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지世説新語 容止第十四
1평상 머리에서 칼 잡고 선 사람이 이야말로 영웅이오
魏武將見匈奴使,自以形陋,不足雄遠國,使崔季珪代,帝自捉刀立床頭。既畢,令間諜問曰:「魏王何如?」匈奴使答曰:「魏王雅望非常,然床頭捉刀人,此乃英雄也。」魏武聞之,追殺此使。
위나라 무제가 흉노의 사신을 보려 할 때, 스스로 모습이 누추하여 먼 나라에 씩씩하게 보이기에 넉넉하지 않다 여겨 최계규로 대신하게 하고, 임금은 몸소 칼을 잡고 평상 머리에 섰다.
이윽고 마치자 염탐꾼을 시켜 묻게 하였다. "위나라 왕이 어떠하시오."
흉노의 사신이 대답하였다. "위나라 왕은 우아한 바람이 예사롭지 않소. 그러나 평상 머리에서 칼 잡고 선 사람, 이야말로 영웅이오."
위나라 무제가 이를 듣고 이 사신을 뒤쫓아 죽였다.
협주 2
《魏氏春秋》曰:「武王姿貌短小,而神明英發。」
『위씨춘추』에 이르기를 「무왕은 자태와 모습이 짧고 작았으나 정신과 밝음이 꽃부리처럼 피었다」 하였다.
《魏志》曰:「崔琰字季珪,清河東武城人。聲姿高暢,眉目疏朗,鬚長四尺,甚有威重。」
『위지』에 이르기를 「최염은 자가 계규요 청하 동무성 사람이다. 소리와 자태가 높고 시원하며 눈썹과 눈이 성글고 환하고 수염이 넉 자로 몹시 위엄과 무거움이 있었다」 하였다.
2붉은 옷으로 닦으니 낯빛이 더욱 희어졌다
何平叔美姿儀,面至白,魏明帝疑其傅粉;正夏月,與熱湯餅。既噉,大汗出,以朱衣自拭,色轉皎然。
하평숙은 자태와 몸가짐이 아름답고 낯이 지극히 희어, 위나라 명제가 분을 발랐는가 의심하였다.
마침 여름철이라 뜨거운 국수를 주었다. 이윽고 먹고 큰 땀이 나매 붉은 옷으로 스스로 닦으니 낯빛이 더욱 희어졌다.
협주 1
《魏略》曰:「晏性自喜,動靜粉帛不去手,行步顧影。」按:此言,則晏之妖麗,本資外飾。且晏養自宮中,與帝相長,豈復疑其形姿,待騐而明也。
『위략』에 이르기를 「하안은 성품이 스스로 기뻐하여 움직이고 고요할 때 분과 비단이 손에서 떠나지 않았고 걸음마다 그림자를 돌아보았다」 하였다. 살피건대 이 말로 보면 곧 하안의 요염하고 고움이 본디 바깥 꾸밈에 밑천 삼은 것이다. 또 하안은 궁중에서 길러져 임금과 함께 자랐으니 어찌 다시 그 모습과 자태를 의심하여 시험을 기다려 밝혔겠는가.
3갈대가 옥나무에 기댄 듯하다
魏明帝使后弟毛曾與夏侯玄共坐,時人謂「蒹葭倚玉樹」。
위나라 명제가 황후의 아우 모증과 하후현을 함께 앉게 하니, 그때 사람들이 「갈대가 옥나무에 기댄 듯하다」 하였다.
협주 1
《魏志》曰:「玄為黃門侍郎,與毛曾並坐。玄甚恥之,曾說形於色。明帝恨之,左遷玄為羽林監。」
『위지』에 이르기를 「하후현이 황문시랑이 되어 모증과 나란히 앉았다. 하후현이 몹시 이를 부끄러워하니 모증이 기뻐함이 낯빛에 드러났다. 명제가 이를 한스러워하여 하후현을 우림감으로 낮추었다」 하였다.
4하후태초는 해와 달이 품에 든 듯 환하다
時人目「夏侯太初朗朗如日月之入懷,李安國頹唐如玉山之將崩」。
그때 사람들이 두고 말하였다. "하후태초는 해와 달이 품에 든 듯 환하고, 이안국은 옥산이 무너지려는 듯 무너지듯 하다."
협주 1
《魏略》曰:「李豐字安國,衛尉李義子也。識別人物,海內注意。明帝得吳降人,問江東聞中國名士為誰?以安國對之。是時豐為黃門郎,改名宣。上問安國所在?左右公卿即具以豐對。上曰:『豐名乃被於吳、越邪?』仕至中書令,為晉王所誅。」
『위략』에 이르기를 「이풍은 자가 안국이요 위위 이의의 아들이다. 인물을 알아 가리매 온 세상이 뜻을 붙였다. 명제가 오나라에서 항복한 사람을 얻어 강동에서 중국의 이름난 선비로 누구를 들었는가 물으니 안국으로 대답하였다. 이때 이풍이 황문랑이었는데 이름을 이선으로 고쳤다. 임금이 안국이 있는 데를 물으니 곁의 공경이 곧 이풍으로 갖추어 대답하였다. 임금이 『이풍의 이름이 이에 오나라와 월나라에 미쳤는가』 하였다. 벼슬이 중서령에 이르렀고 진왕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하였다.
5바위처럼 우뚝하여 외로운 소나무가 홀로 선 듯하다
嵇康身長七尺八寸,風姿特秀。見者嘆曰:「蕭蕭肅肅,爽朗清舉。」或云:「肅肅如松下風,高而徐引。」山公曰:「嵇叔夜之為人也,巖巖若孤松之獨立;其醉也,傀俄若玉山之將崩。」
혜강은 키가 일곱 자 여덟 치요 풍모와 자태가 유난히 빼어났다.
보는 이가 탄식하였다. "쓸쓸하고 엄숙하며 시원하고 환하며 맑게 든다."
어떤 이는 말하였다. "엄숙하기가 소나무 아래 바람 같아 높으면서도 천천히 끈다."
산공이 말하였다. "혜숙야의 사람됨은 바위처럼 우뚝하여 외로운 소나무가 홀로 선 듯하고, 그가 취하면 무너질 듯 기울어 옥산이 무너지려는 듯하다."
협주 1
《康別傳》曰:「康長七尺八寸,偉容色,土木形骸,不加飾厲,而龍章鳳姿,天質自然。正爾在群形之中,便自知非常之器。」
『강별전』에 이르기를 「혜강은 키가 일곱 자 여덟 치요 모습과 낯빛이 훌륭하였는데, 흙과 나무 같은 몸에 꾸밈을 더하지 않았어도 용의 무늬와 봉의 자태가 하늘이 준 바탕으로 저절로 그러하였다. 바로 그렇게 뭇 모습 가운데 있어도 곧 절로 예사롭지 않은 그릇임을 알 수 있었다」 하였다.
6눈이 번쩍번쩍하여 바위 아래 번개 같다
裴令公目王安豐:「眼爛爛如巖下電。」
배영공이 왕안풍을 두고 말하였다. "눈이 번쩍번쩍하여 바위 아래 번개 같다."
협주 1
王戎形狀短小,而目甚清炤,視日不眩。
왕융은 생김새가 짧고 작았으나 눈이 몹시 맑게 비추어 해를 보아도 어지럽지 않았다.
7좌태충이 이를 흉내 내다가 늙은 할멈들에게 침 세례를 받다
潘岳妙有姿容,好神情。少時挾彈出洛陽道,婦人遇者,莫不連手共縈之。左太沖絕醜,亦復效岳遊遨,於是群嫗齊共亂唾之,委頓而返。
반악은 자태와 모습이 묘하게 아름답고 정신과 정이 좋았다.
젊었을 때 탄궁을 끼고 낙양 길에 나서면, 만나는 부인이 손을 이어 함께 둘러싸지 않는 이가 없었다.
좌태충은 지극히 추하였는데 또한 다시 반악을 흉내 내어 노닐었다. 이에 뭇 할멈이 가지런히 함께 어지러이 침을 뱉으니 지쳐 무너져 돌아왔다.
협주 3
《岳別傳》曰:「岳姿容甚美,風儀閒暢。」
『악별전』에 이르기를 「반악은 자태와 모습이 몹시 아름답고 풍모와 몸가짐이 한가롭고 시원하였다」 하였다.
《續文章志》曰:「思貌醜悴,不持儀飾。」
『속문장지』에 이르기를 「좌사는 모습이 추하고 파리하며 몸가짐과 꾸밈을 지니지 않았다」 하였다.
《語林》曰:「安仁至美,每行,老嫗以果擲之,滿車。張孟陽至醜,每行,小兒以瓦石投之,亦滿車。」二說不同。
『어림』에 이르기를 「안인은 지극히 아름다워 다닐 때마다 늙은 할멈들이 과일을 던져 수레에 가득하였다. 장맹양은 지극히 추하여 다닐 때마다 어린아이들이 기와와 돌을 던져 또한 수레에 가득하였다」 하였다. 두 설이 같지 않다.
8흰 옥자루 주미를 손과 도무지 가릴 수 없었다
王夷甫容貌整麗,妙於談玄;恆捉白玉柄麈尾,與手都無分別。
왕이보는 모습이 가지런하고 고우며 아득한 것을 말하는 데 묘하였다. 늘 흰 옥자루 주미를 잡았는데 손과 도무지 가릴 수 없었다.
9반안인과 하후담을 이은 구슬이라 하였다
潘安仁、夏侯湛並有美容,喜同行,時人謂之「連璧」。
반안인과 하후담이 아울러 아름다운 모습이 있고 함께 다니기를 좋아하니, 그때 사람들이 이를 「이은 구슬」이라 하였다.
협주 1
《八王故事》曰:「岳與湛著契,故好同遊。」
『팔왕고사』에 이르기를 「반악과 하후담이 맺음을 두었으므로 함께 노닐기를 좋아하였다」 하였다.
10두 눈동자가 번쩍번쩍하여 바위 아래 번개 같다
裴令公有儁容姿,一旦有疾至困,惠帝使王夷甫往看,裴方向壁臥,聞王使至,強回視之。王出語人曰:「雙眸閃閃,若巖下電,精神挺動,體中故小惡。」
배영공이 뛰어난 모습과 자태가 있었는데, 하루아침에 병이 들어 곤함에 이르렀다.
혜제가 왕이보를 보내 가서 보게 하니, 배해가 바야흐로 벽을 향해 누웠다가 왕이보의 심부름이 이르렀다는 말을 듣고 억지로 돌아 이를 보았다.
왕이보가 나와 남에게 말하였다. "두 눈동자가 번쩍번쩍하여 바위 아래 번개 같고 정신이 빼어나게 움직이니, 몸 가운데가 짐짓 조금 나쁠 뿐이오."
협주 1
《名士傳》曰:「楷病困,詔遣黃門郎王夷甫省之,楷回眸屬夷甫云:『竟未相識。』夷甫還,亦歎其神俊。」
『명사전』에 이르기를 「배해가 병들어 곤하니 조칙으로 황문랑 왕이보를 보내 살피게 하였다. 배해가 눈동자를 돌려 이보에게 붙이며 『마침내 서로 알지 못하였소』 하였다. 이보가 돌아와 또한 그 정신의 빼어남을 탄식하였다」 하였다.
11그대가 그 아비를 보지 못하였을 뿐이다
有人語王戎曰:「嵇延祖卓卓如野鶴之在雞群。」答曰:「君未見其父耳!」
어떤 이가 왕융에게 말하였다. "혜연조는 우뚝하기가 들학이 닭 무리에 있는 듯하오."
대답하였다. "그대가 그 아비를 보지 못하였을 뿐이오."
협주 1
康已見上。
혜강은 이미 위에 보인다.
12배숙칙을 보면 옥산 위를 다니는 듯 빛이 비쳐 사람을 밝힌다
裴令公有儁容儀,脫冠冕,麤服亂頭皆好。時人以為「玉人」。見者曰:「見裴叔則如玉山上行,光映照人。」
배영공이 뛰어난 모습과 몸가짐이 있어, 관과 면류관을 벗고 거친 옷에 머리를 흩어도 다 좋았다. 그때 사람들이 「옥 같은 사람」이라 하였다.
보는 이가 말하였다. "배숙칙을 보면 옥산 위를 다니는 듯 빛이 비쳐 사람을 밝힌다."
13흙과 나무 같은 몸
劉伶身長六尺,貌甚醜顇,而悠悠忽忽,土木形骸。
유령은 키가 여섯 자요 모습이 몹시 추하고 파리하였는데, 아득아득 홀연히 흙과 나무 같은 몸이었다.
협주 1
梁祚《魏國統》曰:「劉伶,字伯倫,形貌醜陋,身長六尺;然肆意放蕩,悠焉獨暢。自得一時,常以宇宙為狹。」
양조의 『위국통』에 이르기를 「유령은 자가 백륜이요 모습이 추하고 누추하며 키가 여섯 자였다. 그러나 뜻을 멋대로 하여 놓아 방탕하고 아득히 홀로 시원하였다. 한때에 스스로 얻어 늘 우주를 좁다 여겼다」 하였다.
14구슬과 옥이 곁에 있으니 내 꼴의 더러움을 느끼겠다
驃騎王武子,是衛玠之舅,雋爽有風姿;見玠,輒嘆曰:「珠玉在側,覺我形穢!」
표기 왕무자는 위개의 외숙인데 뛰어나고 시원하며 풍모와 자태가 있었다.
위개를 보면 문득 탄식하였다. "구슬과 옥이 곁에 있으니 내 꼴의 더러움을 느끼겠다."
협주 1
《玠別傳》曰:「驃騎王濟,玠之舅也。嘗與同遊,語人曰:『昨日吾與外生共坐,若明珠之在側,朗然來照人。』」
『개별전』에 이르기를 「표기 왕제는 위개의 외숙이다. 일찍이 함께 노닐고 남에게 이르기를 『어제 내가 생질과 함께 앉았는데, 밝은 구슬이 곁에 있어 환하게 와서 사람을 비추는 듯하였다』 하였다」 하였다.
15오늘 걸음에 눈에 닿는 것이 다 아름다운 구슬과 옥이었다
有人詣王太尉,遇安豐、大將軍、丞相在坐;往別屋,見季胤、平子。還,語人曰:「今日之行,觸目見琳琅珠玉。」
어떤 이가 왕태위를 찾아갔는데 마침 안풍과 대장군과 승상이 자리에 있었다.
딴 방으로 가니 계윤과 평자를 보았다.
돌아와 남에게 말하였다. "오늘 걸음에 눈에 닿는 것이 다 아름다운 구슬과 옥이었다."
협주 1
石崇《金谷詩敘》曰:「王詡字季胤,琅邪人。」《王氏譜》曰:「詡,夷甫弟也,仕至脩武令。」
석숭의 「금곡시서」에 이르기를 「왕후는 자가 계윤이요 낭야 사람이다」 하였다. 『왕씨보』에 이르기를 「왕후는 이보의 아우요 벼슬이 수무령에 이르렀다」 하였다.
16비단조차 견디지 못할 듯하다
王丞相見衛洗馬曰:「居然有羸形,雖復終日調暢,若不堪羅綺。」
왕승상이 위세마를 보고 말하였다. "그대로 여윈 모습이 있어, 비록 다시 온종일 고르고 시원하나 비단조차 견디지 못할 듯하다."
협주 1
《玠別傳》曰:「玠素抱羸疾。」《西京賦》曰:「始徐進而羸形,似不勝乎羅綺。」
『개별전』에 이르기를 「위개는 본디 여윈 병을 안고 있었다」 하였다. 「서경부」에 이르기를 「처음 천천히 나아가매 여윈 모습이 비단조차 이기지 못하는 듯하다」 하였다.
17뭇사람 가운데 있으면 구슬과 옥이 기와와 돌 사이에 있는 듯하다
王大將軍稱太尉:「處眾人中,似珠玉在瓦石間。」
왕대장군이 태위를 일컬었다. "뭇사람 가운데 있으면 구슬과 옥이 기와와 돌 사이에 있는 듯하다."
18키가 일곱 자에 차지 않고 허리띠가 열 아름이었다
庾子嵩長不滿七尺,腰帶十圍,頹然自放。
유자숭은 키가 일곱 자에 차지 않고 허리띠가 열 아름이었는데, 무너지듯 스스로 놓아 두었다.
19보아 죽인 위개
衛玠從豫章至下都,人久聞其名,觀者如堵牆。玠先有羸疾,體不堪勞,遂成病而死。時人謂「看殺衛玠」。
위개가 예장에서 서울에 이르니, 사람들이 오래 그 이름을 들었으므로 보는 이가 담장 같았다.
위개가 앞서 여윈 병이 있어 몸이 수고로움을 견디지 못하매 마침내 병이 되어 죽었다.
그때 사람들이 「보아 죽인 위개」라 하였다.
협주 1
《玠別傳》曰:「玠在群伍之中,寔有異人之望。齠齔時,乘白羊車於洛陽市上,咸曰:『誰家璧人?』於是家門州黨號為『璧人』。」按《永嘉流人名》曰:「玠以永嘉六年五月六日至豫章,其年六月二十日卒。」此則玠之南度豫章四十五日,豈暇至下都而亡乎?且諸書皆云玠亡在豫章,而不云在下都也。
『개별전』에 이르기를 「위개는 무리 가운데 있어도 실로 남다른 사람의 바람이 있었다. 젖니 갈 때에 흰 양 수레를 타고 낙양 저자에 나서니 다들 『뉘 집 옥 같은 사람인가』 하였다. 이에 집안과 고을과 마을이 『옥 같은 사람』이라 불렀다」 하였다. 살피건대 『영가유인명』에 이르기를 「위개가 영가 육 년 오월 육일에 예장에 이르러 그해 유월 이십일에 죽었다」 하였다. 이러면 곧 위개가 남쪽으로 예장에 건넌 지 마흔닷새인데 어찌 서울에 이르러 죽을 겨를이 있었겠는가. 또 여러 책이 다 위개가 예장에서 죽었다 하고 서울에서라 하지 않는다.
20높고 험하고 시원하여 우스운 사람이다
周伯仁道桓茂倫:「嶔崎歷落可笑人。」或云謝幼輿言。
주백인이 환무륜을 말하였다. "높고 험하고 시원하여 우스운 사람이다."
어떤 이는 사유여의 말이라 한다.
21간직하여 쓰면 여러 가지 것을 지을 만하다
周侯說王長史父:形貌既偉,雅懷有概,保而用之,可作諸許物也。
주후가 왕장사의 아버지를 말하였다. 모습이 이미 훌륭하고 우아한 품음에 기개가 있으니, 간직하여 쓰면 여러 가지 것을 지을 만하다고.
협주 1
《王氏譜》曰:「訥字文開,太原人。祖默,尚書。父祜,散騎常侍。訥始過江,仕至新淦令。」
『왕씨보』에 이르기를 「왕눌은 자가 문개요 태원 사람이다. 할아버지 왕묵은 상서요 아버지 왕호는 산기상시다. 왕눌이 처음 강을 건너 벼슬이 신감령에 이르렀다」 하였다.
22이 사람은 깃대 아래 설 꼴이 있다
祖士少見衛君長云:「此人有旄仗下形。」
조사소가 위군장을 보고 말하였다. "이 사람은 깃대 아래 설 꼴이 있다."
23시내 개는 내가 잘 아니 그대는 다만 보시오
石頭事故,朝廷傾覆。溫忠武與庾文康投陶公求救,陶公云:「肅祖顧命不見及,且蘇峻作亂,釁由諸庾,誅其兄弟,不足以謝天下。」于時庾在溫船後聞之,憂怖無計。別日,溫勸庾見陶,庾猶豫未能往,溫曰:「溪狗我所悉,卿但見之,必無憂也!」庾風姿神貌,陶一見便改觀。談宴竟日,愛重頓至。
석두의 사고에 조정이 무너졌다.
온충무가 유문강과 함께 도공에게 가서 건져 주기를 구하니, 도공이 말하였다. "숙조의 남기신 명이 나에게 미치지 않았소. 또 소준이 난을 일으킨 것은 틈이 여러 유씨에게서 말미암았으니, 그 형제를 베어도 천하에 사죄하기에 넉넉하지 않소."
이때 유량이 온교의 배 뒤에서 이를 듣고 근심하고 두려워 꾀가 없었다.
다른 날 온교가 유량에게 도공을 보라 권하니, 유량이 망설이며 가지 못하였다.
온교가 말하였다. "시내 개는 내가 잘 아니 그대는 다만 보시오. 반드시 근심이 없을 것이오."
유량의 풍모와 자태와 정신과 모습에 도공이 한 번 보고 곧 보는 눈을 고쳤다. 이야기하고 잔치하기를 온종일 하며 아끼고 무겁게 여김이 문득 지극해졌다.
협주 2
《晉陽秋》曰:「蘇峻自姑孰至于石頭,逼遷天子。峻以倉屋為宮,使人守衛。」《靈鬼志謠徵》曰:「明帝末有謠歌:『側側力,放馬出山側。大馬死,小馬餓。』後峻遷帝於石頭,御膳不具。」
『진양추』에 이르기를 「소준이 고숙에서 석두에 이르러 천자를 다그쳐 옮겼다. 소준이 곳간 집을 궁으로 삼고 사람을 시켜 지키게 하였다」 하였다. 『영귀지요징』에 이르기를 「명제 말에 노래가 있어 『쓸쓸하고 힘차게 말을 산 곁으로 내보낸다. 큰 말이 죽고 작은 말이 주린다』 하였다. 뒤에 소준이 임금을 석두로 옮기니 임금의 밥상이 갖추어지지 않았다」 하였다.
徐廣《晉紀》曰:「肅祖遺詔,庾亮、王導輔幼主而進大臣官,陶侃、祖約不在其例。侃、約疑亮寢遺詔也。」《中興書》曰:「初,庾亮欲徵蘇峻,卞壼不許。溫嶠及三吳欲起兵衛帝室,亮不聽,下制曰:『妄起兵者誅!』故峻得作亂京邑也。」
서광의 『진기』에 이르기를 「숙조가 남긴 조칙에 유량과 왕도가 어린 임금을 돕고 대신의 벼슬을 올리게 하였는데, 도간과 조약은 그 예에 들지 않았다. 도간과 조약이 유량이 남긴 조칙을 덮었는가 의심하였다」 하였다. 『중흥서』에 이르기를 「처음에 유량이 소준을 부르려 하매 변곤이 허락하지 않았다. 온교와 삼오가 군사를 일으켜 임금의 집안을 지키려 하였으나 유량이 듣지 않고 제도를 내려 『함부로 군사를 일으키는 이는 벤다』 하였다. 그러므로 소준이 서울에서 난을 일으킬 수 있었다」 하였다.
24오직 언덕과 골짜기만이 홀로 남았을 뿐입니다
庾太尉在武昌,秋夜氣佳景清,使吏殷浩、王胡之之徒登南樓理詠。音調始遒,聞函道中有屐聲甚厲,定是庾公。俄而率左右十許人步來,諸賢欲起避之。公徐云:「諸君少住,老子於此處興復不淺!」因便據胡床,與諸人詠謔,竟坐甚得任樂。後王逸少下,與丞相言及此事。丞相曰:「元規爾時風範,不得不小穨。」右軍答曰:「唯丘壑獨存。」
유태위가 무창에 있을 때 가을밤에 기운이 아름답고 경치가 맑았다.
아전 은호와 왕호지의 무리에게 남루에 올라 다스려 읊게 하였다.
소리와 가락이 비로소 굳세어지는데, 다락 길 가운데 나막신 소리가 몹시 매서운 것이 들리니 틀림없이 유공이었다.
이윽고 곁의 사람 열 남짓을 이끌고 걸어오니 여러 어진 이가 일어나 그를 피하려 하였다.
공이 천천히 말하였다. "그대들은 잠깐 머무시오. 늙은이가 이 자리에서 흥이 또한 얕지 않소."
이로 인해 곧 호상에 걸터앉아 여러 사람과 읊고 놀리니, 마침내 온 자리가 몹시 즐거움에 맡길 수 있었다.
뒤에 왕일소가 내려와 승상과 이 일을 말하였다.
승상이 말하였다. "원규가 그때 풍모와 본이 조금 무너지지 않을 수 없었겠소."
우군이 대답하였다. "오직 언덕과 골짜기만이 홀로 남았을 뿐입니다."
협주 1
孫綽《庾亮碑文》曰:「公雅好所託,常在塵垢之外。雖柔心應世,蠖屈其跡,而方寸湛然,固以玄對山水。」
손작의 「유량비문」에 이르기를 「공은 우아하게 부치는 바를 좋아하여 늘 티끌과 때의 밖에 있었다. 비록 부드러운 마음으로 세상에 응하고 자벌레처럼 그 자취를 굽혔으나, 마음 한 치가 맑아 본디 아득함으로 산과 물을 마주하였다」 하였다.
25아우가 재주가 걸맞지 않음이 한스럽구나
王敬豫有美形,問訊王公。王公撫其肩曰:「阿奴恨才不稱!」又云:「敬豫事事似王公。」
왕경예가 아름다운 모습이 있어 왕공에게 문안하였다.
왕공이 그 어깨를 어루만지며 말하였다. "아우가 재주가 걸맞지 않음이 한스럽구나."
또 말하였다. "경예는 일마다 왕공을 닮았다."
협주 1
《語林》曰:「謝公云:『小時在殿廷會見丞相,便覺清風來拂人。』」
『어림』에 이르기를 「사공이 이르기를 『어릴 때 대궐 뜰 모임에서 승상을 뵈니 곧 맑은 바람이 와서 사람을 스치는 것을 느꼈다』 하였다」 하였다.
26낯은 엉긴 기름 같고 눈은 옻을 찍은 듯하니 이는 신선 가운데 사람이다
王右軍見杜弘治,嘆曰:「面如凝脂,眼如點漆,此神仙中人!」時人有稱王長史形者,蔡公曰:「恨諸人不見杜弘治耳!」
왕우군이 두홍치를 보고 탄식하였다. "낯은 엉긴 기름 같고 눈은 옻을 찍은 듯하니 이는 신선 가운데 사람이다."
그때 사람 가운데 왕장사의 모습을 일컫는 이가 있으니 채공이 말하였다. "여러 사람이 두홍치를 보지 못한 것이 한이오."
협주 1
《江左名士傳》曰:「永和中,劉真長、謝仁祖共商略中朝人士。或曰:『杜弘治清標令上,為後來之美,又面如凝脂,眼如點漆,粗可得方諸衛玠。』」
『강좌명사전』에 이르기를 「영화 연간에 유진장과 사인조가 함께 중원의 인사를 헤아려 말하였다. 어떤 이가 『두홍치는 맑게 드러나고 좋고 위라 뒤에 오는 이의 아름다움이 되며, 또 낯은 엉긴 기름 같고 눈은 옻을 찍은 듯하니 거칠게나마 위개에 견줄 만하다』 하였다」 하였다.
27살쩍은 뒤집힌 고슴도치 가죽 같고 눈썹은 자줏빛 돌 모서리 같다
劉尹道桓公:鬢如反猬皮,眉如紫石稜,自是孫仲謀、司馬宣王一流人。
유윤이 환공을 말하였다. 살쩍은 뒤집힌 고슴도치 가죽 같고 눈썹은 자줏빛 돌 모서리 같으니, 절로 손중모와 사마선왕 같은 무리의 사람이라고.
협주 1
宋明帝《文章志》曰:「溫為溫嶠所賞,故名溫。」《吳志》曰:「孫權字仲謀,策弟也。漢使者劉琬語人曰:『吾觀孫氏兄弟,雖並有才秀明達,皆祿胙不終。唯中弟孝廉,形貌魁偉,骨體不恆,有大貴之表。』」《晉陽秋》曰:「宣王天姿傑邁,有英雄之略。」
송나라 명제의 『문장지』에 이르기를 「환온이 온교에게 기림을 받았으므로 온이라 이름 하였다」 하였다. 『오지』에 이르기를 「손권은 자가 중모요 손책의 아우다. 한나라 사신 유완이 남에게 이르기를 『내가 손씨 형제를 보건대 비록 아울러 재주가 빼어나고 밝게 통달하나 다 녹과 복이 마치지 못하겠다. 오직 가운데 아우 효렴만이 모습이 크고 훌륭하며 뼈대가 예사롭지 않아 크게 귀할 표시가 있다』 하였다」 하였다. 『진양추』에 이르기를 「선왕은 하늘이 준 자태가 뛰어나고 영웅의 헤아림이 있었다」 하였다.
28큰 종에게 본디 절로 봉의 털이 있구나
王敬倫風姿似父,作侍中,加授桓公,公服從大門入。桓公望之,曰:「大奴固自有鳳毛。」
왕경륜은 풍모와 자태가 아버지를 닮았다.
시중이 되어 환공에게 벼슬을 더해 주게 되매 공복으로 큰 문에서 들어왔다.
환공이 이를 바라보고 말하였다. "큰 종에게 본디 절로 봉의 털이 있구나."
협주 1
大奴,王劭也。已見。《中興書》曰:「劭美姿容,持儀操也。」
큰 종은 왕소다. 이미 보인다. 『중흥서』에 이르기를 「왕소는 자태와 모습이 아름답고 몸가짐과 지조를 지녔다」 하였다.
29옷깃을 여미고 한 번 오는데 어찌 그리 헌걸차고 아름답게 드는가
林公道王長史:「斂衿作一來,何其軒軒韶舉!」
임공이 왕장사를 말하였다. "옷깃을 여미고 한 번 오는데 어찌 그리 헌걸차고 아름답게 드는가."
협주 1
《語林》曰:「王仲祖有好儀形,每覽鏡自照,曰:『王文開那生如馨兒!』時人謂之達也。」
『어림』에 이르기를 「왕중조가 좋은 몸가짐과 모습이 있어 거울을 볼 때마다 스스로 비추며 『왕문개가 어찌 이런 아이를 낳았는가』 하니, 그때 사람들이 그를 통달하였다 하였다」 하였다.
30떠도는 구름처럼 나부끼고 놀란 용처럼 굽이친다
時人目王右軍:「飄如遊雲,矯若驚龍。」
그때 사람들이 왕우군을 두고 말하였다. "떠도는 구름처럼 나부끼고 놀란 용처럼 굽이친다."
31이는 반드시 임공이다
王長史嘗病,親疎不通。林公來,守門人遽啟之曰:「一異人在門,不敢不啟。」王笑曰:「此必林公。」
왕장사가 일찍이 병들어 가깝고 성긴 이를 통하지 않았다.
임공이 오니 문 지키는 이가 다급히 아뢰었다. "한 남다른 사람이 문에 있어 감히 아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왕장사가 웃으며 말하였다. "이는 반드시 임공이다."
협주 1
按《語林》曰:「諸人嘗要阮光祿共詣林公。阮曰:『欲聞其言,惡見其面。』」此則林公之形,信當醜異。
살피건대 『어림』에 이르기를 「여러 사람이 일찍이 완광록에게 함께 임공을 찾아가자 청하였다. 완유가 『그 말은 듣고자 하나 그 낯은 보기 싫다』 하였다」 하였다. 이러면 곧 임공의 모습이 참으로 마땅히 추하고 남달랐을 것이다.
32북쪽 창 아래 다리를 뻗고 비파를 타니 짐짓 하늘가 참사람의 생각이 있다
或以方謝仁祖不乃重者。桓大司馬曰:「諸君莫輕道,仁祖企腳北窗下彈琵琶,故自有天際真人想。」
어떤 이가 사인조에 견주며 이에 무겁게 여기지 않았다.
환대사마가 말하였다. "그대들은 가벼이 말하지 마시오. 인조가 북쪽 창 아래 다리를 뻗고 비파를 타면 짐짓 절로 하늘가 참사람의 생각이 있소."
협주 1
《晉陽秋》曰:「尚善音樂。」裴子云:「丞相嘗曰:『堅石挈腳枕琵琶,有天際想。』」堅石,尚小名。
『진양추』에 이르기를 「사상이 음악을 잘하였다」 하였다. 『배자』에 이르기를 「승상이 일찍이 이르기를 『견석이 다리를 들고 비파를 베니 하늘가의 생각이 있다』 하였다」 하였다. 견석은 사상의 아이 적 이름이다.
33이는 다시 세상 가운데 사람 같지 않다
王長史為中書郎,往敬和許。爾時積雪,長史從門外下車,步入尚書,著公服。敬和遙望,嘆曰:「此不復似世中人!」
왕장사가 중서랑이 되어 경화의 처소에 갔다.
이때 눈이 쌓였는데 장사가 문 밖에서 수레에서 내려 걸어 상서로 들어오며 공복을 입었다.
경화가 멀리 바라보고 탄식하였다. "이는 다시 세상 가운데 사람 같지 않다."
협주 1
敬和,王洽已見。
경화는 왕흡이니 이미 보인다.
34상왕이 도움을 하시면 저절로 신군처럼 맑습니다
簡文作相王時,與謝公共詣桓宣武。王珣先在內,桓語王:「卿嘗欲見相王,可住帳裏。」二客既去,桓謂王曰:「定何如?」王曰:「相王作輔,自然湛若神君,公亦萬夫之望。不然,僕射何得自沒?」
간문제가 상왕이던 때에 사공과 함께 환선무를 찾아갔다.
왕순이 먼저 안에 있었는데 환온이 왕순에게 말하였다. "경이 일찍이 상왕을 보려 하였으니 휘장 안에 머무를 만하오."
두 손이 이미 가자 환온이 왕순에게 말하였다. "참으로 어떠하오."
왕순이 말하였다. "상왕께서 도움을 하시면 저절로 신군처럼 맑습니다. 공께서도 또한 만인의 바람이십니다. 그렇지 않다면 복야가 어찌 스스로 잠길 수 있었겠습니까."
협주 2
《續晉陽秋》曰:「帝美風姿,舉止端詳。」
『속진양추』에 이르기를 「임금은 풍모와 자태가 아름답고 몸가짐이 단정하고 자세하였다」 하였다.
僕射,謝安。
복야는 사안이다.
35오직 회계왕이 오면 헌걸차기가 아침노을이 드는 듯하였다
海西時,諸公每朝,朝堂猶暗;唯會稽王來,軒軒如朝霞舉。
해서공 때에 여러 공이 조회할 때마다 조정 마루가 오히려 어두웠는데, 오직 회계왕이 오면 헌걸차기가 아침노을이 드는 듯하였다.
36다만 공손히 앉아 코를 만지며 곁눈질하여도 곧 절로 산과 못에 눕고 지내는 몸가짐이 있다
謝車騎道謝公:「遊肆復無乃高唱,但恭坐捻鼻顧睞,便自有寢處山澤閒儀。」
사거기가 사공을 말하였다. "노닐고 멋대로 함에 다시 높이 노래하지 않고, 다만 공손히 앉아 코를 만지며 곁눈질하여도 곧 절로 산과 못에 눕고 지내는 몸가짐이 있다."
37임공의 두 눈을 보면 검고 검어 밝게 검다
謝公云:「見林公雙眼,黯黯明黑。」孫興公見林公:「稜稜露其爽。」
사공이 말하였다. "임공의 두 눈을 보면 검고 검어 밝게 검다."
손흥공이 임공을 보고 말하였다. "모나고 모나 그 시원함을 드러낸다."
38여러 손이 그 정신과 자태를 바라보고 한때에 물러나 숨었다
庾長仁與諸弟入吳,欲住亭中宿。諸弟先上,見群小滿屋,都無相避意。長仁曰:「我試觀之。」乃策杖將一小兒,始入門,諸客望其神姿,一時退匿。
유장인이 여러 아우와 오나라에 들어가 정자 안에 묵으려 하였다.
여러 아우가 먼저 오르니 뭇 작은 사람이 방에 가득하여 도무지 서로 피할 뜻이 없음을 보았다.
장인이 말하였다. "내가 시험 삼아 보겠다."
이에 지팡이를 짚고 어린아이 하나를 데리고 비로소 문에 드니, 여러 손이 그 정신과 자태를 바라보고 한때에 물러나 숨었다.
협주 1
長仁已見,一說是庾亮。
장인은 이미 보인다. 한 설에는 유량이라 한다.
39씻은 듯하기가 봄달의 버들 같다
有人嘆王恭形茂者,云:「濯濯如春月柳。」
어떤 이가 왕공의 모습이 무성함을 탄식하며 말하였다. "씻은 듯하기가 봄달의 버들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