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삼국사기 › 열전

관창官昌

삼국사기 三國史記 · 김부식(金富軾) 등 · 1145년 (고려 인종 23) · 단락 1 · 한자 288자 · 낭독 1.2분

「삼국사기」 열전 「관창」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 역사서. 신라·고구려·백제 본기와 지·표·열전으로 이루어졌다. 김부식이 곳곳에 「論曰」로 자기 평을 달아 두어, 편찬자가 무엇을 의심하고 무엇을 나무랐는지가 그대로 남아 있다.

1관창

官昌,新羅將軍品日之子。儀表都雅,少而為花郞,善與人交。年十六,能騎馬彎弓。大監某薦之太宗大王。至唐顯慶五年庚申,王出師,與唐將軍侵百濟,以官昌為副將。至黃山之野,兩兵相對。父品日謂曰:「爾雖幼年,有志氣,今日是立功名取富貴之時,其可無勇乎?」官昌曰:「唯。」卽上馬橫槍,直擣敵陣,馳殺數人。而彼衆我寡,為賊所虜,生致百濟元帥階伯前。階伯俾脫胄,愛其少且勇,不忍加害。乃嘆曰:「新羅多奇士,少年尚如此,況壯士乎?」乃許生還。官昌曰:「向吾入賊中,不能斬將搴旗,深所恨也。再入必能成功。」以手掬井水,飲訖,再突賊陣疾鬪。階伯擒斬首,繫馬鞍送之。品日執其首,袖拭血曰:「吾兒面目如生,能死於王事,無所悔矣。」三軍見之,慷慨有立志,鼓噪進擊,百濟大敗。大王贈位級飡,以禮葬之,賻其家唐絹三十匹、二十升布三十匹、穀一百石。

관창은 신라 장군 품일의 아들이다. 거동과 모습이 아름답고 우아하였으며 어려서 화랑이 되어 사람과 잘 사귀었다. 나이 열여섯에 말을 타고 활을 당길 수 있었다. 대감 아무개가 태종대왕에게 천거하였다.

당나라 현경 오년 경신에 이르러 왕이 군사를 내어 당나라 장군과 함께 백제를 침노할 때 관창을 부장으로 삼았다.

황산 들에 이르러 두 군사가 서로 마주하매 아버지 품일이 말하였다. "네가 비록 어린 나이나 뜻과 기운이 있다. 오늘이 공과 이름을 세우고 부귀를 취할 때이니 용맹이 없을 수 있겠느냐."

관창이 말하였다. "예." 곧 말에 올라 창을 비껴들고 곧바로 적진에 부딪쳐 달리며 몇 사람을 죽였다. 그러나 저쪽은 무리가 많고 신라 쪽은 적어 도둑에게 사로잡혀 산 채로 백제 원수 계백 앞에 끌려갔다.

계백이 투구를 벗기게 하고 그 어리고 또 용감함을 아껴 차마 해치지 못하고, 이에 탄식하였다. "신라에 기이한 선비가 많구나. 소년이 오히려 이와 같으니 하물며 장년의 군사이겠는가." 이에 살려 보내기를 허락하였다.

관창이 말하였다. "아까 내가 적 가운데 들어가 장수를 베고 깃발을 뽑지 못하였으니 깊이 한스러운 바다. 다시 들어가면 반드시 공을 이룰 수 있다."

손으로 우물물을 움켜 마시고 나서 다시 적진에 부딪쳐 재빨리 싸웠다. 계백이 사로잡아 목을 베어 말안장에 매어 보냈다.

품일이 그 머리를 잡고 소매로 피를 닦으며 말하였다. "내 아이의 얼굴이 살아 있는 듯하다. 나랏일에 죽을 수 있었으니 뉘우칠 바가 없다."

삼군이 이를 보고 강개하여 뜻을 세우고 북 치고 떠들며 나아가 치니 백제가 크게 졌다.

대왕이 급찬 벼슬을 주고 예로 장사 지냈으며, 그 집에 당나라 명주 서른 필과 스무 새 베 서른 필과 곡식 일백 섬을 부의하였다.

협주 1

一云官狀。

관장(官狀)이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