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삼국사기 › 열전

취도驟徒

삼국사기 三國史記 · 김부식(金富軾) 등 · 1145년 (고려 인종 23) · 단락 2 · 한자 346자 · 낭독 1.4분

「삼국사기」 열전 「취도」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 역사서. 신라·고구려·백제 본기와 지·표·열전으로 이루어졌다. 김부식이 곳곳에 「論曰」로 자기 평을 달아 두어, 편찬자가 무엇을 의심하고 무엇을 나무랐는지가 그대로 남아 있다.

1취도가 승려 옷을 벗다

驟徒,沙梁人,奈麻聚福之子,史失其姓。兄弟三人,長夫果,仲驟徒,季逼實。驟徒嘗出家,名道玉,居實際寺。大宗大王太宗大王時,百濟來伐助川城,大王興師出戰,未決。於是,道玉語其徒曰:「吾聞:『為僧者,上則精術業,以復性。次則起道用,以益他。』我形似桑門而已,無一善可取,不如從軍殺身,以報國。」脫法衣,著戎服,改名曰驟徒,意謂馳驟而為徒也。乃詣兵部,請屬三千幢,遂隨軍赴敵場。及旗鼓相當,持槍劒,突陣力鬪,殺賊數人而死。後咸亨二年辛未,文武大王發兵,使踐百濟邊地之禾。遂與百濟人,戰於熊津之南。時夫果以幢主戰死,論功第一。文明元年甲申,高句麗殘賊,據報德城而叛,神文大王命將討之,以逼實為貴幢弟監第監。臨行,謂其婦曰:「吾二兄,旣死於王事,名垂不朽,吾雖不肖,何得畏死而苟存乎?今日與爾生離,終是死別也,好住無傷。

취도는 사량 사람이니 나마 취복의 아들인데 역사에 그 성을 잃었다. 형제 세 사람으로 맏이는 부과요 가운데는 취도요 막내는 핍실이다.

취도가 일찍이 출가하여 이름을 도옥이라 하고 실제사에 있었다.

태종대왕 때 백제가 조천성을 치러 오매 대왕이 군사를 일으켜 나가 싸웠으나 결판을 내지 못하였다. 이에 도옥이 그 무리에게 말하였다. "내가 듣기로 '승려 된 이는 위로는 닦는 공부를 정밀히 하여 성품으로 돌아가고, 다음으로는 도의 쓰임을 일으켜 남을 이롭게 한다' 하였다. 나는 모습만 승려 같을 뿐이요 하나도 취할 만한 착함이 없으니, 종군하여 몸을 바쳐 나라에 갚는 것만 못하다."

법의를 벗고 군복을 입고 이름을 취도(驟徒)라 고쳤으니, 달려 나아가 무리가 된다는 뜻이다. 이에 병부에 나아가 삼천당에 딸리기를 청하고, 마침내 군사를 따라 적의 싸움터로 나아갔다. 깃발과 북이 서로 맞서매 창과 칼을 잡고 진에 부딪쳐 힘껏 싸워 도둑 몇 사람을 죽이고 죽었다.

뒤에 함형 이년 신미에 문무대왕이 군사를 내어 백제 변방 땅의 벼를 밟게 하니, 마침내 백제 사람과 웅진 남쪽에서 싸웠다. 그때 부과가 당주로 싸우다 죽으니 공을 논함에 첫째였다.

문명 원년 갑신에 고구려의 남은 도둑이 보덕성에 웅거하여 배반하매, 신문대왕이 장수에게 명하여 치게 하고 핍실을 귀당제감으로 삼았다. 떠날 때 그 아내에게 말하였다. "내 두 형이 이미 나랏일에 죽어 이름이 썩지 않고 드리웠다. 내가 비록 어질지 못하나 어찌 죽음을 두려워하여 구차히 살겠는가. 오늘 그대와 산 채로 헤어지나 마침내 이는 죽어 이별함이니, 잘 있고 상심하지 말라."

2세 형제가 다 사찬을 추증받다

」及對陣,獨出奮擊,斬殺數十人而死。大王聞之,流涕嘆曰:「驟徒知死所,而激昆弟之心。夫果、逼實亦能勇於義,不顧其身,不其壯歟!」皆追贈官沙飡。

진을 마주하매 홀로 나가 떨쳐 쳐서 수십 사람을 베어 죽이고 죽었다.

대왕이 이를 듣고 눈물을 흘리며 탄식하였다. "취도가 죽을 자리를 알아 형과 아우의 마음을 격동하였다. 부과와 핍실도 또한 의로움에 용감하여 그 몸을 돌아보지 않았으니 장하지 않은가." 다 사찬 벼슬을 추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