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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1 — 위만이 왕험에 도읍하다朝鮮列傳 一

사기 조선열전 史記 朝鮮列傳 · 사마천(司馬遷) · 기원전 90년 무렵 · 단락 3 · 한자 319자 · 낭독 1.3분

「사기 조선열전」 한 권 「조선 1 — 위만이 왕험에 도읍하다」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위만조선이 서고 무너지기까지를 적은 유일한 당대 기록. 연나라 사람 만이 상투를 틀고 패수를 건너 왕이 되는 데서 시작해, 손자 우거가 제 신하에게 죽고 그 땅이 네 군이 되는 데서 끝난다. 조선을 친 한나라의 두 장수가 서로 어긋나 하나는 저자에서 죽고 하나는 서인이 되며, 바로잡으러 간 사신마저 죽는다. 사마천은 「두 군사가 다 욕을 보아 장수 가운데 후에 봉해진 이가 없었다」로 맺는다.

1위만 — 상투를 틀고 오랑캐 옷을 입고 패수를 건너다

朝鮮王滿者,故燕人也。自始全燕時嘗略屬真番、朝鮮,為置吏,筑鄣塞。秦滅燕,屬遼東外徼。漢興,為其遠難守,復修遼東故塞,至浿水為界,屬燕。燕王盧綰反,入匈奴,滿亡命,聚黨千餘人,魋結蠻夷服而東走出塞,渡浿水,居秦故空地上下鄣,稍役屬真番、朝鮮蠻夷及故燕、齊亡命者王之,都王險。

조선왕 만(滿)은 옛 연나라 사람이다. 연나라가 온전히 강성하던 때부터 일찍이 진번(眞番)과 조선을 침략하여 딸리게 하고 관리를 두며 성채를 쌓았다. 진나라가 연나라를 멸하자 요동 밖 변방에 딸리게 하였다. 한나라가 일어나서는 그곳이 멀어 지키기 어렵다 하여 다시 요동의 옛 성채를 손보고 패수(浿水)까지를 경계로 삼아 연나라에 딸리게 하였다.

연왕 노관(盧綰)이 배반하여 흉노로 들어가매, 만이 도망하여 무리 천여 명을 모으고 상투를 틀고 오랑캐 옷을 입고 동쪽으로 달아나 변새를 나가, 패수를 건너 진나라 때의 빈 땅인 상하 성채에 살았다. 차츰 진번과 조선의 오랑캐와 옛 연나라·제나라의 망명한 이들을 부려 딸리게 하고 그들의 왕이 되어 왕험(王險)에 도읍하였다.

2외신이 되기로 하고, 사방 수천 리가 되다

會孝惠、高后時天下初定,遼東太守即約滿為外臣,保塞外蠻夷,無使盜邊;諸蠻夷君長欲入見天子,勿得禁止。以聞,上許之,以故滿得兵威財物侵降其旁小邑,真番、臨屯皆來服屬,方數千里。

마침 효혜제와 고후 때에 천하가 갓 정해졌으므로, 요동태수가 곧 만과 약속하여 외신(外臣)으로 삼고 변새 밖의 오랑캐를 지켜 변방을 도둑질하지 못하게 하며, 여러 오랑캐 군장이 천자를 뵈러 들어오려 하면 막지 못하게 하였다. 이를 아뢰매 황제가 허락하였다.

이런 까닭에 만이 군사의 위엄과 재물을 얻어 그 곁의 작은 고을을 침노하여 항복시키니, 진번과 임둔(臨屯)이 다 와서 복종하여 딸려 사방 수천 리가 되었다.

3섭하가 배웅 나온 비왕을 찔러 죽이고 벼슬을 받다

傳子至孫右渠,所誘漢亡人滋多,又未嘗入見;真番旁眾國欲上書見天子,又擁閼不通。元封二年,漢使涉何譙諭右渠,終不肯奉詔。何去至界上,臨浿水,使御刺殺送何者朝鮮裨王長,即渡,馳入塞,遂歸報天子曰「殺朝鮮將」。上為其名美,即不詰,拜何為遼東東部都尉。朝鮮怨何,發兵襲攻殺何。

아들에게 전하여 손자 우거(右渠)에 이르매, 꾀어 들인 한나라 도망자가 더욱 많아졌고 또 일찍이 들어와 뵌 적이 없었다. 진번 곁의 여러 나라가 글을 올려 천자를 뵈려 하여도 또한 가로막아 통하지 못하게 하였다.

원봉 이년에 한나라가 사신 섭하(涉何)를 보내어 우거를 꾸짖어 타이르게 하였으나 끝내 조서를 받들려 하지 않았다. 섭하가 떠나 경계에 이르러 패수에 다다르자, 마부를 시켜 자기를 배웅하던 조선의 비왕(裨王) 장(長)을 찔러 죽이고는 곧 물을 건너 말을 달려 변새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돌아가 천자에게 아뢰었다. 「조선의 장수를 죽였습니다.」

황제가 그 이름이 좋다 하여 곧 따져 묻지 않고 섭하를 요동 동부도위로 삼았다. 조선이 섭하를 원망하여 군사를 내어 습격하여 섭하를 죽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