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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칠부居柒夫

삼국사기 三國史記 · 김부식(金富軾) 등 · 1145년 (고려 인종 23) · 단락 2 · 한자 469자 · 낭독 1.9분

「삼국사기」 열전 「거칠부」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 역사서. 신라·고구려·백제 본기와 지·표·열전으로 이루어졌다. 김부식이 곳곳에 「論曰」로 자기 평을 달아 두어, 편찬자가 무엇을 의심하고 무엇을 나무랐는지가 그대로 남아 있다.

1거칠부가 혜량 법사를 만나다

居柒夫,姓金氏,奈勿王五世孫,祖仍宿角干,父勿力伊飡,居柒夫少跅弛有遠志。祝髮為僧,遊觀四方,便欲覘高句麗,入其境,聞法師惠亮開堂說經,遂詣聽講經。一日,惠亮問曰:「汝彌從何來?」對曰:「某新羅人也。」其夕,法師招來相見,握手密言曰:「吾閱人多矣,見汝容貌,定非常流,其殆有異心乎?」答曰:「某生於偏方,未聞道理,聞師之德譽,來伏趨下風,願師不拒,以卒發蒙。」師曰:「老僧不敏,亦能識子,此國雖小,不可謂無知人者,恐子見執,故密告之,宜疾其歸。」居柒夫欲還,師又語曰:「相汝鷰頷鷹視,將來必為將帥。若以兵行,無貽我害。」居柒夫曰:「若如師言,所不與師相好者,有如皦日。」遂還國返本從仕,職至大阿飡。

거칠부는 성이 김씨요 내물왕의 오세손이다. 할아버지는 각간 잉숙이요 아버지는 이찬 물력이다.

거칠부는 젊어서 얽매이지 않고 먼 뜻이 있었다.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어 사방을 다니며 보다가, 문득 고구려를 엿보고자 그 지경에 들어가, 법사 혜량이 강당을 열고 경을 설한다는 말을 듣고 마침내 나아가 강경을 들었다.

어느 날 혜량이 물었다. "너는 어디서 왔느냐."

답하였다. "저는 신라 사람입니다."

그날 저녁에 법사가 불러 만나 손을 잡고 가만히 말하였다. "내가 사람을 많이 겪었는데 너의 모습을 보니 반드시 예사 무리가 아니다. 아마도 딴마음이 있는 것이 아니냐."

답하였다. "저는 치우친 지방에서 나 도리를 듣지 못하였는데, 스승의 덕과 이름을 듣고 와서 아래바람에 엎드려 나아갔습니다. 바라건대 스승께서는 물리치지 마시고 어리석음을 깨우쳐 마쳐 주소서."

스승이 말하였다. "늙은 중이 재빠르지 못하나 또한 그대를 알아본다. 이 나라가 비록 작으나 사람을 알아보는 이가 없다 할 수 없다. 그대가 잡힐까 두려우므로 가만히 알리니 마땅히 빨리 돌아가라."

거칠부가 돌아가려 하니 스승이 또 말하였다. "그대의 상을 보니 제비 턱에 매의 눈이라 장래에 반드시 장수가 되겠다. 만약 군사로 오거든 나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

거칠부가 말하였다. "만약 스승의 말씀과 같다면, 스승과 서로 좋게 지내지 않는다면 밝은 해가 있습니다."

마침내 나라에 돌아와 본디대로 돌아가 벼슬하여 직이 대아찬에 이르렀다.

협주 1

或云荒宗。

황종(荒宗)이라고도 한다.

2국사를 짓고 혜량을 모셔 오다

眞興大王六年乙丑,承朝旨,集諸文士,修撰國史,加官波珍飡。十二年辛未,王命居柒夫及仇珍大角飡、比台角飡、耽知迊飡、非西迊飡、奴夫波珍飡、西力夫波珍飡、比次夫大阿飡、未珍夫阿飡等八將軍,與百濟侵高句麗。百濟人先攻破平壤,居柒夫等,乘勝取竹嶺以外,高峴以內十郡。至是,惠亮法師,領其徒,出路上,居柒夫下馬,以軍禮揖拜,進曰:「昔,遊學之日,蒙法師之恩,得保性命,今,邂逅相遇,不知何以為報。」對曰:「今,我國政亂,滅亡無日,願致之貴域。」於是,居柒夫同載以歸,見之於王,王以為僧統,始置百座講會及八關之法。眞智王元年丙申,居柒夫為上大等,以軍國事務自任,至老終於家,享年七十八。

진흥대왕 육년 을축에 조정의 뜻을 받들어 여러 문사를 모아 국사를 짓고 벼슬을 더하여 파진찬이 되었다.

십이년 신미에 왕이 거칠부와 구진 대각찬, 비태 각찬, 탐지 잡찬, 비서 잡찬, 노부 파진찬, 서력부 파진찬, 비차부 대아찬, 미진부 아찬 등 여덟 장군에게 명하여 백제와 함께 고구려를 침노하게 하였다. 백제 사람이 먼저 평양을 쳐서 깨뜨리고, 거칠부 등이 이긴 기세를 타 죽령 밖 고현 안의 열 군을 빼앗았다.

이때에 이르러 혜량 법사가 그 무리를 거느리고 길가에 나오니, 거칠부가 말에서 내려 군례로 읍하고 절하며 나아가 말하였다. "옛날 놀며 배우던 날에 법사의 은혜를 입어 목숨을 보전하였는데, 이제 뜻밖에 서로 만났으니 무엇으로 갚을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답하였다. "이제 우리 나라는 정사가 어지러워 멸망할 날이 멀지 않으니, 바라건대 그대의 나라로 데려가 주시오."

이에 거칠부가 함께 수레에 태워 돌아와 왕에게 뵈니, 왕이 승통으로 삼고 처음으로 백좌강회와 팔관의 법을 두었다.

진지왕 원년 병신에 거칠부가 상대등이 되어 군사와 나라의 일을 스스로 맡았고, 늙어 집에서 마치니 나이 일흔여덟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