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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리倉助利

삼국사기 三國史記 · 김부식(金富軾) 등 · 1145년 (고려 인종 23) · 단락 1 · 한자 315자 · 낭독 1.3분

「삼국사기」 열전 「창조리」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 역사서. 신라·고구려·백제 본기와 지·표·열전으로 이루어졌다. 김부식이 곳곳에 「論曰」로 자기 평을 달아 두어, 편찬자가 무엇을 의심하고 무엇을 나무랐는지가 그대로 남아 있다.

1창조리가 왕을 폐하다

倉助利,高勾麗人也。烽上王時,為國相。時慕容廆為邉患,王謂羣臣曰:「慕容氏兵強,屢犯我疆埸,為之奈何?」倉助利對曰:「北部大兄高奴子賢且勇,大王若欲禦寇安民,非高奴子無可用者。」王以為新城太守,慕容廆不復來。九年秋八月,王發國內丁男年十五已上,修理宮室。民乏於食,困於役,因之以流亡。倉助利諫曰:「天災荐至,年穀不登,黎民失所,壯者流離四方,老幼轉乎溝壑,此誠畏天憂民,恐懼修省之時也。大王曾是不思,驅飢餓之人,困木石之役,甚乖為民父母之意。而況比隣有強梗之敵,若乗吾弊以來,其如社稷生民何?願大王熟計之。」王慍曰:「君者,百姓之所瞻望也。宮室不壯麗,無以示威重。今相國蓋欲謗寡人,以干百姓之譽也。」助利曰:「君不恤民,非仁也;臣不諫君,非忠也。臣既承乏國相,不敢不言,豈敢干譽乎?」王笑曰:「國相欲為百姓死耶?冀無後言。」助利知王之不悛,退與羣臣謀廢之。王知不免,自縊。

창조리는 고구려 사람이다. 봉상왕 때 국상이 되었다.

그때 모용외가 변방의 근심이 되매 왕이 여러 신하에게 말하였다. "모용씨는 군사가 강하여 여러 번 우리 강토를 범하니 어찌하랴."

창조리가 답하였다. "북부 대형 고노자가 어질고 또 용맹합니다. 대왕께서 만약 도둑을 막고 백성을 편안히 하고자 하시면 고노자가 아니면 쓸 만한 이가 없습니다." 왕이 신성 태수로 삼으니 모용외가 다시 오지 않았다.

구년 가을 팔월에 왕이 나라 안의 장정으로 나이 열다섯 이상을 불러 궁실을 고쳐 손질하게 하였다. 백성이 먹을 것이 모자라고 부역에 곤하여 이로 말미암아 떠돌아 흩어졌다.

창조리가 간하였다. "하늘의 재앙이 거듭 이르고 해의 곡식이 익지 않아 백성이 살 곳을 잃어, 젊은 이는 사방으로 흩어지고 늙은이와 어린이는 구렁에 굴러떨어집니다. 이는 참으로 하늘을 두려워하고 백성을 근심하며 두려워하여 살피고 반성할 때입니다. 대왕께서 일찍이 이를 생각지 않으시고 굶주린 사람을 몰아 나무와 돌의 부역에 곤하게 하시니, 백성의 부모 된 뜻에 몹시 어긋납니다. 하물며 이웃에 굳세고 사나운 적이 있어 만약 우리가 지친 틈을 타고 오면 사직과 백성을 어찌하겠습니까. 바라건대 대왕께서는 깊이 헤아리소서."

왕이 성내어 말하였다. "임금은 백성이 우러러보는 바다. 궁실이 웅장하고 곱지 않으면 위엄과 무거움을 보일 수 없다. 이제 상국은 아마도 과인을 헐뜯어 백성의 기림을 구하려는 것인가."

조리가 말하였다. "임금이 백성을 돌보지 않으면 어질지 않은 것이요, 신하가 임금에게 간하지 않으면 충성스럽지 않은 것입니다. 신이 이미 모자란 자리인 국상을 이었으니 감히 말하지 않을 수 없거늘, 어찌 감히 기림을 구하겠습니까."

왕이 웃으며 말하였다. "국상은 백성을 위하여 죽으려는가. 뒤에 말이 없기를 바란다."

조리가 왕이 뉘우치지 않을 줄 알고 물러나 여러 신하와 꾀하여 폐하니, 왕이 벗어나지 못할 줄 알고 스스로 목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