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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素那

삼국사기 三國史記 · 김부식(金富軾) 등 · 1145년 (고려 인종 23) · 단락 2 · 한자 400자 · 낭독 1.6분

「삼국사기」 열전 「소나」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 역사서. 신라·고구려·백제 본기와 지·표·열전으로 이루어졌다. 김부식이 곳곳에 「論曰」로 자기 평을 달아 두어, 편찬자가 무엇을 의심하고 무엇을 나무랐는지가 그대로 남아 있다.

1소나가 아달성에서 싸우다

素那,白城郡蛇山人也。其父沈那,膂力過人,身輕且捷。蛇山境與百濟相錯,故互相寇擊無虛月。沈那每出戰,所向無堅陣。仁平中,白城郡出兵,往抄百濟邊邑,百濟出精兵急擊之,我士卒亂退。沈那獨立拔劒,怒目大叱,斬殺數十餘人,賊懼不敢當,遂引兵而走。百濟人,指沈那曰:「新羅飛將。」因相謂曰:「沈那尚生,莫近白城。」素那雄豪有父風。百濟滅後,漢州都督都儒公請大王遷白王遣素那於阿達城,俾禦北鄙。上元二年乙亥春,阿達城太守級飡漢宣,敎民以某日齊出種麻,不得違令。靺鞨諜者認之,歸告其酋長。至其日,百姓皆出城在田,靺鞨潛師猝入城,剽掠一城,老幼狼狽,不知所為。素那奮刃向賊,大呼曰:「爾等知新羅有沈那之子素那乎?固不畏死以圖生,欲鬪者曷不來耶?」遂憤怒突賊,賊不敢迫,但向射之。

소나는 백성군 사산 사람이다. 그 아버지 심나는 힘이 남보다 뛰어나고 몸이 가벼우며 또 날랬다.

사산 지경은 백제와 서로 얽혀 있으므로 서로 노략하고 치기를 빈 달이 없었다. 심나가 싸움에 나갈 때마다 향하는 곳에 굳은 진이 없었다.

인평 연간에 백성군이 군사를 내어 백제 변방 고을을 노략하러 가니, 백제가 정예 군사를 내어 급히 치므로 신라 군사가 어지러이 물러났다. 심나가 홀로 서서 칼을 빼고 눈을 부릅뜨고 크게 꾸짖으며 수십여 사람을 베어 죽이니, 도둑이 두려워 감히 맞서지 못하고 마침내 군사를 이끌고 달아났다.

백제 사람이 심나를 가리켜 말하였다. "신라의 나는 장수다." 이로 인하여 서로 말하였다. "심나가 아직 살아 있으니 백성군에 가까이 가지 말라."

소나는 씩씩하고 호걸스러워 아버지의 풍모가 있었다. 백제가 없어진 뒤에 한주 도독 도유공이 대왕에게 청하여 소나를 아달성에 보내어 북쪽 변두리를 막게 하였다.

상원 이년 을해 봄에 아달성 태수 급찬 한선이 고을 사람에게 어느 날 다 나가 삼을 심으라 하고 영을 어기지 못하게 하였다. 말갈의 엿보는 이가 이를 알고 돌아가 그 우두머리에게 알렸다.

그날이 되어 고을 사람이 다 성을 나가 밭에 있으매, 말갈이 몰래 군사를 이끌고 갑자기 성에 들어와 온 성을 노략하니, 늙은이와 어린이가 낭패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소나가 칼을 떨쳐 적을 향하여 크게 외쳤다. "너희는 신라에 심나의 아들 소나가 있는 줄 아느냐. 진실로 죽음을 두려워하여 삶을 꾀하지 않으니, 싸우고자 하는 자는 어찌 오지 않느냐."

마침내 분노하여 적에게 부딪쳐 가니 적이 감히 다그치지 못하고 다만 향하여 쏘았다.

협주 2

或云金川。

금천(金川)이라고도 한다.

或云煌川。

황천(煌川)이라고도 한다.

2소나가 죽고 그 아내가 말하다

素那亦射,飛矢如蜂,自辰至酉,素那身矢如猬,遂倒而死。素那妻,加林郡良家女子。初素那以阿達城隣敵國,獨行,留其妻而在家。郡人聞素那死,弔之,其妻哭而對曰:「吾夫常曰:『丈夫固當兵死,豈可臥牀席,死家人之手乎!』其平昔之言如此,今死如其志也。」大王聞之,涕泣沾襟曰:「父子勇於國事,可謂世濟忠義矣。」贈官迊飡。

소나도 또한 쏘니 나는 화살이 벌 떼 같았다. 진시부터 유시까지 하여 소나의 몸에 화살이 고슴도치 같아 마침내 넘어져 죽었다.

소나의 아내는 가림군 양가의 여자다. 처음에 소나가 아달성이 적국에 이웃하였다 하여 홀로 가고 그 아내를 남겨 집에 있게 하였다.

고을 사람이 소나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조상하니 그 아내가 곡하며 답하였다. "내 지아비가 늘 말하기를 '사내는 진실로 마땅히 싸움에서 죽어야지 어찌 침상에 누워 집안사람의 손에 죽겠는가' 하였습니다. 그 평소의 말이 이와 같으니 이제 죽음이 그 뜻과 같습니다."

대왕이 이를 듣고 눈물을 흘려 옷깃을 적시며 말하였다. "아버지와 아들이 나랏일에 용감하니 대를 이어 충성과 의로움을 이루었다 할 만하다." 잡찬 벼슬을 추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