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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달溫達

삼국사기 三國史記 · 김부식(金富軾) 등 · 1145년 (고려 인종 23) · 단락 3 · 한자 757자 · 낭독 3.0분

「삼국사기」 열전 「온달」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 역사서. 신라·고구려·백제 본기와 지·표·열전으로 이루어졌다. 김부식이 곳곳에 「論曰」로 자기 평을 달아 두어, 편찬자가 무엇을 의심하고 무엇을 나무랐는지가 그대로 남아 있다.

1바보 온달과 평강공주

溫達,高句麗平岡王時人也。容貌龍鐘可笑,中心則睟然。蒙家甚貧,常乞食以養母,破衫弊履,往來於市井間,時人目之為愚溫達。平岡王少女兒好啼,王戱曰:「汝常啼聒我耳,長必不得為士大夫妻,當歸之愚溫達。」王每言之。及女年二八,欲下嫁於上部高氏,公主對曰:「大王常語,汝必為溫達之婦,今何故改前言乎?匹夫猶不欲食言,況至尊乎。故曰:'王者無戱言'今大王之命,謬矣,妾不敢祗承。」王怒曰:「汝不從我敎,則固不得為吾女也,安用同居?宜從汝所適矣。」於是,公主以寶釧數十枚繫肘後,出宮獨行。路遇一人,問溫達之家,乃行至其家,見盲老母,近前拜,問其子所在。老母對曰:「吾子貧且陋,非貴人之所可近。今聞子之臭,芬馥異常,接子之手,柔滑如綿,必天下之貴人也。

온달은 고구려 평강왕 때 사람이다. 얼굴이 꾀죄죄하여 우스웠으나 마음속은 밝았다. 집이 몹시 가난하여 늘 밥을 빌어 어머니를 봉양하였고, 해진 적삼과 낡은 신으로 저잣거리를 오가니 그때 사람이 그를 지목하여 바보 온달이라 하였다.

평강왕의 어린 딸이 잘 우니 왕이 농으로 말하였다. "네가 늘 울어 내 귀를 시끄럽게 하니 자라서 반드시 사대부의 아내가 되지 못하겠다. 마땅히 바보 온달에게 시집보내야겠다." 왕이 늘 이렇게 말하였다.

딸의 나이 열여섯이 되매 상부 고씨에게 시집보내려 하니 공주가 답하였다. "대왕께서 늘 말씀하시기를 너는 반드시 온달의 아내가 되리라 하셨는데, 이제 무슨 까닭으로 앞의 말씀을 고치십니까. 필부도 오히려 제 말을 어기려 하지 않거늘 하물며 지존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임금에게는 농담이 없다' 하였습니다. 이제 대왕의 명은 그르치신 것이니 저는 감히 삼가 받들지 못하겠습니다."

왕이 노하여 말하였다. "네가 내 가르침을 좇지 않으면 진실로 내 딸이 될 수 없으니 어찌 함께 살겠느냐. 마땅히 네가 가고자 하는 데로 가라."

이에 공주가 보배 팔찌 수십 개를 팔꿈치 뒤에 매고 궁을 나와 홀로 갔다. 길에서 한 사람을 만나 온달의 집을 물어 이에 가서 그 집에 이르렀다. 눈먼 늙은 어머니를 보고 앞에 나아가 절하고 그 아들이 있는 곳을 물었다.

늙은 어머니가 답하였다. "내 아들은 가난하고 또 누추하여 귀한 사람이 가까이할 바가 아닙니다. 이제 그대의 냄새를 맡으니 향기가 예사롭지 않고 그대의 손을 잡으니 부드럽고 매끄럽기가 솜 같으니, 반드시 천하의 귀한 사람입니다.

2느릅나무 껍질을 지고 오는 온달

因誰之侜,以至於此乎?惟我息,不忍饑,取楡皮於山林,久而未還。」公主出行,至山下,見溫達負楡皮而來。公主與之言懷,溫達悖然曰:「此非幼女子所宜行,必非人也,狐鬼也,勿迫我也!」遂行不顧。公主獨歸,宿柴門下,明朝,更入,與母子備言之。溫達依違未決,其母曰:「吾息至陋,不足為貴人匹,吾家至窶,固不宜貴人居。」公主對曰:「古人言:『一斗粟猶可舂,一尺布猶可縫』,則苟為同心,何必富貴然後,可共乎?」乃賣金釧,買得田宅、奴婢、牛馬、器物,資用完具。初,買馬,公主語溫達曰:「愼勿買市人馬,須擇國馬病瘦而見放者,而後換之。」溫達如其言。公主養飼甚勤,馬日肥且壯。高句麗常以春三月三日,會獵樂浪之丘,以所獲猪鹿,祭天及山川神。

누구의 속임으로 여기까지 이르렀습니까. 오직 내 아들은 주림을 참지 못하여 산림에서 느릅나무 껍질을 가지러 갔는데 오래되어도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공주가 나가 산 아래에 이르니 온달이 느릅나무 껍질을 지고 오는 것이 보였다. 공주가 그와 더불어 품은 뜻을 말하니 온달이 발끈하여 말하였다. "이는 어린 여자가 마땅히 할 바가 아니니 반드시 사람이 아니라 여우 귀신이다. 나에게 다가오지 말라." 마침내 돌아보지 않고 갔다.

공주가 홀로 돌아와 사립문 아래에서 자고, 이튿날 아침에 다시 들어가 어머니와 아들에게 갖추어 말하였다. 온달이 머뭇거려 정하지 못하니 그 어머니가 말하였다. "내 아들은 몹시 누추하여 귀한 사람의 짝이 되기에 넉넉하지 못하고, 우리 집은 몹시 가난하여 진실로 귀한 사람이 살 곳이 못 됩니다."

공주가 답하였다. "옛사람 말에 '한 말 곡식도 오히려 찧을 수 있고 한 자 베도 오히려 꿰맬 수 있다' 하였으니, 진실로 마음을 같이한다면 어찌 반드시 부귀한 뒤에야 함께하겠습니까."

이에 금팔찌를 팔아 밭과 집과 노비와 소와 말과 그릇을 사서 쓸 것을 온전히 갖추었다.

처음에 말을 살 때 공주가 온달에게 말하였다. "삼가 저자 사람의 말을 사지 말고, 모름지기 나라의 말로 병들고 여위어 내놓인 것을 가려 뒤에 바꾸십시오." 온달이 그 말과 같이 하였다. 공주가 기르고 먹이기를 몹시 부지런히 하니 말이 날로 살찌고 또 씩씩해졌다.

고구려는 늘 봄 삼월 삼일에 낙랑 언덕에 모여 사냥하여 잡은 돼지와 사슴으로 하늘과 산천의 신에 제사하였다.

3온달이 아단성 아래에서 죽다

至其日,王出獵,群臣及五部兵士皆從。於是,溫達以所養之馬隨行,其馳騁,常在前,所獲亦多,他無若者。王召來,問姓名,驚且異之。時,後周武帝出師伐遼東,王領軍逆戰於肄山之野。溫達為先鋒,疾鬪斬數十餘級,諸軍乘勝奮擊大克。及論功,無不以溫達為第一。王嘉歎之曰:「是吾女壻也。」備禮迎之,賜爵為大兄。由此,寵榮尤渥,威權日盛。及嬰陽王卽位,溫達奏曰:「惟新羅,割我漢北之地,為郡縣,百姓痛恨,未嘗忘父母之國。願大王不以愚不肖,授之以兵,一往必還吾地。」王許焉。臨行誓曰:「鷄立峴、竹嶺已西,不歸於我,則不返也。」遂行,與羅軍戰於阿旦城之下,為流矢所中,踣而死。欲葬,柩不肯動,公主來撫棺曰:「死生決矣,於乎,歸矣。」遂擧而窆。大王聞之悲慟。

그날이 되어 왕이 사냥을 나가니 여러 신하와 다섯 부의 군사가 다 따랐다. 이에 온달이 기른 말을 타고 따라가는데, 그 달림이 늘 앞에 있고 잡은 것도 또한 많아 다른 이로 같은 자가 없었다. 왕이 불러 성명을 물으니 놀라고 또 기이하게 여겼다.

그때 후주 무제가 군사를 내어 요동을 치니, 왕이 군사를 거느리고 이산 들에서 맞아 싸웠다. 온달이 앞장이 되어 재빨리 싸워 수십여 급을 베니, 여러 군사가 이긴 기세를 타 떨쳐 쳐서 크게 이겼다. 공을 논하매 온달을 첫째로 삼지 않는 이가 없었다.

왕이 아름다이 여겨 탄식하며 말하였다. "이 사람이 내 사위다." 예를 갖추어 맞이하고 벼슬을 내려 대형으로 삼았다. 이로 말미암아 사랑과 영광이 더욱 두터워지고 위엄과 권세가 날로 성하였다.

영양왕이 즉위하매 온달이 아뢰었다. "오직 신라가 우리 한수 북쪽 땅을 갈라 군현으로 삼으니 백성이 아프고 한스러워 일찍이 부모의 나라를 잊은 적이 없습니다. 바라건대 대왕께서 저를 어리석고 어질지 못하다 하지 마시고 군사를 주시면, 한 번 가서 반드시 우리 땅을 되찾겠습니다."

왕이 허락하였다. 떠날 때 맹세하였다. "계립현과 죽령 서쪽이 우리에게 돌아오지 않으면 돌아오지 않겠다."

마침내 가서 신라 군사와 아단성 아래에서 싸우다가 흐르는 화살에 맞아 넘어져 죽었다.

장사 지내려 하니 널이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공주가 와서 관을 어루만지며 말하였다. "죽고 사는 것이 결단되었으니 아아, 돌아가소서." 마침내 들어 묻었다. 대왕이 이를 듣고 슬퍼하고 애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