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훤甄萱
1범이 젖을 먹이다
甄萱,尙州加恩縣人也,本姓李,後以甄為氏。父阿慈介,以農自活,後起家為將軍。初,萱生孺褓時,父耕于野,母餉之,以兒置于林下,虎來乳之,鄕黨聞者異焉。及壯,體貌雄竒,志氣倜儻不凡。從軍入王京,赴西南海防戍,枕戈待敵,其勇氣恒為士卒先。以勞為裨將。
견훤은 상주 가은현 사람이다. 본디 성이 이씨였는데 뒤에 견으로 씨를 삼았다. 아버지 아자개는 농사로 스스로 살다가 뒤에 집을 일으켜 장군이 되었다.
처음에 훤이 나서 포대기에 있을 때 아버지가 들에서 밭을 갈고 어머니가 밥을 나르느라 아이를 수풀 아래 두었더니, 범이 와서 젖을 먹였다. 마을에서 듣는 이가 기이하게 여겼다.
장성하매 몸과 모습이 씩씩하고 기이하며 뜻과 기운이 뛰어나 예사롭지 않았다. 종군하여 서울에 들어갔다가 서남해로 나아가 지키는데, 창을 베고 적을 기다리니 그 용기가 늘 사졸의 앞이 되었다. 그 수고로 비장이 되었다.
2완산에 도읍하고 후백제라 하다
唐昭宗景福元年,是新羅真聖王在位六年,嬖竪在側,竊弄政柄,綱紀紊弛,加之以饑饉,百姓流移,羣盜蜂起。於是萱竊有覦心,嘯聚徒侶,行擊京西南州縣,所至響應。旬月之間,衆至五千人。遂襲武珍州自王,猶不敢公然稱王,自署為新羅西面都統指揮兵馬制置、持節、都督全武公等州軍事、行全州刺史、兼御史中丞、上柱國、漢南郡開國公,食邑二千戶。是時,北原賊良吉雄強,弓裔自投為麾下。萱聞之,遙授良吉職為裨將。萱西巡至完山州,州民迎勞。萱喜得人心,謂左右曰:「吾原三國之始,馬韓先起後,赫世勃興,故辰、卞從之而興,於是百濟開國金馬山,六百餘年。捴章中,唐高宗以新羅之請,遣將軍蘇定方以船兵十三萬越海,新羅金庾信卷土,歷黃山至泗泚,與唐兵合攻百濟滅之。今予敢不立都於完山,以雪義慈宿憤乎!」遂自稱後百濟王,設官分職。是唐光化三年,新羅孝恭王四年也。遣使朝吳越,吳越王報聘,仍加檢校太保,餘如故。
당나라 소종 경복 원년은 곧 신라 진성왕이 자리에 있은 지 여섯째 해다. 사랑받는 종들이 곁에 있어 정사의 권세를 몰래 희롱하니 벼리와 기강이 어지럽고 풀어졌으며, 거기에 흉년까지 더하여 백성이 흘러 옮기고 뭇 도둑이 벌 떼처럼 일어났다.
이에 훤이 몰래 엿보는 마음을 품고 무리를 불러 모아 서울의 서남쪽 주와 현을 다니며 치니 이르는 곳마다 메아리처럼 따랐다. 열흘에서 한 달 사이에 무리가 오천 사람에 이르렀다.
마침내 무진주를 습격하여 스스로 왕이 되었으나, 오히려 감히 드러내어 왕이라 일컫지 못하고 스스로 「신라 서면도통 지휘병마제치 지절 도독 전·무·공 등 주 군사 행전주자사 겸 어사중승 상주국 한남군개국공 식읍 이천호」라 적었다.
이때 북원의 도둑 양길이 씩씩하고 강하여 궁예가 스스로 몸을 던져 그 아래가 되었다. 훤이 이를 듣고 멀리서 양길에게 비장의 벼슬을 주었다.
훤이 서쪽을 돌다가 완산주에 이르니 고을 백성이 맞아 위로하였다. 훤이 사람의 마음을 얻은 것을 기뻐하여 좌우에게 말하였다. "내가 삼국의 처음을 헤아려 보니, 마한이 먼저 일어난 뒤에 혁거세가 대대로 크게 일어났으므로 진한과 변한이 좇아 일어났다. 이에 백제가 금마산에서 나라를 열어 육백여 해를 지냈다. 총장 연간에 당나라 고종이 신라의 청으로 장군 소정방을 보내어 배에 실은 군사 십삼만으로 바다를 건너게 하고, 신라 김유신이 땅을 말아 황산을 지나 사비에 이르러 당나라 군사와 합쳐 백제를 쳐서 멸하였다. 이제 내가 어찌 감히 완산에 도읍을 세워 의자왕의 묵은 분함을 씻지 않겠는가."
마침내 스스로 후백제 왕이라 일컫고 벼슬을 베풀어 직을 나누었다. 이때가 당나라 광화 삼년이요 신라 효공왕 사년이다.
사신을 보내어 오월에 조회하니 오월왕이 사신을 갚아 보내고 이어 검교태보를 더하였으며 나머지는 전과 같았다.
3대야성
天復元年,萱攻大耶城,不下。
천복 원년에 훤이 대야성을 쳤으나 떨어뜨리지 못하였다.
4금성을 에워싸다
開平四年,萱怒錦城投于弓裔,以步騎三千圍攻之,經旬不解。
개평 사년에 훤이 금성이 궁예에게 붙은 것을 노하여, 보병과 기병 삼천으로 에워싸 치기를 열흘이 지나도록 풀지 않았다.
5덕진포
乾化二年,萱與弓裔戰于德津浦。
건화 이년에 훤이 궁예와 덕진포에서 싸웠다.
6태조의 즉위를 하례하다
貞明四年戊寅,鐵圓京衆心忽變,推戴我太祖即位。萱聞之,秋八月,遣一吉飡閔卻稱賀,遂獻孔雀扇及地理山竹箭。又遣使入吳越進馬,吳越王報聘,加授中大夫,餘如故。
정명 사년 무인에 철원 서울의 뭇 마음이 홀연히 변하여 고려 태조를 밀어 받들어 자리에 오르게 하였다.
훤이 이를 듣고 가을 팔월에 일길찬 민극을 보내어 하례하고, 마침내 공작 부채와 지리산 대화살을 바쳤다. 또 사신을 보내어 오월에 들어가 말을 바치니 오월왕이 사신을 갚아 보내고 중대부를 더하여 주었으며 나머지는 전과 같았다.
7겉으로 화친하다
六年,萱率步騎一萬,攻陷大耶城,移軍於進禮城。新羅王遣阿飡金律求援於太祖。太祖出師,萱聞之,引退。萱與我太祖陽和而陰剋
육년에 훤이 보병과 기병 일만을 거느리고 대야성을 쳐서 떨어뜨리고 군사를 진례성으로 옮겼다. 신라 왕이 아찬 김율을 보내어 태조에게 구원을 청하였다. 태조가 군사를 내니 훤이 이를 듣고 물러갔다.
훤이 고려 태조와 겉으로는 화친하였으나 속으로는 이기려 하였다.
8조물성
同光二年秋七月,遣子須彌強發大耶、聞韶二城卒攻曹物城。城人為太祖固守,且戰,須彌強失利而歸。八月,遣使獻騘馬於太祖。
동광 이년 가을 칠월에 아들 수미강을 보내어 대야와 문소 두 성의 군사를 일으켜 조물성을 치게 하였다. 성 사람이 태조를 위하여 굳게 지키고 또 싸우니 수미강이 이롭지 못하여 돌아갔다.
팔월에 사신을 보내어 태조에게 총이말을 바쳤다.
9볼모를 주고받다
三年冬十月,萱率三千騎至曹物城,太祖亦以精兵來與之确。時萱兵銳甚,未決勝否。太祖欲權和以老其師,移書乞和,以堂弟王信為質,萱亦以外甥真虎交質。十二月,攻取居昌等二十餘城。遣使入後唐稱藩,唐策授檢校太尉、兼侍中、判百濟軍事,依前持節、都督全武公等州軍事、行全州刺史、海東四面都統、指揮兵馬制置等事、百濟王,食邑二千五百戶。
삼년 겨울 시월에 훤이 삼천 기병을 거느리고 조물성에 이르매 태조도 또한 날랜 군사로 와서 겨루었다. 그때 훤의 군사가 몹시 날카로워 이기고 짐을 가리지 못하였다. 태조가 임시로 화친하여 그 군사를 지치게 하고자 글을 보내어 화친을 빌고 사촌 아우 왕신을 볼모로 삼으니, 훤도 또한 조카 진호로 볼모를 맞바꾸었다.
십이월에 거창 등 스무여 성을 쳐서 빼앗았다. 사신을 보내어 후당에 들어가 번국이라 일컬으니, 당나라가 책명으로 「검교태위 겸 시중 판백제군사」를 주고 전과 같이 「지절 도독 전·무·공 등 주 군사 행전주자사 해동사면도통 지휘병마제치 등 사 백제왕 식읍 이천오백호」로 하였다.
10볼모가 죽다
四年,真虎暴卒,萱聞之,疑故殺,即囚王信獄中。又使人請還前年所送騘馬,太祖笑還之。
사년에 진호가 갑자기 죽으매 훤이 이를 듣고 짐짓 죽였다고 의심하여 곧 왕신을 옥에 가두었다. 또 사람을 시켜 지난해에 보낸 총이말을 돌려 달라 청하니 태조가 웃으며 돌려주었다.
11서울에 들어와 왕을 죽이다
天成二年秋九月,萱攻取近品城,燒之。進襲新羅高鬱府,逼新羅郊圻。新羅王求救於太祖。冬十月,太祖出師援助。萱猝入新羅王都時,王與夫人嬪御出遊鮑石亭,置酒娛樂。賊至,狼狽不知所為,與夫人歸城南離宮,諸侍從臣寮及宮女、伶官皆陷沒於亂兵。萱縱兵大掠,使人捉王至前,戕之,便入居宮中,強引夫人亂之。以王族弟金傅嗣立,然後虜王弟孝廉、宰相英景,又取國帑、珍寳、兵仗、子女、百工之巧者自隨以歸。太祖以精騎五千要萱於公山下,大戰。太祖將金樂、崇謙死之,諸軍敗北,太祖僅以身免。萱乘勝取大木郡。契丹使裟姑、麻咄等三十五人來聘。萱差將軍崔堅伴送麻咄等航海北行,遇風,至唐登州,悉被戮死。時新羅君臣以衰季,難以復興,謀引我太祖結好為援。
천성 이년 가을 구월에 훤이 근품성을 쳐서 빼앗고 불태웠다. 나아가 신라 고울부를 습격하고 신라 서울 가까이 다가갔다. 신라 왕이 태조에게 구원을 청하매 겨울 시월에 태조가 군사를 내어 도왔다.
훤이 갑자기 신라 왕도에 들어갔다. 그때 왕은 부인과 후궁들과 함께 포석정에 나가 놀며 술자리를 벌여 즐기고 있었다. 도둑이 이르매 낭패하여 할 바를 알지 못하고 부인과 함께 성 남쪽 이궁으로 돌아갔으며, 여러 모시는 신하와 궁녀와 악관이 다 어지러운 군사에게 빠졌다.
훤이 군사를 놓아 크게 노략하고 사람을 시켜 왕을 잡아 앞에 이르게 하여 죽였다. 곧 궁중에 들어가 살며 억지로 부인을 이끌어 어지럽혔다. 왕족의 아우 김부로 뒤를 이어 세우고 그런 뒤에 왕의 아우 효렴과 재상 영경을 사로잡았으며, 또 나라 곳간의 보배와 병장기와 자녀와 온갖 장인 가운데 재주 있는 이를 취하여 스스로 따르게 하고 돌아갔다.
태조가 날랜 기병 오천으로 공산 아래에서 훤을 맞아 크게 싸웠다. 태조의 장수 김락과 숭겸이 죽고 여러 군사가 패하여 달아나니 태조가 겨우 몸만 면하였다. 훤이 이긴 기세를 타고 대목군을 취하였다.
거란 사신 사고와 마돌 등 서른다섯 사람이 와서 사귀었다. 훤이 장군 최견을 보내어 마돌 등을 함께 배웅하여 바다로 북쪽으로 가게 하였는데, 바람을 만나 당나라 등주에 이르러 다 죽임을 당하였다.
그때 신라 임금과 신하가 쇠하고 저물어 다시 일으키기 어렵다 하여, 고려 태조를 끌어들여 좋게 맺고 도움을 삼기를 꾀하였다.
12견훤이 태조에게 보낸 글
甄萱自有盜國心,恐太祖先之,是故引兵入王都作惡,故十二月日,寄書太祖曰:「昨者國相金雄廉等將召足下入京,有同鼈應黿聲,是欲鷃披隼翼,必使生靈塗炭,宗社丘墟。僕是用先着祖鞭,獨揮韓鉞,誓百寮如皦日,諭六部以義風。不意姦臣遁逃,邦君薨變,遂奉景明王之表弟、獻康王之外孫,勸即尊位,再造危邦。喪君有君,於是乎在。足下勿詳忠告,徒聽流言,百計窺覦,多方侵擾,尙不能見僕馬首,拔僕牛毛。冬初,都頭索湘束手於星山陣下;月內,左將金樂曝骸於美理寺前。殺獲居多,追擒不少。強羸若此,勝敗可知。所期者,掛弓於平壤之樓,飮馬於浿江之水。然以前月七日,吳越國使班尙書至,傳王詔旨,知卿與高麗久通歡好,共契鄰盟,比因質子之兩亡,遂失和親之舊好,互侵疆境,不戢干戈。
견훤이 스스로 나라를 도둑질할 마음이 있어 태조가 먼저 할까 두려워하였다. 이 때문에 군사를 이끌고 왕도에 들어가 악한 짓을 하였으므로, 십이월 어느 날 태조에게 글을 부쳤다.
"지난번 나라의 재상 김웅렴 등이 족하를 불러 서울에 들이려 하였으니, 이는 자라가 큰 자라의 소리에 응하는 것과 같고 메추라기가 새매의 날개를 펴려는 것이라, 반드시 산 백성을 도탄에 빠뜨리고 종묘와 사직을 잡초 언덕으로 만들 것이었소.
그러므로 내가 먼저 조적의 채찍을 잡고 홀로 한금호의 도끼를 휘둘러, 온 벼슬아치에게 밝은 해처럼 맹세하고 여섯 부를 의로운 바람으로 타일렀소. 뜻하지 않게 간사한 신하가 달아나 숨고 나라 임금이 세상을 떠나매, 마침내 경명왕의 외사촌 아우요 헌강왕의 외손을 받들어 높은 자리에 오르기를 권하여 위태로운 나라를 다시 세웠소. 임금을 잃고도 임금이 있게 됨이 여기에 있었소.
족하는 나의 충고를 자세히 살피지 않고 헛되이 떠도는 말만 들어, 온갖 꾀로 엿보고 여러 갈래로 침노하고 흔들었으나, 아직도 나의 말머리를 보지 못하고 나의 쇠털 하나 뽑지 못하였소.
초겨울에는 도두 색상이 성산 진 아래에서 손이 묶였고, 그달 안에 좌장 김락이 미리사 앞에서 뼈를 드러내었소. 죽이고 사로잡은 것이 많고 뒤쫓아 잡은 것도 적지 않으니, 강하고 약함이 이와 같아 이기고 짐을 알 만하오. 기약하는 바는 활을 평양의 다락에 걸고 말에게 패강의 물을 먹이는 것이오.
그러나 지난달 이렛날에 오월국 사신 반 상서가 이르러 왕의 조서를 전하였소. 「경이 고려와 오래 사귀어 기뻐하고 좋아하며 함께 이웃의 맹세를 맺은 줄 아는데, 요즈음 볼모 둘이 다 죽음으로 인하여 마침내 화친하던 옛 좋음을 잃고 서로 지경을 침노하여 방패와 창을 거두지 않는다 한다.
13견훤의 글 — 뒷부분
今專發使臣,赴卿本道,又移文高麗,宜各相親,比永孚于休。僕義篤尊王,情深事大,及聞詔諭,即欲秪承,但慮足下欲罷不能,困而猶闘。今錄詔書寄呈,請留心詳悉。且㕙獹迭憊,終必貽譏;蚌鷸相持,亦為所笑。宜迷復之為戒,無後悔之自貽。」
이제 오로지 사신을 보내어 경의 본도에 가게 하고 또 고려에도 글을 옮기니, 마땅히 각각 서로 친하여 길이 아름다움에 미덥게 하라.」
나는 의로움이 임금을 높임에 도탑고 정이 큰 나라를 섬김에 깊으니, 조서의 타이름을 듣고는 곧 삼가 받들려 하오. 다만 족하가 그만두려 해도 그만두지 못하고 곤하면서도 오히려 싸울까 걱정될 뿐이오.
이제 조서를 적어 부쳐 드리니 청컨대 마음에 두어 자세히 살피시오. 또한 토끼와 사냥개가 번갈아 지치면 마침내 반드시 비웃음을 남기고, 조개와 도요새가 서로 버티어도 또한 웃음거리가 되오. 마땅히 미혹하여 되풀이함을 경계로 삼아 뒷날의 뉘우침을 스스로 남기지 마시오."
14태조의 답서
三年正月,太祖答曰:「伏奉吳越國通和使班尙書所傳詔書一道,兼蒙足下辱示長書叙事者。伏以華軺膚使,爰致制書;尺素好音,兼承教誨。捧芝檢而雖增感激,開華牋而難遣衽疑。今託廻軒,輒敷危衽。僕仰承天假,俯迫人推,過叨將帥之權,獲赴經綸之會。頃以三韓厄會,九土凶荒,黔黎多屬於黃巾,田野無非於赤土,庶幾弭風塵之警,有以救邦國之灾。爰自善隣,於焉結好,果見數千里農桑樂業,七八年士卒閑眠。及至酉年,維時陽月,忽焉生事,至於交兵。足下始輕敵以直前,若螳蜋之拒轍;終知難而勇退,如蚊子之負山。拱手陳辭,指天作誓,今日之後,永世歡和,苟或渝盟,神其殛矣。僕亦尙止戈之武,期不殺之仁,遂解重圍,以休疲卒。不辭質子,但欲安民。
삼년 정월에 태조가 답하였다.
"엎드려 오월국 통화사 반 상서가 전한 조서 한 통을 받들고, 아울러 족하가 욕되이 보인 긴 글로 일을 서술한 것을 받았소. 엎드려 생각건대 화려한 수레의 훌륭한 사신이 이에 제서를 이르게 하고, 한 자 흰 비단의 좋은 소식이 아울러 가르침을 이어 주었소. 지초 무늬 봉함을 받들매 비록 감격이 더하나, 꽃 무늬 종이를 펴매 옷깃의 의심은 보내기 어려웠소. 이제 돌아가는 수레에 부쳐 문득 삼가 속마음을 펴오.
나는 우러러 하늘의 빌려 줌을 이었고 굽어 사람의 밀어 줌에 다그쳐, 지나치게 장수의 권세를 외람되이 맡고 나라를 다스릴 기회를 얻었소. 지난번 삼한이 액운을 만나 온 땅이 흉년 들어, 검은 머리 백성이 누런 두건에 많이 붙고 밭과 들이 붉은 흙 아닌 데가 없었소. 바라기는 바람과 티끌의 놀람을 그치게 하여 나라의 재앙을 구하고자, 이에 이웃과 착하게 지내며 이에 좋게 맺었소. 과연 몇천 리가 농사와 누에치기로 생업을 즐기고 일고여덟 해를 사졸이 한가로이 잠자는 것을 보았소.
닭해에 이르러 그때가 시월인데 홀연히 일이 생겨 군사를 맞대기에 이르렀소. 족하가 처음에는 적을 가벼이 여겨 곧바로 나아가니 사마귀가 수레바퀴를 막는 듯하였고, 마침내 어려움을 알고 용감히 물러나니 모기가 산을 진 듯하였소. 손을 마주 잡고 말을 늘어놓아 하늘을 가리켜 맹세하기를, 오늘 뒤로는 길이 기뻐하고 화합하겠으며 만약 맹세를 저버리면 신이 벌하리라 하였소. 나도 또한 창을 그치는 무를 숭상하고 죽이지 않는 어짊을 기약하여, 마침내 거듭된 에움을 풀고 지친 군사를 쉬게 하였소. 볼모도 사양하지 않았으니 다만 백성을 편안히 하고자 함이었소.
15태조의 답서 — 이어서
此則我有大德於南人也。豈謂歃血未乾,凶威復作。蜂蠆之毒,侵害於生民;狼虎之狂,為梗於畿甸。金城窘忽,黃屋震驚。仗義尊周,誰似桓、文之覇?乘間謀漢,唯看莽、卓之姦。致使王之至尊,枉稱子於足下。尊卑失序,上下同憂。以為非有元輔之忠純,豈得再安於社稷?以僕心無匿惡,志切尊王,將援置於朝廷,使扶危於邦國。足下見毫釐之小利,忘天地之厚恩,斬戮君王,焚燒宮闕,葅醢卿士,虔劉士民。姬姜則取以同車,珍寳則奪之稛載。元惡浮於桀、紂,不仁甚於獍梟。僕怨極崩天,誠深却日,誓効鷹鸇之逐,以申犬馬之勤。再舉干戈,兩更槐柳。陸擊則雷馳電擊,水攻則虎搏龍騰,動必成功,舉無虛發。逐尹邠於海岸,積甲如山;擒鄒造於城邉,伏尸蔽野。
이는 곧 내가 남쪽 사람에게 큰 덕이 있는 것이오. 어찌 피를 마신 입술이 마르기도 전에 흉악한 위세를 다시 부릴 줄 알았겠소.
벌과 전갈의 독은 백성을 침노하여 해치고, 이리와 범의 미친 짓은 서울 언저리를 막았소. 금성이 궁하고 급하며 임금의 누런 수레가 떨고 놀랐소. 의로움을 붙들어 주나라를 높임에 누가 제나라 환공과 진나라 문공의 으뜸함과 같겠소. 틈을 타 한나라를 꾀함에 오직 왕망과 동탁의 간사함만 보이오. 임금의 지극히 높은 몸으로 하여금 굽혀 족하에게 아들이라 일컫게 하였으니, 높고 낮음이 차례를 잃고 위아래가 함께 근심하였소.
으뜸 재상의 충성되고 순수함이 아니고서는 어찌 사직을 다시 편안히 하겠는가 여겼소. 나는 마음에 감춘 악이 없고 뜻이 임금을 높임에 간절하므로, 장차 도와서 조정에 두어 나라의 위태로움을 붙들게 하려 하였소.
족하는 터럭 끝만 한 작은 이로움을 보고 하늘과 땅 같은 두터운 은혜를 잊어, 임금을 베어 죽이고 궁궐을 불사르며 대신을 젓 담그고 사민을 죽였소. 아름다운 여인은 취하여 수레에 함께 태우고 진기한 보배는 빼앗아 실어 갔소. 으뜸 악함이 걸과 주보다 넘치고 어질지 않음이 짐승보다 심하오.
나는 하늘이 무너진 듯 원한이 지극하고 해를 물리칠 만큼 정성이 깊어, 매와 새매가 쫓듯 본받기를 맹세하여 개와 말의 부지런함을 펴려 하오. 다시 방패와 창을 들어 두 번 홰나무와 버들이 바뀌었소. 뭍에서 치면 우레가 달리고 번개가 치는 듯하며, 물에서 치면 범이 덤비고 용이 오르는 듯하여, 움직이면 반드시 공을 이루고 들면 헛되이 나감이 없었소. 윤빈을 바닷가로 쫓으매 버린 갑옷이 산 같았고, 추조를 성 가에서 사로잡으매 엎어진 주검이 들을 덮었소.
16태조의 답서 — 끝
燕山郡畔,斬吉奐於軍前;馬利城邉,戮隨䎸於纛。下拔任存之日,邢積等數百人捐軀;破清州之時,直心等四五輩授首。桐藪望旗而潰散,京山銜璧以投降。康州則自南而來歸,羅府則自西移屬。侵攻若此,收復寧遙必期。泜水營中,雪張耳千般之恨;烏江岸上,成漢王一捷之功。竟息風波,永清寰海。天之所助,命欲何歸?況承吳越王殿下德洽包荒,仁深字小,特出綸於丹禁,諭戢難於青丘。既奉訓謀,敢不尊奉!若足下祗承睿旨,悉戢凶機,不惟副上國之仁恩,抑可紹海東之絶緖。若不過而能改,其如悔不可追。」
연산군 두둑에서는 길환을 군사 앞에서 베었고, 마리성 가에서는 수인을 큰 깃발 아래서 죽였소. 임존을 뽑던 날에는 형적 등 몇백 사람이 몸을 버렸고, 청주를 깨뜨릴 때에는 직심 등 너덧 무리가 목을 바쳤소. 동수는 깃발만 바라보고 흩어졌고 경산은 구슬을 물고 항복하였소. 강주는 남쪽에서 돌아와 붙고 나부는 서쪽에서 옮겨 속하였소. 침노하여 치기가 이와 같으니 되찾음인들 어찌 멀겠소.
반드시 기약하기는 지수의 진중에서 장이의 천 가지 한을 씻고, 오강 언덕 위에서 한나라 왕의 한 번 이긴 공을 이루어, 마침내 바람과 물결을 그치고 길이 온 바다를 맑게 하는 것이오. 하늘이 돕는 바이니 명이 어디로 돌아가려 하겠소.
하물며 오월왕 전하의 덕이 거친 것을 감싸기에 흡족하고 어짊이 작은 것을 사랑함에 깊어, 특별히 붉은 대궐에서 말씀을 내어 푸른 언덕의 어려움을 그치라 타이르셨소. 이미 가르침과 꾀를 받들었으니 감히 높이 받들지 않겠소.
만약 족하가 삼가 임금의 뜻을 받들어 흉한 틀을 다 거둔다면, 위 나라의 어진 은혜에 부응할 뿐 아니라 또한 해동의 끊어진 실마리를 이을 수 있을 것이오. 만약 허물을 짓고도 고치지 못한다면 뉘우쳐도 좇을 수 없음을 어찌하겠소."
17강주와 부곡성
夏五月,萱潜師襲康州,殺三百餘人,將軍有文生降。秋八月,萱命將軍官昕領衆築陽山。太祖命命旨城將軍王忠擊之,退保大耶城。冬十一月,萱選勁卒攻拔缶谷城,殺守卒一千餘人,將軍楊志、明式等生降。
여름 오월에 훤이 몰래 군사를 내어 강주를 습격하여 삼백여 사람을 죽이니 장군 유문이 산 채로 항복하였다.
가을 팔월에 훤이 장군 관흔에게 명하여 무리를 거느리고 양산에 성을 쌓게 하였다. 태조가 명지성 장군 왕충에게 명하여 치니 물러나 대야성을 지켰다.
겨울 십일월에 훤이 굳센 군사를 가려 부곡성을 쳐서 빼앗고 지키는 군사 천여 사람을 죽이니 장군 양지와 명식 등이 산 채로 항복하였다.
18고창 병산의 싸움
四年秋七月,萱以甲兵五千人攻義城府,城主將軍洪術戰死。太祖哭之慟,曰:「吾失左右手矣!」萱大舉兵,次古昌郡瓶山之下,與太祖戰,不克,死者八千餘人。翌日,萱聚殘兵襲破順州城,將軍元逢不能禦,棄城夜遁。萱虜百姓,移入全州。太祖以元逢前有功,宥之。改順州號下枝縣。
사년 가을 칠월에 훤이 갑옷 입은 군사 오천 사람으로 의성부를 치니 성주 장군 홍술이 싸우다 죽었다. 태조가 통곡하며 말하였다. "내가 좌우의 손을 잃었다."
훤이 크게 군사를 일으켜 고창군 병산 아래에 머물러 태조와 싸웠으나 이기지 못하고 죽은 이가 팔천여 사람이었다.
이튿날 훤이 남은 군사를 모아 순주성을 습격하여 깨뜨리니, 장군 원봉이 막지 못하고 성을 버리고 밤에 달아났다. 훤이 백성을 사로잡아 전주로 옮겨 들였다. 태조는 원봉이 앞서 공이 있었으므로 용서하고, 순주의 이름을 고쳐 하지현이라 하였다.
19예성강을 치다
長興三年,甄萱臣龔直,勇而有智略,來降太祖。萱收龔直二子一女,烙斷股筋。秋九月,萱遣一吉飡相貴以船兵入高麗禮成江,留三日,取鹽、白、貞三州船一百艘焚之,捉猪山島牧馬三百匹而歸。
장흥 삼년에 견훤의 신하 공직은 용맹하고 슬기와 꾀가 있었는데 와서 태조에게 항복하였다. 훤이 공직의 두 아들과 딸 하나를 거두어 넓적다리 힘줄을 지져 끊었다.
가을 구월에 훤이 일길찬 상귀를 보내어 배에 실은 군사로 고려 예성강에 들어가 사흘을 머물면서, 염주와 백주와 정주 세 고을의 배 백 척을 취하여 불사르고 저산도의 기르는 말 삼백 필을 잡아 돌아갔다.
20운주에서 지다
清泰元年春正月,萱聞太祖屯運州,遂簡甲士五千至。將軍黔弼及其未陣,以勁騎數千突擊之,斬獲三千餘級,熊津以北三十餘城聞風自降。萱麾下術士宗訓、醫者訓謙、勇將尙達、崔弼等降於太祖。
청태 원년 봄 정월에 훤이 태조가 운주에 진 쳤다는 말을 듣고 마침내 갑옷 입은 군사 오천을 가려 이르렀다. 장군 검필이 그 진이 이루어지기 전에 굳센 기병 몇천으로 부딪쳐 치니 삼천여 급을 베고 사로잡았으며, 웅진 북쪽 서른여 성이 소문을 듣고 스스로 항복하였다. 훤의 아래에 있던 술사 종훈과 의원 훈겸과 날랜 장수 상달과 최필 등이 태조에게 항복하였다.
21아들에게 갇히다
甄萱多娶妻,有子十餘人。第四子金剛,身長而多智,萱特愛之,意欲傳其位。其兄神劒、良劒、龍劒等知之憂悶。時良劒為康州都督,龍劒為武州都督,獨神劒在側。伊飡能奐使人往康、武二州,與良劒等陰謀。至清泰二年春三月,與波珍飡新德、英順等勸神劒幽萱於金山佛宇,遣人殺金剛。神劒自稱大王,大赦境內。其教書曰:「如意特蒙寵愛,惠帝得以為君;建成濫處元良,太宗作而即位。天命不易,神器有歸。恭惟大王神武超倫,英謀冠古。生丁衰季,自任經綸,徇地三韓,復邦百濟。廓清塗炭而黎元安集,鼓舞風雷而邇遐駿奔。功業幾於重興,智慮忽其一失。幼子鍾愛,姦臣弄權,導大君於晉惠之昏,陷慈父於獻公之惑,擬以大寳授之頑童。所幸者,上帝降衷,君子改過,命我元子,尹茲一邦。
견훤이 아내를 많이 얻어 아들 열여 사람이 있었다. 넷째 아들 금강은 키가 크고 슬기가 많아 훤이 특별히 사랑하여 그 자리를 전하려 하였다. 그 형 신검과 양검과 용검 등이 이를 알고 근심하고 답답해하였다. 그때 양검은 강주 도독이 되고 용검은 무주 도독이 되어 신검만 홀로 곁에 있었다.
이찬 능환이 사람을 시켜 강주와 무주 두 고을에 가서 양검 등과 몰래 꾀하였다. 청태 이년 봄 삼월에 이르러 파진찬 신덕과 영순 등과 함께 신검에게 권하여 훤을 금산 불당에 가두고, 사람을 보내어 금강을 죽였다.
신검이 스스로 대왕이라 일컫고 지경 안에 크게 사면하였다. 그 교서는 이러하였다.
"여의가 특별히 총애를 입었으나 혜제가 임금이 되었고, 건성이 외람되이 태자 자리에 있었으나 태종이 일어나 자리에 올랐다. 천명은 바뀌지 않고 신령한 그릇은 돌아갈 데가 있다.
삼가 생각건대 대왕께서는 신령한 무예가 무리에 뛰어나고 빼어난 꾀가 옛사람에 으뜸이시다. 쇠하고 저문 때에 나시어 스스로 나라 다스림을 맡아 삼한을 돌아 백제를 다시 세우셨다. 도탄을 시원히 씻어 백성이 편히 모이고 바람과 우레를 북 치고 춤추게 하여 멀고 가까운 이가 빨리 달려왔다. 공업이 거의 다시 일으킴에 이르렀으나 슬기와 헤아림이 홀연히 한 번 어긋났다. 어린 아들을 지나치게 사랑하고 간사한 신하가 권세를 희롱하여, 큰 임금을 진 혜제의 어두움으로 이끌고 자애로운 아버지를 헌공의 미혹함에 빠뜨려, 큰 보배를 미련한 아이에게 주려 하였다. 다행한 것은 상제께서 참마음을 내리시고 군자가 허물을 고쳐, 나 맏아들에게 명하여 이 한 나라를 다스리게 하신 일이다.
22상보로 삼다
顧非震長之才,豈有臨君之智?兢兢慄慄,若蹈冰淵,宜推不次之恩,以示惟新之政。可大赦境內,限清泰二年十月十七日昧爽以前,已發覺、未發覺、已結正、未結正大辟已下罪,咸赦除之,主者施行。」萱在金山三朔,六月,與季男能乂、女子衰福、嬖妾姑比等逃奔錦城,遣人請見於太祖。太祖喜,遣將軍黔弼、萬𡻷等,由水路勞來之。及至,待以厚禮。以萱十年之長,尊為尙父,授館以南宮,位在百官之上。賜楊州為食邑,兼賜金帛、蕃縟、奴婢各四十口、內廐馬十匹。甄萱壻將軍英規密語其妻曰:「大王勤勞四十餘年,功業垂成,一旦以家人之禍失地,投於高麗。夫貞女不事二夫,忠臣不事二主。若捨己君以事逆子,則何顔以見天下之義士乎?況聞高麗王公,仁厚勤儉,以得民心,殆天啓也,必為三韓之主。
돌아보건대 맏이의 재주가 아니니 어찌 임금 노릇 할 슬기가 있겠는가. 조심하고 두려워하기를 얼음 위와 못가를 밟는 듯하니, 마땅히 차례에 없는 은혜를 밀어 새로워지는 정사를 보이겠다. 지경 안에 크게 사면하되 청태 이년 시월 열이렛날 새벽 이전에 이미 드러났거나 드러나지 않았거나 이미 판결되었거나 되지 않은 사형 이하의 죄를 다 사하여 없애니, 맡은 이는 시행하라."
훤이 금산에 있은 지 석 달 만인 유월에 막내아들 능예와 딸 애복과 사랑하는 첩 고비 등과 함께 금성으로 달아나, 사람을 보내어 태조에게 뵙기를 청하였다.
태조가 기뻐하여 장군 검필과 만세 등을 보내어 물길로 위로하여 오게 하였다. 이르매 두터운 예로 대접하였다. 훤이 열 살 위이므로 높여 상보라 하고 남궁에 관사를 주었으며 자리를 온 벼슬아치의 위에 두었다. 양주를 내려 식읍으로 삼고 아울러 금과 비단과 병풍과 요와 종 마흔 사람과 궁중 마구간의 말 열 필을 내렸다.
견훤의 사위 장군 영규가 몰래 그 아내에게 말하였다. "대왕께서 사십여 해를 부지런히 애써 공업이 거의 이루어졌는데, 하루아침에 집안사람의 재앙으로 땅을 잃고 고려에 몸을 던지셨소. 무릇 곧은 여인은 두 지아비를 섬기지 않고 충성된 신하는 두 임금을 섬기지 않소. 만약 제 임금을 버리고 거스른 아들을 섬긴다면 무슨 낯으로 천하의 의로운 선비를 보겠소. 하물며 듣건대 고려 왕공은 어질고 두터우며 부지런하고 검소하여 백성의 마음을 얻었다 하니, 아마 하늘이 여신 것이라 반드시 삼한의 주인이 될 것이오.
23일리천의 싸움
盍致書以安慰我王,兼殷勤於王公,以圖將來之福乎?」其妻曰:「子之言是吾意也。」於是天福元年二月,遣人致意,遂告太祖曰:「若舉義旗,請為內應,以迎王師。」太祖喜,厚賜其使者而遣之,兼謝英規曰:「若蒙恩一合,無道路之梗,則先致謁於將軍,然後升堂拜夫人,兄事而姉尊之,必終有以厚報之。天地鬼神,皆聞此言。」夏六月,萱告曰:「老臣所以投身於殿下者,願仗殿下威稜,以誅逆子耳。伏望大王借以神兵,殲其賊亂,則臣雖死無憾。」太祖從之。先遣太子武、將軍述希領步騎一萬趣天安府。秋九月,太祖率三軍至天安合兵,進次一善。神劒以兵逆之。甲午,隔一利川,相對布陣。太祖與尙父萱觀兵,以大相堅權、述希、金山、將軍龍吉、竒彦等,領步騎三萬,為左翼;大相金鐵、洪儒、守鄕、將軍王順、俊良等,領步騎三萬,為右翼;大匡順式、大相兢俊、王謙、王乂、黔弼、將軍貞順、宗熙等,以鐵騎二萬、步卒三千,及黑水鐵利諸道勁騎九千五百,為中軍;大將軍公萱、將軍王含允,以兵一萬五千,為先鋒:鼓行而進。
어찌 글을 보내어 우리 임금을 위로하고 아울러 왕공에게 은근히 하여 앞날의 복을 꾀하지 않겠소."
그 아내가 말하였다. "그대의 말이 곧 내 뜻이오."
이에 천복 원년 이월에 사람을 보내어 뜻을 전하고 마침내 태조에게 알렸다. "만약 의로운 깃발을 드시면 청컨대 안에서 응하여 왕의 군사를 맞겠습니다."
태조가 기뻐하여 그 사자에게 두터이 내리고 보내며 아울러 영규에게 사례하였다. "만약 은혜를 입어 하나로 합하고 길이 막힘이 없게 되면, 먼저 장군에게 뵙고 그런 뒤에 마루에 올라 부인에게 절하여 형으로 섬기고 누이로 높여 반드시 끝내 두터이 갚음이 있게 하겠소. 하늘과 땅의 귀신이 다 이 말을 들었소."
여름 유월에 훤이 아뢰었다. "늙은 신하가 전하께 몸을 던진 까닭은 전하의 위엄을 빌려 거스른 아들을 베고자 함일 뿐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대왕께서 신령한 군사를 빌려 그 도둑과 어지러움을 무찔러 주시면, 신은 비록 죽어도 한이 없겠습니다."
태조가 이를 좇았다. 먼저 태자 무와 장군 술희를 보내어 보병과 기병 일만을 거느리고 천안부로 가게 하였다. 가을 구월에 태조가 삼군을 거느리고 천안에 이르러 군사를 합치고 나아가 일선에 머물렀다. 신검이 군사로 맞섰다.
갑오일에 일리천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하여 진을 벌였다. 태조가 상보 훤과 함께 군사를 보았다. 대상 견권과 술희와 금산과 장군 용길과 기언 등이 보병과 기병 삼만을 거느려 왼 날개를 삼고, 대상 김철과 홍유와 수향과 장군 왕순과 준량 등이 보병과 기병 삼만을 거느려 오른 날개를 삼았다. 대광 순식과 대상 긍준과 왕겸과 왕예와 검필과 장군 정순과 종희 등이 쇠 기병 이만과 보졸 삼천과 흑수·철리 여러 길의 굳센 기병 구천오백으로 중군을 삼고, 대장군 공훤과 장군 왕함윤이 군사 일만오천으로 선봉을 삼아, 북 치며 나아갔다.
24후백제가 무너지다
百濟將軍孝奉、德述、明吉等望兵勢大而整,棄甲降於陣前。太祖勞慰之,問百濟將帥所在。孝奉等曰:「元帥神劒在中軍。」太祖命將軍公萱直擣中軍一軍,齊進挾擊。百濟軍潰北,神劒與二弟及將軍富達、小達、能奐等四十餘人生降。太祖受降,除能奐,餘皆慰勞之,許令與妻孥上京。問能奐曰:「始與良劒等密謀囚大王,立其子者,汝之謀也。為臣之義,當如是乎?」能奐俛首不能言,遂命誅之。以神劒僣位,為人所脅,非其本心,又且歸命乞罪,特原其死。甄萱憂懣,發疽數日,卒於黃山佛舍。太祖軍令嚴明,士卒不犯秋毫,故州縣案堵,老幼皆呼萬歲。於是存問將士,量材任用,小民各安其所業。謂神劒之罪如前所言,乃賜官位。
백제 장군 효봉과 덕술과 명길 등이 군사의 기세가 크고 가지런함을 바라보고 갑옷을 버리고 진 앞에 항복하였다. 태조가 위로하고 백제 장수가 있는 곳을 물었다. 효봉 등이 말하였다. "원수 신검이 중군에 있습니다."
태조가 장군 공훤에게 명하여 곧바로 중군을 치게 하고 온 군사가 가지런히 나아가 끼고 쳤다. 백제 군사가 무너져 달아나고 신검이 두 아우와 장군 부달과 소달과 능환 등 마흔여 사람과 함께 산 채로 항복하였다.
태조가 항복을 받고 능환을 빼고는 나머지를 다 위로하여 처자와 함께 서울에 오르게 하였다.
능환에게 물었다. "처음에 양검 등과 몰래 꾀하여 대왕을 가두고 그 아들을 세운 것이 너의 꾀다. 신하 된 의로움이 마땅히 이러하겠는가." 능환이 머리를 숙이고 말하지 못하매 마침내 명하여 베었다.
신검이 자리를 참람히 차지한 것은 남에게 다그침을 받은 것이요 그 본디 마음이 아니며, 또한 목숨을 바쳐 죄를 빌었으므로 특별히 그 죽음을 용서하였다.
견훤은 근심하고 번민하여 등창이 나 며칠 만에 황산 절집에서 죽었다.
태조의 군령이 엄하고 밝아 사졸이 터럭 하나 범하지 않으니, 주와 현이 자리를 편히 하고 늙은이와 어린이가 다 만세를 불렀다. 이에 장수와 군사를 위문하고 재주를 헤아려 맡겨 쓰니, 작은 백성이 각각 그 생업에 편안하였다. 신검의 죄가 앞서 말한 바와 같다 하여 이에 벼슬자리를 내렸다.
협주 1
一云三兄弟皆伏誅。
세 형제가 다 죽임을 받았다고도 한다.
25견훤이 망하다
其二弟與能奐罪同,遂流於真州,尋殺之。謂英規「前王失國後,其臣子無一人慰藉者,獨卿夫妻千里嗣音,以致誠意,兼歸美於寡人,其義不可忘」。仍許職左丞,賜田一千頃,許借驛馬二十五匹,以迎家人賜,其二子以官。甄萱起唐景福元年,至晉天福元年,共四十五年而滅。
그 두 아우는 능환과 죄가 같으므로 마침내 진주로 귀양 보냈다가 이내 죽였다.
영규에게 말하였다. "앞 임금이 나라를 잃은 뒤에 그 신하와 자식으로 한 사람도 위로하는 이가 없었는데, 오직 경의 부부만 천 리에 소식을 이어 정성된 뜻을 이르게 하고 아울러 과인에게 아름다움을 돌렸으니 그 의로움을 잊을 수 없다." 이어 좌승의 벼슬을 주고 밭 천 경을 내리며 역마 스물다섯 필을 빌려 집안사람을 맞게 하고, 그 두 아들에게 벼슬을 주었다.
견훤은 당나라 경복 원년에 일어나 진나라 천복 원년에 이르렀으니 모두 마흔다섯 해 만에 망하였다.
26사론 — 궁예와 견훤
論曰:新羅數窮道喪,天無所助,民無所歸。於是羣盜投隙而作,若猬毛然,其劇者弓裔、甄萱二人而已。弓裔本新羅王子而反以宗國為讐,圖夷滅之,至斬先祖之畵像,其為不仁甚矣。甄萱起自新羅之民,食新羅之祿,而包藏禍心,幸國之危,侵軼都邑,虔劉君臣,若禽獼而草薙之,實天下之元惡大憝。故弓裔見棄於其臣,甄萱産禍於其子,皆自取之也,又誰咎也!雖項羽、李密之雄才,不能敵漢、唐之興,而況裔、萱之凶人,豈可與我太祖相抗歟!但為之歐民者也。
김부식이 논한다.
신라는 운수가 다하고 도가 없어져 하늘이 돕는 바가 없고 백성이 돌아갈 데가 없었다. 이에 뭇 도둑이 틈을 타 일어나 고슴도치 털 같았으니, 그 심한 것은 궁예와 견훤 두 사람뿐이었다.
궁예는 본디 신라의 왕자로되 도리어 제 나라를 원수로 삼아 멸하기를 꾀하고, 조상의 그린 모습을 베기에 이르렀으니 그 어질지 않음이 심하다.
견훤은 신라의 백성에게서 일어나 신라의 녹을 먹으면서도 재앙의 마음을 품고, 나라의 위태로움을 다행으로 여겨 도읍을 침노하고 임금과 신하를 죽이기를 새와 짐승을 사냥하고 풀을 베듯 하였으니, 참으로 천하의 으뜸 악함이요 큰 미움이다.
그러므로 궁예는 그 신하에게 버림받고 견훤은 그 아들에게서 재앙이 생겼으니, 다 스스로 취한 것이라 또 누구를 탓하겠는가.
비록 항우와 이밀의 뛰어난 재주로도 한나라와 당나라의 일어남을 대적하지 못하였거늘, 하물며 궁예와 견훤 같은 흉한 사람이 어찌 우리 태조와 서로 맞설 수 있었겠는가. 다만 백성을 몰아다 준 자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