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삼국사기 › 열전

석우로昔于老

삼국사기 三國史記 · 김부식(金富軾) 등 · 1145년 (고려 인종 23) · 단락 3 · 한자 402자 · 낭독 1.6분

「삼국사기」 열전 「석우로」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 역사서. 신라·고구려·백제 본기와 지·표·열전으로 이루어졌다. 김부식이 곳곳에 「論曰」로 자기 평을 달아 두어, 편찬자가 무엇을 의심하고 무엇을 나무랐는지가 그대로 남아 있다.

1석우로가 농으로 한 말

昔于老,奈解尼師今之子。助賁王二年七月,以伊飡為大將軍,出討甘文國,破之,以其地為郡縣。四年七月,倭人來侵,于老逆戰於沙道,乘風縱火,焚賊戰艦,賊溺死且盡。十五年正月,進為舒弗邯兼知兵馬事。十六年,冬十月高句麗侵北邊,出擊之,不克,退保馬頭柵。至夜,士卒寒苦,于老躬行勞問,手燒薪櫵,暖熱之,群心感喜,如夾纊。沾解王在位,沙梁伐國舊屬我,忽背而歸百濟,于老將兵往討滅之。七年癸酉,倭國使臣葛耶古在館。于老主之,與客戱言:「早晚,以汝王為鹽奴,王妃為爨婦。」倭王聞之怒,遣將軍于道朱君,討我,大王出居于柚村。于老曰:「今玆之患,由吾言之不愼,我其當之。」遂抵倭軍,謂曰:「前日之言,戱之耳,豈意興師至於此耶。

석우로는 내해 이사금의 아들이다.

조분왕 이년 칠월에 이찬으로 대장군이 되어 나가 감문국을 쳐서 깨뜨리고 그 땅을 군현으로 삼았다.

사년 칠월에 왜인이 침노하러 오매 우로가 사도에서 맞아 싸워, 바람을 타고 불을 놓아 적의 전함을 태우니 적이 물에 빠져 거의 다 죽었다.

십오년 정월에 올라 서불한이 되어 병마 일을 아울러 맡았다.

십육년 겨울 시월에 고구려가 북쪽 변경을 침노하매 나가 쳤으나 이기지 못하고 물러나 마두책을 지켰다. 밤이 되어 군사가 춥고 괴로워하니 우로가 몸소 다니며 위로하여 묻고 손수 섶을 태워 따뜻하게 하니, 여럿의 마음이 감동하고 기뻐하기를 솜옷을 낀 듯하였다.

첨해왕이 자리에 있을 때 사량벌국이 예전에 신라에 딸렸는데 문득 등지고 백제로 돌아가므로, 우로가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쳐서 없앴다.

칠년 계유에 왜국 사신 갈야고가 객관에 있었다. 우로가 그를 맡았는데 손님과 우스갯소리로 말하였다. "머지않아 너희 왕을 소금 굽는 종으로 삼고 왕비를 밥 짓는 여자로 삼겠다."

왜왕이 이를 듣고 노하여 장군 우도주군을 보내어 신라를 치니, 대왕이 나가 유촌에 있었다. 우로가 말하였다. "이번 근심은 내 말이 삼가지 못한 데서 말미암았으니 내가 마땅히 당하겠다." 마침내 왜군에 가서 말하였다. "지난날의 말은 농이었을 뿐인데, 어찌 군사를 일으켜 이 지경에 이를 줄 헤아렸겠는가."

협주 1

或云,角干水老之子也。

각간 수로의 아들이라고도 한다.

2우로의 아내가 원수를 갚다

」倭人不答,執之,積柴置其上,燒殺之乃去。于老子,幼弱不能步,人抱以騎而歸,後為訖解尼師今。味鄒王時,倭國大臣來聘,于老妻請於國王,私饗倭使臣。及其泥醉,使壯士曳下庭焚之,以報前怨。倭人忿,來攻金城,不克引歸。

왜인이 답하지 않고 잡아 섶을 쌓아 그 위에 두고 태워 죽이고는 갔다.

우로의 아들이 어리고 약하여 걷지 못하므로 사람이 안고 말에 태워 돌아왔으니, 뒤에 흘해 이사금이 되었다.

미추왕 때 왜국 대신이 예방하러 오매, 우로의 아내가 국왕에게 청하여 사사로이 왜국 사신을 대접하였다. 그가 흠뻑 취하매 씩씩한 이를 시켜 뜰 아래로 끌어내려 태워 죽여 앞의 원한을 갚았다. 왜인이 분하여 금성을 치러 왔으나 이기지 못하고 이끌고 돌아갔다.

3사론 — 말 한마디의 어긋남

論曰:于老為當時大臣,掌軍國事,戰必克,雖不克,亦不敗,則其謀策必有過人者。然以一言之悖,以自取死,又令兩國交兵,其妻能報怨,亦變而非正也。若不爾者,其功業,亦可錄也。

김부식이 논한다.

우로는 그때 대신이 되어 군사와 나라의 일을 맡아 싸우면 반드시 이기고 비록 이기지 못하여도 또한 지지 않았으니, 그 꾀와 계책이 반드시 남보다 나은 것이 있었다. 그러나 말 한마디의 어긋남으로 스스로 죽음을 취하고 또 두 나라가 군사를 맞대게 하였다. 그 아내가 원수를 갚은 것도 또한 변칙이요 바른 것이 아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그 공업도 또한 기록할 만하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