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해世説新語 術解第二十
1이에 완함의 신령한 앎에 엎드리다
荀勖善解音聲,時論謂之闇解。遂調律呂,正雅樂。每至正會,殿庭作樂,自調宮商,無不諧韻。阮咸妙賞,時謂神解。每公會作樂,而心謂之不調。既無一言直勖,意忌之,遂出阮為始平太守。後有一田父耕於野,得周時玉尺,便是天下正尺。荀試以校己所治鐘鼓、金石、絲竹,皆覺短一黍,於是伏阮神識。
순욱이 소리를 잘 알았는데 그때 논하는 이들이 어두운 데서 안다 하였다.
마침내 율려를 고르고 우아한 음악을 바로잡았다.
정월 모임에 이를 때마다 전각 뜰에서 음악을 하는데, 스스로 궁과 상을 고르매 어울리는 울림이 아닌 것이 없었다.
완함이 묘하게 기렸으므로 그때 신령한 앎이라 하였다.
공적인 모임에서 음악을 할 때마다 마음으로 이를 고르지 않다 여겼다.
이미 한마디도 순욱에게 곧게 말하지 않았으나 뜻으로 그를 꺼려, 마침내 완함을 내보내 시평태수로 삼았다.
뒤에 한 농부가 들에서 밭 갈다가 주나라 때 옥자를 얻었는데 곧 천하의 바른 자였다.
순욱이 시험 삼아 제가 다스린 종과 북과 쇠와 돌과 실과 대를 재어 보니 다 기장 한 알만큼 짧음을 깨달아, 이에 완함의 신령한 앎에 엎드렸다.
협주 1
《晉後略》曰:「鐘律之器,自周之未廢,而漢成、哀之間,諸儒修而治之。至後漢末,復隳矣。魏氏使協律知音者杜夔造之,不能考之典禮,徒依于時絲管之聲、時之尺寸而制之,甚乖失禮度。於是世祖命中書監荀勖依典制,定鐘律。既鑄律管,募求古器,得周時玉律數枚,比之不差。又諸郡舍倉庫,或有漢時故鐘,以律命之,皆不叩而應,聲響韻合,又若俱成。」《晉諸公贊》曰:「律成,散騎侍郎阮咸謂『勖所造聲高、高則悲。夫亡國之音哀以思,其民困。今聲不合雅,懼非德政中和之音,必是古今尺有長短所致。然今鐘磬是魏時杜夔所造,不與勖律相應,音聲舒雅,而久不知夔所造,時人為之,不足改易。』勖性自矜,乃因事左遷咸為始平太守,而病卒。後得地中古銅尺,校度勖今尺,短四分,方明咸果解音,然無能正者。」干寶《晉紀》曰:「荀勖始造正德大象之舞,以魏杜夔所制律呂,校大樂本音不和。後漢至魏,尺長於古四分有餘,而夔據之,是以失韻。乃依周禮,積粟以起度量,以度古器,符于本銘,遂以為式,用之郊廟。」
『진후략』에 이르기를 「종과 율의 그릇이 주나라 말부터 폐하여졌다가, 한나라 성제와 애제 사이에 여러 선비가 닦아 다스렸다. 후한 말에 이르러 다시 무너졌다. 위나라가 율을 맞추고 소리를 아는 이 두기에게 이를 짓게 하였으나, 법과 예를 상고하지 못하고 한갓 그때 실과 대의 소리와 그때의 자 치수에 기대어 지었으므로 예의 도에 몹시 어그러지고 잃었다. 이에 세조가 중서감 순욱에게 명하여 법과 제도에 기대어 종과 율을 정하게 하였다. 이미 율관을 부어 옛 그릇을 널리 구하매, 주나라 때 옥률 몇 개를 얻어 견주니 어긋나지 않았다. 또 여러 고을의 집과 곳간에 더러 한나라 때 옛 종이 있어 율로 이를 부르니 다 두드리지 않아도 응하여, 소리와 울림이 어울려 또한 함께 이루어진 듯하였다」 하였다. 『진제공찬』에 이르기를 「율이 이루어지매 산기시랑 완함이 이르기를 『순욱이 지은 바는 소리가 높고 높으면 곧 슬프다. 무릇 나라 망하는 소리는 슬프고 그리워하니 그 백성이 괴롭다. 이제 소리가 우아함에 맞지 않으니, 덕스러운 정사의 가운데 화한 소리가 아니어서 반드시 옛날과 이제의 자에 길고 짧음이 있어 이른 바인가 두렵다. 그러나 이제 종과 경쇠는 위나라 때 두기가 지은 바인데 순욱의 율과 서로 응하지 않고 소리가 펴지고 우아하다. 그런데 오래도록 두기가 지은 줄 알지 못하고 그때 사람이 지었다 하니 고쳐 바꾸기에 넉넉하지 않다』 하였다. 순욱이 성품이 스스로 자랑하므로 이에 일로 인해 완함을 시평태수로 낮추었는데 병들어 죽었다. 뒤에 땅속에서 옛 구리자를 얻어 순욱의 이제 자를 재어 보니 넉 푼이 짧아, 바야흐로 완함이 과연 소리를 알았음이 밝혀졌으나 바로잡을 수 있는 이가 없었다」 하였다. 간보의 『진기』에 이르기를 「순욱이 비로소 정덕과 대상의 춤을 지으매, 위나라 두기가 지은 율려로 큰 음악의 본디 소리를 견주니 어울리지 않았다. 후한에서 위나라에 이르러 자가 옛것보다 넉 푼 남짓 길었는데 두기가 이에 기댔으니 이 때문에 울림을 잃었다. 이에 『주례』에 기대어 좁쌀을 쌓아 도량을 일으키고 이로써 옛 그릇을 재니 본디 새김에 들어맞으매, 마침내 이로써 법을 삼아 교외 제사와 사당에 썼다」 하였다.
2이는 수고한 섶으로 지은 것이오
荀勖嘗在晉武帝坐上食筍進飯,謂在坐人曰:「此是勞薪炊也。」坐者未之信,密遣問之,實用故車腳。
순욱이 일찍이 진나라 무제의 자리 위에서 죽순을 먹고 밥을 올리며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말하였다. "이는 수고한 섶으로 지은 것이오."
자리에 있던 이들이 이를 믿지 않아 몰래 보내 물으니 실로 낡은 수레바퀴를 쓴 것이었다.
3오히려 마땅히 팔 부러진 삼공이 나겠소
人有相羊祜父墓,後應出受命君。祜惡其言,遂掘斷墓後,以壞其勢。相者立視之曰:「猶應出折臂三公。」俄而祜墜馬折臂,位果至公。
어떤 사람이 양호 아버지의 무덤을 보고, 뒤에 마땅히 명을 받을 임금이 나겠다 하였다.
양호가 그 말을 미워하여 마침내 무덤 뒤를 파서 끊어 그 세를 무너뜨렸다.
보던 이가 서서 이를 보고 말하였다. "오히려 마땅히 팔 부러진 삼공이 나겠소."
이윽고 양호가 말에서 떨어져 팔이 부러졌고 자리가 과연 공에 이르렀다.
협주 1
《幽明錄》曰:「羊祜工騎乘。有一兒五六歲,端明可喜。掘墓之後,兒即亡。羊時為襄陽都督,因盤馬落地,遂折臂。于時士林咸歎其忠誠。」
『유명록』에 이르기를 「양호가 말 타기에 능하였다. 다섯여섯 살 된 아이 하나가 있어 단정하고 밝아 기쁠 만하였는데, 무덤을 판 뒤에 아이가 곧 죽었다. 양호가 그때 양양도독이었는데 말을 돌리다가 땅에 떨어져 마침내 팔이 부러졌다. 이때 선비 숲이 다 그 참됨과 정성을 탄식하였다」 하였다.
4이는 반드시 진흙받이를 아끼는 것이다
王武子善解馬性。嘗乘一馬,著連乾障泥。前有水,終日不肯渡。王云:「此必是惜障泥。」使人解去,便徑渡。
왕무자가 말의 성품을 잘 알았다.
일찍이 한 말을 타는데 이어 붙인 진흙받이를 달았다.
앞에 물이 있는데 온종일 건너려 하지 않았다.
왕무자가 말하였다. "이는 반드시 진흙받이를 아끼는 것이다."
사람을 시켜 풀어 내니 곧 곧장 건넜다.
협주 1
《語林》曰:「武子性愛馬,亦甚別之。故杜預道『王武子有馬癖,和長輿有錢癖。』武帝問杜預:『卿有何癖?』對曰:『臣有左傳癖。』」
『어림』에 이르기를 「왕무자가 성품이 말을 아꼈고 또한 몹시 이를 가렸다. 그러므로 두예가 말하기를 『왕무자에게는 말 버릇이 있고 화장여에게는 돈 버릇이 있다』 하였다. 무제가 두예에게 『경에게는 무슨 버릇이 있는가』 물으니, 대답하기를 『신에게는 「좌전」 버릇이 있습니다』 하였다」 하였다.
5사조여 어찌 복이 아닌 줄 알겠는가
陳述為大將軍掾,甚見愛重。及亡,郭璞往哭之,甚哀,乃呼曰:「嗣祖,焉知非福!」俄而大將軍作亂,如其所言。
진술이 대장군의 아전이 되어 몹시 아낌과 무겁게 여김을 받았다.
죽으매 곽박이 가서 그를 곡하기를 몹시 슬피 하고, 이에 불러 말하였다. "사조여, 어찌 복이 아닌 줄 알겠는가."
이윽고 대장군이 난을 일으키니 그 말한 바와 같았다.
협주 1
《陳氏譜》曰:「述字嗣祖,潁川許昌人。有美名。」
『진씨보』에 이르기를 「진술은 자가 사조요 영천 허창 사람이다. 아름다운 이름이 있었다」 하였다.
6천자가 나는 것이 아니라 천자의 물음을 오게 할 수 있을 뿐입니다
晉明帝解占塚宅,聞郭璞為人葬,帝微服往看。因問主人:「何以葬龍角?此法當滅族!」主人曰:「郭云:『此葬龍耳,不出三年,當致天子。』」帝問:「為是出天子邪?」答曰:「非出天子,能致天子問耳。」
진나라 명제가 무덤과 집터 점치기를 알았는데, 곽박이 남을 위해 장사 지낸다는 말을 듣고 임금이 남루한 옷으로 가서 보았다.
이로 인해 주인에게 물었다. "어찌하여 용의 뿔에 묻는가. 이 법은 마땅히 겨레를 없앤다."
주인이 말하였다. "곽박이 이르기를 『이는 용의 귀에 묻는 것이니 세 해가 지나지 않아 마땅히 천자를 오게 하리라』 하였습니다."
임금이 물었다. "이는 천자가 난다는 것인가."
대답하였다. "천자가 나는 것이 아니라 천자의 물음을 오게 할 수 있을 뿐입니다."
협주 1
青鳥子相冢書曰:「葬龍之角,暴富貴,後當滅門。」
『청조자상총서』에 이르기를 「용의 뿔에 묻으면 갑작스레 부유하고 귀해지나 뒤에 마땅히 문을 없앤다」 하였다.
7장차 마땅히 뭍이 되리라
郭景純過江,居于暨陽,墓去水不盈百步,時人以為近水。景純曰:「將當為陸。」今沙漲,去墓數十里皆為桑田。其詩曰:「北阜烈烈,巨海混混;壘壘三墳,唯母與昆。」
곽경순이 강을 건너 기양에 살았는데, 무덤이 물에서 백 걸음이 차지 않으매 그때 사람들이 물에 가깝다 하였다.
경순이 말하였다. "장차 마땅히 뭍이 되리라."
이제 모래가 불어 무덤에서 몇십 리가 다 뽕나무 밭이 되었다.
그 시에 이르기를 「북쪽 언덕은 매섭고 큰 바다는 넘실거린다. 겹겹이 쌓인 세 무덤은 오직 어머니와 형이로다」 하였다.
협주 1
《璞別傳》曰:「璞少好經術,明解卜筮。永嘉中,海內將亂,璞投策歎曰:『黔黎將同異類矣!』便結親暱十餘家,南渡江,居於暨陽。」
『박별전』에 이르기를 「곽박이 젊어서 경전의 법을 좋아하고 점치기를 밝게 알았다. 영가 연간에 온 세상이 장차 어지러워지매 곽박이 산가지를 던지고 탄식하기를 『검은 머리 백성이 장차 다른 무리와 같아지겠구나』 하였다. 곧 가까운 이 열 남짓 집을 맺어 남쪽으로 강을 건너 기양에 살았다」 하였다.
8그대가 이에 다시 나무에 죄를 미루는가
王丞相令郭璞試作一卦,卦成,郭意色甚惡,云:「公有震厄!」王問:「有可消伏理不?」郭曰:「命駕西出數里,得一柏樹,截斷如公長,置床上常寢處,災可消矣。」王從其語。數日中,果震柏粉碎,子弟皆稱慶。大將軍云:「君乃復委罪於樹木。」
왕승상이 곽박에게 한 괘를 지어 보게 하였다.
괘가 이루어지매 곽박의 뜻과 낯빛이 몹시 나쁘며 말하였다. "공께 벼락의 재앙이 있습니다."
왕승상이 물었다. "삭이고 엎드리게 할 결이 있는가."
곽박이 말하였다. "수레를 명하여 서쪽으로 몇 리를 나가면 잣나무 하나를 얻을 것입니다. 잘라 끊어 공의 키만큼 하여 평상 위 늘 주무시는 데에 두면 재앙이 삭을 것입니다."
왕승상이 그 말을 좇았다. 며칠 가운데 과연 잣나무가 벼락 맞아 가루가 되니 자제들이 다 경사롭다 일컬었다.
대장군이 말하였다. "그대가 이에 다시 나무에 죄를 미루는가."
협주 1
王隱《晉書》曰:「璞消災轉禍,扶厄擇勝,時人咸言京、管不及。」
왕은의 『진서』에 이르기를 「곽박이 재앙을 삭이고 화를 돌리며 액을 붙들고 나은 것을 가리매, 그때 사람들이 다 경방과 관로도 미치지 못한다 말하였다」 하였다.
9좋은 것을 청주종사라 하고 나쁜 것을 평원독우라 하다
桓公有主簿善別酒,有酒輒令先嘗。好者謂「青州從事」,惡者謂「平原督郵」。青州有齊郡,平原有鬲縣。「從事」言「到臍」,「督郵」言在「鬲上住」。
환공에게 술을 잘 가리는 주부가 있어, 술이 있으면 문득 먼저 맛보게 하였다.
좋은 것은 「청주종사」라 하고 나쁜 것은 「평원독우」라 하였다.
청주에는 제군이 있고 평원에는 격현이 있다. 「종사」는 배꼽에 이른다는 말이요, 「독우」는 격막 위에 머문다는 말이다.
10군후께서 앓으시는 바는 바로 나아감이 지나쳐 이른 것일 뿐입니다
郗愔信道,甚精勤。常患腹內惡,諸醫不可療,聞于法開有名,往迎之。既來,便脈云:「君侯所患,正是精進太過所致耳。」合一劑湯與之。一服,即大下,去數段許紙如拳大;剖看,乃先所服符也。
치음이 도를 믿어 몹시 정하고 부지런하였다.
늘 뱃속이 나쁨을 앓아 여러 의원이 고치지 못하였는데, 우법개가 이름이 있다는 말을 듣고 가서 그를 맞아 왔다.
이윽고 오매 곧 맥을 짚고 말하였다. "군후께서 앓으시는 바는 바로 나아감이 지나쳐 이른 것일 뿐입니다."
한 첩 탕약을 지어 주었다.
한 번 먹으매 곧 크게 내려 주먹만 한 종잇조각 몇을 내보냈다. 쪼개어 보니 이에 앞서 먹은 부적이었다.
협주 1
《晉書》曰:「法開善醫術,嘗行,莫投主人,妻產,而兒積日不墮。法開曰:『此易治耳。』殺一肥羊,食十餘臠而針之。須臾兒下,羊膋裹兒出。其精妙如此。」
『진서』에 이르기를 「우법개가 의술을 잘하였다. 일찍이 다니다가 저물어 주인집에 들었는데, 아내가 아이를 낳는데 아이가 여러 날 떨어지지 않았다. 법개가 『이는 쉬이 다스려질 뿐이다』 하고, 살진 양 한 마리를 잡아 열 남짓 저민 고기를 먹이고 침을 놓았다. 잠깐 사이에 아이가 내려오는데 양의 기름이 아이를 싸고 나왔다. 그 정하고 묘함이 이와 같았다」 하였다.
11이에 다 경방을 태우다
殷中軍妙解經脉,中年都廢。有常所給使,忽叩頭流血。浩問其故?云:「有死事,終不可說。」詰問良久,乃云:「小人母年垂百歲,抱疾來久,若蒙官一脈,便有活理。訖就屠戮無恨。」浩感其至性,遂令舁來,為診脉處方。始服一劑湯,便愈。於是悉焚經方。
은중군이 경맥을 묘하게 알았는데 중년에 도무지 그만두었다.
늘 심부름하던 이가 있어 홀연히 머리를 조아려 피를 흘렸다.
은호가 그 까닭을 물으니 말하였다. "죽을 일이 있어 마침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따져 묻기를 한참 하매 이에 말하였다. "작은 사람의 어미가 나이 백 살에 가까운데 병을 안은 지 오래니, 만일 어른의 맥 한 번을 입으면 곧 살 결이 있습니다. 마치고 죽임에 나아가도 한이 없겠습니다."
은호가 그 지극한 성품에 느껴 마침내 메고 오게 하여 맥을 보고 처방을 내렸다.
비로소 한 첩 탕약을 먹으매 곧 나았다. 이에 다 경방을 태웠다.