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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파소乙巴素

삼국사기 三國史記 · 김부식(金富軾) 등 · 1145년 (고려 인종 23) · 단락 2 · 한자 451자 · 낭독 1.8분

「삼국사기」 열전 「을파소」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 역사서. 신라·고구려·백제 본기와 지·표·열전으로 이루어졌다. 김부식이 곳곳에 「論曰」로 자기 평을 달아 두어, 편찬자가 무엇을 의심하고 무엇을 나무랐는지가 그대로 남아 있다.

1을파소가 불려 나오다

乙巴素,高句麗人也。國川王時,沛者於畀留於卑留、評者左可慮等,皆以外戚擅權,多行不義,國人怨憤。王怒欲誅之,左可慮等謀反,王誅竄之。遂下令曰:「近者,官以寵授,位非德進,毒流百姓,動我王家,此寡人不明所致也。今,汝四部,各擧賢良在下者。」於是,四部共擧東部晏留,王徵之,委以國政。晏留言於王曰:「微臣庸愚,固不足以參大政。西鴨淥谷左勿村乙巴素者,琉璃王大臣乙素之孫也。性質剛毅,智慮淵深,不見用於世,力田自給。大王若欲理國,非此人則不可。」王遣使以卑辭重禮聘之,拜中畏大夫,加爵為于台。謂曰:「孤叨承先業,處臣民之上,德薄材短,未濟於理。先生藏用晦明,窮處草澤者久矣,今不我棄,幡然而來,非獨孤之喜幸,社稷生民之福也。

을파소는 고구려 사람이다.

국천왕 때 패자 어비류와 평자 좌가려 등이 다 외척으로 권세를 마음대로 하고 의롭지 않은 일을 많이 행하니 나라 사람이 원망하고 분해하였다. 왕이 노하여 베려 하매 좌가려 등이 배반을 꾀하므로, 왕이 베고 내쫓았다.

마침내 영을 내려 말하였다. "요사이 벼슬을 사랑으로 주고 자리를 덕으로 나아가게 하지 않아, 독이 백성에게 흐르고 우리 왕가를 움직였으니 이는 과인이 밝지 못한 탓이다. 이제 너희 네 부는 각각 아래에 있는 어질고 착한 이를 천거하라."

이에 네 부가 함께 동부의 안류를 천거하니 왕이 불러 나라 정사를 맡겼다.

안류가 왕에게 말하였다. "미천한 신은 용렬하고 어리석어 진실로 큰 정사에 참여하기에 넉넉하지 못합니다. 서쪽 압록곡 좌물촌의 을파소라는 이는 유리왕 때 대신 을소의 손자입니다. 성품과 바탕이 굳세고 굳으며 슬기와 생각이 깊으나, 세상에 쓰이지 못하고 힘써 밭 갈아 스스로 먹습니다. 대왕께서 만약 나라를 다스리고자 하시면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됩니다."

왕이 사신을 보내어 낮춘 말과 무거운 예로 맞아 중외대부로 삼고 벼슬을 더하여 우태로 삼으며 말하였다. "내가 외람되이 선대의 업을 이어 신하와 백성의 위에 있으나 덕이 얇고 재주가 짧아 다스림에 이르지 못하였다. 선생이 쓰임을 감추고 밝음을 숨겨 풀밭과 못가에 궁하게 지낸 지 오래인데, 이제 나를 버리지 않고 훌쩍 와 주었으니, 다만 나의 기쁨과 다행일 뿐 아니라 사직과 백성의 복이다.

2국상이 되어 나라를 다스리다

請安承敎,公其盡心。」巴素意雖許國,謂所受職,不足以濟事。乃對曰:「臣之駑蹇,不敢當嚴命,願大王選賢良,授高官,以成大業。」王知其意,乃除為國相,令知政事。於是,朝臣國戚,謂巴素以新間舊,疾之。王有敎曰:「無貴賤,苟不從國相者,族之。」巴素退而告人曰:「不逢時則隱,逢時則仕,士之常也。今,上待我以厚意,其可復念舊隱乎。」乃以至誠奉國,明政敎,愼賞罰,人民以安,內外無事。王謂晏留曰:「若無子之一言,孤不能得巴素以共理。今,庶績之凝,子之功也。」迺拜為大使者。至山上王七年秋八月,巴素卒,國人哭之慟。

삼가 가르침을 받기를 청하니 공은 마음을 다하라."

파소가 뜻은 비록 나라에 허락하였으나 받은 벼슬이 일을 이루기에 넉넉하지 못하다 여겼다. 이에 답하였다. "신의 둔함으로는 감히 엄한 명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바라건대 대왕께서는 어질고 착한 이를 가려 높은 벼슬을 주시어 큰 업을 이루소서."

왕이 그 뜻을 알고 이에 제수하여 국상으로 삼아 정사를 맡게 하였다. 이에 조정의 신하와 나라의 외척이, 파소가 새것으로 옛것을 사이 뜬다 하여 미워하였다.

왕이 영을 내려 말하였다. "귀하고 천함을 가리지 않고 진실로 국상을 좇지 않는 자는 겨레를 없애겠다."

파소가 물러나와 사람에게 말하였다. "때를 만나지 못하면 숨고 때를 만나면 벼슬하는 것이 선비의 떳떳함이다. 이제 임금이 나를 두터운 뜻으로 대하시니 어찌 다시 옛 숨음을 생각하겠는가."

이에 지극한 정성으로 나라를 받들어 정사와 가르침을 밝히고 상과 벌을 삼가니, 백성이 편안하고 안팎에 일이 없었다.

왕이 안류에게 말하였다. "만약 그대의 한마디 말이 없었더라면 내가 파소를 얻어 함께 다스리지 못하였을 것이다. 이제 온갖 공적이 엉긴 것은 그대의 공이다." 이에 제수하여 대사자로 삼았다.

산상왕 칠년 가을 팔월에 이르러 파소가 죽으니 나라 사람이 곡하며 슬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