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삼국사기 › 열전

향덕向德

삼국사기 三國史記 · 김부식(金富軾) 등 · 1145년 (고려 인종 23) · 단락 1 · 한자 146자 · 낭독 0.6분

「삼국사기」 열전 「향덕」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 역사서. 신라·고구려·백제 본기와 지·표·열전으로 이루어졌다. 김부식이 곳곳에 「論曰」로 자기 평을 달아 두어, 편찬자가 무엇을 의심하고 무엇을 나무랐는지가 그대로 남아 있다.

1향덕

向德,熊川州板積鄕人也。父名善,字潘吉,天資溫良,鄕里推其行。母則失其名。向德亦以孝順,為時所稱。天寶十四年乙未,年荒民饑,加之以疫癘,父母飢且病,母又發癰,皆濱於死。向德日夜不解衣,盡誠安慰,而無以為養,乃刲髀肉以食之。又吮母癰,皆致之平安。鄕司報之州,州報於王。王下敎,賜租三百斛、宅一區、口分田若干,命有司立石紀事,以標之。至今,人號其地云孝家里。

향덕은 웅천주 판적향 사람이다. 아버지 이름은 선이요 자는 반길인데, 타고난 바탕이 온순하고 좋아 고을에서 그 행실을 우러렀다. 어머니는 그 이름을 잃었다. 향덕도 또한 효성과 순함으로 그때에 일컬어졌다.

천보 십사년 을미에 해가 흉년이 들어 백성이 주리고 거기에 돌림병까지 더하였다. 부모가 주리고 또 병들었으며 어머니는 또 종기가 나서 다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향덕이 밤낮으로 옷을 벗지 않고 정성을 다하여 편안히 위로하였으나 봉양할 것이 없으므로, 이에 넓적다리 살을 베어 먹였다. 또 어머니의 종기를 빨아 다 편안하게 하였다.

고을 관청이 이를 주에 알리고 주가 왕에게 알렸다. 왕이 영을 내려 조 삼백 섬과 집 한 채와 구분전 얼마를 내리고, 맡은 관청에 명하여 돌을 세워 일을 적어 드러내게 하였다. 지금까지 사람들이 그 땅을 효가리(孝家里)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