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예世説新語 賞譽第八
1주자거 같은 이는 참으로 나라 다스릴 그릇이다
陳仲舉嘗嘆曰:「若周子居者,真治國之器!譬諸寶劍,則世之干將。」
진중거가 일찍이 탄식하였다. "주자거 같은 이는 참으로 나라 다스릴 그릇이다. 보배로운 칼에 견주면 곧 세상의 간장이다."
협주 2
汝南先賢傳曰:「周乘字子居,汝南安城人。天姿聰朗,高峙嶽立,非陳仲舉、黃叔度之儔則不交也。仲舉嘗歎曰:『周子居者,真治國之器也。』為太山太守,甚有惠政。」
『여남선현전』에 이르기를 「주승은 자가 자거요 여남 안성 사람이다. 하늘이 준 자질이 총명하고 환하며 높이 솟아 산악처럼 섰는데, 진중거와 황숙도의 무리가 아니면 사귀지 않았다. 중거가 일찍이 탄식하기를 『주자거라는 이는 참으로 나라 다스릴 그릇이다』 하였다. 태산태수가 되어 몹시 은혜로운 정사가 있었다」 하였다.
吳越春秋曰:「吳王闔閭請干將作劍。干將者,吳人,其妻曰莫邪。干將采五山之精,六金之英,候天地,伺陰陽,百神臨視,而金鐵之精未流。夫妻乃翦髮及爪而投之鑪中,金鐵乃濡,遂成二劍。陽曰『干將』,而作龜文,陰曰『莫邪』,而作漫理。干將匿其陽,出其陰以獻闔閭,闔閭甚寶重之。」
『오월춘추』에 이르기를 「오나라 왕 합려가 간장에게 칼 만들기를 청하였다. 간장이라는 이는 오나라 사람이요 그 아내는 막야라 하였다. 간장이 다섯 산의 고움과 여섯 쇠의 꽃부리를 캐어, 하늘과 땅을 살피고 음과 양을 엿보며 온갖 신이 내려와 보았는데도 쇠붙이의 고움이 아직 흐르지 않았다. 지아비와 지어미가 이에 머리털과 손톱을 잘라 화로 가운데 던지니 쇠붙이가 이에 녹아 마침내 두 칼을 이루었다. 양은 『간장』이라 하여 거북 무늬를 새기고 음은 『막야』라 하여 물결무늬를 새겼다. 간장이 그 양을 감추고 그 음을 내어 합려에게 바치니 합려가 몹시 보배로이 무겁게 여겼다」 하였다.
2쓸쓸하기가 굳센 소나무 아래 바람 같다
世目李元禮:「謖謖如勁松下風。」
세상이 이원례를 두고 말하였다. "쓸쓸하기가 굳센 소나무 아래 바람 같다."
협주 1
李氏家傳曰:「膺嶽峙淵清,峻貌貴重。華夏稱曰:『潁川李府君,頵頵如玉山。汝南陳仲舉,軒軒若千里馬。南陽朱公叔,飂飂如行松柏之下。』」
『이씨가전』에 이르기를 「이응은 산처럼 솟고 못처럼 맑으며 준엄한 모습으로 귀하고 무거웠다. 중원이 일컬어 이르기를 『영천의 이부군은 우뚝하기가 옥산 같고, 여남의 진중거는 헌걸차기가 천리마 같으며, 남양의 주공숙은 시원하기가 소나무와 잣나무 아래를 다니는 듯하다』 하였다」 하였다.
3평여의 못에 두 마리 용이 있다
謝子微見許子將兄弟曰:「平輿之淵,有二龍焉。」見許子政弱冠之時,嘆曰:「若許子政者,有榦國之器。正色忠謇,則陳仲舉之匹;伐惡退不肖,范孟博之風。」
사자미가 허자장 형제를 보고 말하였다. "평여의 못에 두 마리 용이 있다."
허자정의 스무 살 적을 보고 탄식하였다. "허자정 같은 이는 나라의 줄기가 될 그릇이 있다. 낯빛을 바로 하고 참되게 바른말 하는 것은 곧 진중거의 짝이요, 악한 것을 치고 못난 이를 물리치는 것은 범맹박의 풍모다."
협주 2
汝南先賢傳曰:「謝甄字子微,汝南邵陵人。明識人倫,雖郭林宗不及甄之鑒也。見許子將兄弟弱冠時,則曰:『平輿之淵有二龍。』仕為豫章從事。許虔字子政,平輿人。體尚高潔,雅正寬亮,謝子微見虔兄弟歎曰:『若許子政者,榦國之器也。』虔弟劭,聲未發時,時人以謂不如虔。虔恆撫髀稱劭,自以為不及也。釋褐為郡功曹,黜姦廢惡,一郡肅然。年三十五卒。」海內先賢傳曰:「許劭字子將,虔弟也。山峙淵停,行應規表。邵陵謝子微高才遠識,見劭十歲時,歎曰:『此乃希世之偉人也。』初,劭拔樊子昭於市肆,出虞承賢於客舍,召李叔才於無聞,擢郭子瑜於小吏。廣陵徐孟本來臨汝南,聞劭高名,召功曹。時袁紹以公族為濮陽長,棄官還,副車從騎,將入郡界,乃歎曰:『許子將秉持清格,豈可以吾輿服見之邪?』遂單馬而歸。辟公府掾,敦辟皆不就。避地江南,卒於豫章也。」
『여남선현전』에 이르기를 「사견은 자가 자미요 여남 소릉 사람이다. 사람의 갈피를 밝게 알아 비록 곽임종이라도 사견의 살핌에 미치지 못하였다. 허자장 형제의 스무 살 때를 보고 곧 『평여의 못에 두 마리 용이 있다』 하였다. 벼슬하여 예장종사가 되었다. 허건은 자가 자정이요 평여 사람이다. 몸가짐이 높고 깨끗함을 높이며 우아하고 바르고 너그럽고 환하였는데, 사자미가 허건 형제를 보고 탄식하기를 『허자정 같은 이는 나라의 줄기가 될 그릇이다』 하였다. 허건의 아우 허소가 소리가 나기 전에는 그때 사람들이 허건만 못하다 하였다. 허건이 늘 넓적다리를 치며 허소를 일컬어 스스로 미치지 못한다 하였다. 베옷을 벗고 고을 공조가 되어 간사함을 물리치고 악함을 폐하니 온 고을이 엄숙하였다. 서른다섯에 죽었다」 하였다. 『해내선현전』에 이르기를 「허소는 자가 자장이요 허건의 아우다. 산처럼 솟고 못처럼 멎었으며 행실이 법도에 맞았다. 소릉의 사자미가 높은 재주와 먼 식견으로 허소의 열 살 때를 보고 탄식하기를 『이는 이에 세상에 드문 훌륭한 사람이다』 하였다. 처음에 허소가 번자소를 저잣거리에서 뽑고 우승현을 객사에서 내며, 이숙재를 들림 없는 데서 부르고 곽자유를 작은 아전에서 뽑았다. 광릉의 서맹본이 여남에 와서 다스릴 때 허소의 높은 이름을 듣고 공조로 불렀다. 그때 원소가 공족으로 복양의 장이 되었다가 벼슬을 버리고 돌아오는데, 딸린 수레와 따르는 기병으로 고을 지경에 들어가려다 이에 탄식하기를 『허자장이 맑은 격을 잡아 지키는데 어찌 내 수레와 옷으로 그를 보겠는가』 하고 마침내 홀로 말을 타고 돌아갔다. 공부의 아전으로 불리고 도타이 불렸으나 다 나아가지 않았다. 강남으로 난을 피하여 예장에서 죽었다」 하였다.
張璠漢紀曰:「范滂字孟博,汝南伊陽人。為功曹,辟公府掾。升車攬轡,有澄清天下之志。百城聞滂高名,皆解印綬去。為黨事見誅。」
장번의 『한기』에 이르기를 「범방은 자가 맹박이요 여남 이양 사람이다. 공조가 되고 공부의 아전으로 불렸다. 수레에 올라 고삐를 잡으면 천하를 맑히려는 뜻이 있었다. 온갖 성이 범방의 높은 이름을 듣고 다 인끈을 풀고 떠났다. 당고의 일로 베임을 당하였다」 하였다.
4구름 속 흰 학은 제비와 참새 그물로 잡을 바가 아니다
公孫度目邴原:所謂雲中白鶴,非燕雀之網所能羅也。
공손도가 병원을 두고 말하였다. 이른바 구름 속 흰 학이니 제비와 참새 그물로 잡을 바가 아니라고.
협주 1
魏書曰:「度字叔濟,襄平人。累遷冀州刺史、遼東太守。」邴原別傳曰:「原字根矩,東管朱虛人。少孤,數歲時過書舍而泣。師問曰:『童子何泣也?』原曰:『凡得學者,有親也。一則願其不孤,二則羡其得學,中心感傷,故泣耳。』師惻然曰:『苟欲學,不須資也。』於是就業。長則博覽洽聞,金玉其行。知世將亂,避地遼東。公孫度厚禮之。中國既寧,欲還鄉里,為度禁絕。原密自治嚴,謂部落曰:『移比近郡,以觀其意。』皆曰:『樂移。』原舊有捕魚大船,請村落,皆令熟醉,因夜去之。數日,度乃覺,吏欲追之。度曰:『邴君所謂雲中白鶴,非鶉鷃之網所能羅也。』魏王辟祭酒,累遷五官中郎長史。」
『위서』에 이르기를 「공손도는 자가 숙제요 양평 사람이다. 여러 벼슬을 거쳐 기주자사와 요동태수에 이르렀다」 하였다. 『병원별전』에 이르기를 「병원은 자가 근구요 동관 주허 사람이다. 어려서 아비를 여의고 몇 살 때 글방을 지나며 울었다. 스승이 묻기를 『아이야 어찌 우느냐』 하니, 병원이 『무릇 배움을 얻는 이는 어버이가 있습니다. 하나는 그가 외롭지 않음을 바라고 둘은 그가 배움을 얻음을 부러워하여, 마음이 느껴 상하므로 울 뿐입니다』 하였다. 스승이 애처로이 여겨 『진실로 배우고자 한다면 밑천이 필요하지 않다』 하였다. 이에 학업에 나아갔다. 자라서는 널리 보고 두루 들어 그 행실이 금과 옥 같았다. 세상이 장차 어지러워질 줄 알고 요동으로 난을 피하였다. 공손도가 두터운 예로 대하였다. 중원이 이미 편안해져 시골로 돌아가려 하였으나 공손도에게 막혔다. 병원이 몰래 스스로 채비를 갖추고 마을에 이르기를 『가까운 고을로 옮겨 그 뜻을 보리라』 하니 다들 『옮기기를 즐겨한다』 하였다. 병원에게 옛날부터 고기 잡는 큰 배가 있었는데, 마을을 청하여 다 익도록 취하게 하고 이로 인해 밤에 떠났다. 며칠 만에 공손도가 이에 알아채고 아전이 뒤쫓으려 하였다. 공손도가 『병군은 이른바 구름 속 흰 학이니 메추라기 그물로 잡을 바가 아니다』 하였다. 위나라 왕이 좨주로 부르고 여러 벼슬을 거쳐 오관중랑장사에 이르렀다」 하였다.
5배해는 맑고 통하며 왕융은 간결하고 요긴하다
鍾士季目王安豐:阿戎了了解人意。謂裴公之談,經日不竭。吏部郎闕,文帝問其人於鍾會。會曰:「裴楷清通,王戎簡要,皆其選也。」於是用裴。
종사계가 왕안풍을 두고 말하였다. 아융은 또렷또렷하여 남의 뜻을 안다고. 배공의 이야기는 며칠이 지나도 다하지 않는다 하였다.
이부랑 자리가 비어 문제가 종회에게 그 사람을 물었다.
종회가 말하였다. "배해는 맑고 통하며 왕융은 간결하고 요긴하니 다 그 뽑을 만한 이들입니다."
이에 배해를 썼다.
협주 3
王隱晉書曰:「戎少清明曉悟。」
왕은의 『진서』에 이르기를 「왕융은 젊어서 맑고 밝으며 환히 깨쳤다」 하였다.
裴頠已見。
배위는 이미 보인다.
按諸書皆云:鍾會薦裴楷、王戎於晉文王,文王辟以為掾,不聞為吏部郎。
살피건대 여러 책이 다 이르기를 종회가 배해와 왕융을 진나라 문왕에게 천거하니 문왕이 불러 아전으로 삼았다 하고, 이부랑이 되었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다.
6스무 해 뒤에 이 두 어진 이가 마땅히 이부상서가 되리라
王濬沖、裴叔則二人,總角詣鍾士季。須臾去後,客問鍾曰:「向二童何如?」鍾曰:「裴楷清通,王戎簡要。後二十年,此二賢當為吏部尚書,冀爾時天下無滯才。」
왕준충과 배숙칙 두 사람이 더벅머리로 종사계를 찾아갔다.
잠깐 뒤에 간 다음 손이 종회에게 물었다. "아까 두 아이는 어떠하오."
종회가 말하였다. "배해는 맑고 통하며 왕융은 간결하고 요긴하오. 스무 해 뒤에 이 두 어진 이가 마땅히 이부상서가 될 터이니, 그때에 천하에 막힌 재주가 없기를 바라오."
협주 1
晉陽秋曰:「戎為兒童,鍾會異之。」
『진양추』에 이르기를 「왕융이 어린아이일 때 종회가 그를 남달리 여겼다」 하였다.
7뒤에 오는 이의 우두머리는 배수다
諺曰:「後來領袖有裴秀。」
속담에 이르기를 「뒤에 오는 이의 우두머리는 배수다」 하였다.
협주 1
虞預晉書曰:「秀字季彥,河東聞喜人。父潛,魏太常。秀有風操,八歲能著文。叔父徽,有聲名。秀年十餘歲,有賓客詣徽,出則過秀。時人為之語曰:『後進領袖有裴秀。』大將軍辟為掾。父終,推財與兄。年二十五,遷黃門侍郎。晉受禪,封鉅鹿公。後累遷左光祿、司空。四十八薨,謚元公,配食宗廟。」
우예의 『진서』에 이르기를 「배수는 자가 계언이요 하동 문희 사람이다. 아버지 배잠은 위나라 태상이다. 배수는 풍모와 지조가 있어 여덟 살에 글을 지을 수 있었다. 작은아버지 배휘가 소리와 이름이 있었다. 배수가 나이 열 남짓일 때 손이 배휘를 찾아오면 나가며 배수에게 들렀다. 그때 사람들이 이를 두고 말하기를 『뒤에 나아갈 이의 우두머리는 배수다』 하였다. 대장군이 불러 아전으로 삼았다. 아버지가 죽자 재물을 밀어 형에게 주었다. 나이 스물다섯에 황문시랑으로 옮겼다. 진나라가 선양을 받자 거록공에 봉해졌다. 뒤에 여러 벼슬을 거쳐 좌광록과 사공에 이르렀다. 마흔여덟에 죽으니 시호는 원공이요 종묘에 짝하여 제사되었다」 하였다.
8산거원을 보면 산에 올라 아래를 굽어보는 듯 그윽하고 깊고 멀다
裴令公目夏侯太初:「肅肅如入廊廟中,不脩敬而人自敬。」一曰:「如入宗廟,琅琅但見禮樂器。見鍾士季,如觀武庫,但覩矛戟。見傅蘭碩,江廧靡所不有。見山巨源,如登山臨下,幽然深遠。」
배영공이 하후태초를 두고 말하였다. "엄숙하기가 조정에 들어간 듯하여 공경을 닦지 않아도 사람이 절로 공경한다."
또 이르기를 「종묘에 든 듯하여 낭랑히 다만 예와 음악의 그릇만 보인다. 종사계를 보면 무기 곳간을 보는 듯하여 다만 창과 갈래창만 보인다. 부난석을 보면 강가 담처럼 있지 않은 것이 없다. 산거원을 보면 산에 올라 아래를 굽어보는 듯 그윽하고 깊고 멀다」 하였다.
협주 2
禮記曰:「周豐謂魯哀公曰:『宗廟社稷之中,未施敬而民自敬。』」
『예기』에 이르기를 「주풍이 노나라 애공에게 이르기를 『종묘와 사직 가운데서는 공경을 베풀지 않아도 백성이 절로 공경합니다』 하였다」 하였다.
玄、會、嘏、濤,並已見上。
하후현과 종회와 부하와 산도는 아울러 이미 위에 보인다.
9양숙자가 어찌 반드시 안회만 못하겠는가
羊公還洛,郭奕為野王令。羊至界,遣人要之。郭便自往。既見,嘆曰:「羊叔子何必減郭太業!」復往羊許,小悉還,又嘆曰:「羊叔子去人遠矣!」羊既去,郭送之彌日,一舉數百里,遂以出境免官。復嘆曰:「羊叔子何必減顏子!」
양공이 낙양으로 돌아올 때 곽혁이 야왕령이었다.
양공이 지경에 이르러 사람을 보내 그를 맞았다. 곽혁이 곧 스스로 갔다.
이윽고 보고 탄식하였다. "양숙자가 어찌 반드시 곽태업만 못하겠는가."
다시 양공의 처소에 가서 조금 다 알고 돌아와 또 탄식하였다. "양숙자는 남보다 멀리 나아갔구나."
양공이 떠나자 곽혁이 온종일 배웅하며 한 번에 몇백 리를 가서 마침내 지경을 나섰다 하여 벼슬을 잃었다.
다시 탄식하였다. "양숙자가 어찌 반드시 안회만 못하겠는가."
협주 1
晉諸公贊曰:「奕字泰業,太原陽曲人。累世舊族。奕有才望,歷雍州刺史、尚書。
『진제공찬』에 이르기를 「곽혁은 자가 태업이요 태원 양곡 사람이다. 여러 대 오랜 겨레였다. 곽혁은 재주와 바람이 있어 옹주자사와 상서를 지냈다」 하였다.
10박옥과 아직 가르지 않은 금 같아 다들 그 보배를 공경하나 그 그릇을 이름하지 못한다
王戎目山巨源:「如璞玉渾金,人皆欽其寶,莫知名其器。」
왕융이 산거원을 두고 말하였다. "박옥과 아직 가르지 않은 금 같아 사람들이 다 그 보배를 공경하나 그 그릇을 이름하지 못한다."
협주 1
顧愷之畫贊曰:「濤無所標明,淳深淵默,人莫見其際,而其器亦入道。故見者莫能稱謂,而服其偉量。」
고개지의 『화찬』에 이르기를 「산도는 드러내 밝힌 바가 없고 순수하고 깊으며 못처럼 잠잠하여 사람이 그 끝을 보지 못하였는데, 그 그릇이 또한 도에 들었다. 그러므로 보는 이가 일컬어 이름 하지 못하면서도 그 훌륭한 도량에 따랐다」 하였다.
11사촌형이 죽지 않았구나
羊長和父繇,與太傅祜同堂相善,仕至車騎掾。蚤卒。長和兄弟五人,幼孤。祜來哭,見長和哀容舉止,宛若成人,迺嘆曰:「從兄不亡矣!」
양장화의 아버지 양요는 태부 양호와 사촌으로 사이가 좋았고 벼슬이 거기연에 이르렀는데 일찍 죽었다.
장화 형제 다섯 사람이 어려서 아비를 여의었다. 양호가 와서 곡하다가 장화의 슬퍼하는 모습과 몸가짐이 완연히 어른 같음을 보고, 이에 탄식하였다. "사촌형이 죽지 않았구나."
협주 1
羊氏譜曰:「繇字堪甫,太山人。祖續,漢太尉,不拜。父祕,京兆太守。繇歷車騎掾,娶樂國禎女,生五子:乘、洽、式、亮、悅也。」
『양씨보』에 이르기를 「양요는 자가 감보요 태산 사람이다. 할아버지 양속은 한나라 태위였으나 임명받지 않았다. 아버지 양비는 경조태수다. 양요는 거기연을 지냈고 악국정의 딸을 맞아 다섯 아들 양승과 양흡과 양식과 양량과 양열을 낳았다」 하였다.
12맑고 참되며 바라는 것이 적어 만물이 옮기지 못한다
山公舉阮咸為吏部郎,目曰:「清真寡欲,萬物不能移也。」
산공이 완함을 이부랑으로 천거하며 두고 말하였다. "맑고 참되며 바라는 것이 적어 만물이 옮기지 못한다."
협주 1
名士傳曰:「咸字仲容,陳留人,籍兄子也。任達不拘,當世皆怪其所為。及與之處,少嗜欲,哀樂至到,過絕於人,然後皆忘其向議。為散騎侍郎。山濤舉為吏部,武帝不用。太原郭奕見之心醉,不覺歎服。解音,好酒以卒。」山濤啟事曰:「吏部郎史曜出處缺,當選。濤薦咸曰:『真素寡欲,深識清濁,萬物不能移也。若在官人之職,必妙絕於時。』詔用陸亮。」晉陽秋曰:「咸行已多違禮度。濤舉以為吏部郎,世祖不許。」竹林七賢論曰:「山濤之舉阮咸,固知上不能用,蓋惜曠世之俊,莫識其真故耳。夫以咸之所犯,方外之意,稱其清真寡欲,則跡外之意自見耳。」
『명사전』에 이르기를 「완함은 자가 중용이요 진류 사람이니 완적의 조카다. 멋대로 통달하여 얽매이지 않으니 당세가 다 그 하는 바를 괴이하게 여겼다. 그런데 함께 지내 보면 바라는 것이 적고 슬픔과 즐거움이 지극히 이르러 남보다 지나치니, 그런 뒤에는 다 앞서의 의논을 잊었다. 산기시랑이 되었다. 산도가 이부로 천거하였으나 무제가 쓰지 않았다. 태원의 곽혁이 그를 보고 마음이 취하여 저도 모르게 탄식하고 따랐다. 음률을 알고 술을 좋아하다 죽었다」 하였다. 『산공계사』에 이르기를 「이부랑 사요가 나가 자리가 비어 마땅히 가려야 하였다. 산도가 완함을 천거하며 이르기를 『참되고 수수하며 바라는 것이 적고 맑고 흐림을 깊이 아니 만물이 옮기지 못합니다. 만일 사람 다스리는 벼슬에 있으면 반드시 그때에 묘하게 뛰어날 것입니다』 하였다. 조칙으로 육량을 썼다」 하였다. 『진양추』에 이르기를 「완함은 몸가짐이 예의 법도를 어김이 많았다. 산도가 들어 이부랑으로 삼으려 하였으나 세조가 허락하지 않았다」 하였다. 『죽림칠현론』에 이르기를 「산도가 완함을 천거한 것은 본디 위에서 쓸 수 없음을 알았으되, 대개 세상에 드문 뛰어난 이를 그 참됨을 아는 이가 없음을 아까워하였기 때문일 뿐이다. 무릇 완함이 범한 바로 보면 밖의 뜻인데, 그 맑고 참되며 바라는 것이 적음을 일컬었으니 곧 자취 밖의 뜻이 절로 드러난다」 하였다.
13한나라 원제 이래로 이런 사람이 있지 않았다
王戎目阮文業:「清倫有鑒識,漢元以來,未有此人。」
왕융이 완문업을 두고 말하였다. "맑은 갈피와 살피는 식견이 있으니 한나라 원제 이래로 이런 사람이 있지 않았다."
협주 1
杜篤新書曰:「阮武字文業,陳留尉氏人。父諶,侍中。武闊達博通,淵雅之士。」陳留志曰:「武,魏末河清太守。族子籍,年總角未知名,武見而偉之,以為勝己。知人多此類。著書十八篇,謂之阮子,終於家。」郭泰友人宋子俊稱泰:「自漢元以來,未有林宗之匹。」
두독의 『신서』에 이르기를 「완무는 자가 문업이요 진류 위씨 사람이다. 아버지 완심은 시중이다. 완무는 트여 통달하고 널리 통하여 깊고 우아한 선비였다」 하였다. 『진류지』에 이르기를 「완무는 위나라 말 하청태수였다. 겨레 조카 완적이 나이 더벅머리로 아직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는데, 완무가 보고 훌륭하다 하여 저보다 낫다 여겼다. 사람 알아봄이 흔히 이러하였다. 책 열여덟 편을 지어 『완자』라 하였고 집에서 마쳤다」 하였다. 곽태의 벗 송자준이 곽태를 일컬어 「한나라 원제 이래로 임종의 짝이 있지 않았다」 하였다.
14왕융은 간결함을 높이고 배해는 맑고 통한다
武元夏目裴、王曰:「戎尚約,楷清通。」
무원하가 배씨와 왕씨를 두고 말하였다. "왕융은 간결함을 높이고 배해는 맑고 통한다."
협주 1
虞預晉書曰:「武陔字元夏,沛國竹邑人。父周,魏光祿大夫。陔及二弟歆、茂皆總角見稱,並有品望,鄉人諸父,未能覺其多少。時同郡劉公榮名知人,嘗造周,周見其三子。公榮曰:『君三子皆國士。元夏器量最優,有輔佐之風,力仕宦,可為亞公。叔夏、季夏不減常伯納言也。』陔至左僕射。」
우예의 『진서』에 이르기를 「무해는 자가 원하요 패국 죽읍 사람이다. 아버지 무주는 위나라 광록대부다. 무해와 두 아우 무흠과 무무가 다 더벅머리에 일컬어짐을 받아 아울러 품평과 바람이 있었는데, 시골 사람과 여러 어른이 그 많고 적음을 깨닫지 못하였다. 그때 같은 고을 유공영이 사람 알아보기로 이름났는데, 일찍이 무주를 찾아가매 무주가 그 세 아들을 보였다. 공영이 『그대의 세 아들이 다 나라의 선비요. 원하가 그릇과 도량이 가장 나아 도와 보좌할 풍모가 있으니 힘써 벼슬하면 버금가는 공이 될 만하고, 숙하와 계하도 늘 벼슬하는 이에 못하지 않겠소』 하였다. 무해는 좌복야에 이르렀다」 하였다.
15큰 집에 쓰면 마룻대와 들보의 쓰임이 있다
庾子嵩目和嶠:「森森如千丈松,雖磊砢有節目,施之大廈,有棟梁之用。」
유자숭이 화교를 두고 말하였다. "빽빽하기가 천 길 소나무 같아, 비록 울퉁불퉁 마디와 옹이가 있으나 큰 집에 쓰면 마룻대와 들보의 쓰임이 있다."
협주 1
晉諸公贊曰:「嶠常慕其舅夏侯玄為人,故於朝士中峨然不群,時類憚其風節。」
『진제공찬』에 이르기를 「화교가 늘 그 외숙 하후현의 사람됨을 그리워하였으므로 조정 선비 가운데 우뚝하게 무리와 달라, 그때 무리가 그 풍모와 절개를 꺼렸다」 하였다.
16저절로 티끌 바람 밖의 물건이다
王戎云:「太尉神姿高徹,如瑤林瓊樹,自然是風塵外物。」
왕융이 말하였다. "태위는 정신과 자태가 높고 트여 옥 같은 숲과 구슬 같은 나무 같으니, 저절로 티끌 바람 밖의 물건이다."
협주 1
名士傳曰:「夷甫天形奇特,明秀若神。」八王故事曰:「石勒見夷甫,謂長史孔萇曰:『吾行天下多矣!未嘗見如此人,當可活不?』萇曰:『彼晉三公,不為我用。』勒曰:『雖然,要不可加以鋒刃也。』夜使推牆殺之。」
『명사전』에 이르기를 「이보는 하늘이 준 모습이 기이하고 남달라 밝고 빼어남이 신 같았다」 하였다. 『팔왕고사』에 이르기를 「석륵이 이보를 보고 장사 공장에게 이르기를 『내가 천하를 다닌 것이 많으나 일찍이 이 같은 사람을 보지 못하였다. 살릴 만한가』 하니, 공장이 『저이는 진나라 삼공이라 우리에게 쓰이지 않을 것입니다』 하였다. 석륵이 『비록 그러하나 요컨대 칼날을 더할 수는 없다』 하고, 밤에 담을 밀어 그를 죽이게 하였다」 하였다.
17집에 이름난 선비가 있는데 서른 해를 알지 못하였구나
王汝南既除所生服,遂停墓所。兄子濟每來拜墓,略不過叔,叔亦不候。濟脫時過,止寒溫而已。後聊試問近事,答對甚有音辭,出濟意外,濟極惋愕。仍與語,轉造精微。濟先略無子姪之敬,既聞其言,不覺懍然,心形俱肅。遂留共語,彌日累夜。濟雖雋爽,自視缺然,乃喟然嘆曰:「家有名士,三十年而不知!」濟去,叔送至門。濟從騎有一馬,絕難乘,少能騎者。濟聊問叔:「好騎乘不?」曰:「亦好爾。」濟又使騎難乘馬,叔姿形既妙,回策如縈,名騎無以過之。濟益嘆其難測,非復一事。既還,渾問濟:「何以暫行累日?」濟曰:「始得一叔。」渾問其故?濟具嘆述如此。渾曰:「何如我?」濟曰:「濟以上人。」武帝每見濟,輒以湛調之曰:「卿家痴叔死未?」濟常無以答。既而得叔,後武帝又問如前,濟曰:「臣叔不痴。」稱其實美。帝曰:「誰比?」濟曰:「山濤以下,魏舒以上。」於是顯名。年二十八,始宦。
왕여남이 이미 낳아 준 어버이의 상복을 벗고 마침내 무덤 있는 데 머물렀다.
형의 아들 왕제가 무덤에 절하러 올 때마다 거의 작은아버지에게 들르지 않았고 작은아버지도 문안하지 않았다.
왕제가 어쩌다 들를 때에도 안부만 나눌 뿐이었다.
뒤에 애오라지 시험 삼아 요사이 일을 물으니, 답하는 것이 몹시 소리와 말이 있어 왕제의 뜻 밖이라 왕제가 지극히 놀라고 어리둥절해하였다.
이어 함께 말하니 점점 곱고 은미한 데로 나아갔다. 왕제가 앞서는 거의 조카의 공경이 없었는데, 이미 그 말을 듣고는 저도 모르게 두려워져 마음과 몸이 함께 삼가졌다.
마침내 머물러 함께 말하기를 온종일 여러 밤을 하였다.
왕제가 비록 뛰어나고 시원하였으나 스스로 보기에 모자란 듯하여, 이에 크게 탄식하였다. "집에 이름난 선비가 있는데 서른 해를 알지 못하였구나."
왕제가 떠날 때 작은아버지가 문까지 배웅하였다. 왕제의 따르는 기병에게 말 한 필이 있었는데 몹시 타기 어려워 탈 수 있는 이가 적었다.
왕제가 애오라지 작은아버지에게 물었다. "말타기를 좋아하십니까."
말하였다. "또한 좋아한다."
왕제가 또 타기 어려운 말을 타게 하니, 작은아버지의 자태와 모습이 이미 묘하고 채찍을 돌림이 얽는 듯하여 이름난 기병도 그를 넘지 못하였다.
왕제가 더욱 그 헤아리기 어려움을 탄식하였으니 다시 한 가지 일이 아니었다.
이윽고 돌아오니 왕혼이 왕제에게 물었다. "어찌 잠깐 다녀온다더니 여러 날이 걸렸느냐."
왕제가 말하였다. "비로소 작은아버지 한 분을 얻었습니다."
왕혼이 그 까닭을 물으니 왕제가 갖추어 탄식하며 이와 같이 말하였다.
왕혼이 말하였다. "나와 견주면 어떠냐."
왕제가 말하였다. "저보다 윗사람입니다."
무제가 왕제를 볼 때마다 문득 왕담을 들어 놀리며 말하였다. "경의 집안 어리석은 작은아버지는 죽었는가."
왕제가 늘 답할 말이 없었다. 이윽고 작은아버지를 얻은 뒤에 무제가 또 앞서처럼 물으니 왕제가 말하였다. "신의 작은아버지는 어리석지 않습니다."
그 참된 아름다움을 일컬었다.
임금이 말하였다. "누구에 견주겠는가."
왕제가 말하였다. "산도의 아래요 위서의 위입니다."
이에 이름이 드러났다. 나이 스물여덟에 비로소 벼슬하였다.
협주 2
鄧粲晉紀曰:「王湛字處沖,太原人。隱德,人莫之知,雖兄弟宗族,亦以為癡,唯父昶異焉。昶喪,居墓次,兄子濟往省湛,見床頭有周易,謂湛曰:『叔父用此何為?頗曾看不?』湛笑曰:『體中佳時,脫復看耳。今日當與汝言。』因共談易。剖析入微,妙言奇趣,濟所未聞,歎不能測。濟性好馬,而所乘馬駿駛,意甚愛之。湛曰:『此雖小駛,然力薄不堪苦。近見督郵馬,當勝此,但養不至耳。』濟取督郵馬穀食十數日,與湛試之。湛未嘗乘馬,卒然便馳騁,步驟不異於濟,而馬不相勝。湛曰:『今直行車路,何以別馬勝不?唯當就蟻封耳!』於是就蟻封盤馬,果倒踣,其俊識天才乃爾。」
등찬의 『진기』에 이르기를 「왕담은 자가 처충이요 태원 사람이다. 덕을 숨겨 사람이 알지 못하고 비록 형제와 겨레붙이라도 또한 어리석다 여겼는데, 오직 아버지 왕창만이 그를 남달리 여겼다. 왕창의 상에 무덤 곁에 살았는데, 형의 아들 왕제가 왕담을 살피러 갔다가 평상 머리에 『주역』이 있는 것을 보고 왕담에게 이르기를 『작은아버지께서 이것으로 무엇을 하십니까. 자못 일찍이 보신 적이 있습니까』 하였다. 왕담이 웃으며 『몸이 좋을 때 문득 다시 볼 뿐이다. 오늘 마땅히 너와 말하겠다』 하고, 이로 인해 함께 『역』을 말하였다. 쪼개고 갈라 은미한 데 들어가니 묘한 말과 기이한 이룸이 왕제가 듣지 못한 바라, 탄식하며 헤아리지 못하였다. 왕제는 성품이 말을 좋아하였는데 타는 말이 준수하고 빨라 뜻으로 몹시 아꼈다. 왕담이 『이는 비록 조금 빠르나 힘이 얇아 괴로움을 견디지 못한다. 요사이 독우의 말을 보니 마땅히 이보다 나을 터인데 다만 기름이 이르지 못하였을 뿐이다』 하였다. 왕제가 독우의 말을 가져다 열 남짓 날을 곡식을 먹이고 왕담과 시험하였다. 왕담은 일찍이 말을 탄 적이 없는데 갑자기 곧 달리매 걸음과 달림이 왕제와 다르지 않았고 말도 서로 낫지 않았다. 왕담이 『이제 곧바로 수레 길을 달리니 무엇으로 말의 나음을 가리겠느냐. 오직 마땅히 개미둑에 나아가야 한다』 하였다. 이에 개미둑에 나아가 말을 돌리니 과연 거꾸러졌으니, 그 뛰어난 식견과 하늘이 준 재주가 이러하였다」 하였다.
晉陽秋曰:「濟有人倫鑒識,其雅俗是非,少有優潤。見湛,歎服其德宇。時人謂湛:『上方山濤不足,下比魏舒有餘。』湛聞之曰:『欲以我處季孟之間乎?』」王隱晉書曰:「魏舒字陽元,任城人。幼孤,為外氏甯家所養。甯氏起宅,相者曰:『當出貴甥。』外祖母意以盛氏甥小而惠,謂應相也。舒曰:『當為外氏成此宅相。』少名遲鈍。叔父衡使守水碓,每言:『舒堪八百戶長,我願畢矣。』舒不以介意。身長八尺二寸,不修常人近事。少工射,箸韋衣入山澤,每獵大獲。為後將軍鍾毓長史,毓與參佐射戲,舒常為坐畫籌。後值朋人少,以舒充數,於是發無不中,加博措閑雅,殆盡其妙。毓歎謝之曰:『吾之不足,盡卿如此射矣!』轉相國參軍。晉王每朝罷,目送之曰:『魏舒堂堂,人之領袖!』累遷侍中、司徒。」
『진양추』에 이르기를 「왕제가 사람 갈피를 살피는 식견이 있어 그 우아함과 속됨과 옳고 그름에 넉넉하고 윤택함이 적었다. 왕담을 보고 그 덕의 그릇을 탄복하였다. 그때 사람들이 왕담을 이르기를 『위로 산도에 견주면 모자라고 아래로 위서에 견주면 남는다』 하였다. 왕담이 이를 듣고 『나를 계씨와 맹씨 사이에 두려는 것인가』 하였다」 하였다. 왕은의 『진서』에 이르기를 「위서는 자가 양원이요 임성 사람이다. 어려서 아비를 여의고 외가 영씨 집에서 길러졌다. 영씨가 집을 지을 때 관상 보는 이가 『마땅히 귀한 생질이 나오리라』 하였다. 외할머니가 뜻으로 성씨의 생질이 어리고 슬기로우니 상에 맞으리라 하였다. 위서가 『마땅히 외가를 위해 이 집의 상을 이루겠습니다』 하였다. 젊어서 더디고 무디다 이름났다. 작은아버지 위형이 물레방아를 지키게 하며 늘 이르기를 『위서는 팔백 집의 어른을 감당하리니 내 바람은 다하였다』 하였는데, 위서는 마음에 두지 않았다. 키가 여덟 자 두 치요 여느 사람의 가까운 일을 닦지 않았다. 젊어서 활쏘기에 뛰어나 가죽옷을 입고 산과 못에 들면 사냥할 때마다 많이 얻었다. 후장군 종육의 장사가 되었는데, 종육이 참좌와 활쏘기 놀이를 할 때 위서가 늘 자리에서 산가지를 그었다. 뒤에 편 사람이 적은 때를 만나 위서로 수를 채우니, 이에 쏘아 맞히지 않음이 없고 더하여 몸가짐이 한가롭고 우아하여 거의 그 묘함을 다하였다. 종육이 탄식하고 사례하기를 『내가 모자라 경을 이토록 다 알지 못하였구나』 하였다. 상국참군으로 옮겼다. 진나라 왕이 조회를 마칠 때마다 눈으로 그를 보내며 이르기를 『위서는 당당하니 사람의 우두머리다』 하였다. 여러 벼슬을 거쳐 시중과 사도에 이르렀다」 하였다.
18배복야를 그때 사람들이 말과 이야기의 숲이라 하였다
裴僕射時人謂為言談之林藪。
배복야를 그때 사람들이 말과 이야기의 숲이라 하였다.
협주 1
惠帝起居注曰:「頠理甚淵博,贍於論難。」
『혜제기거주』에 이르기를 「배위는 결이 몹시 깊고 넓으며 따져 묻는 데 넉넉하였다」 하였다.
19공께서 울지도 뛰지도 않는 이를 보지 못하셨을 뿐입니다
張華見褚陶,語陸平原曰:「君兄弟龍躍雲津,顧彥先鳳鳴朝陽。謂東南之寶已盡,不意復見褚生。」陸曰:「公未覩不鳴不躍者耳!」
장화가 저도를 보고 육평원에게 말하였다. "그대 형제는 용이 구름 나루에 뛰고 고언선은 봉이 아침 볕에 우니, 동남의 보배가 이미 다한 줄 알았는데 뜻하지 않게 다시 저생을 보았소."
육기가 말하였다. "공께서 울지도 뛰지도 않는 이를 보지 못하셨을 뿐입니다."
협주 1
褚氏家傳曰:「陶字季雅,吳郡錢塘人,褚先生後也。陶聰惠絕倫,年三十,作鷗鳥、水磑二賦。宛陵嚴仲弼見而奇之曰:『褚先生復出矣!』弱不好弄,清談閑默,以墳、典自娛。語所親曰:『聖賢備在黃卷中,舍此何求?』州郡辟不就。吳歸命世祖,補臺郎、建忠校尉。司空張華與陶書曰:『二陸龍躍於江、漢,彥先鳳鳴於朝陽,自此以來,常恐南金已盡,而復得之於吾子!故知延州之德不孤,淵、岱之寶不匱。』仕至中尉。」
『저씨가전』에 이르기를 「저도는 자가 계아요 오군 전당 사람이니 저선생의 뒤다. 저도는 총명하고 슬기로움이 무리에 뛰어나 나이 서른에 「구조부」와 「수애부」를 지었다. 완릉의 엄중필이 보고 기이하게 여겨 『저선생이 다시 나왔다』 하였다. 어려서 놀이를 좋아하지 않고 맑은 이야기와 한가한 잠잠함으로 옛 책을 스스로 즐겼다. 가까운 이에게 이르기를 『성인과 어진 이가 누런 책 가운데 다 갖추어져 있으니 이를 두고 무엇을 구하겠는가』 하였다. 주와 고을에서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오나라가 세조에게 목숨을 돌리자 대랑과 건충교위에 채워졌다. 사공 장화가 저도에게 글을 보내 이르기를 『두 육씨는 강수와 한수에 용처럼 뛰고 언선은 아침 볕에 봉처럼 우니, 이로부터 이래로 늘 남녘 금이 이미 다하였을까 두려웠는데 다시 그대에게서 얻었소. 그러므로 연릉의 덕이 외롭지 않고 못과 대산의 보배가 마르지 않음을 알겠소』 하였다. 벼슬이 중위에 이르렀다」 하였다.
20오나라의 옛 성씨는 어떠하오
有問秀才:「吳舊姓何如?」答曰:「吳府君聖王之老成,明時之雋乂。朱永長理物之至德,清選之高望。嚴仲弼九皋之鳴鶴,空谷之白駒。顧彥先八音之琴瑟,五色之龍章。張威伯歲寒之茂松,幽夜之逸光。陸士衡、士龍鴻鵠之裴回,懸鼓之待槌。凡此諸君:以洪筆為鉏耒,以紙札為良田。以玄默為稼穡,以義理為豐年。以談論為英華,以忠恕為珍寶。著文章為錦繡,蘊五經為繒帛。坐謙虛為席薦,張義讓為帷幙。行仁義為室宇,修道德為廣宅。」
어떤 이가 수재에게 물었다. "오나라의 옛 성씨는 어떠하오."
대답하였다. "오부군은 거룩한 임금의 노성함이요 밝은 때의 뛰어난 이며, 주영장은 사물을 다스리는 지극한 덕이요 맑게 가려진 높은 바람이며, 엄중필은 아홉 굽이 못에서 우는 학이요 빈 골짜기의 흰 망아지며, 고언선은 여덟 소리의 거문고와 비파요 다섯 빛깔의 용무늬며, 장위백은 추위를 견디는 무성한 소나무요 그윽한 밤의 뛰어난 빛이며, 육사형과 사룡은 큰기러기와 고니가 서성이는 것이요 걸린 북이 채를 기다리는 것이오.
무릇 이 여러분은 큰 붓으로 호미와 쟁기를 삼고 종이와 쪽지로 좋은 밭을 삼으며, 아득한 잠잠함으로 심고 거둠을 삼고 옳음과 결로 풍년을 삼으며, 이야기와 논함으로 꽃부리를 삼고 참됨과 용서로 보배를 삼으며, 글월 지음으로 비단을 삼고 오경 쌓음으로 명주를 삼으며, 겸손하고 비움에 앉아 자리를 삼고 옳음과 사양을 펴 장막을 삼으며, 어짊과 옳음을 행하여 집을 삼고 도와 덕을 닦아 넓은 집을 삼소."
협주 2
秀才,蔡洪也。集載洪與刺史周俊書曰:「一日侍坐,言及吳士,詢于芻蕘,遂見下問。造次承顏,載辭不舉,敕令條列名狀,退輒思之。今稱疏所知:吳展字士季,下邳人。忠足矯非,清足厲俗,信可結神,才堪榦世。仕吳為廣州刺史、吳郡太守。吳平,還下邳,閉門自守,不交賓客。誠聖王之老成,明時之俊乂也。朱誕字永長,吳郡人。體履清和,黃中通理。吳朝舉賢良,累遷議郎,今歸在家。誠理物之至德,清選之高望也。嚴隱字仲弼,吳郡人。稟氣清純,思度淵偉。吳朝舉賢良,宛陵令。吳平,去職。九皋之鳴鶴,空谷之白駒也。張暢字威伯,吳郡人。稟性堅明,志行清朗,居磨涅之中,無淄磷之損。歲寒之松柏,幽夜之逸光也。」陸雲別傳曰:「雲字士龍,吳大司馬抗之第五子,機同母之弟也。儒雅有俊才,容貌瑰偉,口敏能談,博聞彊記。善著述,六歲便能賦詩,時人以為項託、揚烏之儔也。年十八,刺史周俊命為主簿。俊常歎曰:『陸士龍當今之顏淵也!』累遷太子舍人、清河內史。為成都王所害。」
수재는 채홍이다. 문집에 채홍이 자사 주준에게 보낸 글이 실려 있으니 이르기를 「하루 곁에서 모실 때 말이 오 땅 선비에 미쳐 꼴 베고 나무하는 이에게 물으시매 마침내 아랫사람에게 물으심을 받았습니다. 갑작스레 낯을 받들어 말을 실어 들지 못하였는데, 이름과 형상을 조목조목 벌이라 명하시므로 물러나 문득 이를 생각하였습니다. 이제 아는 바를 성글게 일컫습니다. 오전은 자가 사계요 하비 사람입니다. 참됨은 그름을 바로잡기에 넉넉하고 맑음은 풍속을 갈기에 넉넉하며, 미쁨은 신을 맺을 만하고 재주는 세상을 다스릴 만합니다. 오나라에서 벼슬하여 광주자사와 오군태수가 되었습니다. 오나라가 평정되자 하비로 돌아가 문을 닫고 스스로 지키며 손과 사귀지 않습니다. 참으로 거룩한 임금의 노성함이요 밝은 때의 뛰어난 이입니다. 주탄은 자가 영장이요 오군 사람입니다. 몸가짐이 맑고 화하며 누런 가운데 결이 통합니다. 오나라 조정에서 어질고 좋은 이로 천거되어 여러 벼슬을 거쳐 의랑에 이르렀고 이제 돌아가 집에 있습니다. 참으로 사물을 다스리는 지극한 덕이요 맑게 가려진 높은 바람입니다. 엄은은 자가 중필이요 오군 사람입니다. 받은 기운이 맑고 순수하며 생각의 도량이 깊고 훌륭합니다. 오나라 조정에서 어질고 좋은 이로 천거되어 완릉령이 되었고 오나라가 평정되자 벼슬을 떠났습니다. 아홉 굽이 못에서 우는 학이요 빈 골짜기의 흰 망아지입니다. 장창은 자가 위백이요 오군 사람입니다. 받은 성품이 굳고 밝으며 뜻과 행실이 맑고 환하여, 갈고 물들이는 가운데 있어도 검어지고 얇아지는 덜림이 없습니다. 추위를 견디는 소나무와 잣나무요 그윽한 밤의 뛰어난 빛입니다」 하였다. 『육운별전』에 이르기를 「육운은 자가 사룡이요 오나라 대사마 육항의 다섯째 아들이니 육기와 어머니가 같은 아우다. 유아하고 뛰어난 재주가 있으며 모습이 크고 훌륭하고 입이 재빨라 말할 수 있었으며 널리 듣고 굳게 기억하였다. 글 짓기를 잘하여 여섯 살에 곧 시를 지을 수 있으니 그때 사람들이 항탁과 양오의 무리라 하였다. 나이 열여덟에 자사 주준이 명하여 주부로 삼았다. 주준이 늘 탄식하기를 『육사룡은 오늘의 안회다』 하였다. 여러 벼슬을 거쳐 태자사인과 청하내사에 이르렀다. 성도왕에게 해를 입었다」 하였다.
按蔡所論士十六人,無陸機兄弟,又無「凡此諸君」以下,疑益之。
살피건대 채홍이 논한 선비 열여섯 사람에 육기 형제가 없고 또 「무릇 이 여러분」 이하가 없으니 더한 것이 아닌가 한다.
21『노자』와 『장자』를 읽지 않고도 그 뜻과 맞았다
人問王夷甫:「山巨源義理何如?是誰輩?」王曰:「此人初不肯以談自居,然不讀老、莊,時聞其詠,往往與其旨合。」
어떤 이가 왕이보에게 물었다. "산거원의 옳음과 결은 어떠하며 누구의 무리요."
왕이보가 말하였다. "이 사람은 처음부터 이야기로 스스로를 자처하려 하지 않았소. 그러나 『노자』와 『장자』를 읽지 않고도 때로 그 읊는 것을 들으면 이따금 그 뜻과 맞았소."
협주 1
顧愷之畫贊曰:「濤有而不恃,皆此類也。」
고개지의 『화찬』에 이르기를 「산도는 있으면서도 믿지 않았으니 다 이런 것들이다」 하였다.
22낙양의 우아한 세 가와 쟁쟁한 풍혜경
洛中雅雅有三嘏:劉粹字純嘏,宏字終嘏,漠字沖嘏,是親兄弟。王安豐甥,並是王安豐女壻。宏,真長祖也。洛中錚錚馮惠卿,名蓀,是播子。蓀與邢喬俱司徒李胤外孫,及胤子順並知名。時稱:「馮才清,李才明,純粹邢。」
낙양 가운데 우아하고 우아한 세 가가 있었으니, 유수는 자가 순가요 유굉은 종가요 유막은 충가로 친형제였다.
왕안풍의 생질이요 아울러 왕안풍의 사위였다. 유굉은 진장의 할아버지다.
낙양 가운데 쟁쟁한 이로 풍혜경이 있었으니 이름은 손이요 풍파의 아들이다. 풍손과 형교가 함께 사도 이윤의 외손이요, 이윤의 아들 이순과 더불어 아울러 이름이 알려졌다.
그때 일컫기를 「풍씨는 재주가 맑고 이씨는 재주가 밝으며 순수한 이는 형씨다」 하였다.
협주 3
晉諸公贊曰:「粹,沛國人。歷侍中、南中郎將。宏,歷秘書監、光祿大夫。」晉後略曰:「漠少以清識為名,與王夷甫友善,並好以人倫為意,故世人許以才智之名。自相國右長史出為襄州刺史。以貴簡稱。」按劉氏譜:劉邠妻,武周女,生粹、宏、漠。非王氏甥。
『진제공찬』에 이르기를 「유수는 패국 사람이다. 시중과 남중랑장을 지냈다. 유굉은 비서감과 광록대부를 지냈다」 하였다. 『진후략』에 이르기를 「유막은 젊어서 맑은 식견으로 이름나 왕이보와 사이가 좋았고, 아울러 사람 갈피를 뜻으로 삼기를 좋아하였으므로 세상 사람들이 재주와 슬기의 이름을 허락하였다. 상국우장사에서 양주자사로 나갔다. 귀하고 간결함으로 일컬어졌다」 하였다. 살피건대 『유씨보』에 유빈의 아내는 무주의 딸로 유수와 유굉과 유막을 낳았다 하니 왕씨의 생질이 아니다.
晉後略曰:「播字友聲,長樂人。位至大宗正,生蓀。」八王故事曰:「蓀少以才悟,識當世之宜。蚤歷清職,仕至侍中。為長沙王所害。」
『진후략』에 이르기를 「풍파는 자가 우성이요 장락 사람이다. 자리가 대종정에 이르렀고 풍손을 낳았다」 하였다. 『팔왕고사』에 이르기를 「풍손은 젊어서 재주와 깨침으로 당세의 마땅함을 알았다. 일찍이 맑은 벼슬을 지내 벼슬이 시중에 이르렀다. 장사왕에게 해를 입었다」 하였다.
晉諸公贊曰:「喬字曾伯,河間人。有才學,仕至司隸校尉。順字曼長,仕至太僕卿。」
『진제공찬』에 이르기를 「형교는 자가 증백이요 하간 사람이다. 재주와 배움이 있어 벼슬이 사예교위에 이르렀다. 이순은 자가 만장이요 벼슬이 태복경에 이르렀다」 하였다.
23이 사람은 사람의 물거울이니 보면 구름 안개를 헤치고 푸른 하늘을 보는 듯하다
衛伯玉為尚書令,見樂廣與中朝名士談議,奇之曰:「自昔諸人沒已來,常恐微言將絕。今乃復聞斯言於君矣!」命子弟造之曰:「此人,人之水鏡也,見之若披雲霧覩青天。」
위백옥이 상서령이 되어 악광이 중원의 이름난 선비들과 이야기하고 따지는 것을 보고 기이하게 여겨 말하였다. "옛날 여러 사람이 죽은 뒤로 늘 은미한 말이 장차 끊어질까 두려웠는데, 이제 이에 다시 이런 말을 그대에게서 듣는구려."
자제에게 그를 찾아가라 명하며 말하였다. "이 사람은 사람의 물거울이니, 보면 구름 안개를 헤치고 푸른 하늘을 보는 듯하다."
협주 1
晉陽秋曰:「尚書令衛瓘見廣曰:『昔何平叔諸人沒,常謂清言盡矣,今復聞之於君!』」王隱晉書曰:「衛瓘有名理,及與何晏、鄧颺等數共談講,見廣奇之曰:『每見此人,則瑩然猶廓雲霧而睹青天。』」
『진양추』에 이르기를 「상서령 위관이 악광을 보고 『옛날 하평숙 등 여러 사람이 죽자 늘 맑은 말이 다하였다 여겼는데, 이제 다시 그대에게서 듣는구려』 하였다」 하였다. 왕은의 『진서』에 이르기를 「위관이 이름과 결이 있어 하안과 등양 들과 자주 함께 이야기하고 강하였는데, 악광을 보고 기이하게 여겨 『이 사람을 볼 때마다 밝기가 구름 안개를 걷고 푸른 하늘을 보는 듯하다』 하였다」 하였다.
24죽은 이를 일으킬 수 있다면 마땅히 그와 함께 돌아가겠다
王太尉曰:「見裴令公精明朗然,籠蓋人上,非凡識也。若死而可作,當與之同歸。」或云王戎語。
왕태위가 말하였다. "배영공을 보니 곱고 밝고 환하여 사람 위를 덮으니 여느 식견이 아니다. 죽은 이를 일으킬 수 있다면 마땅히 그와 함께 돌아가겠다."
어떤 이는 왕융의 말이라 한다.
협주 1
禮記曰:「趙文子與叔譽觀于九原,文子曰:『死者如可作也,吾誰與歸?』」鄭玄曰:「作,起也。」
『예기』에 이르기를 「조문자가 숙예와 구원을 보고 문자가 『죽은 이를 일으킬 수 있다면 나는 누구와 함께 돌아가겠는가』 하였다」 하였다. 정현이 이르기를 「작은 일으킴이다」 하였다.
25악령과 말하면 내 말이 번거로움을 느끼지 않은 적이 없다
王夷甫自嘆:「我與樂令談,未嘗不覺我言為煩。」
왕이보가 스스로 탄식하였다. "내가 악령과 이야기하면 내 말이 번거로움을 느끼지 않은 적이 없다."
협주 1
晉陽秋曰:「樂廣善以約言厭人心,其所不知,默如也。太尉王夷甫、光祿大夫裴叔則能清言,常曰:『與樂君言,覺其簡至,吾等皆煩。』」
『진양추』에 이르기를 「악광이 간략한 말로 사람의 마음을 채우기를 잘하였고 그 알지 못하는 바에는 잠잠하였다. 태위 왕이보와 광록대부 배숙칙이 맑은 말을 할 수 있었는데 늘 이르기를 『악군과 말하면 그 간결하고 지극함을 느끼니 우리는 다 번거롭다』 하였다」 하였다.
26곽자현이 어찌 반드시 유자숭만 못하겠는가
郭子玄有雋才,能言老、莊。庾敳嘗稱之,每曰:「郭子玄何必減庾子嵩!」
곽자현이 뛰어난 재주가 있어 『노자』와 『장자』를 말할 수 있었다.
유애가 일찍이 그를 일컬어 늘 말하였다. "곽자현이 어찌 반드시 유자숭만 못하겠는가."
협주 1
名士傳曰:「郭象字子玄,自黃門郎為太傅主簿,任事用勢,傾動一府。敳謂象曰:『卿自是當世大才,我疇昔之意,都已盡矣!』其伏理推心,皆此類也。」
『명사전』에 이르기를 「곽상은 자가 자현이요 황문랑에서 태부주부가 되어 일을 맡고 세력을 부려 한 관부를 기울여 움직였다. 유애가 곽상에게 이르기를 『경은 절로 당세의 큰 재주니 내 지난날의 뜻이 다 이미 다하였다』 하였다. 그가 결에 엎드리고 마음을 미룸이 다 이런 것들이었다」 하였다.
27참으로 경의 시원하고 화목함만 못하다
王平子目太尉:「阿兄形似道,而神鋒太雋。」太尉答曰:「誠不如卿落落穆穆。」
왕평자가 태위를 두고 말하였다. "형님은 모습이 도 같으나 정신의 칼끝이 너무 뛰어나다."
태위가 대답하였다. "참으로 경의 시원하고 화목함만 못하다."
협주 1
王隱晉書曰:「澄通朗好人倫,情無所繫。」
왕은의 『진서』에 이르기를 「왕징은 통하고 환하며 사람 갈피를 좋아하고 정에 매인 바가 없었다」 하였다.
28태부의 관부에 세 가지 재주가 있다
太傅府有三才:劉慶孫長才,潘陽仲大才,裴景聲清才。
태부의 관부에 세 가지 재주가 있었으니, 유경손은 긴 재주요 반양중은 큰 재주요 배경성은 맑은 재주였다.
협주 2
晉陽秋曰:「太傅將召劉輿,或曰:『輿猶膩也,近將汙人。』太傅疑而禦之。輿乃密視天下兵簿諸屯戎及倉庫處所,人穀多少,牛馬器械,水陸地形,皆默識之。是時軍國多事,每會議事,自潘滔以下皆不知所對。輿便屈指籌計,所發兵仗處所,糧廩運轉,事無凝滯。於是太傅遂委仗之。」
『진양추』에 이르기를 「태부가 장차 유여를 부르려 하니 어떤 이가 『유여는 기름 같아 가까이하면 장차 사람을 더럽힙니다』 하였다. 태부가 의심하여 막았다. 유여가 이에 몰래 천하의 군사 장부와 여러 진과 창고 있는 데와 사람과 곡식의 많고 적음과 소와 말과 기계와 물과 뭍의 지형을 살펴 다 잠잠히 익혔다. 이때 군사와 나랏일이 많아 일을 모여 의논할 때마다 반도 아래로는 다 대답할 바를 알지 못하였다. 유여가 곧 손가락을 꼽아 셈하니 군사와 무기를 낼 데와 양식 나르고 옮김에 일이 막힘이 없었다. 이에 태부가 마침내 그에게 맡기고 의지하였다」 하였다.
八王故事曰:「劉輿才長綜覈,潘滔以博學為名,裴邈彊力方正,皆為東海王所暱,俱顯一府。故時人稱曰:輿長才,滔大才,邈清才也。」
『팔왕고사』에 이르기를 「유여는 재주가 아울러 헤아리는 데 길고 반도는 널리 배움으로 이름났으며 배막은 힘이 굳세고 모나고 발라, 다 동해왕에게 가까이 여겨져 함께 한 관부에 드러났다. 그러므로 그때 사람들이 일컫기를 유여는 긴 재주요 반도는 큰 재주요 배막은 맑은 재주라 하였다」 하였다.
29숲 아래 여러 어진 이에게 저마다 뛰어난 아들이 있다
林下諸賢,各有雋才子。籍子渾,器量弘曠。康子紹,清遠雅正。濤子簡,疏通高素。咸子瞻,虛夷有遠志。瞻弟孚,爽朗多所遺。秀子純、悌,並令淑有清流。戎子萬子,有大成之風,苗而不秀。唯伶子無聞。凡此諸子,唯瞻為冠,紹、簡亦見重當世。
숲 아래 여러 어진 이에게 저마다 뛰어난 아들이 있었다.
완적의 아들 완혼은 그릇과 도량이 넓고 트였고, 혜강의 아들 혜소는 맑고 멀며 우아하고 발랐고, 산도의 아들 산간은 성글게 통하고 높고 수수하였고, 완함의 아들 완첨은 비고 평온하며 먼 뜻이 있었고, 완첨의 아우 완부는 시원하고 환하며 놓아 버린 바가 많았고, 상수의 아들 상순과 상제는 아울러 좋고 맑아 맑은 흐름이 있었고, 왕융의 아들 만자는 크게 이룰 풍모가 있었으나 싹만 나고 이삭이 패지 못하였다. 오직 유령의 아들만이 들림이 없었다.
무릇 이 여러 아들 가운데 오직 완첨이 으뜸이었고 혜소와 산간도 또한 당세에 무겁게 여겨졌다.
협주 6
世語曰:「渾字長成,清虛寡欲,位至太子中庶子。」
『세어』에 이르기를 「완혼은 자가 장성이요 맑고 비어 바라는 것이 적었으며 자리가 태자중서자에 이르렀다」 하였다.
已見。
이미 보인다.
虞預晉書曰:「簡字季倫,平雅有父風。與嵇紹、劉漠等齊名。遷尚書,出為征南將軍。」
우예의 『진서』에 이르기를 「산간은 자가 계륜이요 고르고 우아하여 아버지의 풍모가 있었다. 혜소와 유막 들과 이름을 나란히 하였다. 상서로 옮기고 정남장군으로 나갔다」 하였다.
名士傳曰:「瞻字千里,夷任而少嗜欲,不修名行,自得於懷。讀書不甚研求,而識其要。仕至太子舍人。年三十卒。」中興書曰:「孚風韻踈誕,少有門風。初為安東參軍,蓬髮飲酒,不以王務嬰心。」
『명사전』에 이르기를 「완첨은 자가 천리요 평온히 맡기고 바라는 것이 적었으며 이름과 행실을 닦지 않고 가슴에 스스로 얻었다. 글 읽기를 그리 갈고 구하지 않으면서도 그 요긴함을 알았다. 벼슬이 태자사인에 이르렀고 서른에 죽었다」 하였다. 『중흥서』에 이르기를 「완부는 풍모와 운치가 성글고 방자하였으나 젊어서 집안의 풍모가 있었다. 처음에 안동참군이 되어 머리를 헝클고 술을 마시며 왕의 일에 마음을 매지 않았다」 하였다.
竹林七賢論曰:「純字長悌,位至侍中。悌字叔遜,位至御史中丞。」晉諸公贊曰:「洛陽敗,純、悌出奔,為賊所害。」
『죽림칠현론』에 이르기를 「상순은 자가 장제요 자리가 시중에 이르렀다. 상제는 자가 숙손이요 자리가 어사중승에 이르렀다」 하였다. 『진제공찬』에 이르기를 「낙양이 무너지자 상순과 상제가 달아나다 도적에게 해를 입었다」 하였다.
晉諸公贊曰:「王綏字萬子,辟太尉掾,不就。年十九卒。」晉書曰:「戎子萬,有美號而太肥,戎令食糠,而肥愈甚也。」
『진제공찬』에 이르기를 「왕수는 자가 만자요 태위의 아전으로 불렸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나이 열아홉에 죽었다」 하였다. 『진서』에 이르기를 「왕융의 아들 왕만이 아름다운 이름이 있었으나 너무 살쪄, 왕융이 겨를 먹게 하였으나 살찜이 더욱 심하였다」 하였다.
30성 서쪽의 공부
庾子躬有廢疾,甚知名。家在城西,號曰城西公府。
유자궁에게 앓는 병이 있었으나 몹시 이름이 알려졌다. 집이 성 서쪽에 있어 성 서쪽의 공부라 불렸다.
협주 1
虞預晉書曰:「琮字子躬,潁川人,太常峻第二子,仕至太尉掾。」
우예의 『진서』에 이르기를 「유종은 자가 자궁이요 영천 사람이니 태상 유준의 둘째 아들이요 벼슬이 태위연에 이르렀다」 하였다.
31이름난 선비가 많지 않으니 짐짓 평자에게 알아보게 해야 하오
王夷甫語樂令:「名士無多人,故當容平子知。」
왕이보가 악령에게 말하였다. "이름난 선비가 많은 사람이 아니니, 짐짓 평자에게 알아보게 해야 하오."
협주 1
王澄別傳曰:「澄風韻邁達,志氣不群。從兄戎、兄夷甫,名冠當年。四海人士,一為澄所題目,則二兄不復措意,云『已經平子』,其見重如此。是以名聞益盛,天下知與不知,莫不傾注。澄後事跡不逮,朝野失望。及舊遊識見者,猶曰:『當今名士也。』」
『왕징별전』에 이르기를 「왕징은 풍모와 운치가 나아가 통달하고 뜻과 기운이 무리와 달랐다. 사촌형 왕융과 형 이보가 이름이 당년에 으뜸이었다. 사해의 인사가 한 번 왕징에게 제목 붙여지면 곧 두 형이 다시 뜻을 두지 않고 『이미 평자를 거쳤다』 하였으니, 그 무겁게 여겨짐이 이와 같았다. 이 때문에 이름과 들림이 더욱 성하여 천하가 알든 알지 못하든 마음을 기울이지 않는 이가 없었다. 왕징이 뒤에 자취가 미치지 못하매 조정과 들이 바람을 잃었다. 옛 사귐과 아는 이들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이제의 이름난 선비다』 하였다」 하였다.
32곽자현의 말과 따짐은 매달린 강물을 쏟는 듯하여 부어도 다하지 않는다
王太尉云:「郭子玄語議如懸河寫水,注而不竭。」
왕태위가 말하였다. "곽자현의 말과 따짐은 매달린 강물을 쏟는 듯하여 부어도 다하지 않는다."
협주 1
名士傳曰:「子玄有俊才,能言莊、老。」
『명사전』에 이르기를 「자현은 뛰어난 재주가 있어 『장자』와 『노자』를 말할 수 있었다」 하였다.
33유자숭이 그 가운데 있으매 늘 절로 정신이 왕성하였다
司馬太傅府多名士,一時雋異。庾文康云:「見子嵩在其中,常自神王。」
사마태부의 관부에 이름난 선비가 많아 한때에 뛰어나고 남달랐다.
유문강이 말하였다. "자숭이 그 가운데 있는 것을 보면 늘 절로 정신이 왕성하였다."
협주 1
晉陽秋曰:「敳為太傅從事中郎。」
『진양추』에 이르기를 「유애가 태부종사중랑이 되었다」 하였다.
34왕참군은 사람 갈피의 본이니 너는 그를 스승 삼아라
太傅東海王鎮許昌,以王安期為記室參軍,雅相知重。敕世子毗曰:「夫學之所益者淺,體之所安者深。閑習禮度,不如式瞻儀形。諷味遺言,不如親承音旨。王參軍人倫之表,汝其師之!」或曰:「王、趙、鄧三參軍,人倫之表,汝其師之!」謂安期、鄧伯道、趙穆也。袁宏作名士傳直云王參軍。或云,趙家先猶有此本。
태부 동해왕이 허창을 지키며 왕안기를 기실참군으로 삼고 우아하게 서로 알아주고 무겁게 여겼다.
세자 사마비에게 명하였다. "무릇 배움으로 더해지는 것은 얕고 몸으로 편안해지는 것은 깊다. 예의 법도를 한가로이 익히는 것이 몸가짐과 모습을 본떠 보는 것만 못하고, 남긴 말을 외고 맛보는 것이 몸소 소리와 뜻을 받는 것만 못하다. 왕참군은 사람 갈피의 본이니 너는 그를 스승 삼아라."
어떤 이는 말하였다. "왕씨와 조씨와 등씨 세 참군은 사람 갈피의 본이니 너는 그들을 스승 삼아라."
안기와 등백도와 조목을 이른다. 원굉이 지은 『명사전』에는 다만 왕참군이라 하였다. 어떤 이는 조씨 집안에 먼저 오히려 이 본이 있었다 한다.
협주 1
趙吳郡行狀曰:「穆字季子,汲郡人。貞淑平粹,才識清通。歷尚書郎、太傅參軍。後太傅越與穆及王承、阮瞻、鄧攸書曰:『禮:八歲出就外傅,十年曰幼學,明可以漸先王之教也。然學之所受者淺,體之所安者深。是以閑習禮度,不如式瞻軌儀。諷味遺言,不如親承辭旨。小兒毗既無令淑之資,未聞道德之風,欲屈諸君,時以閑豫,周旋燕誨也。』穆歷晉明帝師、冠軍將軍、吳郡太守。封南鄉侯。」
「조오군행장」에 이르기를 「조목은 자가 계자요 급군 사람이다. 곧고 맑고 고르고 순수하며 재주와 식견이 맑고 통하였다. 상서랑과 태부참군을 지냈다. 뒤에 태부 사마월이 조목과 왕승과 완첨과 등유에게 글을 보내 이르기를 『예에 여덟 살에 나가 바깥 스승에게 나아가고 열 살을 유학이라 하니, 앞선 임금의 가르침에 젖어들 수 있음이 밝소. 그러나 배움으로 받는 것은 얕고 몸으로 편안해지는 것은 깊소. 이 때문에 예의 법도를 한가로이 익히는 것이 몸가짐과 거동을 본떠 보는 것만 못하고, 남긴 말을 외고 맛보는 것이 몸소 말의 뜻을 받는 것만 못하오. 어린 사마비가 이미 좋고 맑은 자질이 없고 아직 도와 덕의 풍모를 듣지 못하였으니, 여러분을 굽혀 때로 한가하고 넉넉할 때 두루 다니며 잔치하고 가르쳐 주기를 바라오』 하였다. 조목은 진나라 명제의 스승과 관군장군과 오군태수를 지냈고 남향후에 봉해졌다」 하였다.
35그 처마 아래에 붙으면 사람으로 하여금 춥고 더움을 잊게 한다
庾太尉少為王眉子所知。庾過江,嘆王曰:「庇其宇下,使人忘寒暑。」
유태위가 젊어서 왕미자에게 알려졌다.
유태위가 강을 건너와 왕미자를 탄식하였다. "그 처마 아래에 붙으면 사람으로 하여금 춥고 더움을 잊게 한다."
협주 1
晉諸公贊曰:「玄少希慕簡曠。」八王故事曰:「玄為陳留太守。或勸玄過江投琅邪王,玄曰:『王處仲得志於彼,家叔猶不免害,豈能容我?』謂其器宇不容於敦也。」
『진제공찬』에 이르기를 「왕현은 젊어서 간결하고 트임을 바라 그리워하였다」 하였다. 『팔왕고사』에 이르기를 「왕현이 진류태수가 되었다. 어떤 이가 왕현에게 강을 건너 낭야왕에게 가기를 권하니, 왕현이 『왕처중이 저기서 뜻을 얻어 집안 작은아버지도 오히려 해를 벗어나지 못하는데 어찌 나를 담겠는가』 하였다」 하였다. 그 그릇과 도량이 왕돈에게 담기지 못함을 이른 것이다.
36왕미자는 맑고 통하며 간결하고 시원하다
謝幼輿曰:「友人王眉子清通簡暢,嵇延祖弘雅劭長,董仲道卓犖有致度。」
사유여가 말하였다. "벗 왕미자는 맑고 통하며 간결하고 시원하고, 혜연조는 넓고 우아하며 좋고 자라며, 동중도는 우뚝하여 이룬 도량이 있다."
협주 1
王隱晉書曰:「董養字仲道,太始初,到洛下,干祿求榮。永嘉中,洛城東北角步廣里中地陷,中有二鵝,蒼者飛去,白者不能飛。問之博識者,不能知。養聞,歎曰:『昔周時所盟會狄泉,此地也。卒有二鵝,蒼者胡象,後明當入洛,白者不能飛,此國諱也。』」謝鯤元化論序曰:「陳留董仲道於元康中見惠帝廢楊悼后,升太學堂歎曰:『建此堂也,將何為乎?每見國家赦書,謀反逆皆赦,孫殺王父母,子殺父母不赦,以為王法所不容也。奈何公卿處議,文飾禮典以至此乎?天人之理既滅,大亂斯起。』顧謂謝鯤、阮孚曰:『易稱:知幾其神乎!君等可深藏矣!』乃與妻荷擔入蜀,莫知其所終。」
왕은의 『진서』에 이르기를 「동양은 자가 중도요 태시 처음에 낙양 아래에 이르러 녹을 구하고 영화를 구하였다. 영가 연간에 낙양성 동북 모퉁이 보광리 가운데 땅이 꺼져 그 안에 거위 두 마리가 있었는데, 푸른 것은 날아가고 흰 것은 날지 못하였다. 널리 아는 이에게 물었으나 알지 못하였다. 동양이 듣고 탄식하기를 『옛날 주나라 때 적천에서 맹세하여 모인 데가 이곳이다. 마침내 거위 두 마리가 있어 푸른 것은 오랑캐의 모습이니 뒤에 밝게 마땅히 낙양에 들 것이요, 흰 것이 날지 못함은 이는 나라의 꺼릴 일이다』 하였다」 하였다. 사곤의 「원화론」 서에 이르기를 「진류의 동중도가 원강 연간에 혜제가 양도후를 폐하는 것을 보고, 태학당에 올라 탄식하기를 『이 당을 세운 것이 장차 무엇을 하려 함인가. 나라의 사면하는 글을 볼 때마다 모반하고 거스른 이는 다 사면하는데 손자가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죽이고 아들이 부모를 죽인 것은 사면하지 않으니, 왕의 법이 담지 못하는 바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공경이 의논을 처리하며 예의 법전을 꾸며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하늘과 사람의 결이 이미 없어졌으니 큰 어지러움이 이에 일어나리라』 하고, 사곤과 완부를 돌아보며 이르기를 『「역」에 「낌새를 앎이 신묘하다」 하였으니 그대들은 깊이 감출 만하다』 하였다. 이에 아내와 함께 짐을 지고 촉에 들어가니 그 마친 데를 아는 이가 없다」 하였다.
37우뚝하게 맑게 솟아 천 길 벼랑처럼 섰다
王公目太尉:「巖巖清峙,壁立千仞。」
왕공이 태위를 두고 말하였다. "우뚝하게 맑게 솟아 천 길 벼랑처럼 섰다."
협주 1
顧愷之夷甫畫贊曰:「夷甫天形瑰特,識者以為巖巖秀峙,壁立千仞。」
고개지의 「이보화찬」에 이르기를 「이보는 하늘이 준 모습이 기이하고 남달라 아는 이들이 우뚝하게 빼어나 솟아 천 길 벼랑처럼 섰다 하였다」 하였다.
38유공이 오히려 유씨와 배씨의 뛰어난 재주를 기억하다
庾太尉在洛下,問訊中郎。中郎留之云:「諸人當來。」尋溫元甫、劉王喬、裴叔則俱至,酬酢終日。庾公猶憶劉、裴之才雋,元甫之清中。
유태위가 낙양에 있을 때 중랑에게 문안하였다.
중랑이 그를 붙들며 말하였다. "여러 사람이 마땅히 오리라."
이윽고 온원보와 유왕교와 배숙칙이 함께 이르러 온종일 술을 주고받았다.
유공이 오히려 유씨와 배씨의 뛰어난 재주와 원보의 맑고 알맞음을 기억하였다.
협주 4
庾敳。
유애다.
晉諸公贊曰:「溫幾字元甫,太原人。才性清婉。歷司徒右長史、湘州刺史,卒官。」
『진제공찬』에 이르기를 「온기는 자가 원보요 태원 사람이다. 재주와 성품이 맑고 곱다. 사도우장사와 상주자사를 지내다 벼슬자리에서 죽었다」 하였다.
曹嘉之晉紀曰:「劉疇字王喬,彭城人。父訥,司隸校尉。疇善談名理。曾避亂塢壁,有胡數百欲害之。疇無懼色,援笳而吹之,為出塞入塞之聲,以動其遊客之思。於是群胡皆泣而去之。位至司徒左長史。」
조가지의 『진기』에 이르기를 「유주는 자가 왕교요 팽성 사람이다. 아버지 유눌은 사예교위다. 유주는 이름과 결을 잘 말하였다. 일찍이 성벽으로 난을 피하였는데 오랑캐 수백이 그를 해치려 하였다. 유주가 두려운 낯빛 없이 갈잎피리를 잡아 불며 변방을 나가고 드는 소리를 내어 그 나그네의 그리움을 움직였다. 이에 뭇 오랑캐가 다 울며 떠났다. 자리가 사도좌장사에 이르렀다」 하였다.
中,一作平。
중은 한 본에 평으로 되어 있다.
39육사룡은 부드럽고 여려 사랑스러웠고 육사형은 목소리가 종소리 같았다
蔡司徒在洛,見陸機兄弟住參佐廨中,三間瓦屋,士龍住東頭,士衡住西頭。士龍為人,文弱可愛。士衡長七尺餘,聲作鍾聲,言多忼慨。
채사도가 낙양에 있을 때 육기 형제가 참좌의 관사 안에 사는 것을 보았는데, 세 칸 기와집에 사룡은 동쪽 끝에 살고 사형은 서쪽 끝에 살았다.
사룡은 사람됨이 부드럽고 여려 사랑스러웠다. 사형은 키가 일곱 자 남짓이요 목소리가 종소리 같으며 말에 북받침이 많았다.
협주 1
文士傳曰:「雲性弘靜,怡怡然為士友所宗。機清厲有風格,為鄉黨所憚。」
『문사전』에 이르기를 「육운은 성품이 넓고 고요하여 화락하게 선비 벗의 마루가 되었다. 육기는 맑고 매서우며 풍모와 격이 있어 시골에서 꺼렸다」 하였다.
40결에 드는 것이 깊으니 나보다 윗사람이다
王長史是庾子躬外孫,丞相目子躬云:「入理泓然,我已上人。」
왕장사는 유자궁의 외손이다.
승상이 자궁을 두고 말하였다. "결에 드는 것이 깊으니 나보다 윗사람이다."
협주 2
王氏譜曰:「濛父訥,娶潁州庾琮之女,字三壽也。」
『왕씨보』에 이르기를 「왕몽의 아버지 왕눌이 영천 유종의 딸을 맞았으니 자는 삼수다」 하였다.
子躬,子嵩兄也。
자궁은 자숭의 형이다.
41집안 사촌 가운데 이야기 잘하는 이
庾太尉目庾中郎:家從談談之許。
유태위가 유중랑을 두고 말하였다. 집안 사촌 가운데 이야기 잘하는 이라고.
협주 1
名士傳曰:「敳不為辨析之談,而舉其旨要。太尉王夷甫雅重之也」。一作「家從談之祖。」從,一作誦。許,一作辭。
『명사전』에 이르기를 「유애는 가려 쪼개는 이야기를 하지 않고 그 뜻의 요긴함을 들었다. 태위 왕이보가 우아하게 그를 무겁게 여겼다」 하였다. 한 본에는 「집안 사촌 가운데 이야기의 조상」으로 되어 있다. 종은 한 본에 송으로 되어 있고 허는 한 본에 사로 되어 있다.
42정신과 기운이 녹아 흩어져 그런대로 위에 든다
庾公目中郎:「神氣融散,差如得上。」
유공이 중랑을 두고 말하였다. "정신과 기운이 녹아 흩어져 그런대로 위에 든다."
협주 1
晉陽秋曰:「敳頹然淵放,莫有動其聽者。」
『진양추』에 이르기를 「유애는 무너지듯 깊고 놓아 그 들음을 움직이는 이가 있지 않았다」 하였다.
43유곤이 조거기를 밝게 이르렀다 일컫다
劉琨稱祖車騎為朗詣,曰:「少為王敦所嘆。」
유곤이 조거기를 밝게 이르렀다 일컬으며 말하였다. "젊어서 왕돈에게 탄식받았다."
협주 1
虞預晉書曰:「逖字士稚,范陽遒人。豁蕩不修儀檢,輕財好施。」晉陽秋曰:「逖與司空劉琨俱以雄豪著名。年二十四,與琨同辟司州主簿,情好綢繆,共被而寢。中夜聞雞鳴,俱起曰:『此非惡聲也。』每語世事,則中宵起坐,相謂曰:『若四海鼎沸,豪傑共起,吾與足下相避中原耳!』為汝南太守,值京師傾覆,率流民數百家南度,行達泗口,安東板為徐州刺史。逖既有豪才,常慷慨以中原為己任,乃說中宗雪復神州之計,拜為豫州刺史,使自招募。逖遂率部曲百餘家,北度江,誓曰:『祖逖若不清中原而復濟此者,有如大江!』攻城略地,招懷義士,屢摧石虎,虎不敢復闚河南,石勒為逖母墓置守吏。劉琨與親舊書曰:『吾枕戈待旦,志梟逆虜,常恐祖生先吾箸鞭耳!』會其病卒。先有妖星見豫州分,逖曰:『此必為我也!天未欲滅寇故耳!』贈車騎將軍。」
우예의 『진서』에 이르기를 「조적은 자가 사치요 범양 주 사람이다. 트이고 넓어 몸가짐과 검속을 닦지 않고 재물을 가벼이 여기고 베풀기를 좋아하였다」 하였다. 『진양추』에 이르기를 「조적이 사공 유곤과 함께 씩씩하고 호탕함으로 이름났다. 나이 스물넷에 유곤과 함께 사주주부로 불려 정과 좋음이 얽히어 이불을 함께하고 잤다. 한밤중에 닭 우는 소리를 듣고 함께 일어나 『이는 나쁜 소리가 아니다』 하였다. 세상일을 말할 때마다 곧 한밤중에 일어나 앉아 서로 이르기를 『만일 사해가 솥처럼 끓어 호걸이 함께 일어나면 나와 그대가 중원에서 서로 피해야 하리라』 하였다. 여남태수가 되어 서울이 무너지는 때를 만나 흘러 떠도는 백성 몇백 집을 이끌고 남쪽으로 건너 사구에 이르니, 안동이 글판으로 서주자사를 삼았다. 조적이 이미 호탕한 재주가 있어 늘 북받쳐 중원을 제 소임으로 삼았으므로, 이에 중종에게 신주를 씻어 되찾을 계책을 달래어 예주자사에 임명되고 스스로 불러 모으게 하였다. 조적이 마침내 부곡 백여 집을 이끌고 북으로 강을 건너며 맹세하기를 『조적이 만일 중원을 맑히고서 이 강을 다시 건너지 않는다면 이 큰 강과 같으리라』 하였다. 성을 치고 땅을 빼앗아 옳은 선비를 불러 품으며 여러 번 석호를 꺾으니, 석호가 감히 다시 하남을 엿보지 못하고 석륵이 조적의 어머니 무덤에 지키는 아전을 두었다. 유곤이 가깝고 오랜 이에게 글을 보내 이르기를 『내가 창을 베고 새벽을 기다리며 거스르는 오랑캐 베기를 뜻하는데, 늘 조생이 나보다 먼저 채찍을 댈까 두려울 뿐이다』 하였다. 마침 병들어 죽었다. 앞서 요망한 별이 예주 분야에 나타나매 조적이 『이는 반드시 나를 위함이다. 하늘이 아직 도적을 없애려 하지 않기 때문일 뿐이다』 하였다. 거기장군을 내려 주었다」 하였다.
44큰 데 기대기를 잘하고 스스로 감추는 데 뛰어나다
時人目庾中郎:「善於託大,長於自藏。」
그때 사람들이 유중랑을 두고 말하였다. "큰 데 기대기를 잘하고 스스로 감추는 데 뛰어나다."
협주 1
名士傳曰:「敳雖居職任,未嘗以事自嬰,從容博暢,寄通而已。是時天下多故,機事屢起,有為者拔奇吐異,而禍福繼之。敳常默然,故憂喜不至也。」
『명사전』에 이르기를 「유애가 비록 맡은 자리에 있었으나 일찍이 일로 스스로를 얽매지 않고 조용히 넓고 시원하여 통함에 부쳤을 뿐이다. 이때 천하에 일이 많고 기틀의 일이 자주 일어나 하는 이들이 기이함을 뽑고 남다름을 토하매 화와 복이 이를 이었다. 유애가 늘 잠잠하였으므로 근심과 기쁨이 이르지 않았다」 하였다.
45위개의 말을 들을 때마다 문득 탄식하며 자빠졌다
王平子邁世有雋才,少所推服。每聞衛玠言,輒嘆息絕倒。
왕평자는 세상을 뛰어넘는 뛰어난 재주가 있어 밀어 따르는 바가 적었다.
위개의 말을 들을 때마다 문득 탄식하며 자빠졌다.
협주 1
玠別傳曰:「玠少有名理,善通莊、老。琅邪王平子高氣不群,邁世獨傲,每聞玠之語議,至於理會之間,要妙之際,輒絕倒於坐。前後三聞,為之三倒。時人遂曰:『衛君談道,平子三倒。』」
『개별전』에 이르기를 「위개는 젊어서 이름과 결이 있고 『장자』와 『노자』를 잘 통하였다. 낭야의 왕평자는 높은 기운이 무리와 달라 세상을 뛰어넘어 홀로 거만하였는데, 위개의 말과 따짐을 들을 때마다 결이 모이는 사이와 요긴하고 묘한 즈음에 이르면 문득 자리에서 자빠졌다. 앞뒤로 세 번 듣고 이 때문에 세 번 자빠졌다. 그때 사람들이 마침내 『위군이 도를 말하니 평자가 세 번 자빠졌다』 하였다」 하였다.
46사람은 알아줌이 지나치는 것을 근심할 뿐이다
王大將軍與元皇表云:「舒風概簡正,允作雅人,自多於邃。最是臣少所知拔。中間夷甫、澄見語:『卿知處明、茂弘。茂弘已有令名,真副卿清論;處明親疎無知之者,吾常以卿言為意,殊未有得,恐已悔之?』臣慨然曰:『君以此試,頃來始乃有稱之者。』言常人正自患知之使過,不知使負實。」
왕대장군이 원황제에게 표를 올려 말하였다. "왕서는 풍모와 기개가 간결하고 발라 참으로 우아한 사람이라 하겠으니 절로 왕수보다 낫습니다. 가장 신이 젊어서 알아 뽑은 바입니다.
중간에 이보와 왕징이 저에게 말하기를 『경이 처명과 무홍을 아는데, 무홍은 이미 좋은 이름이 있어 참으로 경의 맑은 논에 걸맞으나, 처명은 가깝고 성근 이 가운데 아는 이가 없소. 내가 늘 경의 말을 마음에 두었으나 자못 얻은 것이 없으니 아마 이미 뉘우쳤을 것이오』 하였습니다.
신이 북받쳐 말하였습니다. "그대가 이로써 시험해 보시오. 요사이 비로소 이에 그를 일컫는 이가 있소."
여느 사람은 바로 알아줌이 지나치는 것을 근심할 뿐이요, 알지 못하면 실상을 저버리게 됨을 말한 것입니다."
협주 2
王舒已見。王邃別傳曰:「邃字處重,琅邪人,舒弟也。意局剛清,以政事稱。累遷中領軍、尚書左僕射。」舒、邃並敦從弟。
왕서는 이미 보인다. 『왕수별전』에 이르기를 「왕수는 자가 처중이요 낭야 사람이니 왕서의 아우다. 뜻과 국량이 굳세고 맑아 정사로 일컬어졌다. 여러 벼슬을 거쳐 중령군과 상서좌복야에 이르렀다」 하였다. 왕서와 왕수는 아울러 왕돈의 사촌아우다.
使,一作便。
사는 한 본에 변으로 되어 있다.
47우아한 흐름의 큰 그릇을 어찌 버릴 수 있겠는가
周侯於荊州敗績,還,未得用。王丞相與人書曰:「雅流弘器,何可得遺?」
주후가 형주에서 무너져 돌아왔으나 아직 쓰이지 못하였다.
왕승상이 남에게 글을 보내 말하였다. "우아한 흐름의 큰 그릇을 어찌 버릴 수 있겠소."
협주 1
鄧粲晉紀曰:「顗為荊州,始至,而建平民傅密等叛迎蜀賊。顗狼狽失據,陶侃救之,得免。顗至武昌投王敦,敦更選侃代顗。顗還建康,未即得用也。」
등찬의 『진기』에 이르기를 「주의가 형주가 되어 처음 이르렀는데 건평 백성 부밀 들이 배반하여 촉 도적을 맞았다. 주의가 허둥지둥 기댈 데를 잃으매 도간이 그를 건져 벗어날 수 있었다. 주의가 무창에 이르러 왕돈에게 가니 왕돈이 다시 도간을 가려 주의를 대신하게 하였다. 주의가 건강으로 돌아왔으나 곧바로 쓰이지 못하였다」 하였다.
48우뚝하고 환하다 하겠소
時人欲題目高坐而未能。桓廷尉以問周侯,周侯曰:「可謂卓朗。」桓公曰:「精神淵箸。」
그때 사람들이 고좌에게 제목 붙이려 하였으나 아직 하지 못하였다.
환정위가 주후에게 물으니 주후가 말하였다. "우뚝하고 환하다 하겠소."
환공이 말하였다. "정신이 깊이 드러났소."
협주 1
高坐傳曰:「庾亮、周顗、桓彝一代名士,一見和尚,披衿致契。曾為和尚作目,久之未得。有云:『尸利密可稱卓朗。』於是桓始咨嗟,以為標之極似。宣武嘗云:『少見和尚,稱其精神淵箸,當年出倫。』其為名士所歎如此。」
『고좌전』에 이르기를 「유량과 주의와 환이는 한 세대의 이름난 선비인데, 화상을 한 번 보고 옷깃을 헤쳐 맞음을 이루었다. 일찍이 화상을 위해 제목을 지으려 하였으나 오래되도록 얻지 못하였다. 어떤 이가 『시리밀은 우뚝하고 환하다 일컬을 만하오』 하니, 이에 환이가 비로소 감탄하며 드러내기에 지극히 비슷하다 하였다. 선무가 일찍이 이르기를 『젊어서 화상을 뵈었는데 그 정신이 깊이 드러나 당년에 무리에 뛰어남을 일컬었다』 하였다. 그가 이름난 선비에게 탄식받음이 이와 같았다」 하였다.
49그 정신의 기미가 될 만한 듯하다
王大將軍稱其兒云:「其神候似欲可。」
왕대장군이 그 아들을 일컬어 말하였다. "그 정신의 기미가 될 만한 듯하다."
협주 1
王應也。
왕응이다.
50환하기가 백 칸 집 같다
卞令目叔向:「朗朗如百間屋。」
변령이 숙향을 두고 말하였다. "환하기가 백 칸 집 같다."
협주 1
春秋左氏傳曰:「叔向,羊舌肹也。晉大夫。」
『춘추좌씨전』에 이르기를 「숙향은 양설힐이니 진나라 대부다」 하였다.
51영가 가운데 다시 정시의 소리를 들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하였다
王敦為大將軍,鎮豫章。衛玠避亂,從洛投敦,相見欣然,談話彌日。于時謝鯤為長史,敦謂鯤曰:「不意永嘉之中,復聞正始之音。阿平若在,當復絕倒。」
왕돈이 대장군이 되어 예장을 지켰다.
위개가 난을 피해 낙양에서 왕돈에게 가니 서로 보고 기뻐하여 온종일 이야기하였다.
그때 사곤이 장사였는데 왕돈이 사곤에게 말하였다. "영가 가운데 다시 정시의 소리를 들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하였다. 아평이 만일 있었다면 마땅히 다시 자빠졌으리라."
협주 1
玠別傳曰:「玠至武昌見王敦,敦與之談論,彌日信宿。敦顧謂僚屬曰:『昔王輔嗣吐金聲於中朝,此子今復玉振於江表,微言之緒,絕而復續。不悟永嘉之中,復聞正始之音。阿平若在,當復絕倒。』」
『개별전』에 이르기를 「위개가 무창에 이르러 왕돈을 뵈니, 왕돈이 그와 이야기하고 따져 온종일 이틀 밤을 묵었다. 왕돈이 아전과 붙이를 돌아보며 이르기를 『옛날 왕보사가 중원에서 쇳소리를 토하였는데, 이 사람이 이제 다시 강 밖에서 옥소리를 떨치니 은미한 말의 실마리가 끊어졌다 다시 이어졌다. 영가 가운데 다시 정시의 소리를 들으리라고는 깨닫지 못하였다. 아평이 만일 있었다면 마땅히 다시 자빠졌으리라』 하였다」 하였다.
52바람과 기운이 날로 올라 사람의 마음을 흩기에 넉넉하다
王平子與人書,稱其兒:「風氣日上,足散人懷。」
왕평자가 남에게 글을 보내 그 아들을 일컬었다. "바람과 기운이 날로 올라 사람의 마음을 흩기에 넉넉하다."
협주 1
永嘉流人名曰:「澄弟四子微。」澄別傳曰:「微邁上有父風。」
『영가유인명』에 이르기를 「왕징의 넷째 아들은 왕미다」 하였다. 『징별전』에 이르기를 「왕미는 뛰어나게 위로 아버지의 풍모가 있었다」 하였다.
53좋은 말을 뱉기를 톱밥 같이 하니 뒤에 나아갈 이의 우두머리다
胡毋彥國吐佳言如屑,後進領袖。
호무언국은 좋은 말 뱉기를 톱밥 같이 하니 뒤에 나아갈 이의 우두머리다.
협주 1
言談之流,靡靡如解木出屑也。
말과 이야기의 흐름이 부드럽기가 나무를 켜면 톱밥이 나오는 듯함을 말한 것이다.
54조현량의 살핌과 대약사의 우뚝함과 변망지의 봉우리처럼 버팀
王丞相云:「刁玄亮之察察,戴若思之巖巖,卞望之之峯距。」
왕승상이 말하였다. "조현량의 살핌과 대약사의 우뚝함과 변망지의 봉우리처럼 버팀이다."
협주 2
虞預書曰:「戴儼字若思,廣陵人。才義辯濟,有風標鋒穎。累遷征西將軍,為王敦所害。贈左光祿大夫,儀同三司。」
우예의 책에 이르기를 「대엄은 자가 약사요 광릉 사람이다. 재주와 옳음과 말솜씨가 건져 풍모의 표시와 칼끝이 있었다. 여러 벼슬을 거쳐 정서장군에 이르렀고 왕돈에게 해를 입었다. 좌광록대부와 의동삼사를 내려 주었다」 하였다.
卞壼別傳曰:「壼字望之,濟陰冤句人。父粹,太常卿。壼少以貴正見稱,累遷御史中丞,權門屏跡,轉領軍尚書令。蘇峻作亂,率眾距戰,父子二人俱死王難。」鄧粲晉紀曰:「初,咸和中,貴遊子弟能談嘲者,慕王平子、謝幼輿等為達。壼厲色於朝曰:『悖禮傷教,罪莫斯甚!中朝傾覆,實由於此!』欲奏治之。王導、庾亮不從,乃止。其後皆折節為名士。」語林曰:「孔坦為侍中,密啟成帝,不宜往拜曹夫人。丞相聞之曰:『王茂弘駑痾耳!若卞望之之巖巖,刁玄亮之察察,戴若思之峰距,當敢爾不?』」此言殊有由緒,故聊載之耳。
『변곤별전』에 이르기를 「변곤은 자가 망지요 제음 원구 사람이다. 아버지 변수는 태상경이다. 변곤은 젊어서 귀하고 바름으로 일컬어졌고 여러 벼슬을 거쳐 어사중승에 이르러 권세 있는 집안이 자취를 감추었으며, 영군상서령으로 옮겼다. 소준이 난을 일으키자 무리를 이끌고 막아 싸우다 부자 두 사람이 함께 왕의 난에 죽었다」 하였다. 등찬의 『진기』에 이르기를 「처음에 함화 연간에 귀히 노니는 자제로 이야기하고 놀릴 수 있는 이들이 왕평자와 사유여 들을 그리워하여 통달함으로 삼았다. 변곤이 조정에서 낯빛을 매섭게 하여 『예를 어그러뜨리고 가르침을 다침이 이보다 심한 죄가 없다. 중원이 무너진 것이 실로 이로 말미암았다』 하고 아뢰어 다스리려 하였다. 왕도와 유량이 좇지 않아 이에 그쳤다. 그 뒤에 다 몸가짐을 꺾어 이름난 선비가 되었다」 하였다. 『어림』에 이르기를 「공탄이 시중이 되어 성제에게 몰래 아뢰기를 조부인에게 가서 절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다 하였다. 승상이 듣고 『왕무홍은 굼뜬 병일 뿐이다. 만일 변망지의 우뚝함과 조현량의 살핌과 대약사의 봉우리처럼 버팀이라면 감히 그러하겠는가』 하였다」 하였다. 이 말이 자못 실마리가 있으므로 애오라지 싣는다.
55너는 나의 좋은 자제니 마땅히 완주부에 못하지 않으리라
大將軍語右軍:「汝是我佳子弟,當不減阮主簿。」
대장군이 우군에게 말하였다. "너는 나의 좋은 자제니 마땅히 완주부에 못하지 않으리라."
협주 2
按王氏譜:「羲之是敦從父兄子。」
살피건대 『왕씨보』에 「왕희지는 왕돈의 사촌형의 아들이다」 하였다.
中興書曰:「阮裕少有德行,王敦聞其名,召為主簿,知敦有不臣之心,縱酒昏酣,不綜其事。」
『중흥서』에 이르기를 「완유가 젊어서 덕행이 있어 왕돈이 그 이름을 듣고 불러 주부로 삼았는데, 왕돈에게 신하답지 않은 마음이 있음을 알고 술을 멋대로 마셔 어지러이 취하고 그 일을 다스리지 않았다」 하였다.
56우뚝하기가 끊어진 산 같다
世目周侯:嶷如斷山。
세상이 주후를 두고 말하였다. 우뚝하기가 끊어진 산 같다고.
협주 1
晉陽秋曰:「顗正情嶷然,雖一時儕類,皆無敢媟近。」
『진양추』에 이르기를 「주의는 바른 정이 우뚝하여 비록 한때의 또래라도 다 감히 함부로 가까이하지 못하였다」 하였다.
57어제 사소와 말하느라 마침내 사람으로 하여금 고달픔을 잊게 하였소
王丞相招祖約夜語,至曉不眠。明旦有客,公頭鬢未理,亦小倦。客曰:「公昨如是,似失眠。」公曰:「昨與士少語,遂使人忘疲。」
왕승상이 조약을 불러 밤에 이야기하여 새벽에 이르도록 자지 않았다.
이튿날 아침에 손이 있었는데 공은 머리와 살쩍을 다듬지 않았고 또한 조금 고단해하였다.
손이 말하였다. "공께서 어제 이러셨으니 잠을 잃으신 듯합니다."
공이 말하였다. "어제 사소와 말하느라 마침내 사람으로 하여금 고달픔을 잊게 하였소."
58자리와 바람이 자못 뒤떨어졌으나 경도 그와 지낼 만하오
王大將軍與丞相書,稱楊朗曰:「世彥識器理致,才隱明斷,既為國器,且是楊侯淮之子。位望殊為陵遲,卿亦足與之處。」
왕대장군이 승상에게 글을 보내 양랑을 일컬어 말하였다. "세언은 식견과 그릇과 결과 이룸이 있고 재주는 숨었으나 밝게 끊으니, 이미 나라의 그릇이요 또 양후 양준의 아들이오. 자리와 바람이 자못 뒤떨어졌으나 경도 또한 그와 지낼 만하오."
협주 1
世語曰:「淮字始立,弘農華陰人。曾祖彪、祖脩,有名前世。父囂,典軍校尉。淮元康末為冀州刺史。」荀綽冀州記曰:「淮見王綱不振,遂縱酒不以官事規意,消搖卒歲而已。成都王知淮不治,猶以其名士,惜而不遣,召為軍咨議祭酒,府散停家。關東諸侯欲以淮補三事,以示懷賢尚德之事,未施行而卒。時年二十有七。」
『세어』에 이르기를 「양준은 자가 시립이요 홍농 화음 사람이다. 증조부 양표와 할아버지 양수가 앞선 세대에 이름이 있었다. 아버지 양효는 전군교위다. 양준은 원강 말에 기주자사가 되었다」 하였다. 순작의 『기주기』에 이르기를 「양준이 왕의 벼리가 떨치지 못함을 보고 마침내 술을 멋대로 마시고 벼슬일에 뜻을 두지 않아 거닐며 해를 마칠 뿐이었다. 성도왕이 양준이 다스리지 않음을 알았으나 오히려 그가 이름난 선비라 아까워 보내지 않고, 불러 군자의좨주로 삼았으나 관부가 흩어져 집에 머물렀다. 관동의 여러 제후가 양준으로 삼사를 채워 어진 이를 품고 덕을 높이는 일을 보이려 하였으나, 베풀어 행하기 전에 죽었다. 그때 나이 스물일곱이었다」 하였다.
59오시오, 오시오, 여기가 그대의 자리요
何次道往丞相許,丞相以麈尾指坐呼何共坐曰:「來!來!此是君坐。」
하차도가 승상의 처소에 가니, 승상이 주미로 자리를 가리키며 하차도를 불러 함께 앉자 하였다. "오시오, 오시오. 여기가 그대의 자리요."
협주 1
何充已見。
하충은 이미 보인다.
60내가 바로 차도를 위해 이를 다스릴 뿐이오
丞相治楊州廨舍,按行而言曰:「我正為次道治此爾!」何少為王公所重,故屢發此嘆。
승상이 양주의 관사를 다스리며 둘러보고 말하였다. "내가 바로 차도를 위해 이를 다스릴 뿐이오."
하차도가 젊어서 왕공에게 무겁게 여겨졌으므로 자주 이런 탄식을 하였다.
협주 1
晉陽秋曰:「充,導妻姊之子,明穆皇后之妹夫也。思韻淹濟,有文義才情,導深器之。由是少有美譽,遂歷顯位。導有副貳已使繼相意,故屢顯此指於上下。」
『진양추』에 이르기를 「하충은 왕도의 아내 언니의 아들이요 명목황후의 여동생의 남편이다. 생각과 운치가 넓고 건지며 글과 옳음과 재주와 정이 있어 왕도가 깊이 그를 그릇으로 여겼다. 이로 말미암아 젊어서 아름다운 기림이 있어 마침내 드러난 자리를 지냈다. 왕도에게 버금가는 이를 두어 재상을 잇게 하려는 뜻이 있었으므로, 자주 이 뜻을 위아래에 드러냈다」 하였다.
61유왕교가 만일 강을 건넜다면 내가 홀로 공에 임명되지 않았으리라
王丞相拜司徒而嘆曰:「劉王喬若過江,我不獨拜公。」
왕승상이 사도에 임명되자 탄식하였다. "유왕교가 만일 강을 건넜다면 내가 홀로 공에 임명되지 않았으리라."
협주 1
曹嘉之晉紀曰:「疇有重名,永嘉中為閻鼎所害。司徒蔡謨每歎曰:『若使劉王喬得南渡,司徒公之美選也。』」
조가지의 『진기』에 이르기를 「유주에게 무거운 이름이 있었는데 영가 연간에 염정에게 해를 입었다. 사도 채모가 늘 탄식하기를 『만일 유왕교가 남쪽으로 건널 수 있었다면 사도공에 아름답게 뽑혔으리라』 하였다」 하였다.
62주인이 요임금과 순임금이 아닌데 어찌 일마다 다 옳겠습니까
王藍田為人晚成,時人乃謂之痴;王丞相以其東海子,辟為掾。常集聚,王公每發言,衆人競讚之。述於末坐曰:「主非堯、舜,何得事事皆是?」丞相甚相歎賞。
왕남전은 사람됨이 늦게 이루어져 그때 사람들이 이에 그를 어리석다 하였다.
왕승상이 그가 동해왕의 아들이라 하여 불러 아전으로 삼았다.
늘 모였을 때 왕공이 말을 낼 때마다 뭇사람이 다투어 이를 기렸다.
왕술이 말석에서 말하였다. "주인이 요임금과 순임금이 아닌데 어찌 일마다 다 옳겠습니까."
승상이 몹시 탄식하고 기렸다.
협주 2
晉陽秋曰:「述體道清粹,簡貴靜正,怡然自足,不交非類。雖群英紛紛,俊乂交馳,述獨蔑然,曾不慕羨。由是名譽久蘊。」
『진양추』에 이르기를 「왕술은 도를 몸으로 하여 맑고 순수하며 간결하고 귀하며 고요하고 바르고, 기뻐 스스로 넉넉하여 그 무리 아닌 이와 사귀지 않았다. 비록 뭇 뛰어난 이가 어지럽고 준수한 이들이 오갔으나, 왕술만이 홀로 업신여기듯 일찍이 그리워하고 부러워하지 않았다. 이로 말미암아 이름과 기림이 오래 쌓였다」 하였다.
言非聖人,不能無過。意譏讚述之徒。
성인이 아니면 허물이 없을 수 없다는 말이다. 뜻은 왕술을 기린 무리를 나무란 것이다.
63중원이 어지럽지 않았다면 양씨가 공이 되기를 아직 그치지 않았으리라
世目楊朗:「沈審經斷。」蔡司徒云:「若使中朝不亂,楊氏作公方未已。」謝公云:「朗是大才。」
세상이 양랑을 두고 말하였다. "가라앉아 살피고 다스려 끊는다."
채사도가 말하였다. "만일 중원이 어지럽지 않았다면 양씨가 공이 되기를 아직 그치지 않았으리라."
사공이 말하였다. "양랑은 큰 재주다."
협주 1
八王故事曰:「楊淮有六子,曰:喬、髦、朗、琳、俊、仲,皆得美名。論者以謂悉有台輔之望。文康庾公每追歎曰:『中朝不亂,諸楊作公未已也。』」
『팔왕고사』에 이르기를 「양준에게 여섯 아들이 있었으니 양교와 양모와 양랑과 양림과 양준과 양중이라 하는데 다 아름다운 이름을 얻었다. 따지는 이들이 다 삼공과 재상의 바람이 있다 하였다. 문강 유공이 좇아 탄식할 때마다 『중원이 어지럽지 않았다면 여러 양씨가 공이 되기를 아직 그치지 않았으리라』 하였다」 하였다.
64천 사람 가운데서도 보이고 백 사람 가운데서도 보인다
劉萬安即道真從子。庾公所謂「灼然玉舉」。又云:「千人亦見,百人亦見。」
유만안은 곧 도진의 조카다.
유공이 이른바 「환하게 옥처럼 든다」 한 이다. 또 이르기를 「천 사람 가운데서도 보이고 백 사람 가운데서도 보인다」 하였다.
협주 2
琮字子躬。
유종은 자가 자궁이다.
劉氏譜曰:「綏字萬安,高平人。祖奧,太祝令。父斌,著作郎。綏歷驃騎長史。」
『유씨보』에 이르기를 「유수는 자가 만안이요 고평 사람이다. 할아버지 유오는 태축령이요 아버지 유빈은 저작랑이다. 유수는 표기장사를 지냈다」 하였다.
65참으로 바닷가와 대산의 맑은 선비다
庾公為護軍,屬桓廷尉覓一佳吏,乃經年。桓後遇見徐寧而知之,遂致於庾公曰:「人所應有,其不必有;人所應無,己不必無。真海岱清士。」
유공이 호군이 되어 환정위에게 좋은 아전 하나를 찾아 달라 맡겼는데 이에 한 해가 지났다.
환정위가 뒤에 서녕을 만나 보고 그를 알아, 마침내 유공에게 이르렀다. "사람이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을 그는 반드시 있지 않고, 사람이 마땅히 없어야 할 것을 그는 반드시 없지 않습니다. 참으로 바닷가와 대산의 맑은 선비입니다."
협주 1
徐江州本事曰:「徐寧字安期,東海郯人。通朗有德素,少知名。初為輿縣令。譙國桓彝有人倫鑒識,嘗去職無事,至廣陵尋親舊,遇風,停浦中累日,在船憂邑,上岸消搖,見一空宇,有似廨署,彝訪之。云:『輿縣廨也,令姓徐名寧。』彝既獨行,思逢悟賞,聊造之。寧清惠愽涉,相遇怡然。遂停宿,因留數夕,與寧結交而別。至都,謂庾亮曰:『吾為卿得一佳吏部郎。』亮問所在,彝即敘之。累遷吏部郎、左將軍、江州刺史。」
「서강주본사」에 이르기를 「서녕은 자가 안기요 동해 담 사람이다. 통하고 환하며 덕과 수수함이 있어 젊어서 이름이 알려졌다. 처음에 여현령이 되었다. 초국의 환이가 사람 갈피를 살피는 식견이 있었는데, 일찍이 벼슬을 떠나 일이 없을 때 광릉에 가서 친하고 오랜 이를 찾다가 바람을 만나 포구 안에 여러 날 머물렀다. 배 안에서 시름겨워 언덕에 올라 거닐다가, 빈 집이 있어 관사 같은 것을 보고 환이가 물었다. 이르기를 『여현의 관사입니다. 영은 성이 서요 이름은 녕입니다』 하였다. 환이가 이미 홀로 다니며 깨달아 기려 줄 이를 만나기를 생각하던 터라 애오라지 그를 찾아갔다. 서녕은 맑고 슬기로우며 널리 걸쳐 서로 만나 기뻐하였다. 마침내 묵고, 이로 인해 며칠 밤을 머물러 서녕과 사귐을 맺고 헤어졌다. 서울에 이르러 유량에게 이르기를 『내가 경을 위해 좋은 이부랑 하나를 얻었소』 하였다. 유량이 있는 데를 물으니 환이가 곧 서술하였다. 여러 벼슬을 거쳐 이부랑과 좌장군과 강주자사에 이르렀다」 하였다.
66저계야는 가죽 속의 봄가을이다
桓茂倫云:「褚季野皮裡陽秋。」謂其裁中也。
환무륜이 말하였다. "저계야는 가죽 속의 봄가을이다."
그 마름이 속에 있음을 이른 것이다.
협주 1
晉陽秋曰:「裒簡穆有器識。」故為彝所目也。
『진양추』에 이르기를 「저부는 간결하고 화목하며 그릇과 식견이 있었다」 하였다. 그러므로 환이에게 제목 붙여진 것이다.
67이 사람이 죽지 않으면 마침내 제후의 윗손이 되리라
何次道嘗送東人,瞻望見賈寧在後輪中,曰:「此人不死,終為諸侯上客。」
하차도가 일찍이 동쪽 사람을 배웅하다가, 가녕이 뒤 수레 안에 있는 것을 바라보고 말하였다. "이 사람이 죽지 않으면 마침내 제후의 윗손이 되리라."
협주 1
晉陽秋曰:「寧字建寧,長樂人,賈氏孼子也。初自結於王應、諸葛瑤。應敗,浮遊吳會,吳人咸侮辱之。聞京師亂,馳出投蘇峻,峻甚暱之,以為謀主。及峻聞義軍起,自姑孰屯于石頭,是寧之計。峻敗,先降。仕至新安太守。」
『진양추』에 이르기를 「가녕은 자가 건녕이요 장락 사람이니 가씨의 서자다. 처음에 스스로 왕응과 제갈요에게 맺었다. 왕응이 무너지자 오회에 떠돌아다니니 오 땅 사람이 다 그를 업신여기고 욕보였다. 서울이 어지럽다는 말을 듣고 달려 나가 소준에게 가니 소준이 몹시 그를 가까이하여 꾀의 주인으로 삼았다. 소준이 의로운 군사가 일어났다는 말을 듣고 고숙에서 석두에 진 친 것이 가녕의 계책이다. 소준이 무너지자 먼저 항복하였다. 벼슬이 신안태수에 이르렀다」 하였다.
68홍치는 지극히 여위어 슬픔을 다할 수 없다
杜弘治墓崩,哀容不稱。庾公顧謂諸客曰:「弘治至羸,不可以致哀。」又曰:「弘治哭不可哀。」
두홍치의 무덤이 무너졌는데 슬퍼하는 모습이 걸맞지 않았다.
유공이 여러 손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홍치는 지극히 여위어 슬픔을 다할 수 없소."
또 말하였다. "홍치의 곡은 슬퍼할 수 없소."
협주 1
晉陽秋曰:「杜乂字弘治,京兆人。祖預、父錫,有譽前朝。乂少有令名,仕丹陽丞,蚤卒。成帝納乂女為后。」
『진양추』에 이르기를 「두예는 자가 홍치요 경조 사람이다. 할아버지 두예와 아버지 두석이 앞선 조정에 기림이 있었다. 두예는 젊어서 좋은 이름이 있었고 단양승으로 벼슬하다 일찍 죽었다. 성제가 두예의 딸을 들여 황후로 삼았다」 하였다.
69유문강은 풍년의 옥이요 치공은 흉년의 곡식이다
世稱「庾文康為豐年玉,稺恭為荒年穀」。庾家論云是文康稱「恭為荒年穀,庾長仁為豐年玉。」
세상이 일컫기를 「유문강은 풍년의 옥이요 치공은 흉년의 곡식이다」 하였다.
유씨 집안의 논에 이르기를, 이는 문강이 「치공은 흉년의 곡식이요 유장인은 풍년의 옥이다」 하고 일컬은 것이라 한다.
협주 1
謂亮有廊廟之器,翼有臣世之才,各有用也。
유량에게 조정의 그릇이 있고 유익에게 세상을 신하로 다스릴 재주가 있어 저마다 쓰임이 있음을 이른 것이다.
70두홍치는 빼어나게 곱고 계야는 화목하고 조용하다
世目「杜弘治標鮮,季野穆少」。
세상이 두고 말하였다. "두홍치는 빼어나게 곱고 계야는 화목하고 조용하다."
협주 1
江左名士傳曰:「乂,清標令上也。」
『강좌명사전』에 이르기를 「두예는 맑고 빼어나며 좋고 위였다」 하였다.
71성한 덕의 풍모라 즐겨 읊을 만하다
有人目杜弘治:「標鮮清令,盛德之風,可樂詠也。」
어떤 이가 두홍치를 두고 말하였다. "빼어나게 곱고 맑고 좋아 성한 덕의 풍모라 즐겨 읊을 만하다."
협주 1
語林曰:「有人目杜弘治,標鮮甚清令,初若熙怡,容無韻,盛德之風,可樂詠也。」
『어림』에 이르기를 「어떤 이가 두홍치를 두고 말하기를 『빼어나게 곱고 몹시 맑고 좋으며, 처음에는 기뻐하는 듯하나 모습에 운치가 없고, 성한 덕의 풍모라 즐겨 읊을 만하다』 하였다」 하였다.
72일소는 나라가 드는 이다
庾公云:「逸少國舉。」故庾倪為碑文云:「拔萃國舉。」
유공이 말하였다. "일소는 나라가 드는 이다."
그러므로 유예가 비문을 지어 이르기를 「무리에서 뽑혀 나라가 드는 이다」 하였다.
협주 1
倪,庾倩小字也。徐廣晉紀曰:「倩字少彥,司空冰子,皇后兄也。有才具,仕至太宰長史。桓溫以其宗彊,使下邳王晃誣與謀反而誅之。」
예는 유천의 아이 적 이름이다. 서광의 『진기』에 이르기를 「유천은 자가 소언이요 사공 유빙의 아들이요 황후의 오빠다. 재주와 재간이 있어 벼슬이 태재장사에 이르렀다. 환온이 그 겨레가 굳세다 하여 하비왕 사마황을 시켜 모반을 꾀하였다 무고하여 베었다」 하였다.
73이 사람을 그대에게 밀어 함께 어려움을 건널 이오
庾稚恭與桓溫書,稱「劉道生日夕在事,大小殊快。義懷通樂,既佳,且足作友,正實良器,推此與君,同濟艱不者也。」
유치공이 환온에게 글을 보내 일컬었다. "유도생이 밤낮으로 일에 있어 크고 작음이 자못 시원하오. 옳음을 품고 통하여 즐거우니 이미 좋고 또 벗 삼기에 넉넉하며 바로 실로 좋은 그릇이오. 이 사람을 그대에게 밀어, 함께 어려움을 건널 이오."
협주 1
宋明帝文章志曰:「劉恢字道生,沛國人。識局明濟,有文武才。王濛每稱其思理淹通,蕃屏之高選,為車騎司馬。年三十六卒,贈前將軍。」
송나라 명제의 『문장지』에 이르기를 「유회는 자가 도생이요 패국 사람이다. 식견과 국량이 밝고 건지며 글과 무예의 재주가 있었다. 왕몽이 늘 그 생각과 결이 깊이 통함을 일컬어 울타리의 높은 뽑음이라 하였고 거기사마가 되었다. 나이 서른여섯에 죽으니 전장군을 내려 주었다」 하였다.
74안의 꺼릴 이름은 밖으로 나가지 않고 그 밖에는 꺼릴 것이 없다
王藍田拜揚州,主簿請諱,教云:「亡祖先君,名播海內,遠近所知。內諱不出於外,餘無所諱。」
왕남전이 양주자사에 임명되자 주부가 꺼릴 이름을 물으니 가르쳐 말하였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이름이 온 세상에 퍼져 멀고 가까운 데서 아는 바요. 안의 꺼릴 이름은 밖으로 나가지 않고 그 밖에는 꺼릴 것이 없소."
협주 1
禮記曰:「婦人之諱不出門。」
『예기』에 이르기를 「부인의 꺼릴 이름은 문을 나가지 않는다」 하였다.
75소조주가 곧 삼공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소
蕭中郎,孫丞公婦父。劉尹在撫軍坐,時擬為太常,劉尹云:「蕭祖周不知便可作三公不?自此以還,無所不堪。」
소중랑은 손승공의 장인이다.
유윤이 무군의 자리에 있을 때 그를 태상으로 삼으려 헤아리니 유윤이 말하였다. "소조주가 곧 삼공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소. 이보다 아래로는 감당하지 못할 바가 없소."
협주 1
晉百官名曰:「蕭輪字祖周,樂安人。」劉謙之晉紀曰:「輪有才學,善三禮,歷常侍、國子博士。」
『진백관명』에 이르기를 「소륜은 자가 조주요 낙안 사람이다」 하였다. 유겸지의 『진기』에 이르기를 「소륜은 재주와 배움이 있고 세 가지 예를 잘하여 상시와 국자박사를 지냈다」 하였다.
76아까 손이 부지런히 나아가 사람을 다그쳐 왔소
謝太傅未冠,始出西,詣王長史,清言良久。去後,苟子問曰:「向客何如尊?」長史曰:「向客亹亹,為來逼人。」
사태부가 아직 관례를 하지 않았을 때 처음 서쪽으로 나가 왕장사를 찾아가 한참 맑은 이야기를 하였다.
간 뒤에 구자가 물었다. "아까 손은 아버님과 견주어 어떠합니까."
장사가 말하였다. "아까 손은 부지런히 나아가 사람을 다그쳐 왔다."
협주 1
王濛、子修並已見。
왕몽과 아들 왕수는 아울러 이미 보인다.
77만일 안석이 동산의 뜻을 세운다면 마땅히 천하와 함께 그를 밀겠소
王右軍語劉尹:「故當共推安石。」劉尹曰:「若安石東山志立,當與天下共推之。」
왕우군이 유윤에게 말하였다. "짐짓 마땅히 함께 안석을 밀어야 하오."
유윤이 말하였다. "만일 안석이 동산의 뜻을 세운다면 마땅히 천하와 함께 그를 밀겠소."
협주 1
續晉陽秋曰:「初,安家於會稽上虞縣,優遊山林,六七年間,徵召不至,雖彈奏相屬,繼以禁錮,而晏然不屑也。」
『속진양추』에 이르기를 「처음에 사안이 회계 상우현에 집을 두고 산림에 여유롭게 노니니, 예닐곱 해 사이에 불러도 이르지 않았다. 비록 탄핵하여 아뢰는 것이 잇달고 이어서 벼슬길을 막았으나 편안히 하찮게 여겼다」 하였다.
78껍질을 벗겨도 다 참되다
謝公稱藍田:「掇皮皆真。」
사공이 남전을 일컬었다. "껍질을 벗겨도 다 참되다."
협주 1
徐廣晉紀曰:「述貞審,真意不顯。」
서광의 『진기』에 이르기를 「왕술은 곧고 살펴 참된 뜻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였다.
79쓸 만한 사람이로다, 쓸 만한 사람이로다
桓溫行經王敦墓邊過,望之云:「可兒!可兒!」
환온이 다니다 왕돈의 무덤 곁을 지나며 바라보고 말하였다. "쓸 만한 사람이로다, 쓸 만한 사람이로다."
협주 1
孫綽與庾亮牋曰:「王敦可人之目,數十年間也。」
손작이 유량에게 보낸 글에 이르기를 「왕돈이 쓸 만한 사람이라는 제목은 수십 해 사이의 일이다」 하였다.
80일소는 맑고 귀한 사람이라 한때에 뒤진 바가 없다
殷中軍道王右軍云:「逸少清貴人。吾於之甚至,一時無所後。」
은중군이 왕우군을 말하였다. "일소는 맑고 귀한 사람이다. 내가 그에 대하여 몹시 지극하니 한때에 뒤진 바가 없다."
협주 1
文章志曰:「羲之高爽有風氣,不類常流也。」
『문장지』에 이르기를 「왕희지는 높고 시원하며 풍모와 기운이 있어 여느 흐름과 같지 않았다」 하였다.
81나음으로 남을 이길 뿐 아니라 나음에 처함도 남을 이긴다
王仲祖稱殷淵源:「非以長勝人,處長亦勝人。」
왕중조가 은연원을 일컬었다. "나음으로 남을 이길 뿐 아니라 나음에 처함도 또한 남을 이긴다."
협주 1
晉陽秋曰:「浩善以通和接物也。」
『진양추』에 이르기를 「은호는 통하고 화함으로 사물을 맞기를 잘하였다」 하였다.
82은호의 진 형세는 넓고 넓어 뭇 근원을 헤아릴 수 없다
王司州與殷中軍語,嘆云:「己之府奧,蚤已傾寫而見,殷陳勢浩汗,眾源未可得測。」
왕사주가 은중군과 말하고 탄식하였다. "내 곳간 속은 일찍이 이미 기울여 쏟아 보였는데, 은호의 진 형세는 넓고 넓어 뭇 근원을 헤아릴 수 없다."
협주 1
徐廣晉紀曰:「浩清言妙辯玄致,當時名流,皆為其美譽。」
서광의 『진기』에 이르기를 「은호는 맑은 말과 묘한 말솜씨가 아득히 이르러, 그때의 이름난 흐름이 다 그를 아름답게 기렸다」 하였다.
83진장은 금과 옥이 집에 가득하다 하겠소
王長史謂林公:「真長可謂金玉滿堂。」林公曰:「金玉滿堂,復何為簡選?」王曰:「非為簡選,直致言處自寡耳。」
왕장사가 임공에게 말하였다. "진장은 금과 옥이 집에 가득하다 하겠소."
임공이 말하였다. "금과 옥이 집에 가득한데 다시 무엇하러 가려 뽑겠소."
왕장사가 말하였다. "가려 뽑는 것이 아니라 곧바로 이르는 말이 있는 데가 절로 적을 뿐이오."
협주 1
謂吉人之辭寡,非擇言而出也。
좋은 사람의 말은 적으니 말을 가려 내는 것이 아님을 이른 것이다.
84남이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은 이에 반드시 있지 않다
王長史道江道羣:「人可應有,乃不必有;人可應無,己必無。」
왕장사가 강도군을 말하였다. "남이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은 이에 반드시 있지 않고, 남이 마땅히 없어야 할 것은 그에게 반드시 없다."
협주 1
中興書曰:「江灌字道群,陳留人,僕射虨從弟也。有才器,與從兄道名相亞。〔一〕仕尚書、中護軍。」
『중흥서』에 이르기를 「강관은 자가 도군이요 진류 사람이니 복야 강빈의 사촌아우다. 재주와 그릇이 있어 사촌형과 도의 이름이 서로 버금갔다. 상서와 중호군으로 벼슬하였다」 하였다.
85회계 다섯 사람은 네 겨레의 뛰어난 이요 그때의 걸출한 이다
會稽孔沈、魏顗、虞球、虞存、謝奉,並是四族之雋,于時之傑。孫興公目之曰:「沈為孔家金,顗為魏家玉,虞為長、琳宗,謝為弘道伏。」
회계의 공침과 위의와 우구와 우존과 사봉은 아울러 네 겨레의 뛰어난 이요 그때의 걸출한 이였다.
손흥공이 두고 말하였다. "공침은 공씨 집안의 금이 되고, 위의는 위씨 집안의 옥이 되며, 우씨는 장과 임의 마루가 되고, 사씨는 홍도에게 엎드린다."
협주 2
沈、存、顗、奉並別見。虞氏譜曰:「球字和琳,會稽餘姚人。祖授,吳廣州刺史。父基、右軍司馬。球仕至黃門侍郎。」
공침과 우존과 위의와 사봉은 아울러 따로 보인다. 『우씨보』에 이르기를 「우구는 자가 화림이요 회계 여요 사람이다. 할아버지 우수는 오나라 광주자사요 아버지 우기는 우군사마다. 우구는 벼슬이 황문시랑에 이르렀다」 하였다.
長、琳,即存及球字也。弘道,謝奉字也。言虞氏宗長、琳之才,謝氏伏弘道之美也。
장과 임은 곧 우존과 우구의 자다. 홍도는 사봉의 자다. 우씨는 장과 임의 재주를 마루로 삼고 사씨는 홍도의 아름다움에 엎드림을 말한 것이다.
86경은 짐짓 그 구름 안개 속에 떨어졌소
王仲祖、劉真長造殷中軍談,談竟,俱載去。劉謂王曰:「淵源真可。」王曰:「卿故墮其雲霧中。」
왕중조와 유진장이 은중군을 찾아가 이야기하였는데, 이야기가 끝나자 함께 수레를 타고 갔다.
유진장이 왕중조에게 말하였다. "연원은 참으로 옳소."
왕중조가 말하였다. "경은 짐짓 그 구름 안개 속에 떨어졌소."
협주 1
中興書曰:「浩能言理,談論精微,長於老、易,故風流者皆宗歸之。」
『중흥서』에 이르기를 「은호가 결을 말할 수 있어 이야기하고 논함이 곱고 은미하며 『노자』와 『역』에 뛰어났으므로, 풍류 있는 이들이 다 그를 마루로 삼고 돌아갔다」 하였다.
87성품이 지극히 통하면서도 저절로 마디가 있다
劉尹每稱王長史云:「性至通,而自然有節。」
유윤이 왕장사를 일컬을 때마다 말하였다. "성품이 지극히 통하면서도 저절로 마디가 있다."
협주 1
濛別傳曰:「濛之交物,虛己納善,恕而後行,希見其喜慍之色。凡與一面,莫不敬而愛之。然少孤,事諸母甚謹,篤義穆族,不修小潔,以清貧見稱。」
『몽별전』에 이르기를 「왕몽이 사물과 사귈 때 저를 비워 착함을 받아들이고 용서한 뒤에 행하여, 그 기뻐하고 성내는 낯빛을 보기가 드물었다. 무릇 한 번 낯을 마주하면 공경하고 아끼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러나 젊어서 아비를 여의고 여러 어머니 섬기기를 몹시 삼갔으며, 옳음을 도타이 하고 겨레와 화목하며 작은 깨끗함을 닦지 않고 맑은 가난으로 일컬어졌다」 하였다.
88구름 같은 가지를 드러내되 무성히 퍼지지 않는다
王右軍道謝萬石「在林澤中,為自遒上」。嘆林公「器朗神雋」。道祖士少「風領毛骨,恐沒世不復見如此人」。道劉真長「標雲柯而不扶疎」。
왕우군이 사만석을 두고 「숲과 못 가운데 있으면 절로 굳세게 위다」 하였다.
임공을 탄식하여 「그릇이 환하고 정신이 뛰어나다」 하였다.
조사소를 두고 「풍모와 거느림과 터럭과 뼈대가 세상을 마치도록 다시 이런 사람을 보지 못할까 두렵다」 하였다.
유진장을 두고 「구름 같은 가지를 드러내되 무성히 퍼지지 않는다」 하였다.
협주 2
支遁別傳曰:「遁任心獨往,風期高亮。」
『지둔별전』에 이르기를 「지둔은 마음에 맡겨 홀로 가고 풍모와 기약이 높고 환하였다」 하였다.
劉尹別傳曰:「惔既令望,姻婭帝室,故屢居達官。然性不偶俗,心淡榮利。雖身登顯列,而每挹降,閑靜自守而已。」
『유윤별전』에 이르기를 「유담이 이미 좋은 바람이 있고 황실과 혼인으로 이어졌으므로 자주 높은 벼슬에 있었다. 그러나 성품이 세속과 짝하지 않고 마음이 영화와 이로움에 담박하였다. 비록 몸이 드러난 줄에 올랐으나 늘 겸손히 낮추고 한가롭고 고요히 스스로 지킬 뿐이었다」 하였다.
89유적옥은 가슴속에 묵은 것이 없다
簡文目庾赤玉:「省率治除。」謝仁祖云:「庾赤玉胷中無宿物。」
간문제가 유적옥을 두고 말하였다. "살피고 시원하며 다스려 덜어 낸다."
사인조가 말하였다. "유적옥은 가슴속에 묵은 것이 없다."
협주 1
赤玉,庾統小字。中興書曰:「統字長仁,潁川人,衛將軍擇子也。少有令名,仕至尋陽太守。」
적옥은 유통의 아이 적 이름이다. 『중흥서』에 이르기를 「유통은 자가 장인이요 영천 사람이니 위장군 유택의 아들이다. 젊어서 좋은 이름이 있었고 벼슬이 심양태수에 이르렀다」 하였다.
90말을 내고 글을 보낼 때 이따금 정과 이룸이 있다
殷中軍道韓太常曰:「康伯少自標置,居然是出羣器。及其發言遣辭,往往有情致。」
은중군이 한태상을 말하였다. "강백은 젊어서부터 스스로 드러내 두어 그대로 무리에 뛰어난 그릇이다. 그 말을 내고 글을 보냄에 이르러서는 이따금 정과 이룸이 있다."
협주 1
續晉陽秋曰:「康伯清和有思理,幼為舅殷浩所稱。」
『속진양추』에 이르기를 「강백은 맑고 화하며 생각과 결이 있어 어려서 외숙 은호에게 일컬어졌다」 하였다.
91다만 참되고 시원함이 조금 있어 곧 남의 많고 많음을 마주하기에 넉넉하다
簡文道王懷祖:「才既不長,於榮利又不淡;直以真率少許,便足對人多多許。」
간문제가 왕회조를 말하였다. "재주가 이미 길지 않고 영화와 이로움에 또 담박하지 않다. 다만 참되고 시원함이 조금 있어 곧 남의 많고 많음을 마주하기에 넉넉하다."
협주 1
晉陽秋曰:「述少貧約,簞瓢陋巷,不求聞達,由是為有識所重。」
『진양추』에 이르기를 「왕술은 젊어서 가난하고 검소하여 한 그릇 밥과 한 바가지 물로 누추한 골목에 살며 알려지기를 구하지 않았으니, 이로 말미암아 식견 있는 이에게 무겁게 여겨졌다」 하였다.
92장사는 절로 사물을 괴롭히려 하지 않소
林公謂王右軍云:「長史作數百語,無非德音,如恨不苦。」王曰:「長史自不欲苦物。」
임공이 왕우군에게 말하였다. "장사가 몇백 마디를 하는데 덕스러운 소리 아닌 것이 없으나, 괴롭히지 않는 것이 한인 듯하오."
왕우군이 말하였다. "장사는 절로 사물을 괴롭히려 하지 않소."
협주 1
苦謂窮人以辭。
괴롭힌다는 것은 말로 남을 궁하게 함을 이른다.
93글과 결이 점점 굳세어졌으니 이룸이 자못 쉽지 않다
殷中軍與人書,道謝萬「文理轉遒,成殊不易」。
은중군이 남에게 글을 보내 사만을 말하였다. "글과 결이 점점 굳세어졌으니 이룸이 자못 쉽지 않소."
협주 1
中興書曰:「萬才器俊秀,善自衒曜,故致有時譽。兼善屬文,能談論,時人稱之。」
『중흥서』에 이르기를 「사만은 재주와 그릇이 뛰어나고 빼어났으며 스스로 자랑하고 빛내기를 잘하였으므로 그때의 기림을 이루었다. 겸하여 글 짓기를 잘하고 이야기하고 논할 수 있어 그때 사람들이 그를 일컬었다」 하였다.
94강사전이 생각과 품음으로 통한 바가 유가의 지경만이 아니다
王長史云:「江思悛思懷所通,不翅儒域。」
왕장사가 말하였다. "강사전이 생각과 품음으로 통한 바가 유가의 지경만이 아니다."
협주 1
徐廣晉紀曰:「江惇字思悛,陳留人,僕射虨弟也。性篤學,手不釋書,博覽墳典,儒道兼綜。徵聘無所就,年四十九而卒。」
서광의 『진기』에 이르기를 「강돈은 자가 사전이요 진류 사람이니 복야 강빈의 아우다. 성품이 배움을 도타이 하여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옛 책을 널리 보아 유가와 도가를 아울렀다. 불러도 나아가는 바가 없었고 마흔아홉에 죽었다」 하였다.
95재주와 정이 들은 바를 넘었다
許玄度送母,始出都,人問劉尹:「玄度定稱所聞不?」劉曰:「才情過於所聞。」
허현도가 어머니를 배웅하며 처음 서울에 나오니, 어떤 이가 유윤에게 물었다. "현도가 참으로 들은 바에 걸맞소."
유윤이 말하였다. "재주와 정이 들은 바를 넘었소."
협주 1
許氏譜曰:「玄度母,華軼女也。」按詢集,詢出都迎姊,於路賦詩,續晉陽秋亦然。而此言送母,疑繆矣。
『허씨보』에 이르기를 「현도의 어머니는 화일의 딸이다」 하였다. 살피건대 허순의 문집에 허순이 서울에 나가 누이를 맞으며 길에서 시를 지었다 하고 『속진양추』도 또한 그러하다. 그런데 여기서 어머니를 배웅하였다 하니 그른 것이 아닌가 한다.
96왕씨 집안에 세 젊은이가 있다
阮光祿云:「王家有三年少:右軍、安期、長豫。」
완광록이 말하였다. "왕씨 집안에 세 젊은이가 있으니 우군과 안기와 장예다."
협주 1
阮裕、王悅、安期、王應並已見。
완유와 왕열과 안기와 왕응은 아울러 이미 보인다.
97만일 일곱 어진 이를 만났다면 반드시 스스로 팔을 잡고 숲에 들었으리라
謝公道豫章:「若遇七賢,必自把臂入林。」
사공이 예장을 말하였다. "만일 일곱 어진 이를 만났다면 반드시 스스로 팔을 잡고 숲에 들었으리라."
협주 1
江左名士傳曰:「鯤通簡有識,不修威儀。好跡逸而心整,形濁而言清。居身若穢,動不累高。鄰家有女,嘗往挑之。女方織,以梭投折其兩齒。既歸,傲然長嘯曰:『猶不廢我嘯歌』,其不事形骸如此。」
『강좌명사전』에 이르기를 「사곤은 통하고 간결하며 식견이 있고 위엄 있는 몸가짐을 닦지 않았다. 자취는 벗어나되 마음은 가지런하고 몸은 흐리되 말은 맑기를 좋아하였다. 몸가짐은 더러운 듯하되 움직임은 높음을 얽매지 않았다. 이웃집에 여자가 있었는데 일찍이 가서 그를 꾀었다. 여자가 바야흐로 베를 짜다가 북을 던져 그 두 이를 부러뜨렸다. 이윽고 돌아와 거만히 길게 휘파람 불며 『그래도 내 휘파람과 노래를 막지는 못한다』 하였으니, 그가 몸을 일삼지 않음이 이와 같았다」 하였다.
98은미한 데를 찾는 공이 왕보사에 못하지 않다
王長史嘆林公:「尋微之功,不減輔嗣。」
왕장사가 임공을 탄식하였다. "은미한 데를 찾는 공이 왕보사에 못하지 않다."
협주 1
支遁別傳曰:「遁神心警悟,清識玄遠,嘗至京師,王仲祖稱其造微之功,不異王弼。」
『지둔별전』에 이르기를 「지둔은 정신과 마음이 깨어 깨닫고 맑은 식견이 아득하고 멀었는데, 일찍이 서울에 이르매 왕중조가 그 은미한 데 나아가는 공이 왕필과 다르지 않다 일컬었다」 하였다.
99일어남과 일어나지 않음으로 강좌의 흥함과 망함을 점쳤다
殷淵源在墓所幾十年。于時朝野以擬管、葛,起不起,以卜江左興亡。
은연원이 무덤 있는 데에 거의 열 해를 있었다.
그때 조정과 들이 관중과 제갈량에 견주어, 일어남과 일어나지 않음으로 강좌의 흥함과 망함을 점쳤다.
협주 1
續晉陽秋曰:「時穆帝幼沖,母后臨朝,簡文親賢民望,任登宰輔。桓溫有平蜀、洛之勳,擅彊西陝。帝自料文弱,無以抗之。陳郡殷浩,素有盛名,時論比之管、葛。故徵浩為揚州,溫知意在抗己,甚忿焉。」
『속진양추』에 이르기를 「그때 목제가 어리고 어머니 태후가 조정에 임하였는데, 간문제가 어질고 백성의 바람에 가까워 소임이 재상에 올랐다. 환온에게 촉과 낙양을 평정한 공이 있어 서쪽 섬 땅에서 굳셈을 오로지하였다. 임금이 스스로 글이 약하여 그를 맞설 수 없다 헤아렸다. 진군의 은호가 본디 성한 이름이 있어 그때 논이 관중과 제갈량에 견주었다. 그러므로 은호를 불러 양주를 삼으니, 환온이 뜻이 저를 맞서는 데 있음을 알고 몹시 분해하였다」 하였다.
100맑은 살핌이 귀하고 요긴하다
殷中軍道右軍:「清鑒貴要。」
은중군이 우군을 말하였다. "맑은 살핌이 귀하고 요긴하다."
협주 1
晉安帝紀曰:「羲之風骨清舉也。」
『진안제기』에 이르기를 「왕희지는 풍모와 뼈대가 맑게 들렸다」 하였다.
101자못 일찍이 이런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謝太傅為桓公司馬,桓詣謝,值謝梳頭,遽取衣幘,桓公云:「何煩此。」因下共語至暝。既去,謂左右曰:「頗曾見如此人不?」
사태부가 환공의 사마가 되었을 때, 환공이 사태부를 찾아가니 마침 사태부가 머리를 빗고 있다가 다급히 옷과 두건을 가져오게 하였다.
환공이 말하였다. "어찌 이를 번거로이 하시오."
이로 인해 내려와 함께 말하여 저물녘에 이르렀다.
이미 간 뒤에 곁의 사람에게 말하였다. "자못 일찍이 이런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협주 1
續晉陽秋曰:「初,安優游山水,以敷文析理自娛。桓溫在西蕃,欽其盛名,諷朝廷請為司馬。以世道未夷,志存匡濟。年四十,起家應務也。」
『속진양추』에 이르기를 「처음에 사안이 산과 물에 여유롭게 노닐며 글을 펴고 결을 쪼개어 스스로 즐겼다. 환온이 서쪽 울타리에 있으면서 그 성한 이름을 흠모하여 조정에 넌지시 일러 사마로 삼기를 청하였다. 세상의 길이 아직 고르지 않아 뜻이 바로잡아 건짐에 있었으므로, 나이 마흔에 집에서 일어나 일에 응하였다」 하였다.
102어찌 이제 스스로 시골에서 뽑고 도리어 어기겠는가
謝公作宣武司馬,屬門生數十人於田曹中郎趙悅子。悅子以告宣武,宣武云:「且為用半。」趙俄而悉用之,曰:「昔安石在東山,縉紳敦逼,恐不豫人事;況今自鄉選,反違之邪?」
사공이 선무의 사마가 되어 문생 수십 사람을 전조중랑 조열자에게 맡겼다.
열자가 선무에게 알리니 선무가 말하였다. "우선 반만 쓰시오."
조열자가 이윽고 다 쓰며 말하였다. "옛날 안석이 동산에 있을 때 벼슬한 이들이 도타이 다그쳐도 사람 일에 끼지 않을까 두려워하였는데, 하물며 이제 스스로 시골에서 뽑았거늘 도리어 어기겠는가."
협주 1
伏滔大司馬寮屬名曰:「悅字悅子,下邳人。歷大司馬參軍、左衛將軍。」
복도의 「대사마요속명」에 이르기를 「조열은 자가 열자요 하비 사람이다. 대사마참군과 좌위장군을 지냈다」 하였다.
103사상은 정신과 품음이 빼어나고 시원하다
桓宣武表云:「謝尚神懷挺率,少致民譽。」
환선무가 표를 올려 말하였다. "사상은 정신과 품음이 빼어나고 시원하여 젊어서 백성의 기림을 이루었습니다."
협주 1
溫集載其平洛表曰:「今中州既平,宜時綏定。鎮西將軍豫州刺史尚,神懷挺率,少致人譽,是以入贊百揆,出蕃方司。宜進據洛陽,撫寧黎庶。謂可本官都督司州諸軍事。」
환온의 문집에 그 낙양 평정을 아뢴 표가 실려 있으니 이르기를 「이제 중원이 이미 평정되었으니 마땅히 때맞추어 어루만져 정해야 합니다. 진서장군 예주자사 사상은 정신과 품음이 빼어나고 시원하여 젊어서 사람의 기림을 이루었으니, 이 때문에 들어와 온갖 벼슬을 돕고 나가서 지방을 맡았습니다. 마땅히 나아가 낙양을 차지하고 백성을 어루만져 편안히 해야 하니, 본관으로 사주의 여러 군사를 도독하게 하실 만합니다」 하였다.
104사상은 저절로 좋고 위다
世目謝尚為令達,阮遙集云:「清暢似達。」或云:「尚自然令上。」
세상이 사상을 두고 좋고 통달하다 하니, 완요집이 말하였다. "맑고 시원하여 통달함과 비슷하다."
어떤 이는 말하였다. "사상은 저절로 좋고 위다."
협주 1
晉陽秋曰:「尚率易挺達,超悟令上也。」
『진양추』에 이르기를 「사상은 시원하고 쉬우며 빼어나 통달하고 뛰어나 깨쳐 좋고 위였다」 하였다.
105내 집안에서 오래 이런 사람을 보지 못하였다
桓大司馬病。謝公往省病,從東門入。桓公遙望,嘆曰:「吾門中久不見如此人!」
환대사마가 병들었다. 사공이 병을 살피러 가서 동쪽 문으로 들어갔다.
환공이 멀리 바라보고 탄식하였다. "내 집안에서 오래 이런 사람을 보지 못하였다."
협주 1
溫時在姑孰。
환온이 그때 고숙에 있었다.
106간문제가 경예를 두고 환하고 넉넉하다 하다
簡文目敬豫為「朗豫」。
간문제가 경예를 두고 「환하고 넉넉하다」 하였다.
협주 1
王恬已見。文字志曰:「恬識理明貴,為後進冠冕也。」
왕념은 이미 보인다. 『문자지』에 이르기를 「왕념은 식견과 결이 밝고 귀하여 뒤에 나아갈 이의 으뜸이 되었다」 하였다.
107위군장의 풍모와 운치가 비록 경들에게 미치지 못하나 기울여 쏟는 데는 또한 가깝지 않소
孫興公為庾公參軍,共遊白石山。衛君長在坐,孫曰:「此子神情都不關山水,而能作文。」庾公曰:「衛風韻雖不及卿諸人,傾倒處亦不近。」孫遂沐浴此言。
손흥공이 유공의 참군이 되어 함께 백석산에 노닐었다. 위군장이 자리에 있었다.
손흥공이 말하였다. "이 사람은 정신과 정이 도무지 산과 물에 상관없는데도 글을 지을 수 있소."
유공이 말하였다. "위군장의 풍모와 운치가 비록 경들에게 미치지 못하나 기울여 쏟는 데는 또한 가깝지 않소."
손흥공이 마침내 이 말에 목욕하였다.
협주 1
衛氏譜曰:「承字君長,成陽人,位至左軍長史。」
『위씨보』에 이르기를 「위승은 자가 군장이요 성양 사람이니 자리가 좌군장사에 이르렀다」 하였다.
108돌덩이가 쌓인 듯하되 바른 뼈대가 있다
王右軍目陳玄伯:「壘塊有正骨。」
왕우군이 진현백을 두고 말하였다. "돌덩이가 쌓인 듯하되 바른 뼈대가 있다."
협주 1
陳泰已見。
진태는 이미 보인다.
109유윤이 나를 앎이 내가 나를 앎보다 낫다
王長史云:「劉尹知我,勝我自知。」
왕장사가 말하였다. "유윤이 나를 앎이 내가 나를 앎보다 낫다."
협주 1
濛別傳曰:「濛與沛國劉惔齊名,時人以濛比袁曜卿,惔比荀奉倩,而共交友,甚相知賞也。」
『몽별전』에 이르기를 「왕몽이 패국의 유담과 이름을 나란히 하였는데, 그때 사람들이 왕몽을 원요경에 견주고 유담을 순봉천에 견주었으며, 함께 벗으로 사귀어 몹시 서로 알아주고 기렸다」 하였다.
110이는 바리때 뒤의 왕필과 하안이다
王、劉聽林公講,王語劉曰:「向高坐者,故是凶物。」復東聽,王又曰:「自是鉢釪後王,何人也。」
왕씨와 유씨가 임공의 강을 듣는데, 왕씨가 유씨에게 말하였다. "아까 높은 자리에 있는 이는 짐짓 흉한 물건이오."
다시 동쪽에서 듣고 왕씨가 또 말하였다. "이는 절로 바리때 뒤의 왕필과 하안이오."
협주 1
高逸沙門傳曰:「王濛恆尋遁,遇祗洹寺中講,正在高坐上,每舉麈尾,常領數百言,而情理俱暢。預坐百餘人,皆結舌注耳。濛云聽講眾僧:『向高坐者,是鉢釪後王、何人也。』」
『고일사문전』에 이르기를 「왕몽이 늘 지둔을 찾았는데, 기원사 안에서 강하는 것을 만나매 마침 높은 자리 위에 있어 주미를 들 때마다 늘 몇백 마디를 거느리는데 정과 결이 함께 시원하였다. 자리에 든 이가 백여 사람인데 다 혀가 굳고 귀를 기울였다. 왕몽이 강을 듣는 뭇 승려에게 이르기를 『아까 높은 자리에 있던 이는 바리때 뒤의 왕필과 하안이다』 하였다」 하였다.
111곱고 정밀한 이가 아니면 더불어 결을 쪼갤 수 없다
許玄度言:「琴賦所謂『非至精者,不能與之析理』,劉尹其人;『非淵靜者,不能與之閑止』,簡文其人。」
허현도가 말하였다. "「금부」에 이른바 「곱고 정밀한 이가 아니면 더불어 결을 쪼갤 수 없다」 하였으니 유윤이 그 사람이요, 「깊고 고요한 이가 아니면 더불어 한가로이 머물 수 없다」 하였으니 간문제가 그 사람이다."
협주 1
稽叔夜琴賦也。劉惔真長,丹陽尹。
혜숙야의 「금부」다. 유담 진장은 단양윤이다.
112큰 마루가 비록 쇠하였으나 위씨에게 이미 다시 사람이 있구나
魏隱兄弟,少有學義,總角詣謝奉。奉與語,大說之,曰:「大宗雖衰,魏氏已復有人。」
위은 형제가 젊어서 배움과 옳음이 있었는데, 더벅머리로 사봉을 찾아갔다.
사봉이 함께 말하고 크게 기뻐하며 말하였다. "큰 마루가 비록 쇠하였으나 위씨에게 이미 다시 사람이 있구나."
협주 1
魏氏譜曰:「隱字安時,會稽上虞人。歷義興太守、御史中丞。弟逷,黃門郎。」
『위씨보』에 이르기를 「위은은 자가 안시요 회계 상우 사람이다. 의흥태수와 어사중승을 지냈다. 아우 위적은 황문랑이다」 하였다.
113연원의 말은 뛰어나 이르고 간결하고 지극하지는 않다
簡文云:「淵源語不超詣簡至;然經綸思尋處,故有局陳。」
간문제가 말하였다. "연원의 말은 뛰어나 이르고 간결하고 지극하지는 않다. 그러나 다스리고 생각하여 찾는 데에는 짐짓 판과 진이 있다."
114법태를 얻지 못하면 곧 수레를 세우고 가지 않았다
初,法汰北來未知名,王領軍供養之。每與周旋,行來往名勝許,輒與俱。不得汰,便停車不行。因此名遂重。
처음에 법태가 북쪽에서 와 아직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을 때 왕영군이 그를 받들어 길렀다.
함께 어울릴 때마다 이름난 뛰어난 이의 처소에 오갈 때 문득 그와 함께하였고, 법태를 얻지 못하면 곧 수레를 세우고 가지 않았다.
이로 인해 이름이 마침내 무거워졌다.
협주 3
車頻秦書曰:「釋道安為慕容晉所掠,欲投襄陽,行至新野,集眾議曰:『今遭凶年,不依國主,則法事難舉。』乃分僧眾,使竺法汰詣揚州,曰:『彼多君子,上勝可投。』法汰遂渡江,至揚土焉。」
거빈의 『진서』에 이르기를 「석도안이 모용진에게 사로잡혔다가 양양에 가려 하여 신야에 이르러, 무리를 모아 의논하기를 『이제 흉년을 만났으니 나라 임금에게 기대지 않으면 곧 법의 일을 들기 어렵다』 하고, 이에 승려 무리를 나누어 축법태로 양주에 가게 하며 『저기에 군자가 많으니 위로 나아가 갈 만하다』 하였다. 법태가 마침내 강을 건너 양주 땅에 이르렀다」 하였다.
中興書曰:「王洽字敬和,丞相導第三子,累遷吳郡內史,為士民所懷。徵拜中領軍,尋加中書令,不拜。年二十六而卒。」
『중흥서』에 이르기를 「왕흡은 자가 경화요 승상 왕도의 셋째 아들이다. 여러 벼슬을 거쳐 오군내사가 되어 선비와 백성에게 품어졌다. 불려 중령군에 임명되고 이윽고 중서령을 더하였으나 임명받지 않았다. 나이 스물여섯에 죽었다」 하였다.
名德沙門題目曰:「法汰高亮開達。」孫綽為汰贊曰:「淒風拂林,明泉映壑。爽爽法汰,校德無怍。事外瀟灑,神內恢廓。實從前起,名隨後躍。」泰元起居注曰:「法汰以十二卒。烈宗詔曰:『法汰飾喪逝,哀痛傷懷,可贈錢十萬。』」
『명덕사문제목』에 이르기를 「법태는 높고 환하며 열고 통달하였다」 하였다. 손작이 법태를 위해 지은 기림에 이르기를 「쓸쓸한 바람이 숲을 스치고 밝은 샘이 골짜기에 비친다. 시원하고 시원한 법태는 덕을 견주어 부끄러움이 없다. 일 밖으로 시원하고 정신 안으로 넓다. 실은 앞에서 일어나고 이름은 뒤를 좇아 뛴다」 하였다. 『태원기거주』에 이르기를 「법태가 십이월에 죽었다. 열종이 조칙을 내려 이르기를 『법태의 죽음을 꾸며 슬프고 아파 마음이 상하니 돈 십만을 내려 줄 만하다』 하였다」 하였다.
115식견과 이룸이 편안히 처하여 그때 이야기에 걸맞기에 넉넉하다
王長史與大司馬書,道淵源「識致安處,足副時談。」
왕장사가 대사마에게 글을 보내 연원을 말하였다. "식견과 이룸이 편안히 처하여 그때 이야기에 걸맞기에 넉넉하오."
116유윤의 말은 살피고 자세하다
謝公云:「劉尹語審細。」
사공이 말하였다. "유윤의 말은 살피고 자세하다."
협주 1
孫綽為惔諫敘曰:「神猶淵鏡,言必珠玉。」
손작이 유담을 위해 지은 간서에 이르기를 「정신은 못과 거울 같고 말은 반드시 구슬과 옥이었다」 하였다.
117조정이 그 재주와 어긋나게 썼을 뿐이다
桓公語嘉賓:「阿源有德有言,向使作令僕,足以儀刑百揆。朝廷用違其才耳。」
환공이 가빈에게 말하였다. "아원은 덕이 있고 말이 있으니, 만일 상서령이나 복야를 삼았다면 온갖 벼슬아치의 본이 되기에 넉넉하였을 것이오. 조정이 그 재주와 어긋나게 썼을 뿐이오."
협주 1
嘉賓,郗超小字也。阿源,殷浩也。
가빈은 치초의 아이 적 이름이다. 아원은 은호다.
118유윤의 말은 끝에 가서 또한 조금 다르나 그 말을 되돌려 보면 또한 이에 허물이 없다
簡文語嘉賓:「劉尹語末後亦小異,回復其言,亦乃無過。」
간문제가 가빈에게 말하였다. "유윤의 말은 끝에 가서 또한 조금 다르나, 그 말을 되돌려 보면 또한 이에 허물이 없소."
119두 어진 이가 짐짓 절로 재주와 정이 있다
孫興公、許玄度共在白樓亭,共商略先往名達。林公既非所關,聽訖云:「二賢故自有才情。」
손흥공과 허현도가 함께 백루정에 있으면서 앞서 간 이름나고 통달한 이들을 함께 헤아려 말하였다.
임공이 이미 상관하는 바가 아니라 다 듣고 말하였다. "두 어진 이가 짐짓 절로 재주와 정이 있소."
협주 1
會稽記曰:「亭在山陰,臨流映壑也。」
『회계기』에 이르기를 「정자가 산음에 있어 흐름에 다다르고 골짜기에 비친다」 하였다.
120우리 집안 아림은 무늬와 맑음이 크게 나온다
王右軍道東陽「我家阿林,章清太出」。
왕우군이 동양을 말하였다. "우리 집안 아림은 무늬와 맑음이 크게 나온다."
협주 1
「林」應為「臨」。王氏譜曰:「臨之字仲產,琅邪人,僕射彪之子。仕至東陽太守。」
「림」은 마땅히 「림」이 되어야 한다. 『왕씨보』에 이르기를 「왕임지는 자가 중산이요 낭야 사람이니 복야 왕표지의 아들이다. 벼슬이 동양태수에 이르렀다」 하였다.
121연원은 일을 만나면 늘 쉽게 한다
王長史與劉尹書,道淵源「觸事長易」。
왕장사가 유윤에게 글을 보내 연원을 말하였다. "일을 만나면 늘 쉽게 하오."
122왕수재의 즐겨 맡기는 성품은 집안의 풍모에서 나왔다
謝中郎云:「王脩載樂託之性,出自門風。」
사중랑이 말하였다. "왕수재의 즐겨 맡기는 성품은 집안의 풍모에서 나왔다."
협주 1
王氏譜曰:「耆之字修載,琅邪人,荊州刺史廙第三子。歷中書郎、鄱陽太守、給事中。」
『왕씨보』에 이르기를 「왕기지는 자가 수재요 낭야 사람이니 형주자사 왕이의 셋째 아들이다. 중서랑과 파양태수와 급사중을 지냈다」 하였다.
123왕경인은 뛰어나게 깨친 사람이다
林公云:「王敬仁是超悟人。」
임공이 말하였다. "왕경인은 뛰어나게 깨친 사람이다."
협주 1
文字志曰:「脩之少有秀令之稱。」
『문자지』에 이르기를 「왕수는 젊어서 빼어나고 좋다는 일컬음이 있었다」 하였다.
124옛날 일찍이 북면하였소
劉尹先推謝鎮西,謝後雅重劉曰:「昔嘗北面。」
유윤이 먼저 사진서를 밀었는데, 사진서가 뒤에 우아하게 유윤을 무겁게 여겨 말하였다. "옛날 일찍이 북면하였소."
협주 1
按謝尚年長於惔,神穎夙彰,而曰北面於劉,非可信。
살피건대 사상은 나이가 유담보다 많고 정신과 빼어남이 일찍 드러났는데, 유담에게 북면하였다 하니 믿을 만한 것이 아니다.
125사주는 더불어 숲과 못에 노닐 만하다
謝太傅稱王脩齡曰:「司州可與林澤遊。」
사태부가 왕수령을 일컬어 말하였다. "사주는 더불어 숲과 못에 노닐 만하다."
협주 1
王胡之別傳曰:「胡之常遺世務,以高尚為情,與謝安相善也。」
『왕호지별전』에 이르기를 「왕호지는 늘 세상일을 버리고 높이 함을 정으로 삼았으며 사안과 서로 좋았다」 하였다.
126양주에서 홀로 걷는 왕문도요 뒤에 나와 사람에 뛰어난 치가빈이다
諺曰:「楊州獨步王文度,後來出人郗嘉賓。」
속담에 이르기를 「양주에서 홀로 걷는 왕문도요 뒤에 나와 사람에 뛰어난 치가빈이다」 하였다.
협주 1
續晉陽秋曰:「超少有才氣,越世負俗,不循常檢。時人為一代盛譽者,語曰:『太才槃槃謝家安,江東獨步王文度,盛德日新郄嘉賓。』」其語小異,故詳錄焉。
『속진양추』에 이르기를 「치초는 젊어서 재주와 기운이 있어 세상을 넘고 속됨을 저버려 늘 하는 검속을 좇지 않았다. 그때 사람들이 한 세대의 성한 기림으로 삼은 말에 이르기를 『큰 재주가 넘실거리는 사씨 집안 안석이요, 강동에서 홀로 걷는 왕문도요, 성한 덕이 날로 새로운 치가빈이다』 하였다」 하였다. 그 말이 조금 다르므로 자세히 적는다.
127여러 강씨가 다 다시 스스로 살아가기에 넉넉하다
人問王長史江虨兄弟羣從,王答曰:「諸江皆復足自生活。」
어떤 이가 왕장사에게 강빈 형제와 여러 겨레붙이를 물으니, 왕장사가 대답하였다. "여러 강씨가 다 다시 스스로 살아가기에 넉넉하다."
협주 1
虨及弟淳,從灌,並有德行,知名於世。
강빈과 아우 강순과 사촌 강관이 아울러 덕행이 있어 세상에 이름이 알려졌다.
128나가서 문을 나서면 다시 사람으로 하여금 그립게 하지 않는다
謝太傅道安北:「見之乃不使人厭,然出戶去,不復使人思。」
사태부가 안북을 말하였다. "보면 이에 사람으로 하여금 싫증 나게 하지 않는데, 나가서 문을 나서면 다시 사람으로 하여금 그립게 하지 않는다."
협주 1
安北,王坦之也。續晉陽秋曰:「謝安初攜幼釋同好,養志海濱,襟情超暢,尤好聲律。然抑之以禮,在哀能至,弟萬之喪,不聽絲竹者將十年。及輔政,而修室第園館,麗車服,雖期功之慘,不廢妓樂。王坦之因苦諫焉。」按謝公蓋以王坦之好直言,故不思爾。
안북은 왕탄지다. 『속진양추』에 이르기를 「사안이 처음에 어린 이를 이끌고 좋아하는 이들과 함께 뜻을 바닷가에서 기르며, 옷깃과 정이 뛰어나 시원하고 유난히 소리와 가락을 좋아하였다. 그러나 예로써 눌러 슬픔에 이를 수 있었으니, 아우 사만의 상에 실과 대의 소리를 듣지 않은 것이 거의 열 해였다. 정사를 돕게 되어서는 집과 동산과 관사를 닦고 수레와 옷을 곱게 하며, 비록 기년과 대공의 참혹함이 있어도 기녀와 음악을 폐하지 않았다. 왕탄지가 이로 인해 괴롭게 간하였다」 하였다. 살피건대 사공이 대개 왕탄지가 곧은 말을 좋아하므로 그립지 않았을 뿐이다.
129사주는 나아가 뛰어나며 두루 판가름한다
謝公云:「司州造勝遍決。」
사공이 말하였다. "사주는 나아가 뛰어나며 두루 판가름한다."
협주 1
宋明帝文章志曰:「胡之性簡,好達玄言也。」
송나라 명제의 『문장지』에 이르기를 「왕호지는 성품이 간결하고 아득한 말에 통달하기를 좋아하였다」 하였다.
130하차도가 술 마시는 것을 보면 사람으로 하여금 집안 술을 기울이고 싶게 한다
劉尹云:「見何次道飲酒,使人欲傾家釀。」
유윤이 말하였다. "하차도가 술 마시는 것을 보면 사람으로 하여금 집안 술을 기울이고 싶게 한다."
협주 1
充飲酒能溫克。
하충은 술을 마셔도 따뜻이 이길 수 있었다.
131또한 이름난 선비 가운데 높은 지조를 지닌 이요
謝太傅語真長:「阿齡於此事,故欲太厲。」劉曰:「亦名士之高操者。」
사태부가 진장에게 말하였다. "아령은 이 일에 짐짓 너무 매섭게 하려 하오."
유윤이 말하였다. "또한 이름난 선비 가운데 높은 지조를 지닌 이요."
협주 2
修齡,王胡之小字也。
수령은 왕호지의 아이 적 이름이다.
胡之別傳曰:「胡之治身清約,以風操自居。」
『호지별전』에 이르기를 「왕호지는 몸 다스리기를 맑고 검소히 하고 풍모와 지조로 스스로 처하였다」 하였다.
132세상이 사소를 환하다 하는데 우리 집안도 또한 꿰뚫어 환하다 한다
王子猷說:「世目士少為朗,我家亦以為徹朗。」
왕자유가 말하였다. "세상이 사소를 두고 환하다 하는데 우리 집안도 또한 꿰뚫어 환하다 한다."
협주 1
晉諸公贊曰:「祖約少有清稱。」
『진제공찬』에 이르기를 「조약은 젊어서 맑은 일컬음이 있었다」 하였다.
133장사의 말은 몹시 많지 않으나 좋은 소리가 있다 하겠다
謝公云:「長史語甚不多,可謂有令音。」
사공이 말하였다. "장사의 말은 몹시 많지 않으나 좋은 소리가 있다 하겠다."
협주 1
王濛別傳曰:「濛性和暢,能清言,談道貴理中,簡而有會。商略古賢,顯默之際,辭旨劭令,往往有高致。」
『왕몽별전』에 이르기를 「왕몽은 성품이 화하고 시원하며 맑은 말을 할 수 있었고, 도를 말하되 결의 알맞음을 귀히 여겨 간결하면서도 모임이 있었다. 옛 어진 이를 헤아려 말할 때 드러남과 잠잠함의 즈음에 말과 뜻이 좋고 아름다워 이따금 높은 이룸이 있었다」 하였다.
134경인은 글과 배움이 화살촉처럼 날카로워 새롭지 않은 것이 없다
謝鎮西道敬仁「文學鏃鏃,無能不新」。
사진서가 경인을 말하였다. "글과 배움이 화살촉처럼 날카로워 새롭지 않은 것이 없다."
협주 1
語林曰:「敬仁有異才,時賢皆重之。王右軍在郡迎敬仁,叔仁輒同車,常惡其遲。後以馬迎敬仁,雖復風雨,亦不以車也。」
『어림』에 이르기를 「왕경인이 남다른 재주가 있어 그때 어진 이들이 다 그를 무겁게 여겼다. 왕우군이 고을에 있으면서 경인을 맞을 때 숙인이 문득 수레를 함께 탔는데 늘 그 더딤을 미워하였다. 뒤에는 말로 경인을 맞아 비록 다시 바람과 비가 와도 또한 수레로 하지 않았다」 하였다.
135말할 수 없으면서 말하지 않을 수 있다
劉尹道江道羣「不能言而能不言」。
유윤이 강도군을 말하였다. "말할 수 없으면서 말하지 않을 수 있다."
협주 1
江灌已見。
강관은 이미 보인다.
136사주를 보면 깨어 깨침이 갈마들어 이르러 사람으로 하여금 머무르지 못하게 한다
林公云:「見司州警悟交至,使人不得住,亦終日忘疲。」
임공이 말하였다. "사주를 보면 깨어 깨침이 갈마들어 이르러 사람으로 하여금 머무르지 못하게 하고, 또한 온종일 고달픔을 잊게 한다."
협주 1
王胡之別傳曰:「胡之少有風尚,才器率舉,有秀悟之稱。」
『왕호지별전』에 이르기를 「왕호지는 젊어서 풍모와 높임이 있고 재주와 그릇이 시원하게 들려 빼어나 깨쳤다는 일컬음이 있었다」 하였다.
137구자는 빼어나 나오고 아흥은 맑고 화하다
世稱:「苟子秀出,阿興清和。」
세상이 일컫기를 「구자는 빼어나 나오고 아흥은 맑고 화하다」 하였다.
협주 1
苟子已見。阿興,王蘊小字。
구자는 이미 보인다. 아흥은 왕온의 아이 적 이름이다.
138유윤은 차나무 줄기처럼 실한 결이 있다
簡文云:「劉尹茗柯有實理。」
간문제가 말하였다. "유윤은 차나무 줄기처럼 실한 결이 있다."
협주 1
柯,一作打,又作仃,又作打。
가는 한 본에 타로, 또 정으로, 또 타로 되어 있다.
139그대의 어버이는 그 고모요 내 아버지는 오직 외숙이다
謝胡兒作著作郎,嘗作《王堪傳》。不諳堪是何似人,咨謝公。謝公答曰:「世冑亦被遇。堪,烈之子,阮千里姨兄弟,潘安仁中外。安仁詩所謂『子親伊姑,我父唯舅』。是許允壻。」
사호아가 저작랑이 되어 일찍이 「왕감전」을 지었다.
왕감이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하여 사공에게 여쭈었다.
사공이 대답하였다. "세주도 또한 대접을 받았다. 왕감은 왕열의 아들이요 완천리의 이종사촌 형제며 반안인과 안팎으로 얽힌 사이다. 안인의 시에 이른바 『그대의 어버이는 그 고모요 내 아버지는 오직 외숙이다』 한 것이다. 허윤의 사위다."
협주 3
晉諸公贊曰:「堪字世冑,東平壽張人,少以高亮義正稱。為尚書左丞,有準繩操。為石勒所害,贈太尉。」
『진제공찬』에 이르기를 「왕감은 자가 세주요 동평 수장 사람이다. 젊어서 높고 환하며 옳고 바름으로 일컬어졌다. 상서좌승이 되어 먹줄 같은 지조가 있었다. 석륵에게 해를 입었고 태위를 내려 주었다」 하였다.
晉諸公贊曰:「烈字陽秀,蚤知名。魏朝為治書御史。」
『진제공찬』에 이르기를 「왕열은 자가 양수요 일찍 이름이 알려졌다. 위나라 조정에서 치서어사가 되었다」 하였다.
岳集曰:「堪為成都王軍司馬。岳送至北邙別,作詩曰:『微微髮膚,受之父母。峨峨王侯,中外之首。子親伊姑,我父唯舅。』」
반악의 문집에 이르기를 「왕감이 성도왕의 군사마가 되었다. 반악이 북망까지 배웅하며 헤어질 때 시를 지어 이르기를 『가늘고 가는 터럭과 살갗은 부모에게서 받았다. 높고 높은 왕후는 안팎의 으뜸이다. 그대의 어버이는 그 고모요 내 아버지는 오직 외숙이다』 하였다」 하였다.
140하늘과 땅이 앎이 없어 백도로 하여금 아들이 없게 하였다
謝太傅重鄧僕射,常言「天地無知,使伯道無兒」。
사태부가 등복야를 무겁게 여겨 늘 말하였다. "하늘과 땅이 앎이 없어 백도로 하여금 아들이 없게 하였다."
협주 1
晉陽秋曰:「鄧攸既棄子,遂無復繼嗣,為有識傷惜。」
『진양추』에 이르기를 「등유가 이미 아들을 버리고 마침내 다시 이을 뒤가 없으니, 식견 있는 이들이 상하고 아깝게 여겼다」 하였다.
141경화는 깃들여 맡김이 좋고 아름답다
謝公與王右軍書曰:「敬和棲託好佳。」
사공이 왕우군에게 글을 보내 말하였다. "경화는 깃들여 맡김이 좋고 아름답소."
협주 1
中興書曰:「洽於公子中最知名,與潁川荀羡俱有美稱。」
『중흥서』에 이르기를 「왕흡이 공자 가운데 가장 이름이 알려져 영천의 순선과 함께 아름다운 일컬음이 있었다」 하였다.
142장씨는 글이요 주씨는 무예요 육씨는 참됨이요 고씨는 두터움이다
吳四姓舊目云:「張文、朱武、陸忠、顧厚。」
오 땅 네 성씨를 예부터 두고 말하기를 「장씨는 글이요 주씨는 무예요 육씨는 참됨이요 고씨는 두터움이다」 하였다.
협주 1
吳錄士林曰:「吳郡有顧、陸、朱、張,為四姓。三國之間,四姓盛焉。」
『오록사림』에 이르기를 「오군에 고씨와 육씨와 주씨와 장씨가 있어 네 성씨가 되었다. 삼국 사이에 네 성씨가 성하였다」 하였다.
143그대 집안 남전은 온몸에 여느 사람의 일이 없소
謝公語王孝伯:「君家藍田,舉體無常人事。」
사공이 왕효백에게 말하였다. "그대 집안 남전은 온몸에 여느 사람의 일이 없소."
협주 1
按述雖簡,而性不寬裕,投火怒蠅,方之未甚。若非太傅虛相褒飾,則世說謬設斯語也。
살피건대 왕술이 비록 간결하나 성품이 너그럽고 넉넉하지 않아, 불에 던지고 파리에 성낸 일이 이에 견주면 심한 것도 아니다. 만일 태부가 헛되이 서로 기려 꾸민 것이 아니라면, 곧 『세설』이 이 말을 그르게 베푼 것이다.
144현도의 재주와 정은 짐짓 쉬이 많이 있지 않소
許掾嘗詣簡文,爾夜風恬月朗,乃共作曲室中語。襟情之詠,偏是許之所長。辭寄清婉,有逾平日。簡文雖契素,此遇尤相咨嗟。不覺造厀,共叉手語,達于將旦。既而曰:「玄度才情,故未易多有許。」
허연이 일찍이 간문제를 찾아갔는데, 그날 밤 바람이 잔잔하고 달이 밝아 이에 함께 굽은 방 안에서 이야기하였다.
마음에 품은 것을 읊는 것은 유난히 허연이 잘하는 바였다. 말과 부침이 맑고 부드러워 여느 날보다 나았다.
간문제가 비록 본디 맞았으나 이 만남에 더욱 서로 감탄하였다. 저도 모르게 무릎이 닿아 함께 손을 맞잡고 말하여 새벽에 이르렀다.
이윽고 말하였다. "현도의 재주와 정은 짐짓 쉬이 많이 있지 않소."
협주 1
續晉陽秋曰:「詢能言理,曾出都迎姊,簡文皇帝劉真長說其情旨及襟懷之詠。每造厀賞對,夜以繫日。」
『속진양추』에 이르기를 「허순이 결을 말할 수 있었는데, 일찍이 서울에 나와 누이를 맞을 때 간문황제와 유진장이 그 정과 뜻과 품은 바의 읊음을 말하였다. 무릎이 닿도록 기려 마주할 때마다 밤으로 낮을 이었다」 하였다.
145열어 아름다움으로 구하지 마시오
殷允出西,郗超與袁虎書云:「子思求良朋,託好足下,勿以開美求之。」世目袁為「開美」,故子敬詩曰:「袁生開美度。」
은윤이 서쪽으로 나가니, 치초가 원호에게 글을 보내 말하였다. "자사가 좋은 벗을 구하여 그대에게 좋음을 맡기니, 열어 아름다움으로 구하지 마시오."
세상이 원호를 두고 「열어 아름답다」 하였으므로 자경의 시에 이르기를 「원생은 열어 아름다운 도량이다」 하였다.
협주 1
中興書曰:「允字子思,陳郡人,太常康第六子。恭素謙退,有儒者之風。歷吏部尚書。」
『중흥서』에 이르기를 「은윤은 자가 자사요 진군 사람이니 태상 은강의 여섯째 아들이다. 공손하고 수수하며 겸손히 물러나 유가의 풍모가 있었다. 이부상서를 지냈다」 하였다.
146자경을 보아도 오히려 사람으로 하여금 그치지 못하게 하는데
謝車騎問謝公:「真長性至峭,何足乃重?」答曰:「是不見耳!阿見子敬,尚使人不能已。」
사거기가 사공에게 물었다. "진장은 성품이 지극히 가파른데 어찌 이에 무겁게 여기기에 넉넉합니까."
대답하였다. "이는 보지 못하였을 뿐이다. 자경을 보아도 오히려 사람으로 하여금 그치지 못하게 하는데."
협주 1
語林曰:「羊驎因酒醉,撫謝左軍謂太傅曰:『此家詎復後鎮西?』太傅曰:『汝阿見子敬,便沐浴為論兄輩。』」推此言意,則安以玄不見真長,故不重耳。見子敬尚重之,況真長乎?
『어림』에 이르기를 「양린이 술 취한 김에 사좌군을 어루만지며 태부에게 이르기를 『이 집안이 어찌 다시 진서보다 뒤이겠습니까』 하니, 태부가 『네가 자경을 보면 곧 목욕하고 형뻘로 논하리라』 하였다」 하였다. 이 말의 뜻을 미루면 곧 사안은 사현이 진장을 보지 못하였으므로 무겁게 여기지 않을 뿐이라 한 것이다. 자경을 보아도 오히려 무겁게 여기는데 하물며 진장이겠는가.
147아까 아과를 보니 짐짓 절로 쉬이 있지 않소
謝公領中書監,王東亭有事應同上省,王後至,坐促,王、謝雖不通,太傅猶斂厀容之。王神意閑暢,謝公傾目。還謂劉夫人曰:「向見阿瓜,故自未易有。雖不相關,正是使人不能已已。」
사공이 중서감을 거느릴 때 왕동정이 일이 있어 마땅히 함께 관아에 올라야 하였는데, 왕동정이 뒤에 이르러 자리가 좁았다.
왕씨와 사씨가 비록 통하지 않았으나 태부가 오히려 무릎을 여며 그를 담았다.
왕동정이 정신과 뜻이 한가롭고 시원하니 사공이 눈을 기울였다.
돌아와 유부인에게 말하였다. "아까 아과를 보니 짐짓 절로 쉬이 있지 않소. 비록 서로 상관하지 않으나 바로 사람으로 하여금 그치고 그치지 못하게 하오."
협주 2
王、謝不通事。別見。
왕씨와 사씨가 통하지 않은 일은 따로 보인다.
按王詢小字法護,而此言阿瓜,未為可解,儻小名有兩耳。
살피건대 왕순의 아이 적 이름은 법호인데 여기서 아과라 하니 풀 수 없다. 혹시 아이 적 이름이 둘 있었을 뿐인가.
148저는 시원하지 않소, 그대가 저를 말함이 가장 얻었소
王子敬語謝公:「公故蕭灑。」謝曰:「身不蕭灑。君道身最得,身正自調暢。」
왕자경이 사공에게 말하였다. "공께서는 짐짓 시원하십니다."
사공이 말하였다. "저는 시원하지 않소. 그대가 저를 말함이 가장 얻었소. 저는 바로 절로 고르고 시원하오."
협주 1
續晉陽秋曰:「安弘雅有氣,風神調暢也。」
『속진양추』에 이르기를 「사안은 넓고 우아하며 기운이 있고 풍모와 정신이 고르고 시원하였다」 하였다.
149문도를 보니 비록 시원하게 서로 만나나 다시 잠잠히 밤을 마치오
謝車騎初見王文度曰:「見文度雖蕭灑相遇,其復愔愔竟夕。」
사거기가 처음 왕문도를 보고 말하였다. "문도를 보니 비록 시원하게 서로 만나나 그 다시 잠잠히 밤을 마치오."
150이 외숙이 없었다면 어찌 이 생질이 있었겠소
范豫章謂王荊州:「卿風流雋望,真後來之秀。」王曰:「不有此舅,焉有此甥?」
범예장이 왕형주에게 말하였다. "경은 풍류가 뛰어나 바랄 만하니 참으로 뒤에 오는 빼어난 이요."
왕형주가 말하였다. "이 외숙이 없었다면 어찌 이 생질이 있었겠소."
협주 1
范甯、王忱並已見。
범녕과 왕침은 아울러 이미 보인다.
151형은 쓸쓸하여 모임이 적으나 술을 만나면 무르익어 즐거워 돌아옴을 잊는다
子敬與子猷書,道「兄伯蕭索寡會,遇酒則酣暢忘反,乃自可矜」。
자경이 자유에게 글을 보내 말하였다. "형은 쓸쓸하여 모임이 적으나 술을 만나면 무르익어 즐거워 돌아옴을 잊으니 이에 절로 아낄 만하다."
152장천석이 왕민을 보고 놀라 따르다
張天錫世雄涼州,以力弱詣京師,雖遠方殊類,亦邊人之桀也。聞皇京多才,欽羡彌至。猶在渚住,司馬著作往詣之。言容鄙陋,無可觀聽。天錫心甚悔來,以遐外可以自固。王彌有雋才美譽,當時聞而造焉。既至,天錫見其風神清令,言話如流,陳說古今,無不貫悉。又諳人物氏族,中來皆有證據。天錫訝服。
장천석이 대대로 양주에 세력을 떨쳤는데 힘이 약해져 서울에 이르렀다. 비록 먼 곳의 다른 무리이나 또한 변두리 사람 가운데 걸출한 이였다.
서울에 재주 있는 이가 많다는 말을 듣고 흠모하고 부러워함이 더욱 지극하였다.
아직 물가에 머물러 있을 때 사마저작이 찾아갔다. 말과 모습이 낮고 누추하여 보고 들을 만한 것이 없었다.
장천석이 마음에 몹시 온 것을 뉘우치고 멀리 밖에 있으면서 스스로 굳게 할 만하였다 여겼다.
왕민이 뛰어난 재주와 아름다운 기림이 있었는데 그때 듣고 찾아갔다.
이르자 장천석이 그 풍모와 정신이 맑고 좋으며 말이 흐르는 듯하고, 옛날과 이제를 늘어놓아 꿰뚫어 알지 못하는 것이 없음을 보았다. 또 인물과 씨족에 익숙하여 중원 이래의 일에 다 근거가 있었다.
장천석이 놀라고 따랐다.
협주 3
天錫已見。
장천석은 이미 보인다.
未詳。
자세하지 않다.
續晉陽秋曰:「珉風情秀發,才辭富贍。」
『속진양추』에 이르기를 「왕민은 풍모와 정이 빼어나게 피고 재주와 말이 넉넉하였다」 하였다.
153왕대는 짐짓 절로 씻은 듯하구나
王恭始與王建武甚有情,後遇袁悅之間,遂致疑隟。然每至興會,故有相思。時恭嘗行散至京口射堂,于時清露晨流,新桐初引,恭目之曰:「王大故自濯濯。」
왕공이 처음에 왕건무와 몹시 정이 있었는데, 뒤에 원열의 이간을 만나 마침내 의심과 틈을 이루었다.
그러나 흥이 이는 모임에 이를 때마다 짐짓 서로 그리워함이 있었다.
그때 왕공이 일찍이 약 기운에 거닐어 경구의 사당에 이르렀다. 이때 맑은 이슬이 새벽에 흐르고 새 오동이 처음 뻗었는데, 왕공이 두고 말하였다. "왕대는 짐짓 절로 씻은 듯하구나."
협주 1
晉安帝紀曰:「初,忱與族子恭少相善,齊聲見稱。及並登朝,俱為主相所待,內外始有不咸之論。恭獨深憂之,乃告忱曰:『悠悠之論,頗有異同,當由驃騎簡於朝覲故也。將無從容切言之邪?若主相諧睦,吾徒得戮力明時,復何憂哉?』忱以為然,而慮弗見令,乃令袁悅具言之。悅每欲間恭,乃於王坐責讓恭曰:『卿何妄生同異,疑誤朝野?』其言切厲。恭雖惋悵,謂忱為搆己也。忱雖心不負恭,而無以自亮。於是情好大離,而怨隙成矣。」
『진안제기』에 이르기를 「처음에 왕침이 겨레 조카 왕공과 젊어서 서로 좋아 이름을 나란히 하여 일컬어졌다. 아울러 조정에 오르게 되어 함께 임금과 재상에게 대접받으매 안팎에 비로소 화합하지 못한다는 논이 있었다. 왕공이 홀로 이를 깊이 근심하여 이에 왕침에게 알렸다. 『아득한 논에 자못 다름이 있으니 마땅히 표기가 조회에 간결한 까닭일 것이오. 조용히 간절히 말해 보지 않겠소. 만일 임금과 재상이 화목하면 우리 무리가 밝은 때에 힘을 다할 수 있으니 다시 무엇을 근심하겠소.』 왕침이 그러하다 여겼으나 알려지지 못할까 걱정하여 이에 원열에게 갖추어 말하게 하였다. 원열이 늘 왕공을 이간하려 하였으므로, 이에 왕씨의 자리에서 왕공을 꾸짖어 이르기를 『경은 어찌 함부로 같고 다름을 내어 조정과 들을 의심하고 그르치는가』 하였다. 그 말이 절실하고 매서웠다. 왕공이 비록 서운하고 언짢았으나 왕침이 저를 얽었다 여겼다. 왕침이 비록 마음으로 왕공을 저버리지 않았으나 스스로 밝힐 길이 없었다. 이에 정과 좋음이 크게 갈리고 원망과 틈이 이루어졌다」 하였다.
154효백은 우뚝하게 곧장 오르고 아대는 성글게 맑고 성기다
司馬太傅為二王目曰:「孝伯亭亭直上,阿大羅羅清疎。」
사마태부가 두 왕씨를 두고 말하였다. "효백은 우뚝하게 곧장 오르고 아대는 성글게 맑고 성기다."
협주 1
恭,正亮沈烈;忱,通朗誕放。
왕공은 바르고 밝으며 가라앉고 매서웠고, 왕침은 통하고 환하며 크고 놓았다.
155왕공은 맑은 말과 간결한 뜻이 있었다
王恭有清辭簡旨,能敘說,而讀書少,頗有重出。有人道孝伯常有新意,不覺為煩。
왕공은 맑은 말과 간결한 뜻이 있어 펴 말할 수 있었으나 글 읽은 것이 적어 자못 거듭 나오는 것이 있었다.
어떤 이가 효백이 늘 새 뜻이 있어 번거로움을 느끼지 못하겠다 하였다.
협주 1
中興書曰:「恭雖才不多,而清辯過人。」
『중흥서』에 이르기를 「왕공은 비록 재주가 많지 않았으나 맑은 말솜씨가 남보다 나았다」 하였다.
156한 세상을 아름답고 밝게 하지는 못하였으나 저승까지 비추기에는 넉넉합니다
殷仲堪喪後,桓玄問仲文:「卿家仲堪,定是何似人?」仲文曰:「雖不能休明一世,足以映徹九泉。」
은중감이 죽은 뒤 환현이 중문에게 물었다. "경의 집안 중감은 참으로 어떤 사람이오."
중문이 말하였다. "비록 한 세상을 아름답고 밝게 하지는 못하였으나 저승까지 비추기에는 넉넉합니다."
협주 1
續晉陽秋曰:「仲堪,仲文之從兄也,少有美譽。」
『속진양추』에 이르기를 「은중감은 은중문의 사촌형이니 젊어서 아름다운 기림이 있었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