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强首
1강수가 유학을 배우다
强首,中原京沙梁人也。父昔諦奈麻。其母,夢見人有角,而妊身及生,頭後有高骨。昔諦以兒就當時所謂賢者,問曰:「此兒頭骨如此,何也?」答曰:「吾聞之,伏羲虎形,女媧蛇身,神農牛頭,皐陶馬口,則聖賢同類,而其相亦有不凡者。又觀兒首有黶子,於相法,面黶無好,頭黶無惡,則此必奇物乎!」父還謂其妻曰:「爾子非常兒也,好養育之,當作將來之國士也。」及壯,自知讀書,通曉義理。父欲觀其志,問曰:「爾學佛乎?學儒乎?」對曰:「愚聞之,佛世外敎也。愚人間人,安用學佛為?願學儒者之道。」父曰:「從爾所好。」遂就師讀《孝經》、《曲禮》、《爾雅》、《文選》。所聞雖淺近,而所得愈高遠,魁然為一時之傑。遂入仕歷官,為時聞人。
강수는 중원경 사량 사람이다. 아버지는 나마 석체다.
그 어머니가 꿈에 뿔 있는 사람을 보고 아이를 배었는데, 낳으매 머리 뒤에 높은 뼈가 있었다. 석체가 아이를 데리고 그때 이른바 어진 이에게 나아가 물었다. "이 아이의 머리뼈가 이러하니 어찌 된 일입니까."
답하였다. "내가 듣기로 복희는 범의 모습이요 여와는 뱀의 몸이요 신농은 소의 머리요 고요는 말의 입이라 하니, 성현이 같은 무리이면서 그 모습도 또한 범상치 않은 바가 있습니다. 또 아이의 머리에 검은 사마귀가 있는 것을 보니, 상 보는 법에 얼굴의 사마귀는 좋을 것이 없으나 머리의 사마귀는 나쁠 것이 없다 하니, 그러면 이는 반드시 기이한 인물입니다."
아버지가 돌아와 그 아내에게 말하였다. "그대의 아들은 예사 아이가 아니니 잘 길러 장래의 나라의 선비가 되게 하시오."
자라매 스스로 글 읽을 줄 알아 뜻과 이치를 통하여 깨달았다. 아버지가 그 뜻을 보고자 물었다. "너는 부처를 배우겠느냐, 유학을 배우겠느냐."
답하였다. "제가 듣기로 부처는 세상 밖의 가르침이라 합니다. 저는 인간 세상의 사람이니 어찌 부처를 배우겠습니까. 유학하는 이의 도를 배우기를 바랍니다."
아버지가 말하였다. "네가 좋아하는 대로 하라."
마침내 스승에게 나아가 『효경』과 『곡례』와 『이아』와 『문선』을 읽었다. 들은 바는 비록 얕고 가까우나 얻은 바는 더욱 높고 멀어, 우뚝하게 한 시대의 호걸이 되었다. 마침내 벼슬에 나아가 여러 벼슬을 지내니 그때에 이름난 사람이 되었다.
2조강지처를 버리지 않다
强首嘗與釜谷冶家之女野合,情好頗篤。及年二十歲,父母媒邑中之女有容行者,將妻之,强首辭不可以再娶。父怒曰:「爾有時名,國人無不知,而以微者為偶,不亦可恥乎。」强首再拜曰:「貧且賤非所羞也,學道而不行之,誠所羞也。嘗聞古人之言曰:『糟糠之妻,不下堂;貧賤之交,不可忘。』則賤妾所不忍棄者也。」及太宗大王卽位,唐使者至,傳詔書。其中有難讀處,王召問之。在王前一見說釋無疑滯。王驚喜,恨相見之晚,問其姓名。對曰:「臣本任那加良人,名牛頭。」王曰:「見卿頭骨,可稱强首先生。」使製廻謝唐皇帝詔書表。文工而意盡,王益奇之,不稱名,言任生而已。强首未嘗謀生,家貧怡如也。王命有司,歲賜新城租一百石。文武王曰:「强首文章自任,能以書翰致意於中國及麗、濟二邦,故能結好成功。
강수가 일찍이 부곡의 대장장이 집 딸과 야합하여 정과 좋아함이 자못 도타웠다. 나이 스무 살이 되매 부모가 고을 안의 여자로 얼굴과 행실이 있는 이를 중매하여 아내로 삼게 하려 하니, 강수가 사양하며 두 번 장가들 수 없다 하였다.
아버지가 노하여 말하였다. "너는 때에 이름이 있어 나라 사람이 알지 못하는 이가 없는데, 미천한 이로 짝을 삼으니 또한 부끄럽지 않으냐."
강수가 두 번 절하고 말하였다. "가난하고 또 천한 것은 부끄러워할 바가 아니요, 도를 배우고 행하지 않는 것이 참으로 부끄러워할 바입니다. 일찍이 옛사람의 말을 들으니 '지게미와 겨를 함께 먹은 아내는 마루에서 내리지 않고, 가난하고 천할 때 사귄 벗은 잊을 수 없다' 하였으니, 천한 아내는 차마 버릴 수 없는 바입니다."
태종대왕이 즉위하매 당나라 사자가 이르러 조서를 전하였다. 그 가운데 읽기 어려운 곳이 있어 왕이 불러 물었다. 왕 앞에서 한 번 보고 풀어 말하는 데 막힘이 없었다.
왕이 놀라고 기뻐하여 늦게 만난 것을 한스러워하며 그 성명을 물었다. 답하였다. "신은 본디 임나가량 사람이요 이름은 우두입니다."
왕이 말하였다. "경의 머리뼈를 보니 강수 선생이라 일컬을 만하다."
당나라 황제에게 답례로 사례하는 표를 짓게 하니, 글이 공교하고 뜻이 다하였다. 왕이 더욱 기이하게 여겨 이름을 부르지 않고 임생이라 할 뿐이었다.
강수는 일찍이 살아갈 길을 꾀하지 않아 집이 가난하였으나 태연하였다. 왕이 맡은 관청에 명하여 해마다 신성의 조 일백 섬을 내리게 하였다.
문무왕이 말하였다. "강수가 글 짓는 일을 스스로 맡아 능히 글로 중국과 고구려와 백제 두 나라에 뜻을 전하였으므로, 좋게 맺어 공을 이룰 수 있었다.
3강수가 죽고 그 아내가 조를 받지 않다
我先王請兵於唐,以平麗、濟者,雖曰武功,亦由文章之助焉。則强首之功,豈可忽也?」授位沙飡,增俸歲租二百石。至神文大王時卒,葬事官供其賻。贈衣物匹段尤多,家人無所私,皆歸之佛事。其妻乏於食,欲還鄕里。大臣聞之,請王賜租百石。妻辭曰:「妾,賤者也,衣食從夫,受國恩多矣。今旣獨矣,豈敢再辱厚賜乎?」遂不受而歸。新羅古記曰:「文章則强首、帝文、守眞、良圖、風訓、骨番。」帝文已下事逸,不得立傳。
우리 선왕이 당나라에 군사를 청하여 고구려와 백제를 평정한 것이 비록 무공이라 하나 또한 글의 도움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그러니 강수의 공을 어찌 소홀히 하겠는가." 사찬 자리를 주고 봉록을 해마다 조 이백 섬으로 늘렸다.
신문대왕 때에 이르러 죽으니 장사 일을 관청에서 부의로 도왔다. 옷과 물건과 필단을 준 것이 더욱 많았으나 집안사람이 사사로이 하는 바가 없이 다 불사에 돌렸다.
그 아내가 먹을 것이 모자라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니, 대신이 이를 듣고 왕에게 청하여 조 백 섬을 내리게 하였다. 아내가 사양하여 말하였다. "저는 천한 사람입니다. 옷과 밥을 지아비를 좇아 얻으며 나라의 은혜를 받은 것이 많습니다. 이제 이미 홀로 되었으니 어찌 감히 다시 두터이 내리심을 욕되게 하겠습니까." 마침내 받지 않고 돌아갔다.
『신라고기』에 이르기를 "글로는 강수와 제문과 수진과 양도와 풍훈과 골번이라" 하였는데, 제문 이하는 일이 없어져 전을 세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