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산貴山
1귀산이 세속오계를 받다
貴山,沙梁部人也。父,武殷阿干。貴山少與部人箒項為友。二人相謂曰:「我等期與士君子遊,而不先正心修身,則恐不免於招辱,盍聞道於賢者之側乎。」時,圓光法師,入隋遊學,還居加悉寺,為時人所尊禮。貴山等詣門,摳衣進告曰:「俗士顓蒙,無所知識,願賜一言,以為終身之誡。」法師曰:「佛戒有菩薩戒,其別有十,若等為人臣子,恐不能堪。今有世俗五戒,一曰事君以忠,二曰事親以孝,三曰交友以信,四曰臨戰無退,五曰殺生有擇,若等,行之無忽!」貴山等曰:「他則旣受命矣,所謂殺生有擇,獨未曉也。」師曰:「六齋日、春夏月不殺,是擇時也。不殺使畜,謂馬牛雞犬。不殺細物,謂肉不足一臠,是擇物也。如此,唯其所用,不求多殺,此可謂世俗之善戒也。
귀산은 사량부 사람이다. 아버지는 아간 무은이다.
귀산이 젊어서 같은 부 사람 추항과 벗이 되었다. 두 사람이 서로 말하였다. "우리가 선비와 군자와 사귀기를 기약하면서 먼저 마음을 바르게 하고 몸을 닦지 않으면 욕됨을 부름을 면하지 못할까 두렵다. 어찌 어진 이의 곁에서 도를 듣지 않겠는가."
그때 원광 법사가 수나라에 들어가 배우고 돌아와 가슬사에 있으매 그때 사람이 높이 예우하였다. 귀산 등이 문에 나아가 옷자락을 걷고 나아가 아뢰었다. "세속 선비가 어리석고 어두워 아는 바가 없습니다. 바라건대 한마디를 주시어 평생의 경계로 삼게 하소서."
법사가 말하였다. "불교의 계에 보살계가 있어 그 갈래가 열이나, 너희는 남의 신하와 자식이 되었으니 감당하지 못할까 두렵다. 이제 세속의 다섯 계가 있으니, 첫째는 충성으로 임금을 섬김이요, 둘째는 효도로 어버이를 섬김이요, 셋째는 믿음으로 벗을 사귐이요, 넷째는 싸움에 임하여 물러섬이 없음이요, 다섯째는 산 것을 죽임에 가림이 있음이다. 너희는 이를 행하되 소홀히 하지 말라."
귀산 등이 말하였다. "다른 것은 이미 명을 받았거니와 이른바 산 것을 죽임에 가림이 있다는 것만은 아직 깨닫지 못하겠습니다."
스승이 말하였다. "육재일과 봄여름 달에 죽이지 않음이 때를 가림이요, 부리는 짐승을 죽이지 않음이니 말과 소와 닭과 개를 이름이며, 작은 것을 죽이지 않음이니 고기가 한 점도 되지 않는 것을 이름이라 이것이 물건을 가림이다. 이와 같이 하여 오직 그 쓸 것만 하고 많이 죽이기를 구하지 않으니, 이것을 세속의 좋은 계라 할 만하다."
2싸움에 임하여 물러섬이 없다
」貴山等曰:「自今已後,奉以周旋,不敢失墜。」眞平王建福二十四年壬戌秋八月,百濟大發兵,來圍阿莫山城。王使將軍波珍干乾品、武梨屈、伊梨伐、級干武殷、比梨耶等,領兵拒之,貴山、箒項,幷以少監赴焉。百濟敗,退於泉山之澤,伏兵以待之。我軍進擊,力困引還。時,武殷為殿,立於軍尾,伏猝出,鉤而下之。貴山大言曰:「吾嘗聞之師曰:『士當軍無退』,豈敢奔北乎。」擊殺賊數十人,以己馬出父,與箒項揮戈力鬪。諸軍見之奮擊,橫尸滿野,匹馬隻輪,無反者。貴山等金瘡滿身,半路而卒。王與群臣,迎於阿那之野,臨尸痛哭,以禮殯葬,追賜位貴山奈麻,箒項大舍。
귀산 등이 말하였다. "이제부터 뒤로는 받들어 두루 행하여 감히 떨어뜨리지 않겠습니다."
진평왕 건복 이십사년 임술 가을 팔월에 백제가 크게 군사를 일으켜 아막산성을 에우러 왔다. 왕이 장군 파진간 건품과 무리굴과 이리벌과 급간 무은과 비리야 등을 시켜 군사를 거느리고 막게 하니, 귀산과 추항이 아울러 소감으로 나아갔다.
백제가 져서 천산의 못으로 물러나 군사를 숨겨 기다렸다. 신라 군사가 나아가 치다가 힘이 곤하여 이끌고 돌아왔다. 그때 무은이 뒤를 맡아 군사의 꼬리에 섰는데 숨은 군사가 갑자기 나와 갈고리로 걸어 끌어내렸다.
귀산이 큰 소리로 말하였다. "내가 일찍이 스승에게 듣기를 '선비는 군사에 나아가 물러섬이 없다' 하였으니 어찌 감히 달아나겠는가." 도둑 수십 사람을 쳐 죽이고 제 말로 아버지를 나오게 하고, 추항과 함께 창을 휘두르며 힘껏 싸웠다.
여러 군사가 이를 보고 떨쳐 치니 주검이 들에 가득하고 한 필의 말과 한 짝의 수레바퀴도 돌아간 것이 없었다.
귀산 등은 쇠에 다친 상처가 온몸에 가득하여 반쯤 오다가 죽었다. 왕이 여러 신하와 함께 아나 들에서 맞아 주검에 임하여 통곡하고 예로 빈소를 차려 장사 지냈으며, 귀산에게 나마, 추항에게 대사 자리를 추증하였다.
협주 1
一作暮。
아막(阿莫)은 아모(阿暮)로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