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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 중金庾信中

삼국사기 三國史記 · 김부식(金富軾) 등 · 1145년 (고려 인종 23) · 단락 14 · 한자 2,831자 · 낭독 11.3분

「삼국사기」 열전 「김유신 중」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 역사서. 신라·고구려·백제 본기와 지·표·열전으로 이루어졌다. 김부식이 곳곳에 「論曰」로 자기 평을 달아 두어, 편찬자가 무엇을 의심하고 무엇을 나무랐는지가 그대로 남아 있다.

1도살성에서 은상을 베다

太和二年秋八月,百濟將軍殷相,來攻石吐等七城。王命庾信及竹旨、陳春、天存等將軍,出禦之。分三軍為五道,擊之,互相勝負,經旬不解,至於僵屍滿野,流血浮杵。於是,屯於道薩城下,歇馬餉士,以圖再擧。時,有水鳥東飛,過庾信之幕,將士見之,以為不祥。庾信曰:「此不足怪也。」謂衆曰:「今日,必有百濟人來諜。汝等佯不知,勿敢誰何。」又使徇于軍中曰:「堅壁不動,待明日援軍至,然後,決戰。」諜者聞之,歸報殷相。殷相等謂有加兵,不能不疑懼。於是,庾信等一時奮擊,大克之,生獲將軍達率正仲、士卒一百人,斬佐平殷相、達率自堅等十人及卒八千九百八十人,獲馬一萬匹、鎧一千八百領,其他器械稱是。及歸還,路見百濟佐平正福與卒一千人來降,皆放之,任其所往。至京城,大王迎門,勞慰優厚。

태화 이년 가을 팔월에 백제 장군 은상이 석토 등 일곱 성을 치러 왔다. 왕이 유신과 죽지·진춘·천존 등 장군에게 명하여 나가 막게 하였다. 삼군을 나누어 다섯 길로 삼아 치니 서로 이기고 지기를 열흘이 되도록 풀지 못하여, 넘어진 주검이 들에 가득하고 흐르는 피에 절굿공이가 뜰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도살성 아래에 진 치고 말을 쉬게 하고 군사를 먹여 다시 일으키기를 꾀하였다. 그때 물새가 동쪽으로 날아 유신의 장막을 지나니 장수와 군사가 이를 보고 상서롭지 못하다 하였다.

유신이 말하였다. "이는 괴이할 것이 없다." 여럿에게 일렀다. "오늘 반드시 백제 사람이 와서 엿볼 것이다. 너희는 짐짓 모르는 체하고 감히 누구냐고 묻지 말라."

또 군중에 돌려 알리게 하였다. "성벽을 굳게 하고 움직이지 말라. 내일 구원군이 이르기를 기다린 뒤에 결전하겠다."

엿보던 이가 이를 듣고 돌아가 은상에게 알렸다. 은상 등이 군사를 더하는 줄로 여겨 의심하고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유신 등이 한꺼번에 떨쳐 쳐서 크게 이기고, 장군 달솔 정중과 군사 일백 사람을 사로잡고, 좌평 은상과 달솔 자견 등 열 사람과 군사 팔천구백여든 사람을 베었으며, 말 일만 필과 갑옷 일천팔백 벌을 얻었고 그 밖의 병기도 이만하였다.

돌아올 때 길에서 백제 좌평 정복이 군사 일천 사람과 함께 항복해 오는 것을 보고 다 놓아 그 가고자 하는 대로 맡겼다. 서울에 이르매 대왕이 문에서 맞아 위로하기를 넉넉하고 두터이 하였다.

2춘추를 맞아 세우다

永徽五年,眞德大王薨,無嗣。庾信與宰相閼川伊飡謀,迎春秋伊飡,卽位,是為太宗大王。

영휘 오년에 진덕대왕이 죽고 뒤이을 이가 없었다. 유신이 재상 알천 이찬과 꾀하여 춘추 이찬을 맞아 즉위하게 하니 이가 태종대왕이다.

3백제에 도가 없다

永徽六年乙卯秋九月,庾信入百濟,攻刀比川城克之。是時,百濟君臣,奢泰淫逸,不恤國事。民怨神怒,災怪屢見。庾信告於王曰:「百濟無道,其罪過於桀、紂,此誠順天弔民伐罪之秋也。」

영휘 육년 을묘 가을 구월에 유신이 백제에 들어가 도비천성을 쳐서 이겼다.

이때에 백제의 임금과 신하가 사치하고 음란하며 방탕하여 나랏일을 돌보지 않으니, 백성이 원망하고 신이 노하여 재앙과 괴이함이 여러 번 나타났다. 유신이 왕에게 아뢰었다. "백제가 도가 없어 그 죄가 걸과 주보다 지나치니, 이는 참으로 하늘을 좇아 백성을 위로하고 죄를 칠 때입니다."

4조미갑이 임자에게 말을 전하다

先是,租未𡊠級飡為夫山縣令,被虜於百濟,為佐平任子之家奴。從事勤恪,曾無懈慢,任子憐之不疑,縱其出入,乃逃歸,以百濟之事,告庾信。庾信知租未𡊠忠正而可用,乃語曰:「吾聞任子專百濟之事,思有以與謀而未末由。子其為我,再歸言之。」答曰:「公不以僕為不肖,而指使之,雖死無悔。」遂復入於百濟,告任子曰:「奴自以謂旣為國民,宜知國俗,是以,出遊累旬不返,不勝犬馬戀主之誠,故此來耳。」任子信之不責。租未𡊠伺間報曰:「前者,畏罪不敢直言,其實,往新羅還來。庾信諭我來告於君曰:『邦國興亡,不可先知,若君國亡,則君依於我國,我國亡,則吾依於君國。』」任子聞之,嘿然無言。租未𡊠惶懼而退,待罪數月。任子喚而問之曰:「汝前說庾信之言,若何?」租未𡊠驚恐而對,如前所言。任子曰:「爾所傳,我已悉知,可歸告之。」遂來說,兼及中外之事,丁寧詳悉。於是,愈急幷吞之謀。

이보다 앞서 조미갑 급찬이 부산현령이 되었다가 백제에 사로잡혀 좌평 임자의 집 종이 되었다. 일을 하기에 부지런하고 삼가 일찍이 게으르고 거만함이 없으니, 임자가 가엾이 여겨 의심하지 않고 드나드는 것을 놓아두었다. 이에 달아나 돌아와 백제의 일을 유신에게 알렸다.

유신이 조미갑이 충성스럽고 바르며 쓸 만한 줄 알고 이에 말하였다. "내가 들으니 임자가 백제의 일을 오로지한다 하니, 그와 더불어 꾀할 방도를 생각하였으나 아직 길이 없었다. 그대가 나를 위하여 다시 돌아가 말해 주겠는가."

답하였다. "공이 저를 어질지 못하다 하지 않으시고 가리켜 부리시니, 비록 죽어도 뉘우침이 없겠습니다."

마침내 다시 백제에 들어가 임자에게 아뢰었다. "종이 스스로 이미 나라의 백성이 되었으니 마땅히 나라의 풍속을 알아야 한다 여겨, 나가 노닌 지 여러 열흘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개와 말이 주인을 그리는 정성을 이기지 못하여 그러므로 이렇게 왔을 뿐입니다." 임자가 이를 믿고 꾸짖지 않았다.

조미갑이 틈을 엿보아 아뢰었다. "지난번에는 죄가 두려워 감히 곧이 말하지 못하였습니다. 실은 신라에 갔다가 돌아온 것입니다. 유신이 저를 타일러 와서 어른께 아뢰라 하며 말하기를 '나라의 흥함과 망함은 미리 알 수 없으니, 만약 그대 나라가 망하면 그대는 우리 나라에 의지하고 우리 나라가 망하면 내가 그대 나라에 의지하겠다' 하였습니다."

임자가 이를 듣고 잠자코 말이 없었다. 조미갑이 두려워하며 물러나 두어 달을 죄를 기다렸다.

임자가 불러 물었다. "네가 앞서 말한 유신의 말이 어떠하다 하였느냐." 조미갑이 놀라고 두려워하며 앞서 말한 대로 답하였다.

임자가 말하였다. "네가 전한 바를 내가 이미 다 알았으니 돌아가 알려도 좋다."

마침내 돌아와 안팎의 일까지 아울러 정녕하고 자세히 말하였다. 이에 아울러 삼킬 꾀를 더욱 급히 하였다.

5백제를 없애다

太宗大王七年庚申夏六月,大王與太子法敏,將伐百濟,大發兵,至南川而營。時,入唐請師波珍飡金仁問,與唐大將軍蘇定方、劉伯英,領兵十三萬,過海到德物島,先遣從者文泉來告。王命太子與將軍庾信、眞珠、天存等,以大船一百艘,載兵士會之。太子見將軍蘇定方,定方謂太子曰:「吾由海路,太子登陸行,以七月十日,會于百濟王都泗沘之城。」太子來告大王,率將士,行至沙羅之停。將軍蘇定方、金仁問等,沿海入技。海岸泥濘,陷不可行。乃布柳席,以出師。唐、羅合擊百濟滅之。此役也,庾信之功為多。於是,唐皇帝聞之,遣使褒嘉之。將軍定方謂庾信、仁問、良圖三人曰:「吾受命以便宜從事,今以所得百濟之地,分錫公等為食邑,以酬厥功,如何?」庾信對曰:「大將軍以天兵來,副寡君之望,雪小國之讐,寡君及一國臣民,喜抃之不暇,而吾等獨受賜以自利,其如義何。

태종대왕 칠년 경신 여름 유월에 대왕이 태자 법민과 함께 백제를 치려고 크게 군사를 일으켜 남천에 이르러 진을 쳤다.

그때 당나라에 들어가 군사를 청하였던 파진찬 김인문이 당나라 대장군 소정방과 유백영과 함께 군사 십삼만을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 덕물도에 이르러, 먼저 종자 문천을 보내어 알렸다. 왕이 태자와 장군 유신·진주·천존 등에게 명하여 큰 배 일백 척에 군사를 싣고 만나게 하였다.

태자가 장군 소정방을 보니 정방이 태자에게 말하였다. "나는 바닷길로 가고 태자는 뭍에 올라 가서, 칠월 열흘에 백제 왕도 사비성에서 만납시다."

태자가 와서 대왕에게 아뢰고 장수와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사라의 정에 이르렀다.

장군 소정방과 김인문 등이 바닷가를 따라 기벌포에 들어가는데, 바닷가가 진창이라 빠져서 다닐 수 없으므로 버들자리를 펴서 군사를 내었다. 당나라와 신라가 함께 쳐서 백제를 없앴다. 이 싸움에 유신의 공이 많았다. 이에 당나라 황제가 이를 듣고 사신을 보내어 기려 아름다이 여겼다.

장군 정방이 유신과 인문과 양도 세 사람에게 말하였다. "내가 명을 받아 형편에 따라 일하니, 이제 얻은 백제의 땅을 공들에게 나누어 주어 식읍으로 삼아 그 공을 갚고자 하는데 어떠하오."

유신이 답하였다. "대장군이 하늘의 군사를 거느리고 오시어 우리 임금의 바람에 맞추고 작은 나라의 원수를 씻어 주시니, 우리 임금과 온 나라 신하와 백성이 기뻐 손뼉 치기에도 겨를이 없는데, 우리만 홀로 내리심을 받아 스스로 이롭게 한다면 그 의로움에 어떠하겠습니까."

6당나라가 신라를 엿보다

」遂不受。唐人旣滅百濟,營於泗沘之丘,陰謀侵新羅。我王知之,召群臣問策。多美公進曰:「令我民,詐為百濟之人,服其服,若欲為賊者,唐人必擊之。因與之戰,可以得志矣。」庾信曰:「斯言可取,請從之。」王曰:「唐軍為我滅敵,而反與之戰,天其祐我耶。」庾信曰:「犬畏其主,而主踏其脚,則咬之,豈可遇難,而不自救乎。請大王許之。」唐人諜知我有備,虜百濟王及臣寮九十三人、卒二萬人,以九月三日,自泗沘泛船而歸,留郞將劉仁願等,鎭守之。定方旣獻俘,天子慰藉之曰:「何不因而伐新羅。」定方曰:「新羅其君仁而愛民,其臣忠以事國,下之人事其上,如父兄,雖小,不可謀也。」

마침내 받지 않았다.

당나라 사람이 이미 백제를 없애고 사비 언덕에 진을 치고 몰래 신라를 침노하기를 꾀하였다. 신라 왕이 이를 알고 여러 신하를 불러 계책을 물었다.

다미공이 나아가 말하였다. "우리 백성으로 하여금 거짓으로 백제 사람인 체하여 그 옷을 입고 도둑질하려는 듯이 하게 하면, 당나라 사람이 반드시 칠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그와 싸우면 뜻을 얻을 수 있습니다."

유신이 말하였다. "이 말이 취할 만하니 청컨대 좇으소서."

왕이 말하였다. "당나라 군사가 우리를 위하여 적을 없앴는데 도리어 그와 싸우면 하늘이 우리를 돕겠는가."

유신이 말하였다. "개가 그 주인을 두려워하나 주인이 그 다리를 밟으면 무는 법이니, 어찌 어려움을 만나 스스로 구하지 않겠습니까. 청컨대 대왕께서는 허락하소서."

당나라 사람이 엿보아 신라에 대비가 있음을 알고, 백제 왕과 신하 아흔세 사람과 군사 이만 사람을 사로잡아 구월 사흘에 사비에서 배를 띄워 돌아가고, 낭장 유인원 등을 남겨 지키게 하였다.

정방이 사로잡은 이들을 바치매 천자가 위로하며 말하였다. "어찌하여 그 김에 신라를 치지 않았는가."

정방이 말하였다. "신라는 그 임금이 어질어 백성을 사랑하고 그 신하가 충성으로 나라를 섬기며, 아랫사람이 윗사람 섬기기를 아비와 형같이 하니, 비록 작으나 꾀할 수 없습니다."

7북한산성이 풀리고 고구려 첩자를 보내다

龍朔元年春,王謂百濟餘燼尚在,不可不滅,以伊飡品日、蘇判文王、大阿飡良圖等,為將軍,往伐之,不克。又遣伊飡欽純一作欽春、眞欽、天存、蘇判竹旨等,濟師。高句麗、靺鞨,謂新羅銳兵皆在百濟,內虛可擣,發兵,水陸並進,圍北漢山城。高句麗營其西,靺鞨屯其東,攻擊浹旬,城中危懼,忽有大星落於賊營,又雷雨震擊,賊等疑駭,解圍而遁。初,庾信聞賊圍城曰:「人力旣竭,陰助可資。」詣佛寺,設壇祈禱。會有天變,皆謂至誠所感也。庾信嘗以中秋夜,領子弟,立大門外,忽有人從西來。庾信知高句麗諜者,呼使之前曰:「而國有底事乎。」其人俯而不敢對。庾信曰:「無畏也,但以實告。」又不言。庾信告之曰:「吾國王,上不違天意,下不失人心,百姓欣然,皆樂其業,今爾見之,往告而國人。」遂慰送之。麗人聞之曰:「新羅雖小國,庾信為相,不可輕也。」

용삭 원년 봄에 왕이 백제의 남은 무리가 아직 있으니 없애지 않을 수 없다 하여, 이찬 품일과 소판 문왕과 대아찬 양도 등을 장군으로 삼아 가서 치게 하였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또 이찬 흠순(흠춘으로도 쓴다)과 진흠·천존과 소판 죽지 등을 보내어 군사를 더하였다.

고구려와 말갈이 신라의 날랜 군사가 다 백제에 있어 안이 비었으니 칠 만하다 하여, 군사를 내어 물과 뭍으로 아울러 나아가 북한산성을 에웠다. 고구려는 그 서쪽에 진을 치고 말갈은 그 동쪽에 진 쳐 치기를 열흘이 되도록 하니 성 안이 위태롭고 두려워하였다. 문득 큰 별이 도둑의 진영에 떨어지고 또 우레와 비가 쳐 도둑들이 의심하고 놀라 에움을 풀고 달아났다.

처음에 유신이 도둑이 성을 에웠다는 말을 듣고 말하였다. "사람의 힘이 이미 다하였으니 그윽한 도움에 기댈 만하다." 절에 나아가 제단을 베풀고 빌었다. 마침 하늘의 이변이 있으니 다 지극한 정성이 감동한 바라 하였다.

유신이 일찍이 한가위 밤에 자제를 거느리고 큰 문 밖에 섰는데, 문득 어떤 사람이 서쪽에서 왔다. 유신이 고구려 첩자인 줄 알고 불러 앞에 오게 하여 말하였다. "너희 나라에 무슨 일이 있는가." 그 사람이 고개를 숙이고 감히 답하지 못하였다.

유신이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말고 다만 사실대로 알려라." 또 말하지 않았다.

유신이 그에게 일렀다. "우리 나라 왕은 위로 하늘의 뜻을 어기지 않고 아래로 인심을 잃지 않아 백성이 기뻐하며 다 그 생업을 즐긴다. 이제 네가 보았으니 가서 너희 나라 사람에게 알려라." 마침내 위로하여 보냈다.

고구려 사람이 이를 듣고 말하였다. "신라가 비록 작은 나라이나 유신이 재상이 되었으니 가벼이 볼 수 없다."

8옹산성을 치다

六月,唐高宗皇帝遣將軍蘇定方等,征高句麗。入唐宿衛金仁問,受命來告兵期,兼諭出兵會伐。於是,文武大王率庾信、仁問、文訓等,發大兵向高句麗,行次南川州。鎭守劉仁願,以所領兵,自泗沘泛船,至鞋浦下陸,亦營於南川州。時,有司報:「前路有百濟殘賊,屯聚瓮山城遮路,不可直前。」於是,庾信以兵進而圍城。使人近城下,與賊將語曰:「而國不龔,致大國之討。順命者賞,不順命者戮。今汝等,獨守孤城,欲何為乎。終必塗地,不如出降。非獨存命,富貴可期也。」賊高聲唱曰:「雖蕞爾小城,兵食俱足,士卒義勇,寧為死戰,誓不生降。」庾信笑曰:「窮鳥困獸,猶知自救,此之謂也。」乃揮旗鳴鼓攻之。大王登高見戰士,淚語激勵之,士皆奮突,鋒刃不顧。

유월에 당나라 고종황제가 장군 소정방 등을 보내어 고구려를 치게 하였다. 당나라에 들어가 숙위하던 김인문이 명을 받아 와서 군사 낼 때를 알리고, 아울러 군사를 내어 만나 치라고 타일렀다.

이에 문무대왕이 유신과 인문과 문훈 등을 거느리고 큰 군사를 일으켜 고구려로 향하여 남천주에 머물렀다. 지키던 유인원이 거느린 군사로 사비에서 배를 띄워 혜포에 이르러 뭍에 내려 또한 남천주에 진을 쳤다.

그때 맡은 이가 아뢰었다. "앞길에 백제의 남은 도둑이 옹산성에 모여 길을 막으니 곧바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이에 유신이 군사를 밀고 나아가 성을 에웠다. 사람을 시켜 성 아래 가까이 가서 도둑의 장수와 말하게 하였다. "너희 나라가 공손하지 않아 큰 나라의 침을 불렀다. 명을 따르는 자는 상 주고 명을 따르지 않는 자는 죽인다. 이제 너희가 홀로 외로운 성을 지켜 무엇을 하려는가. 마침내 반드시 땅에 발릴 것이니 나와 항복하는 것만 못하다. 홀로 목숨을 보전할 뿐 아니라 부귀도 기약할 수 있다."

도둑이 큰 소리로 외쳤다. "비록 자잘한 작은 성이나 군사와 먹을 것이 다 넉넉하고 군사가 의롭고 용맹하니, 차라리 죽기로 싸울지언정 맹세코 살아서 항복하지 않겠다."

유신이 웃으며 말하였다. "궁한 새와 곤한 짐승도 오히려 스스로 구할 줄 아니 이를 이름이다." 이에 깃발을 휘두르고 북을 울려 쳤다. 대왕이 높은 곳에 올라 싸우는 군사를 보고 눈물을 흘리며 말로 격려하니, 군사가 다 떨쳐 돌진하여 칼날을 돌아보지 않았다.

9유신이 홀로 명을 받다

九月二十七日,城陷,捉賊將戮之,放其民。論功賞賚將士,劉仁願亦分絹有差。於是,饗士秣馬,欲往會唐兵。大王前遣太監大監文泉,移書蘇將軍,至是復命,遂傳定方之言曰:「我受命萬里,涉滄海而討賊,艤舟海岸,旣踰月矣。大王軍士不至,粮道不繼,其危殆甚矣。王其圖之。」大王問群臣如之何而可。皆言深入敵境輸粮,勢不得達矣。大王患之,咨嗟。庾信前對曰:「臣過叨恩遇,忝辱重寄。國家之事,雖死不避,今日是老臣盡節之日也。當向敵國,以副蘇將軍之意。」大王前席執其手下淚曰:「得公賢弼,可以無憂。若今玆之役,罔愆于素,則公之功德,曷日可忘。」庾信旣受命,至懸鼓岑之岫寺,齊戒卽靈室,閉戶獨坐,焚香累日夜而後出。私自喜曰:「吾今之行,得不死矣。」將行,王以手書告庾信:「出彊之後,賞罰專之,可也。」

구월 스무이레에 성이 함락되매 도둑의 장수를 잡아 죽이고 그 백성은 놓아주었다. 공을 논하여 장수와 군사에게 상 주고, 유인원에게도 또한 비단을 차등 있게 나누어 주었다.

이에 군사를 먹이고 말을 먹여 가서 당나라 군사와 만나려 하였다. 대왕이 앞서 태감 문천을 보내어 소 장군에게 글을 보냈는데, 이때에 이르러 명을 아뢰며 마침내 정방의 말을 전하였다. "내가 만 리에 명을 받아 푸른 바다를 건너 도둑을 치고 바닷가에 배를 댄 지 이미 달이 넘었소. 대왕의 군사가 이르지 않고 양식 길이 이어지지 않아 그 위태로움이 매우 심하오. 왕은 그것을 꾀하시오."

대왕이 여러 신하에게 어찌하면 좋겠는지 물으니, 다 적의 지경에 깊이 들어가 양식을 나르는 것은 형세로 보아 이를 수 없다 하였다. 대왕이 이를 걱정하여 한숨을 쉬었다.

유신이 앞에 나아가 답하였다. "신이 지나치게 은혜와 대접을 받고 무거운 맡김을 욕되이 하였습니다. 나라의 일이라면 비록 죽어도 피하지 않으리니, 오늘이 늙은 신하가 절개를 다할 날입니다. 마땅히 적국으로 향하여 소 장군의 뜻에 맞추겠습니다."

대왕이 자리 앞으로 나아가 그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공 같은 어진 도움을 얻었으니 걱정이 없을 만하오. 만약 이번 걸음이 평소와 어긋남이 없다면 공의 공과 덕을 어느 날인들 잊겠소."

유신이 명을 받고 현고잠의 수사에 이르러 재계하고 영실에 나아가 문을 닫고 홀로 앉아, 향을 사르기를 여러 날 밤을 지낸 뒤에 나와 가만히 스스로 기뻐하며 말하였다. "내 이번 걸음은 죽지 않으리라."

떠나려 할 때 왕이 손수 글을 써서 유신에게 알렸다. "지경을 나선 뒤에는 상과 벌을 오로지하여도 좋다."

10열흘에 고구려 지경에 들다

十二月十日,與副將軍仁問、眞服、良圖等九將軍,率兵載粮,入高句麗之界。

십이월 열흘에 부장군 인문·진복·양도 등 아홉 장군과 함께 군사를 거느리고 양식을 싣고 고구려 지경에 들어갔다.

11칠중하를 건너 평양으로 가다

壬戌正月二十三日,至七重河,人皆恐懼,不敢先登。庾信曰:「諸君若怕死,豈合來此。」遂先自上船而濟,諸將卒,相隨渡河。入高句麗之境,慮麗人要於大路,遂自險隘以行,至於䔉壤。庾信與諸將士曰:「麗、濟二國,侵凌我疆埸,賊害我人民,或虜丁壯,以斬戮之,或俘幼少,以奴使之者,久矣,其可不痛乎。吾今所以不畏死赴難者,欲藉大國之力,滅二城,以雪國讐。誓心告天,以期陰助,而未知衆心如何,故言及之。若輕敵者,必成功而歸,若畏敵,則豈免其禽獲乎。宜同心協力,無不以一當百,是所望於諸公者也。」諸將卒皆曰:「願奉將軍之命,不敢有偸生之心。」乃鼓行向平壤。路逢賊兵,逆擊克之,所得甲兵,甚多。至障塞之險,會天寒烈,人馬疲憊,往往僵仆。

임술 정월 스무사흘에 칠중하에 이르니 사람들이 다 두려워하여 감히 먼저 오르지 못하였다. 유신이 말하였다. "여러분이 만약 죽음을 두려워한다면 어찌 여기 오는 것이 마땅하겠는가." 마침내 스스로 먼저 배에 올라 건너니 여러 장수와 군사가 서로 따라 강을 건넜다.

고구려 지경에 들어가 고구려 사람이 큰길에서 요격할까 걱정하여, 마침내 험하고 좁은 길로 가서 산양에 이르렀다.

유신이 여러 장수와 군사에게 말하였다. "고구려와 백제 두 나라가 우리 강토를 침노하고 짓밟으며 우리 백성을 해치고, 더러는 장정을 사로잡아 베어 죽이고 더러는 어린이를 사로잡아 종으로 부린 지 오래니 어찌 아프지 않겠는가. 내가 이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어려움에 나아가는 까닭은, 큰 나라의 힘을 빌려 두 성을 없애고 나라의 원수를 갚고자 함이다. 마음으로 맹세하고 하늘에 고하여 그윽한 도움을 기약하였으나, 여럿의 마음이 어떠한지 알지 못하므로 그러므로 말이 여기에 미쳤다. 만약 적을 가벼이 여기는 이라면 반드시 공을 이루고 돌아갈 것이요, 만약 적을 두려워한다면 어찌 사로잡힘을 면하겠는가. 마땅히 마음을 같이하고 힘을 모아, 하나가 백을 당해 내야 한다. 이것이 여러 공에게 바라는 바다."

여러 장수와 군사가 다 말하였다. "장군의 명을 받들기를 바라며 감히 구차히 살려는 마음을 두지 않겠습니다."

이에 북을 치며 평양으로 향하였다. 길에서 도둑의 군사를 만나 맞아 쳐서 이기니 얻은 갑옷과 병기가 매우 많았다. 장새의 험한 곳에 이르니 마침 날씨가 몹시 차서 사람과 말이 지치고 고달파 이따금 뻣뻣이 넘어졌다.

12열기가 소정방에게 가다

庾信露肩執鞭,策馬以前驅。衆人見之,努力奔走出汗,不敢言寒。遂過險,距平壤不遠,庾信曰:「唐軍乏食窘迫,宜先報之。」乃喚步騎監裂起曰:「吾少與爾遊,知爾志節,今欲致意於蘇將軍,而難其人,汝可行否。」裂起曰:「吾雖不肖,濫中軍職,況辱將軍便使令。雖死之日,猶生之年。」遂與壯士仇近等十五人,詣平壤,見蘇將軍曰:「庾信等領兵致資粮,已達近境。」定方喜以書謝之。庾信等行抵楊隩,見一老人,問之,具悉敵國消息,賜之布帛,辭不受而去。庾信營楊隩,遣解漢語者仁問、良圖及子軍勝等,達唐營,以王旨餽軍糧。定方以食盡兵疲,不能力戰,及得粮,便廻唐。良圖以兵八百人,泛海還國。時,麗人伏兵,欲要擊我軍於歸路。庾信以鼓及桴,繫群牛腰尾,使揮擊有聲,又積柴草燃之,使煙火不絶,夜半,潛行至瓢河,急渡岸休兵。

유신이 어깨를 드러내고 채찍을 잡아 말을 채찍질하여 앞장서 달렸다. 여러 사람이 이를 보고 힘써 달려 땀을 내며 감히 춥다고 말하지 못하였다.

마침내 험한 곳을 지나 평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르니, 유신이 말하였다. "당나라 군사가 먹을 것이 모자라 군색할 것이니 마땅히 먼저 알려야 한다."

이에 보기감 열기를 불러 말하였다. "내가 어려서부터 너와 사귀어 네 뜻과 절개를 안다. 이제 소 장군에게 뜻을 전하려 하는데 그 사람을 얻기 어려우니 네가 갈 수 있겠는가."

열기가 말하였다. "제가 비록 어질지 못하나 외람되이 중군의 벼슬에 있고, 하물며 장군의 부리심을 욕되이 하니, 비록 죽는 날이라도 오히려 사는 해와 같습니다."

마침내 씩씩한 군사 구근 등 열다섯 사람과 함께 평양에 나아가 소 장군을 보고 말하였다. "유신 등이 군사를 거느리고 밑천과 양식을 가지고 이미 가까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정방이 기뻐하여 글로 사례하였다.

유신 등이 가서 양오에 이르러 한 노인을 보고 물으니 적국의 소식을 갖추어 다 알려 주었다. 베와 비단을 주니 사양하고 받지 않고 갔다.

유신이 양오에 진을 치고, 당나라 말을 아는 인문과 양도와 아들 군승 등을 보내어 당나라 진영에 이르러 왕의 뜻으로 군량을 보내게 하였다. 정방이 먹을 것이 다하고 군사가 지쳐 힘껏 싸울 수 없다가 양식을 얻자 곧 당나라로 돌아갔다. 양도가 군사 팔백 사람으로 바다에 떠 나라에 돌아왔다.

그때 고구려 사람이 군사를 숨겨 돌아가는 길에서 신라 군사를 치려 하였다. 유신이 북과 북채를 소 떼의 허리와 꼬리에 매어 휘두르면 소리가 나게 하고, 또 섶과 풀을 쌓아 불을 놓아 연기와 불이 끊이지 않게 하였다. 한밤중에 몰래 가서 표하에 이르러 급히 건너 언덕에서 군사를 쉬게 하였다.

13두솔성에서 왜인을 항복시키다

麗人知之來追,庾信使萬弩俱發。麗軍且退,率勵諸幢將士分發,拒擊敗之,生禽將軍一人,斬首一萬餘級。王聞之,遣使勞之。及至,賞賜封邑爵位有差。龍朔三年癸亥,百濟諸城,潛圖興復,其渠帥據豆率城,乞師於倭為援助。大王親率庾信、仁問、天存、竹旨等將軍,以七月十七日,征討,次熊津州,與鎭守劉仁願合兵,八月十三日,至于豆率城。百濟人與倭人出陣,我軍力戰大敗之,百濟與倭人皆降。大王謂倭人曰:「惟我與爾國,隔海分疆,未嘗交構,但結好講和,聘問交通,何故今日與百濟同惡,以謀我國?今爾軍卒在我掌握之中,不忍殺之,爾其歸告爾王。」任其所之。分兵擊諸城降之,唯任存城,地險城固,而又粮多,是以攻之三旬,不能下,士卒疲困厭兵。大王曰:「今雖一城未下,而諸餘城保皆降,不可謂無功。」乃振旅而還。

고구려 사람이 알고 뒤쫓아 오매 유신이 만 개 쇠뇌를 한꺼번에 쏘게 하였다. 고구려 군사가 물러나므로 여러 당의 장수와 군사를 거느리고 격려하여 나누어 보내어 막아 쳐서 깨뜨리고, 장군 한 사람을 사로잡고 일만여 급을 베었다. 왕이 듣고 사신을 보내어 위로하였다. 이르매 상과 봉읍과 벼슬을 차등 있게 내렸다.

용삭 삼년 계해에 백제의 여러 성이 몰래 다시 일으키기를 꾀하여, 그 우두머리가 두솔성에 웅거하고 왜에 군사를 빌어 도움을 삼았다. 대왕이 몸소 유신과 인문·천존·죽지 등 장군을 거느리고 칠월 열이레에 치러 가 웅진주에 머물러, 지키던 유인원과 군사를 합치고 팔월 열사흘에 두솔성에 이르렀다.

백제 사람이 왜인과 함께 진을 내니 신라 군사가 힘껏 싸워 크게 무찌르매 백제와 왜인이 다 항복하였다. 대왕이 왜인에게 말하였다. "오직 우리와 너희 나라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강토가 나뉘어 일찍이 얽혀 다툰 일이 없고 다만 좋게 맺어 화친하며 예방하여 오갔는데, 무슨 까닭으로 오늘 백제와 악을 함께하여 우리 나라를 꾀하는가. 이제 너희 군사가 우리 손안에 있으나 차마 죽이지 못하겠으니, 너희는 돌아가 너희 왕에게 알려라." 그 가는 대로 맡겼다.

군사를 나누어 여러 성을 쳐서 항복시켰으나, 오직 임존성만은 땅이 험하고 성이 굳으며 또 양식이 많아 이 때문에 치기를 서른 날이 되도록 떨어뜨리지 못하고 군사가 지치고 곤하여 싸움을 싫어하였다.

대왕이 말하였다. "이제 비록 한 성이 떨어지지 않았으나 그 나머지 여러 성이 다 항복하였으니 공이 없다 할 수 없다." 이에 군사를 정돈하여 돌아왔다.

14밭 오백 결을 내리다

冬十一月二十日,至京,賜庾信田五百結,其餘將卒賞賜有差。

겨울 십일월 스무날에 서울에 이르러 유신에게 밭 오백 결을 내리고 그 나머지 장수와 군사에게도 상을 차등 있게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