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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군劒君

삼국사기 三國史記 · 김부식(金富軾) 등 · 1145년 (고려 인종 23) · 단락 1 · 한자 273자 · 낭독 1.1분

「삼국사기」 열전 「검군」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 역사서. 신라·고구려·백제 본기와 지·표·열전으로 이루어졌다. 김부식이 곳곳에 「論曰」로 자기 평을 달아 두어, 편찬자가 무엇을 의심하고 무엇을 나무랐는지가 그대로 남아 있다.

1검군

劒君,仇文大舍之子,為沙梁宮舍人。建福四十四九年丁亥秋八月,隕霜殺諸穀,明年春夏大飢,民賣子而食。於時,宮中諸舍人同謀,盜唱翳倉穀分之,劒君獨不受。諸舍人曰:「衆人皆受,君獨却之,何也?若嫌小,請更加之。」劒君笑曰:「僕編名於近郞之徒,修行於風月之庭,苟非其義,雖千金之利,不動心焉。」時大日伊飡之子,為花郞,號近郞,故云爾。劒君出至近郞之門,舍人等密議不殺此人,必有漏言,遂召之。劒君知其謀殺,辭近郞曰:「今日之後,不復相見。」郞問之,劒君不言,再三問之,乃略言其由。郞曰:「胡不言於有司?」劒君曰:「畏己死,使衆人入罪,情所不忍也。」「然則盍逃乎?」曰:「彼曲我直,而反自逃,非丈夫也。」遂往。諸舍人置酒謝之,密以藥置食,劒君知而强食,乃死。君子曰:「劒君死非其所,可謂輕泰山於鴻毛者也。」

검군은 대사 구문의 아들이니 사량궁 사인이 되었다.

건복 사십사년 정해 가을 팔월에 서리가 내려 여러 곡식을 죽이고, 이듬해 봄과 여름에 크게 주려 백성이 자식을 팔아 먹었다.

이때에 궁 안의 여러 사인이 함께 꾀하여 창예창의 곡식을 훔쳐 나누었는데 검군만 홀로 받지 않았다.

여러 사인이 말하였다. "여러 사람이 다 받았는데 그대만 홀로 물리치니 어찌 된 일인가. 만약 적다고 싫어하면 더 주기를 청하겠다."

검군이 웃으며 말하였다. "나는 근랑의 무리에 이름을 올려 풍월의 뜰에서 행실을 닦았다. 진실로 그 의로움이 아니면 비록 천금의 이로움이라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다." 그때 대일 이찬의 아들이 화랑이 되어 근랑이라 하였으므로 그렇게 말한 것이다.

검군이 나와 근랑의 문에 이르렀다. 사인들이 몰래 의논하기를, 이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반드시 말이 새리라 하여 마침내 불렀다.

검군이 그 죽이려는 꾀를 알고 근랑에게 하직하며 말하였다. "오늘 뒤로는 다시 서로 보지 못하겠습니다."

낭이 물으니 검군이 말하지 않다가, 두세 번 물으매 이에 그 까닭을 대강 말하였다.

낭이 말하였다. "어찌 맡은 관청에 말하지 않는가."

검군이 말하였다. "제가 죽음을 두려워하여 여러 사람을 죄에 들게 하는 것은 정으로 차마 하지 못할 바입니다."

"그러면 어찌 달아나지 않는가."

말하였다. "저쪽이 굽고 나는 곧은데 도리어 스스로 달아나는 것은 사내가 아닙니다."

마침내 갔다. 여러 사인이 술자리를 베풀어 사과하며 몰래 약을 음식에 넣으니, 검군이 알고도 억지로 먹어 이에 죽었다.

군자가 말하였다. "검군은 죽을 자리가 아닌 데서 죽었으니, 태산을 기러기 털보다 가벼이 여겼다 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