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서世説新語 傷逝第十七
1저마다 한 소리씩 지어 보내 주시오
王仲宣好驢鳴,既葬,文帝臨其喪,顧語同遊曰:「王好驢鳴,可各作一聲以送之。」赴客皆一作驢鳴。
왕중선이 나귀 울음을 좋아하였다.
이미 장사 지내매 문제가 그 상에 임하여, 함께 노닐던 이를 돌아보고 말하였다. "왕이 나귀 울음을 좋아하였으니 저마다 한 소리씩 지어 보내 줄 만하다."
조문 온 손이 다 한 번씩 나귀 울음을 지었다.
협주 2
魏志曰:「王粲字仲宣,山陽高平人。曾祖龔、父暢,皆為漢三公。粲至長安見蔡邕,邕奇之,倒屣迎之曰:『此王公孫,有異才,吾不及也!吾家書籍,盡當與之。』避亂荊州,依劉表,以粲貌寢通脫,不甚重之。太祖以從征吳,道中卒。」
『위지』에 이르기를 「왕찬은 자가 중선이요 산양 고평 사람이다. 증조 왕공과 아버지 왕창이 다 한나라의 삼공이 되었다. 왕찬이 장안에 이르러 채옹을 보니, 채옹이 그를 기이하게 여겨 신을 거꾸로 신고 맞으며 『이는 왕공의 손자로 남다른 재주가 있어 내가 미치지 못한다. 우리 집 서적을 다 마땅히 그에게 주겠다』 하였다. 난을 피해 형주로 가서 유표에게 기댔는데, 왕찬이 모습이 못나고 통하여 벗어났다 하여 그를 몹시 무겁게 여기지 않았다. 태조가 오나라 치는 걸음에 데려갔는데 길에서 죽었다」 하였다.
按戴叔鸞母好驢鳴,叔鸞每為驢鳴以說其母。人之所好,儻亦同之。
살피건대 대숙란의 어미가 나귀 울음을 좋아하여 숙란이 늘 나귀 울음을 지어 그 어미를 기쁘게 하였다. 사람이 좋아하는 바가 혹 또한 같은 것이다.
2오늘 이를 보매 비록 가까우나 아득하기가 산과 물 같다
王濬沖為尚書令,著公服,乘軺車,經黃公酒壚下過,顧謂後車客:「吾昔與嵇叔夜、阮嗣宗共酣飲於此壚,竹林之遊,亦預其末。自嵇生夭、阮公亡以來,便為時所羈紲。今日視此雖近,邈若山河。」
왕준충이 상서령이 되어 공복을 입고 초헌을 타고 황공의 술집 아래를 지나갔다.
뒷수레의 손을 돌아보고 말하였다. "내가 옛날 혜숙야와 완사종과 함께 이 술집에서 흠뻑 마셨고, 죽림의 노닒에도 또한 그 끝에 끼었다. 혜생이 일찍 죽고 완공이 간 뒤로 곧 때에 매인 바가 되었다. 오늘 이를 보매 비록 가까우나 아득하기가 산과 물 같다."
협주 2
韋昭漢書注曰:「壚,酒肆也。以土為墮,四邊高似壚也。」
위소의 『한서』 주에 이르기를 「노(壚)는 술집이다. 흙으로 둔덕을 만들어 네 가가 높은 것이 화로 같다」 하였다.
竹林七賢論曰:「俗傳若此。潁川庾爰之嘗以問其伯文康,文康云:『中朝所不聞,江左忽有此論,皆好事者為之也。』」
『죽림칠현론』에 이르기를 「세상에 전하기가 이와 같다. 영천의 유원지가 일찍이 그 큰아버지 문강에게 물으니, 문강이 『중조에서 듣지 못한 바인데 강좌에서 홀연히 이런 논이 있으니 다 일 좋아하는 이가 지은 것이다』 하였다」 하였다.
3그대들을 살리고 이 사람을 죽게 하였구나
孫子荊以有才,少所推服,唯雅敬王武子。武子喪,時名士無不至者;子荊後來,臨屍慟哭,賓客莫不垂涕。哭畢,向靈床曰:「卿常好我作驢鳴,今我為卿作。」體似聲真,賓客皆笑。孫舉頭曰:「使君輩存,令此人死。」
손자형은 재주가 있어 밀어 따르는 바가 적었는데, 오직 왕무자만은 우아하게 공경하였다.
왕무자가 죽으매 그때 이름난 선비가 이르지 않는 이가 없었다.
자형이 뒤에 와서 주검에 임하여 애통히 곡하니 손이 눈물을 드리우지 않는 이가 없었다.
곡을 마치고 신주 자리를 향하여 말하였다. "경이 늘 내가 나귀 울음 짓는 것을 좋아하였으니 이제 내가 경을 위해 짓겠다."
몸짓이 닮고 소리가 참되니 손들이 다 웃었다.
손자형이 머리를 들고 말하였다. "그대들을 살리고 이 사람을 죽게 하였구나."
협주 1
語林曰:「王武子葬,孫子荊哭之甚悲,賓客莫不垂涕。既作驢鳴,賓客皆笑。孫曰:『諸君不死,而令武子死乎?』賓客皆怒。」
『어림』에 이르기를 「왕무자를 장사 지낼 때 손자형이 몹시 슬피 곡하니 손이 눈물을 드리우지 않는 이가 없었다. 이윽고 나귀 울음을 지으니 손들이 다 웃었다. 손자형이 『그대들은 죽지 않고 무자를 죽게 하였는가』 하니 손들이 다 성내었다」 하였다.
4정이 모이는 바가 바로 우리 무리에 있소
王戎喪兒萬子,山簡往省之,王悲不自勝。簡曰:「孩抱中物,何至於此?」王曰:「聖人忘情,最下不及情;情之所鍾,正在我輩。」簡服其言,更為之慟。
왕융이 아들 만자를 잃으니 산간이 가서 그를 살폈는데, 왕융의 슬픔이 스스로 이기지 못할 만하였다.
산간이 말하였다. "아이 품 안의 것인데 어찌 이에 이르십니까."
왕융이 말하였다. "성인은 정을 잊고 가장 아래는 정에 미치지 못하니, 정이 모이는 바가 바로 우리 무리에 있소."
산간이 그 말에 엎드려 다시 그를 위해 애통해하였다.
협주 2
王隱晉書曰:「戎子綏,欲取裴遁女。綏既蚤亡,戎過傷痛,不許人求之,遂至老無敢取者。」
왕은의 『진서』에 이르기를 「왕융의 아들 왕수가 배둔의 딸을 맞으려 하였다. 왕수가 이미 일찍 죽으매 왕융이 지나치게 아파하고 아파하여 남이 그를 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니, 마침내 늙도록 감히 맞는 이가 없었다」 하였다.
一說是王夷甫喪子,山簡弔之。
한 설에는 왕이보가 아들을 잃고 산간이 이를 조문한 것이라 한다.
5높고 높기가 천 길 소나무가 무너지는 듯하다
有人哭和長輿曰:「峨峨若千丈松崩。」
어떤 이가 화장여를 곡하며 말하였다. "높고 높기가 천 길 소나무가 무너지는 듯하다."
6엷은 제사를 닦아 옛 사귐을 도타이 할 만하다
衛洗馬以永嘉六年喪,謝鯤哭之,感動路人。咸和中,丞相王公教曰:「衛洗馬當改葬。此君風流名士,海內所瞻,可脩薄祭,以敦舊好。」
위세마가 영가 육 년에 죽으매 사곤이 이를 곡하니 길 가는 사람을 움직여 느끼게 하였다.
함화 연간에 승상 왕공이 가르쳐 말하였다. "위세마를 마땅히 고쳐 묻어야 한다. 이분은 풍류 있는 이름난 선비요 온 세상이 우러르는 바니, 엷은 제사를 닦아 옛 사귐을 도타이 할 만하다."
협주 2
永嘉流人名曰:「玠以六年六月二十日亡,葬南昌城許徵墓東。玠之薨,謝幼輿發哀於武昌,感慟不自勝。人問:『子何卹而致哀如是?』答曰:『棟梁折矣,何得不哀?』」
『영가유인명』에 이르기를 「위개가 육 년 유월 이십일에 죽어 남창성 허징의 무덤 동쪽에 묻혔다. 위개가 죽으매 사유여가 무창에서 곡하며 애통히 느껴 스스로 이기지 못하였다. 사람들이 『그대가 무엇을 걱정하기에 슬퍼함이 이와 같은가』 물으니, 대답하기를 『마룻대와 들보가 꺾였으니 어찌 슬퍼하지 않겠는가』 하였다」 하였다.
玠別傳曰:「玠咸和中改遷於江寧。丞相王公教曰:『洗馬明當改葬。此君風流名士,海內所瞻,可脩三牲之祭,以敦舊好。』」
『개별전』에 이르기를 「위개가 함화 연간에 강녕으로 옮겨졌다. 승상 왕공이 가르쳐 이르기를 『세마를 내일 마땅히 고쳐 묻는다. 이분은 풍류 있는 이름난 선비요 온 세상이 우러르는 바니, 세 가지 희생의 제사를 닦아 옛 사귐을 도타이 할 만하다』 하였다」 하였다.
7고언선이 자못 다시 이를 기려 주겠는가
顧彥先平生好琴,及喪,家人常以琴置靈床上。張季鷹往哭之,不勝其慟,遂徑上床,鼓琴,作數曲竟,撫琴曰:「顧彥先頗復賞此不?」因又大慟,遂不執孝子手而出。
고언선이 평생 거문고를 좋아하였는데, 죽으매 집 사람이 늘 거문고를 신주 자리 위에 두었다.
장계응이 가서 곡하다가 그 애통함을 이기지 못하여, 마침내 곧장 자리에 올라 거문고를 타 몇 가락을 짓고 마쳤다.
거문고를 어루만지며 말하였다. "고언선이 자못 다시 이를 기려 주겠는가."
이로 인해 또 크게 애통해하며, 마침내 효자의 손을 잡지 않고 나갔다.
8죽은 아이를 그리는 마음이 갓 잃은 때와 같소
庾亮兒遭蘇峻難遇害。諸葛道明女為庾兒婦,既寡,將改適,與亮書及之。亮答曰:「賢女尚少,故其宜也。感念亡兒,若在初沒。」
유량의 아들이 소준의 난을 만나 해를 입었다.
제갈도명의 딸이 유량 아들의 아내가 되었는데, 이미 홀로 되어 장차 고쳐 시집가려 하매 유량에게 글을 보내 이를 말하였다.
유량이 대답하였다. "어진 따님이 아직 젊으니 짐짓 그 마땅함이오. 죽은 아이를 그리는 마음이 갓 잃은 때와 같소."
협주 1
亮子會,會妻父彪,並已見上。
유량의 아들은 유회요 유회의 아내 아비는 제갈표니 아울러 이미 위에 보인다.
9옥나무를 흙 속에 묻으니 사람의 정이 어찌 그칠 수 있으랴
庾文康亡,何揚州臨葬云:「埋玉樹箸土中,使人情何能已已!」
유문강이 죽으매 하양주가 장사에 임하여 말하였다. "옥나무를 흙 속에 묻으니 사람의 정이 어찌 그칠 수 있으랴."
협주 1
搜神記曰:「初,庾亮病,術士戴洋曰:『昔蘇峻事,公於白石祠中許賽車下牛,從來未解。為此鬼所考,不可救也。』明年,亮果亡。」靈鬼志謠徵曰:「文康初鎮武昌,出石頭,百姓看者於岸歌曰:『庾公上武昌、翩翩如飛鳥;庾公還揚州,白馬牽旒旐。』又曰:『庾公初上時,翩翩如飛鳥;庾公還揚州,白馬牽旐車。』後連徵不入,尋薨,下都葬焉。」
『수신기』에 이르기를 「처음에 유량이 병들었을 때 술사 대양이 이르기를 『옛날 소준의 일에 공이 백석사 가운데서 수레 아래 소를 굿에 바치기로 허락하였는데 여태 풀지 않았습니다. 이 귀신에게 다잡히는 것이니 건질 수 없습니다』 하였다. 이듬해에 유량이 과연 죽었다」 하였다. 『영귀지요징』에 이르기를 「문강이 처음 무창을 지키러 석두를 나설 때, 백성 가운데 보는 이가 언덕에서 노래하기를 『유공이 무창에 오르니 훨훨 나는 새 같고, 유공이 양주로 돌아오니 흰 말이 깃발과 명정을 끄네』 하였다. 또 이르기를 『유공이 처음 오를 때 훨훨 나는 새 같더니, 유공이 양주로 돌아오니 흰 말이 명정 수레를 끄네』 하였다. 뒤에 잇달아 불러도 들어오지 않다가 이윽고 죽으매 서울에 내려와 장사 지냈다」 하였다.
10이런 사람이 일찍이 마흔도 얻지 못하는구나
王長史病篤,寢臥燈下,轉麈尾視之,嘆曰:「如此人,曾不得四十!」及亡,劉尹臨殯,以犀柄麈尾箸柩中,因慟絕。
왕장사가 병이 깊어 등불 아래 누웠는데, 주미를 굴려 이를 보며 탄식하였다. "이런 사람이 일찍이 마흔도 얻지 못하는구나."
죽으매 유윤이 빈소에 임하여 무소뿔 자루 주미를 널 안에 넣고, 이로 인해 애통하여 숨이 끊어졌다.
협주 1
濛別傳曰:「濛以永和初卒,年三十九。沛國劉惔與濛至交,及卒,惔深悼之。雖友于之愛,不能過也。」
『몽별전』에 이르기를 「왕몽이 영화 처음에 죽으니 나이 서른아홉이었다. 패국 유담이 왕몽과 지극한 사귐이었는데, 죽으매 유담이 깊이 그를 슬퍼하였다. 비록 형제의 아낌이라도 넘지 못하였다」 하였다.
11어두운 맞음이 이미 갔으니 나도 그 죽겠구나
支道林喪法虔之後,精神霣喪,風味轉墜。常謂人曰:「昔匠石廢斤於郢人,牙生輟絃於鍾子,推己外求,良不虛也!冥契既逝,發言莫賞,中心蘊結,余其亡矣!」卻後一年,支遂殞。
지도림이 법건을 잃은 뒤로 정신이 떨어져 잃고 풍모와 맛이 굴러 떨어졌다.
늘 남에게 말하였다. "옛날 장석이 영 땅 사람에게 도끼를 그쳤고 백아가 종자기에게 줄을 놓았으니, 나를 미루어 밖에서 구함이 참으로 헛되지 않다. 어두운 맞음이 이미 갔으니 말을 내어도 기려 주는 이가 없어, 마음 가운데 쌓이고 맺히니 나도 그 죽겠구나."
그 뒤 한 해 만에 지도림이 마침내 죽었다.
협주 3
支遁傳曰:「法虔,道林同學也。俊朗有理義,遁甚重之。」
『지둔전』에 이르기를 「법건은 도림과 함께 배운 이다. 뛰어나고 환하며 결과 옳음이 있어 지둔이 몹시 그를 무겁게 여겼다」 하였다.
莊子曰:「郢人堊漫其鼻端若蠅翼,使匠石運斤斲之,堊盡而鼻不傷,郢人立不失容。」
『장자』에 이르기를 「영 땅 사람이 그 코끝에 파리 날개만큼 흰 흙을 발라 놓고 장석에게 도끼를 놀려 깎게 하니, 흰 흙은 다하고 코는 다치지 않았으며 영 땅 사람은 서서 낯빛을 잃지 않았다」 하였다.
韓詩外傳曰:「伯牙鼓琴,鍾子期聽之,方鼓琴,志在太山,子期曰:『善哉乎,鼓琴!巍巍乎,若太山!』莫景之閒,志在流水,子期曰:『善哉乎,鼓琴!洋洋乎,若流水!』鍾子期死,伯牙擗琴絕絃;終身不復鼓之,以為在者無足為之鼓琴也。」
『한시외전』에 이르기를 「백아가 거문고를 타는데 종자기가 이를 들었다. 바야흐로 거문고를 타며 뜻이 태산에 있으니 자기가 『좋구나, 거문고 탐이여. 우뚝하기가 태산 같구나』 하였다. 잠깐 사이에 뜻이 흐르는 물에 있으니 자기가 『좋구나, 거문고 탐이여. 넘실넘실하기가 흐르는 물 같구나』 하였다. 종자기가 죽으매 백아가 거문고를 부수고 줄을 끊어 몸이 마치도록 다시 타지 않았으니, 있는 이가 그를 위해 거문고를 탈 만하지 않다 여긴 것이다」 하였다.
12빈소 차릴 때 말하여라
郗嘉賓喪,左右白郗公「郎喪」,既聞,不悲,因語左右:「殯時可道。」公往臨殯,一慟幾絕。
치가빈이 죽으매 곁의 사람이 치공에게 「낭군이 죽었습니다」 하고 아뢰었다.
이미 듣고도 슬퍼하지 않고 이로 인해 곁의 사람에게 말하였다. "빈소 차릴 때 말하여라."
공이 가서 빈소에 임하매 한 번 애통해하여 거의 숨이 끊어질 뻔하였다.
협주 1
中興書曰:「超年四十一,先愔卒。超所交友,皆一時俊乂。及死之日,貴賤為誄者四十餘人。」續晉陽秋曰:「超黨戴桓氏,為其謀主,以父愔忠於王室,不令知之。將亡,出一小書箱付門生,云:『本欲焚此,恐官年尊,必以傷愍為斃。我亡後,若大損眠食,則呈此箱。』愔後果慟悼成疾,門生乃如超旨,則與桓溫往反密計。愔見即大怒曰:『小子死恨晚!』後不復哭。」
『중흥서』에 이르기를 「치초는 나이 마흔하나에 치음보다 먼저 죽었다. 치초가 사귄 벗이 다 한때의 뛰어난 이였다. 죽는 날에 이르러 귀하고 천한 이로 뇌사를 지은 이가 마흔 남짓이었다」 하였다. 『속진양추』에 이르기를 「치초가 환씨에 무리 지어 그 꾀의 주인이 되었는데, 아버지 치음이 왕실에 참되므로 알게 하지 않았다. 죽으려 할 때 작은 책상자 하나를 내어 문생에게 주며 이르기를 『본디 이를 태우려 하였으나, 어른께서 나이 많으시니 반드시 아파하고 가엾이 여겨 죽게 되실까 두렵다. 내가 죽은 뒤에 만일 잠과 밥을 크게 덜거든 곧 이 상자를 드려라』 하였다. 치음이 뒤에 과연 애통히 슬퍼하여 병이 되니 문생이 이에 치초의 뜻대로 하였는데, 곧 환온과 오간 은밀한 꾀였다. 치음이 보고 곧 크게 성내어 『어린놈이 늦게 죽은 것이 한스럽다』 하고 뒤로는 다시 곡하지 않았다」 하였다.
13바라건대 신령한 결은 이어이어 기운의 운수와 함께 다하지 않기를
戴公見林法師墓,曰:「德音未遠,而拱木已積。冀神理緜緜,不與氣運俱盡耳!」
대공이 임법사의 무덤을 보고 말하였다. "덕스러운 소리가 아직 멀지 않은데 아름 되는 나무가 이미 쌓였구나. 바라건대 신령한 결은 이어이어 기운의 운수와 함께 다하지 않기를."
협주 2
支遁傳曰:「遁太和元年終于剡之石城山,因葬焉。」
『지둔전』에 이르기를 「지둔이 태화 원년에 섬의 석성산에서 죽어 이로 인해 거기 묻혔다」 하였다.
王珣法師墓下詩序曰:「余以寧康二年,命駕之剡石城山,即法師之丘也。高墳鬱為荒楚,丘隴化為宿莽,遺跡未滅,而其人已遠。感想平昔,觸物悽懷。」其為時賢所惜如此。
왕순의 「법사묘하시서」에 이르기를 「내가 영강 이 년에 수레를 명하여 섬의 석성산에 가니 곧 법사의 언덕이다. 높은 무덤은 우거져 거친 가시덤불이 되고 언덕은 묵은 풀로 바뀌었으니, 남긴 자취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으나 그 사람은 이미 멀다. 지난날을 느껴 생각하니 물건에 닿을 때마다 처량히 품는다」 하였다. 그가 그때 어진 이에게 아깝게 여겨짐이 이와 같았다.
14이는 나라의 아까운 사람이오
王子敬與羊綏善。綏清淳簡貴,為中書郎,少亡。王深相痛悼,語東亭云:「是國家可惜人!」
왕자경이 양수와 사이가 좋았다.
양수는 맑고 도타우며 간결하고 귀하여 중서랑이 되었는데 젊어서 죽었다.
왕자경이 깊이 서로 아파하고 슬퍼하여 동정에게 말하였다. "이는 나라의 아까운 사람이오."
협주 1
綏已見。
양수는 이미 보인다.
15법호에게 바라던 바다
王東亭與謝公交惡。王在東聞謝喪,便出都詣子敬道:「欲哭謝公。」子敬始臥,聞其言,便驚起曰:「所望於法護。」王於是往哭。督帥刁約不聽前,曰:「官平生在時,不見此客。」王亦不與語,直前,哭甚慟,不執末婢手而退。
왕동정이 사공과 사귐이 나빴다.
왕동정이 동쪽에 있다가 사공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곧 서울에 나와 자경을 찾아가 말하였다. "사공을 곡하고자 하오."
자경이 마침 누웠다가 그 말을 듣고 곧 놀라 일어나 말하였다. "법호에게 바라던 바다."
왕동정이 이에 가서 곡하였다.
독수 조약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며 말하였다. "어른께서 평생 계실 때 이 손을 보지 않으셨소."
왕동정이 또한 더불어 말하지 않고 곧장 나아가 곡하기를 몹시 애통히 하고, 말비의 손을 잡지 않고 물러났다.
협주 3
中興書曰:「珣兄弟皆婿謝氏,以猜嫌離婚。太傅既與珣絕婚,又離妻,由是二族遂成仇釁。」
『중흥서』에 이르기를 「왕순의 형제가 다 사씨의 사위였는데 의심과 꺼림으로 혼인을 끊었다. 태부가 이미 왕순과 혼인을 끊고 또 아내를 내보내니, 이로 말미암아 두 겨레가 마침내 원수의 틈을 이루었다」 하였다.
法護,珣小字。
법호는 왕순의 아이 적 이름이다.
末婢,謝琰小字。琰字瑗度,安少子。開率有大度,為孫恩所害。贈侍中司空。
말비는 사염의 아이 적 이름이다. 사염은 자가 원도요 사안의 작은아들이다. 트이고 시원하며 큰 도량이 있었는데 손은에게 해를 입었다. 시중과 사공을 내려 주었다.
16자경아 자경아 사람과 거문고가 다 갔구나
王子猷、子敬俱病篤,而子敬先亡。子猷問左右:「何以都不聞消息?此已喪矣!」語時了不悲。便索輿來奔喪,都不哭。子敬素好琴,便徑入坐靈床上,取子敬琴彈,弦既不調,擲地云:「子敬!子敬!人琴俱亡。」因慟絕良久,月餘亦卒。
왕자유와 자경이 함께 병이 깊었는데 자경이 먼저 죽었다.
자유가 곁의 사람에게 물었다. "어찌하여 도무지 소식이 들리지 않느냐. 이는 이미 죽은 것이다."
말할 때 조금도 슬퍼하지 않았다.
곧 수레를 찾아 상에 달려왔는데 도무지 곡하지 않았다.
자경이 본디 거문고를 좋아하였으므로 곧장 들어가 신주 자리 위에 앉아 자경의 거문고를 가져다 탔는데, 줄이 이미 고르지 않으매 땅에 던지며 말하였다. "자경아, 자경아. 사람과 거문고가 다 갔구나."
이로 인해 애통하여 숨이 끊어짐이 오래였고 달 남짓에 또한 죽었다.
협주 2
獻之以泰元十三年卒,年四十五。
왕헌지가 태원 십삼 년에 죽으니 나이 마흔다섯이었다.
幽明錄曰:「泰元中,有一師從遠來,莫知所出。云:『人命應終,有生樂代者,則死者可生。若逼人求代,亦復不過少時。』人聞此,咸怪其虛誕。王子猷、子敬兄弟,特相和睦。子敬疾屬纊,子猷謂之曰:『吾才不如弟,位亦通塞,請以餘年代弟。』師曰:『夫生代死者,以己年限有餘,得以足亡者耳。今賢弟命既應終,君侯算亦當盡,復何所代?』子猷先有背疾,子敬疾篤,恆禁來往。聞亡,便撫心悲惋,都不得一聲,背即潰裂。推師之言,信而有實。」
『유명록』에 이르기를 「태원 연간에 한 스님이 먼 데서 왔는데 나온 데를 알지 못하였다. 이르기를 『사람의 목숨이 마땅히 마쳐야 할 때, 살아서 대신하기를 즐기는 이가 있으면 곧 죽는 이가 살 수 있다. 만일 남을 다그쳐 대신을 구하면 또한 다시 잠깐도 지나지 못한다』 하였다. 사람들이 이를 듣고 다 그 헛되고 터무니없음을 괴이하게 여겼다. 왕자유와 자경 형제는 유난히 서로 화목하였다. 자경의 병이 솜을 붙일 지경에 이르매 자유가 이르기를 『내 재주가 아우만 못하고 자리 또한 막혔으니, 남은 해로 아우를 대신하기를 청한다』 하였다. 스님이 『무릇 살아서 죽는 이를 대신하는 것은 제 나이의 한이 남음이 있어 죽는 이에게 보태 줄 수 있는 것일 뿐이다. 이제 어진 아우의 목숨이 이미 마땅히 마쳐야 하고 그대의 셈도 또한 마땅히 다하였으니 다시 무엇을 대신하겠는가』 하였다. 자유가 앞서 등의 병이 있었는데, 자경의 병이 깊으매 늘 오가기를 금하였다. 죽었다는 말을 듣고 곧 가슴을 어루만지며 슬퍼 놀라 도무지 한 소리도 얻지 못하니 등이 곧 터져 갈라졌다. 스님의 말을 미루어 보면 미쁘고 실됨이 있다」 하였다.
17비록 서까래는 오직 새로우나 곧 절로 기장 이삭의 슬픔이 있다
孝武山陵夕,王孝伯入臨,告其諸弟曰:「雖榱桷惟新,便自有黍離之哀!」
효무제의 산릉 저녁에 왕효백이 들어가 곡하고 그 여러 아우에게 알려 말하였다. "비록 서까래는 오직 새로우나 곧 절로 기장 이삭의 슬픔이 있다."
협주 1
中興書曰:「烈宗喪,會稽王道子執政,寵幸王國寶,委以機任。王恭入赴山陵,故有此歎。」
『중흥서』에 이르기를 「열종이 죽으매 회계왕 사마도자가 정사를 잡고 왕국보를 사랑하고 아껴 기틀의 소임을 맡겼다. 왕공이 산릉에 들어와 곡하고 짐짓 이런 탄식이 있었다」 하였다.
18나를 끊는다는 탄식을 어찌 말할 수 있으랴
羊孚年三十一卒,桓玄與羊欣書曰:「賢從情所信寄,暴疾而殞,祝予之嘆,如何可言!」
양부가 나이 서른하나에 죽으매 환현이 양흔에게 글을 보내 말하였다. "어진 종형은 정을 믿고 부치던 바인데 갑작스러운 병으로 죽었으니, 나를 끊는다는 탄식을 어찌 말할 수 있으랴."
협주 2
孚已見。宋書曰:「欣字敬元,太山南城人。少懷靜默,秉操無競。美姿容,善笑言,長於草隸。」羊氏譜曰:「孚即欣從祖。」
양부는 이미 보인다. 『송서』에 이르기를 「양흔은 자가 경원이요 태산 남성 사람이다. 젊어서 고요히 잠잠함을 품고 지조를 잡아 다툼이 없었다. 자태와 모습이 아름답고 웃고 말하기를 잘하며 초서와 예서에 뛰어났다」 하였다. 『양씨보』에 이르기를 「양부는 곧 양흔의 종조다」 하였다.
公羊傳曰:「顏淵死,子曰:『噫!天喪予!』子路亡,子曰:『噫!天祝予!』」何休曰:「祝者,斷也。天將亡夫子耳。」
『공양전』에 이르기를 「안연이 죽으매 공자께서 『아, 하늘이 나를 잃게 하는구나』 하셨고, 자로가 죽으매 공자께서 『아, 하늘이 나를 끊는구나』 하셨다」 하였다. 하휴가 이르기를 「축(祝)은 끊음이다. 하늘이 장차 부자를 잃게 하려는 것이다」 하였다.
19바삐 이런 꾸짖고 부딪는 일을 하니 어찌 하늘 마음에 맞으랴
桓玄當篡位,語卞鞠云:「昔羊子道恆禁吾此意。今腹心喪羊孚,爪牙失索元,而怱怱作此詆突,詎允天心?」
환현이 자리를 빼앗으려 할 때 변국에게 말하였다. "옛날 양자도가 늘 나의 이 뜻을 막았소. 이제 배와 가슴 같은 이로 양부를 잃고 손톱과 이빨 같은 이로 색원을 잃었는데, 바삐 이런 꾸짖고 부딪는 일을 하니 어찌 하늘 마음에 맞겠소."
협주 2
卞範已見。
변범은 이미 보인다.
索氏譜曰:「元字天保,燉煌人。父緒,散騎常侍。元歷征虜將軍、歷陽太守。」幽明錄曰:「元在歷陽,疾病,西界一年少女子姓某,自言為神所降,來與元相聞,許為治護。元性剛直,以為妖惑,收以付獄,戮之於市中。女臨死曰:『卻後十七日,當令索元知其罪。』如期,元果亡。」
『색씨보』에 이르기를 「색원은 자가 천보요 돈황 사람이다. 아버지 색서는 산기상시다. 색원은 정로장군과 역양태수를 지냈다」 하였다. 『유명록』에 이르기를 「색원이 역양에 있을 때 병이 들었는데, 서쪽 지경의 한 젊은 여자 아무개가 스스로 신이 내렸다 말하고 와서 색원과 서로 알리며 다스려 주기를 허락하였다. 색원이 성품이 굳세고 곧아 요망하고 헷갈리게 하는 것이라 여겨 잡아 옥에 붙이고 저자 가운데서 죽였다. 여자가 죽으며 이르기를 『그 뒤 열이레에 마땅히 색원으로 하여금 그 죄를 알게 하리라』 하였는데, 기약대로 색원이 과연 죽었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