕(武王)은 이름이 장(璋)이요 법왕의 아들이다. 풍채와 거동이 빼어나고 씩씩하며 뜻과 기운이 호걸스러웠다. 법왕이 즉위한 이듬해에 죽으매 아들이 자리를 이었다.

2삼년 — 귀산과 추항이 죽다

三年,秋八月,王出兵,圍新羅阿莫山城。羅王眞平遣精騎數千,拒戰之,我兵失利而還。新羅築小陁、畏石、泉山、甕岑四城,侵逼我疆境。王怒,令佐平解讎,帥步騎四萬,進攻其四城。新羅將軍乾品、武殷,帥衆拒戰。解讎不利,引軍退於泉山西大澤中,伏兵以待之。武殷乘勝,領甲卒一千,追至大澤,伏兵發急擊之。武殷墜馬,士卒驚駭,不知所為。武殷子貴山大言曰:「吾嘗受敎於師,曰:『士當軍,無退。』豈敢奔退,以墜師敎乎?」以馬授父,卽與小將箒項,揮戈力鬪以死。餘兵見此益奮,我軍敗績,解讎僅免,單馬以歸。

삼년 가을 팔월에 왕이 군사를 내어 신라 아막산성을 에웠다. 신라 왕 진평이 정예 기병 수천을 보내어 막아 싸우니 백제 군사가 이롭지 못하여 돌아왔다.

신라가 소타·외석·천산·옹잠 네 성을 쌓아 백제 강토를 침노하여 다그치므로, 왕이 노하여 좌평 해수에게 명하여 보병과 기병 사만을 거느리고 나아가 그 네 성을 치게 하였다. 신라 장군 건품과 무은이 무리를 거느리고 막아 싸웠다. 해수가 이롭지 못하여 군사를 이끌고 천산 서쪽 큰 못 가운데로 물러나 군사를 숨겨 기다렸다.

무은이 이긴 기세를 타고 갑사 일천을 거느리고 큰 못까지 뒤쫓아 오매 숨은 군사가 일어나 급히 쳤다. 무은이 말에서 떨어지고 군사가 놀라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였다.

무은의 아들 귀산이 큰 소리로 말하였다. "내가 일찍이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기를 '군사에 나아가서는 물러남이 없어야 한다' 하였다. 어찌 감히 달아나 물러나 스승의 가르침을 떨어뜨리겠는가." 말을 아버지에게 주고 곧 소장 추항과 함께 창을 휘두르며 힘껏 싸우다 죽었다.

남은 군사가 이를 보고 더욱 떨쳐 일어나니 백제 군사가 졌고, 해수는 겨우 벗어나 홀로 말을 타고 돌아왔다.

협주 1

一名母山城

신라 아막산성은 일명 모산성이다.

3육년 — 각산성을 쌓다

六年,春二月,築角山城。秋八月,新羅侵東鄙。

육년 봄 이월에 각산성을 쌓았다. 가을 팔월에 신라가 동쪽 변두리를 침노하였다.

4칠년 — 흙비가 내려 낮이 어둡다

七年,春三月,王都雨土,晝暗。夏四月,大旱,年饑。

칠년 봄 삼월에 왕도에 흙비가 내려 낮이 어두웠다. 여름 사월에 크게 가물어 해가 흉년이 들었다.

5팔년 — 고구려 치기를 청하다

八年,春三月,遣扞率燕文進,入隋朝貢。又遣佐平王孝隣入貢,兼請討高句麗。煬帝許之,令覘高句麗動靜。夏五月,高句麗來攻松山城,不下,移襲石頭城,虜男女三千而歸。

팔년 봄 삼월에 한솔 연문진을 보내어 수나라에 들어가 조공하게 하였다. 또 좌평 왕효린을 보내어 들어가 바치고 아울러 고구려 치기를 청하니, 양제가 허락하고 고구려의 움직임을 엿보게 하였다.

여름 오월에 고구려가 송산성을 치러 왔으나 떨어뜨리지 못하고, 옮겨 석두성을 습격하여 남녀 삼천을 사로잡아 돌아갔다.

6구년 — 배청이 남쪽 길을 지나다

九年,春三月,遣使入隋朝貢。隋文林郞裴淸奉使倭國,經我國南路。

구년 봄 삼월에 사신을 보내어 수나라에 들어가 조공하였다. 수나라 문림랑 배청이 왜국에 사신으로 가며 백제의 남쪽 길을 지났다.

7십이년 — 가잠성을 없애다

十二年,春二月,遣使入隋朝貢。隋煬帝將征高句麗,王使國智牟入請軍期。帝悅,厚加賞錫,遣尚書起部郞席律來,與王相謀。秋八月,築赤嵒城。冬十月,圍新羅椵岑城,殺城主讚德,滅其城。

십이년 봄 이월에 사신을 보내어 수나라에 들어가 조공하였다. 수나라 양제가 장차 고구려를 치려 하므로, 왕이 국지모를 시켜 들어가 군사 낼 때를 묻게 하였다. 황제가 기뻐하여 상 주기를 두터이 하고 상서기부랑 석률을 보내어 왕과 서로 꾀하게 하였다.

가을 팔월에 적암성을 쌓았다. 겨울 시월에 신라 가잠성을 에워싸 성주 찬덕을 죽이고 그 성을 없앴다.

8십삼년 — 두 끝을 잡다

十三年,隋六軍度遼,王嚴兵於境,聲言助隋,實持兩端。夏四月,震宮南門。五月,大水,漂沒人家。

십삼년에 수나라의 여섯 갈래 대군이 요수를 건너매, 왕이 지경에 군사를 엄히 하고 수나라를 돕는다고 소리쳤으나 실은 두 끝을 잡았다. 여름 사월에 궁 남문에 벼락이 쳤다. 오월에 큰물이 나 사람의 집이 떠내려가고 잠겼다.

9십칠년 — 모산성을 치다

十七年,冬十月,命達率芍奇領兵八千,攻新羅母山城。十一月,王都地震。

십칠년 겨울 시월에 달솔 작기에게 명하여 군사 팔천을 거느리고 신라 모산성을 치게 하였다. 십일월에 왕도에 땅이 흔들렸다.

10십구년 — 가잠성을 잃다

十九年,新羅將軍邊品等,來攻椵岑城,復之,奚論戰死。

십구년에 신라 장군 변품 등이 가잠성을 치러 와서 되찾으니 해론이 싸우다 죽었다.

11이십이년 — 과하마를 바치다

二十二年,冬十月,遣使入唐,獻果下馬。

이십이년 겨울 시월에 사신을 보내어 당나라에 들어가 과하마를 바쳤다.

12이십사년 — 늑노현을 침노하다

二十四年,秋,遣兵侵新羅勒弩縣。

이십사년 가을에 군사를 보내어 신라 늑노현을 침노하였다.

13이십오년 — 여섯 성을 빼앗다

二十五年,春正月,遣大臣入唐朝貢。高祖嘉其誠款,遣使就冊為帶方郡王公百濟王。秋七月,遣使入唐朝貢。冬十月,攻新羅速含、櫻岑、歧岑、烽岑、旗懸、冗柵等六城,取之。

이십오년 봄 정월에 대신을 보내어 당나라에 들어가 조공하게 하였다. 고조가 그 정성을 아름다이 여겨 사신을 보내어 책봉하여 대방군왕 백제왕으로 삼았다. 가을 칠월에 사신을 보내어 당나라에 들어가 조공하였다. 겨울 시월에 신라 속함·앵잠·기잠·봉잠·기현·용책 등 여섯 성을 쳐서 빼앗았다.

14이십육년 — 당나라에 조공하다

二十六年,冬十一月,遣使入唐朝貢。

이십육년 겨울 십일월에 사신을 보내어 당나라에 들어가 조공하였다.

15이십칠년 — 명광개를 바치다

二十七年,遣使入唐,獻明光鎧,因訟高句麗梗道路,不許來朝上國。高祖遣散騎常侍朱子奢來,詔諭我及高句麗,平其怨。秋八月,遣兵,攻新羅主在城,執城主東所,殺之。冬十二月,遣使入唐朝貢。

이십칠년에 사신을 보내어 당나라에 들어가 명광개를 바치고, 이로 인하여 고구려가 길을 막아 상국에 와서 조회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하소연하였다. 고조가 산기상시 주자사를 보내어 조서로 백제와 고구려를 타일러 그 원한을 고르게 하였다.

가을 팔월에 군사를 보내어 신라 주재성을 쳐서 성주 동소를 잡아 죽였다. 겨울 십이월에 사신을 보내어 당나라에 들어가 조공하였다.

16이십팔년 — 태종이 화친을 타이르다

二十八年,秋七月,王命將軍沙乞,拔新羅西鄙二城,虜男女三百餘口。王欲復新羅侵奪地分,大擧兵,出屯於熊津。羅王眞平聞之,遣使告急於唐。王聞之,乃止。秋八月,遣王姪福信,入唐朝貢,太宗謂與新羅世讎,數相侵伐,賜王璽書曰:「王世為君長,撫有東蕃,海隅遐曠,風濤艱阻,忠款之至,職貢相尋,尚想嘉猷,甚以欣慰。朕祗承寵命,君臨區宇,思弘正道,愛育黎元,舟車所通,風雨所及,期之遂性,咸使乂安。新羅王金眞平,朕之蕃臣,王之鄰國,每聞遣師,征討不息。阻兵安忍,殊乖所望。朕已對王姪福信及高句麗新羅使人,具勑通和,咸許輯睦。王必須忘彼前怨,識朕本懷,共篤鄰情,卽停兵革。」王因遣使,奉表陳謝。雖外稱順命,內實相仇如故。

이십팔년 가을 칠월에 왕이 장군 사걸에게 명하여 신라 서쪽 변두리 두 성을 빼앗고 남녀 삼백여 사람을 사로잡게 하였다.

왕이 신라에게 침노당해 빼앗긴 땅을 되찾으려고 크게 군사를 일으켜 웅진에 나아가 진 쳤다. 신라 왕 진평이 이를 듣고 사신을 보내어 당나라에 급함을 알렸다. 왕이 듣고 이내 그쳤다.

가을 팔월에 왕의 조카 복신을 보내어 당나라에 들어가 조공하게 하니, 태종이 신라와 대대로 원수가 되어 여러 번 서로 침노하고 친다 하여 왕에게 새서를 내려 말하였다.

"왕은 대대로 임금 노릇을 하여 동쪽 울타리를 어루만져 가졌으니, 바다 모퉁이가 멀고 넓으며 바람과 물결이 어렵고 막혔는데도 충성과 정성이 지극하여 직분의 공물이 서로 이어졌다. 아름다운 꾀를 생각하니 매우 기쁘고 위로된다.

짐이 삼가 사랑의 명을 받들어 온 지역에 임금으로 임하매, 바른 도를 넓히고 백성을 사랑하여 기르기를 생각하여, 배와 수레가 통하는 곳과 바람과 비가 미치는 곳마다 그 성품을 이루고 다 편안하게 하기를 기약한다.

신라 왕 김진평은 짐의 울타리 신하요 왕의 이웃 나라인데, 늘 들으면 군사를 보내어 치고 침을 그치지 않는다 한다. 군사를 믿고 모짊을 편안히 여기니 바라던 바와 몹시 어긋난다. 짐이 이미 왕의 조카 복신과 고구려와 신라의 사신을 마주하여 갖추어 칙명으로 화친하게 하고 다 화목하기를 허락하였다. 왕은 반드시 저 앞의 원한을 잊고 짐의 본뜻을 알아, 함께 이웃의 정을 두터이 하고 곧 싸움을 그치라."

왕이 이로 인하여 사신을 보내어 표를 받들어 사례하였다. 비록 밖으로는 명을 좇는다 일컬었으나 안으로는 실로 서로 원수 삼기를 예전과 같이 하였다.

17이십구년 — 가잠성을 치다가 그치다

二十九年,春二月,遣兵攻新羅椵岑城,不克而還。

이십구년 봄 이월에 군사를 보내어 신라 가잠성을 쳤으나 이기지 못하고 돌아왔다.

18삼십년 — 당나라에 조공하다

三十年,秋九月,遣使入唐朝貢。

삼십년 가을 구월에 사신을 보내어 당나라에 들어가 조공하였다.

19삼십일년 — 사비의 궁을 고쳐 짓다

三十一年,春二月,重修泗沘之宮。王幸熊津城。夏旱,停泗沘之役。秋七月,王至自熊津。

삼십일년 봄 이월에 사비의 궁을 고쳐 지었다. 왕이 웅진성에 거둥하였다. 여름에 가무므로 사비의 역사를 그쳤다. 가을 칠월에 왕이 웅진에서 돌아왔다.

20삼십이년 — 당나라에 조공하다

三十二年,秋九月,遣使入唐朝貢。

삼십이년 가을 구월에 사신을 보내어 당나라에 들어가 조공하였다.

21삼십삼년 — 의자를 태자로 삼다

三十三年,春正月,封元子義慈為太子。二月,改築馬川城。秋七月,發兵伐新羅,不利。王田于生草之原。冬十二月,遣使入唐朝貢。

삼십삼년 봄 정월에 맏아들 의자를 봉하여 태자로 삼았다. 이월에 마천성을 고쳐 쌓았다. 가을 칠월에 군사를 내어 신라를 쳤으나 이롭지 못하였다. 왕이 생초 벌판에서 사냥하였다. 겨울 십이월에 사신을 보내어 당나라에 들어가 조공하였다.

22삼십사년 — 서곡성을 빼앗다

三十四年,秋八月,遣將攻新羅西谷城,十三日拔之。

삼십사년 가을 팔월에 장수를 보내어 신라 서곡성을 쳐서 열사흘 만에 빼앗았다.

23삼십오년 — 왕흥사가 이루어지다

三十五年,春二月,王興寺成。其寺臨水,彩飾壯麗。王每乘舟,入寺行香。三月,穿池於宮南,引水二十餘里,四岸植以楊柳,水中築島嶼,擬方丈仙山。

삼십오년 봄 이월에 왕흥사가 이루어졌다. 그 절은 물가에 임하였고 채색 꾸밈이 웅장하고 고왔다. 왕이 늘 배를 타고 절에 들어가 향을 올렸다.

삼월에 궁 남쪽에 못을 파고 물을 이십여 리에서 끌어들이며, 네 언덕에 버들을 심고 물 가운데 섬을 쌓아 방장 선산에 비겼다.

24삼십칠년 — 우소가 사로잡히다

三十七年,春二月,遣使入唐朝貢。三月,王率左右臣寮,遊燕於泗沘河北浦。兩岸奇巖怪石錯立,間以奇花異草,如畫圖。王飲酒極歡,鼓琴自歌,從者屢舞。時人謂其地為大王浦。夏五月,王命將軍于召,帥甲士五百,往襲新羅獨山城。于召至玉門谷,日暮,解鞍休士。新羅將軍閼川將兵,掩至鏖擊之。于召登大石上,彎弓拒戰,矢盡,為所擒。六月,旱。秋八月,燕群臣於望海樓。

삼십칠년 봄 이월에 사신을 보내어 당나라에 들어가 조공하였다.

삼월에 왕이 좌우의 신하를 거느리고 사비하 북쪽 포구에서 놀며 잔치하였다. 두 언덕에 기이한 바위와 괴상한 돌이 뒤섞여 서고 사이사이 기이한 꽃과 남다른 풀이 있어 그림 같았다. 왕이 술을 마시고 지극히 즐거워 거문고를 타며 스스로 노래하니 따르는 이들이 여러 번 춤을 추었다. 그때 사람이 그 땅을 대왕포라 하였다.

여름 오월에 왕이 장군 우소에게 명하여 갑사 오백을 거느리고 가서 신라 독산성을 습격하게 하였다. 우소가 옥문곡에 이르러 날이 저물매 안장을 풀고 군사를 쉬게 하였다. 신라 장군 알천이 군사를 거느리고 몰래 이르러 몰아쳤다. 우소가 큰 돌 위에 올라 활을 당겨 맞서 싸웠으나 화살이 다하여 사로잡혔다.

유월에 가물었다. 가을 팔월에 망해루에서 여러 신하에게 잔치를 베풀었다.

25삼십팔년 — 철갑과 아로새긴 도끼를 바치다

三十八年,春二月,王都地震。三月,又震。冬十二月,遣使入唐,獻鐵甲雕斧。太宗優勞之,賜錦袍幷彩帛三千段。

삼십팔년 봄 이월에 왕도에 땅이 흔들렸다. 삼월에 또 흔들렸다. 겨울 십이월에 사신을 보내어 당나라에 들어가 철갑과 아로새긴 도끼를 바쳤다. 태종이 넉넉히 위로하고 비단 도포와 아울러 채색 비단 삼천 단을 내렸다.

26삼십구년 — 큰 못에 배를 띄우다

三十九年,春三月,王與嬪御泛舟大池。

삼십구년 봄 삼월에 왕이 빈어와 함께 큰 못에 배를 띄웠다.

27사십년 — 금갑과 아로새긴 도끼를 바치다

四十年,冬十月,又遣使於唐,獻金甲雕斧。

사십년 겨울 시월에 또 사신을 당나라에 보내어 금갑과 아로새긴 도끼를 바쳤다.

28사십일년 — 자제를 국학에 들이기를 청하다

四十一年,春正月,星孛于西北。二月,遣子弟於唐,請入國學。

사십일년 봄 정월에 살별이 서북쪽에 나타났다. 이월에 자제를 당나라에 보내어 국학에 들기를 청하였다.

29사십이년 — 무왕이 죽다

四十二年,春三月,王薨。諡曰武。使者入唐,素服奉表曰:「君外臣扶餘璋卒。」帝擧哀玄武門,詔曰:「懷遠之道,莫先於寵命,飾終之義,無隔於遐方。故柱國帶方郡公百濟王扶餘璋,棧山航海,遠稟正朔,獻琛奉牘,克固始終,奄致薨殞,追深慜悼。宜加常數,式表哀榮,贈光祿大夫。」賻賜甚厚。

사십이년 봄 삼월에 왕이 죽었다. 시호를 무(武)라 하였다. 사신이 당나라에 들어가 흰옷을 입고 표를 받들어 말하였다. "임금 밖의 신하 부여장이 죽었습니다."

황제가 현무문에서 슬퍼하는 예를 행하고 조서를 내렸다. "먼 곳을 품는 도리는 사랑의 명보다 앞서는 것이 없고, 죽음을 꾸며 주는 의로움은 먼 지방이라고 막힘이 없다. 돌아간 주국 대방군공 백제왕 부여장은 산에 사다리 놓고 바다에 배 띄워 멀리 책력을 받고, 보배를 바치고 글을 올려 처음과 끝을 굳게 하였는데, 문득 죽음에 이르니 슬픔이 깊다. 마땅히 늘 하던 수보다 더하여 슬픔과 영광을 드러낼 것이니 광록대부를 추증한다." 부의로 내림이 매우 두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