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눌최訥催

삼국사기 三國史記 · 김부식(金富軾) 등 · 1145년 (고려 인종 23) · 단락 2 · 한자 394자 · 낭독 1.6분

「삼국사기」 열전 「눌최」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 역사서. 신라·고구려·백제 본기와 지·표·열전으로 이루어졌다. 김부식이 곳곳에 「論曰」로 자기 평을 달아 두어, 편찬자가 무엇을 의심하고 무엇을 나무랐는지가 그대로 남아 있다.

1눌최가 외로운 성을 지키다

訥催,沙梁人,大奈麻都非之子也。眞平王建福四十一年甲申己卯冬十月,百濟大擧來侵,分兵圍攻速含、櫻岑、岐岑、烽岑、旗懸、冗柵穴柵等六城,王命上州、下州、貴幢、法幢、誓幢五軍,往救之。旣到,見百濟兵陣堂堂,鋒不可當,盤桓不進。或立議曰:「大王以五軍委之諸將,國之存亡,在此一役。兵家之言曰:『見可而進,知難而退。』今强敵在前,不以好謀而直進,萬一有不如意,則悔不可追。」將佐皆以為然,而業已受命出師,不得徒還。先是,國家欲築奴珍等六城而未遑,遂於其地,築畢而歸。於是,百濟侵攻愈急,速含、岐岑、冗柵穴柵三城,或滅或降,訥催以三城固守,及聞五軍不救而還,慷慨流涕,謂士卒曰:「陽春和氣,草木皆華,至於歲寒,獨松栢後彫。

눌최는 사량 사람이니 대나마 도비의 아들이다.

진평왕 건복 사십일년 기묘 겨울 시월에 백제가 크게 침노하러 와서 군사를 나누어 속함·앵잠·기잠·봉잠·기현·용책 등 여섯 성을 에워싸고 쳤다. 왕이 상주와 하주와 귀당과 법당과 서당 다섯 군단에게 명하여 가서 구하게 하였다.

이르러 백제 군사의 진이 당당하고 칼끝을 당할 수 없음을 보고 머뭇거리며 나아가지 못하였다.

어떤 이가 나서서 의논하였다. "대왕이 다섯 군단를 여러 장수에게 맡겼으니 나라의 있고 없어짐이 이 한 싸움에 있다. 병가의 말에 '할 만한 것을 보고 나아가고 어려움을 알고 물러난다' 하였다. 이제 강한 적이 앞에 있는데 좋은 꾀 없이 곧바로 나아갔다가 만일 뜻 같지 않으면 뉘우쳐도 미칠 수 없다."

장수와 보좌가 다 그렇게 여겼으나 이미 명을 받아 군사를 냈으므로 헛되이 돌아갈 수 없었다. 이보다 앞서 나라에서 노진 등 여섯 성을 쌓으려 하다가 겨를이 없었으므로, 마침내 그 땅에 쌓기를 마치고 돌아왔다.

이에 백제가 침노하여 치기를 더욱 급히 하여 속함과 기잠과 용책 세 성이 더러는 없어지고 더러는 항복하였다. 눌최가 세 성으로 굳게 지키다가 다섯 군단가 구하지 않고 돌아갔다는 말을 듣고, 강개하여 눈물을 흘리며 군사에게 말하였다.

"봄볕의 화한 기운에는 풀과 나무가 다 꽃피우나, 추운 철에 이르러서는 홀로 소나무와 잣나무가 뒤늦게 시든다.

2눌최와 그 종이 함께 죽다

今孤城無援,日益阽危,此誠志士義夫,盡節揚名之秋,汝等將若之何?」士卒揮淚曰:「不敢惜死,唯命是從。」及城將隤,軍士死亡無幾,人皆殊死戰,無苟免之心。訥催有一奴,强力善射。或嘗語曰:「小人而有異才,鮮不為害,此奴宜遠之。」訥催不聽。至是城陷賊入,奴張弓挾矢,在訥催前,射不虛發,賊懼不能前。有一賊出後,以斧擊訥催,乃仆,奴反與鬪俱死。王聞之,悲慟,追贈訥催職級飡。

이제 외로운 성에 도움이 없어 날로 더욱 위태로우니, 이는 참으로 뜻 있는 선비와 의로운 사내가 절개를 다하고 이름을 날릴 때다. 너희는 장차 어찌하겠느냐."

군사가 눈물을 뿌리며 말하였다. "감히 죽음을 아끼지 않고 오직 명을 좇겠습니다."

성이 곧 무너지려 할 때 군사로 죽어 남은 이가 얼마 없었으나, 사람들이 다 죽기를 다하여 싸우고 구차히 면하려는 마음이 없었다.

눌최에게 종 하나가 있었는데 힘이 세고 활을 잘 쏘았다. 어떤 이가 일찍이 말하였다. "소인이면서 남다른 재주가 있으면 해가 되지 않는 이가 드무니, 이 종은 마땅히 멀리해야 한다." 눌최가 듣지 않았다.

이때에 이르러 성이 함락되고 도둑이 들어오매 종이 활을 당기고 화살을 끼고 눌최 앞에 있어 쏘아 헛되이 나가는 것이 없으니, 도둑이 두려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였다. 한 도둑이 뒤에서 나와 도끼로 눌최를 치니 이에 넘어졌고, 종이 돌이켜 그와 싸우다 함께 죽었다.

왕이 이를 듣고 슬퍼하고 애통하여 눌최에게 급찬 벼슬을 추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