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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혜世説新語 夙惠第十二

세설신어 世說新語 · 유의경(劉義慶) 엮음 · 유효표(劉孝標) 주 · 남조 송(5세기) · 양 유효표 주 · 단락 7 · 한자 649자 · 낭독 2.6분

「세설신어」 「숙혜」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해가 멉니다. 사람이 해 가에서 왔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으니 그대로 알 수 있습니다」 — 몇 살 난 아이가 아버지 무릎에서 한 대답이다. 이튿날 다시 묻자 「해가 가깝습니다. 눈을 들면 해는 보이나 장안은 보이지 않습니다」 했다. 후한 말부터 동진까지 이백여 해, 사람들이 주고받은 말과 몸짓만을 서른여섯 갈래로 나누어 모았다. 덕행·언어·정사·문학에서 시작해 사치·성냄·시새움·원수까지 내려가니, 기릴 것과 나무랄 것을 같은 무게로 놓은 셈이다. 대숲의 일곱 사람이 나오고, 왕희지가 사위로 뽑히고, 눈 오는 밤 배를 저어 벗의 집 앞까지 갔다가 흥이 다했다며 돌아온다. 한 조각이 대개 서너 줄, 길어도 한 쪽을 넘지 않는다. 유효표가 백여 종의 책을 끌어와 단 주는 그 책들이 거의 다 없어진 지금 도리어 본문보다 길게 남았다.

1이와 같다면 다만 죽이라도 좋으니 어찌 반드시 밥이겠느냐

賓客詣陳太丘宿,太丘使元方、季方炊。客與太丘論議,二人進火,俱委而竊聽,炊忘箸箄,飯落釜中。太丘問:「炊何不餾?」元方、季方長跪曰:「大人與客語,乃俱竊聽,炊忘箸箄,今皆成糜。」太丘曰:「爾頗有所識不?」對曰:「彷彿志之。」二子長跪俱說,更相易奪,言無遺失。太丘曰:「如此,但糜自可,何必飯也。」

손이 진태구를 찾아와 묵으니 태구가 원방과 계방에게 밥을 짓게 하였다.

손이 태구와 논의하는데 두 사람이 불을 때다가 함께 버려두고 몰래 들었다. 밥 지으며 시루밑 놓기를 잊어 밥이 솥 안으로 떨어졌다.

태구가 물었다. "밥을 짓는데 어찌 뜸이 들지 않았느냐."

원방과 계방이 길게 무릎 꿇고 말하였다. "어른께서 손과 말씀하시매 이에 함께 몰래 듣느라, 밥 지으며 시루밑 놓기를 잊어 이제 다 죽이 되었습니다."

태구가 말하였다. "너희가 자못 아는 바가 있느냐."

대답하였다. "어렴풋이 기억합니다."

두 아들이 길게 무릎 꿇고 함께 말하는데 서로 바꾸어 가며 빼앗듯 하니 말에 빠뜨림이 없었다.

태구가 말하였다. "이와 같다면 다만 죽이라도 좋으니 어찌 반드시 밥이겠느냐."

2하씨의 오두막입니다

何晏年七歲,明惠若神,魏武奇愛之;以晏在宮內,因欲以為子。晏乃畫地令方,自處其中。人問其故?答曰:「何氏之廬也。」魏武知之,即遣還外。

하안이 나이 일곱에 밝고 슬기로움이 신 같으니 위나라 무제가 기이하게 그를 아꼈다.

하안이 궁 안에 있으므로 이로 인해 아들로 삼으려 하였다.

하안이 이에 땅에 그려 모나게 하고 스스로 그 가운데 처하였다.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물으니 대답하였다. "하씨의 오두막입니다."

위나라 무제가 이를 알고 곧 밖으로 돌려보냈다.

협주 1

《魏略》曰:「晏父蚤亡,太祖為司空時納晏母。其時秦宜祿、阿鰾亦隨母在宮,並寵如子,常謂晏為假子也。」

『위략』에 이르기를 「하안의 아버지가 일찍 죽고 태조가 사공이었을 때 하안의 어머니를 들였다. 그때 진의록과 아표도 또한 어머니를 따라 궁에 있어 아울러 아들처럼 사랑받았는데, 늘 하안을 양아들이라 일렀다」 하였다.

3눈을 들면 해는 보이나 장안은 보이지 않습니다

晉明帝數歲,坐元帝厀上。有人從長安來,元帝問洛下消息,潸然流涕。明帝問何以致泣?具以東渡意告之。因問明帝:「汝意謂長安何如日遠?」答曰:「日遠。不聞人從日邊來,居然可知。」元帝異之。明日集羣臣宴會,告以此意,更重問之。乃答曰:「日近。」元帝失色,曰:「爾何故異昨日之言邪?」答曰:「舉目見日,不見長安。」

진나라 명제가 몇 살 때 원제의 무릎 위에 앉았다.

어떤 이가 장안에서 오니 원제가 낙양 소식을 묻고 주르르 눈물을 흘렸다.

명제가 어찌하여 우시느냐 물으니, 동쪽으로 건너온 뜻을 갖추어 일러 주었다.

이로 인해 명제에게 물었다. "네 뜻에 장안이 해와 견주어 어느 것이 머냐."

대답하였다. "해가 멉니다. 사람이 해 가에서 왔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으니 그대로 알 수 있습니다."

원제가 그를 남달리 여겼다.

이튿날 뭇 신하를 모아 잔치하며 이 뜻을 알리고 다시 거듭 물었다.

이에 대답하였다. "해가 가깝습니다."

원제가 낯빛을 잃고 말하였다. "너는 어찌하여 어제 말과 다르냐."

대답하였다. "눈을 들면 해는 보이나 장안은 보이지 않습니다."

4뜻하지 않게 쇠한 마루에 다시 이 보배가 났구나

司空顧和與時賢共清言,張玄之、顧敷是中外孫,年並七歲,在床邊戲。于時聞語,神情如不相屬。瞑於燈下,二兒共敘客主之言,都無遺失。顧公越席而提其耳曰:「不意衰宗復生此寶。」

사공 고화가 그때 어진 이들과 함께 맑은 이야기를 하는데, 장현지와 고부는 안팎 손자로 나이가 아울러 일곱이라 평상 곁에서 놀았다.

이때 말을 들었으나 정신과 정이 상관하지 않는 듯하였다.

등불 아래 어두워지자 두 아이가 함께 손과 주인의 말을 펴는데 도무지 빠뜨림이 없었다.

고공이 자리를 넘어 그 귀를 잡고 말하였다. "뜻하지 않게 쇠한 마루에 다시 이 보배가 났구나."

협주 1

顧愷之《家傳》曰:「敷字祖根,吳郡吳人。滔然有大成之量。仕至著作郎,二十三卒。」

고개지의 『가전』에 이르기를 「고부는 자가 조근이요 오군 오 사람이다. 넘실넘실 크게 이룰 도량이 있었다. 벼슬이 저작랑에 이르렀고 스물셋에 죽었다」 하였다.

5불이 다리미 안에 있는데 자루가 오히려 뜨겁습니다

韓康伯年數歲,家酷貧,至大寒,止得襦。母殷夫人自成之,令康伯捉熨斗,謂康伯曰:「且箸襦,尋作複㡓。」乃云:「已足,不須複㡓也。」母問其故?答曰:「火在斗中而柄尚熱,今既箸襦,下亦當暖,故不須耳。」母甚異之,知為國器。

한강백이 나이 몇 살 때 집이 몹시 가난하여 큰 추위에 이르러도 다만 저고리만 얻었다.

어머니 은부인이 몸소 이를 지으며 강백에게 다리미를 잡게 하고 강백에게 말하였다. "우선 저고리를 입어라. 이윽고 겹바지를 지어 주마."

이에 말하였다. "이미 넉넉하니 겹바지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그 까닭을 물으니 대답하였다. "불이 다리미 안에 있는데 자루가 오히려 뜨겁습니다. 이제 이미 저고리를 입었으니 아래도 또한 마땅히 따뜻할 것이므로 필요하지 않을 뿐입니다."

어머니가 몹시 그를 남달리 여겨 나라의 그릇이 될 줄 알았다.

6낮에는 움직이고 밤에는 고요하다

晉孝武年十二,時冬天,晝日不箸複衣,但箸單練衫五六重,夜則累茵褥。謝公諫曰:「聖體宜令有常。陛下晝過冷,夜過熱,恐非攝養之術。」帝曰:「晝動夜靜。」謝公出嘆曰:「上理不減先帝。」

진나라 효무제가 나이 열둘일 때, 겨울날 낮에는 겹옷을 입지 않고 다만 홑 명주 적삼 대여섯 겹만 입었으며, 밤에는 곧 요와 자리를 겹쳤다.

사공이 간하였다. "거룩한 몸은 마땅히 늘 그러함이 있게 하셔야 합니다. 폐하께서 낮에는 지나치게 차게 하시고 밤에는 지나치게 덥게 하시니, 몸을 다스려 기르는 법이 아닐까 두렵습니다."

임금이 말하였다. "낮에는 움직이고 밤에는 고요하오."

사공이 나와 탄식하였다. "위의 결이 앞선 임금에 못하지 않다."

협주 2

老子曰:「躁勝寒,靜勝熱。」此言夜靜寒,宜重肅也。

『노자』에 이르기를 「조급함은 추위를 이기고 고요함은 더위를 이긴다」 하였다. 이는 밤이 고요하고 차니 마땅히 거듭 엄히 해야 함을 말한 것이다.

簡文帝善言理也。

간문제가 결을 잘 말하였다.

7영보가 어른이 되면 마땅히 이 자리를 돌려주리라

桓宣武薨,桓南郡年五歲,服始除,桓車騎與送故文武別,因指語南郡:「此皆汝家故吏佐。」玄應聲慟哭,酸感傍人。車騎每自目己坐曰:「靈寶成人,當以此坐還之。」鞠愛過於所生。

환선무가 죽었을 때 환남군이 나이 다섯이었다.

상복을 막 벗자 환거기가 옛 주인을 보내는 문무 벼슬아치와 헤어지며, 이로 인해 남군에게 가리켜 말하였다. "이들이 다 네 집안의 옛 아전과 보좌다."

환현이 소리에 응하여 애통히 곡하니 슬픔이 곁의 사람을 아프게 하였다.

거기가 스스로 제 자리를 볼 때마다 말하였다. "영보가 어른이 되면 마땅히 이 자리를 돌려주리라."

기르고 아끼기를 낳은 자식보다 더하였다.

협주 2

《桓沖別傳》曰:「沖字玄叔,溫弟也。累遷車騎將軍、都督七州諸軍事。」

『환충별전』에 이르기를 「환충은 자가 현숙이요 환온의 아우다. 여러 벼슬을 거쳐 거기장군과 일곱 주의 여러 군사를 도독하는 데 이르렀다」 하였다.

靈寶,玄小字也。

영보는 환현의 아이 적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