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원世説新語 賢媛第十九
1군사를 남에게 붙이면 이루어져도 그 이로움을 조금 받고 이루어지지 않아도 화가 돌아갈 데가 있다
陳嬰者,東陽人;少脩德行,箸稱鄉黨。秦末大亂,東陽人欲奉嬰為主,母曰:「不可。自我為汝家婦,少見貧賤;一旦富貴,不祥!不如以兵屬人:事成,少受其利;不成,禍有所歸。」
진영이라는 이는 동양 사람이다. 젊어서 덕과 행실을 닦아 마을에 일컬음이 드러났다.
진나라 말에 크게 어지러워지매 동양 사람이 진영을 받들어 주인 삼으려 하니, 어미가 말하였다. "안 된다. 내가 네 집안의 며느리가 된 뒤로 가난하고 천함을 많이 보았다. 하루아침에 부유하고 귀해지는 것은 상서롭지 않다. 군사를 남에게 붙이는 것만 못하다. 일이 이루어지면 그 이로움을 조금 받고, 이루어지지 않으면 화가 돌아갈 데가 있다."
협주 1
史記曰:「嬰故東陽令史,居縣素信,為長者。東陽人欲立長,乃請嬰。嬰母見之。乃以兵屬項梁,梁以嬰為上柱國。」
『사기』에 이르기를 「진영은 옛 동양의 영사인데 고을에 살며 본디 미쁘고 어른다웠다. 동양 사람이 어른을 세우려 하여 이에 진영에게 청하니 진영의 어미가 이를 보았다. 이에 군사를 항량에게 붙이니 항량이 진영을 상주국으로 삼았다」 하였다.
2이름과 글자가 이미 갔으므로 이에 마침내 갔다
漢元帝宮人既多,乃令畫工圖之,欲有呼者,輒披圖召之。其中常者,皆行貨賂。王明君姿容甚麗,志不苟求,工遂毀為其狀。後匈奴來和,求美女於漢帝,帝以明君充行。既召見,而惜之;但名字已去,不欲中改,於是遂行。
한나라 원제의 궁녀가 이미 많으매, 이에 화공에게 그들을 그리게 하고 부르고자 하는 이가 있으면 문득 그림을 헤쳐 불렀다.
그 가운데 예사로운 이는 다 뇌물을 썼다.
왕명군은 자태와 모습이 몹시 고왔으나 뜻이 구차히 구하지 않으매, 화공이 마침내 그 모습을 헐어 그렸다.
뒤에 흉노가 와서 화친하며 한나라 임금에게 아름다운 여자를 구하니, 임금이 명군으로 채워 보냈다.
이윽고 불러 보고 이를 아까워하였으나, 다만 이름과 글자가 이미 갔으므로 가운데서 고치고자 하지 않아 이에 마침내 갔다.
협주 1
漢書匈奴傳曰:「竟寧元年,呼韓邪單于求朝,自言願婿漢氏以自親,元帝以後宮良家子王嬙字明君賜之。單于懽喜,上書願保塞。」文穎曰:「昭君本蜀郡秭歸人也。」琴操曰:「王昭君者,齊國王穰女也。年十七,儀形絕麗,以節聞國中。長者求之者,王皆不許,乃獻漢元帝。帝造次不能別房帷,昭君恚怒之。會單于遣使,帝令宮人裝出,使者請一女。帝乃謂宮中曰:『欲至單于者起。』昭君喟然越席而起。帝視之,大驚悔。是時使者並見,不得止,乃賜單于。單于大說,獻諸珍物。昭君有子曰世違。單于死,世違繼立。凡為胡者,父死妻母。昭君問世違曰:『汝為漢也?為胡也?』世違曰:『欲為胡耳。』昭君乃吞藥自殺。」石季倫曰:「昭以觸文帝諱,故改為明。」
『한서·흉노전』에 이르기를 「경녕 원년에 호한야 선우가 조회하기를 구하며, 스스로 한나라의 사위가 되어 스스로 가까이하기를 바란다 말하니, 원제가 후궁의 좋은 집안 딸 왕장 자 명군을 그에게 내렸다. 선우가 기뻐하여 글을 올려 변방 지키기를 바랐다」 하였다. 문영이 이르기를 「소군은 본디 촉군 자귀 사람이다」 하였다. 『금조』에 이르기를 「왕소군이라는 이는 제나라 왕양의 딸이다. 나이 열일곱에 몸가짐과 모습이 지극히 고왔고 절개로 나라 안에 알려졌다. 어른으로 그를 구하는 이를 왕양이 다 허락하지 않고 이에 한나라 원제에게 바쳤다. 임금이 갑작스러워 방과 휘장을 가리지 못하니 소군이 이를 성내었다. 마침 선우가 사신을 보내매 임금이 궁녀를 꾸며 내보내니 사신이 한 여자를 청하였다. 임금이 이에 궁 안에 이르기를 『선우에게 가고자 하는 이는 일어나라』 하였다. 소군이 한숨 쉬며 자리를 넘어 일어났다. 임금이 이를 보고 크게 놀라 뉘우쳤다. 이때 사신이 아울러 보았으므로 그칠 수 없어 이에 선우에게 내렸다. 선우가 크게 기뻐하여 여러 진귀한 물건을 바쳤다. 소군에게 아들이 있어 세위라 하였다. 선우가 죽으매 세위가 이어 섰다. 무릇 오랑캐 된 이는 아비가 죽으면 어미를 아내로 삼는다. 소군이 세위에게 묻기를 『너는 한나라가 되겠느냐 오랑캐가 되겠느냐』 하니 세위가 『오랑캐가 되고자 할 뿐입니다』 하였다. 소군이 이에 약을 삼켜 스스로 죽었다」 하였다. 석계륜이 이르기를 「소(昭)가 문제의 휘에 닿으므로 명(明)으로 고쳤다」 하였다.
3만일 귀신이 앎이 있다면 삿되고 아첨하는 하소연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漢成帝幸趙飛燕,飛燕讒班婕妤祝詛,於是考問。辭曰:「妾聞死生有命,富貴在天。脩善尚不蒙福,為邪欲以何望?若鬼神有知,不受邪佞之訴;若其無知,訴之何益?故不為也。」
한나라 성제가 조비연을 사랑하니, 비연이 반첩여가 저주하였다 헐뜯어 이에 다잡아 물었다.
말하였다. "첩이 듣기로 죽고 삶은 명이 있고 부유하고 귀함은 하늘에 있다 합니다. 좋음을 닦아도 오히려 복을 입지 못하는데 삿됨을 하여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만일 귀신이 앎이 있다면 삿되고 아첨하는 하소연을 받지 않을 것이요, 만일 앎이 없다면 하소연한들 무슨 보탬이겠습니까. 그러므로 하지 않았습니다."
협주 1
漢書外戚傳曰:「成帝趙皇后,本長安宮人。初生,父母不舉,三日不死,乃收養之。及壯,屬河陽主家學歌舞,號曰飛燕。帝微行過主,見而說之,召入宮,大得幸,立為后。班婕妤者,雁門人。成帝初,選入宮,大得幸,為婕妤。帝遊後庭,嘗欲與同輦,婕妤辭之。趙飛燕譖許皇后及婕妤,婕妤對有辭致,上憐之,賜黃金百斤。飛燕嬌妒,婕妤恐見危,中求供養太后於長信宮。帝崩,婕妤充奉園陵。薨,葬園中。」
『한서·외척전』에 이르기를 「성제의 조황후는 본디 장안의 궁녀다. 갓 났을 때 어버이가 기르지 않았는데 사흘이 되어도 죽지 않으매 이에 거두어 길렀다. 자라매 하양주의 집에 붙어 노래와 춤을 배웠고 비연이라 불렸다. 임금이 몰래 다니다가 주의 집을 지나며 보고 기뻐하여 궁에 불러들이니 크게 사랑받아 세워 황후가 되었다. 반첩여라는 이는 안문 사람이다. 성제 처음에 뽑혀 궁에 들어 크게 사랑받아 첩여가 되었다. 임금이 뒷뜰에 노닐며 일찍이 함께 수레 타고자 하니 첩여가 이를 사양하였다. 조비연이 허황후와 첩여를 헐뜯으매 첩여의 대답에 말과 이룸이 있으니, 위에서 이를 가엾이 여겨 황금 백 근을 내렸다. 비연이 아리땁고 시새우매 첩여가 위태로워질까 두려워 가운데 장신궁에서 태후를 이바지하기를 구하였다. 임금이 죽으매 첩여가 원릉을 채워 받들었다. 죽으매 동산 안에 묻혔다」 하였다.
4개와 쥐도 네 남은 것을 먹지 않으리니 죽음이 짐짓 마땅하다
魏武帝崩,文帝悉取武帝宮人自侍。及帝病困,卞后出看疾。太后入戶,見直侍並是昔日所愛幸者。太后問:「何時來邪?」云:「正伏魄時過。」因不復前而嘆曰:「狗鼠不食汝餘,死故應爾!」至山陵,亦竟不臨。
위나라 무제가 죽으매 문제가 무제의 궁녀를 다 가져다 스스로 모시게 하였다.
임금이 병들어 곤함에 이르러 변태후가 나와 병을 보았다.
태후가 문에 들어 곧바로 모시는 이가 아울러 옛날 아끼고 사랑받던 이들임을 보았다.
태후가 물었다. "언제 왔느냐."
말하였다. "바로 넋을 부르던 때에 왔습니다."
이로 인해 다시 나아가지 않고 탄식하였다. "개와 쥐도 네 남은 것을 먹지 않으리니 죽음이 짐짓 마땅하다."
산릉에 이르러서도 또한 마침내 곡하러 가지 않았다.
협주 1
魏書曰:「武宣卞皇后,琅邪開陽人。以漢延熹三年生齊郡白亭,有黃氣滿室移日。父敬侯怪之,以問卜者王越。越曰:『此吉祥也。』年二十,太祖納於譙。性約儉,不尚華麗,有母儀德行。」
『위서』에 이르기를 「무선 변황후는 낭야 개양 사람이다. 한나라 연희 삼 년에 제군 백정에서 났는데 누런 기운이 방에 가득하기가 해를 옮겼다. 아버지 경후가 이를 괴이하게 여겨 점치는 이 왕월에게 물으니, 왕월이 『이는 길한 상서다』 하였다. 나이 스물에 태조가 초에서 맞아들였다. 성품이 검약하고 화려함을 숭상하지 않았으며 어미의 본과 덕스러운 행실이 있었다」 하였다.
5좋은 것도 오히려 하지 못하거늘 하물며 나쁜 것이랴
趙母嫁女,女臨去,敕之曰:「慎勿為好!」女曰:「不為好,可為惡邪?」母曰:「好尚不可為,其況惡乎?」
조씨 어미가 딸을 시집보낼 때 딸이 떠나려 하매 이를 경계하여 말하였다. "삼가 좋은 일을 하지 마라."
딸이 말하였다. "좋은 일을 하지 않으면 나쁜 일을 하오리까."
어미가 말하였다. "좋은 것도 오히려 하지 못하거늘 하물며 나쁜 것이랴."
협주 1
列女傳曰:「趙姬者,桐鄉令東郡虞韙妻,潁川趙氏女也。才敏多覽。韙既沒,文皇帝敬其文才,詔入宮省。上欲自征公孫淵,姬上疏以諫。作列女傳解,號趙母注。賦數十萬言。赤烏六年卒。」淮南子曰:「人有嫁其女而教之者,曰:『爾為善,善人疾之。』對曰:『然則當為不善乎?』曰:『善尚不可為,而況不善乎?』」景獻羊皇后曰:「此言雖鄙,可以命世人。」
『열녀전』에 이르기를 「조희라는 이는 동향령 동군 우위의 아내요 영천 조씨의 딸이다. 재주가 재빠르고 본 것이 많았다. 우위가 이미 죽으매 문황제가 그 글재주를 공경하여 조칙으로 궁성에 들였다. 위에서 몸소 공손연을 치려 하매 조희가 글을 올려 간하였다. 「열녀전해」를 지으니 「조모주」라 불린다. 부가 몇십만 마디였다. 적오 육 년에 죽었다」 하였다. 『회남자』에 이르기를 「어떤 이가 그 딸을 시집보내며 가르쳐 이르기를 『너는 좋은 일을 하여라. 좋은 사람은 남이 미워한다』 하니, 대답하기를 『그러면 마땅히 좋지 않은 일을 하오리까』 하였다. 이르기를 『좋은 것도 오히려 하지 못하거늘 하물며 좋지 않은 것이랴』 하였다」 하였다. 경헌 양황후가 이르기를 「이 말이 비록 더러우나 세상 사람에게 명할 만하다」 하였다.
6무릇 백 가지 행실은 덕을 으뜸으로 삼는데 그대는 여색을 좋아하고 덕을 좋아하지 않소
許允婦,是阮衛尉女,德如妹,奇醜;交禮竟,允無復入理,家人深以為憂。會允有客至,婦令婢視之,還答曰:「是桓郎。」桓郎者,桓範也。婦云:「無憂,桓必勸入。」桓果語許云:「阮家既嫁醜女與卿,故當有意,卿宜察之。」許便回入內。既見婦,即欲出。婦料其此出,無復入理,便捉裾停之。許因謂曰:「婦有四德,卿有其幾?」婦曰:「新婦所乏唯容爾。然士有百行,君有幾?」許云:「皆備。」婦曰:「夫百行以德為首,君好色不好德,何謂皆備?」允有慚色,遂相敬重。
허윤의 아내는 완위위의 딸이요 덕여의 누이인데 몹시 추하였다.
예를 주고받기를 마치매 허윤이 다시 들어갈 결이 없으니 집 사람이 깊이 이를 걱정하였다.
마침 허윤에게 손이 이르매 아내가 계집종에게 이를 보게 하니, 돌아와 대답하였다. "환랑입니다."
환랑이란 환범이다.
아내가 말하였다. "걱정 없다. 환씨가 반드시 들어가라 권하리라."
환씨가 과연 허윤에게 말하였다. "완씨 집안이 이미 추한 딸을 경에게 시집보냈으니 짐짓 마땅히 뜻이 있을 것이오. 경은 마땅히 이를 살피시오."
허윤이 곧 돌아 안에 들었다.
이윽고 아내를 보고 곧 나가려 하니, 아내가 이번에 나가면 다시 들어올 결이 없으리라 헤아려 곧 옷자락을 잡아 그를 머물게 하였다.
허윤이 이로 인해 일러 말하였다. "부인에게 네 가지 덕이 있으니 경은 그 몇을 가졌소."
아내가 말하였다. "새댁이 모자란 바는 오직 모습일 뿐입니다. 그러나 선비에게 백 가지 행실이 있으니 그대는 몇을 가졌습니까."
허윤이 말하였다. "다 갖추었소."
아내가 말하였다. "무릇 백 가지 행실은 덕을 으뜸으로 삼는데, 그대는 여색을 좋아하고 덕을 좋아하지 않으니 어찌 다 갖추었다 하십니까."
허윤이 부끄러워하는 낯빛이 있어 마침내 서로 공경하고 무겁게 여겼다.
협주 3
魏略曰:「允字士宗,高陽人。少與清河崔贊,俱發名於冀州。仕至領軍將軍。」陳留志名曰:「阮共字伯彥,尉氏人。清真守道,動以禮讓。仕魏,至衛尉卿。少子侃,字德如,有俊才,而飭以名理。風儀雅潤,與嵇康為友。仕至河內太守。」
『위략』에 이르기를 「허윤은 자가 사종이요 고양 사람이다. 젊어서 청하의 최찬과 함께 기주에서 이름을 냈다. 벼슬이 영군장군에 이르렀다」 하였다. 『진류지명』에 이르기를 「완공은 자가 백언이요 위씨 사람이다. 맑고 참되며 도를 지켜 움직임을 예와 사양으로 하였다. 위나라에 벼슬하여 위위경에 이르렀다. 작은아들 완간은 자가 덕여니 뛰어난 재주가 있고 이름과 결로 꾸몄다. 풍모와 몸가짐이 우아하고 젖었으며 혜강과 벗하였다. 벼슬이 하내태수에 이르렀다」 하였다.
魏略曰:「範字允明,沛郡人。仕至大司農,為宣王所誅。」
『위략』에 이르기를 「환범은 자가 윤명이요 패군 사람이다. 벼슬이 대사농에 이르렀고 선왕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하였다.
周禮:「九嬪掌婦學之法,以教九御。婦德、婦言、婦容、婦功。」鄭注曰:「德謂貞順,言謂辭令,容謂婉娩,功謂絲枲。」
『주례』에 「구빈이 부인의 배움의 법을 맡아 아홉 모심을 가르친다. 부인의 덕과 부인의 말과 부인의 모습과 부인의 일이다」 하였다. 정현의 주에 이르기를 「덕은 곧고 순함을 이르고, 말은 말씨를 이르고, 모습은 곱고 부드러움을 이르고, 일은 실과 삼을 이른다」 하였다.
7밝은 임금은 결로 빼앗을 수 있으나 정으로 구하기는 어렵습니다
許允為吏部郎,多用其鄉里,魏明帝遣虎賁收之。其婦出誡允曰:「明主可以理奪,難以情求。」既至,帝覈問之。允對曰:「『舉爾所知』:臣之鄉人,臣所知也。陛下檢校為稱職與不;若不稱職,臣受其罪。」既檢校,皆官得其人,於是乃釋;允衣服敗壞,詔賜新衣。初,允被收,舉家號哭。阮新婦自若云:「勿憂,尋還。」作粟粥待。頃之,允至。
허윤이 이부랑이 되어 그 마을 사람을 많이 쓰니, 위나라 명제가 호분을 보내 그를 잡아들였다.
그 아내가 나와 허윤을 경계하며 말하였다. "밝은 임금은 결로 빼앗을 수 있으나 정으로 구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미 이르매 임금이 이를 캐어 물었다.
허윤이 대답하였다. "『네가 아는 이를 들어 쓰라』 하였습니다. 신의 마을 사람은 신이 아는 바입니다. 폐하께서 소임에 걸맞은지 아닌지를 살펴보시고, 만일 걸맞지 않으면 신이 그 죄를 받겠습니다."
이미 살펴보매 다 벼슬이 그 사람을 얻었으므로 이에 풀어 주었다. 허윤의 옷이 헐고 무너졌으매 조칙으로 새 옷을 내렸다.
처음에 허윤이 잡히매 온 집이 부르짖어 곡하였다. 완씨 새댁만은 태연히 말하였다. "걱정 마라. 이윽고 돌아온다."
조밥죽을 지어 기다렸는데 잠깐 뒤에 허윤이 이르렀다.
협주 1
魏氏春秋曰:「初,允為吏部,選遷郡守。明帝疑其所用非次,將加其罪。允妻阮氏跣出,謂曰:『明主可以理奪,不可以情求。』允頷之而入。帝怒詰之,允對曰:『某郡太守雖限滿,文書先至,年限在後,日限在前。』帝前取事視之,乃釋然。遣出,望其衣敗,曰:『清吏也。』」
『위씨춘추』에 이르기를 「처음에 허윤이 이부가 되어 군수를 뽑아 옮겼다. 명제가 그 쓴 바가 차례가 아닌가 의심하여 장차 그 죄를 더하려 하였다. 허윤의 아내 완씨가 맨발로 나와 이르기를 『밝은 임금은 결로 빼앗을 수 있으나 정으로 구할 수는 없습니다』 하니, 허윤이 고개를 끄덕이고 들어갔다. 임금이 성내어 이를 따져 물으니 허윤이 대답하기를 『아무 군 태수는 비록 기한이 찼으나 문서가 먼저 이르렀고, 햇수의 한은 뒤에 있으나 날의 한은 앞에 있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앞의 일을 가져다 보고 이에 풀렸다. 내보내며 그 옷이 헐었음을 바라보고 『맑은 벼슬아치다』 하였다」 하였다.
8일찍부터 이럴 줄 알았다
許允為晉景王所誅,門生走入告其婦。婦正在機中,神色不變,曰:「蚤知爾耳!」門人欲藏其兒,婦曰:「無豫諸兒事。」後徙居墓所,景王遣鍾會看之,若才流及父,當收。兒以咨母。母曰:「汝等雖佳,才具不多,率胸懷與語,便無所憂。不須極哀,會止便止。又可少問朝事。」兒從之。會反以狀對,卒免。
허윤이 진나라 경왕에게 죽임을 당하매 문생이 달려 들어와 그 아내에게 알렸다.
아내가 마침 베틀 안에 있었는데 정신과 낯빛이 바뀌지 않고 말하였다. "일찍부터 이럴 줄 알았다."
문인이 그 아이들을 감추려 하니 아내가 말하였다. "여러 아이의 일에 상관없다."
뒤에 무덤 있는 데로 옮겨 사니, 경왕이 종회를 보내 이를 보게 하되 재주의 흐름이 아비에 미치면 마땅히 잡아들이라 하였다.
아이들이 어미에게 여쭈니 어미가 말하였다. "너희가 비록 아름다우나 재주와 갖춤이 많지 않으니, 가슴에 품은 대로 시원히 더불어 말하면 곧 걱정할 바가 없다. 지나치게 슬퍼할 것 없이 종회가 그치면 곧 그치고, 또 조정 일을 조금 물어도 좋다."
아이들이 이를 좇았다. 종회가 돌아가 모습대로 대답하니 마침내 벗어났다.
협주 2
魏志曰:「初,領軍與夏侯玄、李豐親善,有詐作尺一詔書,以玄為大將軍,允為太尉,共錄尚書事。無何,有人天未明乘馬以詔版付允,門吏曰:『有詔。』因便驅走。允投書燒之,不以關呈景王。」魏略曰:「明年,李豐被收,允欲往見大將軍。已出門,允回遑不定,中道還取蔥。大將軍聞而怪之曰:『我自收李豐,士大夫何為悤悤乎?』會鎮北將軍劉靜卒,以允代靜。大將軍與允書曰:『鎮北雖少事,而都典一方。念足下震華鼓,建朱節,歷本州,此所謂著繡晝行也。』會有司奏允前擅以廚錢穀,乞諸俳及其官屬。減死徙邊,道死。」魏氏春秋曰:「允之為鎮北,喜謂其妻曰:『吾知免矣!』妻曰:『禍見於此,何免之有?』」晉諸公贊曰:「允有正情,與文帝不平,遂幽殺之。」婦人集載阮氏與允書,陳允禍患所起,辭甚酸愴,文多不錄。
『위지』에 이르기를 「처음에 영군이 하후현과 이풍과 가까이 사이가 좋았는데, 한 자 되는 조서를 거짓 지어 하후현으로 대장군을 삼고 허윤으로 태위를 삼아 함께 상서의 일을 살피게 한 것이 있었다. 얼마 안 되어 어떤 사람이 하늘이 아직 밝기 전에 말을 타고 조서 판을 허윤에게 주니, 문지기가 『조서가 있소』 하고 이로 인해 곧 몰아 달아났다. 허윤이 글을 던져 이를 태우고 경왕에게 아뢰지 않았다」 하였다. 『위략』에 이르기를 「이듬해에 이풍이 잡히매 허윤이 대장군을 보러 가려 하였다. 이미 문을 나섰다가 허윤이 헤매어 정하지 못하고 길 가운데서 돌아와 파를 가져왔다. 대장군이 듣고 이를 괴이하게 여겨 이르기를 『내가 스스로 이풍을 잡았거늘 사대부가 어찌 허둥거리는가』 하였다. 마침 진북장군 유정이 죽으매 허윤으로 유정을 대신하게 하였다. 대장군이 허윤에게 글을 보내 이르기를 『진북은 비록 일이 적으나 한 지방을 다 맡는다. 생각건대 족하가 꽃다운 북을 떨치고 붉은 부절을 세워 본 주를 지나니, 이것이 이른바 수놓은 옷 입고 낮에 다님이다』 하였다. 마침 맡은 이가 허윤이 앞서 멋대로 부엌의 돈과 곡식을 여러 광대와 그 벼슬아치에게 빌어 준 것을 아뢰었다. 죽음을 덜어 변방으로 옮겨졌는데 길에서 죽었다」 하였다. 『위씨춘추』에 이르기를 「허윤이 진북이 되매 기뻐하며 그 아내에게 이르기를 『내가 벗어난 줄 알겠다』 하니, 아내가 『화가 여기서 보이는데 무슨 벗어남이 있겠습니까』 하였다」 하였다. 『진제공찬』에 이르기를 「허윤이 바른 정이 있어 문제와 사이가 고르지 않으매 마침내 가두어 죽였다」 하였다. 『부인집』에 완씨가 허윤에게 보낸 글을 실었는데, 허윤의 화와 걱정이 일어난 바를 펴 말이 몹시 시고 슬프나 글이 많아 적지 않는다.
世語曰:「允二子:奇,字子太。猛,字子豹。並有治理。」晉諸公贊曰:「奇,泰始中為太常丞,世祖嘗祠廟,奇應行事,朝廷以奇受害之門,不令接近,出為長史。世祖下詔,述允宿望,又稱奇才,擢為尚書祠部郎。猛禮學儒博,加有才識,為幽州刺史。」
『세어』에 이르기를 「허윤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허기는 자가 자태요 허맹은 자가 자표니 아울러 다스리는 결이 있었다」 하였다. 『진제공찬』에 이르기를 「허기가 태시 연간에 태상승이 되었다. 세조가 일찍이 사당에 제사하매 허기가 마땅히 일을 행할 것이었는데, 조정이 허기가 해를 입은 집안이라 하여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고 내보내 장사로 삼았다. 세조가 조칙을 내려 허윤의 묵은 바람을 펴 말하고 또 허기의 재주를 일컬어 뽑아 상서사부랑으로 삼았다. 허맹은 예의 배움이 선비답고 넓으며 재주와 앎이 있음을 더하여 유주자사가 되었다」 하였다.
9대장부가 언운을 어렴풋이도 닮지 못하면서 부인더러 뛰어난 이와 자취를 견주라 하시오
王公淵娶諸葛誕女。入室,言語始交,王謂婦曰:「新婦神色卑下,殊不似公休!」婦曰:「大丈夫不能仿佛彥雲,而令婦人比蹤英傑!」
왕공연이 제갈탄의 딸을 맞았다.
방에 들어 말이 비로소 오가매 왕씨가 아내에게 말하였다. "새댁은 정신과 낯빛이 낮으니 자못 공휴를 닮지 않았소."
아내가 말하였다. "대장부가 언운을 어렴풋이도 닮지 못하면서 부인더러 뛰어난 이와 자취를 견주라 하시오."
협주 1
魏氏春秋曰:「王廣字公淵,王淩子也。有風量才學,名重當世。與傅嘏等論才性同異,行於世。」魏志曰:「廣有志尚學行,淩誅,并死。」臣謂王廣名士,豈以妻父為戲,此言非也。
『위씨춘추』에 이르기를 「왕광은 자가 공연이요 왕릉의 아들이다. 풍모와 도량과 재주와 배움이 있어 이름이 요즘 세상에 무거웠다. 부하 들과 재주와 성품의 같고 다름을 논한 것이 세상에 다녔다」 하였다. 『위지』에 이르기를 「왕광이 뜻과 숭상함과 배움과 행실이 있었는데, 왕릉이 죽임을 당하매 아울러 죽었다」 하였다. 신은 생각하건대 왕광은 이름난 선비니 어찌 아내의 아비로 놀렸겠는가. 이 말은 그르다.
10효도가 있고 참됨이 있으니 무엇을 나에게 저버렸겠느냐
王經少貧苦,仕至二千石,母語之曰:「汝本寒家子,仕至二千石,此可以止乎!」經不能用。為尚書,助魏,不忠於晉,被收。涕泣辭母曰:「不從母敕,以至今日!」母都無慽容,語之曰:「為子則孝,為臣則忠。有孝有忠,何負吾邪?」
왕경이 젊어서 가난하고 괴로웠는데 벼슬이 이천석에 이르렀다.
어미가 그에게 말하였다. "너는 본디 가난한 집 아들로 벼슬이 이천석에 이르렀으니 이만하면 그칠 만하다."
왕경이 쓰지 못하였다.
상서가 되어 위나라를 돕고 진나라에 참되지 않아 잡혔다.
눈물을 흘리며 어미에게 하직하였다. "어머니의 명을 좇지 않아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어미가 도무지 슬퍼하는 낯빛이 없이 그에게 말하였다. "아들이 되어서는 효도하고 신하가 되어서는 참되었다. 효도가 있고 참됨이 있으니 무엇을 나에게 저버렸겠느냐."
협주 1
世語曰:「經字彥偉,清河人。高貴鄉公之難,王沈、王業馳告文王,經以正直不出。因沈、業申意,後誅經及其母。」晉諸公贊曰:「沈、業將出,呼經,不從,曰:『吾子行矣!』」漢晉春秋曰:「初,曹髦將自討司馬昭,經諫曰:『昔魯昭不忍季氏,敗走失國,為天下笑。今權在其門久矣,朝廷四方,皆為之致死,不顧逆順之理,非一日也。且宿衛空闕,寸刃無有,陛下何所資用?而一旦如此,無乃欲除疾而更深之邪?』髦不聽。後殺經,并及其母。將死,垂泣謝母。母顏色不變,笑而謂曰:『人誰不死,往所以止汝者,恐不得其所也。以此并命,何恨之有?』」干寶晉紀曰:「經正直,不忠於我,故誅之。」按傅暢、干寶所記,則是經實忠貞於魏,而世語既謂其正直,復云因沈、業申意,何其相反乎?故二家之言深得之。
『세어』에 이르기를 「왕경은 자가 언위요 청하 사람이다. 고귀향공의 어려움에 왕침과 왕업이 달려가 문왕에게 알렸는데, 왕경은 바르고 곧아 나가지 않았다. 왕침과 왕업으로 인해 뜻을 폈으므로 뒤에 왕경과 그 어미를 죽였다」 하였다. 『진제공찬』에 이르기를 「왕침과 왕업이 장차 나가려 하며 왕경을 불렀으나 좇지 않고 『그대들이나 가시오』 하였다」 하였다. 『한진춘추』에 이르기를 「처음에 조모가 몸소 사마소를 치려 하매 왕경이 간하기를 『옛날 노나라 소공이 계씨를 참지 못하여 패해 달아나 나라를 잃고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이제 권세가 그 문에 있은 지 오래여서 조정과 사방이 다 그를 위해 죽음을 바쳐 거스름과 순함의 결을 돌아보지 않은 것이 하루가 아닙니다. 또 대궐을 지킴이 비고 모자라 한 치의 칼날도 없으니 폐하께서 무엇을 밑천 삼아 쓰시겠습니까. 그런데 하루아침에 이러시니, 병을 없애려다 도리어 더 깊게 하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였다. 조모가 듣지 않았다. 뒤에 왕경을 죽이고 아울러 그 어미에게 미쳤다. 죽으려 할 때 눈물을 드리우며 어미에게 사죄하니, 어미가 낯빛을 바꾸지 않고 웃으며 이르기를 『사람이 누군들 죽지 않겠느냐. 지난날 너를 그치게 한 까닭은 그 자리를 얻지 못할까 두려워서였다. 이로써 목숨을 아우르니 무슨 한이 있겠느냐』 하였다」 하였다. 간보의 『진기』에 이르기를 「왕경이 바르고 곧아 우리에게 참되지 않았으므로 그를 베었다」 하였다. 살피건대 부창과 간보가 적은 바로 보면 곧 왕경은 실로 위나라에 참되고 곧았다. 그런데 『세어』가 이미 그가 바르고 곧다 이르고 다시 왕침과 왕업으로 인해 뜻을 폈다 하니 어찌 그리 서로 어긋나는가. 그러므로 두 집안의 말이 깊이 이를 얻었다.
11저 무리도 또한 늘 내 도량을 낫다 여기오
山公與嵇、阮一面,契若金蘭。山妻韓氏,覺公與二人異於常交,問公。公曰:「我當年可以為友者,唯此二生耳!」妻曰:「負羈之妻亦親觀狐、趙,意欲窺之,可乎?」他日,二人來,妻勸公止之宿,具酒肉。夜穿墉以視之,達旦忘反。公入曰:「二人何如?」妻曰:「君才致殊不如,正當以識度相友耳。」公曰:「伊輩亦常以我度為勝。」
산공이 혜강과 완적을 한 번 보고 맞음이 쇠와 난초 같았다.
산공의 아내 한씨가 산공이 두 사람과 여느 사귐과 다름을 깨닫고 산공에게 물었다.
산공이 말하였다. "내가 요즘 벗 삼을 만한 이는 오직 이 두 사람일 뿐이오."
아내가 말하였다. "부기의 아내도 또한 몸소 호언과 조쇠를 보았다 합니다. 뜻이 이를 엿보고자 하니 되겠습니까."
다른 날 두 사람이 오매 아내가 산공에게 이들을 묵어 가게 하라 권하고 술과 고기를 갖추었다.
밤에 담을 뚫어 이를 보는데 새벽이 되도록 돌아가기를 잊었다.
산공이 들어와 말하였다. "두 사람이 어떠하오."
아내가 말하였다. "그대는 재주와 이룸이 자못 미치지 못하고, 바로 마땅히 앎과 도량으로 서로 벗할 뿐입니다."
산공이 말하였다. "저 무리도 또한 늘 내 도량을 낫다 여기오."
협주 1
晉陽秋曰:「濤雅素恢達,度量弘遠,心存事外,而與時俛仰。嘗與阮籍、嵇康諸人箸忘言之契。至于群子,屯蹇於世,濤獨保浩然之度。」王隱晉書曰:「韓氏有才識,濤未仕時,戲之曰:『忍寒,我當作三公,不知卿堪為夫人不耳?』」
『진양추』에 이르기를 「산도가 우아하고 수수하며 넓고 통달하고 도량이 넓고 멀어, 마음이 일 밖에 있으면서도 때와 더불어 굽어보고 우러렀다. 일찍이 완적과 혜강 여러 사람과 말을 잊는 맞음을 두었다. 여러 사람에 이르러서는 세상에서 어렵게 걸렸으나 산도만은 홀로 넓고 큰 도량을 지켰다」 하였다. 왕은의 『진서』에 이르기를 「한씨가 재주와 앎이 있으매, 산도가 아직 벼슬하지 않았을 때 놀리기를 『추위를 참으시오. 내가 마땅히 삼공이 되겠으나 경이 부인 노릇을 견딜지는 알지 못하겠소』 하였다」 하였다.
12그 뼈대를 보매 반드시 오래 살지 못하겠으니 혼인할 수 없다
王渾妻鍾氏生女令淑,武子為妹求簡美對而未得。有兵家子,有雋才,欲以妹妻之,乃白母曰:「誠是才者,其地可遺,然要令我見。」武子乃令兵兒與群小雜處,使母帷中察之。既而,母謂武子曰:「如此衣形者,是汝所擬者,非邪?」武子曰:「是也。」母曰:「此才足以拔萃,然地寒,不有長年,不得申其才用。觀其形骨,必不壽,不可與婚。」武子從之。兵兒數年果亡。
왕혼의 아내 종씨가 낳은 딸이 좋고 맑았다.
무자가 누이를 위해 간결하고 아름다운 짝을 구하였으나 얻지 못하였다.
한 군사 집 아들이 있어 뛰어난 재주가 있으매, 누이를 그에게 시집보내려 하여 이에 어미에게 아뢰었다. "참으로 재주 있는 이면 그 땅은 버려둘 만합니다. 그러나 저에게 보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무자가 이에 군사 집 아이를 뭇 작은 사람과 섞여 있게 하고 어미에게 휘장 안에서 이를 살피게 하였다.
이윽고 어미가 무자에게 말하였다. "이런 옷과 모습을 한 이가 네가 헤아린 이가 아니냐."
무자가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어미가 말하였다. "이 재주는 무리에서 빼어나기에 넉넉하다. 그러나 땅이 차서 긴 나이가 있지 않으면 그 재주를 펴 쓰지 못한다. 그 뼈대를 보매 반드시 오래 살지 못하겠으니 혼인할 수 없다."
무자가 이를 좇았다. 군사 집 아이가 몇 해 만에 과연 죽었다.
협주 2
虞預晉書曰:「渾字玄沖,太原晉陽人,魏司徒昶子。仕至司徒。」
우예의 『진서』에 이르기를 「왕혼은 자가 현충이요 태원 진양 사람이니 위나라 사도 왕창의 아들이다. 벼슬이 사도에 이르렀다」 하였다.
王氏譜曰:「鍾夫人名琰之,太傅繇之孫。」
『왕씨보』에 이르기를 「종부인은 이름이 염지요 태부 종요의 손녀다」 하였다.
13경에게 무엇을 말하라던가
賈充前婦,是李豐女。豐被誅,離婚徙邊。後遇赦得還,充先已取郭配女。武帝特聽置左右夫人。李氏別住外,不肯還充舍。郭氏語充:「欲就省李。」充曰:「彼剛介有才氣,卿往不如不去。」郭氏於是盛威儀,多將侍婢。既至,入戶,李氏起迎,郭不覺腳自屈,因跪再拜。既反,語充,充曰:「語卿道何物?」
가충의 앞 아내는 이풍의 딸이다.
이풍이 죽임을 당하매 혼인을 떠나 변방으로 옮겨졌다.
뒤에 사면을 만나 돌아올 수 있었는데 가충이 앞서 이미 곽배의 딸을 맞았다.
무제가 유난히 왼쪽과 오른쪽 부인을 두기를 들어 주었다.
이씨는 따로 밖에 살며 가충의 집에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
곽씨가 가충에게 말하였다. "이씨를 찾아가 살피고자 합니다."
가충이 말하였다. "그이는 굳세고 꼿꼿하고 재주와 기운이 있으니, 경이 가는 것은 가지 않느니만 못하오."
곽씨가 이에 위엄 있는 몸가짐을 성하게 하고 모시는 계집종을 많이 데려갔다.
이윽고 이르러 문에 드니 이씨가 일어나 맞으매, 곽씨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다리가 절로 굽어 이로 인해 무릎 꿇고 두 번 절하였다.
이윽고 돌아와 가충에게 말하니 가충이 말하였다. "경에게 무엇을 말하라던가."
협주 5
婦人集曰:「充妻李氏,名婉字淑文。豐誅,徙樂浪。」
『부인집』에 이르기를 「가충의 아내 이씨는 이름이 완이요 자는 숙문이다. 이풍이 죽임을 당하매 낙랑으로 옮겨졌다」 하였다.
賈氏譜曰:「郭氏名玉璜,即廣宣君也。」
『가씨보』에 이르기를 「곽씨는 이름이 옥황이니 곧 광선군이다」 하였다.
晉諸公贊曰:「世祖踐阼,李氏赦還,而齊獻王妃欲令充遣郭氏,更納其母。充不許,為李氏築宅,而不往來。充母柳氏將亡,充問所欲言者。柳曰:『我教汝迎李新婦尚不肯,安問他事!』」
『진제공찬』에 이르기를 「세조가 자리에 오르매 이씨가 사면되어 돌아왔다. 제나라 헌왕의 비가 가충으로 하여금 곽씨를 내보내고 다시 제 어미를 들이게 하려 하였으나, 가충이 허락하지 않고 이씨를 위해 집을 지어 주되 오가지 않았다. 가충의 어미 유씨가 죽으려 할 때 가충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물으니, 유씨가 『내가 너에게 이씨 새댁을 맞으라 가르쳐도 오히려 즐겨하지 않았거늘 어찌 다른 일을 묻느냐』 하였다」 하였다.
充別傳曰:「李氏有淑性令才也。」
『충별전』에 이르기를 「이씨는 맑은 성품과 좋은 재주가 있었다」 하였다.
按晉諸公贊曰:「世祖以李豐得罪晉室,又郭氏是太子妃母,無離絕之理,乃下詔勅斷,不得往還。」而王隱晉書亦云:「充既與李絕婚,更取城陽太守郭配女,名槐。李禁錮解,詔充置左右夫人。充母柳亦勅充迎李。槐怒,攘臂責充曰:『刊定律令,為佐命之功,我有其分。李那得與我並?』充乃架屋永年里中以安李。槐晚乃知。充出,輒使人尋充。詔許充置左右夫人。充答詔以謙讓不敢當盛禮。」晉贊既云世祖下詔不遣李還,而王隱晉書及充別傳並言詔聽置立左右夫人。充憚郭氏,不敢迎李。三家之說並不同,未詳孰是。然李氏不還,別有餘故,而世說云「自不肯還」,謬矣。且郭槐彊狠,豈能就李而為之拜乎?皆為虛也。
살피건대 『진제공찬』에 이르기를 「세조가 이풍이 진나라 집안에 죄를 얻었고 또 곽씨는 태자비의 어미라 하여 떠나 끊을 결이 없으므로, 이에 조칙을 내려 끊고 오가지 못하게 하였다」 하였다. 그런데 왕은의 『진서』에는 또한 이르기를 「가충이 이미 이씨와 혼인을 끊고 다시 성양태수 곽배의 딸을 맞으니 이름이 곽괴다. 이씨의 금고가 풀리매 조칙으로 가충에게 왼쪽과 오른쪽 부인을 두게 하였다. 가충의 어미 유씨도 가충에게 이씨를 맞으라 명하였다. 곽괴가 성내어 팔을 걷고 가충을 꾸짖어 이르기를 『율령을 깎아 정하여 도운 공을 이룸에 나에게 그 몫이 있소. 이씨가 어찌 나와 나란할 수 있소』 하였다. 가충이 이에 영년리 가운데 집을 얽어 이씨를 편안케 하였는데 곽괴가 늦게야 이를 알았다. 가충이 나서면 문득 사람을 시켜 가충을 찾게 하였다. 조칙으로 가충에게 왼쪽과 오른쪽 부인을 두기를 허락하였으나, 가충이 조칙에 답하되 겸손히 사양하여 감히 성한 예를 맡지 못한다 하였다」 하였다. 『진찬』이 이미 세조가 조칙을 내려 이씨를 돌려보내지 않게 하였다 이르고, 왕은의 『진서』와 『충별전』은 아울러 조칙으로 왼쪽과 오른쪽 부인 세우기를 들어 주었다 말한다. 가충이 곽씨를 꺼려 감히 이씨를 맞지 못하였다 하니, 세 집안의 말이 아울러 같지 않아 어느 것이 옳은지 자세하지 않다. 그러나 이씨가 돌아오지 않은 것은 따로 남은 까닭이 있는데 『세설』이 「스스로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 이르니 그르다. 또 곽괴가 굳세고 사나웠으니 어찌 이씨에게 나아가 그를 위해 절할 수 있었겠는가. 다 헛된 것이다.
14가후가 폐해지매 이씨를 이에 합장하여 장사가 마침내 정해졌다
賈充妻李氏作女訓,行於世。李氏女,齊獻王妃,郭氏女,惠帝后。充卒,李、郭女各欲令其母合葬,經年不決。賈后廢,李氏乃祔,葬遂定。
가충의 아내 이씨가 「여훈」을 지어 세상에 퍼졌다.
이씨의 딸은 제나라 헌왕의 비요 곽씨의 딸은 혜제의 황후다.
가충이 죽으매 이씨와 곽씨의 딸이 저마다 제 어미를 합장하게 하려 하여 해가 지나도록 결단하지 못하였다.
가후가 폐해지매 이씨를 이에 합장하여 장사가 마침내 정해졌다.
협주 1
晉諸公贊曰:「李氏有才德,世稱『李夫人訓』者。生女合,亦才明,即齊王妃。」婦人集曰:「李氏至樂浪,遺二女典式八篇。」王隱晉書曰:「賈后字南風,為趙王所誅。」
『진제공찬』에 이르기를 「이씨가 재주와 덕이 있어 세상이 『이부인훈』이라 일컫는 것이다. 낳은 딸 가합도 또한 재주 있고 밝으니 곧 제왕의 비다」 하였다. 『부인집』에 이르기를 「이씨가 낙랑에 이르러 두 딸에게 「전식」 여덟 편을 남겼다」 하였다. 왕은의 『진서』에 이르기를 「가후는 자가 남풍이니 조왕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하였다.
15이로써 이를 알았소
王汝南少無婚,自求郝普女。司空以其癡,會無婚處,任其意,便許之。既婚,果有令姿淑德。生東海,遂為王氏母儀。或問汝南何以知之?曰:「嘗見井上取水,舉動容止不失常,未嘗忤觀。以此知之。」
왕여남이 젊어서 혼인이 없었는데 스스로 학보의 딸을 구하였다.
사공이 그가 어리석고 마침 혼인할 데가 없으므로 그 뜻에 맡겨 곧 이를 허락하였다.
이윽고 혼인하니 과연 좋은 자태와 맑은 덕이 있었다.
동해를 낳으니 마침내 왕씨의 어미 본이 되었다.
어떤 이가 여남에게 어찌 이를 알았는가 물으니 말하였다. "일찍이 우물가에서 물 긷는 것을 보았는데, 몸짓과 몸가짐이 늘 그러함을 잃지 않고 일찍이 보기에 거슬리지 않았소. 이로써 이를 알았소."
협주 3
郝氏譜曰:「普字道匡,太原襄城人。仕至洛陽太守。」
『학씨보』에 이르기를 「학보는 자가 도광이요 태원 양성 사람이다. 벼슬이 낙양태수에 이르렀다」 하였다.
魏氏志曰:「王昶字文舒,仕至司空。」
『위씨지』에 이르기를 「왕창은 자가 문서요 벼슬이 사공에 이르렀다」 하였다.
汝南別傳曰:「襄城郝仲將,門至孤陋,非其所偶也。君嘗見其女,便求聘焉。果高朗英邁,母儀冠族。其通識餘裕,皆此類。」
『여남별전』에 이르기를 「양성의 학중장은 문벌이 외롭고 좁아 그 짝이 될 바가 아니었다. 임금이 일찍이 그 딸을 보고 곧 맞기를 구하였다. 과연 높고 환하며 뛰어나 어미의 본이 겨레에 으뜸이었다. 그 통하는 앎과 남은 넉넉함이 다 이런 무리다」 하였다.
16종씨는 귀함으로 학씨를 업신여기지 않고 학씨도 천함으로 종씨에게 낮추지 않았다
王司徒婦,鍾氏女,太傅曾孫,亦有俊才女德。鍾、郝為娣姒,雅相親重。鍾不以貴陵郝,郝亦不以賤下鍾。東海家內,則郝夫人之法。京陵家內,範鍾夫人之禮。
왕사도의 아내는 종씨의 딸이요 태부의 증손인데, 또한 뛰어난 재주와 여자의 덕이 있었다.
종씨와 학씨가 동서가 되어 우아하게 서로 가까이하고 무겁게 여겼다.
종씨는 귀함으로 학씨를 업신여기지 않고 학씨도 천함으로 종씨에게 낮추지 않았다.
동해의 집 안은 곧 학부인의 법이요, 경릉의 집 안은 종부인의 예를 본으로 삼았다.
협주 2
王氏譜曰:「夫人,黃門侍郎鍾琰女。」
『왕씨보』에 이르기를 「부인은 황문시랑 종염의 딸이다」 하였다.
婦人集曰:「夫人有文才,其詩賦頌誄行於世。」
『부인집』에 이르기를 「부인이 글재주가 있어 그 시와 부와 송과 뇌가 세상에 다녔다」 하였다.
17이 딸이 몹시 높고 밝아 이중이 늘 그에게 여쭈었다
李平陽,秦州子,中夏名士。于時以比王夷甫。孫秀初欲立威權,咸云:「樂令民望不可殺,減李重者又不足殺。」遂逼重自裁。初,重在家,有人走從門入,出髻中疏示重。重看之色動,入內示其女,女直叫「絕」。了其意,出則自裁。此女甚高明,重每咨焉。
이평양은 진주자사의 아들이요 중원의 이름난 선비다.
이때 왕이보에 견주었다.
손수가 처음 위엄과 권세를 세우려 하매 다들 말하였다. "악령은 백성의 바람이라 죽일 수 없고, 이중만 못한 이는 또 죽이기에 넉넉하지 않다."
마침내 이중을 다그쳐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하였다.
처음에 이중이 집에 있을 때 어떤 사람이 문에서 달려 들어와 상투 가운데서 글을 꺼내 이중에게 보였다.
이중이 이를 보고 낯빛이 움직여 안에 들어가 그 딸에게 보이니, 딸이 곧바로 「끝났다」 외쳤다.
그 뜻을 알아차리고 나가서 곧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딸이 몹시 높고 밝아 이중이 늘 그에게 여쭈었다.
협주 3
李重已見。永嘉流人名曰:「康字玄冑,江夏人,魏秦州刺史。」
이중은 이미 보인다. 『영가유인명』에 이르기를 「이강은 자가 현주요 강하 사람이니 위나라 진주자사다」 하였다.
晉諸公贊曰:「孫秀字俊忠,琅邪人。初,趙王倫封琅邪,秀給為近職小吏。倫數使秀作書疏,文才稱倫意。倫封趙,秀徙戶為趙人,用為侍郎,信任之。」晉陽秋曰:「倫篡位,秀為中書令,事皆決於秀。為齊王所誅。」
『진제공찬』에 이르기를 「손수는 자가 준충이요 낭야 사람이다. 처음에 조왕 사마륜이 낭야에 봉해지매 손수가 가까운 자리의 작은 아전으로 딸려 있었다. 사마륜이 자주 손수에게 글월을 짓게 하니 글재주가 사마륜의 뜻에 맞았다. 사마륜이 조나라에 봉해지매 손수가 호적을 옮겨 조나라 사람이 되었고, 시랑으로 써서 그를 믿고 맡겼다」 하였다. 『진양추』에 이르기를 「사마륜이 자리를 빼앗으매 손수가 중서령이 되어 일이 다 손수에게서 결단되었다. 제왕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하였다.
按諸書皆云:「重知趙王倫作亂,有疾不治,遂以致卒。」而此書乃言自裁,甚乖謬。且倫、秀兇虐,動加誅夷,欲立威權,自當顯戮,何為逼令自裁?
살피건대 여러 책이 다 이르기를 「이중이 조왕 사마륜이 난을 일으킬 줄 알고 병이 있어도 다스리지 않아 마침내 죽음에 이르렀다」 하였다. 그런데 이 책은 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말하니 몹시 어그러지고 그르다. 또 사마륜과 손수는 흉하고 사나워 움직이면 베고 죽였으니, 위엄과 권세를 세우려 하였다면 절로 마땅히 드러내 죽였을 것이지 어찌 다그쳐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하였겠는가.
18문호가 다하여 헐었는데 어찌 딸 하나를 아끼겠습니까
周浚作安東時,行獵,值暴雨,過汝南李氏。李氏富足,而男子不在。有女名絡秀,聞外有貴人,與一婢於內宰豬羊,作數十人飲食,事事精辦,不聞有人聲。密覘之,獨見一女子,狀貌非常,浚因求為妾。父兄不許。絡秀曰:「門戶殄瘁,何惜一女?若連姻貴族,將來或大益。」父兄從之。遂生伯仁兄弟。絡秀語伯仁等:「我所以屈節為汝家作妾,門戶計耳!汝若不與吾家作親親者,吾亦不惜餘年。」伯仁等悉從命。由此李氏在世,得方幅齒遇。
주준이 안동이 되었을 때 사냥을 다니다가 사나운 비를 만나 여남 이씨의 집을 지나게 되었다.
이씨는 넉넉하였으나 사내가 있지 않았다.
딸이 있어 이름이 낙수인데, 밖에 귀한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고 계집종 하나와 안에서 돼지와 양을 잡아 몇십 사람의 마실 것과 먹을 것을 지었다. 일마다 정하게 마련하는데 사람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몰래 이를 엿보니 홀로 한 여자만 보이는데 모습과 생김이 예사롭지 않았다. 주준이 이로 인해 첩 삼기를 구하니 아버지와 형이 허락하지 않았다.
낙수가 말하였다. "문호가 다하여 헐었는데 어찌 딸 하나를 아끼겠습니까. 만일 귀한 겨레와 혼인을 이으면 앞으로 혹 크게 보탬이 될 것입니다."
아버지와 형이 이를 좇았다. 마침내 백인 형제를 낳았다.
낙수가 백인 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절개를 굽혀 너희 집안의 첩이 된 까닭은 문호를 위한 꾀일 뿐이다. 너희가 만일 우리 집안과 가깝게 지내지 않으면 나도 또한 남은 나이를 아끼지 않겠다."
백인 들이 다 명을 좇았다. 이로 말미암아 이씨가 세상에서 반듯한 대접을 얻었다.
협주 2
八王故事曰:「浚字開林,汝南安城人。少有才名。太康初,平吳,自御史中丞出為揚州刺史。元康初,加安東將軍。」
『팔왕고사』에 이르기를 「주준은 자가 개림이요 여남 안성 사람이다. 젊어서 재주와 이름이 있었다. 태강 처음에 오나라를 평정하고 어사중승에서 나와 양주자사가 되었다. 원강 처음에 안동장군을 더하였다」 하였다.
按周氏譜:「浚取同郡李伯宗女。」此云為妾,妄耳。
살피건대 『주씨보』에 「주준이 같은 고을 이백종의 딸을 맞았다」 하였다. 여기서 첩이 되었다 이르니 함부로 한 것일 뿐이다.
19머리털을 팔아 몇 섬 쌀을 얻고 기둥을 깎아 섶을 삼다
陶公少有大志,家酷貧,與母湛氏同居。同郡范逵素知名,舉孝廉,投侃宿。于時冰雪積日,侃室如懸磬,而逵馬僕甚多。侃母湛氏語侃曰:「汝但出外留客,吾自為計。」湛頭髮委地,下為二髲,賣得數斛米,斫諸屋柱,悉割半為薪,剉諸薦以為馬草。日夕,遂設精食,從者皆無所乏。逵既嘆其才辯,又深愧其厚意。明旦去,侃追送不已,且百里許。逵曰:「路已遠,君宜還。」侃猶不返,逵曰:「卿可去矣!至洛陽,當相為美談。」侃迺返。逵及洛,遂稱之於羊晫、顧榮諸人,大獲美譽。
도공이 젊어서 큰 뜻이 있었는데 집이 몹시 가난하여 어미 담씨와 함께 살았다.
같은 고을의 범규가 본디 이름이 알려져 효렴에 천거되었는데, 도간에게 들러 묵게 되었다.
이때 얼음과 눈이 여러 날 쌓였고 도간의 방은 매단 경쇠 같은데 범규의 말과 종이 몹시 많았다.
도간의 어미 담씨가 도간에게 말하였다. "너는 다만 밖에 나가 손을 머물게 하여라. 내가 스스로 꾀하겠다."
담씨는 머리털이 땅에 드리웠는데 잘라 덧머리 둘을 만들어 팔아 몇 섬 쌀을 얻고, 여러 집 기둥을 깎아 다 절반을 베어 섶을 삼고, 여러 자리를 썰어 말꼴을 삼았다.
해 질 녘에 마침내 정한 밥을 차리니 따르는 이도 다 모자란 바가 없었다.
범규가 이미 그 재주와 말솜씨를 탄식하고 또 그 두터운 뜻에 깊이 부끄러워하였다.
이튿날 아침에 떠나매 도간이 뒤쫓아 보내기를 그치지 않아 백 리쯤에 이르렀다.
범규가 말하였다. "길이 이미 머니 그대는 마땅히 돌아가시오."
도간이 오히려 돌아가지 않으니 범규가 말하였다. "경은 가도 좋소. 낙양에 이르면 마땅히 그대를 위해 아름다이 말하겠소."
도간이 이에 돌아왔다.
범규가 낙양에 미치매 마침내 양탁과 고영 여러 사람에게 그를 일컬으니 크게 아름다운 기림을 얻었다.
협주 3
逵未詳。
범규는 자세하지 않다.
一作髢。
피(髲)는 한 본에 체(髢)로 되어 있다.
晉陽秋曰:「侃父丹,娶新淦湛氏女,生侃。湛虔恭有智算,以陶氏貧賤,紡績以資給侃,使交結勝己。侃少為尋陽吏,鄱陽孝廉范逵嘗過侃宿,時大雪,侃家無草,湛徹所臥薦剉給。陰截髮,賣以供調。逵聞之歎息。逵去,侃追送之。逵曰:『豈欲仕乎?』侃曰:『有仕郡意。』逵曰:『當相談致。』過廬江,向太守張夔稱之。召補吏,舉孝廉,除郎中。時豫章顧榮或責羊晫曰:『君奈何與小人同輿?』晫曰:『此寒俊也。』」王隱晉書曰:「侃母既截髮供客,聞者歎曰:『非此母不生此子』乃進之於張夔。羊晫亦簡之。後晫為十郡中正,舉侃為鄱陽小中正,始得上品也。」
『진양추』에 이르기를 「도간의 아버지 도단이 신감 담씨의 딸을 맞아 도간을 낳았다. 담씨가 삼가고 공손하며 슬기와 셈이 있어, 도씨가 가난하고 천하므로 실을 자아 도간에게 대어 주고 저보다 나은 이와 사귀어 맺게 하였다. 도간이 젊어서 심양의 아전이 되었는데, 파양의 효렴 범규가 일찍이 도간에게 들러 묵었다. 이때 눈이 크게 내렸는데 도간의 집에 꼴이 없으매 담씨가 누운 자리를 걷어 썰어 대었고, 몰래 머리털을 잘라 팔아 이바지에 이바지하였다. 범규가 이를 듣고 탄식하였다. 범규가 떠나매 도간이 뒤쫓아 보냈다. 범규가 『벼슬하고자 하는가』 하니 도간이 『고을에 벼슬할 뜻이 있습니다』 하였다. 범규가 『마땅히 말하여 이르게 하겠다』 하였다. 여강을 지나며 태수 장기에게 그를 일컬었다. 불러 아전을 채우고 효렴에 천거하여 낭중에 임명되었다. 이때 예장의 고영이 양탁을 꾸짖어 이르기를 『그대는 어찌 작은 사람과 함께 수레를 타는가』 하니, 양탁이 『이는 가난한 데의 뛰어난 이다』 하였다」 하였다. 왕은의 『진서』에 이르기를 「도간의 어미가 이미 머리털을 잘라 손을 이바지하매, 듣는 이가 탄식하기를 『이 어미가 아니면 이 아들을 낳지 못한다』 하고 이에 그를 장기에게 나아가게 하였다. 양탁도 또한 그를 가려 뽑았다. 뒤에 양탁이 열 고을의 중정이 되어 도간을 파양 소중정으로 천거하니 비로소 윗품을 얻었다」 하였다.
20벼슬아치의 물건으로 나에게 보내니 보탬이 되지 않을뿐더러 이에 내 근심을 더한다
陶公少時,作魚梁吏,嘗以坩鮓餉母。母封鮓付使,反書責侃曰:「汝為吏,以官物見餉,非唯不益,乃增吾憂也。」
도공이 젊었을 때 어량의 아전이 되어, 일찍이 항아리에 담은 젓갈을 어미에게 보냈다.
어미가 젓갈을 봉하여 심부름꾼에게 주고 글을 돌려 도간을 꾸짖었다. "네가 아전이 되어 벼슬아치의 물건으로 나에게 보내니, 보탬이 되지 않을뿐더러 이에 내 근심을 더한다."
협주 1
侃別傳曰:「母湛氏,賢明有法訓。侃在武昌,與佐吏從容飲燕,常有飲限。或勸猶可少進,侃悽然良久曰:『昔年少,曾有酒失,二親見約,故不敢踰限。』及侃丁母憂,在墓下,忽有二客來弔,不哭而退,儀服鮮異,知非常人。遣隨視之,但見雙鶴沖天而去。」幽明錄曰:「陶公在尋陽西南一塞取魚,自謂其池曰鶴門。」按吳司徒孟宗為雷池監,以魚差餉母,母不受。非侃也。疑後人因孟假為此說。
『간별전』에 이르기를 「어미 담씨는 어질고 밝으며 법과 가르침이 있었다. 도간이 무창에 있으며 보좌와 아전과 조용히 마시고 잔치하는데 늘 마심에 한이 있었다. 어떤 이가 오히려 조금 더 나아갈 만하다 권하니, 도간이 처량히 한참 있다가 이르기를 『옛날 젊었을 때 일찍이 술로 잘못함이 있어 두 어버이가 약속을 두었으므로 감히 한을 넘지 못한다』 하였다. 도간이 어미 상을 당하여 무덤 아래 있을 때, 홀연히 두 손이 조문하러 와서 곡하지 않고 물러났는데 몸가짐과 옷이 산뜻하고 남달라 예사 사람이 아님을 알았다. 사람을 보내 따라 보게 하니 다만 두 학이 하늘로 솟아 가는 것만 보였다」 하였다. 『유명록』에 이르기를 「도공이 심양 서남쪽 한 보에서 고기를 잡았는데 스스로 그 못을 학문이라 일렀다」 하였다. 살피건대 오나라 사도 맹종이 뇌지의 감독이 되어 고기를 골라 어미에게 보내니 어미가 받지 않았다. 도간이 아니다. 아마도 뒷사람이 맹종으로 인해 빌려 이 말을 지은 듯하다.
21나라가 깨지고 집이 망하여 여기 이를 마음이 없었소
桓宣武平蜀,以李勢妹為妾,甚有寵,常著齋後。主始不知,既聞,與數十婢拔白刃襲之。正值李梳頭,髮委藉地,膚色玉曜,不為動容。徐曰:「國破家亡,無心至此。今日若能見殺,乃是本懷。」主慚而退。
환선무가 촉을 평정하고 이세의 누이를 첩으로 삼아 몹시 사랑하여 늘 서재 뒤에 두었다.
주인마님이 처음에는 알지 못하다가 이윽고 듣고, 몇십 계집종과 흰 칼날을 뽑아 그를 덮치러 갔다.
마침 이씨가 머리를 빗고 있어 머리털이 드리워 땅에 깔리고 살빛이 옥처럼 빛나는데, 낯빛을 움직이지 않고 천천히 말하였다. "나라가 깨지고 집이 망하여 여기 이를 마음이 없었소. 오늘 만일 죽임을 당할 수 있다면 이야말로 본디 품은 바요."
주인마님이 부끄러워 물러났다.
협주 2
續晉陽秋曰:「溫尚明帝女南康長公主。」
『속진양추』에 이르기를 「환온이 명제의 딸 남강장공주에게 장가들었다」 하였다.
妒記曰:「溫平蜀,以李勢女為妾,郡主兇妒,不即知之。後知,乃拔刃往李所,因欲斫之。見李在窗梳頭,姿貌端麗,徐徐結髮,斂手向主,神色閑正,辭甚悽惋。主於是擲刀前抱之曰:『阿子,我見汝亦憐,何況老奴。』遂善之。」
『투기』에 이르기를 「환온이 촉을 평정하고 이세의 딸을 첩으로 삼았는데, 군주가 흉하고 시새워 곧바로 알지 못하였다. 뒤에 알고 이에 칼을 뽑아 이씨 있는 데로 가서 이로 인해 그를 베려 하였다. 이씨가 창가에서 머리 빗는 것을 보니 자태와 모습이 단정하고 고왔다. 천천히 머리를 매고 손을 거두어 주인마님을 향하는데, 정신과 낯빛이 한가롭고 바르며 말이 몹시 처량하고 애달팠다. 주인마님이 이에 칼을 던지고 앞으로 나아가 그를 안으며 이르기를 『아이야, 내가 너를 보아도 또한 가엾은데 하물며 늙은 종이랴』 하고 마침내 그를 좋게 여겼다」 하였다.
22이가 내 큰아버지의 문인데 나를 앞에 들이지 않다니
庾玉臺,希之弟也。希誅,將戮玉臺。玉臺子婦,宣武弟桓豁女也。徒跣求進,閽禁不內。女厲聲曰:「是何小人?我伯父門,不聽我前!」因突入,號泣請曰:「庾玉臺常因人腳短三寸,當復能作賊不?」宣武笑曰:「壻故自急。」遂原玉臺一門。
유옥대는 유희의 아우다.
유희가 죽임을 당하매 장차 옥대를 죽이려 하였다.
옥대 아들의 아내는 선무의 아우 환활의 딸이다.
맨발로 나아가기를 구하였으나 문지기가 막고 들이지 않았다.
딸이 매서운 소리로 말하였다. "이 무슨 작은 사람이냐. 이가 내 큰아버지의 문인데 나를 앞에 들이지 않다니."
이로 인해 부딪쳐 들어가 부르짖어 울며 청하였다. "유옥대는 늘 남보다 다리가 세 치 짧은데 다시 도적질을 할 수 있겠습니까."
선무가 웃으며 말하였다. "사위가 짐짓 절로 급하구나."
마침내 옥대의 한 집안을 놓아 주었다.
협주 3
希已見。玉臺,庾友小字。庾氏譜曰:「友字惠彥,司空冰第三子。歷中書郎、東陽太守。」
유희는 이미 보인다. 옥대는 유우의 아이 적 이름이다. 『유씨보』에 이르기를 「유우는 자가 혜언이요 사공 유빙의 셋째 아들이다. 중서랑과 동양태수를 지냈다」 하였다.
庾氏譜曰:「友字弘之,長子宣,娶宣武弟桓豁之女,字女幼。」
『유씨보』에 이르기를 「유우는 자가 홍지요 맏아들 유선이 선무의 아우 환활의 딸을 맞았으니 자가 여유다」 하였다.
中興書曰:「桓溫殺庾希弟倩,希聞難而逃,希弟友當伏誅。子婦桓氏女,請溫,得宥。」
『중흥서』에 이르기를 「환온이 유희의 아우 유천을 죽이매 유희가 어려움을 듣고 달아났고 유희의 아우 유우가 마땅히 죽임을 당할 것이었다. 아들의 아내 환씨 딸이 환온에게 청하여 용서받을 수 있었다」 하였다.
23성한 덕을 다칠까 두렵습니다
謝公夫人幃諸婢,使在前作伎,使太傅暫見,便下幃。太傅索更開,夫人云:「恐傷盛德。」
사공의 부인이 여러 계집종을 휘장으로 가리고 앞에서 재주를 부리게 하였는데, 태부에게 잠깐 보게 하고 곧 휘장을 내렸다.
태부가 다시 열기를 찾으니 부인이 말하였다. "성한 덕을 다칠까 두렵습니다."
협주 1
劉夫人已見。
유부인은 이미 보인다.
24옷이 새것을 거치지 않으면 무엇으로 말미암아 헌것이 되겠습니까
桓車騎不好箸新衣。浴後,婦故送新衣與;車騎大怒,催使持去。婦更持還,傳語云:「衣不經新,何由而故?」桓公大笑,箸之。
환거기가 새 옷 입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목욕한 뒤에 아내가 짐짓 새 옷을 보내 주니, 거기가 크게 성내어 서둘러 가져가게 하였다.
아내가 다시 가져 돌아오며 말을 전하였다. "옷이 새것을 거치지 않으면 무엇으로 말미암아 헌것이 되겠습니까."
환공이 크게 웃고 이를 입었다.
협주 1
桓氏譜曰:「沖娶琅耶王恬女,字女宗。」
『환씨보』에 이르기를 「환충이 낭야 왕념의 딸을 맞으니 자가 여종이다」 하였다.
25광주리를 기울이고 시렁을 엎다가 너희가 오면 그저 그럴 뿐이다
王右軍郗夫人謂二弟司空、中郎曰:「王家見二謝,傾筐倒庋;見汝輩來,平平爾。汝可無煩復往。」
왕우군의 아내 치부인이 두 아우 사공과 중랑에게 말하였다. "왕씨 집안이 두 사씨를 보면 광주리를 기울이고 시렁을 엎는데, 너희가 오는 것을 보면 그저 그럴 뿐이다. 너희는 번거로이 다시 가지 않아도 좋다."
협주 2
司空愔已見。郗曇別傳曰:「曇字重熙,鑒少子。性韻方質,和正沈簡。累遷丹陽尹、北中郎將、徐、兗二州刺史。」
사공 치음은 이미 보인다. 『치담별전』에 이르기를 「치담은 자가 중희요 치감의 작은아들이다. 성품과 울림이 반듯하고 바탕스러우며 화하고 바르고 잠기고 간결하였다. 여러 벼슬을 거쳐 단양윤과 북중랑장과 서주와 연주 두 주의 자사에 이르렀다」 하였다.
二謝:安、萬。
두 사씨는 사안과 사만이다.
26뜻하지 않게 하늘과 땅 가운데 이에 왕랑이 있을 줄이야
王凝之謝夫人既往王氏,大薄凝之。既還謝家,意大不說。太傅慰釋之曰:「王郎,逸少之子,人材亦不惡,汝何以恨迺爾?」荅曰:「一門叔父,則有阿大、中郎。群從兄弟,則有封、胡、遏、末。不意天壤之中,乃有王郎!」
왕응지의 아내 사부인이 이미 왕씨에게 갔는데 응지를 몹시 엷게 여겼다.
사씨 집에 돌아와 뜻이 크게 기쁘지 않았다.
태부가 그를 위로하여 풀며 말하였다. "왕랑은 일소의 아들이요 사람 됨됨이도 또한 나쁘지 않은데, 너는 어찌하여 한스러워함이 이에 그러하냐."
대답하였다. "한 집안 아저씨로는 곧 아대와 중랑이 있고, 여러 종형제로는 곧 봉과 호와 알과 말이 있습니다. 뜻하지 않게 하늘과 땅 가운데 이에 왕랑이 있을 줄이야."
협주 1
封胡,謝韶小字。遏末,謝淵小字。韶字穆度,萬子,車騎司馬。淵字叔度,奕第二子,義興太守。時人稱其尤彥秀者。或曰封、胡、遏、末。封謂朗,遏謂玄,末謂韶,朗玄淵,一作胡謂淵,遏謂玄,末謂韶也。
봉호는 사소의 아이 적 이름이요 알말은 사연의 아이 적 이름이다. 사소는 자가 목도요 사만의 아들이니 거기사마다. 사연은 자가 숙도요 사혁의 둘째 아들이니 의흥태수다. 그때 사람들이 그 더욱 뛰어나고 빼어난 이를 일컬은 것이다. 어떤 이는 봉과 호와 알과 말이라 하여, 봉은 사랑을 이르고 알은 사현을 이르고 말은 사소를 이른다 한다. 사랑과 사현과 사연인데, 한 본에는 호는 사연을 이르고 알은 사현을 이르고 말은 사소를 이른다 한다.
27내가 만일 이를 기대지 않았으면 네가 무엇으로 옛 물건을 볼 수 있었겠느냐
韓康伯母,隱古几毀壞,卞鞠見几惡,欲易之。答曰:「我若不隱此,汝何以得見古物?」
한강백의 어미가 기대던 옛 안석이 헐고 무너졌는데, 변국이 안석이 나쁨을 보고 이를 바꾸려 하였다.
대답하였다. "내가 만일 이를 기대지 않았으면 네가 무엇으로 옛 물건을 볼 수 있었겠느냐."
협주 1
鞠,卞範之。母之外孫也。
변국은 변범지다. 어미의 외손이다.
28이는 티끌 같은 일이 마음을 지나서냐 하늘이 준 몫에 한이 있어서냐
王江州夫人語謝遏曰:「汝何以都不復進,為是塵務經心,天分有限。」
왕강주의 부인이 사알에게 말하였다. "너는 어찌하여 도무지 다시 나아가지 않느냐. 이는 티끌 같은 일이 마음을 지나서냐, 하늘이 준 몫에 한이 있어서냐."
협주 1
夫人,玄之妹。
부인은 사현의 누이다.
29살아서 비록 치랑과 한방에 들지 못하였으나 죽어서 어찌 한 구덩이에 들지 않으랴
郗嘉賓喪,婦兄弟欲迎妹還,終不肯歸。曰:「生縱不得與郗郎同室,死寧不同穴!」
치가빈이 죽으매 아내의 형제가 누이를 맞아 돌아오려 하였으나 마침내 돌아가려 하지 않고 말하였다. "살아서 비록 치랑과 한방에 들지 못하였으나 죽어서 어찌 한 구덩이에 들지 않으랴."
협주 2
郗氏譜曰:「超娶汝南周閔女,名馬頭。」
『치씨보』에 이르기를 「치초가 여남 주민의 딸을 맞으니 이름이 마두다」 하였다.
毛詩曰:「穀則異室,死則同穴。」鄭玄注曰:「穴謂壙中墟也。」
『모시』에 이르기를 「살아서는 곧 방을 달리하나 죽어서는 곧 구덩이를 같이한다」 하였다. 정현의 주에 이르기를 「혈(穴)은 광중의 빈 데를 이른다」 하였다.
30왕부인은 정신과 정이 흩어져 환하니 짐짓 숲 아래의 기운이 있다
謝遏絕重其姊,張玄常稱其妹,欲以敵之。有濟尼者,並遊張、謝二家。人問其優劣?答曰:「王夫人神情散朗,故有林下風氣。顧家婦清心玉映,自是閨房之秀。」
사알이 그 누이를 지극히 무겁게 여기고 장현이 늘 그 누이를 일컬어 이와 맞세우려 하였다.
제니라는 이가 있어 아울러 장씨와 사씨 두 집안에 노닐었다.
사람들이 그 낫고 못함을 물으니 대답하였다. "왕부인은 정신과 정이 흩어져 환하니 짐짓 숲 아래의 기운이 있고, 고씨 집 며느리는 마음이 맑고 옥처럼 비치니 절로 안방의 빼어남입니다."
31눈과 귀에 이르러서는 신령한 밝음에 걸렸으니 어찌 문득 남과 막히겠소
王尚書惠嘗看王右軍夫人,問:「眼耳未覺惡不?」答曰:「髮白齒落,屬乎形骸;至於眼耳,關於神明,那可便與人隔?」
상서 왕혜가 일찍이 왕우군의 부인을 뵙고 물었다. "눈과 귀가 아직 나빠짐을 느끼지 않으십니까."
대답하였다. "머리털이 세고 이가 빠지는 것은 몸에 붙은 일이오. 눈과 귀에 이르러서는 신령한 밝음에 걸렸으니 어찌 문득 남과 막히겠소."
협주 2
宋書曰:「惠字令明,瑯邪人。歷吏部尚書,贈太常卿。」
『송서』에 이르기를 「왕혜는 자가 영명이요 낭야 사람이다. 이부상서를 지냈고 태상경을 내려 주었다」 하였다.
婦人集載謝表曰:「妾年九十,孤骸獨存,願蒙哀矜,賜其鞠養。」
『부인집』에 실린 사례하는 표에 이르기를 「첩이 나이 아흔에 외로운 뼈만 홀로 남았으니, 슬피 여기심을 입어 그 길러 주심을 내려 주시기 바랍니다」 하였다.
32내가 죽지 않아 이 아이놈이 두 대에 걸쳐 도적질하는 것을 보는구나
韓康伯母殷,隨孫繪之之衡陽,於闔廬洲中逢桓南郡。卞鞠是其外孫,時來問訊。謂鞠曰:「我不死,見此豎二世作賊!」在衡陽數年,繪之遇桓景真之難也,殷撫屍哭曰:「汝父昔罷豫章,徵書朝至夕發。汝去郡邑數年,為物不得動,遂及於難,夫復何言?」
한강백의 어미 은씨가 손자 회지를 따라 형양에 가다가 합려주 가운데서 환남군을 만났다.
변국은 그 외손인데 그때 와서 문안하였다.
변국에게 말하였다. "내가 죽지 않아 이 아이놈이 두 대에 걸쳐 도적질하는 것을 보는구나."
형양에 있은 지 몇 해에 회지가 환경진의 어려움을 만나니, 은씨가 주검을 어루만지고 곡하며 말하였다. "네 아비가 옛날 예장을 그만둘 때 부르는 글이 아침에 이르매 저녁에 떠났다. 너는 고을을 떠난 지 몇 해에 물건이 되어 움직이지 못하다가 마침내 어려움에 미쳤으니 무릇 다시 무엇을 말하랴."
협주 2
韓氏譜曰:「繪之字季倫。父康伯,太常卿。繪之仕至衡陽太守。」
『한씨보』에 이르기를 「한회지는 자가 계륜이다. 아버지 한강백은 태상경이다. 회지는 벼슬이 형양태수에 이르렀다」 하였다.
續晉陽秋曰:「桓亮字景真,大司馬溫之孫。父濟,給事中。叔父玄,篡逆見誅。亮聚眾於長沙,自號湘州刺史。殺太宰甄恭、衡陽前太守韓繪之等十餘人。為劉毅軍人郭珍斬之。」
『속진양추』에 이르기를 「환량은 자가 경진이요 대사마 환온의 손자다. 아버지 환제는 급사중이다. 작은아버지 환현이 자리를 빼앗아 거스르다가 죽임을 당하였다. 환량이 장사에서 무리를 모아 스스로 상주자사라 일컬었다. 태재 견공과 형양 전 태수 한회지 들 열 남짓을 죽였다. 유의의 군사 곽진에게 베였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