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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총薛聰

삼국사기 三國史記 · 김부식(金富軾) 등 · 1145년 (고려 인종 23) · 단락 3 · 한자 624자 · 낭독 2.5분

「삼국사기」 열전 「설총」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 역사서. 신라·고구려·백제 본기와 지·표·열전으로 이루어졌다. 김부식이 곳곳에 「論曰」로 자기 평을 달아 두어, 편찬자가 무엇을 의심하고 무엇을 나무랐는지가 그대로 남아 있다.

1설총이 꽃의 임금을 말하다

薛聰,字聰智。祖談捺奈麻,父元曉。初爲桑門,掩該佛書,旣而返本,自號小性居士。聰性明銳,生知道,待以方言,讀《九經》,訓導後生,至今學者宗之。又能屬文,而世無傳者。但今南地或有聰所製碑銘,文字鈌落不可讀,竟不知其何如也。神文大王以仲夏之月,處高明之室,顧謂聰曰:「今日宿雨初歇,薰風微凉,雖有珍饌哀音,不如高談善謔,以舒伊鬱。吾子必有異聞,盍爲我陳之?」聰曰:「唯。臣聞昔花王之始來也,植之以香園,護之以翠幕,當三春而發艶,凌百花而獨出。於是自邇及遐,艶艶之靈,夭夭之英,無不奔走上謁,唯恐不及。忽有一佳人,朱顔玉齒,鮮粧靚服,伶俜而來,綽約而前曰:『妾履雪白之沙汀,對鏡淸之海而,沐春雨以去垢,快淸風而自適,其名曰薔薇。

설총은 자가 총지다. 할아버지는 나마 담날이요 아버지는 원효다. 원효는 처음에 승려가 되어 불경을 두루 다 읽었으나 이윽고 본디로 돌아와 스스로 소성거사라 하였다.

총은 성품이 밝고 날카로워 나면서 도를 알았다. 신라 말로 아홉 경서를 읽어 뒷사람을 가르쳐 이끄니 지금까지 배우는 이가 그를 마루로 삼는다. 또 글을 잘 지었으나 세상에 전하는 것이 없다. 다만 지금 남쪽 땅에 더러 총이 지은 비명이 있으나 글자가 이지러져 떨어져 읽을 수 없어 마침내 그것이 어떠한지 알 수 없다.

신문대왕이 한여름 달에 높고 밝은 방에 있으면서 총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오늘 오래 내리던 비가 처음 그치고 훈훈한 바람이 조금 서늘하니, 비록 진기한 음식과 애처로운 음악이 있어도 높은 말과 좋은 우스개로 답답함을 푸는 것만 못하다. 그대는 반드시 남다른 이야기를 들은 것이 있을 터이니 어찌 나를 위하여 펴지 않겠는가."

총이 말하였다. "예. 신이 들으니 옛날 꽃의 임금이 처음 왔을 때, 향기로운 동산에 심고 푸른 장막으로 지키니, 봄 석 달을 당하여 고운 빛을 피워 온갖 꽃을 누르고 홀로 뛰어났습니다. 이에 가까운 데서 먼 데까지 곱디고운 신령과 어여쁜 꽃부리가 달려와 위로 뵙지 않는 이가 없어, 오직 미치지 못할까 두려워하였습니다.

문득 한 아름다운 사람이 있어 붉은 낯과 옥 같은 이에 고운 단장과 산뜻한 옷으로 하늘하늘 오더니, 나긋나긋 앞에 나아가 말하였습니다. '저는 눈처럼 흰 모래톱을 밟고 거울처럼 맑은 바다를 마주하며, 봄비에 목욕하여 때를 씻고 맑은 바람에 시원히 스스로 즐기니 그 이름을 장미라 합니다.

2백두옹의 말

聞王之令德,期薦枕於香帷,王其容我乎?』又有一丈夫,布衣韋帶,戴白持杖,龍鍾而步,傴僂而來,曰:『僕在京城之外,居大道之旁,下臨蒼茫之野景,上倚嵯峨之山色,其名曰白頭翁。竊謂左右供給雖足,膏梁以充腸,茶酒以淸神,巾衍儲藏,須有良藥以補氣,惡石以蠲毒。故曰雖有絲麻,無棄菅蒯。凡百君子,無不代匱。不識王亦有意乎?』或曰:『二者之來,何取何捨?』花王曰:『丈夫之言,亦有道理,而佳人難得,將如之何?』丈夫進而言曰:『吾謂王聰明識理義,故來焉耳,今則非也。凡爲君者,鮮不親近邪倿,疎遠正直。是以孟軻不遇以終身,馮唐郞潛而皓首。自古如此,吾其奈何?』花王曰:『吾過矣,吾過矣!』」於是王愀然作色曰:「子之寓言,誠有深志。

왕의 아름다운 덕을 듣고 향기로운 장막에서 잠자리를 받들기를 기약하니, 왕께서는 저를 받아 주시겠습니까.'

또 한 사내가 있어 베옷에 가죽띠를 매고 흰머리에 지팡이를 짚고 구부정하게 걸어 허리를 굽히고 와서 말하였습니다. '저는 서울 밖에 있어 큰길가에 사는데, 아래로는 아득한 들 경치를 굽어보고 위로는 우뚝한 산빛에 기대었으니 그 이름을 백두옹이라 합니다.

가만히 생각하건대 좌우에서 이바지하는 것이 비록 넉넉하여, 기름진 곡식으로 창자를 채우고 차와 술로 정신을 맑게 하며 상자에 갈무리한 것이 있어도, 모름지기 좋은 약으로 기운을 돕고 독한 돌로 독을 없애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비록 실과 삼이 있어도 골풀과 기름사초를 버리지 말라 하였습니다. 무릇 온갖 군자가 모자랄 때를 대신하지 않는 이가 없으니, 왕께서도 또한 뜻이 있으신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어떤 이가 말하였습니다. '둘이 왔으니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리시렵니까.'

꽃의 임금이 말하였습니다. '사내의 말도 또한 도리가 있으나 아름다운 사람은 얻기 어려우니 장차 어찌하랴.'

사내가 나아가 말하였습니다. '저는 왕이 총명하여 이치와 의로움을 아신다 여겨 그러므로 왔을 뿐인데, 이제 보니 아닙니다. 무릇 임금 된 이로 간사하고 아첨하는 이를 가까이하고 바르고 곧은 이를 멀리하지 않는 이가 드뭅니다. 이런 까닭에 맹가는 때를 만나지 못하고 몸을 마쳤으며 풍당은 낭관으로 잠겨 흰머리가 되었습니다. 예로부터 이와 같으니 제가 어찌하겠습니까.'

꽃의 임금이 말하였습니다. '내가 잘못하였다, 내가 잘못하였다.'"

이에 왕이 낯빛을 고치며 말하였다. "그대의 부치어 한 말에 참으로 깊은 뜻이 있으니,

3설총을 높은 벼슬에 올리다

請書之,以謂王者之戒。」遂擢聰以高秩。世傳日本國眞人贈新羅使薛判官詩序云:「嘗覽元曉居士所著《金剛三昧論》,深恨不見其人。聞新羅國使薛,卽是居士之抱孫,雖不見其祖,而喜遇其孫,乃作詩贈之。」其詩至今存焉,但不知其子孫名字耳。至我顯宗,在位十三歲,天禧五年辛酉,追贈爲弘儒侯。或云薛聰嘗入唐學,未知然不?

청컨대 이를 적어 임금 된 이의 경계로 삼게 하라." 마침내 총을 뽑아 높은 벼슬에 올렸다.

세상에 전하기를, 일본국 진인이 신라 사신 설 판관에게 준 시의 서문에 이르기를 "일찍이 원효거사가 지은 『금강삼매론』을 보고 그 사람을 보지 못함을 깊이 한스러워하였다. 신라국 사신 설이 곧 거사의 손자라는 말을 들으니, 비록 그 할아버지를 보지는 못하였으나 그 손자를 만난 것이 기뻐 이에 시를 지어 준다" 하였다. 그 시가 지금까지 있으나 다만 그 자손의 이름과 자를 알 수 없을 뿐이다.

고려 현종 재위 십삼년 천희 오년 신유에 이르러 홍유후를 추증하였다. 더러는 설총이 일찍이 당나라에 들어가 배웠다 하나 그러한지 아닌지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