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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백階伯

삼국사기 三國史記 · 김부식(金富軾) 등 · 1145년 (고려 인종 23) · 단락 1 · 한자 159자 · 낭독 0.6분

「삼국사기」 열전 「계백」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 역사서. 신라·고구려·백제 본기와 지·표·열전으로 이루어졌다. 김부식이 곳곳에 「論曰」로 자기 평을 달아 두어, 편찬자가 무엇을 의심하고 무엇을 나무랐는지가 그대로 남아 있다.

1계백이 황산에서 죽다

階伯,百濟人,仕為達率。唐顯慶五年庚申,高宗以蘇定方為神丘道大摠管,率師濟海,與新羅伐百濟。階伯為將軍,簡死士五千人拒之,曰:「以一國之人,當唐、羅之大兵,國之存亡,未可知也。恐吾妻孥,沒為奴婢,與其生辱,不如死快。」遂盡殺之。至黃山之野,設三營,遇新羅兵將戰,誓衆曰:「昔句踐以五千人,破吳七十萬衆,今之日,宜各奮勵決勝,以報國恩。」遂鏖戰,無不以一當千,羅兵乃却。如是進退,至四合,力屈以死。

계백은 백제 사람이니 벼슬하여 달솔이 되었다.

당나라 현경 오년 경신에 고종이 소정방을 신구도대총관으로 삼아 군사를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 신라와 함께 백제를 치게 하였다.

계백이 장군이 되어 죽음을 무릅쓸 군사 오천 사람을 가려 막으며 말하였다. "한 나라 사람으로 당나라와 신라의 큰 군사를 당하니 나라의 있고 없어짐을 알 수 없다. 내 처자가 사로잡혀 종이 될까 두려우니, 살아 욕되느니 죽어 시원한 것만 못하다." 마침내 제 처자를 다 죽였다.

황산 들에 이르러 세 진영을 베풀고 신라 군사를 만나 싸우려 할 때 무리에게 맹세하였다. "옛날 구천은 오천 사람으로 오나라 칠십만 무리를 깨뜨렸다. 오늘 마땅히 각각 떨쳐 힘써 이겨 나라의 은혜를 갚으라."

마침내 죽기로 싸워 하나로 천을 당하지 않음이 없으니 신라 군사가 이에 물러났다. 이와 같이 나아가고 물러나기를 네 번 맞붙는 데 이르러 힘이 굽혀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