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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론奚論

삼국사기 三國史記 · 김부식(金富軾) 등 · 1145년 (고려 인종 23) · 단락 2 · 한자 351자 · 낭독 1.4분

「삼국사기」 열전 「해론」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 역사서. 신라·고구려·백제 본기와 지·표·열전으로 이루어졌다. 김부식이 곳곳에 「論曰」로 자기 평을 달아 두어, 편찬자가 무엇을 의심하고 무엇을 나무랐는지가 그대로 남아 있다.

1찬덕이 홰나무에 부딪쳐 죽다

奚論,牟梁人也。其父讚德,有勇志英節,名高一時。建福二十七年庚午乙丑,眞平大王選為椵岑城縣令。明年辛未丙寅冬十月,百濟大發兵,來攻椵岑城一百餘日。眞平王命將,以上州、下州、新州之兵救之,遂往與百濟人戰不克,引還。讚德憤恨之,謂士卒曰:「三州軍帥見敵强不進,城危不救,是無義也。與其無義而生,不若有義而死。」乃激昻奮勵,且戰且守,以至粮盡水竭,而猶食屍飲尿,力戰不怠。至春正月,人旣疲,城將破,勢不可復完,乃仰天大呼曰:「吾王委我以一城,而不能全,為敵所敗,願死為大厲,喫盡百濟人,以復此城。」遂攘臂瞋目,走觸槐樹而死。於是,城陷,軍士皆降。奚論年二十餘歲,以父功,為大奈麻。至建福三十五四十年戊寅,王命奚論,為金山幢主,與漢山州都督邊品,興師襲椵岑城,取之。

해론은 모량 사람이다. 그 아버지 찬덕은 용맹한 뜻과 빼어난 절개가 있어 이름이 한때에 높았다.

건복 이십칠년 을축에 진평대왕이 가려 가잠성 현령으로 삼았다. 이듬해 병인 겨울 시월에 백제가 크게 군사를 일으켜 가잠성을 백여 날 치러 왔다. 진평왕이 장수에게 명하여 상주와 하주와 신주의 군사로 구하게 하였는데, 마침내 가서 백제 사람과 싸웠으나 이기지 못하고 이끌고 돌아왔다.

찬덕이 이를 분하고 한스러워하여 군사에게 말하였다. "세 주의 장수가 적이 강함을 보고 나아가지 않고 성이 위태로운데도 구하지 않으니 이는 의로움이 없는 것이다. 의로움 없이 사느니 의로움 있게 죽는 것만 못하다."

이에 격동하여 떨쳐 힘쓰며 싸우면서 지켜, 양식이 다하고 물이 마르는 데 이르러서도 오히려 주검을 먹고 오줌을 마시며 힘껏 싸우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봄 정월에 이르러 사람이 이미 지치고 성이 곧 깨어지려 하여 형세가 다시 온전할 수 없게 되매, 이에 하늘을 우러러 크게 부르짖었다. "우리 왕이 나에게 한 성을 맡겼는데 온전히 하지 못하고 적에게 지게 되었다. 바라건대 죽어 큰 여귀가 되어 백제 사람을 다 씹어 먹고 이 성을 되찾겠다."

마침내 팔을 걷고 눈을 부릅뜨고 달려 홰나무에 부딪쳐 죽었다. 이에 성이 함락되고 군사가 다 항복하였다.

해론은 나이 스무남은에 아버지의 공으로 대나마가 되었다. 건복 사십년 무인에 이르러 왕이 해론에게 명하여 금산당주로 삼으니, 한산주 도독 변품과 함께 군사를 일으켜 가잠성을 습격하여 빼앗았다.

2해론이 아버지 죽은 자리에서 죽다

百濟聞之,擧兵來,奚論等逆之。兵旣相交,奚論謂諸將曰:「昔吾父殞身於此,我今亦與百濟人戰於此,是我死日也。」遂以短兵赴敵,殺數人而死。王聞之,為流涕,贈卹其家甚厚。時人無不哀悼,為作長歌弔之。

백제가 이를 듣고 군사를 일으켜 오매 해론 등이 맞았다. 군사가 이미 서로 맞붙으매 해론이 여러 장수에게 말하였다. "옛날 내 아버지가 여기서 몸을 마쳤는데, 내가 이제 또한 백제 사람과 여기서 싸우니 이것이 내가 죽을 날이다."

마침내 짧은 병기로 적에게 나아가 여러 사람을 죽이고 죽었다. 왕이 이를 듣고 눈물을 흘리며 그 집에 부의하고 돌봄을 매우 두터이 하였다. 그때 사람이 슬퍼하고 애도하지 않는 이가 없어, 긴 노래를 지어 조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