눌최訥催
1눌최가 외로운 성을 지키다
訥催,沙梁人,大奈麻都非之子也。眞平王建福四十一年甲申己卯冬十月,百濟大擧來侵,分兵圍攻速含、櫻岑、岐岑、烽岑、旗懸、冗柵穴柵等六城,王命上州、下州、貴幢、法幢、誓幢五軍,往救之。旣到,見百濟兵陣堂堂,鋒不可當,盤桓不進。或立議曰:「大王以五軍委之諸將,國之存亡,在此一役。兵家之言曰:『見可而進,知難而退。』今强敵在前,不以好謀而直進,萬一有不如意,則悔不可追。」將佐皆以為然,而業已受命出師,不得徒還。先是,國家欲築奴珍等六城而未遑,遂於其地,築畢而歸。於是,百濟侵攻愈急,速含、岐岑、冗柵穴柵三城,或滅或降,訥催以三城固守,及聞五軍不救而還,慷慨流涕,謂士卒曰:「陽春和氣,草木皆華,至於歲寒,獨松栢後彫。
눌최는 사량 사람이니 대나마 도비의 아들이다.
진평왕 건복 사십일년 기묘 겨울 시월에 백제가 크게 침노하러 와서 군사를 나누어 속함·앵잠·기잠·봉잠·기현·용책 등 여섯 성을 에워싸고 쳤다. 왕이 상주와 하주와 귀당과 법당과 서당 다섯 군단에게 명하여 가서 구하게 하였다.
이르러 백제 군사의 진이 당당하고 칼끝을 당할 수 없음을 보고 머뭇거리며 나아가지 못하였다.
어떤 이가 나서서 의논하였다. "대왕이 다섯 군단를 여러 장수에게 맡겼으니 나라의 있고 없어짐이 이 한 싸움에 있다. 병가의 말에 '할 만한 것을 보고 나아가고 어려움을 알고 물러난다' 하였다. 이제 강한 적이 앞에 있는데 좋은 꾀 없이 곧바로 나아갔다가 만일 뜻 같지 않으면 뉘우쳐도 미칠 수 없다."
장수와 보좌가 다 그렇게 여겼으나 이미 명을 받아 군사를 냈으므로 헛되이 돌아갈 수 없었다. 이보다 앞서 나라에서 노진 등 여섯 성을 쌓으려 하다가 겨를이 없었으므로, 마침내 그 땅에 쌓기를 마치고 돌아왔다.
이에 백제가 침노하여 치기를 더욱 급히 하여 속함과 기잠과 용책 세 성이 더러는 없어지고 더러는 항복하였다. 눌최가 세 성으로 굳게 지키다가 다섯 군단가 구하지 않고 돌아갔다는 말을 듣고, 강개하여 눈물을 흘리며 군사에게 말하였다.
"봄볕의 화한 기운에는 풀과 나무가 다 꽃피우나, 추운 철에 이르러서는 홀로 소나무와 잣나무가 뒤늦게 시든다.
2눌최와 그 종이 함께 죽다
今孤城無援,日益阽危,此誠志士義夫,盡節揚名之秋,汝等將若之何?」士卒揮淚曰:「不敢惜死,唯命是從。」及城將隤,軍士死亡無幾,人皆殊死戰,無苟免之心。訥催有一奴,强力善射。或嘗語曰:「小人而有異才,鮮不為害,此奴宜遠之。」訥催不聽。至是城陷賊入,奴張弓挾矢,在訥催前,射不虛發,賊懼不能前。有一賊出後,以斧擊訥催,乃仆,奴反與鬪俱死。王聞之,悲慟,追贈訥催職級飡。
이제 외로운 성에 도움이 없어 날로 더욱 위태로우니, 이는 참으로 뜻 있는 선비와 의로운 사내가 절개를 다하고 이름을 날릴 때다. 너희는 장차 어찌하겠느냐."
군사가 눈물을 뿌리며 말하였다. "감히 죽음을 아끼지 않고 오직 명을 좇겠습니다."
성이 곧 무너지려 할 때 군사로 죽어 남은 이가 얼마 없었으나, 사람들이 다 죽기를 다하여 싸우고 구차히 면하려는 마음이 없었다.
눌최에게 종 하나가 있었는데 힘이 세고 활을 잘 쏘았다. 어떤 이가 일찍이 말하였다. "소인이면서 남다른 재주가 있으면 해가 되지 않는 이가 드무니, 이 종은 마땅히 멀리해야 한다." 눌최가 듣지 않았다.
이때에 이르러 성이 함락되고 도둑이 들어오매 종이 활을 당기고 화살을 끼고 눌최 앞에 있어 쏘아 헛되이 나가는 것이 없으니, 도둑이 두려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였다. 한 도둑이 뒤에서 나와 도끼로 눌최를 치니 이에 넘어졌고, 종이 돌이켜 그와 싸우다 함께 죽었다.
왕이 이를 듣고 슬퍼하고 애통하여 눌최에게 급찬 벼슬을 추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