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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世説新語 自新第十五

세설신어 世說新語 · 유의경(劉義慶) 엮음 · 유효표(劉孝標) 주 · 남조 송(5세기) · 양 유효표 주 · 단락 2 · 한자 329자 · 낭독 1.3분

「세설신어」 「자신」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해가 멉니다. 사람이 해 가에서 왔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으니 그대로 알 수 있습니다」 — 몇 살 난 아이가 아버지 무릎에서 한 대답이다. 이튿날 다시 묻자 「해가 가깝습니다. 눈을 들면 해는 보이나 장안은 보이지 않습니다」 했다. 후한 말부터 동진까지 이백여 해, 사람들이 주고받은 말과 몸짓만을 서른여섯 갈래로 나누어 모았다. 덕행·언어·정사·문학에서 시작해 사치·성냄·시새움·원수까지 내려가니, 기릴 것과 나무랄 것을 같은 무게로 놓은 셈이다. 대숲의 일곱 사람이 나오고, 왕희지가 사위로 뽑히고, 눈 오는 밤 배를 저어 벗의 집 앞까지 갔다가 흥이 다했다며 돌아온다. 한 조각이 대개 서너 줄, 길어도 한 쪽을 넘지 않는다. 유효표가 백여 종의 책을 끌어와 단 주는 그 책들이 거의 다 없어진 지금 도리어 본문보다 길게 남았다.

1옛사람은 아침에 듣고 저녁에 죽음을 귀히 여겼거늘 하물며 그대는 앞길이 아직 있소

周處年少時,兇彊俠氣,為鄉里所患;又義興水中有蛟,山中有邅跡虎,並皆暴犯百姓;義興人謂為「三橫」,而處尤劇。或說處殺虎斬蛟,實冀「三橫」唯餘其一。處即刺殺虎,又入水擊蛟,蛟或浮或沒,行數十里,處與之俱。經三日三夜,鄉里皆謂已死,更相慶。竟殺蛟而出。聞里人相慶,始知為人情所患,有自改意。乃入吳尋二陸。平原不在,正見清河,具以情告,並云:「欲自修改,而年已蹉跎,終無所成!」清河曰:「古人貴朝聞夕死,況君前途尚可。且人患志之不立,亦何憂令名不彰邪?」處遂改勵,終為忠臣孝子。

주처가 나이 어릴 때 사납고 굳세며 협기가 있어 마을이 걱정하는 바가 되었다.

또 의흥의 물 가운데 이무기가 있고 산 가운데 발자국 끄는 범이 있어, 아울러 다 백성을 사납게 범하였다.

의흥 사람들이 이를 「세 가로 놓인 것」이라 하였는데 주처가 더욱 심하였다.

어떤 이가 주처에게 범을 죽이고 이무기를 베라 달래니, 실은 「세 가로 놓인 것」에서 오직 하나만 남기를 바란 것이었다.

주처가 곧 범을 찔러 죽이고 또 물에 들어가 이무기를 쳤다. 이무기가 뜨락 잠기락 하며 몇십 리를 가는데 주처가 이와 함께하였다.

사흘 낮 사흘 밤이 지나매 마을이 다 이미 죽었다 하여 서로 다시 경사롭다 하였다.

마침내 이무기를 죽이고 나왔다. 마을 사람이 서로 경사롭다 함을 듣고, 비로소 사람의 정이 걱정하는 바가 된 줄 알아 스스로 고칠 뜻이 있었다.

이에 오나라에 들어가 두 육씨를 찾았다. 평원은 있지 않고 바로 청하를 보았다.

갖추어 정을 알리고 아울러 말하였다. "스스로 닦아 고치고자 하나 나이가 이미 미끄러져 마침내 이룰 바가 없습니다."

청하가 말하였다. "옛사람은 아침에 도를 듣고 저녁에 죽음을 귀히 여겼거늘 하물며 그대는 앞길이 아직 있소. 또 사람은 뜻이 서지 않음을 걱정할 것이지, 또한 어찌 좋은 이름이 드러나지 않음을 근심하겠소."

주처가 마침내 고쳐 힘써 마침내 충신이요 효자가 되었다.

협주 4

《處別傳》曰:「處字子隱,吳郡陽羡人。父魴,吳鄱陽太守。處少孤,不治細行。」《晉陽秋》曰:「處輕果薄行,州郡所棄。」

『처별전』에 이르기를 「주처는 자가 자은이요 오군 양선 사람이다. 아버지 주방은 오나라 파양태수다. 주처는 어려서 아비를 잃고 잔 몸가짐을 다스리지 않았다」 하였다. 『진양추』에 이르기를 「주처는 가볍고 과감하며 몸가짐이 엷어 주와 군이 버린 바였다」 하였다.

一作白額。

한 본에는 흰 이마라 되어 있다.

《孔氏志怪》曰:「義興有邪足虎,溪渚長橋有蒼蛟,並大噉人,郭西周,時謂郡中三害。」周即處也。

『공씨지괴』에 이르기를 「의흥에 절뚝발이 범이 있고 시내 물가 긴 다리에 푸른 이무기가 있어, 아울러 크게 사람을 먹었으며 성 서쪽의 주씨와 함께 그때 고을 안의 세 해라 일렀다」 하였다. 주씨는 곧 주처다.

《晉陽秋》曰:「處仕晉為御史中丞,多所彈糾。氐人齊萬年反,乃令處距萬年。伏波孫秀欲表處母老,處曰:『忠孝之道,何當得兩全?』乃進戰。斬首萬計。弦絕矢盡,左右勸退,處曰:『此是吾授命之日。』遂戰而沒。」

『진양추』에 이르기를 「주처가 진나라에 벼슬하여 어사중승이 되어 탄핵하여 바로잡은 바가 많았다. 저족 사람 제만년이 배반하자 이에 주처에게 만년을 막게 하였다. 복파 손수가 주처의 어미가 늙었음을 표로 올리려 하니, 주처가 『충성과 효도의 길을 어찌 마땅히 둘 다 온전히 하겠는가』 하고, 이에 나아가 싸워 벤 머리가 만으로 헤아려졌다. 활줄이 끊어지고 화살이 다하매 곁의 사람이 물러나기를 권하니, 주처가 『이것이 내가 목숨을 바칠 날이다』 하고 마침내 싸우다 죽었다」 하였다.

2경은 재주가 이러한데 또한 다시 도적질을 하는가

戴淵少時,遊俠不治行檢,嘗在江、淮間攻掠商旅。陸機赴假還洛,輜重甚盛,淵使少年掠劫;淵在岸上,據胡床,指麾左右,皆得其宜。淵既神姿峰頴,雖處鄙事,神氣猶異。機於船屋上遙謂之曰:「卿才如此,亦復作劫邪?」淵便泣涕,投劍歸機,辭厲非常。機彌重之,定交,作筆荐焉。過江,仕至征西將軍。

대연이 젊었을 때 협객으로 놀며 몸가짐과 검속을 다스리지 않아, 일찍이 장강과 회수 사이에서 장사치와 나그네를 쳐서 빼앗았다.

육기가 말미를 가서 낙양으로 돌아오는데 짐수레가 몹시 성하니, 대연이 젊은이를 시켜 빼앗아 겁박하게 하였다.

대연은 언덕 위에서 호상에 걸터앉아 곁의 사람을 가리키고 지휘하는데 다 그 마땅함을 얻었다.

대연은 이미 정신과 자태가 봉우리처럼 빼어나, 비록 더러운 일에 처하였으나 정신과 기운이 오히려 남달랐다.

육기가 배집 위에서 멀리 일러 말하였다. "경은 재주가 이러한데 또한 다시 도적질을 하는가."

대연이 곧 눈물을 흘리고 칼을 던지고 육기에게 돌아오니, 말이 매섭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육기가 더욱 그를 무겁게 여겨 사귐을 정하고 붓을 들어 그를 천거하였다.

강을 건너 벼슬이 정서장군에 이르렀다.

협주 1

虞預《晉書》曰:「機薦淵於趙王倫曰:『蓋聞繁弱登御,然後高墉之功顯;孤竹在肆,然後降神之曲成。伏見處士戴淵,砥節立行,有井渫之潔;安窮樂志,無風塵之慕。誠東南之遺寶,朝廷之貴璞也。若得寄跡康衢,必能結軌驥騄;耀質廊廟,必能垂光瑜璠。夫枯岸之民,果於輸珠;潤山之客,烈於貢玉。蓋明暗呈形,則庸識所甄也。』倫即辟淵。」

우예의 『진서』에 이르기를 「육기가 조왕 사마륜에게 대연을 천거하며 이르기를 『무릇 듣건대 번약이 올라 부려진 뒤에야 높은 담의 공이 드러나고, 고죽이 저자에 있은 뒤에야 신을 내리는 가락이 이루어진다 합니다. 엎드려 처사 대연을 보건대 절개를 갈고 몸가짐을 세워 쳐낸 우물의 맑음이 있고, 궁함에 편안하고 뜻을 즐겨 바람과 티끌의 그리움이 없습니다. 참으로 동남의 남은 보배요 조정의 귀한 옥돌입니다. 만일 자취를 편한 길에 부치게 하면 반드시 좋은 말과 바퀴자국을 맺을 수 있고, 바탕을 낭묘에 빛내면 반드시 아름다운 옥의 빛을 드리울 수 있습니다. 무릇 마른 언덕의 백성이 구슬 바치기에 과감하고, 젖은 산의 손이 옥 바치기에 매서운 법입니다. 무릇 밝음과 어두움이 꼴을 드러내면 곧 예사로운 앎으로도 가려낼 바입니다』 하였다. 사마륜이 곧 대연을 불렀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