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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후직金后稷

삼국사기 三國史記 · 김부식(金富軾) 등 · 1145년 (고려 인종 23) · 단락 1 · 한자 298자 · 낭독 1.2분

「삼국사기」 열전 「김후직」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 역사서. 신라·고구려·백제 본기와 지·표·열전으로 이루어졌다. 김부식이 곳곳에 「論曰」로 자기 평을 달아 두어, 편찬자가 무엇을 의심하고 무엇을 나무랐는지가 그대로 남아 있다.

1김후직이 죽어서도 간하다

金后稷,智證王之曾孫。事眞平大王,為伊飡,轉兵部令。大王頗好田獵,后稷諫曰:「古之王者,必一日萬機,深思遠慮,左右正士,容受直諫,孶孶矻矻,不敢逸豫,然後,德政醇美,國家可保。今,殿下日與狂夫獵士,放鷹犬,逐雉兎,奔馳山野,不能自止。老子曰:『馳騁田獵,令人心狂。』《書》曰:『內作色荒,外作禽荒,有一于此,未或不亡。』由是觀之,內則蕩心,外則亡國,不可不省也,殿下其念之。」王不從,又切諫,不見聽。後,后稷疾病,將死,謂其三子曰:「吾為人臣,不能匡救君惡,恐大王遊娛不已,以至於亡敗,是吾所憂也。雖死,必思有以悟君,須瘞吾骨於大王遊畋之路側。」子等皆從之。他日,王出行,半路有遠聲,若曰莫去。王顧問:「聲何從來。」從者告云:「彼后稷伊飡之墓也。」遂陳后稷臨死之言,大王潸然流涕曰:「夫子忠諫,死而不忘,其愛我也深矣。若終不改,其何顔於幽明之間耶。」遂終身不復獵。

김후직은 지증왕의 증손이다. 진평대왕을 섬겨 이찬이 되고 병부령으로 옮겼다.

대왕이 자못 사냥을 좋아하므로 후직이 간하였다. "옛 임금 된 이는 반드시 하루에 온갖 일을 보되 깊이 생각하고 멀리 헤아리며, 좌우에 바른 선비를 두어 곧은 간함을 받아들이고, 부지런하고 애써 감히 편안히 놀지 않은 뒤에야 덕스러운 정사가 순수하고 아름다워 나라를 보전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전하께서는 날마다 미친 사내와 사냥꾼과 함께 매와 개를 놓아 꿩과 토끼를 쫓으며 산과 들을 달려 스스로 그치지 못하십니다. 노자가 말하기를 '말 달려 사냥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미치게 한다' 하였고, 『서경』에 이르기를 '안으로 여색에 거칠고 밖으로 사냥에 거칠어 이 가운데 하나만 있어도 망하지 않은 이가 없다' 하였습니다. 이로 보면 안으로는 마음을 방탕하게 하고 밖으로는 나라를 망하게 하니 살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하께서는 이를 생각하소서."

왕이 따르지 않았다. 또 간절히 간하였으나 들어주지 않았다.

뒤에 후직이 병들어 죽으려 할 때 그 세 아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신하 된 몸으로 임금의 악을 바로잡아 구하지 못하였다. 대왕이 놀이를 그치지 않아 망하고 패함에 이를까 두려우니 이것이 내가 근심하는 바다. 비록 죽더라도 반드시 임금을 깨우칠 길을 생각하겠으니, 모름지기 내 뼈를 대왕이 사냥 다니는 길가에 묻어 다오." 아들들이 다 그대로 하였다.

다른 날 왕이 나가 다니는데 반쯤 가서 멀리서 소리가 나 "가지 마소서" 하는 듯하였다. 왕이 돌아보며 물었다. "소리가 어디서 나는가."

따르는 이가 알렸다. "저것은 후직 이찬의 무덤입니다." 마침내 후직이 죽음에 임하여 한 말을 아뢰었다.

대왕이 주르르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그대의 충성스러운 간함이 죽어서도 잊히지 않으니 나를 사랑함이 깊구나. 만약 끝내 고치지 않는다면 저승과 이승 사이에 무슨 낯이 있겠는가." 마침내 몸을 마치도록 다시 사냥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