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보고·정년張保皐,鄭年
1장보고와 정년
張保皐、鄭年,皆新羅人,但不知鄕邑父祖。皆善鬪戰,年復能沒海底,行五十里不噎,角其勇壯,保皐差不及也,年以兄呼保皐。保皐以齒,年以藝,常齟齬不相下。二人如唐,為武寧軍小將,騎而用槍,無能敵者。後,保皐還國,謁大王曰:「遍中國,以吾人為奴婢,願得鎭淸海,使賊不得掠人西去。」淸海,新羅海路之要,今謂之莞島。大王與保皐萬人,此後,海上無鬻鄕人者。保皐旣貴,年去職饑寒,在泗之漣水縣。一日,言於戍將馮元規曰:「我欲東歸,乞食於張保皐。」元規曰:「若與保皐所負如何,奈何去取死其手?」年曰:「饑寒死,不如兵死快,況死故鄕耶。」遂去謁保皐,飲之極歡。飲未卒,聞王弑國亂無主,保皐分兵五千人與年,持年手泣曰:「非子不能平禍難。」年入國,誅叛者立王,王召保皐為相,以年代守淸海。
장보고와 정년은 다 신라 사람인데 다만 그 고을과 아비와 할아비를 알지 못한다. 다 싸움을 잘하였는데 정년은 또 바다 밑에 잠겨 오십 리를 가도 숨이 막히지 않았다. 그 용맹하고 씩씩함을 견주면 보고가 조금 미치지 못하였다. 정년이 보고를 형이라 불렀다. 보고는 나이로, 정년은 재주로 늘 어긋나 서로 아래에 서지 않았다.
두 사람이 당나라에 가서 무령군 소장이 되어 말을 타고 창을 쓰니 맞설 이가 없었다.
뒤에 보고가 나라에 돌아와 대왕에게 뵙고 아뢰었다. "중국을 두루 다니니 우리 사람을 종으로 삼고 있습니다. 바라건대 청해를 지키게 하시어 도둑이 사람을 노략하여 서쪽으로 가지 못하게 하소서." 청해는 신라 바닷길의 요긴한 곳이니 지금 완도라 한다.
대왕이 보고에게 만 사람을 주니 이 뒤로 바다 위에 신라 사람을 파는 이가 없었다.
보고가 이미 귀하게 되매 정년은 벼슬에서 물러나 주리고 추워 사수 연수현에 있었다. 어느 날 수자리 장수 풍원규에게 말하였다. "내가 동쪽으로 돌아가 장보고에게 밥을 빌고자 하오."
원규가 말하였다. "그대와 보고가 진 것이 어떠한가. 어찌 가서 그 손에 죽음을 취하려 하는가."
정년이 말하였다. "주리고 추워 죽는 것은 군사로 죽는 시원함만 못하오. 하물며 고향에서 죽음이겠소."
마침내 가서 보고를 뵈니 마시게 하며 지극히 기뻐하였다. 마시기를 마치기 전에 왕이 시해되고 나라가 어지러워 임금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보고가 군사 오천 사람을 나누어 정년에게 주며 정년의 손을 잡고 울며 말하였다. "그대가 아니면 화와 난을 평정하지 못하오."
정년이 나라에 들어가 배반한 자를 베고 왕을 세우니, 왕이 보고를 불러 재상을 삼고 정년으로 대신 청해를 지키게 하였다.
협주 3
《羅紀》作弓福。
「신라본기」에는 궁복(弓福)으로 되어 있다.
年,或作連。
정년(年)은 연(連)으로도 쓴다.
此與新羅傳記頗異,以杜牧立傳,故兩存之。
이는 신라의 전기와 자못 다르나 두목이 전을 세웠으므로 둘 다 남겨 둔다.
2사론 — 곽분양과 이임회
論曰:杜牧言:「天寶安祿山亂,朔方節度使安思順,以祿山從弟賜死,詔郭汾陽代之。後旬日,復詔李臨淮,持節分朔方半兵,東出趙、魏。當思順時,汾陽、臨淮俱為牙門都將,二人不相能,雖同盤飲食,常睇相視,不交一言。及汾陽代思順,臨淮欲亡去,計未決,詔臨淮,分汾陽半兵東討。臨淮入請曰:『一死固甘,乞免妻子。』汾陽趍下,持手上堂,偶坐曰:『今國亂主遷,非公不能東伐,豈懷私忿時耶。』及別,執手泣涕,相勉以忠義,訖平巨盜,實二公之力。知其心不叛,知其材可任,然後,心不疑,兵可分。平生積憤,知其心,難也。忿必見短,知其材,益難也。此保皐與汾陽之賢等耳。年投保皐,必曰:『彼貴我賤,我降下之,不宜以舊忿殺我。』保皐果不殺,人之常情也;臨淮請死於汾陽,亦人之常情也。
김부식이 논한다.
두목이 말하였다. "천보에 안녹산의 난이 일어나매 삭방절도사 안사순이 녹산의 사촌아우라 하여 죽음을 받고, 조서로 곽분양이 대신하게 하였다. 열흘 뒤에 다시 조서로 이임회에게 부절을 가지고 삭방의 군사 반을 나누어 동쪽으로 조와 위에 나가게 하였다.
사순 때에 분양과 임회가 다 아문도장이었는데 두 사람이 서로 좋아하지 않아, 비록 한 소반에서 먹고 마셔도 늘 흘겨보며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분양이 사순을 대신하매 임회가 달아나려 하여 꾀를 정하지 못하였는데, 조서로 임회에게 분양의 군사 반을 나누어 동쪽을 치라 하였다.
임회가 들어가 청하였다. '한 번 죽는 것은 진실로 달게 받겠으나 처자만은 면하게 해 주시오.' 분양이 달려 내려와 손을 잡고 마루에 올라 마주 앉아 말하였다. '이제 나라가 어지럽고 임금이 옮겨 갔으니 공이 아니면 동쪽을 칠 수 없소. 어찌 사사로운 분함을 품을 때이겠소.' 헤어질 때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서로 충성과 의로움으로 힘쓰게 하여, 마침내 큰 도둑을 평정한 것은 실로 두 공의 힘이다.
그 마음이 배반하지 않을 줄 알고 그 재주가 맡을 만함을 안 뒤에야 마음에 의심하지 않고 군사를 나눌 수 있다. 평생 쌓인 분함에 그 마음을 아는 것이 어렵고, 분하면 반드시 단점을 보게 되니 그 재주를 아는 것은 더욱 어렵다. 이것이 보고와 분양의 어짊이 같은 까닭이다.
정년이 보고에게 몸을 던진 것은 반드시 '저는 귀하고 나는 천하니 내가 몸을 낮추면 옛 분함으로 나를 죽이지는 않으리라' 여긴 것이요, 보고가 과연 죽이지 않은 것도 사람의 떳떳한 정이다. 임회가 분양에게 죽음을 청한 것도 또한 사람의 떳떳한 정이다.
3사론 — 어진 이 한 사람이면 넉넉하다
保皐任年事,出於己。年且饑寒,易為感動。汾陽、臨淮平生抗立,臨淮之命,出於天子,攉於保皐,汾陽為優,此乃聖賢遲疑成敗之際也。彼無他也,仁義之心,與雜情並植,雜情勝則仁義滅,仁義勝則雜情消。彼二人,仁義之心旣勝,復資之以明,故卒成功。世稱周、召為百代之師,周公擁孺子,而召公疑之。以周公之聖、召公之賢,少事文王,老佐武王,能平天下,周公之心,召公且不知之。苟有仁義之心,不資以明,雖召公尚爾,況其下哉。《語》曰:『國有一人,其國不亡。』夫亡國,非無人也,丁其亡時,賢人不用。苟能用之,一人足矣。」宋祁曰:「嗟乎,不以怨毒相惎,而先國家之憂,晋有祁奚,唐有汾陽,保皐,孰謂夷無人哉。」
보고가 정년에게 일을 맡긴 것은 제게서 나왔고 정년은 또 주리고 추워 감동시키기 쉬웠다. 분양과 임회는 평생 맞서 섰고 임회의 명은 천자에게서 나왔으니, 보고에게 견주면 분양이 나은 셈이다. 이것이 곧 성현이 이루고 실패하는 즈음에 머뭇거리는 바다.
저것은 다름이 아니라, 어짊과 의로움의 마음이 잡된 정과 함께 심어져 있어, 잡된 정이 이기면 어짊과 의로움이 사라지고 어짊과 의로움이 이기면 잡된 정이 사그라지는 것이다. 저 두 사람은 어짊과 의로움의 마음이 이미 이기고 다시 밝음으로 도왔으므로 마침내 공을 이루었다.
세상이 주공과 소공을 백대의 스승이라 일컫는데, 주공이 어린 임금을 안으매 소공이 그를 의심하였다. 주공의 거룩함과 소공의 어짊으로도, 젊어서 문왕을 섬기고 늙어 무왕을 도와 천하를 평정할 수 있었으나, 주공의 마음을 소공도 오히려 알지 못하였다. 진실로 어짊과 의로움의 마음이 있어도 밝음으로 돕지 않으면 소공도 오히려 그러하거늘 하물며 그 아래이겠는가.
『논어』에 이르기를 '나라에 한 사람이 있으면 그 나라는 망하지 않는다' 하였다. 무릇 나라가 망하는 것은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망할 때를 만나 어진 이를 쓰지 않아서다. 진실로 쓸 수 있다면 한 사람으로 넉넉하다."
송기가 말하였다. "아아, 원한과 독으로 서로 해치지 않고 나라의 근심을 먼저 하였으니, 진나라에 기해가 있고 당나라에 분양이 있으며 신라에 보고가 있으니, 누가 오랑캐에 사람이 없다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