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오世説新語 捷悟第十一
1문 가운데 활 자니 활 자다
楊德祖為魏武主簿,時作相國門,始搆榱桷,魏武自出看,使人題門,作「活」字,便去。楊見,即令壞之。既竟,曰:「門中『活』,『闊』字。王正嫌門大也。」
양덕조가 위나라 무제의 주부가 되었을 때, 마침 상국의 문을 짓느라 비로소 서까래를 얽고 있었다.
위나라 무제가 몸소 나와 보고 사람을 시켜 문에 「활(活)」 자를 쓰게 하고 곧 갔다.
양수가 보고 곧 이를 헐게 하였다. 이윽고 마치자 말하였다. "문(門) 가운데 활(活)이니 활(闊) 자다. 왕께서 바로 문이 큰 것을 꺼리신 것이다."
협주 1
文士傳曰:「楊脩字德祖,弘農人,太尉彪子。少有才學思榦。魏武為丞相,辟為主簿。脩常白事,知必有反覆教,豫為答對數紙,以次牒之而行。敕守者曰:『向白事,必教出相反覆,若按此次第連答之。』已而風吹紙次亂,守者不別,而遂錯誤。公怒推問,脩慚懼,然以所白甚有理,終亦是脩。後為武帝所誅。」
『문사전』에 이르기를 「양수는 자가 덕조요 홍농 사람이니 태위 양표의 아들이다. 젊어서 재주와 배움과 생각과 재간이 있었다. 위나라 무제가 승상이 되어 불러 주부로 삼았다. 양수가 늘 일을 아뢸 때 반드시 되돌리는 가르침이 있을 줄 알고, 미리 답할 것을 몇 장 지어 차례로 엮어 두고 갔다. 지키는 이에게 명하기를 『아까 아뢴 일에 반드시 가르침이 나와 서로 되돌릴 터이니, 만일 이 차례대로 잇달아 답하라』 하였다. 이윽고 바람이 불어 종이 차례가 어지러워졌는데 지키는 이가 가리지 못하여 마침내 어긋나고 그르쳤다. 공이 성내어 밀어 물으니 양수가 부끄럽고 두려워하였다. 그러나 아뢴 바가 몹시 결이 있었으므로 마침내 또한 양수가 옳았다. 뒤에 무제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하였다.
2공께서 사람마다 한 입씩 먹으라 가르치신 것이오
人餉魏武一桮酪,魏武噉少許,蓋頭上題「合」字以示眾。眾莫能解。次至楊脩,脩便噉,曰:「公教人噉一口也,復何疑?」
어떤 이가 위나라 무제에게 젖 한 잔을 보냈다.
위나라 무제가 조금 먹고 뚜껑 위에 「합(合)」 자를 써서 뭇사람에게 보였다. 뭇사람이 풀지 못하였다.
차례가 양수에게 이르자 양수가 곧 먹으며 말하였다. "공께서 사람마다 한 입씩 먹으라 가르치신 것인데 다시 무엇을 의심하겠소."
3내 재주가 그대에게 미치지 못함이 이에 삼십 리로구나
魏武嘗過曹娥碑下,楊脩從,碑背上見題作「黃絹幼婦,外孫齏臼」八字。魏武謂脩曰:「解不?」答曰:「解。」魏武曰:「卿未可言,待我思之。」行三十里,魏武乃曰:「吾已得。」令脩別記所知。脩曰:「黃絹,色絲也,於字為絕。幼婦,少女也,於字為妙。外孫,女子也,於字為好。齏臼,受辛也,於字為辤。所謂『絕妙好辤』也。」魏武亦記之,與脩同,乃嘆曰:「我才不及卿,乃覺三十里。」
위나라 무제가 일찍이 조아의 비석 아래를 지나는데 양수가 따랐다.
비석 등에 「누런 비단, 어린 부인, 외손, 절구(黃絹幼婦外孫齏臼)」 여덟 자가 쓰인 것을 보았다.
위나라 무제가 양수에게 말하였다. "풀겠는가."
대답하였다. "풉니다."
위나라 무제가 말하였다. "경은 아직 말하지 마라. 내가 생각할 때까지 기다려라."
삼십 리를 가서 위나라 무제가 이에 말하였다. "내가 이미 얻었다."
양수에게 따로 아는 바를 적게 하였다. 양수가 말하였다. "누런 비단은 빛깔 있는 실(色絲)이니 글자로는 절(絕)이 됩니다. 어린 부인은 젊은 여자(少女)니 글자로는 묘(妙)가 됩니다. 외손은 딸의 자식(女子)이니 글자로는 호(好)가 됩니다. 절구는 매운 것을 받는 것(受辛)이니 글자로는 사(辤)가 됩니다. 이른바 『절묘호사(絕妙好辤)』입니다."
위나라 무제도 적었는데 양수와 같았다. 이에 탄식하였다. "내 재주가 그대에게 미치지 못함이 이에 삼십 리로구나."
협주 1
會稽典錄曰:「孝女曹娥者,上虞人。父盱,能撫節按歌,婆娑樂神。漢安二年,迎伍君神,泝濤而上,為水所淹,不得其尸。娥年十四,號慕思盱,乃投瓜于江,存其父尸曰:『父在此,瓜當沈。』旬有七日,瓜偶沈,遂自投於江而死。縣長度尚悲憐其義,為之改葬,命其弟子邯鄲子禮為之作碑。」按曹娥碑在會稽中,而魏武、楊修未嘗過江也。異苑曰:「陳留蔡邕避難過吳,讀碑文,以為詩人之作,無詭妄也。因刻石旁作八字。魏武見而不能了,以問群寮,莫有解者。有婦人浣於汾渚,曰:『第四車解。』既而,禰正平也。衡即以離合義解之。或謂此婦人即娥靈也。」
『회계전록』에 이르기를 「효녀 조아라는 이는 상우 사람이다. 아버지 조우가 마디를 어루만지고 노래를 눌러 너울너울 신을 즐겁게 할 수 있었다. 한나라 안 이 년에 오군의 신을 맞으며 물결을 거슬러 오르다가 물에 잠겨 그 주검을 얻지 못하였다. 조아가 나이 열넷에 부르짖으며 조우를 그리워하고 생각하여, 이에 오이를 강에 던지고 그 아버지 주검이 있는 데를 살피며 『아버지가 여기 계시면 오이가 마땅히 잠기리라』 하였다. 열이레 만에 오이가 마침 잠기니 마침내 스스로 강에 몸을 던져 죽었다. 현장 도상이 그 옳음을 슬퍼하고 가엾이 여겨 그를 위해 고쳐 묻고, 그 제자 한단자례에게 명하여 그를 위해 비를 짓게 하였다」 하였다. 살피건대 조아의 비는 회계 가운데 있고 위나라 무제와 양수는 일찍이 강을 건넌 적이 없다. 『이원』에 이르기를 「진류의 채옹이 난을 피해 오나라를 지나며 비문을 읽고 시인의 지음이라 하여 거짓되고 함부로 함이 없다 하였다. 이로 인해 돌 곁에 여덟 자를 새겼다. 위나라 무제가 보고 알지 못하여 뭇 아전에게 물었으나 푸는 이가 없었다. 어떤 부인이 분수 물가에서 빨래하다가 『넷째 수레가 풉니다』 하였는데, 이윽고 보니 예정평이었다. 예형이 곧 나누고 합치는 뜻으로 이를 풀었다. 어떤 이는 이 부인이 곧 조아의 넋이라 한다」 하였다.
4이는 대나무 방패를 만들 만하다
魏武征袁本初,治裝餘有數十斛竹片,咸長數寸,眾並謂不堪用,正令燒除。太祖甚惜,思所以用之。謂可為竹椑楯,而未顯其言。馳使問主簿楊德祖。應聲答之,與帝正同。眾伏其辯悟。
위나라 무제가 원본초를 칠 때, 채비를 갖추고 남은 대쪽 수십 섬이 있었는데 다 길이가 몇 치였다.
뭇사람이 아울러 쓸 수 없다 하며 바로 태워 없애라 하였다.
태조가 몹시 아까워하여 쓸 바를 생각하였다. 대나무 방패를 만들 만하다 여겼으나 그 말을 드러내지 않았다.
급히 사람을 보내 주부 양덕조에게 물으니, 소리에 응하여 대답한 것이 임금과 꼭 같았다. 뭇사람이 그 말솜씨와 깨침에 엎드렸다.
5하늘의 위엄이 낯에 있어 마침내 온교로 하여금 사죄할 겨를도 없게 하였습니다
王敦引軍垂至大桁,明帝自出中堂。溫嶠為丹陽尹,帝令斷大桁,故未斷,帝大怒,瞋目,左右莫不悚懼。召諸公來。嶠至不謝,但求酒炙。王導須臾至,徒跣下地,謝曰:「天威在顏,遂使溫嶠不容得謝。」嶠於是下謝,帝迺釋然。諸公共嘆王機悟名言。
왕돈이 군사를 이끌고 대항에 거의 이르매 명제가 몸소 중당에 나왔다.
온교가 단양윤이었는데 임금이 대항을 끊게 하였으나 짐짓 끊지 않았다. 임금이 크게 성내어 눈을 부릅뜨니 곁의 사람이 두려워 떨지 않는 이가 없었다.
여러 공을 불러오게 하였다. 온교가 이르러 사죄하지 않고 다만 술과 고기를 구하였다.
왕도가 잠깐 뒤에 이르러 맨발로 땅에 내려 사죄하였다. "하늘의 위엄이 낯에 있어 마침내 온교로 하여금 사죄할 겨를도 없게 하였습니다."
온교가 이에 내려가 사죄하니 임금이 이에 풀렸다. 여러 공이 함께 왕도의 재빠른 깨침과 이름난 말을 감탄하였다.
협주 1
按晉陽秋、鄧紀皆云:敦將至,嶠燒朱雀橋以阻其兵。而云未斷大桁,致帝怒,大為訛謬。一本云「帝自勸嶠入」,一本作「噉飲帝怒」,此則近也。
살피건대 『진양추』와 등찬의 『진기』에 다 이르기를 「왕돈이 이르려 하매 온교가 주작교를 태워 그 군사를 막았다」 하였다. 그런데 대항을 끊지 않아 임금을 성나게 하였다 하니 크게 잘못이다. 한 본에는 「임금이 몸소 온교에게 들어오기를 권하였다」 하고, 한 본에는 「먹고 마시매 임금이 성내었다」 하니 이것이 곧 가깝다.
6치가빈이 글을 조각조각 찢어 버리다
郗司空在北府,桓宣武惡其居兵權。郗於事機素暗,遣牋詣桓:「方欲共獎王室,脩復園陵。」世子嘉賓出行,於道上聞信至,急取牋,視竟,寸寸毀裂,便回。還更作牋,自陳老病,不堪人間,欲乞閑地自養。宣武得牋大喜,即詔轉公督五郡,會稽太守。
치사공이 북부에 있으니 환선무가 그가 병권을 쥔 것을 미워하였다.
치감은 일의 기틀에 본디 어두워 환온에게 글을 보내려 하였다. "바야흐로 함께 왕실을 도와 동산과 능을 닦아 되찾고자 합니다."
세자 가빈이 나가 다니다가 길에서 기별이 이른다는 말을 듣고, 급히 글을 가져다 다 보고서 조각조각 찢어 버리고 곧 돌아왔다.
돌아와 다시 글을 지어, 스스로 늙고 병들어 사람 사이를 견디지 못하니 한가한 데를 얻어 스스로 기르기를 빈다 아뢰었다.
선무가 글을 얻고 크게 기뻐하여 곧 조칙으로 공을 다섯 고을을 감독하는 회계태수로 옮겼다.
협주 2
南徐州記曰:「徐州人多勁悍,號精兵,故桓溫常曰:『京口酒可飲,箕可用,兵可使。』」
『남서주기』에 이르기를 「서주 사람이 흔히 굳세고 사나워 정예 군사라 불렸다. 그러므로 환온이 늘 이르기를 『경구는 술도 마실 만하고 키도 쓸 만하고 군사도 부릴 만하다』 하였다」 하였다.
晉陽秋曰:「大司馬將討慕容暐,表求申勸平北愔及袁真等嚴辦。愔以羸疾求退,詔大司馬領愔所任。」按中興書:愔辭此行,溫責其不從,轉授會稽。世說為謬。
『진양추』에 이르기를 「대사마가 장차 모용위를 치려 하며 표를 올려 평북 치음과 원진 들에게 엄히 채비하기를 권하라 청하였다. 치음이 여윈 병으로 물러나기를 구하니 조칙으로 대사마가 치음이 맡은 바를 거느리게 하였다」 하였다. 살피건대 『중흥서』에 「치음이 이 걸음을 사양하니 환온이 그 좇지 않음을 꾸짖어 회계로 옮겨 주었다」 하였다. 『세설』이 그르다.
7왕동정만이 홀로 빛나게 앞에 있었다
王東亭作宣武主簿,嘗春月與石頭兄弟乘馬出郊野;時彥同遊者,連鑣俱進,唯東亭一人常在前,覺數十步,諸人莫之解。石頭等既疲倦。俄而乘輿向,諸人皆似從官,唯東亭奕奕在前。其悟捷如此。
왕동정이 선무의 주부가 되었을 때, 일찍이 봄철에 석두 형제와 말을 타고 들에 나갔다.
그때 뛰어난 이들이 함께 노닐며 재갈을 잇대어 함께 나아가는데, 오직 동정만이 늘 앞에 있어 몇십 걸음 앞섬을 느꼈으나 여러 사람이 이를 풀지 못하였다.
석두 들이 이윽고 지치고 고단해졌다.
이윽고 임금의 수레가 오니 여러 사람이 다 벼슬아치를 따르는 듯하였는데, 오직 동정만이 빛나게 앞에 있었다. 그 깨침의 빠름이 이와 같았다.
협주 1
石頭,桓遐小字。中興書曰:「遐字伯道,溫長子也。仕至豫州刺史。」
석두는 환하의 아이 적 이름이다. 『중흥서』에 이르기를 「환하는 자가 백도요 환온의 맏아들이다. 벼슬이 예주자사에 이르렀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