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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 상金庾信上

삼국사기 三國史記 · 김부식(金富軾) 등 · 1145년 (고려 인종 23) · 단락 19 · 한자 3,004자 · 낭독 12.0분

「삼국사기」 열전 「김유신 상」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 역사서. 신라·고구려·백제 본기와 지·표·열전으로 이루어졌다. 김부식이 곳곳에 「論曰」로 자기 평을 달아 두어, 편찬자가 무엇을 의심하고 무엇을 나무랐는지가 그대로 남아 있다.

1김유신은 왕경 사람이다

金庾信,王京人也。

김유신은 왕경 사람이다.

2십이대조 수로

十二世祖首露,不知何許人也。以後漢建武十八年壬寅,登龜峯,望駕洛九村,遂至其地開國,號曰加耶,後改為金官國。其子孫相承,至九世孫仇充,或云仇次休,於庾信為曾祖。羅人自謂少昊金天氏之後,故姓金。庾信碑亦云:「軒轅之裔,少昊之胤。」則南加耶始祖首露與新羅,同姓也。

십이대조 수로는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다. 후한 건무 십팔년 임인에 구봉에 올라 가락의 아홉 마을을 바라보고 마침내 그 땅에 이르러 나라를 열어 이름을 가야라 하였는데, 뒤에 고쳐 금관국이라 하였다. 그 자손이 서로 이어 구세손 구충(구차휴라고도 한다)에 이르니 유신에게는 증조부가 된다.

신라 사람이 스스로 소호 금천씨의 후예라 하였으므로 성을 김이라 하였다. 유신의 비에도 또한 이르기를 "헌원의 후예요 소호의 자손이다" 하였으니, 그러면 남가야 시조 수로도 신라와 성이 같다.

3할아버지 무력

祖武力,為新州道行軍摠管,嘗領兵獲百濟王及其將四人,斬首一萬餘級。

할아버지 무력은 신주도행군총관이 되어, 일찍이 군사를 거느리고 백제 왕과 그 장수 네 사람을 사로잡고 일만여 급을 베었다.

4아버지 서현과 유신의 탄생

父舒玄,官至蘇判大梁州都督安撫大梁州諸軍事。按庾信碑云:「考蘇判金逍衍。」不知舒玄或更名耶,或逍衍是字耶,疑故兩存之。初,舒玄路見葛文王立宗之子肅訖宗之女萬明,心悅而目挑之,不待媒妁而合。舒玄為萬弩郡太守,將與俱行,肅訖宗始知女子與玄野合,疾之囚於別第,使人守之。忽雷震屋門,守者驚亂,萬明從竇而出,遂與舒玄赴萬弩郡。舒玄庚辰之夜,夢熒惑鎭二星降於己,萬明亦以辛丑之夜,夢見童子衣金甲,乘雲入堂中,尋而有娠,二十月而生庾信,是眞平王建福十七年,隋文帝開皇十五年乙卯也。及欲定名,謂夫人曰:「吾以庚辰夜吉夢,得此兒,宜以為名,然禮不以日月為名。今庚與庾字相似,辰與信聲相近,況古之賢人有名庾信,盍以命之。」遂名庾信焉。

아버지 서현은 벼슬이 소판 대량주도독 안무대량주제군사에 이르렀다. 살피건대 유신의 비에 이르기를 "아버지는 소판 김소연이라" 하였는데, 서현이 이름을 고친 것인지 소연이 자인지 알 수 없어 의심스러우므로 둘 다 남겨 둔다.

처음에 서현이 길에서 갈문왕 입종의 아들 숙흘종의 딸 만명을 보고 마음으로 기뻐하여 눈짓으로 꾀어, 중매를 기다리지 않고 합하였다. 서현이 만노군 태수가 되어 함께 가려 하니, 숙흘종이 비로소 딸이 서현과 야합한 줄 알고 미워하여 딴 집에 가두고 사람을 시켜 지키게 하였다. 문득 벼락이 집 문에 치니 지키던 이가 놀라 어지러운 사이에 만명이 구멍으로 빠져나와 마침내 서현과 함께 만노군으로 갔다.

서현이 경진일 밤 꿈에 형혹성과 진성 두 별이 제게 내려오는 것을 보았고, 만명도 신축일 밤 꿈에 어린아이가 금 갑옷을 입고 구름을 타고 마루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이윽고 아이를 배어 스무 달 만에 유신을 낳았으니, 이때가 진평왕 건복 십칠년이요 수나라 문제 개황 십오년 을묘다.

이름을 정하려 할 때 부인에게 말하였다. "내가 경진일 밤 좋은 꿈으로 이 아이를 얻었으니 마땅히 그것으로 이름을 삼아야 하겠소. 그러나 예에 날과 달로 이름 짓지 않는다 하오. 이제 경(庚)과 유(庾)는 글자가 서로 비슷하고 진(辰)과 신(信)은 소리가 서로 가까우며, 하물며 옛 어진 사람에 유신(庾信)이라는 이가 있으니 그것으로 이름 지음이 어떻겠소." 마침내 유신이라 이름하였다.

협주 1

萬弩郡,今之鎭州,初以庾信胎,藏之高山,至今謂之胎靈山。

만노군은 지금의 진주다. 처음에 유신의 태를 높은 산에 묻었으므로 지금까지 태령산이라 한다.

5열다섯에 화랑이 되다

公年十五歲為花郞,時人洽然服從,號龍華香徒。

공은 나이 열다섯에 화랑이 되니 그때 사람이 흡족히 좇아 용화향도라 하였다.

6중악 석굴에서 노인을 만나다

眞平王建福三十三年辛未,公年十七歲,見高句麗、百濟、靺鞨侵軼國疆,慷慨有平寇賊之志,獨行入中嶽石崛,齋戒告天盟誓曰:「敵國無道,為豺虎,以擾我封埸,略無寧歲。僕是一介微臣,不量材力,志淸禍亂。惟天降監,假手於我。」居四日,忽有一老人,被褐而來曰:「此處,多毒蟲猛獸,可畏之地,貴少年爰來獨處,何也。」答曰:「長者從何許來,尊名可得聞乎?」老人曰:「吾無所住,行止隨緣,名則難勝也。」公聞之,知非常人,再拜進曰:「僕新羅人也,見國之讐,痛心疾首,故來此,冀有所遇耳。伏乞長者憫我精誠,授之方術。」老人默然無言。公涕淚懇請不倦,至于六七。老人乃言曰:「子幼而有幷三國之心,不亦壯乎。」乃授以秘法曰:「愼勿妄傳,若用之不義,反受其殃。」言訖而辭,行二里許,追而望之,不見,唯山上有光,爛然若五色焉。

진평왕 건복 삼십삼년 신미에 공은 나이 열일곱이었다. 고구려와 백제와 말갈이 나라 강토를 침노하는 것을 보고 강개하여 도둑을 평정할 뜻이 있었다. 홀로 중악 석굴에 들어가 재계하고 하늘에 고하여 맹세하였다.

"적국이 도가 없어 승냥이와 범이 되어 우리 봉토를 어지럽히니 편안한 해가 거의 없습니다. 저는 한낱 미천한 신하로 재주와 힘을 헤아리지 못하나 뜻은 화와 난을 맑게 함에 있습니다. 오직 하늘이 굽어살피시어 저에게 손을 빌려 주소서."

나흘 있으니 문득 한 노인이 굵은 베옷을 입고 와서 말하였다. "이곳은 독한 벌레와 사나운 짐승이 많아 두려운 땅인데, 귀한 소년이 여기 와서 홀로 있으니 어찌 된 일인가."

답하였다. "어르신은 어디서 오셨습니까. 높으신 이름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노인이 말하였다. "나는 머무는 곳이 없고 가고 그침을 인연에 맡기니 이름은 난승(難勝)이다."

공이 듣고 예사 사람이 아닌 줄 알아 두 번 절하고 나아가 말하였다. "저는 신라 사람입니다. 나라의 원수를 보고 마음이 아프고 머리가 앓으므로 여기 와서 만남이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엎드려 비오니 어르신께서는 저의 정성을 가엾이 여기시어 방술을 주소서."

노인이 잠자코 말이 없었다. 공이 눈물을 흘리며 간절히 청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아 예닐곱 번에 이르렀다. 노인이 이에 말하였다. "그대가 어린데도 세 나라를 아우를 마음이 있으니 또한 장하지 않은가."

이에 비법을 주며 말하였다. "삼가 함부로 전하지 말라. 만약 의롭지 않게 쓰면 도리어 그 재앙을 받으리라." 말을 마치고 하직하였다. 두 리쯤 갔을 때 뒤쫓아 바라보니 보이지 않고, 오직 산 위에 빛이 있어 찬란하기가 다섯 빛깔 같았다.

7인박산에서 보검에 신령이 내리다

建福三十四年,隣賊轉迫,公愈激壯心,獨携寶劒,入咽薄山深壑之中,燒香告天,祈祝若在中嶽,誓辭仍禱。天官垂光,降靈於寶劒。三日夜,虛、角二星,光芒赫然下垂,劒若動搖然。

건복 삼십사년에 이웃의 도둑이 갈수록 다그치므로 공이 더욱 장한 마음을 격동하여, 홀로 보검을 가지고 인박산 깊은 골짜기 가운데 들어가 향을 사르고 하늘에 고하며 빌기를 중악에서와 같이 하고 맹세하는 말로 빌었다. 천관이 빛을 드리워 보검에 신령을 내리니, 사흘 밤에 허성과 각성 두 별의 빛살이 환하게 내리비치고 칼이 움직이는 듯하였다.

8낭비성에서 홀로 적진에 뛰어들다

建福五十一年,己丑秋八月,王遣伊飡任末里,波珍飡龍春、白龍,蘇判大因、舒玄等,率兵攻高句麗娘臂城。麗人出兵逆擊之,吾人失利,死者衆多,衆心折衄,無復鬪心。庾信時為中幢幢主,進於父前,脫胄而告曰:「我兵敗北,吾平生以忠孝自期,臨戰不可不勇。盖聞:『振領而裘正,提綱而網張』,吾其為綱領乎。」迺跨馬拔劒跳坑,出入賊陣,斬將軍,提其首而來。我軍見之,乘勝奮擊,斬殺五千餘級,生擒一千人。城中兇懼無敢抗,皆出降。

건복 오십일년 기축 가을 팔월에 왕이 이찬 임말리와 파진찬 용춘·백룡과 소판 대인·서현 등을 보내어 군사를 거느리고 고구려 낭비성을 치게 하였다. 고구려 사람이 군사를 내어 맞아 치니 신라 사람이 이롭지 못하여 죽은 이가 많고 여럿의 마음이 꺾여 다시 싸울 마음이 없었다.

유신이 그때 중당의 당주였는데 아버지 앞에 나아가 투구를 벗고 아뢰었다. "우리 군사가 졌습니다. 저는 평생 충과 효로 스스로 기약하였으니 싸움에 임하여 용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듣건대 '옷깃을 떨치면 갖옷이 바르고 벼리를 들면 그물이 펴진다' 하니, 제가 그 벼리와 옷깃이 되겠습니다."

이에 말에 올라 칼을 빼고 구덩이를 뛰어넘어 적진을 드나들며 장군을 베고 그 머리를 들고 왔다. 신라 군사가 이를 보고 이긴 기세를 타 떨쳐 쳐서 오천여 급을 베어 죽이고 일천 사람을 사로잡았다. 성 안이 흉하고 두려워 감히 맞서지 못하고 다 나와 항복하였다.

9춘추와 손가락을 깨물어 맹세하다

善德大王十一年壬寅,百濟敗大梁州,春秋公女子古陁炤娘,從夫品釋死焉。春秋恨之,欲請高句麗兵,以報百濟之怨,王許之。將行,謂庾信曰:「吾與公同體,為國股肱。今我若入彼見害,則公其無心乎。」庾信曰:「公若往而不還,則僕之馬跡,必踐於麗、濟兩王之庭。苟不如此,將何面目以見國人乎。」春秋感悅,與公互噬手指,歃血以盟曰:「吾計日六旬乃還,若過此不來,則無再見之期矣。」遂相別。後庾信為押梁州軍主。春秋與訓信沙干,聘高句麗,行至代買縣,縣人豆斯支沙干,贈靑布三百步。旣入彼境,麗王遣太大對盧盖金館之,燕饗有加。或告麗王曰:「新羅使者,非庸人也。今來,殆欲觀我形勢也,王其圖之,俾無後患。」王欲橫問,因其難對而辱之。

선덕대왕 십일년 임인에 백제가 대량주를 무찔러, 춘추공의 딸 고타소랑이 지아비 품석을 따라 죽었다. 춘추가 이를 한스러워하여 고구려에 군사를 청해 백제의 원한을 갚고자 하니 왕이 허락하였다.

떠나려 할 때 유신에게 말하였다. "나와 공은 한 몸이라 나라의 팔다리요. 이제 내가 만약 저기 들어가 해를 입으면 공이 무심하겠소."

유신이 말하였다. "공이 만약 가서 돌아오지 않으면 제 말발굽이 반드시 고구려와 백제 두 왕의 뜰을 밟을 것입니다. 진실로 이와 같이 하지 않으면 장차 무슨 낯으로 나라 사람을 보겠습니까."

춘추가 감동하고 기뻐하여 공과 서로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마시며 맹세하였다. "내가 날을 헤아리니 예순 날이면 돌아오겠소. 만약 이를 넘겨 오지 않으면 다시 볼 기약이 없을 것이오." 마침내 서로 헤어졌다.

뒤에 유신은 압량주 군주가 되었다.

춘추가 훈신 사간과 함께 고구려에 예방하러 가다가 대매현에 이르니, 현 사람 두사지 사간이 푸른 베 삼백 보를 주었다. 이미 저쪽 지경에 들어가매 고구려 왕이 태대대로 개금을 보내어 객관에 머물게 하고 잔치를 더하여 베풀었다.

어떤 이가 고구려 왕에게 알렸다. "신라 사자는 예사 사람이 아닙니다. 이제 온 것은 아마도 우리 형세를 보려는 것이니 왕께서는 꾀하시어 뒷걱정이 없게 하소서." 왕이 대답하기 어려운 것을 물어 그로 인하여 욕보이려 하였다.

10거북과 토끼 이야기

謂曰:「麻木峴與竹嶺,本我國地,若不我還,則不得歸。」春秋對曰:「國家土地,非臣子所專,臣不敢聞命。」王怒囚之,欲戮未果。春秋以靑布三百步,密贈王之寵臣先道解。道解以饌具來,相飲酒酣,戱語曰:「子亦嘗聞龜兎之說乎。昔,東海龍女病心,醫言:『得兎肝合藥,則可療也。』然海中無兎,不奈之何。有一龜白龍王言:『吾能得之。』遂登陸見兎言:『海中有一島,淸泉白石,茂林佳菓,寒暑不能到,鷹隼不能侵。爾若得至,可以安居無患。』因負兎背上,游行二三里許。龜顧謂兎曰:『今龍女被病,須兎肝為藥,故不憚勞,負爾來耳。』兎曰:『噫,吾神明之後,能出五藏,洗而納之。日者小覺心煩,遂出肝心洗之,暫置巖石之底,聞爾甘言徑來,肝尚在彼,何不廻歸取肝,則汝得所求,吾雖無肝尚活,豈不兩相宜哉。

이르기를 "마목현과 죽령은 본디 우리 나라 땅이니 만약 우리에게 돌려주지 않으면 돌아가지 못하리라" 하였다.

춘추가 답하였다. "나라의 토지는 신하 된 자가 마음대로 할 바가 아니니 신은 감히 명을 듣지 못하겠습니다."

왕이 노하여 가두고 죽이려 하다가 이루지 못하였다. 춘추가 푸른 베 삼백 보로 몰래 왕의 총애하는 신하 선도해에게 주었다. 도해가 음식을 갖추어 와서 서로 마시다가 술이 무르익자 우스갯소리로 말하였다.

"그대도 일찍이 거북과 토끼 이야기를 들었소. 옛날 동해 용왕의 딸이 심장을 앓았는데 의원이 말하기를 '토끼의 간을 얻어 약에 넣으면 고칠 수 있다' 하였소. 그러나 바다 가운데 토끼가 없으니 어찌할 수 없었소.

한 거북이 용왕에게 아뢰기를 '내가 얻을 수 있습니다' 하고, 마침내 뭍에 올라 토끼를 보고 말하였소. '바다 가운데 섬이 하나 있는데 맑은 샘과 흰 돌과 무성한 숲과 좋은 과일이 있어 추위와 더위가 이르지 못하고 매와 새매가 침노하지 못하오. 그대가 만약 이를 수 있으면 편안히 살아 근심이 없을 것이오.'

이에 토끼를 등에 업고 두세 리쯤 헤엄쳐 가다가, 거북이 돌아보며 토끼에게 말하였소. '이제 용왕의 딸이 병들었는데 모름지기 토끼의 간이 약이 되므로, 수고로움을 꺼리지 않고 그대를 업고 온 것이오.'

토끼가 말하였소. '아아, 나는 신령한 이의 후예라 능히 오장을 내어 씻어 넣을 수 있소. 일전에 조금 마음이 답답하여 마침내 간과 심장을 내어 씻어 잠시 바위 밑에 두었는데, 그대의 단 말을 듣고 곧바로 왔으므로 간이 아직 거기 있소. 어찌 돌아가 간을 가져오지 않겠소. 그러면 그대는 구하는 바를 얻고 나는 비록 간이 없어도 오히려 살 것이니, 어찌 둘 다 서로 마땅하지 않겠소.'

11유신이 삼천 용사를 뽑다

』龜信之而還,纔上岸,兎脫入草中,請謂龜曰:『愚哉,汝也,豈有無肝而生者乎。』龜憫默而退。」春秋聞其言,喩其意。移書於王曰:「二嶺,本大國地。分令臣歸國,請吾王還之。謂予不信,有如皦日。」王迺悅焉。春秋入高句麗,過六旬未還。庾信揀得國內勇士三千人,相語曰:「吾聞見危致命,臨難忘身者,烈士之志也。夫一人致死當百人,百人致死當千人,千人致死當萬人,則可以橫行天下。今國之賢相,被他國之拘執,其可畏不犯難乎。」於是衆人曰:「雖出萬死一生之中,敢不從將軍之令乎。」遂請王以定行期。時,高句麗諜者浮屠德昌,使告於王。王前聞春秋盟辭,又聞諜者之言,不敢復留,厚禮而歸之。及出境,謂送者曰:「吾欲釋憾於百濟,故來請師。

거북이 이를 믿고 돌아와 겨우 언덕에 오르자 토끼가 벗어나 풀 속으로 들어가며 거북에게 말하였소. '어리석구나 너는. 어찌 간 없이 사는 자가 있겠는가.' 거북이 민망하여 잠자코 물러갔소."

춘추가 그 말을 듣고 그 뜻을 깨달았다. 왕에게 글을 보내어 말하였다. "두 고개는 본디 큰 나라 땅입니다. 신을 나라에 돌아가게 해 주시면 우리 왕께 청하여 돌려드리겠습니다. 저를 못 믿겠거든 밝은 해가 있습니다." 왕이 이에 기뻐하였다.

춘추가 고구려에 들어간 지 예순 날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유신이 나라 안의 용사 삼천 사람을 가려 얻어 서로 말하였다. "내가 듣기로 위태로움을 보고 목숨을 바치며 어려움에 임하여 몸을 잊는 것이 열사의 뜻이라 하였다. 무릇 한 사람이 죽기를 다하면 백 사람을 당하고, 백 사람이 죽기를 다하면 천 사람을 당하고, 천 사람이 죽기를 다하면 만 사람을 당하니 천하를 마음대로 다닐 수 있다. 이제 나라의 어진 재상이 다른 나라에 붙들려 있는데, 그것이 두렵다 하여 어려움을 무릅쓰지 않겠는가."

이에 여러 사람이 말하였다. "비록 만 번 죽고 한 번 사는 가운데 나가더라도 감히 장군의 명을 좇지 않겠습니까." 마침내 왕에게 청하여 떠날 날을 정하였다.

그때 고구려의 첩자인 승려 덕창이 왕에게 알렸다. 왕이 앞서 춘추의 맹세하는 말을 들었고 또 첩자의 말을 들으매 감히 다시 붙들어 두지 못하고 두터운 예로 돌려보냈다.

지경을 나서매 배웅하는 이에게 말하였다. "내가 백제에 원한을 풀고자 하여 군사를 청하러 왔는데,

12대왕이 허락하지 않았다

大王不許之,而反求土地,此非臣所得專。嚮,與大王書者,圖逭死耳。」

대왕이 허락하지 않고 도리어 땅을 구하니 이는 신하가 마음대로 할 바가 아니오. 지난번 대왕께 드린 글은 죽음을 벗어나려 한 것일 뿐이오."

협주 1

此與本言眞平王十一善德王十一年所書,一事而小異,以皆古記所傳,故兩存之。

이는 본래 진평왕 십일년과 선덕왕 십일년에 적은 것과 한 가지 일이면서 조금 다르나, 다 『고기』에 전하는 바이므로 둘 다 남겨 둔다.

13상장군이 되어 일곱 성을 빼앗다

庾信為押梁州軍主,十三年為蘇判。秋九月,王命為上將軍,使領兵伐百濟加兮城、省熱城、同火城等七城,大克之,因開加兮之津。

유신이 압량주 군주가 되었고 십삼년에 소판이 되었다. 가을 구월에 왕이 명하여 상장군으로 삼고 군사를 거느리고 백제 가혜성과 성열성과 동화성 등 일곱 성을 치게 하니 크게 이겼고, 이로 인하여 가혜의 나루를 열었다.

14집 앞을 지나며 물만 마시다

乙巳正月,歸未見王,封人急報:百濟大軍來,攻我買利浦城。王又拜庾信為上州將軍,令拒之。庾信聞命卽駕,不見妻子,逆擊百濟軍走之,斬首二千級。三月,還命王宮,未歸家,又急告:百濟兵出,屯于其國界,將大擧兵侵我。王復告庾信曰:「請公不憚勞遄行,及其未至備之。」庾信又不入家,練軍繕兵,向西行。于時,其家人皆出門外待來。庾信過門,不顧而行,至五十步許,駐馬,令取漿水於宅,啜之曰:「吾家之水,尚有舊味。」於是,軍衆皆云:「大將軍猶如此,我輩豈以離別骨肉為恨乎。」及至疆埸,百濟人望我兵衛,不敢迫,乃退。大王聞之甚喜,加爵賞。

을사 정월에 돌아와 아직 왕을 뵙지 못하였는데, 변방을 지키는 이가 급히 알렸다. "백제의 큰 군사가 와서 우리 매리포성을 칩니다." 왕이 또 유신을 상주장군으로 삼아 막게 하였다. 유신이 명을 듣고 곧 수레에 올라 처자를 보지 않고 백제 군사를 맞아 쳐서 쫓고 이천 급을 베었다.

삼월에 왕궁에 돌아와 명을 아뢰고 아직 집에 가지 못하였는데, 또 급히 알렸다. "백제 군사가 나와 그 나라 지경에 진 치고 장차 크게 군사를 일으켜 우리를 침노하려 합니다."

왕이 다시 유신에게 알렸다. "청컨대 공은 수고로움을 꺼리지 말고 빨리 가서 그들이 이르기 전에 대비하시오."

유신이 또 집에 들어가지 않고 군사를 훈련하고 병기를 손질하여 서쪽으로 갔다. 이때에 그 집 사람들이 다 문 밖에 나와 오기를 기다렸다. 유신이 문을 지나며 돌아보지 않고 가다가 오십 보쯤에 이르러 말을 멈추고 집에서 미음물을 가져오게 하여 마시고 말하였다. "우리 집 물이 아직도 옛 맛이 있구나."

이에 군사들이 다 말하였다. "대장군도 오히려 이러하거늘 우리가 어찌 골육과 헤어짐을 한스러워하겠는가."

강토에 이르매 백제 사람이 신라 군사의 호위를 바라보고 감히 다그치지 못하고 이내 물러났다. 대왕이 듣고 매우 기뻐하여 벼슬과 상을 더하였다.

15비담의 난과 떨어진 별

十六年丁未,是善德王末年,眞德王元年也。大臣毗曇、廉宗,謂女主不能善理,擧兵欲廢之,王自內禦之。毗曇等屯於明活城,王師營於月城,攻守十日不解。丙夜,大星落於月城。毗曇等謂士卒曰:「吾聞落星之下,必有流血。此殆女主敗衄之兆也。」士卒呼吼聲振天地。大王聞之,恐懼失次。庾信見王曰:「吉凶無常,惟人所召。故紂以赤雀亡,魯以獲麟衰,高宗以雉雊興,鄭公以龍鬪昌。故知德勝於妖,則星辰變異,不足畏也,請王勿憂。」乃造偶人抱火,載於風鳶而颺之,若上天然。翌日,使人傳言於路曰:「昨夜,落星還上。」使賊軍疑焉。又刑白馬,祭於落星之地,呪曰:「天道則陽剛,而陰柔;人道,則君尊而臣卑。苟或易之,卽為大亂。今,毗曇等以臣而謀君,自下而犯上。

십육년 정미는 선덕왕 말년이요 진덕왕 원년이다. 대신 비담과 염종이 여자 임금은 잘 다스리지 못한다 하여 군사를 일으켜 폐하려 하니 왕이 안에서 막았다. 비담 등은 명활성에 진 치고 왕의 군사는 월성에 진을 치고, 치고 지키기를 열흘이 되도록 풀지 못하였다.

한밤중에 큰 별이 월성에 떨어졌다. 비담 등이 군사에게 말하였다. "내가 듣기로 별이 떨어진 아래에는 반드시 피 흘림이 있다 하니, 이는 아마 여자 임금이 패할 조짐이다." 군사들이 부르짖는 소리가 하늘과 땅을 흔들었다.

대왕이 이를 듣고 두려워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유신이 왕을 뵙고 말하였다. "길하고 흉함은 정해진 것이 없고 오직 사람이 부르는 바입니다. 그러므로 은나라 주왕은 붉은 참새로 망하였고 노나라는 기린을 얻고 쇠하였으며, 고종은 꿩이 울고 일어났고 정공은 용이 싸우고도 창성하였습니다. 그러니 덕이 요괴를 이기면 별의 이변은 두려울 것이 없음을 알겠으니, 왕께서는 근심하지 마소서."

이에 허수아비를 만들어 불을 안기고 연에 실어 날리니 하늘로 오르는 듯하였다. 이튿날 사람을 시켜 길에 말을 퍼뜨리게 하였다. "어젯밤 떨어진 별이 도로 올라갔다." 도둑의 군사로 하여금 의심하게 한 것이다.

또 흰 말을 잡아 별 떨어진 곳에서 제사하며 빌었다. "하늘의 도는 양이 굳세고 음이 부드러우며, 사람의 도는 임금이 높고 신하가 낮습니다. 진실로 혹 이를 바꾸면 곧 큰 어지러움이 됩니다. 이제 비담 등이 신하로서 임금을 꾀하고 아래로서 위를 범하니,

16비담을 베다

此所謂亂臣賊子,人神所同疾,天地所不容。今,天若無意於此,而反見星怪於王城,此臣之所疑惑而不喩者也。惟天之威,從人之欲,善善惡惡,無作神羞。」於是,督諸將卒奮擊之,毗曇等敗走。追斬之,夷九族,連坐者三十人。

이는 이른바 어지러운 신하요 도둑 자식이라 사람과 신이 다 같이 미워하는 바요 하늘과 땅이 용납하지 않는 바입니다. 이제 하늘이 만약 여기에 뜻이 없으면서 도리어 왕성에 별의 괴이함을 보이셨다면, 이는 신이 의혹하여 깨닫지 못하는 바입니다. 오직 하늘의 위엄으로 사람의 바람을 좇아 착한 것을 착하다 하고 악한 것을 악하다 하시어 신령의 부끄러움을 짓지 마소서."

이에 여러 장수와 군사를 독려하여 떨쳐 치니 비담 등이 져서 달아났다. 뒤쫓아 베고 구족을 없애니 연좌된 이가 서른 사람이었다.

17비녕자가 죽고 당나라가 군사를 내다

冬十月,百濟兵來,圍茂山、甘勿、桐岑等三城,王遣庾信,率步騎一萬拒之。苦戰氣竭,庾信謂丕寧子曰:「今日之事急矣,非子,誰能激衆心乎。」丕寧子拜曰:「敢不惟命之從。」遂赴敵。子擧眞及家奴合節隨之,突劒戟,力戰死之。軍士望之,感勵爭進,大敗賊兵,斬首三千餘級。眞德王大和元年戊申,春秋以不得請於高句麗,遂入唐乞師。太宗皇帝曰:「聞爾國庾信之名,其為人也如何?」對曰:「庾信雖少有才智,若不籍天威,豈易除隣患。」帝曰:「誠君子之國也。」乃詔許,勑將軍蘇定方,以師二十萬,徂征百濟。時,庾信為押梁州軍主,若無意於軍事,飲酒作樂,屢經旬月。州人以庾信為庸將,譏謗之曰:「衆人安居日久,力有餘,可以一戰,而將軍慵惰,如之何?」庾信聞之,知民可用,告大王曰:「今觀民心,可以有事。

겨울 시월에 백제 군사가 와서 무산성과 감물성과 동잠성 등 세 성을 에우니, 왕이 유신을 보내어 보병과 기병 일만을 거느리고 막게 하였다. 괴로이 싸워 기운이 다하매 유신이 비녕자에게 말하였다. "오늘의 일이 급하니 그대가 아니면 누가 여럿의 마음을 격동하겠는가."

비녕자가 절하고 말하였다. "감히 명을 좇지 않겠습니까." 마침내 적에게 나아갔다. 아들 거진과 집의 종 합절이 따라가 칼과 창을 무릅쓰고 힘껏 싸우다 죽었다. 군사들이 이를 바라보고 감동하여 힘써 다투어 나아가니, 도둑의 군사를 크게 무찌르고 삼천여 급을 베었다.

진덕왕 태화 원년 무신에 춘추가 고구려에 청하지 못하였으므로 마침내 당나라에 들어가 군사를 빌었다. 태종황제가 말하였다. "너희 나라 유신의 이름을 들었는데 그 사람됨이 어떠한가."

답하였다. "유신이 비록 조금 재주와 슬기가 있으나 만약 하늘의 위엄에 기대지 않는다면 어찌 이웃의 근심을 쉽게 없애겠습니까."

황제가 말하였다. "참으로 군자의 나라로다." 이에 조서로 허락하고 장군 소정방에게 칙명하여 군사 이십만으로 가서 백제를 치게 하였다.

그때 유신이 압량주 군주가 되어 군사 일에 뜻이 없는 듯이 술을 마시고 풍류를 즐기며 여러 달을 지냈다. 주 사람들이 유신을 용렬한 장수라 하여 헐뜯어 말하였다. "여러 사람이 편안히 지낸 지 오래되어 힘이 남으니 한 번 싸울 만한데 장군이 게으르니 어찌하랴."

유신이 이를 듣고 백성을 쓸 만함을 알아 대왕에게 아뢰었다. "이제 민심을 보니 일을 할 만합니다.

18대량성 밖에서 백제를 크게 깨뜨리다

請伐百濟,以報大梁州之役。」王曰:「以小觸大,危將奈何?」對曰:「兵之勝否,不在大小,顧其人心何如耳。故紂有億兆人,離心離德,不如周家十亂同心同德。今,吾人一意,可與同死生,彼百濟者不足畏也。」王乃許之。遂簡練州兵赴敵。至大梁城外,百濟逆拒之。佯北不勝,至玉門谷。百濟輕之,大率衆來,伏發擊其前後,大敗之,獲百濟將軍八人,斬獲一千級,於是,使告百濟將軍曰:「我軍主品釋及其妻金氏之骨,埋於爾國獄中。今,爾裨將八人,見捉於我匍匐,請命。我以狐豹首丘山之意,未忍殺之。今,爾送死二人之骨,易生八人,可乎。」百濟仲常佐平言於王曰:「羅人骸骨,留之無益,可以送之。若羅人失信,不還我八人,則曲在彼,直在我,何患之有?」乃掘品釋夫妻之骨,櫝而送之。

청컨대 백제를 쳐서 대량주의 싸움을 갚게 하소서."

왕이 말하였다. "작은 것으로 큰 것을 건드리니 위태로우면 장차 어찌하려는가."

답하였다. "군사의 이기고 짐은 크고 작음에 있지 않고 다만 그 인심이 어떠한가에 달렸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주왕에게 억조 사람이 있었으나 마음이 떠나고 덕이 떠나, 주나라 집의 열 사람이 마음을 같이하고 덕을 같이한 것만 못하였습니다. 이제 우리 사람이 한뜻이라 함께 죽고 살 수 있으니 저 백제는 두려울 것이 못 됩니다."

왕이 이에 허락하였다.

마침내 주의 군사를 가려 훈련하여 적에게 나아갔다. 대량성 밖에 이르니 백제가 맞아 막았다. 거짓으로 져서 이기지 못한 체하고 옥문곡에 이르렀다. 백제가 얕보아 크게 무리를 거느리고 오매 숨은 군사가 일어나 그 앞뒤를 치니 크게 무찔러, 백제 장군 여덟 사람을 사로잡고 일천 급을 베고 얻었다.

이에 백제 장군에게 알렸다. "우리 군주 품석과 그 아내 김씨의 뼈가 너희 나라 옥 안에 묻혀 있다. 이제 너희 비장 여덟 사람이 우리에게 잡혀 기어 다니며 목숨을 빈다. 나는 여우와 표범이 죽을 때 머리를 언덕으로 돌리는 뜻으로 차마 죽이지 못하겠다. 이제 너희가 죽은 두 사람의 뼈를 보내고 산 여덟 사람과 바꾸는 것이 어떠하냐."

백제의 중상 좌평이 왕에게 말하였다. "신라 사람의 해골은 두어도 이로울 것이 없으니 보내는 것이 옳습니다. 만약 신라 사람이 믿음을 잃어 우리 여덟 사람을 돌려주지 않으면 그름은 저쪽에 있고 바름은 우리에게 있으니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이에 품석 부부의 뼈를 파서 궤에 담아 보냈다.

협주 1

一作忠常。

백제의 중상(仲常)은 충상(忠常)으로도 쓴다.

19잎 하나 진다고 무성한 숲이 상하랴

庾信曰:「一葉落,茂林無所損,一塵集,大山無所增。」許八人生還。遂乘勝入百濟之境,攻拔嶽城等十二城,斬首二萬餘級,生獲九千人。論功,增秩伊飡,為上州行軍大摠管。又入賊境,屠進禮等九城,斬首九千餘級,虜得六百人。春秋入唐,請得兵二十萬來,見庾信曰:「死生有命,故得生還,復與公相見,何幸如焉。」庾信對曰:「下臣仗國威靈,再與百濟大戰,拔城二十,斬獲三萬餘人,又使品釋公及其夫人之骨,得反鄕里。此皆天幸所致也,吾何力焉。」

유신이 말하였다. "잎 하나 진다고 무성한 숲이 상할 것이 없고, 티끌 하나 모인다고 큰 산이 더할 것이 없다." 여덟 사람을 놓아 살려 보냈다.

마침내 이긴 기세를 타고 백제 지경에 들어가 악성 등 열두 성을 쳐서 빼앗고 이만여 급을 베었으며 구천 사람을 사로잡았다. 공을 논하여 벼슬을 올려 이찬으로 삼고 상주행군대총관을 삼았다. 또 적의 지경에 들어가 진례 등 아홉 성을 무찌르고 구천여 급을 베었으며 육백 사람을 사로잡았다.

춘추가 당나라에 들어가 군사 이십만을 청해 얻어 와서 유신을 보고 말하였다. "죽고 사는 것은 명이 있으므로 살아 돌아와 다시 공과 서로 보게 되었으니 무슨 다행이 이와 같겠소."

유신이 답하였다. "아랫사람인 제가 나라의 위엄과 신령함에 기대어 두 번 백제와 크게 싸워 성 스물을 빼앗고 삼만여 사람을 베고 사로잡았으며, 또 품석공과 그 부인의 뼈를 고향에 돌아오게 하였습니다. 이는 다 하늘의 다행이 이룬 바이니 제게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