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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흠운金歆運

삼국사기 三國史記 · 김부식(金富軾) 등 · 1145년 (고려 인종 23) · 단락 2 · 한자 508자 · 낭독 2.0분

「삼국사기」 열전 「김흠운」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 역사서. 신라·고구려·백제 본기와 지·표·열전으로 이루어졌다. 김부식이 곳곳에 「論曰」로 자기 평을 달아 두어, 편찬자가 무엇을 의심하고 무엇을 나무랐는지가 그대로 남아 있다.

1김흠운이 이름을 구하지 않다

金歆運,奈密王八世孫也。父達福迊飡。歆運少遊花郞文努之門時,徒衆言及某戰死留名至今,歆運慨然流涕,有激勵思齊之貌。同門僧轉密曰:「此人若赴敵,必不還也。」永徽六年,太宗大王憤百濟與高句麗梗邊,謀伐之。及出師,以歆運為郞幢大監。於是,不宿於家,風梳雨沐,與士卒同甘苦。抵百濟之地,營陽山下,欲進攻助川城。百濟人乘夜疾驅,黎明緣壘而入,我軍驚駭顚沛,不能定。賊因亂急擊,飛矢雨集。歆運橫馬握槊待敵,大舍詮知說曰:「今賊起暗中,咫尺不相辨,公雖死,人無識者。況公新羅之貴骨,大王之半子,若死賊人手,則百濟所誇詫,而吾人之所深羞者矣。」歆運曰:「大丈夫旣以身許國,人知之與不知一也,豈敢求名乎?」强立不動。從者,握轡勸還,歆運拔劒揮之,與賊鬪殺數人而死。

김흠운은 내물왕의 팔세손이다. 아버지는 잡찬 달복이다.

흠운이 젊어서 화랑 문노의 문에 노닐 때, 무리가 아무개가 싸우다 죽어 이름을 지금까지 남겼다는 말을 하매 흠운이 강개하여 눈물을 흘리며 격려되어 같아지기를 생각하는 낯빛이 있었다. 같은 문의 승려 전밀이 말하였다. "이 사람이 만약 적에게 나아가면 반드시 돌아오지 않으리라."

영휘 육년에 태종대왕이 백제가 고구려와 함께 변경을 막는 것을 분히 여겨 치기를 꾀하였다. 군사를 낼 때 흠운을 낭당대감으로 삼았다.

이에 집에서 자지 않고 바람에 머리 빗고 비에 목욕하며 군사와 달고 씀을 함께하였다.

백제 땅에 이르러 양산 아래에 진을 치고 조천성을 나아가 치려 하였다. 백제 사람이 밤을 타 재빨리 달려 동틀 무렵 보루를 타고 들어오니, 신라 군사가 놀라고 넘어져 진정하지 못하였다. 도둑이 그 어지러움을 타 급히 치니 나는 화살이 비처럼 모여들었다.

흠운이 말을 비껴 세우고 창을 잡고 적을 기다리매, 대사 전지가 달래어 말하였다. "이제 도둑이 어둠 속에서 일어나 지척을 서로 가리지 못하니, 공이 비록 죽어도 알아볼 사람이 없습니다. 하물며 공은 신라의 귀한 골품이요 대왕의 사위이니, 만약 도둑의 손에 죽으면 백제가 자랑할 바요 우리 사람이 깊이 부끄러워할 바입니다."

흠운이 말하였다. "대장부가 이미 몸을 나라에 허락하였으니 남이 알아주고 알아주지 않고가 한가지다. 어찌 감히 이름을 구하겠는가." 굳게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따르는 이가 고삐를 잡고 돌아가기를 권하니, 흠운이 칼을 빼어 휘두르며 도둑과 싸워 몇 사람을 죽이고 죽었다.

2사론 — 화랑에서 어진 이가 나다

於是,大監穢破、少監狄得相與戰死。步騎幢主寶用那聞歆運死曰:「彼骨貴而勢榮,人所愛惜,而猶守節以死,況寶用那生而無益,死而無損乎?」遂赴敵,殺三數人而死。大王聞之傷慟,贈歆運、穢破位一吉飡,寶用那、狄得位大奈麻。時人聞之,作陽山歌,以傷之。論曰:羅人患無以知人,欲使類聚群遊,以觀其行義,然後,擧用之。遂取美貌男子,糚飾之,名花郞以奉之。徒衆雲集,或相磨以道義,或相悅以歌樂,遊娛山水,無遠不至。因此知其邪正,擇而薦之於朝。故大問曰:「賢佐、忠臣,從此而秀,良將、勇卒,由是而生者。」此也。三代花郞,無慮二百餘人,而芳名美事,具如傳記。若歆運者,亦郞徒也。能致命於王事,可謂不辱其名者也。

이에 대감 예파와 소감 적득이 서로 함께 싸우다 죽었다.

보기당주 보용나가 흠운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말하였다. "저는 골품이 귀하고 세력이 영화로워 사람들이 아끼는 바인데도 오히려 절개를 지켜 죽었다. 하물며 보용나는 살아도 이로움이 없고 죽어도 잃을 것이 없음에랴." 마침내 적에게 나아가 두세 사람을 죽이고 죽었다.

대왕이 이를 듣고 상심하고 애통하여, 흠운과 예파에게 일길찬 자리를, 보용나와 적득에게 대나마 자리를 추증하였다. 그때 사람이 이를 듣고 「양산가」를 지어 슬퍼하였다.

김부식이 논한다.

신라 사람이 사람을 알아볼 길이 없음을 걱정하여, 무리 지어 함께 놀게 하여 그 행실과 의로움을 본 뒤에 들어 쓰고자 하였다. 마침내 얼굴이 아름다운 사내를 뽑아 꾸며 화랑이라 이름하고 받들었다. 따르는 무리가 구름처럼 모여 더러는 도의로 서로 갈고 더러는 노래와 풍류로 서로 즐기며, 산수에 놀아 멀다고 이르지 않은 곳이 없었다. 이로 인하여 그 그름과 바름을 알아 가려 조정에 천거하였다.

그러므로 김대문이 이르기를 "어진 재상과 충성스러운 신하가 여기서 빼어나고, 좋은 장수와 용감한 군사가 이로 말미암아 났다" 한 것이 이것이다.

세 대의 화랑이 대략 이백여 사람인데 아름다운 이름과 좋은 일이 전기에 다 갖추어져 있다. 흠운 같은 이도 또한 화랑의 무리였다. 능히 나랏일에 목숨을 바쳤으니 그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않았다 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