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樂)樂
1신라의 음악
新羅樂,三竹三絃拍板大鼓,歌舞,舞二人,放角幞頭紫大袖,公襴紅鞓鍍金銙腰帶烏皮靴,三絃,一玄琴,二加耶琴,三琵琶,三竹,一大笒,二中笒,三小笒
신라의 음악은 삼죽(三竹)과 삼현(三絃)과 박판과 큰북과 노래와 춤이다. 춤은 두 사람인데 방각복두를 쓰고 자줏빛 큰 소매 옷과 공란과 붉은 가죽띠에 도금한 띠돈을 단 허리띠를 매고 검은 가죽신을 신는다.
삼현은 첫째 현금(玄琴), 둘째 가야금(加耶琴), 셋째 비파(琵琶)요, 삼죽은 첫째 대금(大笒), 둘째 중금(中笒), 셋째 소금(小笒)이다.
2현금
玄琴象中國樂部琴而爲之,按琴操曰,伏犧作琴以修身理性,反其天眞也,又曰,琴長三尺六寸六分,象三百六十六日,廣六寸,象六合,文上曰池(池者水也,言其平),下曰濱(濱者服也),前廣後狹,象尊卑也,上圓下方,法天地也,五絃象五行,大絃爲君,小絃爲臣,文王武王加二絃,又風俗通曰,琴長四尺五寸者,法四時五行,七絃法七星,玄琴之作也,新羅古記云,初晉人以七絃琴,送高句麗,麗人雖知其爲樂器而不知其聲音反鼓之之法,購國人能識其音而鼓之者,厚賞,時,第二相王山岳存其本樣,頗改易其法制而造之,兼製一百餘曲以奏之,於時玄鶴來舞,遂名玄鶴琴,後但云玄琴,羅人沙湌?永子玉寶高,入地理山雲上院,學琴五十年,自製新調三十曲,傳之續命得,得傳之貴金先生,先生亦入地理山,不出,羅王恐琴道斷絶,謂伊湌允興,方便傳得其音,遂委南原公事,允興到官,簡聰明少年二人,曰安長淸長,使詣山中傳學,先生敎之而其隱微不以傳,允興與婦偕進曰,吾王遣我南原者,無他,欲傳先生之技,于今三年矣,先生有所秘而不傳,吾無以復命,允興捧酒,其婦執盞膝行,致禮盡誠,然後傳其所秘飄風等三曲,安長傳其子克相克宗,克宗制七曲,克宗之後,以琴自業者非一二,所製音曲有二調,一平調,二羽調,共一百八十七曲,其餘聲遺曲,流傳可記者無幾,餘悉散逸,不得具載
현금은 중국 악부의 금(琴)을 본떠 만든 것이다.
『금조』를 살피면 이르기를 "복희가 금을 만들어 몸을 닦고 성품을 다스려 그 하늘의 참됨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하였다. 또 이르기를 "금의 길이 석 자 여섯 치 여섯 푼은 삼백육십육 일을 본뜬 것이요, 너비 여섯 치는 육합을 본뜬 것이다. 무늬 위를 지(池)라 하고 — 지는 물이니 그 평평함을 말한다 — 아래를 빈(濱)이라 한다 — 빈은 복종함이다. 앞은 넓고 뒤는 좁으니 높고 낮음을 본뜬 것이요, 위는 둥글고 아래는 모나니 하늘과 땅을 본받은 것이다. 다섯 줄은 오행을 본뜬 것이니 큰 줄은 임금이 되고 작은 줄은 신하가 된다. 문왕과 무왕이 두 줄을 더하였다" 하였다.
또 『풍속통』에 이르기를 "금의 길이가 넉 자 다섯 치인 것은 네 철과 오행을 본받은 것이요, 일곱 줄은 칠성을 본받은 것이다" 하였다.
현금을 만든 일은 『신라고기』에 이르기를 이러하다. 처음에 진나라 사람이 일곱 줄 금을 고구려에 보냈다. 고구려 사람이 비록 그것이 악기인 줄은 알았으나 그 소리와 타는 법을 알지 못하여, 나라 사람으로 그 소리를 알아 탈 수 있는 이를 구하여 두터이 상 주기로 하였다.
그때 제이상 왕산악이 그 본디 모양은 두되 그 법과 제도를 자못 고쳐 만들고, 아울러 일백여 곡을 지어 연주하였다. 그때 검은 학이 와서 춤추므로 마침내 현학금(玄鶴琴)이라 이름하였는데 뒤에 다만 현금이라 하였다.
신라 사람 사찬 (글자 빠짐)영의 아들 옥보고가 지리산 운상원에 들어가 오십 년 동안 금을 배워 스스로 새 가락 서른 곡을 지어 속명득에게 전하고, 속명득이 귀금 선생에게 전하였다. 선생이 또한 지리산에 들어가 나오지 않으므로, 신라 왕이 금의 도가 끊어질까 두려워 이찬 윤흥에게 일러 방편으로 그 소리를 전해 받게 하고 마침내 남원의 공사를 맡겼다.
윤흥이 벼슬에 이르러 총명한 소년 둘을 가렸으니 안장과 청장이다. 산속으로 가서 배우게 하니 선생이 가르치되 그 그윽하고 미묘한 것은 전하지 않았다. 윤흥이 아내와 함께 나아가 말하였다. "우리 왕이 나를 남원에 보내신 것은 다름이 아니라 선생의 재주를 전해 받고자 함인데, 이제 세 해가 되도록 선생이 숨기고 전하지 않는 바가 있으니 내가 명을 갚을 길이 없습니다." 윤흥이 술을 받들고 그 아내가 잔을 잡아 무릎으로 걸어 예를 다하고 정성을 다한 뒤에야, 그 숨기던 표풍 등 세 곡을 전하였다.
안장이 그 아들 극상과 극종에게 전하고 극종이 일곱 곡을 지었다. 극종 뒤로 금으로 스스로 업을 삼은 이가 한둘이 아니었다.
지은 음곡에 두 가락이 있으니 첫째는 평조요 둘째는 우조라, 모두 일백여든일곱 곡이다. 그 나머지 소리와 남은 곡으로 흘러 전해져 적을 만한 것은 얼마 없고 나머지는 다 흩어져 없어져 갖추어 실을 수 없다.
3옥보고가 지은 서른 곡
玉寶高所製三十曲,上院曲一,中院曲一,下院曲一,南海曲二,倚嵒曲一,老人曲七,竹庵曲二,玄合曲一,春朝曲一,秋夕曲一,五沙息曲一,鴛鴦曲一,遠岵曲六,比目曲一,入實相曲一,幽谷淸聲曲一,降天聲曲一,克宗所製七曲,今亡
옥보고가 지은 서른 곡은 이러하다. 상원곡 하나, 중원곡 하나, 하원곡 하나, 남해곡 둘, 의암곡 하나, 노인곡 일곱, 죽암곡 둘, 현합곡 하나, 춘조곡 하나, 추석곡 하나, 오사식곡 하나, 원앙곡 하나, 원호곡 여섯, 비목곡 하나, 입실상곡 하나, 유곡청성곡 하나, 강천성곡 하나다.
극종이 지은 일곱 곡은 이제 없어졌다.
4가야금
加耶琴,亦法中國樂部箏而爲之風俗通曰,箏,秦聲也釋名曰,箏施絃高,箏箏然,幷梁二州,箏形如瑟,傅玄曰,上圓象天,下平象地,中空准六合,絃柱擬十二月,斯乃仁智之器,阮瑀曰,箏長六尺,以應律數,絃有十二,象四時,柱高三寸,象三才,加耶琴,雖與箏制度小異,而大槩似之,羅古記云,加耶國嘉實王見唐之樂器而造之,王以謂諸國方言各異聲音,豈可一哉,乃命樂師省熱縣人于勒造十二曲,後于勒以其國將亂,携樂器投新羅眞興王,王受之,安置國原,乃遣大奈麻注知階古大舍萬德傳其業,三人旣傳十一曲,相謂曰,此繁且淫,不可以爲雅正,遂約爲五曲,于勒始聞焉而怒,及聽其五種之音,流淚歎曰,樂而不流,哀而不悲,可謂正也,爾其奏之王前,王聞之大悅,諫臣獻議,加耶亡國之音,不足取也,王曰,加耶王淫亂自滅,樂何罪乎,蓋聖人制樂,緣人情以爲撙節,國之理亂不由音調,遂行之,以爲大樂,加耶琴有二調,一河臨調,二嫩竹調,共一百八十五曲
가야금도 또한 중국 악부의 쟁(箏)을 본받아 만든 것이다.
『풍속통』에 이르기를 "쟁은 진나라 소리다" 하였다. 『석명』에 이르기를 "쟁은 줄을 높이 매어 쟁쟁하게 울린다. 병주와 양주 두 주의 쟁은 모양이 슬(瑟)과 같다" 하였다. 부현이 이르기를 "위가 둥근 것은 하늘을 본뜬 것이요 아래가 평평한 것은 땅을 본뜬 것이며, 가운데가 빈 것은 육합에 견준 것이요 줄의 기둥은 열두 달에 비긴 것이니, 이는 곧 어짊과 슬기의 그릇이다" 하였다. 완우가 이르기를 "쟁은 길이가 여섯 자이니 율의 수에 응한 것이요, 줄이 열둘 있으니 네 철을 본뜬 것이며, 기둥 높이가 세 치이니 삼재를 본뜬 것이다" 하였다.
가야금이 비록 쟁과 제도가 조금 다르나 대개 비슷하다.
『신라고기』에 이르기를, 가야국 가실왕이 당나라의 악기를 보고 만들었다. 왕이 이르기를 "여러 나라의 말이 각각 다른데 소리가 어찌 하나일 수 있겠는가" 하고, 이에 악사 성열현 사람 우륵에게 명하여 열두 곡을 짓게 하였다.
뒤에 우륵이 그 나라가 장차 어지러워지리라 하여 악기를 가지고 신라 진흥왕에게 투항하였다. 왕이 받아들여 국원에 두고, 이에 대나마 주지와 계고와 대사 만덕을 보내어 그 업을 전해 받게 하였다.
세 사람이 이미 열한 곡을 전해 받고 서로 말하였다. "이것은 번잡하고 또 음란하여 아정하고 바르다 할 수 없다." 마침내 줄여 다섯 곡으로 만들었다.
우륵이 처음 듣고 노하였으나 그 다섯 가지 소리를 듣고 나서는 눈물을 흘리며 탄식하였다. "즐거우면서도 흐르지 않고 슬프면서도 서럽지 않으니 바르다 할 만하다. 너희는 그것을 왕 앞에서 아뢰라."
왕이 듣고 크게 기뻐하였다. 간하는 신하가 의견을 올렸다. "가야에서 나라를 망친 소리이니 취할 것이 못 됩니다."
왕이 말하였다. "가야 왕이 음란하고 어지러워 스스로 망한 것이지 음악이 무슨 죄인가. 대개 성인이 음악을 만든 것은 사람의 정을 따라 조절하게 한 것이니, 나라의 다스려짐과 어지러움은 음조로 말미암지 않는다." 마침내 행하여 큰 음악으로 삼았다.
가야금에 두 가락이 있으니 첫째는 하림조요 둘째는 눈죽조라, 모두 일백여든다섯 곡이다.
5우륵이 지은 열두 곡
于勒所製十二曲,一曰下加羅都,二曰上加羅都,三曰寶伎,四曰達己,五曰思勿,六曰勿慧,七曰下奇物,八曰師子伎,九曰居烈,十曰沙八兮,十一曰爾赦,十二曰上奇物,泥文所製三曲,一曰烏,二曰鼠,三曰鶉(赦字未詳)
우륵이 지은 열두 곡은, 첫째 하가라도, 둘째 상가라도, 셋째 보기, 넷째 달기, 다섯째 사물, 여섯째 물혜, 일곱째 하기물, 여덟째 사자기, 아홉째 거열, 열째 사팔혜, 열한째 이사, 열두째 상기물이다.
이문이 지은 세 곡은 첫째 오(烏), 둘째 서(鼠), 셋째 순(鶉)이다. (사(赦) 자는 자세하지 않다.)
6비파
琵琶風俗通曰,近代樂家所作,不知所起,長三尺五寸,法天地人與五行,四絃象四時也釋名曰,琵琶,本胡中馬上所鼓,推手前曰琵,引手却曰琶,因以爲名,鄕琵琶,與唐制度大同而少異,亦始於新羅,但不知何人所造,其音有三調,一宮調,二七賢調,三鳳皇調,共二百一十二曲
『풍속통』에 이르기를 "비파는 가까운 대의 악가가 지은 것인데 어디서 일어났는지 알 수 없다. 길이가 석 자 다섯 치이니 하늘과 땅과 사람과 오행을 본받은 것이요, 네 줄은 네 철을 본뜬 것이다" 하였다. 『석명』에 이르기를 "비파는 본디 오랑캐 가운데 말 위에서 타던 것이다. 손을 밀어 앞으로 하는 것을 비(琵)라 하고 손을 끌어 뒤로 하는 것을 파(琶)라 하니, 이로 인하여 이름을 삼았다" 하였다.
향비파는 당나라 제도와 크게 같으나 조금 다르니 또한 신라에서 비롯되었다. 다만 어떤 사람이 만들었는지 알 수 없다. 그 소리에 세 가락이 있으니 첫째는 궁조요 둘째는 칠현조요 셋째는 봉황조라, 모두 이백열두 곡이다.
7삼죽
三竹,亦模倣唐笛而爲之者也風俗通曰,笛,漢武帝時丘仲所作也,又按,宋玉有笛賦,玉在漢前,恐此說非也,馬融云,近代雙笛從羌起,又笛,滌也,所以滌邪穢而納之於雅正也,長一尺,四十七孔,鄕三竹,此亦起於新羅,不知何人所作,古記云,神文王時,東海中忽有一小山,形如龜頭,其上有一竿竹,晝分爲二,夜合爲一,王使斫之作笛,名萬波息,雖有此說,怪不可信,三竹笛有七調,一平調,二黃鐘調,三二雅調,四越調,五般涉調,六出調,七俊調,大笒三百二十四曲,中笒二百四十五曲,小笒二百九十八曲
삼죽도 또한 당나라 저(笛)를 본떠 만든 것이다.
『풍속통』에 이르기를 "저는 한나라 무제 때 구중이 만든 것이다" 하였다. 또 살피건대 송옥에게 「적부(笛賦)」가 있는데 송옥은 한나라보다 앞서니 이 말이 그른가 한다. 마융이 이르기를 "가까운 대의 쌍적은 강족에게서 일어났다" 하였다. 또 "적(笛)은 씻는다는 뜻이니, 사특하고 더러운 것을 씻어 아정하고 바른 데로 들이는 것이다. 길이가 한 자요 구멍이 마흔일곱이다" 하였다.
향삼죽도 또한 신라에서 일어났으나 어떤 사람이 만들었는지 알 수 없다. 『고기』에 이르기를, 신문왕 때 동해 가운데 문득 작은 산 하나가 있어 모양이 거북 머리 같은데, 그 위에 대나무 한 줄기가 있어 낮에는 나뉘어 둘이 되고 밤에는 합쳐 하나가 되었다. 왕이 베어다 저를 만들게 하고 만파식(萬波息)이라 이름하였다 한다. 비록 이런 말이 있으나 괴이하여 믿을 수 없다.
삼죽의 저에 일곱 가락이 있으니 첫째 평조, 둘째 황종조, 셋째 이아조, 넷째 월조, 다섯째 반섭조, 여섯째 출조, 일곱째 준조다. 대금이 삼백스물네 곡이요 중금이 이백마흔다섯 곡이요 소금이 이백아흔여덟 곡이다.
8향악과 최치원의 향악잡영
會樂及辛熱樂,儒理王時作也,突阿樂,脫解王時作也,枝兒樂,婆娑王時作也,思內(一作詩惱)樂,奈解王時作也,笳舞,奈密王時作也,憂息樂,訥祗王時作也,碓樂,慈悲王時人百結先生作也,竿引,智大路王時人川上郁皆子作也,美知樂,法興王時作也,徒領歌,眞興王時作也,捺絃引,眞平王時人淡水作也,思內奇物樂,原郞徒作也,內知,日上郡樂也,白實,押梁郡樂也,德思內,河西郡樂也,石南思內道,同伐郡樂也,祀中,北隈郡樂也,此皆鄕人喜樂之所由作也,而聲器之數,歌舞之容,不傳於後世,但古記云,政明王九年,幸新村,設酺奏樂,笳舞,監六人,笳尺二人,舞尺一人,下辛熱舞,監四人,琴尺一人,舞尺二人,歌尺三人,思內舞,監三人,琴尺一人,舞尺二人,歌尺二人,韓岐舞,監三人,琴尺一人,舞尺二人,上辛熱舞,監三人,琴尺一人,舞尺二人,歌尺二人,小京舞,監三人,琴尺一人,舞尺一人,歌尺三人,美知舞,監四人,琴尺一人,舞尺二人,哀莊王八年,奏樂始奏思內琴,舞尺四人靑衣,琴尺一人赤衣,歌尺五人彩衣,繡扇並金鏤帶,次奏碓琴舞,舞尺赤衣,琴尺靑衣,如此而已,則不可言其詳也,羅時樂工皆謂之尺,崔致遠詩有鄕樂雜詠五首,今錄于此,金丸,廻身掉臂弄金丸,月轉星浮滿眼看,縱有宜僚那勝此,定知鯨海息波瀾,月顚,肩高項縮髮崔嵬,攘臂羣儒鬪酒盃,聽得歌聲人盡笑,夜頭旗幟曉頭催,大面,黃金面色是其人,手抱珠鞭役鬼神,疾步徐趍呈雅舞,宛如丹鳳舞堯春,束毒,蓮頭藍面異人間,押隊來庭學舞鸞,打鼓冬冬風瑟瑟,南奔北躍也無端,狻猊,遠涉流沙萬里來,毛衣破盡着塵埃,搖頭掉尾馴仁德,雄氣寧同百獸才
회악과 신열악은 유리왕 때 지은 것이요, 돌아악은 탈해왕 때 지은 것이요, 지아악은 파사왕 때 지은 것이요, 사내악(시뇌악이라고도 한다)은 내해왕 때 지은 것이요, 가무는 내밀왕 때 지은 것이요, 우식악은 눌지왕 때 지은 것이요, 대악은 자비왕 때 사람 백결선생이 지은 것이요, 간인은 지대로왕 때 사람 천상 욱개자가 지은 것이요, 미지악은 법흥왕 때 지은 것이요, 도령가는 진흥왕 때 지은 것이요, 날현인은 진평왕 때 사람 담수가 지은 것이요, 사내기물악은 원랑도가 지은 것이다.
내지는 일상군의 음악이요, 백실은 압량군의 음악이요, 덕사내는 하서군의 음악이요, 석남사내도는 동벌군의 음악이요, 사중은 북외군의 음악이다. 이는 다 신라 사람이 즐거워하여 지은 것이다. 그러나 소리와 악기의 수와 노래와 춤의 모양은 뒷세상에 전하지 않는다.
다만 『고기』에 이르기를 이러하다. 정명왕 구년에 신촌에 거둥하여 잔치를 베풀고 음악을 아뢰었다. 가무는 감이 여섯 사람, 가척이 두 사람, 무척이 한 사람이었다. 하신열무는 감이 네 사람, 금척이 한 사람, 무척이 두 사람이었다. 사내무는 감이 세 사람, 금척이 한 사람, 무척이 두 사람, 가척이 두 사람이었다. 한기무는 감이 세 사람, 금척이 한 사람, 무척이 두 사람이었다. 상신열무는 감이 세 사람, 금척이 한 사람, 무척이 두 사람, 가척이 두 사람이었다. 소경무는 감이 세 사람, 금척이 한 사람, 무척이 한 사람, 가척이 세 사람이었다. 미지무는 감이 네 사람, 금척이 한 사람, 무척이 두 사람이었다.
애장왕 팔년에 음악을 아뢸 때 처음으로 사내금을 아뢰었는데, 무척 네 사람은 푸른 옷, 금척 한 사람은 붉은 옷, 가척 다섯 사람은 채색 옷에 수놓은 부채를 들고 아울러 금실 띠를 매었다. 다음으로 대금무를 아뢰었는데 무척은 붉은 옷, 금척은 푸른 옷이었다. 이러할 뿐이니 그 자세함을 말할 수 없다.
신라 때 악공은 다 척(尺)이라 하였다.
최치원의 시에 「향악잡영」 다섯 수가 있으므로 이제 여기 적는다.
금환(金丸) "몸을 돌리고 팔을 흔들며 금방울을 놀리니 달이 구르고 별이 뜬 듯 눈에 가득 보인다. 비록 의료가 있은들 어찌 이보다 나으랴 고래 사는 바다도 물결이 자겠구나."
월전(月顚) "어깨는 솟고 목은 움츠러들고 머리털은 우뚝한데 팔 걷은 뭇 선비가 술잔을 다툰다. 노랫소리 듣고 사람들 다 웃으니 초저녁 깃발이 새벽을 재촉한다."
대면(大面) "황금빛 얼굴이 바로 그 사람이라 손에 구슬 채찍 잡고 귀신을 부린다. 빠른 걸음 느린 걸음으로 아정한 춤을 바치니 완연히 붉은 봉황이 요임금 봄에 춤추는 듯."
속독(束毒) "쑥대머리 쪽빛 얼굴 사람 같지 않은데 무리를 이끌고 뜰에 와서 난새 춤을 배운다. 북소리 둥둥 바람은 쓸쓸한데 남으로 달리고 북으로 뛰기 끝이 없구나."
산예(狻猊) "멀리 모래사막을 건너 만 리를 오니 털옷은 다 해지고 티끌을 뒤집어썼다. 머리 흔들고 꼬리 치며 어진 덕에 길드니 웅장한 기운이 어찌 온갖 짐승의 재주와 같으랴."
9고구려의 음악
高句麗樂通典云,樂工人紫羅帽,飾以鳥羽,黃大袖,紫羅帶,大口袴,赤皮鞾,五色緇繩,舞者四人,椎髻於後,以絳抹額,飾以金璫,二人黃裙襦,赤黃袴,二人赤黃裙襦袴,極長其袖,烏皮鞾,雙雙倂立而舞,樂用彈箏一,掬箏一,臥箜篌一,竪箜篌一,琵琶一,五絃一,義觜笛一,笙一,橫笛一,簫一,小篳篥一,大篳篥一,桃皮篳篥一,腰鼓一,齋鼓一,檐鼓一,唄一,大唐武太后時,尙二十五曲,今唯能習一曲,衣服亦寖衰敗,失其本風冊府元龜云,樂有五絃琴箏篳篥橫吹簫鼓之屬,吹蘆以和曲
고구려의 음악은 『통전』에 이르기를 이러하다. 악공 사람은 자줏빛 비단 모자에 새 깃으로 꾸미고, 누런 큰 소매 옷과 자줏빛 비단 띠와 통 넓은 바지와 붉은 가죽신과 다섯 빛깔 검은 끈을 쓴다.
춤추는 이는 네 사람인데 뒤에 상투를 틀고 붉은 것으로 이마를 매고 금 귀고리로 꾸민다. 두 사람은 누런 치마저고리에 붉고 누런 바지를 입고, 두 사람은 붉고 누런 치마저고리와 바지를 입되 그 소매를 몹시 길게 하며 검은 가죽신을 신고, 둘씩 짝지어 나란히 서서 춤춘다.
음악에는 탄쟁 하나, 국쟁 하나, 와공후 하나, 수공후 하나, 비파 하나, 오현 하나, 의취적 하나, 생 하나, 횡적 하나, 소 하나, 소필률 하나, 대필률 하나, 도피필률 하나, 요고 하나, 재고 하나, 첨고 하나, 패 하나를 쓴다.
당나라 무태후 때에는 오히려 스물다섯 곡이었는데, 이제는 오직 한 곡만 익힐 수 있고 옷도 또한 차츰 쇠하고 무너져 그 본디 풍모를 잃었다.
『책부원귀』에 이르기를, 음악에 오현금·쟁·필률·횡취·소·북의 무리가 있고 갈대를 불어 곡에 어울린다 하였다.
10백제의 음악
百濟樂通典云,百濟樂,中宗之代工人死散,開元中岐王範爲太常卿,復奏置之,是以音伎多闕,舞者二人,紫大袖裙襦,章甫冠,皮履,樂之存者,箏笛桃皮篳篥箜篌,樂器之屬,多同於內地北史云,有鼓角箜篌箏竽箎笛之樂
백제의 음악은 『통전』에 이르기를 이러하다. 백제의 음악은 중종 때에 악공이 죽고 흩어졌는데, 개원 연간에 기왕 범이 태상경이 되어 다시 아뢰어 두게 하였다. 이로써 소리와 재주가 빠진 것이 많다.
춤추는 이는 두 사람인데 자줏빛 큰 소매 치마저고리를 입고 장보관을 쓰고 가죽신을 신는다. 음악으로 남은 것은 쟁과 적과 도피필률과 공후이니, 악기의 무리가 안쪽 땅과 같은 것이 많다.
『북사』에 이르기를, 고와 각과 공후와 쟁과 우와 지와 적의 음악이 있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